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학도(晩學徒)

Posted by 히키신
2017. 5. 9. 00:04 순간의 감상[感想]

만학도(晩學徒)

나는 대학 학부만 꼬박 근 10년을 다녔으니 의과대학생을 제외하고서는 나만한 만학도도 드물 것이다. 특히나 극에 달한 취업난에 젊음 또한 귀중한 스펙이 되는 요즘 같은 시절엔 더욱 그러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나는 신설된 학과에 첫 기수로 입학하였으므로 위로 직계 선배라고는 없이 대학 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해서 대학 생활 참 편안하게 했구려 하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단 한번도 선배라고 부른 적은 없이 수많은 아이들이 선배라고 부르는 것을 들으며 학교를 다니려 할 적엔, 보통 부담스러운게 아니다. 휴학과 복학을 밥 먹듯 한 나로써는 더욱 그러한게, 학교에 갈려치면 항상 처음 보는 낯선 얼굴들이 날보고 인사를 하니 참 어쩔 줄을 모르고 불편하기만 하다.
문제는 나이만 많이 먹었다 뿐이지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그저 아직까지도 학생 신분에 불과한 애송이라는 점이다. 모름지기 선배로서 위엄을 가지려면 입은 다물고 지갑을 열라고 하는데, 나는 애시당초 지갑 자체가 없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그나마 내 장기이자 유일하다시피 가진 힘이라곤, 다양한 경험 속에서 체득한 모든 분야에서 어느정도 '알은체'하고서 대화할 수 있다는 것 정도. 이건 마치 호수 위의 백조가 겉으론 무척 고고하게 보이지만 실상 호수 밑에선 엄청나게 허우적대는 것과 같지 않나!
곧 있으면 또다시 처음 보는 풋풋한 얼굴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같이 조별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역시 무엇이든간에 물러날 때 물러나는 것은 필요한 일인가 보다.

- '17. 05.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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