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우화집

Posted by 히키신
2017. 2. 27. 19:27 음미할만한 말과 단편들

이솝 우화집, 유종호 옮김, 민음사, 2003

98. 잃을 것이 없다

노새 두 마리가 짐을 잔뜩 지고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한 마리는 돈이 가득 들어 있는 자루를 지고 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보리가 가득 들어 있는 자루를 지고 있었지요. 값나가는 짐을 진 노새는 목을 꼿꼿이 세워 고개를 쳐들고 고삐에 달린 방울을 흔들어 큰 소리를 내며 걸었습니다. 한편 그의 길동무는 조용하고 침착한 걸음걸이로 뒤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잠복해 있던 도둑 때가 들이닥쳤습니다. 이어 끔찍한 싸움이 벌어지고 첫 번째 노새가 칼침을 맞은 뒤 현금을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도둑들은 보릿자루는 신경 쓸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지요. 짐을 빼앗긴 노새는 자기의 험한 운명을 슬퍼했습니다. 그러자 보릿자루 진 노새가 말했습니다.
"나로 말하면 그들이 주목할 것 없다고 생각해 다행이야. 잃어버린 것도 없고 다친 데도 없으니 말일세."

(가난한 사람들은 안전한 삶을 꾸려나간다. 부자들은 계속 위험 속에 살고 있다.)

128. 졸속주의

암퇘지와 암캐가 누가 더 쉽게 새끼를 낳는가를 두고 말씨름을 하였습니다. 암캐는 다른 어떤 네발짐승보다도 자기가 새끼를 빨리 낳는다고 내세웠습니다.
"그건 좋아요."
하고 암퇘지가 받았습니다.
"그러나 당신 강아지는 갓 태어났을 때 눈이 안 보이잖아요."

(세상 일은 속도가 아니라 완벽성으로 판단이 된다.)


143. 부드러운 설득 방법

북녘 바람과 태양이 누가 더 센가로 말싸움을 벌였습니다. 그래서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쪽을 승자로 하는 데 의견을 같이 했습니다.
바람 차례가 먼저였습니다. 그러나 그 심한 돌풍은 나그네로 하여금 옷을 바짝 조여 입게 만들 뿐이었습니다. 북녘 바람이 더욱 세게 불자 추위로 몸이 단 나그네는 가외로 외투까지 걸쳤습니다. 마침내 바람은 싫증이 나서 차례를 태양에게로 돌렸습니다.
처음엔 그저 따뜻할 정도로만 햇볕을 주어 나그네는 외투를 벗었습니다. 이어서 아주 뜨겁게 열을 내어 더위를 이기지 못한 나그네는 옷을 벗었고 근처의 강으로 목욕을 하러 갔습니다.
(설득은 맨 힘보다 더욱 효과적이다.)

154. 희망만이 남다

제우스 신이 삶 가운데서 좋다는 모든 것들을 항아리에 담아 뚜껑을 닫고 어떤 사람에게 간수를 맡겼습니다. 속에 든 것이 궁금해서 그 사람은 뚜껑을 열었습니다. 들어 있던 것들은 곧장 공중으로 날아 올라가 땅을 떠나 하늘로 가버렸습니다. 오직 희망의 여신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뚜껑을 다시 닫았을 때 희망의 여신은 갇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잃어버린 축복의 회복을 약속해 주는 것이라고는 희망의 여신밖에 없다.)

172. 귀중한 발견

임종을 앞둔 농부가 자기 아들들이 훌륭한 농사꾼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아들들을 불러놓고 그는 말했지요.
"얘들아, 나는 곧 이승을 뜬다. 너희들은 내가 포도밭에 숨겨놓은 것을 찾아내야 한다. 내가 너희들에게 줄 모든 것이 거기 있다."
아들들은 포도밭 어딘가에 보물이 묻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땅 구석구석을 팠습니다. 감추어둔 보물은 찾을 수 없었지요. 그러나 깊은 골을 판 포도 넝쿨은 굉장한 수확을 올렸습니다.
(이 얘기는 수고한 보람이 최대의 보물임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