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서 구두점의 사용

Posted by 히키신
2016. 9. 8. 18:54 글쓰기와 관련하여

1.
시에서 하나하나의 말이나 부호는 모두 의미를 갖는다.
시어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듯이, 문장 부호도 하나하나 의미가 있을 때 사용된다. 시에서 중요한 것은 문법이 아니라 감동을 얼마나 강하게 전달하느냐 이다.

마침표가 들어가면 시를 읽는 사람 입장에서 한 호흡 정도 쉬어갈 수 있다. 연과 행을 나눌 때는 내용과 함께 호흡도 끊어진다. 하지만 내용은 끊기는 것이 아닌데 호흡을 끊어야 할 때, 혹은 눈으로 보기에 붙어있는 것이 좋은데 분명 둘 사이에 이질감이 필요할 때는 마침표를 사용한다. 쉼표도 쓰이지만 마침표는 보다 더 강렬한 느낌이 든다. 단정적으로 말하고 싶을 때처럼 앞 말과 뒷말을 끊어버리는 효과가 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아예 '이 시는 일상적인 느낌이 들도록 쓰고 싶다.'는 작자의 의도 하에 문장부호가 문법에 맞게 정석대로 쓰는 때도 있다.

정리하자면 시를 쓸 때는 '문장부호니까 써야지' 보다, '문장부호를 여기서 이렇게 사용하면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겠지?'라는 적절한 의도를 갖고 문장부호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흐름을 유지하려 한다면 마침표를 생략할 것이다.

2.
“… 산책은 나의 종교, … 귀의할 곳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 공원에 나가 사진도 찍고 김밥도 먹었다, … 비행운에 할퀴운 하늘이 순식간에 아무는 것을 잔디밭에 누워 바라보았다, …산책에서 돌아오면 이 텅 빈 방,… 음악을 고르고, 차를 끓이고, 책장을 넘기고, 화분에 물을 주고, …창밖, 가을비 내린다, 삼십대, 나 흐르는 빗물 오래오래 바라보며, 사는 둥, 마는 둥, 살아간다”

심보선의 ‘삼십대’라는 이 시는 원래 이보다 더 길다. 이 시에는 마침표가 없고 전부 쉼표로만 이어져 있다. 산책과 쉼표는 아주 잘 어울린다. 산책은 무엇인가를 끝맺기 위해서나 강렬한 느낌표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쉬엄쉬엄 감정과 생각을 숙성하는 것이다.

3.
시는 마침표나 느낌표, 쉼표의 사용이 산문과는 전혀 다르다.
산문에서 마침표의 기능은 문장의 종결기능을 담당하며, 쉼표는 문장의 호흡 조절기능이 있다.
그러나 시에서 마침표의 경우 문장의 종결기능이라기보다 강한 긍정이나 강한 부정을 의도한다.
[아 바야흐로 때는 봄.]
이럴 때 봄 뒤에 찍은 마침표는 문장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봄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쉼표의 경우 시에서는 문장의 호흡조절이 아니라 그 문장의 약한 영탄이나 감탄을 나타내는 기능을 한다.
[순아, 보고싶구나]
순아 뒤에 찍힌 쉼표는 호흡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고 보고 싶은 순이에 대한 그리움을 더 강하게 나타내는 기능이다.

[그리고 봄이 왔다!]
[다]에 마침표가 아닌 느낌표 사용은 봄이 왔음을 강렬하게 전달하는 기능이다.
또한 문장 앞에 [아, 어, 오,]등과 같은 감탄조사를 사용할 경우 일반적으로는 [아! 오!]등과 같이 느낌표를 부여하는데 이 경우는 이미 [아]나 [오]가 감탄사이기 때문에 느낌표를 사용하였을 경우 감탄사의 중복현상이 일어나서 문장에 군더더기가 붙게 되는 것이다.

보통 시집에서 부호 사용 작품이 드문 것은, 부호를 사용할 경우 작자의 감정이 드러나는 오류를 방지하고자 하는 의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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