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세주의 厭世主義/ Pessimism

Posted by 히키신
2017. 3. 3. 21:44 영원의 지헤, 그리고 철학

"나는 모든 편견으로부터 자유롭다. 나는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증오한다." - W. C. 필즈

한자 뜻풀이대로 세상 모든 것, 특히 인간과 그 사회에 대한 것들을 싫어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사상으로 보통 비관주의와 허무주의가 안 좋은 방향으로 발전했을 때 이르는 가치관이다. 영어로는 페시미즘(Pessimism)이라고 한다.

염세주의적 사상은 주로 인간 사회의 모순이나 부조리함 등에 실망하여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대체적으로 염세주의자들의 사회적 혐오가 동반되며, 현실적인 사회구조의 헛점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덕분에 실제로 이야기를 해보면 굉장히 부정적인 사고관을 가지고 있지만 논리가 확립된 경우 그렇다고 틀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긍정적인 부분을 무시하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이는 현대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염세주의는 동시대에 환멸감을 느낀 젊은이, 불행을 체험한 개인, 불행 속에서 성장한 세대에 발견된다. 즉 젊은이는 세상으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데 그런 낙관주의가 환멸을 겪은 후에 염세주의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염세주의에도 여러가지가 있으며, 외향적 염세주의자라고 항상 사회 파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내향적이라고 해도 그 끝이 항상 자살인 것은 아니다. 염세주의자에겐 자살(또는 그 행위)조차도 네거티브하게 볼 수 있다.

오히려 이러한 염세주의자 중 외향적인 사람들은 칼 마르크스처럼 기존 사회의 탈피를 위한 이론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염세주의를 작품에 반영하는 예술가는 염상섭 등이 있으며, 문학 중에서도 이를 주제로 쓴 디스토피아는 꽤 찾아볼 수 있다. 비극의 카타르시스와 일맥상통한다는 설이 있다. 루쉰이 염세주의적이라는 해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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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세주의 철학이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세상을 바꿔보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진정한 발전은 문제를 인식했을 때에만 가능하다. 세상이 문제가 아니라 지성이 문제다. 순수하지 않은 지성은 그것의 원인이 되는 의지에 구속되어 있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이런 의지를 거부한다. 의지로부터 분리되면 될수록 지성은 순수한 면모를 갖춰나간다. - 97p

그런데 우리는 왜 굳이 자기 자신의 내면을 알아야 할까? 왜 굳이 내면의 의식 세계와 관련한 순수한 지성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물론 그런 것 없이도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삶은 가치를 모르고 살다가 허무하게 죽어가는 가련한 인생이다.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철학은 그런 삶을 극복해보자는 의도에서 시작한다. - 98p

지식이나 통찰력의 증진은 경험의 결과이며 한편으로는 우리의 관점을 부단히 변화시키는 삶의 단계를 거쳐 지나가는 여러 가지 변화의 결과이다. 그것에 의해 사물들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면을 보여준다. 이렇듯 정신력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매일 새로운 진리를 터득한다'는 것은 영원한 진리이며 인생에 늘 신선한 매력을 준다. 그러는 가운데 동일한 것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것, 다른 것으로 나타난다. - 103p

쇼펜하우어는 "내적인 재보 중에서도 행복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명랑한 마음이다"라고 말한다. 명랑한 마음이 행복의 관건이다. 다른 모든 것을 잃어도 명랑한 마음만 있으면 모든 것은 즐거운 상황으로 변한다. 그래서 마음 속에 명랑함이 들어오면 그것을 소중하게 다뤄 고이 간직해야 한다. 명랑함이 다시 나가지 않도록 온 정성을 쏟아 보듬어야 한다. 명랑함을 잃으면 모든 것이 순식간에 불행해지기 때문이다. 삶이 불행에 빠지면 살기 싫어지는 법이다. 삶은 그 순간 위기에 처한다. - 145p

<지극히 인간적인 삶에 대하여>(이동용 지음 / 동녘 / 2015.04.)

*참고 : http://omn.kr/ec5j 오마이뉴스, <김성호의 독서만세 62. 누가 쇼펜하우어를 염세주의자라 하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