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 - 카리마조프 가의 형제들 (작성중)

Posted by 히키신
2018. 4. 23. 17:01 영원의 지헤, 그리고 철학

도스토예프스키, <카리마조프 가의 형제들>, 김연경 옮김, 민음사, 2007


p23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이란 심지어 악인들조차도 우리가 대략적으로 단정 짓는 것보다는 훨씬 더 순진하고 순박한 법이다. 이건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이다.


p53

도대체 이 세상 어디에 진리가 있단 말이냐? Il faudrait les inventer.(그것을 만들어 내기라도 해야 돼.)

[볼테르가 한 말을 아이러니하게 인용한 것이다. - 원주]


p55

리얼리스트를 믿음으로 이끄는 것은 기적이 아니다. 진정한 리얼리스트는 만약 그가 믿음이 없는 자가 아니라면 기적마저도 믿지 않을 힘과 능력을 언제라도 자기 내부에서 발견할 것이고, 반면 기적이 자기 앞에서 물리칠 수 없는 사실이 된다면 그는 사실을 인정하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감각들을 믿지 않는 쪽을 택할 것이다. 설사 그 사실을 인정한다고 할지라도, 그건 그저 자기가 지금까지는 몰랐던 자연적인 사실로서 인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리얼리스트에게는 기적에서부터 믿음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서부터 기적이 나오는 것이다. 

[니체가 창조자는 자신의 신앙을 신앙한다고 한 말이 떠오른다. 한편 철학자 박동환은 현실이 없는 세계가 진정한 현실주의자의 이상세계라고 말하였다.]


p57

하지만 불행하게도, 인생을 희생한다는 것이 어쩌면 이와 같은 많은 경우에 치를 수 있는 희생 중 가장 손쉬운 것이라는 점을 이런 청년들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젊음이 한창 끓어오를 때 인생의 오륙 년을 힘들고 지난한 학업과 학문을 위해 희생한다는 것은, 비록 예의 그 진실과 위업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그것을 기필코 이루겠노라고 다짐한 뒤 그것을 위해 자기 내부의 힘을 열 배로 늘리기 위한 목적에서라고 할지라도ㅡ그런 희생은 그야말로 대부분의 청년들과 정반대되는 길을 선택했을 뿐, 어서 빨리 위업을 이루고 싶다는 열망에 있어서는 똑같았다. 진지하게 심사숙고해 본 결과 불멸과 신이 존재한다는 확신을 얻어 감동하자마자, 당장에 그는 응당 스스로에게 "불멸을 위해 살고 싶다, 어정쩡한 타협 따위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이와 꼭 마찬가지로 그가 불멸과 신은 없다고 단정 지었다면, 당장에 그는 무신론자와 사회주의자의 길로 나갔을 것이다.(왜냐면 사회주의는 노동의 문제 내지는 소위 제4계급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주로 무신론의 문제요 무신론의 현대적 구현의 문제이며 땅에서 하늘에 다다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늘을 땅으로 끌어내리기 위한, 그야말로 신 없이 건설되는 바벨탑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산다는 것이 심지어 이상하고 불가능하다고까지 알료샤는 생각했다. 성경에도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모든 것을 나눠 주고 나를 따르라."라고 쓰여 있지 않은가. 

[마태오복음서 19 : 21, 마르코복음서 10 : 21, 루카복음서 18 : 22. - 원주]


p62

사실, 인간이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자유와 정신적인 완성에 이르기 위해 정신적으로 재탄생함에 있어서 이미 천 년에 걸쳐 온갖 시험을 거쳐 온 도구도 양날의 무기로 변할 수 있는 노릇이고, 따라서 어쩌면 겸허와 완전한 극기가 아니라 정반대의 것인 가장 악마적인 오만함을, 즉 자유가 아닌 굴레를 낳을 수도 있는 것이다.

[너무나도 적확한 통찰이다.]


p92

"그러니까 디드로 얘기 말씀이십니까, 예?"

"아니요, 디드로 얘기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결국 자기 내부에서도, 자기 주위에서도 어떤 진실도 분간하지 못하게 되며, 그리하여 자기 자신도, 타인들도 존경하지 않게 됩니다. 아무도 존경하지 않게 되면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되고, 사랑이 없는 상태에서 마음껏 즐기고 기분을 풀자니 정욕에, 조잡한 음욕에 빠져들게 되고 결국 완전히 짐승과 다름없는 죄악의 소굴로 빠져들게 되는 법이니, 이 모든 것이 사람들과 자기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거짓말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쉽게 화를 낼 수 있습니다. 정말이지 화가 나는 것도 이따금씩 아주 통쾌한 것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또한 사람이란, 아무도 자기의 화를 돋우지 않았건만 그저 저 혼자 잔뜩 화가 났노라고 지어내고 멋진 그림을 만들어 내기 위해 장식 삼아 거짓말과 과장을 부풀리고 말꼬리를 물고 늘어져 겨우 콩알 몇 개로 산 하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ㅡ그 자신이 이 점을 잘 알면서도 그럼에도 스스로 버럭 화를 내는데, 그것도 통쾌할 때까지, 커다란 만족을 얻을 때까지 화를 내서 모욕감에 시달리다가 결국엔 상대방을 진정으로 적대시하기에 이르는 것입니다."

[거짓된 세상을 창조하여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는 리플리 증후군이 생각난다. 특히 고도의 이성적인 사고와 학습을 하는 이가 이러한 병을 앓게 되는 경우, 그 치료 역시 매우 힘들며 사회 속에서 큰 문제를 낳을 소지가 있다. 더이상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얻기 위해 시작된 거짓말이 결국 사람들의 기피 속에서 스스로 상처를 돋우는 결과를 낳게 된다.]


p101

민중에게는 말없이 끈덕지게 참아 온 괴로움이 있다. 그것은 자기 속으로 침잠하여 침묵한다. 하지만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은 괴로움도 있다. 그것은 일단 눈물과 함께 터져 나오면 통곡으로 변한다. 여성들에게선 특히나 그렇다. 하지만 이 괴로움이 말 없는 괴로움보다 가벼운 건 아니다. 이 경우 통곡이란 이처럼 가슴의 상처를 점점 더 벌리고 찢어 놓음으로써, 오직 그렇게 함으로써만 달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괴로움은 위안을 바라지도 않고, 그저 달랠 길 없는 괴로움의 느낌으로 연명한다. 그러니까 통곡은 끊임없이 상처를 자극하고자 하는 욕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통곡의 외침은 일시적인 후련함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자신의 상처를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방법은 될 수 없다. 그것은...]


p122

"그 말씀, 진정이시겠지요? 자, 지금 부인께서 그렇게 인정하셨으니, 저는 부인께서 진실되고 착한 마음의 소유자라는 것을 믿겠습니다. 설령 행복에까지는 다다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부인이 좋은 길로 들어섰음을 늘 기억하시고 거기서 일탈하지 않도록 노력하십시오. 무엇보다도, 거짓을, 어떤 것이든 거짓을 피하고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한 거짓을 피하십시오. 자신의 거짓을 관찰하고 매 시간, 매 순간 그것을 들여다보십시오. 다른 사람들이건 자기 자신이건 누군가를 거리껴하지도 마십시오. 부인의 내부에서 어떤 것이 부인께 추잡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부인께서 자기 내부에서 그것을 인지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정화되는 겁니다. 공포도 역시 피하십시오, 공포란 그저 온갖 거짓의 결과일 따름이지만, 사랑을 성취함에 있어 자신의 옹졸함을 절대로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 이와 관련하여 부인의 어떤 고약한 행동들에 대해서도 큰 두려움을 갖지는 마십시오. 부인께 이보다 더 즐거운 얘기를 더 이상 들려 드릴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니, 몽상적인 사랑과 비교할 때 실천적인 사랑이란 잔혹하고 무서운 것이니까요. 몽상적인 사랑은 어서 빨리 만족할 만한 위업을 달성하여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우러러봐 주길 갈망합니다. 그러다 보면 정말로, 그렇게 모든 이들의 시선을 받고 칭찬을 받기 위해서 목숨조차도 내놓을 것이지만, 다만 그것이 오래 지속되지 않고 마치 연극 무대에서처럼 어서 빨리 성사된다는 조건으로만 말이죠. 하지만 실천적인 사랑, 그것은 노동이자 인내이며, 어떤 이들에게는 말하자면 완전히 학문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럼에도, 미리 말해 두건대 부인께서 온갖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으로부터 멀어졌음을 목도하고 공포감을 느끼게 될 바로 순간ㅡ바로 그 순간에, 부인께 미리 말씀 드리지만, 부인은 갑자기 목표에 도달하게 될 것이며 부인 앞에서 언제나 부인을 사랑했고 언제나 부인을 인도했던 주님의 기적적인 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죄송합니다만, 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부인과 더 오래 머물 수가 없군요.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부인은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