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심 고리키 - 그들도 한때는 인간이었다

Posted by 히키신
2017. 3. 22. 17:42 글쓰기와 관련하여

막심 고리키, <그들도 한때는 인간이었다>, 서은주 옮김, 큰나무, 1999

*제목에서와 같이 한때는 '인간'이었던 이들, 지금은 '동물'처럼 살아가는 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절망적인 상황 속을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냉소적인 묘사, 그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밝혀내는 좋은 수작이다.

고리키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1세부터 스스로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가혹한 삶의 현실을 채험해야만 했다. 학교는 겨우 문턱에만 다니고 거의 독학으로 글을 깨우친다. 그의 예명 고리키는 '견디기 어려운, 신랄한'이란 뜻이다.

'막심 고리키는 비범한 명예를 얻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또한 러시아 농민들에 대한 압제와 학대에 끊임없이 대항했다. 그는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그것은 작품에서 드러난다. 그의 문체가 다른 작가들, 특히 학식 있는 작가들보다 세련되지 못하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사실 그의 세련되지 못한 문체가 오히려 그의 주제에 사실상을 부여한다. 역사적으로 고리키의 작품은 러시아의 혼란, 혁명과 초기 소련 집권 당시 러시아 서민들의 삶을 가장 이해력 있게 설명해 주기에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옮긴이 해설 중)

자신의 삶을 그대로 작품에 녹여낸 작가의 글은 훨씬 생생하게 독자에게 전달된다. 수많은 경험, 특히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직접 체험해 본 사람의 글은 뭇 서민들에게 감동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생존하기에 급급한 이들에게 책을 펼쳐볼 작은 여유가 주어진다면...



- 눈앞에 펼쳐진 큰 길 양옆으로 창문을 걸어 닫은 채인 오래된 벽들이 서로를 짓누르며 앞으로 쓰러질 듯한 초라한 모습의 오두막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낡아빠진 오두막들의 지붕은 온통 구멍 투성이여서 여기저기 욋가지를 덮어놓았고 그 아래로는 곰팡이 핀 서까래가 불쑥 솟아나와 있었다. 그 위로는 이파리에 먼지가 잔뜩 내려앉은 오래된 딱총나무와 휘어진 하얀 버드나무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외곽 지역의 비루한 식물상(植物相)이 아닐 수 없었다.
(가난한 이들의 거주지 풍경을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하면서 이 글은 시작한다.)

- 죄를 짓지 않으면 후회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야. 우리는 첫번째 것은 했어. 하지만 후회는 쓸데없는 짓이야. 우리는 즉시 구원받도록 하자고. 강으로 나가서 일을 해.

- "인생이 그렇게 대위님을 괴롭혔는데도 허사였네요. 어울리는 자리에 계셨더라면 굉장한 분이 되셨을 거에요."
...
"'어울리는 자리'라니 그게 무슨 뜻이야? 어떤 사람도 자기 인생에서 어울리는 자리가 어딘지 몰라. 우리는 모두들 꾸물꾸물 기어서 자신의 일을 찾아가지. ...
인생은 우리를 카드처럼 뒤섞어 버리지. 우리가 제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은 단지 우연에 의해서, 그것도 잠깐일 뿐이야."

- 귀족인 그가(그의 장광설로 보아 알 수 있다), 생각이 있는 그가, 비록 운명의 뒤틀림이 그의 처지를 바꿔놓긴 했지만 가까운 곳에 자신과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보며 자신의 결점을 애석해 하는 법이다.

- "대부분의 경우 운명과 맞서 싸우기란 불가능하지."
누구에겐가 자신을 정당화시키려고나 하려는 듯 그가 말했다.

- 가난한 사람들은 자식 농사에 있어서만은 부자였다. 이 거리의 흙먼지와 물웅덩이 속에는 굶주리고 발가벗고 씻지도 않은 아이들이 아침이고 저녁이고 발견되었다. 아이들은 살아 있는 꽃이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일찍 시들어 버린 꽃 같았다.

- "내참 빌어먹을! 세상에 이유가 있어서 사는 사람 있어요? 그냥 사는 거지. 왜냐구요? 그냥요!"

- "그런데 왜 우리는 신에게 버림받은 거죠? 신은 왜 벌도 안 내리고 선지자도 안 보내시는 건가요? 도대체 누가 우리를 가르치죠?"

-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말을 믿지 않았다. 이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실제보다 더 나쁘게 그린다는 점이었다. 내부에 미덕을 가진 사람은 때로 자신의 나쁜 면을 보여 주기를 꺼리지 않았다.

- "모든 게 바보 같은 환상이에요. 부질 없는 짓이에요."
그들이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이상해 보였다. 그들은 삶에서 추방당한 사람들, 술과 심술에 절어 있는 사람들, 더럽고 소외된 사람들이었다. 이런 대화는 대위의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 아무리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더라도 상대방보다 자신이 더 낫다는 생각, 더 강하다는 생각, 심지어 더 잘 먹는다는 생각이 들 때의 희열은 절대로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 "난 속임수를 안 쓰고는 카드 못 해. 그게 내 습관이야."
"습관이 널 잡아먹을 거야."

- 그들은 과거에 대해서는 서로 말을 별로 하지 않았다. 과거를 회상하는 일이 별로 없었으며 회상한다 하더라도어렴풋이만 기억하고 있었다. 말을 하더라도 빈정거리는 투였다.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많은 이들에게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모든 의욕을 불살라 버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까지 몰살시키는 것이기에.

- "노동으로 먹고 사는 사람은 제 몸도 튼튼하고 건강해야 쓰지만 아이들도 튼튼하고 건강해야 해. 내 말이 틀렸나?"

- "우리는 어둠 속에서 살아요. 굴뚝 안으로 들어간 굴뚝 청소부처럼."

*** - "우리 인생은 얼마나 고단하고 힘든가요, 형제들이여! 우리한테는 어디에도 안식처가 없어요."
"실수로 마누라를 때릴 때도 있잖아."
누군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그들은 밤이 깊도록, 아니면 술이나 그런 얘기로 인한 열정의 당연한 결과로 다툼이 일어날 때까지 이야기를 계속했다.
빗방울이 창문을 때리고 바깥에서는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술집은 담배 연기로 가득 찼지만 따뜻했다. 거리는 차갑고 축축했다. 가끔씩 바람이 술집의 창문을 무섭게 두드렸다. 마치 이 사람들에게 밖으로 나와 땅 위의 만지처럼 흩어지라고 명령하는 것 같았다. 때로는 울부짖는 바람 소리 속에서 억눌린 듯한 가느다란 신음 소리가 들려 왔으나 이내 차갑고 잔인한 웃음 소리에 묻혀 버렸다. 아러한 음악 소리에 어떤 사람은 저주받을 만큼 짧고 흐린 낮과 긴 밤의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슬픈 생각을 했고, 어떤 사람은 따뜻한 옷과 충분한 음식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긴긴 겨울밤을 나기란 쉽지 않았다. 겨울이 오고 있었다. 그랬다, 겨울이 다가 오고 있었다. 어떻게 살까?
우울하고 불길한 예감에 이 거리의 사람들은 심한 갈증을 느꼈다. 이마 위의 주름살과 함께 '한때는 인간이었던 동물들'의 한숨도 깊어만 갔다. 목소리는 둔탁해지고, 서로들 더 난폭하게 굴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잔인한 죄가 저질러졌다. 냉혹한 그 적이 다가올수록 가난하고 불행한 부랑자들은 점점 더 거칠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적은 그들 모두의 삶을 한 편의 잔인한 어릿광대극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그 적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붙잡을 수도 없었다. ...
심장을 갉아먹는 고통을 느끼며, 악의적인 인생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더 잔이난 겨울날을 두려워하였다. ...
"다들 정신 차리게, 형제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는 법이니까. 그게 바로 인생이라는 거거든. 겨울이 지나면 여름이 올 거야. 그 황홀한 시간이 다가오면 참새들이 기쁨에 겨워 짹짹거릴 거야."
하지만 이런 얘기도 소용없었다. 아무리 신선하고 맑은 물을 배불리 마신다 해도 배고픈 사람의 배가 채워지지는 않는 것이었다. ...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몇 시간이고 미친 사람처럼 굴었다. 그리고 또다시 절망적인 기분에 빠져들어 등불의 연기가 검게 피어오르는 술집 탁자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갈가리 찢긴 서글픈 심정으로 서로 나른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바람이 거칠게 울어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정신이 나가도록 보드카를 마실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의 손이 아무에게나 날아갔고 아무나의 손이 그들에게로 날아왔다.

(소외된 이들의 처절한 삶을 적절히 묘사한 대목이다.)

- 세상의 모든 것은 상대적이어서 최악의 상태가 되지는 않았다.

('최악'이라고 말하는 순간도 최악이 아니다라는 말이 기억난다.)

- "습관적인 도둑질이란 게 뭘까? 사람은 때로 남의 것을 훔치는 실수를 할 수 있어. 하지만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은 법이지."

- "그래, 인생이란 우리 편이 아니야, 형제들. 가까운 시람에게 침을 뱉으면 침 몇 방울은 자기 얼굴에 튀기 마련이야."

**- "그럼 전 어디로 가죠?"
"불쌍한 영혼 같으니. 그건 운명이 정해 줄 일이야.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 ...
"우린 그저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 "우리를 쫓아내겠다고 할 때 새 집을 찾아보는 거야.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으로 인생을 망칠 필요는 없어. 위기의 순간에 사람들은 더 활기가 생기는 법이지. 인생이 활기로 가득 차 있다면, 언제나 인생을 갈구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매 순간이 짜여져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 인생은 더 생기 있어지고 관심과 열정으로 가득 찰걸세."

- "그게 어쨌다는 거냐? 나도 한때는 사람이었어. 하지만 지금은 부랑자일 뿐이야. 난 아무 의무도 없어. 그러니까 난 누구에게나 내 맘대로 침을 뱉을 수 있어. 내 현재 삶은 한마디로 과거를 부정하는 거야. 잘 먹고 잘 입는 사람들, 단지 먹고 입는 문제에 있어서 저희들보다 못하다는 이유로 나를 경멸스럽게 쳐다보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모두 끊는 거야. 난 내 안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개발해야 해, 이해하겠나?"

- "자네가 뭘 알겠나? 자네가 아는 게 뭐야? 자넨 사유할 줄 아나? 난 사유할 줄 알고 책도 읽었어, 자네는 한마디도 이해 못할 책들을."
"어련하시겠어요! 사람은 손이 없으면 국을 못 떠먹어요. 그런데 대위님은 책을 읽고 생각할 줄 알고 나는 책 근처에도 안가봤는데 대위님이나 나나 처지는 뭐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이네요. 안 그래요?"
"염병할 놈!"

- 말없이 있기란 남의 얘기를 들어 주는 것만큼이나 따분했던 것이다. '한때는 인간이었던 동물들'에게는 한 가지 좋은 점이 있었는데, 그들 중 아무도 자신이 남들보다 잘 낫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애쓰거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우월함을 인정하도록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예고르 바빌로비치는 이를 앙 다물고 손님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질질 끌려 가고 있으며 그가 자신의 운명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것 같았다.

- "아! 산다는 게 정말 힘들어요."
... "사람은 경험에서 배우는 법이죠."
... "배우는 법이라. 그런 게 아니에요. 제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걸 모르겠어요? 제가 어떻게 살고 있늕 모르겠냐구요? 전 두려움에 떨며 살고 있어요. 저한테는 그렇게 바라는 행동의 자유가 없어요. 망령 같은 선생이 저에 대해 신문에 쓸 거에요. 그러면 위생 검사관이 올 가고 바로 세금이 매겨질 거에요. 아니면 여인숙 사람들이 이 집을 불태우고 물건을 훔쳐가거나 저를 죽일 거에요. 저는 저놈들한테 꼼짝할 수가 없어요. 저놈들은 경찰한테 눈도 깜짝 안 하고 감옥에 가는 것도 마다 하지 않아요. 감옥에서는 공짜로 먹여주잖아요."

- "아! 누군가 가까운 사람이 죽어 가고 있을 때 사람은 서글픈 법이야."

- 죽은 사람을 옆에 두고 있을 때의 침묵은 신비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
"사인이 뭡니까?"
"본인한테 물어보시오. 빌어먹을 인생이 명을 재촉한 것 같소."

***- "당신 뭐야, 누구냐니까?"
페투니코프가 소리쳤다.
"인간이야."
그가 거칠게 대답했다. 이 거친 어조가 페투니코프를 진정시키고 기쁘기 했다. 그는 미소짓기까지 했다.
"인간이라! 당신 같은 인간도 있나?"
그는 옆으로 비켜서며 노인이 지나가도록 했다. 그가 걸어가며 천천히 말했다.
"인간도 여러 종류가 있지, 신의 의지만큼이나. 나보다 나쁜 인간도 있어. 훨씬 더 나쁜, 정말이야."
지저분한 마당 위로, 뾰족한 수염을 달고 말쑥하게 차려입은 한 남자 위로 흐린 하늘이 말없이 걸려 있었다. 남자는 이리저리 걸으며 발걸음과 날카로운 눈빛으로 길이를 재고 있었다. 오래된 그 집의 지붕 위로 까마귀 한 마리가 내려앉아 머리를 앞뒤로 흔들며 깍깍 울었다. 온통 하늘을 가리고 있는 잿빛 구름 속에는 뭔가 혹독하고 무자비한 것이 숨어 있었다. 잔뜩 몰려온 구름은 마치 이 불행하고 고통스럽고 슬픔에 가득 찬 땅 위에서 모든 더러움을 씻어내려 하는 것 같았다.
(가난한 이들의 거주지 식물상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강렬한 대화 이후의 하늘을 묘사하는 것으로 글은 끝난다.
당신 누구야 라는 물음에 서슴없이 '인간이다' 라는 답을 할 자가 몇이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