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하이네 - 로만체로 Romanzero

Posted by 히키신
2017. 4. 11. 16:24 Poetry#1

하인리히 하이네 Heinrich Heine, <로만체로 Romanzero>, 김재혁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3

 

*<로만체로>는 하이네가 척추결핵으로 고통받으며 죽음 앞에서 써내려간 만년의 대작이다. 그의 젊은 시절 사랑을 노래한 <노래의 책>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시들로 이루어져 있다.

*1848년 하이네는 척추결핵에 걸려 이른바 '이불 무덤Matratzengruft' 상태에 틀어박히게 된다. 육체적인 고통에 대하여 그의 희망이던 1848/49년 혁명의 실패는 그를 끝없는 좌절감에 젖게 한다. 이제 정치적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는 그의 개인적인 고통 속에서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것으로 전락한다. 이러한 주변의 열악한 여건 속에서 씌어진 <로만체로>는 하나의 일관된 테마를 변주하여 보여준다.

그것은 다름 아닌 병든 시인의 눈에 비친 지리멸렬한 세계의 모습이다. (...) 이 시집은 <역사 이야기> <애가> <히브리의 노래>의 3부로 나뉘어 그 구성에서 하나의 완결된 구조를 보여준다. (...) 역사적인 테마를 다루고 있는 제1부와 제3부가 가장 개인적인 내용을 담은 제2부를 마치 과일의 핵처럼 둘러싸고 있다. 그러나 그가 취급하는 역사는 역사 그 자체로 작용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그는 자신의 입장에 하나의 틀을 부여하는 역사적 소재를 통해 시에서 보편성을 구현하고자 한다. ㅡ 김재혁, <옮긴이 해설>에서

 

제 1부. 역사 이야기

아폴로 신

- 그녀는 성호를 긋는다, 다시 한 번

  그녀는 성호를 긋는다, 그 수녀는;

  성호는 달콤한 고통을 쫓아내지 않으며

  씁쓸한 희열도 쫓아버리지 않는다.

 

두 기사

- 목숨을 부지하는 것은

  조국을 위해 죽는 것만큼이나 달콤하다.

 (호라티우스의 시구에서 가져온 것임.)

 

제 2부. 애가

 

 행복은 경망스런 계집애,

 한곳에 가만히 머물러 있지 못하고,

 네 이마의 머리카락을 쓸어올려주다가

 네개 얼른 키스하고는 훨훨 날아가지.

 

 불행 부인은 그 반대,

 네 가슴을 사랑으로 짓누르면서,

 급할 것 없다고 말하고는

 네 침대 옆에 앉아서 뜨개질을 하지.

 (여기서의 이 모토는 제 2부 전체를 구성하는 행과 불행의 대비를 선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숲 속의 고독

- 보물이 묻혀 있는 곳 앞에서 중얼거리는

  말도 가르쳐주었다. 그들은 내게 모든 것을

  설명해주었다ㅡ하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나는 보물 찾는 법을 이해하지 못했으니.

  ...

  아름답던 시절은 빈둥대는 사이 사라졌고,

  그뒤로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아! 나는 내 머리에 쓰고 다니던

  화환을 빼앗겨버렸다.

 

예전에 야경꾼이었던 사람

- 코미디를 봐도, 말할 수 없이 형편없는

  시를 봐도 그는 즐거워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비극을

  읽으면서도 그는 미소짓지 않는다.

  ...

  예전의 야경꾼아, 시간을 알려주던 사람아,

  타오르는 네 심장을 느끼지 못하는가?

  이자르 강가에서 활기를 되찾고,

  병든 짜증일랑 떨쳐버려라.

 

플라텐 무리

- 말로 된 위대한 행동, 이것을

  그대는 언젠가 해내리라 생각한다!ㅡ

  오, 나는 오래전부터 정신적으로 남에게

  빚을 지고 있는 인간 부류들을 알고 있다.

 

*나자로

1

세상살이

 

많이 가진 사람은 거기에다

곧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적게 가진 자는

그 적은 것마저도 빼앗길 것이다.

 

하지만 네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면,

아, 아예 무덤 속으로 들어가라ㅡ

이 가련한 사람아, 살 권리는

무언가 가진 자들에게만 있으니까.

(<누가복음> 19장 26절을 풍자적, 사실적으로 빗댄 시작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가진 사람은 더 받게 될 것이요,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가 가진 것까지 빼앗길 것이다.")

 

5

부랑자가 살아남는 법

 

부자들의 환심을 사려면

천박한 아첨이면 그만이다ㅡ

돈이란 천박한 것, 사랑하는 그대여,

돈은 천박한 아첨을 듣고 싶어한다.

 ...

 당신은 날 보며 묻는군요, "나는 뭐가 없지요?"

 당신에겐 가슴이 없어요, 가슴속에 영혼이 없어요.

 

11

사라진 소망

 

...

이젠 안녕! 녹아서 사라져버린

황금빛 소망아, 달콤한 희망아!

아아, 정확히 내 가슴에 얻어맞은

주먹질은 너무나도 치명적이었다.

 

13

재회

...

그녀는 이야기했다 : 그동안 자기가 나쁜 생각을

떨치느라 얼마나 애썼는지, 이야기가 길다고,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흔들리곤 했는지 ㅡ

그녀의 수다에 나는 멍청한 표정만 지었다.

 

19

유언

...

나는 유언장에 이렇게 추가한다 :

하느님은 너희들에 대한

기억을 망각 속에 묻으리라,

그분은 너희의 기억을 없애리라.

 

20

*잃어버린 아이

 

해방 전쟁에서 끝내 빼앗긴 초소여,

나는 삼십 년 동안 충실하게 견디어냈다.

승리에 대한 희망도 없이 나는 싸웠다,

몸 성히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접어두었다.

 

나는 밤낮으로 깨어 있었다ㅡ잠들 수 없었다,

야전의 텐트 속에 함께 있던 다른 전우들처럼 ㅡ

(또한 내가 잠깐 눈이라도 붙이려 하면, 그 잘난

친구들의 드렁드렁 코고는 소리가 나를 깨웠다.)

 

그런 밤마다 지루함이 자꾸만 내게 밀려왔다,

공포와 함께 ㅡ (바보만이 공포를 모르는 법) ㅡ

그것들을 쫓으려 나는 휘파람을 불었다,

풍자의 시를 뻔뻔스런 운에 맞추어서.

 

 

그래, 나는 깨어 있었다, 총을 들고서,

그때 어떤 의심스런 녀석이 다가왔다,

나는 정확히 쏘아서 그 녀석의 배에

싱싱한 총알을 한 방 박아주었지.

 

물론 가끔 형편없는 녀석도 나처럼

정확히 총을 쏠 줄 알 때가 있었다,

ㅡ아, 나는 그것을 부인할 수 없다ㅡ내 몸엔

상처가 나고ㅡ상처에서는 피가 철철 흐른다.

 

초소 하나가 비었다!ㅡ상처가 입을 벌린다,

하나가 쓰러지면, 다른 이들이 그 자리를 메운다,

그러나 나는 패하지 않고 쓰러졌다, 나의 총도

부서지지 않았다ㅡ부서진 건 다만 내 마음뿐. 

(하이네가 원래 생각했던 제목은 <잃어버린 초소>였다. 자신의 전기를 정치적인 맥락과 연결시킨 시작품으로 지금까지 많은 영향을 끼치고 가장 많이 인용된 하이네의 정치시이다.)

 

제3부. 히브리의 노래

 

오, 즐기지도 못한 채 인생을

그냥 흘러가게 하지 말아라!

너만 총으로부터 안전하다면,

그들이 총을 쏘든 말든 상관 마라.

 

행운이 네 곁을 날아가려 하면,

그 머리채를 꼭 붙잡아라.

네게 또 충고하느니, 너의 오두막을

산꼭대기에 말고 골짜기에 지어라.

 

예후다 벤 할레비

1

...

그렇다, 그는 위대한 시인이 되었다,

그는 시대의 별이요 횃불이었으며,

그의 백성의 빛이요 등불이었고,

망명의 황야에서

 

 

이스라엘의

고통의 대열을 앞서간

놀랍고도 위대한

노래의 불기둥이었다.

 

 

그의 노래는 순수하고 진실했으며

흠집 하나 없었다, 그의 영혼처럼 ㅡ

창조주께서 그의 영혼을 만드실 때,

스스로 아주 만족스러워하면서

 

그 아름다운 영혼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하여 그 입맞춤의 고귀한 여운이

시인의 모든 노래 속에서 울려나오니

이는 창조주의 은혜를 입은 노래들이다.

 

인생에서나 시쓰기에서나

가장 훌륭한 재산은 은혜이다 ㅡ

은혜를 입은 자는 운문에서나

산문에서나 실수를 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은총을 입은 그런 시인을

우리는 천재라고 부른다:

그 사람은 정신의 왕국을 다스리는,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운 왕이다.

 

그는 오로지 하느님에게만 말을 하고,

민중에게는 하지 않는다 ㅡ 예술에서나

삶에서나, 민중은 우리를

죽일 수는 있어도 심판할 수는 없다.

 

2

...

개야, 침을 발라주어 정말 고맙구나,

하지만 그것은 상처를 시원하게 해줄 뿐 ㅡ

나를 치유해줄 수 있는 것은 죽음뿐이다,

아, 그러나, 나는 죽을 수조차 없구나!

 

세월은 찾아왔다가는 가버린다ㅡ

베틀에서는 윙윙 소리를 내며

분주하게 이리저리 실패가 움직인다ㅡ

자신이 잣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이 없다.

 

세월은 찾아왔다가는 가버린다,

사람들의 눈물 방울은 떨어져,

땅 위로 흐르고, 그러면 땅은 조용히

탐스럽게 눈물을 들이마신다ㅡ

 

펄펄 끓는다! 뚜껑이 들썩거린다ㅡ

손으로 너의 어린 새끼를 붙잡아

암벽에다 박살을 내는

사나이 만세.

 

참 다행이다! 수프는 솥 안에서

증발하다가, 소리도 점차 잦아들어,

완전히 침묵한다. 내 심술도 물러난다,

동에서 서로 부는 내 심술도 사라진다ㅡ

...

 

*<로만체로>의 맺음말

(이 맺음말은 하이네의 자서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여러 가지 내용 면에서 <고백>(1854)의 전초적인 글로 읽힌다. 시인은 죽음의 병상에서 독자들과 작별을 나누면서 자신의 사상과 시쓰기의 변화에 대한 원칙론적인 변명을 시도하고 있다. 이른바 '종교적 전향,' 헤겔 비판, 범신론과 무신론 논쟁, 진보와 후퇴 등이 주된 논의거리이다.)

(시인은 임종 직전까지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가. 개인적으로 하이네의 시들보다도 이 마지막 맺음말이 나에게는 훨씬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

 안식 없는 무덤, 돈을 지출하거나 편지나 책을 쓰지 않아도 되는 죽은 자들의 특권이 없는 죽음ㅡ이것은 슬픈 상태다. 이미 오래전에 사람들이 와서 내 관의 치수를 재가고, 내 이름을 사망자 명부에도 올렸지만, 내가 너무 천천히 죽어가는 바람에 결국에는 나도 지쳤고 내 친구들도 지쳤다. 그러나 참으로, 모든 것에는 끝이 있게 마련이니까. 어느 날 아침 그대들은 그대들을 그렇게 자주 웃기던 나의 유머의 인형 극장의 문이 닫혀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1848년 5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내가 마지막 외출을 한 날로, 그날 나는 나의 행복했던 시절 동안 숭배했던 사랑스런 우상들과 작별을 하였다. 나는 힘겹게 루브르 박물관까지 발을 질질 끌며 걸어갔다. ... 그곳에는 은혜로운 미의 여신, 사랑하는 우리의 밀로의 여인이 대좌 위에 서 있었다. 나는 그녀의 발치에 오랫동안 누워서 격하게 울었다. 돌멩이라도 나의 모습을 측은하게 여길 정도였다. 여신 역시 연민의 눈길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려는 것 같았다. 나는 팔이 없어요, 그래서 당신을 도울 수 없어요, 당신 눈에는 그게 보이지 않나요?

 나는 이제 이쯤해서 이야기를 중단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이제 여러분, 친애하는 독자들과도 작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온통 서글픈 음조가 판을 칠 것만 같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어떤 감동 같은 것이 나를 엄습한다. 나는 여러분과 헤어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결국에는 무슨 이성이 있는 존재이기라도 한 것처럼 독자에게 익숙해진다. 내가 여러분과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여러분도 우울해지는 것 같다. 나의 소중한 독자여, 여러분의 마음도 흔들리는구나. 값비싼 진주들이 여러분의 눈물 주머니에서 떨어진다. 그렇지만 진정하라, 우리는 더 좋은 세상에서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그곳에서 나는 여러분을 위해 또한 더 훌륭한 책을 쓸 것이다. 물론 그곳에서 나의 건강이 좋아진다는 것과, 스웨덴보리의 말이 거짓되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스웨덴보리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했던 행동 양식을 다른 세상에 가서도 조용히 그대로 계속하며, 그곳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개성을 변하지 않은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그리고 죽음이 우리의 유기적인 발전 과정에 있어서 전혀 특별한 방해 요소가 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들려준다. ...

 이 이야기들이 바보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여기에는 의미심장하고 통찰력 있는 뜻이 담겨 있다. 이 위대한 스칸디나비아의 예언자는 우리 존재의 일체성과 불가분성을 파악하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이 지닌 양도할 수 없는 개인적 권리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인정한 것이다. 영혼의 불멸은 그에게 있어서 결코 우리가 새 옷을 입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장하는 어떤 이상적인 가장 무도회가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인간과 의상은 다른 세상에서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스웨덴보리의 다른 세상에서는 가난한 그린란드 사람들도 안락함을 느낀다. 그들은 언젠가 덴마크 선교사들이 자신들을 개종시키려고 하자 덴마크 선교사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늘나라에도 바다표범이 있나요? 바다표범이 없다는 선교사들의 대답에 그들은 침울하게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하늘나라는 그린란드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군요. 우리는 바다표범 없이는 살아갈 수 없거든요.

 우리의 영혼은 우리의 인격의 종말이라는, 영원한 절멸이라는 생각에 대해 얼마나 저항하는가! 우리가 자연의 탓으로 돌리는 공간 공포는 사실은 우리 인간의 심정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친애하는 독자여, 기운을 내라, 영혼은 불멸하고, 다른 세상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바다표범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안녕히 계시라. 내가 만약 여러분에게 빚진 것이 있다면, 내 앞으로 계산서를 보내라.

 

1851년 9월 30일 파리에서

하인리히 하이네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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