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사마천에게 인간학을 배우다

Posted by 히키신
2016. 4. 15. 22:35 영원의 지헤, 그리고 철학

글쓴이 -천리향

 

사람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며 뛰어난 것은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사람은 갈대와 같은 연약한 존재이나 생각하는 것에 의하여 만물의 영장이

되었음은 이제는 진부(陳腐)한 내용이다.

그러나 생각하는 국민이 잘 살고 생각하는 국민이 더 많은 감동을 자아내며

오늘날 겨우  이 정도의 생각만으로도 이 정도의 문화생활을 가능하게 하는데

완전에 가까운 생각을 할 수 있다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누런 안경을 쓰면 세상이 누렇게 보이고 파란 안경을 쓰면 세상이 파랗게

보이는 것처럼 다채롭고 공정함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면

우리의 지평은 넓어지고 뜻은 온후해지며 정신은 더욱 정교하고 심화될 것이다.

그야말로 정신의 거인(巨人) 생각의 대인(大人)들이 즐비하여 세상은 사통팔달하고

여기가 무릉도원(武陵桃源)이고 유토피아임을 저절로 깨달을 것이다.

그때는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느냐 못지않게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입장이

바뀌고 주관이 확고해지며 편견 증오 반목 대결 전쟁 등은 사라지고 생명 정의

화해, 용서 일치 등이 득세하고 행세할 것이다.

그것은 부품이나 소재산업이 발전해야 한국의 국제경쟁력이 확보되는 것처럼

우리 국민도 생각을 바로해야만이 우리의 지적성숙과 정치문화가 향상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국제사회에서의 인적 경쟁도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지금으로부터 34 년 전 내 나이 20세 때에 읽은 저자의 이름은

잊었지만 「사기(史記)의 인간학(人間學)」이라는 책에서 사유세계 사유방법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이 책에 의하면 사마천(史馬遷)이 이상으로 생각한 사람들은 그 생각들이 활달할 뿐만 아니라

기개가 높았다는 사실이다.

사기열전(史記列傳)의 사람들은 생각도 기술이고 경쟁력이라는 생각아래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이나

환골탈태(換骨奪胎)의 관념적인 말의 성찬을 즐긴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찾아보았으며 사고(思考)를

증진시키며 이해의 폭을 넓히고 갈등을 줄였다는 것이다.

사마천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총괄적 사고(總括的 사고) 양면적 사고(兩面的 思考)

우회적 사고(迂廻的 思考)의 따라 하기라고 가르치고 있다.


첫째 총괄적 사고란- 부분이나 단면을 보지 않고 전체를 보는 것이다.

저장의 개념이 아니라 흐름의 개념이다.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한 때의 흥망이나 성패(成敗)에 울고 웃고 했던고.

절(節)하나 문구(文句)하나에 치우쳐 본래의 정신을 잃어버렸고

원래의 취지를 무시했다.

종합하고 체계적으로 파악을 못하다보니 지식은 단편적이고 편견은 다반사요

행동에는 절제나 무게가 있을 수 없으며 임시변통이나 미봉책을 재주라 알고 있고

하루살이가 그 하루가 전부라고 알듯 우주의 묘리나 역사정신을 몰랐던 것이다.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짧은 지식과 좁은 시야를 탓하지 않고 균형 있는 시각 드넓은 시야를 비판한 것이

그동안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부분들의 모순을 극복하고 그것들의 연결을 통한 전체를 읽는 눈을 기르게 되면

"박사라는 학위는 대학이 주나 승부사는 인생이 주며 도사(道士)라는 학위는 역사가 준다"는

시정의 말이 정확함을 깨닫게 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파종자(播種者)라는

내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양면적 사고란- 모든 것은 동전의 양면 같이 두 얼굴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한 쪽이 올라가면 한 쪽이 내려오고 햇살이 강하면 그늘은 더욱 짙다.

길흉 화복 선악이 같이 하며 지고의 절대선도 없으며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위기는 기회이자, 오늘의 실패는 내일 성공의 예약이며  아! 아!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창과 무엇이든지 막을 수 있는 방패의 공존이 이 생각이다.

내 마음에는 천사와 악마가 있어 매일 나로 하여금 선택을 강요하게 하고

사물에는 한 성질뿐만 아니라 그에 대칭되는 성질도 스스로 갖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희망도 덧없음을 보니 절망도 덧없을 것」이라는 헝가리 시인

페퇴피 샨도스의 생각에서는 양면적 생각의 절정(絶頂)을 보는 것이다.

이 생각을 가질 때에 황희(黃喜)정승의 두 종의 진술과 관련된 상반된 평결이

체득되는 것이다.

셋째 우회적 사고란- 급할수록 돌아가는 것이다.

시쳇말로 인식의 전환 발상의 전환을 촉구하는 말이다.

생각의 물구나무서기를 해보라는 것이다.

무리는 서두르고 생기고, 실패는 기다릴 줄 몰라서 초래하는 것이다.

왜 광야나 사막에서 종교가 생기고, 일명경인(一鳴驚人)이라고 한 번 울음에

삼년의 부진이 씻어지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 견지에서 서 보면 항우 앞에 지푸라기 같아 던 유방이 천하를 얻은 까닭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 우리가 어떤 생각의 여과기를 거치며 어떤 생각의 방직기를 쓰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각이 빛깔이 다르고 모양도 다름을 알게 되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생각의 옹졸함에서 벗어나 일찍이 사마천이 터득한 생각을 익힌다면

우리도 신선이 되고 하느님의 성품에 다가가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래야만 우리는 리처드 닉슨(R Nixon)이 1972년 중국 상하이를 방문하고

빌리 브란트(W Brandt) 가 무릎을 꿇으면서 동방정잭(Ostpolitlk)을 취하며

넬슨 만델라(Mandela))가 「용서와 화해」를 주창한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옛날에는 맹자가 공자를 알아보는 길이었으며

장자가 노자를 알아주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은 또 탁문군(卓文君)과 사마샹여(史馬相如)가 만나 로맨스를 불태우며,

황진이가 화담(花潭)선생을 만나 사사(師事)할 수 있었던 소이이다.

그렇다면 지적 분화(知的分化)나 통찰력(洞察力)은 우리를 성숙하게 하고

완미(完美)하게 함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가져온 곳 : 
카페 >▣▶━Fighting 배금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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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o가야o|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