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다 미츠오 -난치병자연치유단식요법

Posted by 히키신
2017. 3. 20. 19:12 etc

고다 미츠오, <난치병자연치유단식요법>, 강호걸 옮김, 태웅출판사, 1992

​무슨 일이 있어도 건강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다면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치러야 합니다

-현대인을 위한 소식 건강법에서-

- '소식에 병 없다'는 것도 그것이 죽을 때까지의 습관이 되어 버려야만 그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일시적인 전략으로서는 지속성이 없고, 다시 본래의 대식이나 포식으로 돌아가버리는 것이 일반적인 예입니다. 중요한 것은 '소식의 습관'을 들이는 일입니다. 소식의 실행도 이런 경지에까지 가지 않고는 안심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그 사람의 몸에 베인 습관에 의한 것이 크기 때문입니다. '습관이 운명을 바꾼다'는 말은 새겨둘 말입니다.

- ...그러므로 우선 그 사람의 기근의 정도에 알맞는 가르침을 설하여 현재의 단계에서 한 단계 높은 곳으로 인도하는 겁니다. 그것을 이해하면 다음은 또 한 단계 높이고, 이렇게 한 단계씩 올라가서 결국은 최고의 경지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기까지는 갖가지 방편이 필요하며, 그 어느 것 하나 가벼이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로지 하나의 방편을 고집하여 원래의 목표를 잃고, 그 방편이 전부인 듯이 생각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래서는 본말전도라고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건강법에 있어서도, 진정한 건강법을 처음부터 가르치면 너무 힘들어서 엄두도 못 내는 사람이 생길 것입니다. 그래서 갖가지 방편을 이용해서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기 쉽도록 연구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건강에 이르는 문은 참으로 좁다는 것을 알아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성경에도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또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지만,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드는 사람이 적다.
(마태복음 7장 13.14절)

이 예수님의 가르침은 200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그 빛늘 잃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현대에 와서 그 진실성의 빛이 더욱 크고 밝아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현재와 같은 정보 범람의 시대에는 넓은 문이 너무나 많으며 또한 대중을 현혹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에서나 건강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건강법 중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건강법이라면 역시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길만이 있습니다.

- 미식(美食), 포식하는 자는 죽음을 재촉한다

- 기원이 소식의 실행을 가능하게 한다

- 자기암시로써 용기를 북돋우자

....
이 공복으로 건강하게 된다
이 공복으로 장수하게 된다
이 공복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몸이 된다
이 공복으로 머리가 좋아진다
이 공복으로 아름다워진다
이 공복으로 운명이 열린다
....
이런 자기암시는 단지 미식의 유혹에 닥쳤을 때만이 아니고, 식사의 전후, 취침시, 또는 냉온욕시 찬물에 들어가 있을 때, 배복운동을 하고 있을 때 등등 수시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잠재의식 속에 소식 실행의 의욕을 투입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자기암시의 반복은 마침내 소식의 실행을 스스로 하고 싶어지게 만들 것입니다. 무슨 일이거나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무감으로 하고 있을 동안은 몸에 베인 것이 아닙니다. '꼭 하고 싶다'는 굳센 의지야말로 자신을 그 길로 달려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마침내 그 소망을 성취하게 됩니다. 소식의 실행도, 진정으로 그것을 원하고 끊임없이 그 생각을 하고 있지 않으면 정말로 자기의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전탁의 생활(全託의 生活)
자력으로 아무리 애써도 악습을 굴복시키지 못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은 이제 타력문(他力門)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길이 없겠지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신불(神佛)에 전탁하는 생활을 권하기로 했습니다.
힘든 소식의 벽을 자력으로 뛰어넘는 사람은 사실 놀랄 정도로 그 수가 적습니다.
지금까지 상당히 많은 분들이 이 소식의 실행을 하셨습니다만, 그 대부분이 오래 가지 못하고 도중에 좌절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분이라면 틀림없이 해낼 거야'하고 생각했던 사람도 역시 '안 되는군'하는 실망을 안겨 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의지가 약한 우리들 범부는, 아무래도 신이나 부처님의 커다란 힘을 빌어서 구원을 받을 수밖에 길이 없다고 통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신이나 부처님에 데한 믿음을 갖고 계신 분들은 그 신불께 식생활의 모든 것을 의탁하는 방법을 쓰면 좋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영양학의 공부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다 배운 뒤에, 대체 자기에게는 어떤 식품이 알맞으며 또한 그것을 알마나 먹으면 좋은가를, 자신의 식사를 마련해 주는 분에게 자세히 일러두고 그 밖의 모든 것을 일임해 버리면 됩니다.
그리고 눈 앞에 차려진 식단의 내용에 대해서 영양학적으로 하나하나 귀찮게 따지지 말고, '아, 이것이 오늘 하루 내 생명을 잇게 해줄 음식이구나'하고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수저를 들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곧 전탁의 생활입니다.
매일 식단 내용을 자세히 따지면 당연히 여러 가지 불미한 점이 발견될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자질구레한 점까지 신경을 쓰고 있으면 오히려 음식물에 구애되어 마음을 비울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되어서는 계속되는 정신의 긴장으로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좌절하게 되고 맙니다. 그렇다고 주는 것은 뭐든지 고맙게 생각하고 먹으라고 말​씀드리고 있는 것은 이닙니다.
흔히 종교가들이 '어떤 음식물이든 주는 것은 고맙게 먹어야 한다.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먹는다면 결코 독이 되지 않는다'라고 설교하는 것을 간혹 듣게 되지만 여기에는 동조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감사하면서 먹어도, 꿀만두를 과식하면 혈액은 아치도지스에 빠지고 혈중의 칼슘은 줄어듭니다. 이런 영양학을 무시한 정신 일변도의 건강법 역시 한쪽으로만 치우친 것이며, 심신 상관의 법칙에서 벗어나서는 결코 건강해질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영양학의 공부를 먼저 충분히 한 다음에 그 지식을 일상의 식생활에 활용하는 것이 전탁의 생활로 들어가는 전제조건입니다.
그러나 범부란, 영양학을 공부하게 되면 그 영양학의 지식에 휘둘리는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섭생을 착실히 실행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식탁에 오른 식단에 대해서도 일일이 따지는 버릇을 가진 분이 계십니다.
'오늘 점심에는 해조류와 작은 생선이 없었으니 칼슘이 조금 모자랄 것 같군.', '오늘은 종일 생채소를 조금도 먹지 않았다. 이런 식단으로는 건강해질 수가 없어' 등등, 언제나 머릿속으로 계산하며 수저를 드는 겁니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식단을 생각하니 과연 건강하게 되었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 이유는 식단은 영양 만점이라도 식사에 대한 집착이 강하기 때문에, 탐욕으로 과식을 하거나 또는 야식이나 간식에 단 것을 먹기나 하여, 그날 하루의 정진을 헛수고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섭생의 모든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마 매일밤 후회하면서 잠자리에 들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을 섭생지옥이라고 합니다만, 이런 식으로는 건강법을 실행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 속에 자유는 조금도 없으니 그것은 언제나 식사에 관한 일에 구애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양으로 단식을 하거나 소식건강법을 실행하는 사람들이, 매일밤 스스로 부끄러워 눈물 흘리고 후회로 땅을 치면서 잠자리에 들 바에야 무엇을 위한 건강법이라 하겠습니까. 그래서 이 구에되는 마음에서해방되기 위해서 전탁의 생활로 들어가도록 권하는 것입니다만, 요는 먹고 싶다고 생각되는 것이 머리에 문득 떠오르면 즉시 염불을 외우거나, 나무 묘법 연화경이라는 일곱 글자를 외워서 그 생각을 신불께 맡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시각각으로 자기의 뇌리에 떠오르는 상념을 신불께 맡기고 새로운 지혜를 신불로부터 얻는 겁니다. 이와 같이 그 신불의 힘에 의해서 자신이 정화되는 생활을 하고 있으면 마음은 언제나 구애되는 일 없이 자유로운 것입니다.
'오늘부터 단것을 먹지 말자'라든가 '내일부터 야식을 먹지 않는다'라는 등의 맹세를 하고 불편해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아무리 굳은 결의로 맹세를 해봐야, 한 달이 채 안 되어 허무하게 무너져버리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입니다. 더구나 그 동안 맹세에 묶여 있는 마음은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런 고생을 하고 있는 것보다야 하루빨리 전탁의 생활로 들어가는 편이 좋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러면 정신적인 스트레스에서도 해방되어, 그날부터 구원 받은 자유로운 마음이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힘든 소식의 실행도 이로 말미암아 오래 계속되고 평생의 습관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성공의 비결이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