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us Aurelius Antoninus 명상록

Posted by 히키신
2016. 11. 29. 00:40 영원의 지헤, 그리고 철학

제 1 장
배움에 대하여


1 나는 할아버지 베루스Verus로부터 예절바른 행실과 격한 감정을 억제하는 법을 배웠다.

2 아버지에 대한 숱한 명성과 추억으로부터 나는 겸양과 강인한 기질을 배웠다.

3 나의 어머니는 남을 이해하는 넓은 도량을 가진 분이었다. 조용한 품성의 어머니는 언제나 잔인한 말과 행동을 경계하셨는데, 사악한 행위뿐 아니라 그런 언행을 불러일으키는 악한 마음조차도 삼가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로부터 부자들의 습성과는 거리가 먼 검약하는 생활 태도를 익힐 수 있었다.

4나의 증조부는 내게, 공립학교에 다니는 대신 훌륭한 교사를 집으로 초빙하여 배우도록 충고하셨고, 아울러 올바른 교육을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이셨다.

5 나의 스승은 경기장에서 어느 한 편만을 일방적으로 응원하거나 그 일원이 되지 말라고 가르쳤다.
또한 힘든 일을 피하지 말며, 헛된 욕망을 줄이고 원하는 것은 스스로 땀흘려 성취하되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며, 남을 비방하는 소리에 귀기울이지 말라고 가르쳤다.

6 디오그네투스(마르쿠스에게 처음으로 스토아 철학을 일깨워 준 철학자이자 화가)는 경솔한 일에 몰두하지 말 것, 주술이나 악귀를 쫓는 미신을 믿지 말 것, 닭싸움 따위의 저급한 오락에 매달리지 말 것 등을 충고했다.
그의 충고를 좇아 나는 주위의 선한 언행에 귀기울였고, 철학을 가까이 하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바키우스Bacchius와 탄다시스Tandasis, 마키아누스Marcianus 등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어려서부터 말과 생각을 글로 쓰는 법을 익혔으며,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행했던 것보다 더 엄격한 자기 수련의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7 루스티쿠스Rusticus(마르쿠스의 친구, 마르쿠스에게 법률을 가르쳤으며 스토아학파 철학자)에게서는 마음을 수양하는 법을 배웠는데, 그는 공리공론을 꾸미거나 사변적인 회고록이나 쓰며 잘난 체하는 궤변론자들을 경계하라고 일렀다.
또 인격자인 양 자기를 내세우거나 과시를 위한 자선 행위, 혹은 수사학과 언어의 유희를 삼가고, 집 안에 있을 때는 화려한 의상을 입지 말라고 충고해 주었다.
글을 쓸 때에는 쉬운 문체로 써여 한다고 말했으며, 또한 언쟁을 벌이거나 무례하게 행동하여 사이가 나빠진 사람일지라도 그쪽에서 화해를 청한다면, 즉시 응해 줄 수 있는 너그러운 기풍을 가지라고 말했다.
아울러 독서를 할 때는 피상적인 이해에 만족하지 말고 내용을 정확하게 읽을 것, 말 잘하는 사람에게 쉽게 설득 당하지 않도록 경계할 것 등을 배웠다.
그는 또, 자신이 아끼던 장서 에피테토스Epictetus의 논설문 <인생 강의>를 내게 선물하녀 기쁨을 안겨 주었다.

8 나는 아폴로니우스Apollonius(마르쿠스의 철학교사)로부터 의지와 확고한 결심의 진정한 가치를 배웠으며, 냉철한 의지 외에는 그 어떠한 것에도 의지하지 말아야 함을 깨달았다.
그느 불치병, 자식의 죽음 등 견디기 힘든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이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또한 가장 격정적인 힘과 온전히 휴식할 수 있는 능력은 양립할 수 있음을 몸소 보여 주었다.
그는 철학상의 여러 원리를 해석함에 있어 자신의 경험과 학식은 사소한 가치밖에 되지 않음을 명확하게 자각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9 섹스투스Sextus(마르쿠스의 철학교사)에게서는 사랑과 위엄으로 가정을 다스리는 법과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법, 자신을 다스리는 엄격함, 동료들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 무지하고 무분별한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에게 너그러운 관용을 베푸는 법 등을 배웠다.
섹스투스는 누구와도 쉽게 융화하는 성격으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늘 두터운 존경을 받았다. 그는 또 실생활에 필요한 처세술을 터득하여 그것을 조직적인 형식과 질서에 맞추는 재능도 두루 갖추었다.
그는 분노를 비롯한 아떠한 감정의 동요도 얼굴에 나타내지 않았으며, 항상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고 모든 감정으로부터 초월해 있으면서도 매우 다정다감했다. 누군가를 칭찬할 때에는 과장이 없었으며, 단 한 번도 자신의 해박한 지식을 과시하는 일이 없었던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였다.

10 문법학자 알렉산더Alexander(그리스인으로 문법학자)로부터는 남을 헐뜯는 행위는 그릇된 것임을 배웠다. 그는 누군가 비속어나 문법에 어긋난 문장을 사용할 때에도, 그것을 비난하거나 헐뜯지 말고 올바른 표현 방법을 맘시하되, 그 방법은 직접적인 말이 아닌 그 사실에 관한 질문이나 답변 형식으로 할 것을 배웠다.

11 나는 프론토Fronto를 통해 시기심이나 이중심리, 그리고 위선 등이 폭군의 일반적인 특징임을 알게 되었으며, 대체로 귀족 가문 출신들은 따뜻한 인간미가 결여되기 쉽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Fronto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프론토(Marcus Cornelius Fronto). 마르쿠스의 수사학 교사. 카토, 키케로 등과 대등하게 취급되었으며 그는 용어에 있어 문학상의 순수 어휘를 쓰는 키케로의 순수주의에 반대하여 일상어나 고시古詩를 다루어 새로운 표현 방법을 연구하였다.

12 플라톤학파의 알렉산더(마르쿠스의 비서)는 내게 여러 면에서 모범이 되었다. 그는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자주 하거나 쓸데없이 일핑계를 대어, 주위 친지들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거나, 우정과 인간관계를 등한시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13 나는 스토아학파인 카툴루스Catulus로부터, 친구의 과실을 발겨했을 때 무심히 내버려 두지 말고 그 본래의 성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과, 늘 스승을 존경하고, 자녀들에게 진실한 사랑을 베풀 것 등을 배웠다.

14 나의 형 세베루스Severus로부터는 친척을 사랑하고 진리와 정의를 실천할 것을 배웠다.
세베루스는 모든 사람에게는 똑같은 법이 존재한다는 것, 즉 평등의 권리와 언론의 자유에 기초한 국가관을 가르쳤으며, 통치자는 국민의 권익 옹호를 최대 관심사로 삼아야 한다는 것도 일깨워 주었다. 또한 철학에 대한 일관된 입장과 선행을 베푸는 것의 중요성을 배웟다.
모든 일에 명료한 그는 자신이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에게도 일부러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은 그에 대해 구구한 억측을 품을 필요조차 없었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Claudius Severus 마르쿠스에게는 형제가 없다. 그럼에도 그를 형제라고 부른 것은, 세베루스의 아들과 마르쿠스의 딸이 결혼했기 때문인 것 같다.

15 막시무스Maximus는 자제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확고부동ㅇ한 목표를 흩뜨리는 법이 없었다. 그는 몸이 아프거나 혹은 그 밖의 시련 속에서도 항상 밝은 표정을 지었고, 자신의 의지대로 말하고, 옳다고 판단되는 것을 묵묵히 실천하는 모습을 보요 주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악의를 품거나 범하는 일이 없었고, 놀라거나 두려움을 겉으로 드러내는 법이 없었으며, 당황하거나 실망하지도 않았다. 또 거짓 웃음으로 고통을 포장하는 일도 없었고, 미심쩍은 일을 한 적도 없었으며, 자비와 덕행과 용서에 인색하지 않았고, 모든 거짓으로부터 자유로웠다. 그러한 그의 성품은 그가 수양을 쌓아서라기보다 그 자신이 정의 자체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막시무스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로 마르쿠스의 총애를 받았으며 집정관을 지냈다.

16 온화한 성품의 아버지는 매사를 심사숙고하고, 한 번 결정한 일은 단호하게 실행에 옮기는 불굴의 의지를 지닌 분이었다. 그는 노동을 사랑하고, 명예 따위는 구하지 않았으며, 국가의 이익을 도모하고, 남자로서의 욕망을 억제하고 인내할 것을 가르쳤다. 또한 상벌을 가함에 있어 그 공과에 따라 공정할 것과, 상황에 따라 준엄할 것인지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지 그 판단 기준으로, 경험이 소중하다는 것을 충고해 주었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신하들에게도 식사 때나 멀리 출타할 때 갖추어야 할 절차의 번거로움을 면제해 주었고, 설사 그것을 소홀히 한다고 해도 늘 변함없이 관대했다. 아버지는 친구들과 오래 사귀고 또 그들을 보호했으며, 싫증을 내거나 지나치게 애정을 남발하는 일이 없었다. 어떠한 경우에도 쾌활하게 행동하고, 모든 일은 미리 살펴 사소한 일이라도 빈틈없이 처리했으며, 세속적인 갈채나 아첨 따위에 흔들리지 않았다. 또한 대중 연설, 법률, 윤리학 등에 탁월한 재능을 지닌 인재들을 발굴하는 데 힘썼고, 그들에게 각자의 분야에서 명성을 얻을 기회를 주고자 노력했다.
또한 아버지는 국가 통치에 필요한 모든 일에 주의를 기울여 좋은 관리자가 되도록 힘썼으며, 정당한 행위로 인해 쏟아지는 비난에 대해서는 강인한 인내로 맞섰다. 그는 신神을 맹목적으로 신봉하지 않았으며, 공연한 선심을 베풀어 민중의 환심을 사지 않았고, 국민들을 위하는 척하면서 농락하는 일이 없었으며, 만사에 냉철함과 성실함으로 임했으므로 누구 앞에서나 당당했다. 반면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행운이 주어지면, 주저 없이 그 방법들을 선택했다. 새로운 것을 얻게 되었을 때에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그 즐거움을 누렸으며, 그렇지 못할 때에도 자유로움을 느꼈다. 따라서 그 누구도 그런 그를 궤변론자나 뿌리 없는 이상론자라고 비난할 수 없었다. 오히려 원숙하고 완성된 인격의 소유자로서, 세상의 어떤 일도 성실하게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했다. 그는 올곧은 철학자는 존경하는 반면 위선적인 철학자들은 가차없이 비난했다.
아버지는 건강에 많은 신경을 썼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달리 오래 사는 것에 연연하지는 않았으며, 외모에 대해서도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다. 또한 누구보다도 건강했기에 특별히 의사의 진료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아버지에게는 비밀이 별로 없었다. 설혹 있다 해도 그것은 극히 드문 일로, 오직 국가의 안녕에 관한 것뿐이었다. 전시회나 관공서의 건축, 구호품 분배 따위의 행사를 주관할 때에도 항상 신중을 기했으며 그런 행사 뒤에 따르는 갈채나 영광에는 관심이 없었다. 또 정해진 시간 외에 목욕을 하는 일이 없었고, 화려한 저택을 짓는 일이나 먹는 음식, 입는 옷, 심지어 시중드는 여종의 미모에 대해서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어떤 일을 행하거나 구상하더라도 늘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임했기 때문에 모든 일을 견실하고 질서 정연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많은 것을 소유하지 못하면 불안해하고, 많은 것을 소유하면 오만해지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소유했을 때는 적절히 이용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절제할 줄 아는 능력을 지녔다." 이 말은 소크라테스의 기록에 있는 것으로 그에게 꼭 들어맞는다. 자신의 의지력으로 절제와 향락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영혼이 건강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리라. 그러한 인간의 모습을 나는 병석에 누운 막시무스에게서도 볼 수 있었다.
여기서의 아버지는 친아버지인 P.안니우스 베루스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양아버지인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 황제를 뜻한다.

17 나는 훌륭한 조부와 부모, 위대한 스승, 선량한 형제, 좋은 벗들을 갖게 된 것에 대해 신에게 감사한다. 이들과 반목할 수 있는 기질을 지녔음에도 내가 누구와도 평화롭게 지낼 수 았었던 것은, 순전히 신의 은총을 입은 덕택이다. 또한 나는 한때 할아버지의 후처들 손에서 자랐는데, 그 기간이 짧게 끝나고 별다른 어려움 없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역시 신의 도움이다.
더불어 감사하고 싶은 것은, 하나밖에 없는 내 형제가 늘 곁에서 나를 각성시켜 주었으며 따뜻한 애정과 사랑으로 내 가슴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었다는 점이다.
내가 수사학이나 시, 기타 다른 학문에 깊이 빠져들지 않았던 것 또한 신의 은총이다. 만일 그러한 것들에 대한 연구가 쉽다고 느끼고 거기에 몰두했다면, 아마 많은 시간과 정열을 허비해야 했을 것이다.
나는 내 스승들의 높고 낮음을 나이가 아닌 능력을 기준으로 정했는데, 그렇게 하도록 지도해 준 것 역시 신이었다. 내가 아폴로니우스, 루스티쿠스, 막시무스 등과 사귈 수 있었던 것도, '자연스런 삶'의 참된 의미를 알게 된 것도 모두가 신의 은총이다. 신의 은총과 도움이 없었더라면, 나는 오을날의 이 '자연스런 삶'에 도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내가 이렇게 오래 살 수 있었던 것도 신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베네딕타Benedicta나 테오도투스Theodotus 이후 별다른 연정에 연루되지 않은 것 역시 신의 은총이다. 루스티쿠스와는 자주 언쟁을 벌였지만 가슴에 회한이 남을 정도로 실수를 한 적은 없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것도 불행한 일이었지만, 돌아가시기 전 몇 년을 나와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것 역시 크게 감사드릴 일이다.
도움을 청하는 이들을 바로 도울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었다는 점, 남에게 도움을 청할 필요가 없었던 점에 대해서도 늘 감사한다. 유순하고, 이해심 많고, 소박한 성격의 여자를 아내로 맞게 해 준 것에 대해서도 감사드린다. 또한 자삭들을 훈육할 훌륭한 스승을 만나게 해 준 일, 내가 아팠을 때 꿈속에서 그 치료법을 일러주었던 일 등에 대해서도 감사의 기도를 빠뜨릴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내가 철학에 심취해 있으면서도 궤변론에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 논리학과 법학과 자연과학 등의 탐구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게 해 주신 점에 대해서도 감사드린다. 이런 모든 축복은 하늘과 운명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제2장
인생에 대하여

1 아침에 눈을 뜨면 먼저 스스로에게 말하라.
"오늘 나는 침착하지 못한 자, 배은망덕한 자, 사기 치는 자, 오만불손한 자, 제 이익에만 눈먼 자들과 만나게 될것이다." 그들의 그런 행동은 모두 선과 악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선의 고귀함과 악의 비굴함 양면을 모두 보고 있으며, 악인들의 일반적인 본성 또한 알고 있다.
우리와 똑같이 이성과 신성을 부여받았다는 점에서 보면 악인들 역시 나의 형제이다.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 분노할 수 없으며 싸울 수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마치 양손이나 양발, 위아래 눈썹이나 위아래 치아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서로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서로 경계하고 증오한다는 것은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는 것이며, 분노와 질시는 서로에게 해가 될 뿐이다.

2 '나'는 무엇인가? 그것은 다만 보잘것없는 살덩어리와 한줄기 호흡, 그리고 이것들을 지배하는 이성, 그것이 나의 정체이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던져 버려라. 다 이상 자신을 속이지 말라. 책은 당신을 구성하는 일부분이 될 수 없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처럼 당신의 육체를 무시하라. 육체를 이루는 피와 뼈와 신경 조직과 혈관을 잊어버려라. 호흡이란 한가닥 공기에 불과하다. 항상 같은 공기가 아니라 매 순간 새로 들이마시고 토해 내는 공기일 뿐이다.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이성이다. 이 점을 상기하라.
사리사욕에 이끌려 이성을 노예로 만들지 말라. 꼭두각시처럼 반사회적인 행동에 자신을 옭아매고 조종당해서는 안 된다. 또한 오늘을 불평하고 내일을 한탄함으로써 스스로를 운명의 노예로 전락시키지 말라.

3 만물은 신의 섭리로 충만하다. 심지어 운명과 우연의 변화조차도 자연의 법칙에 해당한다.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사물에는 반드시 필연이 존재하며, 그것은 우주의 섭리와 연계되어 있다. 당신 또한 그 우주의 일부분이다. 물론 전체의 자연이 초래하는 것, 그리고 자연을 근간으로 하는 모든 것들은 자연으 ㅣ각 부분에 있어 유익한 것들이다. 누주는 갖가지 변화로 유지되며, 이것은 기본 원소의 변화뿐 아니라 그 원소들이 합성되어 이루는 보다 큰 형체들의 변화도 포함된다.
이같은 원리를 충분히 숙지하고 그것을 당신의 원칙으로 삼아라. 책에 대한 갈망을 버려라. 그리하여 비탄에 빠져 고뇌하는 일 없이 편안하게 신에 대한 감사를 느끼고 기쁘게 죽음을 맞이하라.

4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신으로부터 수없이 많은 은총을 받아 왔다. 다만 그것을 알아차라지 못하고, 이용하지 못했을 뿐이다. 지금이야말로 당신 안에 있는 우주의 본성과 당신을 조종하는 지배자의 존재를 깨달을 때다.
또한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에 한계가 있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그 시간을 당신의 지혜를 증진시키는 데 활용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 시간은 영월히 사라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5 매 순간 로마인의 한 사람으로서, 또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신에게 닥쳐올 모든 일을 정확하고 공정하게, 그리고 위엄과 사랑으로 행하겠다는 결심을 새롭게 하라.
또한 여러 가지 잡념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노력하라. 지금 이 순간을 마치 생의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행동해야만 모든 잡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오갖 위선과 경솔함, 이성의 명령에 대한 감정적인 반항, 자기 과시, 자신의 운명에 대한 불평불만을 떨쳐 버려야만 스스로를 위로하고 안정을 되찾을 수 있다.
신들의 경건한 생활처럼, 매일매일 고요 속에서 생활하기 위해 명심해야 할 것은 아주 사소한 것들에 불과하다. 신들은 우리에게 그렇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6 당신의 영혼을 너무 학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머지않아 당신 자신을 존중할 기회조차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모든 인간의 생명은 영원하지 않으며 그것마저도 끝나 가고 있다. 그런데도 당신은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고, 오히려 타인의 영혼에 자신의 행복을 의탁하고 있다.

7 당신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온갖 복잡한 일들로 인해 마음이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 조용한 사색의 시간을 마련하여 선에 대해 다시 한 번 차근차근 생각해 보고, 혼란에 대한 초조감을 불식시켜라. 그리고 또 다른 오류에 대비하라. 왜냐하면 당신은 많은 일을 하느라 이미 지쳐 있기 때문에 그 어떤 노력도, 저항할 목적도 세우지 못할 수가 있는데, 이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기 때문이다.

8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해서 불행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 속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불행해진다.

9 항상 이것만은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즉, 우주의 본성은 무엇이며, 나의 본성은 무엇인가? 또한 이 둘은 사로 어떤 관계에 있는가? 나는 어떤 것의 일부분이며, 또한 어떤 것의 전체가 되는가?
나는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을 좇아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방해할 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라.

10 인간의 여러 가지 죄악을 연구한 테오프라스투스Theophrastus는 이렇게 말했다.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죄는,분노로 인해 저질러진 죄보다 더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분노로 인한 흥분은 어느 정도의 고통과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지만, 욕망으로부터 생겨난 죄는 쾌감에 의해 좌우되는 것으로 훨씬 무절제할 뿐 아니라 나약함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 주장은 경험과 철학이 뒷받참해주고 있다. 이는 고통에 의한 죄는 아떤 부당한 처사에 대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제력을 잃은 것이고, 쾌락에 따른 죄는 옥망에 대한 일시적인 충동이 악을 행하도록 바극한 것이라는 뜻이다.

11 만일 신들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되 인간의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면, 신들도 신의 섭리도 없는 이 생활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나 신들은 분명 존재하고, 또 그들은 인간 세계를 다스린다. 또한 인간이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도록 온갖 수단과 방법을 부여해 주었다.
그렇다면 인간을 악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대자연이 이같은 위험을 간과할 만큼 무지할 리 없으며, 혹 그렇다 해도 그것을 예방하고 교정할 능력은 충분할 것이다. 또한 우주가 능력 부적을 이유로 선과 악, 선인과 악인을 대치시키진 않았을 것이다.
분명 생과 사, 명예와 치욕, 부와 빈곤, 쾌락과 고통 등은 선인이나 악인 모두에게 올 수 있는 모든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인간을 격상시키지도, 격하시키지도 않는다. 따라서 선도 아니며 악도 아닌 것이다.

12 만물은 얼마나 빨리 소멸하는가? 육체는 우주 속으로, 기억은 시간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이렇듯 모든 사물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그 본질은 무엇인가?
쾌락으로 우리를 유혹하느 것들, 고통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것들, 허영으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들의 본질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그런 것들이 얼마나 천박하고 저급한 것이며, 얼마나 가치 없고 덧없이 사라지는가를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그럴 듯한 말과 주장을 통해 명성을 구축한 사람들의 진가를 판별할 줄 알아야 하며, 또한 죽음의 본질을 꽤뚫어 봐야 한다.
우리가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사색하고 막연히 떠오르는 공포심을 제거한다면, 죽음이란 하나의 자연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아니, 오히려 자연의 끝없는 번영과 순환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임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13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일은 신들의 창조물을 모두 이해하고자 하는 행위일 거시다. 땅 속 깊숙한 곳까지 찾으려 들고, 다른 사람의 비밀을 훔쳐보기 위해 기웃거리고 공상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자기 마음 속에 있는 성스러운 이성에 관심을 갖고, 그 영혼을 충실히 섬기는 것이야말로 자기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자신의 수호신인 이성을 섬긴다는 것은, 자신에게 닥치는 모든 일의 욕망을 떠나 순결함을 보존하는 것을 말한다. 신의 행위는 그 우월성으로 인해 존경받아 마땅하고, 인간의 행위는 사랑과 인류의 평화를 위해 호의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하다. 또한 선과 악을 모르는 인간의 무지는 흑백을 가리지 못할 만큼 가련한 상태이기 때문에 동정받아 마땅한 것이다.

14 당신이 만약 3천 년, 혹은 3만 년을 산다 해도 잃는 것은 현재 당신이 영위하는 순간의 삶이며, 소유할 수 있는 것도 지금 그 순간의 삶임을 명심하라. 그것이 긴 인생이든 짧은 인생이든 마찬가지이다. 지금 우리를 스쳐 지나는 이 순간은 만인에게 공통된 소유물이며, 잊혀지는 것 또한 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과거나 미래를 잃을 수 없다. 왜냐하면 현재 갖고있지 않은 것을 잃거나 빼앗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어떻게 갖지도 않은 것을 잃어버린단 말인가!
그러므로 다음의 두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첫째, 영원으로부터 전해지는 만물은 윤회輪廻를 거듭하는 것이어서 설사 당신이 그 순환을 100년, 200년, 아니 무한 세월을 두고 본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차이도 없다.
둘째, 가장 오래 산 사람이나 태어나자마자 죽은 사람이나 죽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상실할 수 있는 것은 현재뿐이기 때문이다. 소유하지도 않은 것을 잃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15 일찍이 모니무스Monimus는 갈파했다.
"모든 사물은 그 사물에 대해 인간이 갖는 견해, 즉 관념에 의해 결정된다."
설령 반론이 있다 할지라도, 이 말의 진리에 해당되는 부분을 교훈으로 받아들인다면, 어느 정도의 가치는 발견할 수 있다.

16 인간의 이성이 스스로를 해친다는 것은 이성이 이성 자체를 손상시키는 것이다. 즉, 우주의 한 종양이 되는 것으로, 자연의 한 부분에 속해 있으면서 그러한 환경과 투쟁하는 것은 우주를 향한 반란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개별적인 것들의 모든 본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성이 스스로를 상처 입히는 두 번째는, 아떤 사람을 배격하거나 악의적으로 반목하는 경우이다. 세 번째는, 이성이 쾌락이나 고통으로 인해 자제력을 잃는 경우이며, 네 번째는, 일을 행함에 있어 성실성 없이 건성으로 움직이는 경우이다. 마지막으로는 이성이 이렇다 할 목표도 없는 상태, 즉 어떤 사고나 분별력 없이 무모하게 정력을 쏟아 붓는 경우이다.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목표를 세우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가장 합리적인 사고력은 가진 인간만이 그 목적을 가질 수 있으며 그것은 곧 정치, 법률 및 이성에 따를 때에만 가능하다.

17 무한한 시간 속에 한 인간이 차지하는 인생이란 순간에 불과할 뿐이며, 그의 존재는 끊임없이 윤회한다. 또한 그의 깨달음은 우둔하고 혼탁하며, 그의 육체는 이내 썩어 없어질 운명을 지니고 있다. 운명은 전혀 예측할 수 없고, 영혼은 한줄기 회오리바람과 같다. 다시 말해 육체에 속한 모든 것은 굽이치는 물결이고, 영혼에 해당하는 것은 꿈과 환상과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 삶은 하나의 전투이며, 후세에 남는 명예란 망각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무기력한 인간을 깨우치고 인도할 힘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오직 하나, 바로 철학이다. 그렇다면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자기 정신과 영혼 속에 신성을 안치시키고, 그것을 모독하거나 해치는 일 없이 욕망과 쾌락을 초월하여 행동하고, 거짓과 위선을 행하지 말며, 행동이나 의사에 흔들림이 없는 것이다.
또 장해진 모든 운명이 자신과 같은 원천에서 나온 것임을 자각하고, 무엇보다 모든 생물이 그 구성 분자로 환원하는 것에 불과한 죽음마저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죽음은 각 생물을 구성하고 있던 원소의 분해 작용이다. 그것은 자연의 한 현상이고, 자연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므로 두려움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제3장
운명에 대하여

1우리의 생명이 나날이 꺼져 간다는 사실 외에 또 다른 사실 하나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어떤 사람의 생명이 얼마간 더 연장된다 하더라도 과연 사고력이나 이해력이 그대로 남아서 사물을 뚜렷이 식별하고, 신과 인간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사색 능력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노령기에 접어들더라도 신체적 배설작용이나 식욕, 상상력 등에는 크게 이상이 따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능려을 발휘하는 힘, 의무를 정확하게 수행하는 힘,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판단하는 힘, 최후의 순간을 분별하는 힘 그리고 그동안 숙련시킨 이성의 기능은 쇠퇴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매일매일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으며, 동시에 사물에 대한 개념이나 이해력은 점점 쇠약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2 기억해야 할 것은, 자연의 섭리에 의해 일어나는 모든 현상 속에는 신의 은총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오븐에 빵을 구울 때 빵의 표면이 갈라지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기술적으로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일종의 아름다움으로써 식욕을 돋우어 준다. 또한 잘 익어 벌어진 무화과, 썩기 직전의 올리브도 아름다움을 한층 더한다. 고개 숙인 벼 이삭, 사자가 인상을 쓸 때 생기는 주름, 멧돼지의 콧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지만 이 역시 자연의 또 다른 과정으로서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 것들이며, 우리는 그러한 것들에서 삶의 희열을 느끼게 된다. 이와 같이 우주의 신비로운 활동으로 생성된 모든 것들을, 깊은 통찰력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무엇 하나 즐겁지 않은 것이 없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맹수의 으르렁거리는 입을 볼 때도, 화가나 조각가의 작품을 보듯 찬탄의 눈으로 바라볼 것이며, 청춘 남녀 사이에 감도는 열정적인 사랑뿐 아니라, 나이 들어 쭈글쭈글해진 노인의 주름살에서도 일종의 원숙한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모습에서 매력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자연과 그 자연의 산물에 대해 진실로 애착을 갖고 바라보는 사람만이 깊은 감명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3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는 많은 사람들의 병을 치료해 주었지만 정작 자신은 병에 걸려 죽었다. 칼데아Chaldea의 점성술사 역시 많은 사람의 죽음을 예언했지만 정작 자신의 운명은 알지 못햇다. 폼페이우스, 시저, 알렉산더는 수많은 도시를 함락하고 수십만의 기병과 보병들을 죽였지만, 결국 그들도 죽고 말았다.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는 불로 이루어진 우주에 대해 끊임없이 명상을 거듭했으나, 자신은 수종에 걸려 물이 가득찬 몸뚱이로 죽어 갔다. 데모크리토스Democritus는 이때문에 죽었고, 소크라테스Socrates는 처형당했다. 그렇다면 이 사실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신은 이미 배에 올라탔다. 항해는 시작되었고, 당신은 지금 피안에 도착해 있다. 이제 그만 하선하라. 만약 당신이 또 다른 저승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라면 그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신들이 존재할 것이다. 이때 배는 이승에 머무는 형체, 즉 육신을 말하고, 배에서 내림은 그 육신과의 이별을 의미한다.
당신은 결국 무감각의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이미 고통이나 쾌락에 사로잡혀 있지 않고, 또한 육신이라는 형체에 갇힌 노예 상태에서도 벗어나 있을 것이다. 형체라는 것은 영혼의 우월함에 비하면 매우 저급한 것이다. 영혼은 지혜이며, 이성이고 신성인데 반해, 형체인 육신은 흙이며 부패腐敗이기 때문이다.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B.C.460~355. 고대 그리스의 의학자로 실증 위주의 과학적 의학을 수립해 의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인생은 딻고 예술은 길다"라는 명언을 남겼으며, 체액설體液說을 주창하였다.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B.C.540~475. 그리스의 철학자, 비판자. 이오니아학파의 대표자. 헤시도스, 피타고라스 등을 매도하여 고독한 생활을 했는데, 그가 쓴 잠언풍의 문장이 매우 난해하여 '어두운 사람'이라 일컬어진다. 불을 우주의 근원이라 보았고, 만물은 모두 유전流轉한다고 하였다. 로고스에 따르는 생활이 최고의 생활이라 주장하였으며 스토아학파에 영향을 주었다. 단편 중 130여 편이 현존한다.
데모크리토스Democritus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 후기부터 알려져 아리스토텔레스 때에 중요시 된 인물. 우주는 무한한 원자들의 다양한 결합으로 형성되었다는 원자론을 주장, 근세 물리학의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4 국가나 사회에 이익이 되는 일이 아니라면 굳이 다른 사람의 일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어떠한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지 등 잡다한 사념에 사로잡히다 보면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잃게 된다. 즉, 자기 내면의 '통치자'에 대한 충성심을 분산시키는 역효과를 내게 되는 것이다.
마음 속의 잡념을 없애기 위해서는 떠오르는 여러 가지 생각들을 지우고, 맹목적이며 단순한 호기심에 의한 감정 따위에 휩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 갑자기 "당신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에도, 정화하게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항상 사고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욕망과 쾌락으로 괴로워한다거나 시기와 질투, 경쟁심 따위를 갖는 일 없이, 언제든 마음 속의 것을 말해야 할 때 얼굴 붉히지 않을 수 있는 것들만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만 당신은 말과 행동에 당당해지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보다 높은 이상을 갈망하기로 마음먹는다면 그야말로 신의 사제요, 종복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쾌락에 의해 더렵혀지지 않고, 어떤 고통에도 능욕당하는 일 없이 자신의 본성을 유지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가장 당당하고 숭고한 싸움의 투사이며, 일체의 격정에 휘말리지 않고 운명에 할당된 것을 유유히 누리는 자이다. 그는 정의감에 불타 있으며, 자신에게 닥쳐올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주위의 온갖 사념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는 우주라는 직조물 속에서 자기 자신만의 특정한 실을 찾아내어 자신의 관심사에서만 능력을 발휘한다. 또한 자신의 행동이 명예로운 것이 되도록 항상 노력하며,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은 모두 유용한 것이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그를 이끄는 운명은 보다 높은 곳에서 지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모든 인간이 자신의 동료이며, 그들을 생각하고 돌보는 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의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
또한 자신이 추구해야 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평판이나 여론이 아니라 자연의 원리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선인의 길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 반면 자연에 순응하며 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집 안팎에서의 생활은 어떠한가, 밤과 낮의 생활은 어떠한가, 인품은 어떠한가, 어떤 종류의 인간이며, 또 친구들과 어울려 올바르지 못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에게조차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므로, 그는 그들의 찬사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5 마음에서 우러나는 행동을 하되 항상 공공의 이익을 감안하하. 충분히 숙고하여 움직이되 감정 속에 가식과 지나친 세련을 가미하지 말라. 말 많은 사람이 되지 말 것이며, 자신과 무관한 일에 연루되어 스스로를 망치지 말라. 자기 내면의 신으로 하여금 남자답고 성숙한 개체, 로마 시민, 정치가, 국가지도자로서의 직분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게 하라. 그리하여 인생이란 전쟁터에서 퇴각 명령을 기다리며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되,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자기 입으로 공적을 말하거나 남이 남이 그 공적을 알아주기를 바라지 말라. 외부의 도움을 청하지 말고, 타인에게서 마음의 평정이나 위안을 바라서도 안 된다. 반드시 스스로 일어서야하며 절대 타인의 부축을 받아서는 안 된다.

6 만일 당신이 정의, 진리, 절제, 강직, 용기보다 더 훌륭한 것을 만나게 된다면, 즉 이성에 따라 행동하는 데서 오는 마음의 평화보다 더 좋은 것을 만나게 된다면, 당장 그것에 온 정신을 쏫고 그렇게 함으로써 누릴 수 있는 쾌감을 향유하라. 그러나 만일 당신의 내면에 머물면서 온갖 욕망을 조절하고, 안생 전부를 비판 검토하며, 신에게 귀의하여 인류를 염려하는 그 신성보다 나은 것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 어떤 것도 추종해서는 안 된다.
만약 다른 방향으로 향하게 되면, 본래 당신의 소유인 선함에 몰두할 수 없게 된다. 대중의 칭찬이나 권력, 부나 쾌락 따위도 당신의 합리적이고 선한 이성에는 미칠 수 없다. 물론 알마 동안은 그것들이 잘 순응하는 듯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순식간에 지배력을 얻어 우리를 압도해 버리고 만다.
지금 당장 당신이 가장 고귀하다고 믿는 이상을 선택하여 그것에 몰두하라. 그리고 최후까지 그것을 고수하라!
7 무리하게 약속을 깨뜨리거나, 자존심을 잃게 하거나, 타인을 증오하게 하거나, 의심케 하거나, 저주케 하거나, 위선을 행하게 하는 모든 욕망으로부터 얻어지는 이익을 중요시하지 말라. 마음 속 신성을 존중하는 사람은 꾸밈이 없고, 불평하지 않으며, 쓸데없는 고독을 자초하지 않으며, 대중과 휩쓸리는 일은 바라지 않는다. 또 무엇보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영혼이 육체 안에 깃들어 있는 시간에 대해서도 초조해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가령 지금 당장 세상을 떠나야 한다고 해도, 그는 보통의 일상적인 일을 행하는 것처럼 태연하게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또한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일생 동안 자신의 이성이 문명 사회의 지적, 사회적 동물로서의 벗어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뿐이다.

8 부단히 단련되고 장화淨化된 인간의 정신 속에는 부패된 것이나 부정한 것, 상처 따위는 발견되지 않는다. 또한 운명은 그러한 인간의 생명을 완성하기도 전에 회수하지 않는다. 그것은 배우가 연기를 다 끝내지 못한 채 무대를 내려가는 것과 같다.
뿐만 아니라 그의 마음 속에는 추호의 비굴함도, 허식도 없으며, 남에게 의지하지도 않고, 남을 멀리하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비난을 살 일도, 숨을 곳을 찾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9 스스로 독자적인 의견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당신의 능력을 존중하라. 당신의 이성은 그것이 있어야만, 자연과 인간의 이상적인 본성에 위배되는 관념의 창출을 중지할 수 있다. 또한 경솔한 판단을 금지시키고, 훌륭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며, 나아가 하늘의 의지에 순종할 수 있게 된다.

10 인간은 쏜살같이 지나가는 현재의 이 순간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나머지 인생은 그저 사라져 버렸거나 아니면 아직 불확실할 뿐이다.
이같은 인간의 삶은 순간에 불과하며, 각자가 영위하는 지상의 공간 역시 비좁기만 하다. 생명은 지구의 한구석에 숨어사는 보잘것없는 난장이에 불과하며, 그 생명도 곧 꺼져갈 것이다. 그리고 가장 뒤늦게까지 이곳에 머물 사후의 명성 역시 짧고 허망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이것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죽고 만다. 또한 그들은 자신의 일조차 알지 못하는 가엾은 족속이므로, 이미 과거에 죽은 사람들의 일 따위를 알 리가 없다.

11 어떠한 대상이 당신의 마음 속에 들어왔을 때, 그것에 대한 정신적 정의를 내리거나 적어도 그 윤곽만큼은 파악해야 한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사물이며, 그 본성과 실제적인 모습, 그것을 이루는 원소의 정체, 그 원소가 분해되고 다시 환원하는 과정을 확인하라. 당신 혼자의 힘으로 말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자신의 이성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 매우 유효한 방법은, 삶을 통해 제시되는 하나하나의 대상을 면밀히 검토하고 음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 사물을 관조함에 있어 다음의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전체로써 이 우주는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가? 우주 가운데 나타나는 사물의 효용가치는 어떤 것인가? 각각의 사물이 전체에 관련해 갖는 가치는 무엇인가? 또 세계의 모든 도시를 내 집처럼 포용하는 로마의 한 시민으로서의 당신에게 각 사물과 인간은 어떤 의의를 가지는가? 각 사물의 본체와 그 구성은 어떠한가? 혹은 그 성질을 얼마나 오래 지속할 수 있는가? 또한 나는 어떤 덕성을, 예를 들면 부드러움, 강직함, 정직, 진실, 충성, 만족 중 어떤 것을 가져야 할 것인가?
어떤 경우이든 인간은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신에 의한 것이다. 혹은 운명이 부여한 것으로 복잡한 거미집의 줄 한 가닥과 같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자연의 법칙에 따라 관용과 정의를 갖고 신의로써 대해야 한다.

12 한 순간도 이성을 잃지 않도록 경계하며, 언제라도 자신의 신성을 반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항상 정신을 순수하게 유지하면서 매사에 열정적으로 임하라.
무엇을 기대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단지 자연의 본성에 따라 순응하며 임무를 이행하고 모든 언행에 있어 진실을 추구해 나간다면, 당신의 인생은 행복해질 것이다. 또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당신을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

13 의사들이 위급한 환자들을 위해 늘 진료 도구를 준비해 놓듯이, 당신도 신과 인간의 이해를 얻기 위해 늘 당신만의 원칙을 갖고 있어야 한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행위일지라도 항상 이 점을 명심하라. 왜냐하면 인간에 관한 그 어떤 일도 신의 섭리를 벗어나 수행될 수 없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14 더 이상 당신 자신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지 말라. 그렇게 되면 지나간 로마인이나 희랍인의 전설적인 기록들, 노년에 읽기 위해 간직해 둔 훌륭한 저적들도 더 이상 읽지 못할 것이다.
이제 종말을 준비하라. 무익하고 나태한 희망을 버려라. 그래도 자신을 아끼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아직 그 능력이 남아 았을 때 건강을 돌보면서 눈앞의 일들을 서둘러 마무리 짓도록 하라.

15 사람들은 '훔치거나', '씨앗을 뿌리거나', '무엇을 사거나', '평화로워지는 것', 혹은 '어떤 일에 대한 의무'와 같은 말들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통찰력에 의해 파악되기 때문이다.

16 인간의 육체는 감각을 위해 존재하고, 영혼은 행동의 욕망을 위해 존재하며, 이성은 모든 기능과 원칙을 위해 존재한다. 감각, 즉 외관에 의해 여러 가지 형태의 개념을 파악하는 능력은 가축들에게도 있다. 욕정의 충동에 이끌리는 것은 야수에게도, 동성애자에게도, 네로Nero나 팔라리스Phalaris 같은 자들에게도 있다. 또한 이성은 신을 부정하고, 조국을 배반하고, 온갖 불결한 행위를 일삼는 자들에게도 돋등하게 부여된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것이나, 선인에게는 그만의 독특한 것이 따로 존재한다. 그것은 운명이 예비해 놓은 모든 경험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그것에 만족하는 것이다. 또한 마음 속에 깃든 신성을 모독하거나, 옳지 못한 온갖 관념들로 인해 마음을 어지럽히거나 방해하지 않으며, 진리에 벗어난 일은 일체 관여하지 않고, 또한 정의와 대립되는 일일은 절대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간다는 이유로 남들이 불신하더라도, 절대 분노하지 않으며, 자신의 운명이 다할 때 까지 조금도 흔들림 없이 나아간다. 그리하여 생과의 작별을 주저하지 않고, 운명이 정해준 수명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팔라리스Phalaris
B.C.6세기경 시칠리아의 아크라가스를 통치했던 정치가로 비인간적이며 잔인하기로 악명이 높았던 인물. 그는 포로를 놋쇠로 만든 황소에 넣고 불태워 죽였는데 그 첫 번째 희생자가 바로 황소를 만들었던 페릴루스였다.





제4장
죽음에 대하여

1 인간을 다스리는 내면의 힘이 자연의 순리를 따르고 있다면, 그것은 항상 환경에 의하여 생기는 기회와 가능성에 쉽게 순응할 것이다. 그 힘은 특정한 재료를 요구하지 않고, 다만 정해진 목표를 이루기 위해 기꺼이 타협할 것이다.
그 힘은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도 전환시켜 자신에게 유익한 재료로 삼는다. 그것은 마치 던져진 장작더미를 집어삼키는 모닥불과 같다. 작은 불꽃이라면 이내 꺼져버리겠지만, 강한 불일 경우에는 그 물체를 사르고 이로 인해 불꽃은 더욱 크게 타오르는 것이다.

2 어떠한 행위도 뚜렷한 목적 없이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 되며, 그 일을 수행하는 데 꼭 필요한 원리 원칙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3 많은 사람들이 시골이나 바닷가, 또는 깊은 산중에 은둔해 살기를 바란다. 당신 역시 이런 욕망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일 뿐, 철학을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부질없는 짓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그 자신 속으로 은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자기 자신의 영혼 속보다 더 조용하고 평온한 은신처는 없다.
특히 정신적인 여유를 갖고 있는 사람은, 조금만 노력하면 즉시 마음의 평온을 유지할 수 있다. 마음의 평온이란 잘 정리된 정신과 같다. 마음 속으로의 은둔을 자주 활용하여 스스로를 쇄신시켜라. 또한 삶의 원칙들은 지극히 간결하면서도 모든 기본적인 것들을 포괄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그 원칙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영혼은 즉시 정화될 것이며,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스스로 돌아가야 할 곳으로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당신의 불만은 대체 무엇인가? 인간들의 사악함인가?
그렇다면 이성을 지닌 모든 동물은 서로 돕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원리를 상기하라. 인간은 고의적으로는 악행을 범하지 않으며, 서로 참는 것이 곧 정의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품었던 적개심, 증오, 의심, 원한, 갈등 등을 상기해 보라. 그런 것들을 품었던 인간은 이미 먼지나 재와 더불어 사라져 버리고 앖지 않은가!
우주로부터 할당된 당신의 위치가 너무 작아서 불만인가?
그렇다면 지고지순한 섭리가 아니면 단 한 개의 원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다시 한 번 상기하라. 그리고 더 이상 불평하지 말고 침묵하라.
질병이 당신을 괴롭히는가?
그렇다면 이성이 육체와 분리되어 그 스스로의 힘을 인식하고, 육체의 호흡이 순조롭든 거칠든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상기하라. 즉, 고통과 쾌락에 대해서는 그동안 당신이 배우고 받아들인 모든 것을 떠올리면서 괴로워하지 말고 침묵하라.
명성이란 괴물이 당신을 괴롭히는가?
그렇다면 보라, 세상의 모든 사물은 얼만 ㅏ빨리 잊혀지는가! 그리고 현재의 앞뒤로 펼쳐진 영원이란 심연을 상기하라. 갈채의 메아리는 얼마나 공허하고, 열광하는 자들은 또 알마나 무분별하고 변덕스러우며, 그 찬사가 미치는 공간은 얼마나 협소한가? 이 세계는 단지 하나의 점에 불과하며 우리가 사는 곳은 그 점 안의 미세한 한 귀퉁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 안에 당신을 찬양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으며, 그들은 또 알마나 보잘 것 앖는 존재들인가?
무엇보다도 당신의 마음을 불안, 긴장, 부담으로 혼미케 하지 말고, 편협하게 하지 말며, 다만 한 인간으로서, 언젠가는 죽어야 할 숙명을 지닌 피조물로서 인생을 관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후 항상 명심해야 할 다음의 두 가기 진리를 생각하라.
첫째, 외적인 존재인 주위의 사물은 우리의 영혼에까지는 이르지 못하는 것이므로, 우리 마음의 동요는 오로지 내면의 관념에 의해서 생겨난다.
둘째, 지금 당신이 바라보는 눈앞의 모든 사물은 순식간에 변하는 것으로, 곧 사라져 버릴 것이다. 또한 당신도 그 수많은 변화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4 안류가 보편적으로 사고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면 이는 이성을 소유했다는 말과 같다. 이것은 우리를 이성적인 창조물로 만들어 준다. 따라서 이성은 우리에게 상대방을 인식하게 해준다. 그러므로 세상의 법칙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우리 인간은 모두 동료이고, 공통된 시민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전 세계는 하나의 도시임을 뜻한다. 이렇듯 모든 인간애를 주장하는 또 다른 시민권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 바로 여기에서부터 정신, 이성, 그리고 법을 파생하는 세계의 조직이 생겨난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어디에서 생겨난 것인가?
인간의 몸을 이루는 흙은 지구를 구성하는 흙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며, 인체의 수분과 호흡 역시 지구의 또 다른 요소로부터 주어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정신의 원천 또한 어딘가에 존재할 것임에 틀림없다.

5 탄생과 마찬가지로 죽음 역시 자연의 한 신비이다. 탄생할 때 결합되었던 원소들이 분해되면 그것이 바로 죽음인 것이다,. 따라서 삶과 죽음에 관한 어떠한 것도 수치스럽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성이 부여된 인간의 본질에 어긋난 것이 아니며, 결코 창조의 섭리에도 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6 인간은 누구나 자기 본성에 맞는 일을 찾기 마련인데, 이것은 자연스럽고도 필연적인 일이다. 이와 같은 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무화과나무에서 수액이 나오는 것을 믿지 않는 것과 같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당신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죽을 것이며, 얼마후엔 당신들의 이름조차도 남겨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명심하라.

7 무언가로 인해 억울하다는 마음을 버려라. 그러면 억울함도 사라질 것이다. 피해의식을 버려라. 그러면 그 자체도 사라져 버린다. '나는 상처받았다'라는 생각을 버리면 그 상처도 곧 사라지게 될 것이다.

8 어떤 사람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그의 삶을 부패시킬 수 없으며, 내적이든 외적이든 아무런 피해도 입힐 수 없다.

9 집단을 위해 보편적으로 유용한 것들의 본성은, 당연히 그렇게 행해져야 한다는 데 있다.

10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어떤 것이든 정당한 이유로부터 발생한다는 것에 주목하라.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보면 이것이 진실이고, 단순히 인과관계에 의한 연속성만이 아닌, 모든 대상에 합당한 가치를 분배하는 신의 섭리와도 같은 공정한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이 관찰을 주의 깊게 계속할 필요가 있다. 또한 무엇을 하든 모든 사람들이 선하다고 말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행동을 함에 있어 아것을 명심하라.

11 당신은 비리를 범하는 자들이 갖고 있을 법한 생각이나, 그들이 당신에게 요구하는 그런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또한 거기에 지배되어서도 안 된다.
다만 진리에 비추어 생각하고, 진리의 관점에서 볼 것이며, 진리에 맞게 행동하라.

12 우리는 언제나 다음의 두 가지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 이성과 국가의 법을 시행하는 제왕이 인류 공동의 이익을 위해 명령하는 것만을 행하라.
둘째, 당신의 미망迷妄을 풀어주고 판단을 바로잡아 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당신의 당신의 결정을 재고하라.물론 이것은 공공의 이익이나 그 밖의 다른 이익에 이바지한다는 확신으로부터 나온 것이라야 한다. 일시적인 쾌감이나 소소한 명성 따위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13 당신은 이성을 갖고 있는가? 갖고 있다면 무엇 때문에 그것을 활용하지 않는가? 만일 당신의 이성이 그 본래의 기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14 당신은 지금까지 전체의 한 부분으로 존재해왔다. 그러나 당신은 처음 당신을 생성한 자연 속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아니, 오히려 다시 한 번 변화를 거쳐 우주의 창조적 이성 속으로 귀속해야 한다.

15 제단 위로 많은 유향乳香 가루들이 떨어진다. 어떤 것은 먼저, 또 어떤 것은 나중에 떨어진다. 그러나 결국 떨어진다고 하는 것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16 만일 당신이 당신의 본성으로 돌아가 이성을 섬긴다면, 지금 당신을 한 마리의 야수나 원숭이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열흘이 채 못 되어 당신을 신처럼 섬기게 될 것이다.

17 눈앞에 마치 일만 년 정도의 수명이 남아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 말라. 죽음은 당신의 머리 위를 항상 맴돌고 있다. 생명과 능력이 당신에게 붙어 있는 동안 온갖 노력을 다해 선한 인간이 되도록 하라.

18 주위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고, 다만 자신의 행동이 올바르고 순수한가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은 실제로 수많은 걱정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다른 사람들의 퇴폐적인 행위에 눈을 돌리지 말고 흔들림 없이 곧장 앞으로 달려가라.

19 사후의 명성에 집착하는 자는, 자신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 역시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자이다. 또한 그의 후손들 역시 곧 사라질 것이며, 활활 타오르다가도 종국에는 스러지는 불꽃처럼, 기억의 마지막 불씨도 마침내 소멸하고 만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설령 그것을 기억해 줄 사람들이 영원히 죽지 않고, 그들의 기억이 영원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당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것은 살아 있는 자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질문이다. 명상이나 칭송이 실제로 확실한 공리를 갖고 있지 않다면 그것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늘 대자연이 당신에게 베풀고 있는 은혜를 뿌리치고, 사람들이 내일 당신에 대해 무슨 말을 할 것인가에 모든 정신이 쏠려 있다면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 아름다운 것은 그 자체가 나름대로의 미를 간직하고 이기 때문에 아름답다. 아름다움은 그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에 대한 인간의 찬사와 찬미도 어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찬사를 덧붙인다고 해서 더 좋아지거나 나빠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아름답다고 일컬어지는 사물, 즉 천연적인 것이나 인공적인 예술 작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진실로 아름다운 것은 그 밖의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 법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법률이나 진리, 친절과 예의도 마찬가지이다. 이것들 중 어떤 것이 찬사를 받는다고 아름다워지며, 비난을 받는다고 더렵혀지겠는가? 에메랄드의 아름다움이 찬사가 부족하다고 해서 추해지는가? 황금과 상아, 장미와 숲의 나무가 그렇던가?

21 만일 영혼이 영원불멸의 것이라면 하늘은 어떻게 이 불멸의 혼들을 수용해 왔을까? 그리고 대지는 어떻게 아득한 과거로부터 묻혀온 그 수많은 시신들을 수용해 왔을까? 대지는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면 변화와 부패로써 또 다른 사체를 위해 자리를 마련한다. 마찬가지로 영혼은 변화하고 사라지기에 앞서 잠시 공중에서 머물다가, 우주 본원의 영지靈智에 수용됨으로써 불의 본성을 갖추게 된다. 이리하여 다른 영혼을 받아들일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혼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땅에 매장된 시체 수만을 생각해선 안 된다. 인간들에게, 혹은 다른 동물들에게 매일매일 먹히는 동물들의 수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그렇게 죽어가며, 아떤 의미로 그들을 먹는 자들의 뱃속에 매장되고 있는 것일까? 그것들은 인간이나 짐승들의 체내에서 피로 변했다가 다시 공기나 불로 변하기 때문에 대지가 이를 수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문제에서 우리는 어떻게 진리를 찾아낼 것인가? 그것은 물질과 그 생성의 근거를 분별해 냄으로써 가능하다.

22 일순간의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몰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하라. 어떤 충동이 일어날 때면 우선 그것이 정의의 명령에 의한 것인가를 파악하라. 또 어떤 인상을 받을 때마다 확실하게 파악하고 이해하라.

23 오, 우주여! 당신과 조화를 이루는 모든 것이 나와도 조화를 이루노라. 그대에게 알맞은 것이라면 나에게도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지 않다.
오, 대자연이여! 그대의 사계절이 생산하는 모든 것이 나를 위한 열매로다. 만물은 그대로부터 나오며, 그대 속에 존재하며, 그대에게로 돌아가노라.
시인은 '고귀한 케크롭스Cecrops의 도시'라고 노래했으나, 우리는 '고귀한 신의 도시여!'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케크롭스Cecrops
고대 그리스의 수도인 아테네를 건립했다는 전설적인 시조로, 이 구절의 출처는 분명치 않음.

24 어느 철학자는, 마음의 평정을 원한다면 많은 일을 벌여 놓거나 관여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당신에게 꼭 필요한 행위와 사회인으로서의 당신의 이성이 요구하는 행위, 그리고 보편적 이성이 요구하는 행위를 할 수 있도록 그 밖의 다른 행위를 제한하라. 이렇게 하면 몇 가지 일이나마 잘 이행할 수 있고, 거기에서 오는 만족감과 안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들의 대부분이 불필요함을 느끼게 될 것이고, 그것을 제거함으로써 시간과 수고를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혹시 이것도 불필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하고 자문해 보아야 한다. 아울러 불필요한 행위뿐 아니라 사념까지도 떨구어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만 쓸데없는 행위가 뒤따르지 않게 된다.

25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선한 인간의 생활, 즉 우주로부터 내게 할당된 부분에 만족하고, 올바른 행위와 자비만을 희구하는 생활을 영위할 능력이 과연 내게 있는가?

26 인간은 살아가면서 온갖 자질구레한 사건들과 마주치게 된다. 당신은 이미 그런 일들을 수없이 봐 왔을 것이다.
자, 이제 이것을 보라!
당신은 당신의 감정을 어지럽히지 말고, 지극히 단순한 상태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부당한 일을 가하고 있는가? 그러나 그런 행동은 결국 그 자신에게 해를 가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당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체의 일은, 우주에서 생성하여 세상이 시작된 순간부터 이미 당신에게 할당되어진 운명이며, 당신 앞에 펼쳐진 상황은 살아 움직이는 다른 모든 것처럼, 운명의 직조물에 짜 넣은 한 오라기의 실에 불과한 것이다.
인생은 짧다. 이성과 정의의 공정한 처사에 순응하며, 빠르게 스쳐 지아가는 시간으로부터 유용한 것을 움켜잡아라. 마음은 여유롭게 가지더라도 정신은 차려야 한다.
자, 이제 이것을 보라!
새로운 만남의 불쾌한 측면.

27 질서 정연하든 혼돈 속에 있든 우주는 여전히 우주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한 개체 속에 어느 정도의 질서가 존재하는데, 동시에 그보다 큰 '전체'에는 무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그리고 그롸 마찬가지로 자연의 모든 부분 사이에서 일탈이나 분산되는 일 없이 감정의 일치가 실재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28 사악한 마음이여! 유약하고 제멋대로인 성격, 야수같고 유치한 자, 어리석고 우둔하며 허위로 가득 찬데다 교활한 성격, 비열한 자, 폭군의 마음이여!
사악한 마음이여!
이 별다를 것 없는 감정의 폭발에 대해서는 다만 추측을 해볼 수 있을 따름이다. 마르쿠스가 네로의 생애를 다시 읽었던 것일까?

29 우주 속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모르는 자를 우주의 이방인이라고 한다면, 그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자 역시 이방인이다. 그들은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추방한 자, 즉 유형 당한 죄수이다. 그들은 이해의 눈을 감은 장님이며, 남에게 의지하고 자신의 힘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거지이다.
운명을 거부하고 이성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자는 우주의 종양과 같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영혼을 이탈, 표류시키는 자 또한 공동 사회로부터 버려진 하나의 깨진 조각에 불과할 뿐이다.

30 어떤 철학자는 옷을 갖춰 입지 않았고, 또 어떤 철학자는 책을 갖지 않았다. 또 어떤 철학지는 반라의 몸으로 살며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는 빵은 없지만 이성이 있다."
나는 비록 만족할 결실을 얻지 못했지만, 학문을 사랑하며 이성에 의해 살아간다.

31 당신이 배우고 터득한 기술이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사랑하고 그것에 만족하라. 그리고 자신을 폭군이나 노예로 만들지 말고, 모든 것을 신에게 맡긴 채 남은 인생을 살아라.

32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us황제 시절을 생각해 보라. 당신의 눈에 무엇이 보이는가? 당시에도 사람들은 결혼하여 아이들을 키우고, 병들고, 싸우고, 향연을 누리고, 장사를 하고, 의심하고, 자랑하거, 음모를 꾸미고, 저주하고, 불평하고, 연애하고, 재물을 모으고, 집정관의 지위와 왕권을 탐했다. 그러나 지금 그 시대의 사람들과 생활 모습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트라야누스Trajanus황제 시대는 어떠한가? 이때에도 마찬가지이며, 그들의 삶 또한 모두 사라져 버렸다. 이런 식으로 과거와 그 시대 사람들의 기록을 살펴보라. 그들은 이미 원소로 분해되어 사라져 버리지 않았는가?
당신이 아는 모든 이들을 떠올려 보라. 그들은 운명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게을리하고, 타고난 본성을 미혹시키고, 모든 일에 만족할 줄 모르고, 하찮은 것들에만 정신을 쏟고 있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어떤 대상을 추구할 때에는 그 대상의 본래 가치와 조화를 이뤄야만, 비로소 가치 있는 추구가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스스로에게 실망하지 않으려면 특별히 중요하지 않은 일에 시간과 정신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us
로마 황제(69~79 재위)로 트라야누스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고 82세에 사망했으며, 반란 평정, 건축, 재정 정비 등 로마의 번영에 공헌하였다.

33 이전에는 귀에 익었던 말과 표현도, 요즘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옛날에 훌륭했던 사람들의 이름도 지금은 묵은 냄새를 풍긴다. 카밀루스Camillus, 케소Caeso, 볼레수스Volesus, 레오나투스Leonnatus, 스키피오Scipio, 카토Cato, 아우구스투스Augustus, 하드리아누스Hadrianus, 안토니누스 등의 이름이 바로 그것이다.
모든 것은 사라진 후, 단순한 이야깃거리로 남았다가 결국에는 망각 속에 묻혀 버리고 만다. 당시에는 엄청난 세력과 명성으로 이름을 날리던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들은 모두 숨을 거두자마자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고, 누구도 그들에 대해 입을 열지 않는다.
영원한 기억이란 없다. 모든 것이 허무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올바르게 생각하고, 공공의 이익과 사회 규범에 맞게 행동하며, 거짓 없이 이야기하고, 모든 일들을 하나의 근본 원리로부터 유출되는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카밀루스Camillus
로마의 장군으로 전설적인 영웅 로물루스를 잇는 로마 제2의 건국자로 일컬어졌다.
아우구스투스Augustus
로마의 초대 황제(B.C.30~A.D.14 재위)로 서민 출신. 어머니가 카이사르의 질녀로 아버지가 죽은 후 카이사르의 보호를 받았다. 안토니우스, 레피도우스와 삼두 정치를 시작하면서 반대파를 추방하였다. 집권적 관료 정치 확립, 학문ㆍ예술 장려, 토목ㆍ건축 실시 등 평화적 정책을 일관하였으며, 라틴문학의 황금시대를 탄생시켰다.
하드리아누스Hadrianus
로마 황제(117~138 재위)로 5현제賢帝의 한 사람이다. 여러 도시의 건설ㆍ육성, 공공시설에 힘썻으며, 아테네와 로마에 각종 신전을 건조하였다. 그가 직접 건립한 그의 묘지는 현존하는 로마 건축의 하나로 산탄제로 성에 있다.

34 운명의 직녀 클로토Clotho에게 당신을 내맡기고, 그녀로 하여금 마음대로 당신에게 할당된 운명의 실을 짜도록 내버려 두라.
클로토Clotho
운명의 세 여신 가운데 클로토는 인간의 삶의 실을 짜고, 라케시스Lachesis는 운명을 결정하여 나누어 주며, 아트로포스Atropos는 인간이 죽어야 할 때 그 실을 끊는다고 한다.

35 기억하는 자든 기억되는 자든, 모두가 하루살이에 불과하다.

36 세상의 온갖 만물은 변화에 의해 생겨나고 있음을 관찰하라. 우주의 본성은 모든 사물과 상황들을 변화시비고, 새로운 창조를 거듭하는 데에서 존재한다.
현재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어떤 의미에 있어 미래에 존재할 사물의 씨앗인 것이다. 씨앗을 단순하게 대지나 여성의 자궁에 뿌려지는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단순하고 어리석은 생각이다.

37 당신은 머지않아 곧 죽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신의 생각은 여전히 단순해지지 못하고 번뇌에 사로잡혀 있으며, 손해를 입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모든 이들에게 자비롭지 못했다. 또한 이성적이고 정당한 행위를 하는 것이 유일한 지혜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38 현명한 사람들의 행위를 이끄는 것은 무엇이며, 또한 그들이 피하는 것과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지 주의 깊게 관찰하라.

39 당신이 입었다고 생각하는 손해는 다른 사람의 마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며, 당신 자신의 육체적인 변화나 외적 환경의 변화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손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내는 당신의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손해'라고 하는 생각 자체를 버려라. 그러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육체가 약하든, 큰 상처를 입었든, 화상을 입었든, 종양으로 고통을 받든 간에 당신의 마음으로 그것들을 아스리고 치유하라.
그 손해라는 것이 악인이나 선인에게 동등하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면, 악이니 선이니 하고 속단할 수 없다. 자연을 거역하는 사람에게나 순응하는 사람에게나 동등하게 닥쳐오는 것이라면, 결코 자연의 목표를 방해하거나 그 목적을 증진시키지도 않기 때문이다.

40 우주를 하나의 실체와 하나의 영혼을 지닌 살아 있는 유기체로 생각하라. 그리고 어떻게 이 모든 사물이 하나의 지각知覺에 결부되어 있으며, 하나의 자극에 따라 움직이고, 각각의 사건의 인과관계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낼 수 있는지를 관찰하라. 직조물과 같은 세상의 복잡함, 즉 실타래의 얽히고 설킴애 주의하라.

41 에픽테토스는 말했다.
"당신은 육체라는 시신을 끌고 다니는 가엾은 영혼에 지나지 않는다."

42 변화하는 모든 산물이 선이 아닌 것처럼, 변화의 과정 속에 있는 모든 것등 역시 악은 아니다.

43 시간이란 발생하는 여러 사건들로 이루어진 끊임없는 강물과 같다. 하나의 사물이 나타나는가 하면 곧 과거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또 다른 사물이 그 뒤를 따라오는가 하면 그것도 곧 흘러가 버리고 만다.

44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봄에 장미꽃이 피고 여름에 과일이 열리는 것처럼 지극히 정상적이며 예측이 가능하다.
이것은 질병이나 죽음, 중상모략뿐 아니라 어리석은 인간들을 기쁘게 하고 괴롭히는 다른 모든 일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치이다.

45 사물의 연속에 있어, 뒤에 오는 것은 항상 선행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단지 필연적인 순서에 따른 진행이 아니라, 합리적인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미 존재하는 것은 모두 조화로운 관계에 있는 것이므로, 앞으로 존재하게 될 사건들도 단순한 연속이 아니라 연쇄적인 기적을 나타내는 것이다.

46 "흙이 죽으면 물이 되고, 물이 죽으면 공기가 되고, 공기가 죽으면 불이 되고, 불이 죽으면 다시 흙으로 순환한다"라고 한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을 기억하라.
그의 다른 말들도 늘 상기하면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자기가 가는 깅니 어디로 통하는지 안중에도 없는 여행자나 가장 가까운 친구와 늘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들은 매일 그렇게 살면서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잠든 사람처럼 행동하고 말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잠들었을 때 상상 속에서 행동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또한 "부모로부터 꾸중 듣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지 말라"라고 했다.
결론적으로 그의 말은, 전통적인 교훈을 맹목적으로 따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47 만일 신이 나타나, 당신에게 내일이나 모레 반드시 죽는다고 말한다 해도, 당신이 극히 천박한 인간이 아닌 이상 그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일이나 모레의 차이는 사실 아주 작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죽음이 내일 닥치든 몇 년 후에 닥치든 그것을 중요시할 필요는 없다.

48 한번 생각헤 보라.
많은 의사들이 병에 걸린 환자들을 눈살을 찌푸리며 굽어보았지만 그들은 결국 죽어 버렸으며, 많은 점성가들이 근엄한 어조로 남의 운명을 예언하였지만 그들 역시 죽어 버렸다.
죽음과 불멸에 대한 해답을 찾느라 전력을 다해 논쟁을 벌아던 철학자들도 모두 죽었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죽인 영웅과 장군들도 결국 무의미하게 죽어 버렸다.
마치 자신은 결코 죽지 않을 신이나 되는 것처럼 사람들을 살리고 죽이는 권력을 무자비하게 휘구르던 폭군들, 헬리케ㆍ폼페이ㆍ헤르쿨라네움처럼 완전히 파괴된 도시와 그 밖의 수많은 도시들의 멸망.
또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헤라려 보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매장한 다음 그 사람 역시 죽고, 또 다른 사람이 그를 매장한다. 이 모두가 고작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니, 결국 사람의 일이란 얼마나 덧없고 무상한 것인가? 어제만 해도 한 방울의 점액에 불과했던 것이, 내일이면 한 줌의 재로 화하는 경로를 관찰해 보라.
우리는 지상에서의 이 덧없는 순간을 자연에 순응하며 보낸 다음, 순순히 휴식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저 무화과 열매가 자기를 낳고 길러준 대자연에 감사하며 떨어지듯이.

49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와 부딪혀도 굳건하게 버티고 서 있는 저 바위 언덕을 닮아라. 끄떡없이 버티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그 거칠던 파도도 이내 잔잔해질 것이다. "이런 일이 닥쳤으니 나는 얼마나 불행한 놈인가?"라고 말하지 말라. 오히려 "이런 일이 일어났지만 나는 행복하다. 나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고, 현재의 시련에 흔등이지 않고, 미래의 공포에도 압도당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라.
누구에게나 뜻밖의 일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침착하게 그 상황을 이겨내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번뇌에 시달릴 때마다 반드시 기억해 두고 적용해야 할 원리가 있다. 즉, "이것은 결코 불행이 아니다. 이것을 잘 참고 견뎌냉다면 오히;려 행운이 될 수도 있다"라는 것이다.

50 남달리 삶에 강하게 집착하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라. 도대체 그들이 일찍 죽은 사람보다 나은 점이 무엇인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언제 어디서든 흙 속에 묻히고 마는 것이다. 카디시아누스, 파비우스, 레피두스, 율리아누스 그 밖의 모든 인간들은 다른 사람들을 묻어주고, 자신들 역시 타인에 의해 땅 속에 묻혔다. 결국 그들이 누린 삶은 극히 짧은 것이었다.
살아가는 데 있어 얼마나 많은 난관에 부딪치고, 얼마나 많은 관계를 맺고, 또 알마나 보잘 것 없는 육체로 천신만고 끝에 이 과정을 통과해 가는지를 생각해 보라.
생의 기간에 가치를 두지 말라. 오직 그 뒤에 놓인 무한의 시간과 앞으로 올 영원만을 직시하라. 진리가 이러할진대, 어린애가 영원 속에서 사흘밖에 살지 못하는 것과 3대에 걸쳐 산다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51 언제나 지름길을 택해 나아가라. 그 짧은 길이란 바로 자연이며, 자연이 가르쳐 주는 길이다. 그리고 모든 행동과 말에 있어 당신을 지배하는 이성에 순응하라.
그것이 번뇌와 투쟁, 거짓된 행동이나 허세로부터 당신을 자유롭게 해 줄 것이다.






제5장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1 아침에 눈을 떴는데도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다면 이런 생각을 해보라.
'나는 지금 사람다운 일을 하기 위해 일어나야만 한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어떤 임무를 수행하기로 되어 있고, 그것 때문에 내가 존재하는데 불평을 해서야 되겠는가? 이렇게 누워 있으려고 태어난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래도 잠자리에 누워 있는 것이 더 좋다면 당신이 태어난 것은 쾌락을 위해서였단 말인가?
미천한 식물이나 새, 개미, 거미와 꿀벌들을 보라. 그들은 이 우주 속에서 각자 차지한 부분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정신없이 바쁘다. 반면 당신은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물론 휴식을 취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는 것에도 한계가 있듯이, 휴식에도 자연이 규정한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당신은 그 한계를 벗어나 늦잠을 잤고, 이제 그 이상의 것을 취하려고 한다. 그만큼 당신의 수행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또한 당신은 당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만약 사랑한다면 당신의 본성과 그 의지를 사랑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기술을 사랑하는 기술자들은, 먹는 것과 씻는 것까지 잊어가면서 자신의 소임을 완수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당신은 선반공이 선반을, 무용수가 무용을, 또는 수전노가 은화를, 명예욕에 혈안이 된 자가 헛된 명성을 좋아하는 것만큼도 자신의 본성을 존중하지 않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한 대상에 격렬한 애정을 느끼게 되면 그것에 몰두하느라 먹고 마시는 일을 잊기 마련이다.
당신의 눈엔 사회에 대한 봉사에 전력을 다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가?

2 귀찮고 못마땅한 망념妄念들을 말끔히 털어 버리고 난 뒤에 찾아오는 마음의 평화는, 인생에 있어서 귀한 위안임에 틀림없다.

3 자연의 본성에 일치하는 언행을 할 수 있는 당신의 권리를 소중히 여겨라. 남들로부터의 비난이나 험담 때문에 주저하거나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행하고 말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당신의 권리를 포기하지 말라.
당신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비판하는 사람에게는 그 나름의 이유와, 그런 비판을 하도록 자극한 충동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것에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오직 당신 자신의 본성과 만인의 골통된 본성에 순응하고 적응해 나가도록 노력하라.

4 나는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자연의 본성에 순응하며 나아가겠다.
그리하녀 내가 매일 들이쉬던 호흡은 그 원천인 대기 속에 반환할 것이며, 내 신체 역시 대지에 묻히리라. 그 대지로부터 나의 아버지는 씨앗을 얻었고, 나의 어머니는 피를 취했고, 내 유모는 젖을 취했다. 대지는 내게 오랜 세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먹을 것을 공급해 주었고, 내가 그 위를 밟고 다니며 목적을 위해 무자비하게 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허용하고 품어 주었다.

5 당신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뛰어난 재주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은 우무 상관 없으니 개의치 말라. 당신은 "그런 것에는 소질이 없습니다"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당신에게는 미처 깨닫지 못한 숨겨진 자질이 있을 것이다. 이 자질을 계발하라.
이러한 자질은 성실성, 존엄, 근면성, 절제할 줄 아는 성품 속에 있다. 당신은 이 순간 불평하지 않고 검소하고 사려깊고 솔직하며, 행동과 말을 온화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자질을 가질 수 있게 하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그런 장점을 발휘할 능력이 없다느니, 소질이 없다느니 하는 말은 결코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당신은 스스로 저급한 차원에 머물러 있으려고 한다. 다투고, 탐하고, 인색하고, 아첨하고, 불평하고, 비굴하고, 교만하고, 걷잡을 수 없이 방황하며 불안해 하는 것이, 정말 당신의 타고난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아니, 어쩌면 당신은 벌써 오래전에 이런 것들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단지 이해가 늦고 행동이 둔했을 따름이다. 하지만 아러한 결점도, 당신이 혼신의 힘을 다해 고치고자 노력한다면 곧 사라질 것이다.

6 어떤 사람은 남에게 봉사를 해 주고 나서, 마치 커다란 은혜라도 베푼 것처럼 자기 장부에 기록을 해 둔다. 또 어떤 사람은 기록은 하지 않더라도, 마음 속으로 그 상대방을 채무자로 간주하고 자기가 베푼 일을 항상 기억해 두고 있다.
그러나 이들과 달리 자기가 베푼 것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사람도 있다. 마치 포도송이를 맺게 한 포도나무처럼 생산을 하고서도 아무것도 바라거나 구하지 않는 것이다. 전력을 다해 달리고 난 뒤의 말이, 사냥감을 물고 돌아온 사냥개가, 꿀을 만드는 벌꿀이 감사를 기대하지 않듯이, 선행을 베푼 사람은 절대 그것을 과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포도나무가 다음 해의 포도를 맺기 위해 준비를 하듯이 곧장 다음의 선행으로 옮겨간다.
당신은 아마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그럼 인간도 포도나무나 벌처럼 무의식적으로 일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물론 인간에게 자기 행동에 대한 인식 그 자체는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자신의 행동이 사회적인 것이라는 인식은, 스스로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표시인 동시에 특성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또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드런 행위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소망을 갖는 것도 사회적 동물의 표시 아닙니까?"
분명 맞는 말이다.
그러나 당신은 이 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당신은 스스로를 앞서 열거한 인간들과 같은 부류로 타락시키고, 고식적인 논리로 잘못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내 말의 진정한 뜻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당신이 어떤 사회적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를 하지는 않을까 라는 두려움은 갖지 않게 될 것이다.

7 "오, 제우스 신이시여! 산과 평야에 비를 내려 주소서!"
이것은 아테네인들의 기도이다. 기도란 처음부터 하지 말든지, 하려거든 이렇듯 단순하고 소박해야 한다.

8 전설에 의하면 애스쿨라피우스Aesculapius는 어떤 사람에게는 승마를, 어떤 사람에게는 냉수욕을, 또 어떤 사람에게는 맨발로 다니라는 처방을 내렸다고 한다.
우주의 본성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질병과 불구, 또 어떤 사람에게는 상실감을, 혹은 또 다른 무능력을 처방했다.
전자의 경우 처방은, 환자의 건강 회복을 위한 특별한 치료법을 지시한 것이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 모든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개별적인 일들이 각각의 운명에 따라 미리 준비된 것이다. 이는 마치 석공이 벽이나 피라미드를 쌓을 때 네모난 돌들이 착착 들어맞는 것처럼 우리의 운명과 '합치되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세계는 전체적으로 하나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수많은 개체들이 모여 하나의 현존하는 완성체를 이루듯이 수많은 원인들이 결합되어 하나의 우주적 원인이 된다. 그것이 바로 운명이다. 누군가가 "마침내 올 것이 왔다" 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자신의 운명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즉, 그것은 그에게 처방된 것이었고, 따라서 우리는 애스쿨라피우스의 처방을 받아들이듯, 각자에게 예고된 이런 현상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비록 그 처방들 중에는 못마땅한 것도 있겠지만, 건강을 위해서라는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자연의 명령을 수행하고 완성할 때에는 자신의 건강을 돌보듯이 임해야 한다. 또한 일어나는 일이 불쾌하고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항상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주의 건강에 이로우며, 우주 자체를 행복과 선행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이 전 우주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자연은 어느 누구에게 그 어떤 운명도 주지 않을 것이다. 자연은 자신이 지배하는 거에 무언가를 부여할 때에는 반드시 그 대상에 이롭도록 고안한다.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 만족해야 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그것은 당신을 위해 발생했고, 또 당신을 위해 처방되었으며, 당신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이란 운명이 우주를 지배하는 섭리의 증진과 완성, 생존을 위해 당신 몫으로 툭별히 마련해 두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발생하는 모든 일은 우주를 지배하는 힘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지속적인 연관 과정에서 어느 한 개의 분자를 떼어 버리는 것은 전체에 손상을 입히는 행위이다. 따라서 당신이 불만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당신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우주와의 단절과 파괴를 범하는 것이 된다.
애스쿨라피우스Aesculapiu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의술의 신으로, 마르쿠스는 여기서 그를 의학적인 컨설턴트로 언급했다. 최초로 언급한 사람은 호머로서 그를 단순히 '훌륭한 외과의사' 라고 표현했다.

9 올바른 원리원칙에 따라 일을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다면, 그것을 괴로워하거나 불평하지 말라. 그럴 때에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되, 당신의 행위가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라.
그리고 언제든 의존할 수 있는 철학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간직하라. 이때에는 스승을 찾아가 섬기듯 하지 말고, 눈병이 난 사람이 해면이나 달걀을 사용하듯, 또는 환자가 고약을 붙이고 찜질을 하듯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당신은 이성에 순응하는 것에 실패하지 않고, 그 안에서 안정과 신뢰를 얻게 될 것이다.
또한 철학은 오직 본성이 요구하는 것만을 희구한다고 해도, 정작 당신은 자연의 본성을 거스르는 그 무엇을 찾고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라.
그러면 다음과 같은 회의가 생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것이 바로, 쾌락이 당신을 기만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영혼의 고매함이 더 유쾌하다고 생각하라.
관용과 자유와, 소박함과, 마음의 평정과, 겸허가 보다 유쾌하지 않겠는가? 이해와 지식으 ㅣ기능에 기초한 모든 사물의 안정과 행복한 진행 과정을 생각할 때, 도대체 지혜 그 자체보다 더 적절하고 유쾌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10 우주 만물의 진리는 모호함 속에 숨어 있기 때문에, 학식이 뛰어난 철학자들조차도 극히 불가해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심지어 스토아학파들도 정의를 내리지 못했다. 또한 그것은 여러 난관에 둘러싸여 있고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우리의 지적인 결론도 늘 오류를 범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류를 범하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방향을 바꾸어, 보다 물질적인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 물질적인 것들이란 얼마나 덧없고 무가치한 것인가? 그런 것들은 불결한 탕자나 도둑이나 창녀들조차도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당신과 함께 생활하고 교제하는 사람들의 덕성을 살펴보라. 자신의 자아도 참고 견뎌 내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그러니 이 암흑과 진흙탕 속에서, 물질과 시간의 끊임없는 유전流轉 속에서, 빠르고 다양한 변화 속에서 과연 가치있고 존중할 만한 것, 진지하게 추구할 탐구의 대상이 무엇인지는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란, 용기를 갖고 다가오는 죽음을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며, 다음의 두 가지 원리를 생각하면서 위안을 찾는 것이다.
첫째,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필영적으로 우주의 본성과 일치하는 것이다. 둘째, 나의 내부에는, 신과 내 자신의 영혼에 어긋나는 일은 결코 하지 않는 능력이 있다. 왜냐하면 나로 하여금 그런 일을 강제로 시킬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11 "나는 지금 내 영혼을 어디에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모든 행위에 앞서 이같은 의문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이렇게도 자문해 보아야 한다.
"이른바 나를 지배하는 부분으로 일컬어지는 내 이성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이 순간 내 안레 누구의 영혼이 머무르고 있는가? 어린아이의 영혼인다? 젊은 청년의 영혼인가? 여인의 영혼인가? 폭군의 영혼인가? 야수의 영혼인가?"
수시로 자문해 보라.

12 '선'이라는 일반적인 개념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인식할 수 있다.
사람들이 선입관에 얽매여 신중함과 절제, 정의와 강직함 같은 것을 지닌 사람을 선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면, 그처럼 많은 선에 대한 비웃음에 귀기울이지 못할 것이다.
반면, '선'을 구성하는 것에 대해 일반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빈정거리는 말도 기꺼이 감사하며 그 재능을 발견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13 '나'는 형식적인 요소와 물질적 요소로 구성된 존재이다.
그리고 이 구성 분자는 모두 무無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므로 무로 소멸할 수 없다.
결론작으로 나의 각 부분은 변화를 통해 우주로 환원될 것이며, 그것이 또다시 변화르 거쳐 우주의 다른 부분이 되고, 그런 식으로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그와 같은 변화에 의해 나 역시 존재하게 되었고, 나를 태어나게 한 어머니도, 그리고 그 위로 거슬러 올라간 세대도 마찬가지이다.

14 이성과 철학은 그 스스로 충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것들은 그 자체에 존재하는 원천으로부터 최초의 원동력을 얻는다. 그리고 스스로 정한 목표를 향해 곧바로 나아간다. 따라서 이같은 행동은 '올바른 행동'이라 불려지며, 그것은 가야 할 길에서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진행함을 의미한다.

15 인간에게 속하지 않은 것이라면, 그것이 어떤 속성이든 인간의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것들은 인간에게 필요하지도 않은데, 이는 인간의 본성이 그같은 것을 약속하지도 않았으며 그로 인해 완성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들은 인간의 본성이 자기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로 하는 수단도 되지 못한다. 따라서 인간의 목적은 그런 것들 속에 존재하지 않으며, 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인 선도 나타내지 않는다.
만일 인간이 그러한 속성을 지니고 태어났다면, 이를 경멸하고 반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 없이 지낼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하여 칭찬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한 그것들을 참된 선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진가를 인정하지 않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런 것들을 제거하거나, 제거하려고 노력한 사람일수록 더욱 선량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다.

16 당신이 생각하는 사념思念 여하에 따라, 당신의 정신적 성향性向이 결정된다. 왜냐하면 정신과 영혼은 사상과 사고에 의해 물들여지기 때문이다.
당신의 정신과 영혼을 다음과 같은 생각들로 채색해 보라. 예컨대, 인간은 어디서든 선량하게 살 수 있다. 따라서 궁전에서도 선량한 생활을 할 수가 있다.
또한 모든 사물은 창조 이면에 존재하는 목적이 결정하는 방향에 따라 발전한다. 그리고 그것이 나아가는 방향에 도달점이 있고, 그 목적이 있는 곳에 각 사물의 이익과 복지가 있다. 이성을 지닌 인간에게 있어 복지는 버로 사회이다.
인간이 사회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러한 이성이 있는 인간이 이상으로 삼아야 할 선은 바로 이웃과의 평화이다. 또한 생명을 지니 것은 생명을 지니지 않은 것보다 우월하며, 생명을 지닌 것 중에서 가장 우월한 것은 이성을 지닌 존재이다.

17 불가능한 것을 얻고자 하는 행위는 미친 짓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각럾는 자들은 그런 짓을 되풀이한다.

18 우리에게 본성의 힘으로 견뎌 내지 못할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혹은 비상한 용기와 정신력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에 위축되지 않기 위해 그저 버틸 뿐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무지나 허세가 지혜보다 더 강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19 외부에 있는 사물 그 자체는 영혼과 조금도 접촉할 수 없다. 또한 영혼은 다른 방향으로 돌리거나 옮길 수도 없다. 그러나 영혼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 자신을 전환시키고 움직일 수 있으며, 적절한 사고와 판단으로 사물을 분별하고 적용한다.

20 인간들에게 선을 베풀어야 하고, 그들의 결점이나 과오를 참아내야 한다고 생각할 때, 인간은 내게 가장 가깝게 인식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내 본연의 행위를 가로막거나 방해하면, 인간은 내게 있어 태양이나 바람, 야수처럼 선택의 여지도 없이 전혀 무관한 존재가 된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내 활동을 방해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때그때 환경과 조건에 따라 작용하고 변화하는 능력을 지닌 내 감성이나 이성에는 장애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의 의지와 기질은 늘 자제되어 스스로를 보호하고 그 환경에 적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 행동을 방해하는 것은 오히려 촉진제가 되며, 내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내 본성에 따라 전진하는 데 도움이 된다.

21 우주에서 가장 고귀한 것을 존중하고 섬겨라. 그것이 만물을 돌보고 지배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당신 자신에게 있어 최고의 것, 가장 고귀한 부분을 존중하라. 그것 역시 우주의 이치와 일치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돌보고 지배하며, 당신의 삶 또한 그것에 의해 통제되기 때문이다.

22 사회에 해가 되지 않는 것은 그 구성원인 국민에게도 피해를 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무언가 피해를 입었다고 느껴진다면, '만일 이 사회가 피해를 입지 않았다면 나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원칙을 상기하라.
그러나 만일 사회가 실제로 피해를 입었다고 해도, 결코 그 해를 입힌 자에 대해 분노하지 말고, 잘못된 점을 찾아 지적해 주어라.

23 지금 눈앞에 존재하는 사물이나 새로 생겨나는 사물이 얼마나 빨리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는지를 상기하라.
실체란 쉼 없이 흐르는 강물과 같으며, 사물의 활동은 끊임없는 변화이다. 그 활동은 영원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고, 그것의 원인 또한 영원한 변화를 거듭하는 것이다. 결국 이 세상에 정지해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영원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과거와 미래라는 이 무한의 심연深淵을 생각하라.
따라서 주위의 것들이 마치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거나, 고통이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고뇌하고 실의에 빠져있는 자는 참으로 어리석다.
그런 것들이 당신을 괴롭히는 것은 오직 한순간이며,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24 우주의 총체적인 모습을 그려 보라. 당신은 그 속에서 극히 일부분만을 차지하고 있다. 우주의 무한한 시간 중 더이상 쪼갤 수 없을 정도의 극히 짧은 순간만이 당신에게 할당된 양이다.
또한 운명에 의해 결정된 것들을 생각해 보라. 그중에서 당신이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인가!

25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과는 무관한 것이며, 오히려 그 사람이 고려해야 할 문제이다. 그의 기분과 그의 행동은 어디까지나 그에게 속한 문제이다.
당신은 지금 우주의 섭리가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을 받아들일 뿐이며, 본성이 원하는 행동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

26 쾌락이든 고통이든 육체의 감성이 영혼을 교란시키도록 방지하지 말라.
영혼을 육체의 감성과 결부시키지 말고 감성의 적당한 영역 내에서 국한시켜라.
그러나 만일 그러한 감성이 마음 속에 생겨난다면, 굳이 그 육체적인 감각을 뿌리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단지 이러한 감각들을 선이나 악으로 판단하는 일만은 삼가야 한다.

27 신들과 더불어 살아가라.
신들과 같이 산다는것은, 그들이 당신에게 부여한 것에 만족하고, 순순히 받아들이고, 이행하고 있음을 끊입없이 신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28 겨드랑이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거나 입에서 악취가 나는 사람에게 화가 나는가? 하지만 그러한 분노가 당신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의 겨드랑이가 그렇고 그의 입이 그러한 것을, 만약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면, 악취 역시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어찌 됐든 그에게도 이성이 주어졌고, 그가 조금이라도 이런 사실을고려해 본다면 무엇이 다른 사람을 역겹게 하는지 충분히 알 것이라고 생각하라. 그것이 옳은 생각이다.
또한 당신도 이성을 부여받은 사람이다. 당신의 이성으로 그 사람을 설득하여, 그로 하여금 당신과 같은 이성을 갖도록 설명하고 훈계하라.
만약 그가 당신의 말에 귀기울인다면, 당신은 그를 바로잡는 셈이니 준노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29 저승에 가서 이러저러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승에서도 그 삶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사람들이 그대로 하여금 그같은 삶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그 즉시 이 세상을 떠나라. 단, 어떤 박해를 받았다는 생각은 하지 말라. 그저 '방에 연기가 자욱하여 밖으로 나가는 것' 쯤으로 여겨라. 수선을 떨 필요는 없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런 식으로 나를 내쫓지 않는 한, 나는 자유로이 이 집 안에 머물러 있겠다. 주인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나의 선택을 방해하지는 못한다. 나는 이성적이고 사회적인 동물의 본성에 맞는 삶을 선택하고 행동할 것이다.

30 우주의 이성은 사회적인 것이다. 따라서 우주는 보다 우월한 것을 위해 열등한 것을 만들었으며, 또 우월한 것끼리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해 놓았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우주의 이성은 각각의 사물에 저마다의 가치를 부여했으며, 질서를 세우고, 격식을 주고, 적당한 위치를 지정해 놓았다.

31 당신은 지금까지 신들에 대해, 부모, 형제, 자녀, 스승, 친구, 친척, 하인들에게 어떻게 처신해 왔는가? "말이나 행동에 있어 어느 누구에게도 누를 끼친 바가 없다" 라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행동해 왔는가?
또 당신은 오늘날까지 얼마나 많은 것들을 경험했으며, 얼마나 많은 것들을 참아냈는지 생각해 보라. 당신의 한 생애가 끝나고 타인에 대한 봉사도 막을 내린 지금, 그동안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봐 았으며, 얼마나 많은 고통과 쾌락을 경멸해 왔는지, 또 멸시의 눈으로 바라본 수많은 영광, 그리고 못되고 경박한 인간들에게 보여 준 그 많은 친절과 배려를 돌이켜 보라.

32 미숙하고 무지한 사람들이, 어떻게 유능하고 현명한 사람들을 당황하게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진실로 유능하고 현명한 영혼의 소유자란 누구를 의미하는가? 그것은 우주의 시작과 끝을 알고, 모든 실체에 널리 퍼져 있으며, 일정한 주기에 따라 영원히 우주를 다스리는 이성을 아는 영혼, 오직 신뿐이다.

33 머지않아 당신의 육체는 앙상한 뼈만 남아 끝내는 한 줌의 재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남는 것이라곤 이름뿐, 아니 그 이름조차도 금세 사라질 것이다.
인간들이 인생에서 소중히 여기는 것들은 모두 공허하고 헛된 것이다. 인간들은 서로를 물어뜯는 강아지나, 싸웠다가는 금방 웃고 또 금방 울음을 터뜨리는 어린애와 다를 바 없다.
믿음과 겸양과 정의와 진리는 '험악한 대지를 떠나 멀리 몰림포스산으로 올라' 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럼에도 당신을 아직까지 이 지상에 붙잡아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감각의 대상이란 수시로 변하고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으며, 쉽게 오도되고 둔해지는 것이다. 가엾은 영혼 그 자체도 피로부터 증발된 증기에 불과한 것인데, 이같은 상황 속에서 명성과 찬양은 공허할 따름이다.
종말이 소멸이거나 혹은 다른 상태로의 이동이라 해도 상관없다. 당신은 그저 평온한 마음으로 기다리면 된다.그렇다면 그 종말이 닥쳐올 때까지 필요한 것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신을 경배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며, 인내와 자제력을 키우고 정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허약한 육체와 호흡의 한계를 넘어선 무엇이든 당신의 것이 아니며, 또한 당신의 능력에 속하는 것도 아님을 기억하라.
'험악한 대지를 떠나 멀리 올림포스산으로 올라'
B.C. 8세기경 고대 그리스 서사시인 헤시오도스Hesiodos의 시구.

34 만일 당신이 올바른 길로 나아가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당신의 여생은 평온하게 흘러갈 것이다.
인간과 신의 영혼, 모든 이성적 존재의 영혼에는 두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외적인 요소로부터 절대 방해를 받지 않는다는 것.
둘째는 정의와 선의 자질과 그 실천에 전력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만이 당신의 욕망을 자제시킬 수 있다.

35 만일 이것이 내 잘못이 아니고, 내 잘못의 결과도 아니며, 또한 사회 질서에 해악을 끼치는 것도 아니라면, 그 일에 신경을 쓸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또 그것이 사회에 어떤 해악을 끼칠 수 있겠는가?

36 당신의 능력이 허락하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 주어라.
그러나 만일 무분별하게 이끌린 것이 도덕적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다면, 그들이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것은 옳은 생각이 아니다. 그럴 때에는 옛 노인처럼 행동하라. 그 노인은 세상을 떠날 때 노예 소녀의 팽이가 필요 없음에도 그것을 소중한 보물로 인정하고 굳이 달라고 청했다.
나는 한때 행운을 잡았던 사람이었으나, 그것을 잃러버리고 말았다. 그것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행복하다. '행복하다'는 감정은 나 자신에게 스스로 부여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까지 행운의 총아였다. 행운이란 영혼의 선한 기질이며, 선량한 감정, 선량한 행위인 것이다.
노인과 소녀와 팽이
노인은 소녀에게 있어 그 팽이는 아주 소중하고 귀중한 보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르쿠스는 다른 사람의 어려운 처지를 보면 동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해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