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니엘 호손 단편선

Posted by 히키신
2017. 2. 19. 15:23 음미할만한 말과 단편들

나사니엘 호손 단편선, 천승걸 옮김, 민음사, 1998

 

웨이크필드

- 생각은 항상 그 자체의 추진력을 갖고 있고 어떤 이상한 사건도 그 나름의 교훈을 지니고 있는 법이다.

- 인간의 정에 틈새를 만드는 것은 위험한 일이오. 그 틈새가 길고 멃게 벌어져서가 아니라 그 틈새가 곧 다시 닫혀버리기 때문이라오.

P102

이 행복한 사건은ㅡ우리가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ㅡ전혀 사전에 계획되지 않은 순간에만 일어날 수 있었을 그런 사건이었다. 우리의 친구를 문지방 너머까지 따라가진 말자. 그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었다. 그중의 한 부분은 교훈에 지혜를 제공하고 구체적인 어떤 형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혼란스러워 보이는 알 수 없는 세상 속에서도 개개인은 어떤 체계에 아주 잘 적응하고 또 각각의 체계들은 서로서로, 그리고 전체의 체계에 아주 잘 적응을 해서, 한순간이라도 거기서 벗어나면 인간은 자신의 자리를 영원히 잃는 끔찍한 위험에 스스로를 노출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웨이크필드처럼 우주의 방랑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야망이 큰 손님

P107

그는 지금까지 멀리 혼자서 여행을 해왔다. 그의 모든 삶은 사실 혼자만의 고독한 여정인 셈이었다. 왜냐하면 고아하고 신중한 성격 때문에, 그는 그렇지 않았으면 자기의 친구가 될 수 있었을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고립시켜 왔기 때문이었다. 이 가족들 역시 그처럼 친절하긴 하지만, 모든 가정의 울타리 안에 낯선 사람이 침입할 수 없는 성스러운 장소를 유지해야 할 그들만의 어떤 일체감과 세상 사람들로부터의 고립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날 밤 어떤 예언적인 동류감이 그 세련되고 지적인 젊은이로 하여금 소박한 산골 사람들 앞에서 그의 마음을 다 털어놓도록 만들었고 또한 그들로 하여금 마찬가지의 허심탄회한 믿음으로 젊은이의 이야기에 응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래야만 했을 것이다. 같은 운명을 공유한 사람들 사이의 유대가 단순한 혈육의 그것보다 더 강한 것이 아니겠는가?

 

목사의 검은 베일

P148

"내가 슬픔 때문에 얼굴을 가린다면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만일 죄 때문에 얼굴을 가린다면 어떤 인간이 그러지 않을 수 있겠소?" 그는 그렇게 대답할 뿐이었다.

 

P155~6

"당신들은 왜 나만 보면 두려워 몸을 떠십니까?"

 베일에 가린 얼굴로 창백해진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며 그는 외치듯 말했다.

 "서로 서로를 보고 두려워 떠십시오! 오직 나의 검은 베일 때문에 남자들은 나를 피하고 여자들은 동정심을 보이지 않고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달아난 것입니까? 이 천 조각을 그처럼 무섭게 만든 것이 그것이 막연히 상징하는 알 수 없는 신비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친구가 친구에게, 연인이 그가 가장 사랑하는 연인에게 속마음을 다 보여줄 수 있을 때, 사람들이 가증스럽게 자신의 죄를 남몰래 쌓아가며 창조주의 눈앞에서 움츠러들지 않을 수 있을 때, 그때, 내가 그 밑에서 살아왔고 죽어간 그 상징물을 보고 나를 괴물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지금 내 주위를 둘러보면, 보시오!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검은 베일이 씌워져 있지 않습니까!"

 

반점

P183~4

그 숙명적인 진홍빛 손은 삶의 신비를 풀어보려고 몸부림쳤고 결국 천사의 정신과 인간의 육체를 하나로 묶느 결속의 역할을 한 것이었다. 인간의 불완전함의 상징인 그 반점의 마지막 진홍빛이 그녀의 뺨에서 사라졌을 때 이제 완전해진 그 여자의 마지막 숨결이 공기 속으로 사라져갔고, 그녀의 영혼은 남편 곁에서 잠깐 머뭇거리다가 이윽고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그때 껄껄대는 거친 웃음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완전히 성숙치 못한 이 희미한 인간 세계에서 보다 높은 상태의 완전함을 요구하는 그 불멸의 요소는 번번이 이 거친 지상의 숙명에 패배하고, 거친 지상의 숙명은 저처럼 승리의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다. 하지만 에일머가 좀더 깊은 지혜에 도달했더라면 지상의 삶과 천상의 삶을 같은 천으로 얽어 짜줄 수 있었을 그 행복을 그처럼 내던져버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 덧없는 환경은 그에겐 너무 힘겨웠다. 그래서 그는 시간의 그늘진 부분 그 너머를 보지 못했고 오직 영원 속에서만 삶으로써 현재 속에서 완전한 미래를 보아내는 일에 실패한 것이었다.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

P221

생각의 표현을 추구하는 예술가는 그 섬세함과는 양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강한 힘을 소유해야 하는 것이다. 좀처럼 믿으려들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그들의 철저한 불신을 무기로 공격해올 때 그는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지켜야 하며, 스스로 자신의 재능과 그 재능이 지향하는 목표의 철저한 추종자가 되어 인류 전체에라도 맞서 대항해야 하는 것이다.

 

P226

시인이든 다른 매체를 사용하는 예술가든 아름다움을 내면적으로 즐기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후딱 사라져가는 그 신비를 그의 영적인 영역의 경계 너머까지 쫓아가서 그 가녀린 신비를 육체적인 힘으로 움켜쥐어 결국 찌그러뜨려야만 하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P228

만일 자신이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의 공감과 이해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그의 외롭고 힘겨운 추구의 삶에 얼마나 큰 도움과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인가! 일상적인 삶으로부터 격리된 어떤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들, 인류를 앞서가는 선각자나 인류로부터 소외된 사람들, 이들은 때로 얼어붙은 고독한 극지(極地)에서처럼 그들의 정신을 떨게 만드는 도덕적 냉기를 느끼게 되는 법이다.

 

P230

그러나 천재적인 인간에 있어서 영적인 부분이 흐려지면 세속적인 부분이 더욱더 걷잡을 수 없이 그 영향력을 발휘하는 법이다. 왜냐하면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경우와는 달리 신이 특별히 아주 정교하게 조정해 놓은 예민한 균형 상태로부터 그의 인격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까닭이다.

 

P232

마을 사람들은 이 모든 괴팍한 행위를 한마디로 종합해서 설명했다. 즉 오웬 워랜드가 돌았다는 것이었다! 이 세계의 가장 평범한 한계를 벗어나는 모든 것에 대한 설명으로서 이 쉬운 방법은 얼마나 효과적이며, 또한 편협함과 아둔함으로 상처받은 감정에 얼마나 만족스런 위안을 주는가! 사도 바울 시절부터 우리의 가련한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의 이 시대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현명하고 너무나 훌륭하게 말하고 행동한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담긴 모든 신비를 설명하는 데 바로 이 부적 같은 설명 방법이 적용되어 온 것이다.

 

P236~9

"그런 생각은 이제 다 집어치워버렸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항상 스스로를 미혹시키는 그런 꿈이지요. 이제 철이 들어 생각하니 우습군요."

 아, 전락해 버린 가련한 오웬 워랜드여! 이런 태도는 그가 이제 우리 주위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고 있는 보다 훌륭한 세계의 주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징후였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신념을 잃어버리고, 그런 불행한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그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많은 것들까지도 거부해 버리는 그런 지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오직 그의 손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만을 철저히 믿게 되었다. 이런 것은 정신적은 고귀한 부분이 사라져버리고 천박한 이해에 의하여 인식할 수 있는 것들에만 점점 더 동화되어 가는 사람들의 불행인 것이다. 그러나 오웬 워랜드에 있어서 정신은 완전히 죽거나 사라지지는 않았고 오직 잠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

 "내가 할 일에 대해서 지금처럼 이렇게 강한 의욕을 느낀 적은 없었지"

 그는 혼자 생각했다.

 그러나 스스로 건강하다고 느끼기는 하면서도 한참 일하는 도중에 갑자기 죽음이 닥쳐들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그는 더욱더 열심히 일에 몰두하게 되었다. 아마도 이러한 불안감은 자신들의 생각에 아주 높은 목표를 세우고 오직 그 목표의 달성 여부에 인생의 중요성이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인생을 그 자체로서 사랑하는 한 우리는 인생을 잃어버릴까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반면에 어떤 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삶을 희구할 때 우리는 삶의 결이 아주 연약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

그러나 역사는 아주 고귀한 정신이 어떤 시기에 인간의 형태로 나타났다가 인간의 판단으로 볼 때 이 지상에서의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허락받지 못하고 일찍 죽어간 예를 허다하게 보여준다. 예언자는 죽어가고 둔한 가슴과 멍한 머리를 가진 사람은 살아남는다. ... 그러나 이 세상에서 이루지 못한 그런 계획들은 결국 아무 곳에서도 완전히 이루어 질 수 없으리라. 이처럼 자주 좌절되는 인간의 고귀한 계획들은 이 지상에서의 행위는 아무리 경건함이나 재능으로 영성화된다 하더라도 오직 정신의 훈련이나 발로로서 가치가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아마도 증명해 보이고 있을 것이다. 천국에서는 모든 평범한 생각들도 밀턴의 노래보다 더 우아하고 아름답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밀턴이 지상에서 채 끝내지 못한 노래에 한 절을 더 보태서 그것을 완성하려고 하겠는가?

P249

예술가가 진실로 아름다움을 성취할 만큼 높은 경지에 이르면 그 아름다움을 사람들의 감각에 느껴지도록 만드는 상징물 자체는 그의 눈에 그다지 가치가 있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의 정신은 상징물이 아닌 실체 자체를 즐긱 되는 것이니까.


라파치니의 딸


P259

꽃과 아가씨는 다르기도 했고 또 같기도 했으며, 각자의 모습 안에는 이상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아침의 밝은 햇빛 안에는 해가 진 후, 혹은 밤의 어둠 속에서, 혹은 음울한 달빛 속에서 우리가 일으킬 수 있는 그릇된 환상이나 잘못된 판단을 교정시켜 주는 묘한 영향력이 있는 법이다.


P268

지오바니는 무엇을 두려워해야 할지를 알지 못했고 무엇을 희망해야 할지는 더 더욱 알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희망과 두려움이 그의 가슴 속에서 계속 다투면서 한쪽이 이겼다가는 다시 다른 쪽이 이기고 그렇게 하면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모든 다눈한 감정은 그것이 어두운 것이든 밝은 것이든 다 축복을 받은 것이다! 지옥의 벌건 불길을 만들어내는 것은 밝음과 어둠의 무시무시한 혼합이 아니던가.


P273

그는 이제 돌이킬 수 없이 그녀의 영향권에 들어서서, 점점 더 원을 좁혀가며 그를 계속 앞으로 세차게 몰아가는 절대적인 힘에 복종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향한 것인지 그는 예측해 보려고 시도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지만 그 순간 갑작스런 의심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자신의 이 짙은 관심이 하나의 망상이 아닌가, 자신을 이처럼 가늠할 수 없는 상태로 몰아붙이는 것을 스스로에게 정당화시켜 줄 수 있을 만큼 그 관심이 그렇게 깊고 확실한 성질의 것인가, 그것이 그의 가슴과 별 관계가 없거나 전혀 관계가 없는 젊은이의 들뜬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의문이었다. 

 그는 잠시 멈춰 서서 망설이며 몸을 반쯤 돌리기도 했지만 결국은 다시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

 불가능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꿈의 뿌연 환영이 명확한 현실로 선명히 뒤바뀔 때,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상상하면 기뻐 날뛰거나 비탄에 빠질 것 같은 상황에서 오히려 침착하고 냉정하게 되는 경우를 우리는 얼마나 자주 경험하는가! 운명은 우리를 그처럼 어긋나게 하면서 쾌감을 느낀다. 또한 열정은 제 마음대로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왈칵 달겨들면서도 정작 적절한 상황이 그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때에는 뒤에서 미적거리며 게으름을 피운다. 지금의 지오바니의 경우가 바로 그랬다.


이선 브랜드

P305

웃음이란 적절치 않은 장소에서 적절치 않은 시간에, 또는 흐트러진 감정의 상태에서 터져나올 때 인간의 가장 무서운 억양의 목소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자면서 웃는 웃음소리ㅡ비록 어린아이일 경우라 하더라도ㅡ미친 사람의 웃음소리, 바보 천치의 흥분해서 내지르는 웃음소리들은 들으면 때로 소름이 끼치고 항상 잊고 싶은 소리들이다. 그래서 시인들은 악마나 도깨비가 내는 소리 중에서 공포감을 가장 적절히 나타내는 소리가 웃음소리라고 상상해 온 것이다. 


P319

그의 삶을 사로잡은 그 한 가지 생각은 그에게 하나의 교육적인 수단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그의 힘을 계속 최대한으로 개발시켰고, 그를 무식한 노동자의 수준에서 대학의 학문적 지식을 갖춘 이 지상의 철학자들도 그를 따라 아무리 오르려 해도 오를 수 없는 높은 경지로 끌어올린 것이었다. 그의 지적인 힘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이야기하자! 그러면 그의 가슴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의 가슴은 말라 시들고, 오그라들고, 굳어지고, 그래서 결국 죽어버린 것이다! 그의 가슴은 모든 사람들의 맥박과 함께 뛰기를 멈추고, 자석처럼 사로 달라붙어 있는 인간성의 고리를 놓쳤다. 그는 더 이상 우리 인간의 공통된 본성의 방이나 감방을 성스러운 공감의 열쇠로, 그 모든 비밀을 함께 나눠가질 권리를 우리에게 주는 그 열쇠로 열 수 있는 형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이제 인간을 실험의 대상으로 삼고 마침내 인간을 꼭두각시로 만들어서 자신의 연구에 필요한 정도의 죄악을 범하도록 줄을 당겨 조정하는 그런 냉혹한 관찰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선 브랜드는 악마가 된 것이었다. 도덕적인 본성이 지적인 힘과 같은 보조로 발전해 가기를 그친 그 순간부터 그는 악마가 된 것이다. 


<주홍글자> 서문 "세관" 중

...우리에게 익숙한 방의 카펫 위를 비치면서 모든 물걸들을 분명한 모습으로 아주 세세히 드러내면서도 아침이나 낮에 볼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보여주는 달빛, 그런 달빛이야말로 로맨스 작가가 그의 환상적인 손님들과 친숙해지기 위해 사용할 가장 적절한 매체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 방 안의 모든 구체적인 물건들은 자세히 드러나면서도, 이 이상한 달빛에 의하여 영성화(한자)되어서 그들의 구체적인 실체에서 벗어나 지적인 아떤 것으로 변형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작고 하찮은 것이라도 이러한 변화를 겪을 수 있고 그런 변화에 의하여 어떤 위엄을 띨 수가 있다. ... 그래서 이 익숙한 방의 마루는 실제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이 서로 만나서 서로의 본질에 섞여 스밀 수 있는, 사실적 세계와 환상적 세계 사이 어딘가의 중립 지대가 되는 것이다.


작품 해설 중

이렇듯 호손의 작가로서의 임무는 바로 <자신이 선택하고 창조해 낸 자유로운 상황에서 인간의 가슴의 진실을 제시하는 것>이었고, 그런 작가 의식 위에 세워진 그의 작품 세계는 우리에게 친숙한 일상적인 방의 세계이긴 하되 밝은 대낮의 햇빛이 아니라 <신비롭고 환상적인 달빛>에 의하여 사물들이 구체적인 실체보다는 <영적인 변형된 모습>으로 드러나는, <현실과 환상과 실제와 상상이 교묘히 섞이는 중립 지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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