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단상들

Posted by 히키신
2017. 4. 8. 00:37 순간의 감상[感想]

1. 부자병에 걸린 지극히 가난한 환자는 자신이 돈이 없음을 한탄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 환자의 몹쓸 병은 결코 그를 죽음으로 이끌지는 않고 그 목전에 다다를 정도까지만 고통을 준다. 진즉 죽지 않고 끈질기게 버텨온 그는 지금 다 포기하기엔 참으로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별다른 수는 없다.
너무나도 절망적이기만 한 현실 속에서는 이상을 꿈꾸며 노래하는 일도 힘에 부치기 마련이다. 나는 그런 사람을 알고 있다...


2.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못할 운명에 처하더라도 최소한 인간적인 죽음 정도는 바랄 자유가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마저도 이루어질 수 없는 욕망이라면?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전생이라는 게 있는지 없는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전 전생에 큰 죄를 지은 게 아닐까...그렇게 생각치 않고서는 제 삶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었으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에 신성함이 깃들어 있다네.'
'전 신성해지고 싶은 마음은 요만큼도 없구요. 성인군자가 되고 싶지도 않아요. 그저...제가 견딜 수 있을 만치만 저에게 고통이 주어지면 좋겠어요. 아니, 도대체 제가 왜 이렇게 고통스러워야만 하나요?'
'...'

3. 기억해야할 것들이 너무 많아 정말 잊지 않아야 될 것들이 점점 희미해져만 간다. 잠깐 여유가 나는 틈을 타 온 신경을 집중해보려 해도 나에겐 그런 시간은 그리 길게 주어지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는 수 없이 내 머리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고 믿어보는 수밖에 없다.

4. 아침에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과 조용히 흔들리는 은행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지저귀는 새소리와 은근한 귀뚜라미 울음소리,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 이런 것들은 내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준다.

XX

조용히 미쳐간다. 움직이는 비애(悲哀), 삶의 편력, 방황 속에서 고독이 생활이 된 나...

XX

모든 순간의 아름다움을 시적으로 노래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구체적으로 옮기려 할 적에는 매우 우스꽝스럽게 표현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꿈과 현실의 극명한 차이 때문인가. 만약 그것이 이유중 하나라고 한다면, 이를 얼마만큼 더 근사치에 가깝게 좁힐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위대한 예술이 될 수도, 한갓노리개가 될 수도 있는 기준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XX

엄마에게 안긴 아이가 내 앞에서 한참이나 날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러다 이내 획 고개를 돌려버린다. 왜일까? 나의 무표정한 얼굴때문에...?

/

형의 왼쪽 눈. 새하얀 눈.
시마의 눈. 기묘한 일치. 그러나 시마를 가슴에 품고 나면 형은 고통스럽다는 정말로 슬픈 사실.
아버지의 들리지 않는 오른쪽 귀.
어머니의 마디 마디 구부러진 손가락과 날 놓으신 이래로항상 어머니를 괴롭히는 무릎 통증.
슬픈 자화상.
벽에 적혀 있는 '가화만사성'
나 홀로 무탈한 것이 너무나도 슬프다. 나도 어딘가 탈이 나는 것이 모양새가 알맞게 맞춰지는 것일텐데. 그렇지만 나는 탈이 나서는 안 된다. 더이상 여기서 또 하나의 아픔이 이 가련한 집에 얹어져서는 안 된다.

XX

살인 충동 - 자살 충동.

에피소드 하나.
시인 이상(李箱)은 그가 항상 믿고 잘 따르던 형 김유정(金裕貞)에게 같이 동반자살하자고 권유하였으나, 김유정은 이를 거절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김유정은 병마로 이상보다 한 달 먼저 하늘로 떠났다. 인간의 운명이란 이리도 묘하게 꼬여 있다.

⁃ 16. 0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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