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12월의 어느 겨울 날

Posted by 히키신
2019. 3. 20. 08:22 순간의 감상[感想]

취업 준비를 하다 너무 피로해서 면접 준비를 그치고 집에 가던 길이었다. 마침 형의 집 앞을 지나던 길이었는데 눈 앞에서 형이 들어오는게 아닌가.
“어 행님! 마침 잘 됬다!”
학과사무실에서 부탁한 간단한 설문 일을 하고서 받은 도서상품권 5만원을 형에게 건네 주었다. 그 때 길 건너편에서 어떤 남루한 차림의 노파가 손짓하였다. 수레 위의 고물들이 길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내가 하루종일 힘을 너무 많이 써서 손에 힘이 없어가...이 것 좀 주워주오.”
나와 형은 널부러진 고철과 재활용 쓰레기들을 주워 수레에 쌓았다. 그러나 날이 너무 추웠고, 형은 너무도 얇은 옷차림으로 있었다. 덜덜 떨면서 서 있기에 혹시라도 면역이 약한 형이 감기에 걸릴까봐 걱정이되어 말했다.
“행님은 들어가라. 감기 걸리겠다. 여는 내가 알아서 하께.”
“그래도...”
“괜찮다. 들어가라 행님.”
“그래, 담에 밥이나 같이 먹자.”
형은 내심 주저하는 듯 했지만,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 잘 한 것이다. 형은 본인의 건강을 신경쓰는 데에 최우선으로 신경 씀이 마땅하다.
그런데 가만 보니 노파는 모습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가뜩이나 추운 한 겨울날, 이 무거운 것들을 혼자서 어떻게 다 지고 간단 말인가.
“고맙소 총각. 여기 선원에서 할아버지가 오늘 죽었어요. 너무너무 가난해서 병들어 제대로 먹지도, 치료하지도 못해서 오늘 갔다우. 그래서 오늘 이렇게 물건이 많이 나왔어요.”
“예...이거 이렇게 묶으면 되나요?”
“아니, 이거는 그냥 이렇게 한번만 묶으면 되요. 그래도 안떨어져. 아이고 괜히 힘들게 묶고 있었네.”
사실 이런 파지 더미 쌓인 수레를 한번도 끈으로 묶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파지 줍는 할머니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오래 뵌 적도 없었다. 갑자기 나는 할머니의 사정이 궁금해졌다.
“우리 아저씨가 뺑소니를 당했어요. 그런데 H 해상에서 딱 2천만원이 나왔는데, 이런 저런 비용으로 1980만원이 한번에 나가고 딱 20만원만 남았지요. 그런데 그렇게 보험사에서 돈을 받으면, 의료 보험도 적용 못 받는다대요? 그래서 그 뒤로 수술비에 병원비에 살림은 순식간에 거덜났지요. 내가 몇 년이나 똥오줌 받아주고 수발했는데, 결국은 죽었어요. 아이고 힘들다....영감은 내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는거 알까? 모르겠지. 이미 죽어버렸는데...”
“아...”
어떤 말을 하는게 좋을지 순간 많은 생각을 했지만,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너무 안타깝고, 안타까울 뿐이었다.
“날도 추운데 너무 힘드시겠어요. 이거 끌고 어디로 가시는 거에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여기 쓰레기도 다 정리하고 가야되고 이 통도 어디다 맡겨놓고 가야되요. 그럴려면 시간이 많이 걸려요. 이만하면 충분히 고마워요. 얼른 가보세요. 나 때문에 친구하고 얘기하던것도 못하고...”
“아니에요. 괜찮아요. 이거 끌고 가는 것까지 도와드릴게요.”
몇 번이고 할머니는 이제 괜찮으니 가보시라 고 하였다. 손주 뻘 되는 나에게 그렇게 할머니는 존대하며 얘기하셨다. 나는 너무 가슴이 아파서 도저히 그대로 갈 수는 없었다.
내가 계속 남아 있자 할머니는 나에게 이것 좀 묶어 달라, 이것 좀 위에 얹어 달라며 부탁하셨다. 역시, 남아 있길 잘했다.
“여기 이 선원에서 날 잘 챙겨줘요. 여기 이 참기름도 이렇게 주고..그런데 여기서 오늘 할아버지 한사람이 죽었어요. 너무너무 가난해서 아픈데 치료도 못받고 고생하다 갔지요. 아이고....그래서 이렇게 오늘은 폐품이 많이 나온거에요.”
과연 수레에 다 실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갖가지 폐품들이 가득했다.”
“이 정도면 한 얼마쯤 받을 수 있어요?”
“한 8500원 정도?”
“아... 그것 밖에 안되요?”
“네. 요즘 경기가 어려워서 많이 싸졌어요. 그래도 이건 좀 많이 나오는 거에요. 어제는 고물상에 가니까 다해서 6500원 쳐주더군요.”
할머니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울 듯 보이는 손수레 한가득한 폐품들이 고작 8500원이라니.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아무렇지 않게 쓰는 하루 한끼 식사에 담배값에 교통비로만도 1만원은 족히 쓰는 나를 되돌아보니 괜시리 부끄러워졌다.
할머니를 도와 수레를 끌고 갔다.
“이렇게 더 올려야 힘이 덜들어요. 더, 더.
내리막에서는 더많이 올려들어야 되요. 안그럼 잘못하면 미끄러져요. 그러다 대형사고나지.”
“이 정도로 들어올리다 쏟기는거 아니에요?”
“아냐, 안 쏟겨요.”
역시 어떤 일이든 매일같이 하는 사람의 조언은 자신의 체험 속에서 얻은 지혜가 깃든 법이다. 과연 할머니 말대로 손잡이를 높이 올리고 수레를 끄니 한결 수월하다.



할머니와 인사하고 나와 시계를 보니 어느덧 두어시간이 훌쩍 지났다. 할머니를 돕고 있는 동안 길을 지나며 힐끔 힐끔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참 아쉬운 건, 그들 중 단 한사람도 거들겠다며 다가오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씁쓸함이 지나간다. 내일도 어김없이 하루종일 폐지를 주으실 할머니를 생각하며 짠한 안쓰러움도 지나간다. 헤어질 때 연신 고맙다며 허리를 숙이신 할머니를 생각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비록 작은 일이지만, 내 도움으로 누군가가 고마워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작은 뿌듯함을 느꼈다.
장전역에서 인사드리며 돌아서는 찰라, 할머니는 주변 사람들이 다 들을 만큼 큰 소리로 외쳤다.

“총각! 고마워요! 총각은 반드시 잘 될거에요!”

할머니의 외침은 분명 나를 위한 축복의 말이었지만 왠지 내 가슴에 비수처럼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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