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 긍지의 날

Posted by 히키신
2015. 3. 15. 11:40 Poetry#1



【내가 자라는 긍지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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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지(矜持)의 날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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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잘 아는
순환(循環)의 원리(原理)를 위하여
나는 피로(疲勞)하였고
또 나는
영원(永遠)히 피로(疲勞)할 것이기에
구태여 옛날을 돌아보지 않아도
설움과 아름다움을 대신하여있는 나의 긍지
오늘은 필경 긍지의 날인가보다

내가 살기 위하여
몇개의 번개같은 환상(幻想)이 필요(必要)하다 하더라도
꿈은 교훈(敎訓)
청춘(靑春) 물 구름
피로(疲勞)들이 몇배의 아름다움을 가(加)하여 있을 때도
나의 원천(源泉)과 더불어
나의 최종점(最終點)은 긍지
파도(波濤)처럼 요동(搖動)하여
소리가 없고
비처럼 퍼부어
젖지 않는 것

그리하여
피로(疲勞)도 내가 만드는 것
긍지도 내가 만드는 것
그러할 때면은 나의 몸은 항상
한치를 더 자라는 꽃이 아니더냐
오늘은 필경 여러가지를 합한 긍지의 날인가보다
암만 불러도 싫지 않은 긍지의 날인가보다
모든 설움이 합쳐지고 모든 것이 설움으로 돌아가는 
긍지의 날인가보다
이것이 나의 날
내가 자라는 날인가보다 <195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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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긍지'를 한자로 '矜持'와 '肯志'로 쓸 수 있는데 '矜持'로 썼다는 것이 눈에 든다. 자긍심(自矜心)이라고 쓸 때, 긍(矜)자는 `창 모'(矛)와 '이제 금'(今)으로 이루어진 한자다. 그러니 '긍'자는 '창자루'를 '지금' 쥐고 있다는 뜻이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창자루를 쥐고 있으니 겁 없다는 말이다. '자긍심'은 '스스로 창자루를 쥐고 있는 듯한 마음'이 될 것이다.

당신은 서러워서 울어본 적이 있는가.
그냥 눈물 흘리는 정도가 아니라, 펑펑 울어본 적이 있는가.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시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넉넉한 집에서 자란 김수영은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다. 도쿄에 가서도, 연희 전문에 가서도 공부를 마치지 못했다. 겨우 시인으로 등단했지만 의용군으로 북한에 갔다가 거제도 수용소에 갇힌다. 이념이란 감옥, 그리고 실제 감옥이란 곳은 사람을 짐승으로 만든다. 김수영은 의용군으로 갔다가, 또 남쪽으로 와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있는 동안 설움을 체험했다. 나와 보니 같이 살던 여자가 친구와 함께 살고 있고, 이후 남동생 두 명은 월북해 있다. 월북한 두 명의 동생 때문에 언제든 반공법으로 잡혀 갈 수 있기에 취직도 불가능 하다. 연좌제 [緣坐制] 때문에 취직도 못하고 닭이나 키우며 번역해서 가까스로 먹고 살아가야 한다. 그나마 민주주의를 그리려 하지만 식민지와 전쟁을 거쳐 독재 아래 살아야 하는 삶, 게다가 아내에게 포르노 소설까지 쓰게 해서 쌀을 사서 먹고 살아야 하는 구차한 삶, 얼마나 서러웠을까. 김수영은 닭장 앞에서 울기도 했을까. 술 먹다가 울기도 했겠지.

김수영 시를 강연하면 조금 당혹스런 반응이 온다. 이상하다. 특히 설움을 겪은 사람들은 유별나게 반응한다. 오늘 민들레 교실에서 노숙인 한 분이 내가 강연했던 시인들 중에 김수영 시인이 가장 감동적이라고 했다. 김수영 시인이야말로 '삶'을 시로 쓰는 거 같다고 했다. 또 예전에 성매매체험 여성들 앞에서 강연했을 때 몇 분이 눈물을 흘렸었다. 그날 "여자란 집중된 동물이다"라는 구절이 나오는 「여자」라는 시를 강의했었는데, 돌아가면서 설움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몇 사람이 울었다. 김수영 시의 공감대는 어디에 있을까. 그 핵심은 '설움'에 있다.

이 시에도 김수영의 설움이 묻어있다. 이 작품의 제목이 긍정이 아니라, 긍지라는 것이 중요하다. 긍정이란 단어에는 무조건 응하는 순종적인 측면이 있고, 긍지는 아픔을 직시하고 이겨내려는 의지가 느껴진다.

2.
그 고통과 설움 중에 김수영은 어떻게 긍지를 가질 수 있었을까. 자신의 설움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을까. 혹자는 사랑하던 여인 김현경과 재결합하면서 생긴 자긍심이라고도 한다. 최하림 시인의 『김수영 평전』을 보면 1954년 말이나 1955년 초에 김수영과 김현경이 결합했다고 하는데, 거기서 오는 자신감으로 1955년 2월에 눈물 겹게 위 시를 썼을 수도 있다. 그런데 김수영의 긍지는 보다 총체적이다. 이미 1954년 10월에 '설움'을 달래며 「거미」라는 시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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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어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ㅡ 김수영「거미」(1954. 10.5)

그리고 「긍지의 날」을 쓰고 나서 8개월 뒤 1955년 10월에 김수영이 쓴 <무제(無題)>라는 산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고독이나 절망도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고독이나 절망이 용납되지 않는 생활이라도 그것이 오늘의 내가 처하고 있는 현실이라면 조용히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순수하고 남자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위도(緯度)에서 나는 나의 생활을 향락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전집 31면)

"고독이나 절망이 용납되지 않는" 꽉 막힌 생활, 막힌 골묙에서 오히려 그 절망을 사랑하는 길을 김수영은 택한다. 『주역』에 나오는 궁즉변(窮卽變),변즉통(變卽通), 통즉구(通卽久), 즉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영원하리라"는 뜻을 살아보겠다는 다짐이다. 막히면 자신이 변해야 하고, 변하면 새로운 길이 보이고, 그래야 새로운 삶을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이다. 그 변화의 첫 마음 자세가 긍지인 것이다. 자기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삶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리하여
피로도 내가 만드는 것
긍지도 내가 만드는 것
그러할 때면은 나의 몸은 항상
한치를 더 자라는 꽃이 아니더냐"

라캉은 "너의 증환(症幻)을 즐겨라"라고 했는데, 김수영은 "나의 설움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고 했다. 도대체 나를 미워하고 나를 저주하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고통과 설움과 맞붙을 때 가장 필요한 것 중의 긍지다. 긍지가 없는 사람은 상황에 복종하는 노예가 된다. 창조도 책임도 없다. 긍지가 있는 사람이 창조하고 책임지고 맞선다. 포로수용소에서 온갖 굴욕을 경험하고, 동생 둘이 월북하여 반공법으로 잡혀갈까 두려워 하며, 게다가 민주주의가 아마득히 멀어져 가는 설움 속에서 살아가던 김수영은 그래도 매일 매일 눈물을 곱씹으며 '긍지의 날'이라고 다짐한다. 무조건적인 긍정의 날이 아니고, 긍지의 날이다.

"모든 설움이 합쳐지고 모든것이 설움으로 돌아가는 
긍지의 날인가보다
이것이 나의 날
내가 자라는 날인가보다"

중요한 편집 실수 하나 지적해야겠다. 『사진판 김수영 전집』을 보면 원고지에 "모든 설움이 합쳐지고 모든 것이 서룸으로 돌아가는"이라고 "서룸"이라고 써 있다. 민음사 편집부에서 바로 잡은 것일까. 『김수영 사전』에서 "서룸"이라는 단어는 나와 있지 않다. 과연 단순한 오자일까.

나에게 물어본다. 지금 나에게 나를 지켜줄 창자루 하나가 있는가. 
그의 긍지는 그 자신이 만드는 것이었다.
오늘은 어떤 날인가. 오늘은 내가 자라는 날인가. 오늘은 내가 자라는 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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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숙대에서 김수영 특강 하는데, 100명 좌석 교실에 네이버에 130명이 신청했고, 또 사무실로 30여명이 더 신청해서 160명으로 거의 자리가 없다고 합니다. 들으실 숙대생이나 시민 분들은 빨리 오셔서 앞자리에 앉으시거나, 늦게 오실 거 같으면 안 오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제가 계속 김수영 강연할 거니까, 다음에 오셔도 감사하겠습니다.


노브레인, 더 문샤이너스에 이어 현재는 더 모노톤즈의 기타리스트로 있는 


차승우형님의 페이스북에서 퍼옴. 


이제 블로그하면서는 절대 퍼나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내용이 너무나도 와닿기에...


서러워서 펑펑 울어본 적이 있기 때문인지...?


[원 출처는 김응교 씨의 페이스북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