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아우토노미아 운동' - 우리에게 자발적 대중은 가능한가?

Posted by 히키신
2016. 6. 5. 23:45 영원의 지헤, 그리고 철학

몇 년 전부터 국내에 소개되어온 아우토노미아 운동은 우리에게 두가지 방식으로 읽혀지고 있다. 하나는 90년대 이후 침체되어온 변혁운동 ‘조직’의 새로운 대안으로서, 다른 하나는 개인과 국가라는 억압적 질서를 전복시킬 반(反)정치학으로서이다. 이러한 가능성을 떠안고 아우토노미아는 이미 우리나라의 부문운동과 적잖은 교접을 시도하고 있다. 이미 학생운동 진영의 일부는 꼬뮤니즘적 시도로서 아우토노미아를 주목하고 있고, 최근에는 페미니즘까지 구획적인 성정체성을 횡단하려는 기획 아래 이 운동과 접선을 만들고 있다.

80년대와 90년대를 넘나들며 운동에 ‘경험이 있는’ 세대라면 이 대중의 자발성이란 것에 대해 의심을 품을 만하다. 여태껏 우리는 대중의 자발적인 변혁시도를 경험한 적이 드물며, 게다가 전위로서의 오랜 경험 덕에 자발적인 대중의 그림조차 그리기 어려운 실정인지 모른다.
이런 찰나, 조지 카치아피카스의 내한은 일종의 청량음료와 같다. 이번이 두 번째 방한인 그는 지난 13일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와 ‘진보평론’이 공동주관한 “유럽의 아우토노미아 운동”이라는 콜로키움에 발표자로서 참석했다.

카치아피카스는 우선 유럽의 아우토노미아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을 볼 경우, “혁명을 위해 모인 자들도 있지만, 집이 필요해서 혹은 부모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과 같이 다양한 군집들이 형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이론적 실천이 결여되어 있을 위험성이 있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어떤 이데올로그도 필요 없다. 따라서 알튀세르가 발견했던 이데올로기로부터 언제나-이미 자유로울 수 있으며, 권력에 예속될 수밖에 없는 푸코적인 딜레마로부터도 벗어나 있다.

그렇지만 카치아피카스의 부연이 우리의 의구심을 완전히 씻기우지는 못한다. 아우토노미아 운동의 근간이 비조직에 있다고는 하지만, 핵발전 시설에 반대하고 건물을 불법적으로 점거하는 데에 어떤 추동력도 없었다는 것은 믿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카치아피카스의 말대로 아우토노미아가 “주변성의 힘”이라고 정의될 수는 있어도, 한국적 경험의 감정구조(structure of feeling)로서는 이 주변적인 힘마저 포괄·결집하면서 전략·전술을 수립하는 동작방식이 존재할 것이라는 의심이다.

이러한 의문이 떨어지자 카치아피카스는 “아우토노미아에는 여러 군집이 존재한다”는 전제를 상기시키며 “그 그룹 중의 일부가 선전작업의 일부를 떠맡을 수는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곧 이들의 회합방식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의 답변인 즉, “아우토노미아 참가자들은 하루에도 수십번씩 회의를 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싸움으로 회의가 도배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토론의 주제 역시 전략을 수립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것일 수 있지만, 공동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문제며 다양하기만 하다.” 그의 답변은 이들이 누구에 의해 계몽되거나 조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것이다.

아우토노미아가 자랑하는 ‘주변성의 힘’은 어떤 복수적이거나 몰적인 동작방식에 의존하지 않고, 이와 대비되는 단수적(singular)이며 분자적(molecular)인 초한적 추동력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궁금증은 여전하다. 그래도 뭔가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침잠되어 있는 것이다. 레이건이 독일에 방문했을 때 모였던 수만 군중이 정말 자발성에 의해서만 모였을까 하는 여전한 의심이다. 이에 대해 이날 콜로키움에 참가했던 윤수종 교수(전남대 사회학과)는 “우리가 이해하기 힘들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며 “서로(서구와 우리)가 가졌던 애초의 출발점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카치아피카스의 대답이 시원치 못한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우리로서는 전혀 체득치 못한 ‘대중의 자발성’과 ‘전위의 부재’에 대한 무경험이 가져오는 평행선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변혁운동이 아우토노미아 운동을 수용할 때 이 부분이 가장 맹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당장에 아우토노미아가 우리에게 체득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유럽과는 달리 부문운동간의 네트워크적인 횡단적 가로지르기가 부재했던 탓이다. 가령 우리의 변혁노선은 IMF 당시 노숙자들이 서울역을 ‘점거’했을 때, 연대활동은 물론이고 어떤 설득적인 비전조차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노동자들 역시 전위-대중의 이항적 구도를 깨뜨리기에는 ‘사회적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이 성숙되지 못하였기는 매한가지이다.

그러나 카치아피카스의 방한과 이를 둘러싼 쟁점의 발산은 분명 우리를 새로운 경험의 장으로 유도하고 있다. 아우토노미아 운동이 우리에게 체득, 그야말로 몸으로 닿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눈에 점점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김성윤 기획위원> caupress@press.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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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아우토노미아 운동

토론내용 보기
조지 카치아피카스(미 웬트워쓰대 교수)


발표자 소개

신좌파의 상상력, 웬트워쓰 institute for technology 교수. 68년에 활동.

60년대 학생운동. 反 WTO 운동에도 참여. 오늘날 국제적 연대관계 수립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 신자유주의가 지구적인 운동이기 때문에, 우리도 지구적으로 연대해야함. 민중에게 권력을!

<윤수종 선생의 발제>

신좌파의 상상력에서 제기된 운동들이 이후에 어떻게 전개되었나. 전투적, 적극적 운동들은 80년대 독일에서 주로 이루어짐. 이 책은 주로 독일에 대한 것. 전체적인 입장은 하버마스 의식을 선호하는 듯. 체제의 억압에 대항해 일상생활의 식민화되기 때문에, 식민화되는 일상생활을 자율적으로 조직화해서 넘어서자는 초점. 신좌파의 상상력에서는 에로스 효과를 강조했는데, 여기서는 그다지 강조하지 않음. 아우토노미아 운동은 나름대로 조직화된 운동이라는 측면이 있기 때문. 전체적으로는 자생성을 강조. 자기조직화라는 개념 등을 사용. 주변화된 사람들이 체계에 대해서 전투적으로 거부하고 나선다는 것이 기본테제. 특히 서구, 독일의 경우 80년대 실업, 특히 청년실업, 주택 부족 등의 문제. 주요운동으로 점거운동이 가장 중심적. 뿌리가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공장 내 노동자들에 의해 제기, 확산. 서독의 경우에는 여러 원천.
1)여성운동. 기존의 전통적 운동에 도전. 집중화된 조직 모델에서 자율화된 공간을 찾아나가는 지점
2)반핵, 평화운동. 원자력 발전소, 고속도로 건설 반대. 아예 그 장소를 점거, 거주하는 다른 특징. 공간을 점거하면서 다른 활동을 벌여나가는 흐름이 아우토노미아적 흐름
3)청년문화. 신좌파에서 펑크좌파로. 주변화되기 쉬운 상태에 있는 청년문화. 음악 등을 통해 다른 삶을 추구.
4)대안(alternatives). --- 아우토노멘(자율주의자 집단)
특징들로는 인공적인 지도자를 거부하기 위한 스키마스크. 국제적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흐름. 내부문제 발생(성차별주의, 마약문제)했을 때 내부적으로 정화해나가는 과정. free republic(?) 다른 한편으로는 무장운동의 흐름이 내재. militancy 조직화. 여성 militant group(Red Zoras). 통독이후 신나치주의자의 흐름이 나타나면서, 반파시즘 운동이 아우토노미아 운동의 큰 줄기로 변모됨. 80년대에는 자율적 공간 창출이 중심이었다면, 90년대에는 반나치주의.
이후에는 녹생당과의 관계 등에 대해 기술. 의회활동에 집중. 출신은 풀뿌리 민주주의에서 출발했지만, 집중화된 모델. 아우토노미아를 적군파와 녹색당 사이에 놓여있는 흐름. 전통적인 좌파에 대해서는 이념중심적, 집중화된 조직, 지도와 명령 등에 대해 비판. 대의민주주의에 대항해서 참여민주주의. 네그리 비판, 벤하빕... 정치를 전복하자!(대표 반대, 자율적 집단 강조)
결론은 마음(heart)의 합리성. compulsory relocation. 일상생활의 탈식민화와 민주주의. 정체성(identity)의 정치. particule을 보편적으로 확장


<발표>

아우토노미아 운동의 가장 중요한 운동의 중요한 측면은 68년에 시작된 혁명이 아직도 진행중이라는 점. 이탈리아도 1969년에 일어났던 운동들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침. 이탈리아의 운동들이 1999년에까지 영향을 미침. 청소년운동, 여성운동 등. 이러한 운동들은 사실상 정부의 강압적인 조치들에 의해서만 억압될 수 있었는데, 적군파의 수상 납치 등의 일 이후에 주로 억압됨. 독일에서도 독일의 가을. 납치, 살해 이후 국가권력의 억압. 아우토노미아 운동의 공간은 게릴라 활동과 의회집단의 합법적 활동 사이에 존재. 아우토노미아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두 가지. 범죄화와 의회 영역안에 통합하는 두 가지 방식. 특성은 노동자운동(이탈리아)에서 기원. 이러한 상식적 견해와는 달리, 노동자 운동 이전에 여성들의 움직임(19세기 말). 아우토노미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성격을 가로지르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 실질적으로는 직접 민주주의 이상이며, 의회주의에 대한 불신. 정당의 규율보다는 자기규율(self discipline)을 중시. 아우토노미아운동의 역사는 이탈리아에서 시작, 스위스, 암스테르담, 독일, 덴마크 등등으로 확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주택점거운동(squatter)이 독일이나 암스테르담으로 전파, 더욱 확장. 독일 아우토노미아 운동은 하나의 쟁점을 문제삼아서 결집한 성, 평화, 반핵 등의 단체. 이러한 각각의 특성들이 나중에 종합되어서 아우토노멘이라는 이름. 처음에는 개별적으로 시작됨. 독일인들은 자신의 운동을 아우토노멘이라고 붙인지 5년이 지난 후에야 네덜란드 사람들이 자신을 그렇게 호명. 코펜하겐의 사람들도 자신을 그렇게 부르기 시작할 때 주위의 스위스 등의 많은 사람들도 자신의 정체성을 그렇게 규명. 1990년대에 있어서의 변화는 아우토노미아 운동의 초점을 신나치에 맞추는 것. 이러한 초점의 변화의 필요성은 집단적인 보건위생의 문제, 여성의 문제이 기반이 됨(?). 예를 들어, 독일 경찰들은 네오나치들이 이민노동자들을 공격하는 것을 방관. 도리어 아우토노미아 운동들이 세력을 동원해서 네오나치의 폭력을 저지. 90년대의 두번째 변화는 아우토노미아 하우스(점거한 주택을 합법화하는 운동)에... 재개발(gentrification?)을 막는 운동. 이러한 운동이 동독, 체코 등으로도 옮겨가고 있다. 동독의 신세대는 펑크 좌파와 다른 세대들이 나타남. (아우토노미아에 더 영향을 받음). 슬라이드를 보면서 토론합시다.



반핵 운동. 다국적기업이 핵폐기장 건설. 아우토노미아 운동가들이 촌락을 지음.

벤 나무로 지음

여성들의 집. 모든 거주자들은 다양한 도시로부터 와서 각자 집. 다른 운동에서 출발했지만, 여러 가지 정치적 이슈들에 대해 얘기하면서 관계를 만들어냄

브레멘시에서 온 집단. 많은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서 알지 못했지만 집단 토론이후 알게 됨

직접민주주의의 형태. 주요한 이슈는 경찰이 왔을 때 어떻게 싸울 것인가? 비폭력적 방식으로 싸울 것을 결정

경찰이 온 상황. 사람들은 앉아있고, 주위를 둘러싸고 경찰들이 있는데. 2차 대전 이후에 가장 많은 경찰이 동원

경찰의 폭력성을 보여줌

소극적인 저항의 형태

그러한 사건 이후 다국적 기업이 지은 건물의 모습

아우토노미아 운동가들이 모였던 마지막 탑. 쓰러뜨리기 직전의 모습

시위대 공격을 막기 위한 물대포

같은 시기의 베를린 모습. 점거된 집

굉장히 큰 빌딩, 베를린장벽에서 떼어낸 돌로 만든 집. 1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듬. 정치에 대해 토론하면서 급진화됨. 대부분이 젊은이들. 젊은 노동자들, 학생. 결혼한 경우에는 터키 사람들 등. 집세를 내지 않기 때문에 돈이 필요없고, 서로 나눠먹거나 파트타임. 정부로부터 돈을 받기도 하고, share jobs일자리 나누기, 100명이 5대의 차

자체가 위험한 장소이므로 자격은 필요없는데, 점거자가 되었을 때는 선별하기 시작. 사람들간의 갈등이 생기는 경우에는 토론. 여성만 점거한 경우도. 건물 안에 엄격한 규율이 있는 경우도 있음. 이탈리아나 암스테르담과 달리 건물이 매우 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기 때문에, 역동적인 모습이 나타날 수도 있음. 목적은 뭔가? 혁명적 목적의 일부일수도, 부모의 학대를 피해 도주한 사람들, 비싼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 다양한 동기가 있음. 아우토노미아가 되어가는 과정. 조직의 물신숭배가 없는 상황. 누가 아우토노미아 운동의 일원인지도 모르는 상태. 처음에는 비합법적이었지만, 최근에는 합법화. 메링 홀(도서관, 댄스 홀...), 합법화된 이후에도 경찰이 덮치는 경우도 있음.

기지에 1987년에 바리케이트에 불을 지름. 아우토노멘들이 불을 지름

레이건이 독일을 방문했을 때, 미디어는 미국-독일 국기만 흔드는 것을 보여줬지만, 급진적 시위가 있었음
경찰은 8시간 분리. 점거자와 같은 이들. 여성, 환경, 반핵. 조직이 없는 운동이 아우토노미아 운동. 메링 홀(merrying hall)에서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술을 많이 주지 말라고 하기도 함. 회의 조차 갖지 못하는 경우도 있음. 내일 데모가 있으니까. 조직, 위계질서, 이념 조차도 없는 상태에서 운동이 진행되는 상태. 서로 분리되어 있다가 반나치주의에 대한 이슈에 대해 서로 연합하는 방식으로 구체적인 모습을 갖췄다. 이 시위에 좌파 노동당 등 조직적으로 개입하는 경우는 없나? 젊은 노동자. ....



주택이나 직업난이 심각할 때, 이러한 아우토노멘들이 나타남. 주변화되고 배제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것. (전통적인 좌파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음) 주변화된 사람들의 힘



아우토노미아 포스터. 자체로서는 정치적이지 않음. "혁명은 모든 것이고, 그 나머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왜 로자 룩셈부르크냐? 전통적 좌파와 다른 측면이 다른 측면. 자유를 평등과 바꾸지 않고, 자생성을 강조했던 사람이므로, 좌파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기 때문. 이해의 차이. 있는 것으로부터 출발. 메링 홀내에서 난상토론이 생김.

여성, 아우토노미, 점거자 상징. 집회가 있기 전에 가장 중요한 이슈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자본주의를 상위에 두고 가부장제에 흡수하려는 것에 대한 토론. 네그리에 대한 비판

비폭력적으로 시위

함부르크, 하펜스트라세. 점거된 건물.

100m이전에 사치스러운 호텔. 그래서 정부는 맞은 편 점거된 건물들을 없애려고 함

서로 다른 그림. 끊임없이 바뀜. 모든 나라의 범죄자들이여, 단결하라

모든 고양이는 7개의 목숨을 가졌다. 건물에 대한 상징 표어

점거지에 사는 어린이

구의회 담당자 사무실에 도끼를 던짐

경찰이 건물을 부수는 장면

트레일러가 경찰에 의해 폐쇄됨

이렇게 살 수 있는 집이 많은가? 도시 중심의 슬럼화 현상에서 비롯. 고급 호텔이 들어서는 대신에 매춘, 마약굴. "우리는 콘크리트 정글에서 살지 않겠다."

우리의 권리를 위해 싸우자

건물 바로 건너편, 함부르크 항만

경찰이 들어가도록 설치물

경찰이 들어가려고하자, 사람들이 물건을 던짐. 술

주위에 사는 노인들 사람들이 지지.

우익 신문, 정면에는 바리케이트 쓰레기. 무전기를 가진 사람, 화염병을 만드는 사람, 뜨거운 물, 화염병, 돌 쌓은 장면, 총기. 왜 경찰이 들어가지 못하는가를 설명. 당신들의 시간이나 세라, 우리는 세지 않겠다

바리케이트, 경찰이 오지 않도록. 1987년. 경찰과 싸움

승리 행진

Fight the Power, 술집

모든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고, 원하는 만큼만 내는 식당

방문객 두치케의 미망인

이민 노동자 아이들이 독일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모습

동독. 버려진 동독 차량

폐쇄된 철강 회사

전체 공장이 폐쇄

동독을 해방시키기 위한 러시아 병사의 무덤

1989년 이후

암스트레담 1980년대. 여왕즉위식 때 싸우는 장면

암스트레담의 점거된 집

경찰이 크레인 동원해서 지붕으로 들어감

점거자들이 도시 바깥으로 쫓겨남

점거된 커피숍. 중요한 회의가 열림

젊은 사람들이 심하게 매를 맞아서 나체 시위

마약 진입 금지

군인이 있었던 장소를 사람들이 점거

크리스티나에서 만든 자전거

여러 가지 재료로 꾸민 집

독일 아우토노미아처럼 전투적으로 되는데, 도시 일부 점령, 해체

콜로키움 토론 정리



발표문 보기


주택점거자들은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는가?
집세를 내지 않기 때문에 큰 부담이 없고, 서로 나눠먹거나 파트타임에 종사한다. 정부로부 터 돈을 받기도 하고, 일자리를 나누기도 한다. 100명에게 5대의 차가 있으면 그것을 공유하 는 것이다.

그런 주택에서 살기 위해서는 어떤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

자체가 위험한 장소이므로 자격은 필요없는데, 점거자가 되었을 때는 내부 규칙을 따라야 한다. 사람들간의 갈등이 생기는 경우에는 토론을 통해 해결한다. 여성들만의 공간도 있다.

이들 점거의 목적은 뭔가?

혁명적 목적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부모의 학대를 피해 도주한 아이, 비싼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까지 다양하다. 주택이나 직업난이 심각할 때, 이러한 아우토노멘들이 나타난 다. 곧 주변화되고 배제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것이다. 전통적인 좌파들은 이들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

포스터에 왜 로자 룩셈부르크의 이름이 있나?

그것은 그녀가 전통적 좌파와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곧 자유를 평등과 바꾸 지 않고, 자생성을 강조했던 사람이고, 따라서 좌파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 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 수 있는 집이 많은가?

그것은 도시 중심의 슬럼화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재개발이 되는 상황에서 이들은 "우 리는 콘크리트 정글에서 살지 않겠다."라고 외친다.

한국적 상황에서 사람들은 전투성은 군대식 규율 등을 통해 가능하다고 생각해왔다. 어떻 게 금욕적이지 않고 재미있는 형태와 전투성이 같이 갈 수 있는지 궁금하다.

한국운동이 이들 운동에 비해 더욱 전투적인 것은 사실이다. 독일 사람들도 한국의 뉴스를 통해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는 조직화된 것과 전투성은 항상 같 이 가기는 어렵다. 조직화되면서 전투적이면 경찰의 탄압의 대상이 되므로, 전략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우토노미아 운동에서 여성운동이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때, 어떤 방식의 직접적이고 전투적인 행동이 가능한가?

이러한 방식으로 사는 것, 집단적으로 사는 것 자체가 직접행동이다.

아우토노미아 운동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뭔가? 너무 낙관적이고, 이들 운동을 미화하는 것은 아닌가?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현재는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소수자운동의 한계점에 대 해서도 기술했다. 소수자 운동은 아직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아우토노미아 운동은 뚜렷한 전망이나 목표가 없고 자기만족적인, 참여하는 것 자체에 의 미를 두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출발은 자발적이라고 할지라도 전략, 전략을 추진할 수 있 는 조직이 생겨야되지 않느냐?

목적과 과정에 대한 질문은 중요하다. 아우토노미아 운동의 목적은 일상 생활을 바꾸는 것 이다. 곧 내 자신의 정체성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전술과 전략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전 술은 구체적 전투에 들어가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 더욱 적합하다. 반면 전략은 거대한 행동방식으로, 항상 위에서 부과될 가능성이 있다. 공산 주의자들은 혁명에 대해 얘기만 한다. 아우토노미아의 가장 중요한 초점은 실천이고, 실제로 행동함으로써 역동성과 변화를 가질 수 있다.

지금까지 얘기된 것과 정반대의 관점에서 질문하고 싶다. 신좌파의 상상력을 읽고 오히려 68운동에 대한 평가가 너무 전통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질적 변화가 없었다는 평가가 아 우토노미아 운동의 가능성을 막는 것은 아닌가?

내가 말하는 질적 변화는 여러 가지 운동들이 횡단적으로 가로질러서 접속하는 것을 의미 한다. 나는 정체성의 정치를 강조하고 싶은데, 이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아주 보편적인 가치를 가지는 운동이다. 미국의 흑인 해방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미국인들 을 해방시키자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복잡한 인종들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것이 없 었다는 점이 문제이다. 그것이 질적 변화가 없었다고 말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략, 조직이 없었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출처 : 한국노동정책이론연구소
http://kilsp.jinbo.net/colloquium/col4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