운명의 유전(流轉)

Posted by 히키신
2017. 3. 25. 21:24 순간의 감상[感想]

나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어머니를 정확히 반 씩 꼭 빼닮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분들이다. 유쾌하고 쾌활하며 밖으로 나돌기를 좋아하시는 아버지와 겉으론 잘 표현하지 못하고 말수가 없으며 집에 홀로 앉아 텔레비전을 보거나 책을 읽는 것을 최고로 치는 어머니. 아버지가문의 헐통을 흐르는 지독한 가난과 그에 따른 조금은 짧은 가방끈에 절절히 흐르는 어두운 삶의 그림자. 어머니 가문의 부족함 없는 살림과 법 없이 살만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밑에서 순수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어머니.
그러나 이쯤 회상하다보니 어머니와 아버지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두 분의 가계 속에 저민 불화와 그로 인해 그들의 삶 역시, 당신들은 원치 않으셨던, 슬픈 삶을 살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도대체 이것은 무슨 기묘한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나는 둘 중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정확히 내 속에 꼭 절반씩을 차지하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피 속에서 늘상 방황하였고, 결국 당신들과 같이 질곡의 삶이라는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에 젖어 소름이 돋았다.
그런 느낌이 든 이후로 나는 어떻게든 이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닥치는대로 책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나를 매료한 한 마디는 '네 운명에 순응하라' 라는 어디서 울려퍼지는 목소리인지 알 순 없지만 왠지 거역하기엔 너무나도 큰 울림의 외침이었다.

-'17. 02. 17.

'순간의 감상[感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표  (0) 2017.03.25
'17. 02. 14.  (0) 2017.03.25
'17. 02. 26.  (0) 2017.03.20
단상  (0) 2017.03.20
무제 단상  (0) 2017.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