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언어의 음악성

Posted by 히키신
2016. 5. 17. 23:42 글쓰기와 관련하여

6)언어의 음악성

 

언젠가 말씀드리면서 원시시대엔 음악과 시가 하나였다고 말씀 드린 기억이 있습니다. 제천의식에서 예술이 발전했다고 볼 때 원래는 하나에서 가사와 노래로 분리 된 것이지요.

 

그래서 시에는 곡조가 없지만 시를 읽으면 감동에 젖어 슬퍼지거나, 흥에 겨워 자연히 가락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처럼 곡조는 없어도 어떤 율격이 있어 음악성을 느끼게 하는 것은 운율이라 하는데 이는 시의 아주 중요한 특성이며, 다른 문학과 장르의 구별을 짓게 하는 핵심적 요소입니다.

 

조태일님은 "운율은 시가 갖게 되는 구조나 형식, 분위기, 어조, 문장의 호흡, 음절 수, 음보, 음운의 반복 등에 의하여 형성 되지만 언어자체가 지닌 소리[형식]에 의해서도 생겨난다. 그러므로 의미전달을 중심으로 하는 일상 언어가 언어의 소리 부분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과는 달리 시의 언어는 소리가 빚어내는 미묘하고 섬세한 부분까지 그 음악적 효과를 살릴 수 있도록 사용하는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프랑스의 대문호이며 어느 누구보다도 언어에 대하여 엄격한 태도를 지녔던 작가 플로베르가 그의 대표작 『보봐리 부인』을 집할 때의 일화입니다. 책상 앞에서 창작에 열중하던 플로베르는 갑자기 펜을 내려놓고 피아노 앞에 가서 난데없이 건반을 쳐 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모습을 지켜보던 부인은 행여 남편이 작품을 구상하는데 혼란이라도 생길까봐 걱정스러워서 한 곳에 집중시키지 못하고 산만스러운 그의 행동을 나무라자 플로베르는 "내가 피아노를 치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오. 나는 이 피아노 소리로써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문장의 단어들이나 구절들이 소리가 듣기 좋고 서로 조화가 잘 되었는가를 알아보는 중이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프로베르가 소설을 쓰면서도 언어의 소리가 지닌 음악성이나 어감까지 살폈는데 시에선 그 음악성을 강조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겠지요. 이런 점에서 음악을 전공으로 하신 분들은 유리한 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요즘 산문시들도 많이 유행하고 있습니다만, 그 안에 운율이 빠지면 이는 산문시가 아니라 바로 산문으로 빠질 염려가 있는 만큼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언어의 소리는 단지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나 형식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솔 그 자체로서 우리에게 어떤 느낌을 자아내게 하고, 분위기를 불러일으키며 감각을 자극하는 것이지요. 의성어나 의태어에게 그런 요소가 충분한데요. 보실까요?

 

 

돌돌, 졸졸, 살랑살랑, 출렁출렁, 모락모락,

 

우줄우줄, 철썩철썩, 사락사락, 옹알옹알, 팔랑팔랑,

 

설레설레, 옹기종기, 곤드레만드레, 붉으락푸르락,

 

포실포실, 앙알앙알 덩실덩실, 꼬르륵꼬르륵,

 

 

 

얼마든지 있지요. 여러분들이 여기에 없는 것들을 한번 말 해보세요.

 

그러면 언어의 소리가 빚는 음악성을 제대로 살려내고 있다는 평을 받는 김영랑님의 <동백 잎에 빛나는 마음>을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내 마음의 어딘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 흐르네

 

돋쳐오르는 아침날빛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듯 눈엔듯 또 핏줄엔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있는 곳

 

내마음의 어딘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내면에 흐르는 강물의 부드러운 움직임이 언어의 소리 그 자체에서도 느껴질 만큼 의미와 소리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시입니다. 예를 들면 4행의 '도도네'는 '돗 우네'의 사투리이지만 같은 음운을 반복해서 사용함으로써 마치 강물이 흐르는 것 같은 리듬 감각을 살려낸 것이라든지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유성음(ㄴ,ㄹ,ㅁ,ㅇ)이 깔려서 밝고 맑은 시적 분위기를 나타낸다고 평자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 언어의 음악성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시의 장치로 쓰는 이미지 중에 청각이미지라는 것이 있는데요. 이는 우리가 시를 통해 음향 등 모든 소리를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시의 묘사에 있어서 청각적 이미지는 그 시를 생동감 있게 또 역동적인 이미지로 전개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청각적 이미지는 언어의 음악성을 강조하는 결과가 됨으로 여기 대표되는 시 몇 편을 옮겨 봄으로 서, 생동감 있는 시를 만드는 청각이미지를 살펴보는 한 편, 언어의 음악성이 시에 나타나는 모습을 관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허영자님의 <가을 다 저녁 때> 입니다.

 

 

나무들이

 

울음을 삼키고 있다

 

 

 

돌들이

 

울음을 삼키고 있다

 

 

 

 

조그만 귀또리도

 

울음을 삼키고 있다

 

 

 

가을

 

어느 다 저녁 때

 

 

 

울고 싶은 나도

 

울음을 삼키고 있다.

 

이 시는 조용한 청각적 이미지의 한 전형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4개의 연마다 마지막 시행을 '울음을 삼키고 있다' 고 동어반복을 함으로서 시끄럽게 우는 것보다 더욱 강하게 독자에게 아픔을 주는 청각적 이미지를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리드미컬한 반복으로 음악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유성음(ㄴ,ㄹ,ㅁ,ㅇ)이 반복 사용됨으로 언어가 부드러움을 갖도록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나희덕님의 <못 위의 잠>을 올립니다. 그냥 주변의 일상사를 담담하게 올린 것 같아도 그 행의 바꿈에 따라 운율이 생기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속으로 읽지 마시고 낮게 소리를 내어 그 운율을 최대한 살리면서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저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들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봅니다

 

 

 

종암동 버스 정류장,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 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젖은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 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 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도 흙바람이 몰려오나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

 

 

경주대학교 손진은 교수의 <시와 리듬>이 참고가 되실까 하여 그 일부를 발췌하여 봅니다.

 

 

"현대시는 전통 율격으로부터 벗어나는 시들이 많다. W.H 파울러의 말처럼 '파도의 모양과 크기 속도만큼이나 무한히 다양한 흐름'이 리듬을 갖고 있다. 그만큼 현대시는 형태적으로 매우 다양해지고 도 운율에 관한 감각과 이론이 발달 하여 단순하게 적용시키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현대시의 두드러진 특징은 말의 의미상 중요성이나 정서의 변화가 리듬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시인들이 의미의 단위(단어, 어절, 문장 등), 음성단위(음운, 음절, 호흡), 음보, 어법 등을 일정한 틀에 맞추지 않고 개인의 창조성에 의해 변용시킨 리듬으로 창작을 하고 있는 데서 나타난 현상이다.

 

 

 

미루나무 끝 바람들이 그런다

 

이 세상 즐펀한 노름판은 어데 있더냐

 

내가 깜박 취해 깨어나지 못할

 

그런 웃음판은 어떼 있더냐

 

미루나무 끝 바람들이 그런다

 

내가 걸어온 길은 삶도 사랑도 자유도

 

고독한 쓸개들뿐이 아니었더냐고

 

미루나무 끝 바람들이 그런다

 

 

 

믿음도 맹서도 저 길바닥에 잠시 뉘어놓고

 

이리 와바 이리 와바

 

미루나무 끝 바람들이 그런다

 

흰 배때아리를 뒤채는 속잎새들이나 널어놓고

 

낯간지러운 서정시로 흥타령이나 읊으며

 

우리들처럼 어깨춤이나 추며 깨끼춤이나 추며

이 강산 좋은 한 철을 너는 무심히 지나갈 거냐고

 

미루나무 끝 바람들이 그런다

 

 

-송수권, <미루나무 끝>

 

 

이 시는 '니루나무 끝 바람들이 그런다'라는 구절을 5회 반복하면서 반복을 통하여 의미를 강화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구절 사이의 행동은 첫 번째

 

구절(1행)과 두 번째 구절(5행)사이가 3행, 두 번째 구절과 세 번째 구절(8행) 사이, 세 번째 구절과 네 번째 구절(11행)사이가 각각 2행, 네 번째 구절과 다섯 번째 구절(16행)사이가 4행이 되는 형태를 이루면서 단조로움을 피하고 바깥의 3행,4행이 안의 2행을 감싸고도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또 이 구절들 앞에 놓인 행말의 어미도 "더나", "더냐고", "와봐", "거냐고'의 변화를 주면서 시의 생기를 살리고 있는데 전달하려고 하는 내용을 다를 것이 없다. 그래서 이 시의 반복은 시의 시적 화자의 호흡 조절과 함께 시의 리듬에 기여하는 면으로 작용한다."

 

아무튼 복잡한 이론은 잊어버리시고요. 시에는 내재율 이란 것이 있어 음악성을 띄우고, 여러 가지 형태가 변해도 시에는 그 음악성이 있어야한다는 것만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시의 언어가 갖는 특성 6

 

오늘로 시의 언어가 갖는 특성을 마칠까 합니다. 먼저 언어의 압축성과 간결성에 대해서 고찰해 보기로 하지요.

 

 

7)언어의 압축성과 간결성

 

김준오의 『詩論』에 보면 "산문이 '축적의 원리'에 의한 설명이지만, 시는 '압축에 의 원리'에 의한 암시성을 그 본질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시는 산문처럼 사건의 연속이나 줄거리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체험이나 직관, 감정 등이 최대한 집중되어서 하나의 결정체로 나타내야 합니다.

 

말하자면 요즘 젊은이들의 유행어로 엑기스로 뽑아야 합니다. 엑기스는 양은 작지만 그 효능이나 강도가 아주 높듯이, 시어가 지닌 이런 압축성과 간결성 때문에 언어가 각각 갖고 있는 무게와 비중은 아주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헤밍웨의 친구 하나가 자기가 쓴 원고를 가지고 그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헤밍웨이가 한 쪽 다리를 들고 서서 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 친구는 헤밍웨이에게 그렇게 괴로운 자세로 글을 쓰고 있는 까닭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헤밍웨이가 "앉아서 쓰면 아주 편안하네. 그러나 써 놓은 글을 보면 문장은 길고 지저분하네. 한 쪽 다리로 서서 글을 쓰면 다리가 아프니까 간결하게 쓰도록 내 자신을 핍박하게 된다네." 하고 대답했습니다.

 

산문을 쓰는 헤밍웨이의 자세가 이러할 진데, 그의 글의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아름다운 이유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산문 보다 훨씬 간결성과 압축성을 필요로 하는 시를 다루는 분들의 태도가 어떠해야할 지를 가르쳐주는 좋은 모범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김지하님의 <중심의 괴로움>을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봄에

 

가만 보니

 

꽃대가 흔들린다

 

흙밑으로부터

 

밀고 올라오던 치열한

 

중심의 힘

 

 

 

꽃피어

 

퍼지려

 

사방으로 흩어지려

 

 

 

괴롭다

 

흔들린다

 

나도 흔들린다

 

 

 

내일

 

시골 가

 

 

비우리라 피우리라

 

 

이 시에 대한 조태일님이 해설을 보겠습니다.

 

"인용한 시 역시 시어가 갖는 간결성과 압축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이 압축되고 간결한 시어들이 시의 주제와 서로 조화를 이루는 점이다. 중심의 괴로움은 사방으로 퍼지고, 흩어져 나가려는 행위에서 비롯된다. 이 중심의 분산으로 인하여 틈이, 여백이, 공간이 생겨난다. 그런데 시어와 행, 연들 역시 지극히 간결함 속에서 여백과 틈을 만들어내고 있다. 즉 시어들은 최대한 경제적으로 사용하면서 주제와 형식의 일치를 보여주고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간결한 시어들 속에 내재된 힘이다. 시어들은 한껏 수축되어 있는 용수철처럼, 씨앗들처럼 혹은 위 시에서 보여준 '중심의 힘'처럼 그 안에 저장된 에너지들로 인하여 무수한 울림으로 솟아 퍼져 나간다. 군더더기가 없이 정제되고 압축될수록 시어가 지닌 힘은 더욱 강해지게 마련이다" 말하자면 위의 시는 오늘의 주제처럼 언어의 압축성과 간결성이 아주 전형적으로 나타난 시라는 것입니다.

 

여기 서정주님의 <冬天>을 올립니다. 이 시는 시인 자신이 가장 아끼던 시 중의 하나입니다.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옴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1연 5행의 아주 간결한 시입니다. 이 시에 대해 황동규 시인이 해설한 것을 요약해보면 겨울 하늘은 텅 비어 있고 조각달만 하나 떠 있는 풍경입니다. 그 달은 꿈에 천 번이나 나타났던 임의 눈썹으로 보입니다. 그건 바람(꿈)으로 <맑게 씻어 놓은> 눈썹입니다. 화자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동지섣달의 <매서운> 새까지 비끼어 갑니다. 그 것은 인간의 일에 자연히 참여하는 정신의 한 섬세한 극치인 것입니다.

 

이 시는 정말 많은 비평가들이 다룬 시입니다. 아주 간결한 시인 데도요. 김재홍의 <미당 서정주>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시는 <화사>(1936) 이후 만 30년째인 1966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 다섯 줄의 시는 20대에서 지천명의 나이 50대로 접어든 시인의 정신적 성숙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이 시에서 시인이 노래하는 것은 역시 사랑이 문제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의 사랑은 <화사>에서와는 현격히 다른 정신적 사랑으로 상승되어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아주 해설이 길지만 오늘의 주제와 관계없음으로 여기서 줄입니다.

 

 

이어서 좋은 시 소개하겠습니다.

 

주제하고는 관계가 없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이론이 너무 어려우니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시 읽기를 하시고, 시인의 마음을 엿보자는 것입니다.

 

 

강현국님의 <너에게로 가는 길>과 시인의 변을 읽어보겠습니다.

 

 

너에게로 가는 길엔

 

자작나무 숲이 있고

 

그해 여름 숨겨 둔 은방울새 꿈이 있고

 

내 마음 속에 발 뻗는

 

너에게로 가는 길엔

 

낮은 침묵의 草家가 있고

 

호롱불빛 애절한 추억이 있고

 

저문 날 외로움의 끝까지 가서

 

한 사흘 묵고 싶은

 

내 마음 속에 발 뻗는

 

너에게로 가는 길엔

 

미열로 번지는 눈물이 있고

 

왈칵 목메이는 가랑잎 하나

 

맨발엔 못 박힌 불면이 있고

 

"시는 필경, 피가 돌지 않아서 손발이 뻣뻣한 도서관 서책들의 근엄과 같은 것이 아니라면 춥고 쓸쓸했던 날들의 기억으로부터 말길을 트는 것이 좋겠다. 그해 겨울 내게는 괴이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볼품 사나웁게 어느 단체장 선거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차마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고약한 체험이었다. 글쟁이들의 선거판도 예외는 아니었다.(중략) 그 무렵 나는 당연히 천사를 꿈꾸었다. 따뜻한 가슴과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의 모습을 한... 나는 지금, 내 마음 속에 발 뻗는 너에게로 가는 길 위에 있다. 텔레비전으로부터, 삐걱이는 일상의 계단으로부터, 목 조이는 언 라인의 거미줄로부터, 정연한 제복과 가지런한 넥타이로부터, 비누와 칫솔과 젖은 손수건으로부터, 길고 긴 죽음맞이 소말리아로부터, 끈질기게 달라붙는 파리 떼들로부터, 성급한 희망과 안이한 구원의 갈보들로부터, 여의도로부터, 마침내 돋보기 너머 먼지 앉은 도서관으로 부터 멀리 떠나 너에게로 가는 길 위에 있다. 타고 온 자동차는 人家 가까운 산발치에 두었다.

 

(중략)

 

나는 지금 너에게로 가는 길 위에 있다. 비유컨대 시는 길 떠나기이다. 삶이 고단한 여정이듯이, 멀리 길 떠나기 이다. 길을 잃을 때까지 길 떠나기이다. 안개에 갇혀 길을 잃는다. 현자의 말씀처럼 길을 잃으므로 우리는 길을 찾는다. 길을 잃은 자만이 비로소 제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시는 길 찾기이다. 길은 상징이다."

 

이하 너무 장황하여 생략합니다. 여기서 작가의 말은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여성시인의 시에 대한 관심이 많아 이번엔 강계순님의 <압력솥, -슬픔에게 20>을 읽어보시겠습니다.

 

 

압력솥 하나 들여놓기로 했네

 

불을 사용하지 않고는 아무래도

 

섭취할 수 없는 일용할 양식

 

쉽게 끓고 쉽게 넘치는 얇은 냄비로

 

걸핏하면 화상 입으면서

 

아리고 쓰린 자리 문지르고 또 문지르면서

 

팽팽하게 긴장하여 오랜날

 

두려움에 몸서리쳐 왔네

 

이제 끓여도 넘치지 않는 압력솥 하나

 

들여놓고 이만큼 비켜 앉아

 

지켜보고 있네

 

극도의 압축에도 터지지 않고

 

조용히 억장 무너지는 법

 

맹렬한 불길에도

 

넘치지 않는 법

 

곤죽이 되어 풀리는 법 이젠

 

알 것 같아

 

 

원래는 빛이던 것 초록이던 것

 

약속이던 모든 것 끓이고 또 끓여

 

서로가 서로에게 스미듯 흔적없이

 

풀기로 했네.

 

(여기서는 마지막 부분에만 마침표가 있는데요. 아마 이 건 작가가 여기에서 시가 끝났다는 의미로 제일 마지막 행에만 마침표를 치는 것이구요. 도중에는 시가 그 언어의 맥이 끊이지 않도록 생략하는 것일 겁니다. 즉 아직 시가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는 뜻이겠지요. 시에서는 부호 하나가 한 행이 될 수도, 한 연이 될 수도 있을 만큼 중요합니다.)

어떻습니까?

자기 주위의 모든 사물을 어떤 눈길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평범한 밥솥으로 남기도 하고, 이렇게 아름다운 시로 남기도 합니다.

 

(출처 : 詩가 있는 풍경 http://m.blog.daum.net/mesire/8928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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