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의 변천

Posted by 히키신
2016. 5. 23. 12:54 영원의 지헤, 그리고 철학



# 과학철학이란?

과학은 논리성·실증성·객관성 등을 바탕으로 인간이 알 수 있는 문제, 즉 경험할 수 있는 문제를 다룸으로써 문제의 소재와 해결을 분명히 하는 역할을 해왔다. 과학의 세계는 어디까지나 ‘경험의 세계’에 머무르기 때문에 사실적이며 실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철학은 체계적이면서 인간의 이성을 따지는 지식이라는 점에서는 과학과 유사하지만, 과학과 철학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보다도 과학은 경험적으로 알 수 있는 세계에 대한 지식인데 반하여 철학은 이러한 세계를 인식하는 인간의 사유에 대한 지식이라는 점에 있다. 이러한 철학이 수학이나 물리학과 같이 객관성을 존중하게 된 그 자체를 과학과 같은 확고한 지반이 형성되었다고 해서 과학적 철학(scientific philosophy)이라고 일컫는다.

과학철학(philosophy of science)은 연구입장에 따른 철학의 어느 단면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지식을 밝혀내려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따라서 인식론적 논의가 주축을 이루며 확률이론이나 귀납논리의 정립 같은 것을 다룬다. 그 대상은 어디까지나 과학이기 때문에 과학철학자의 임무는 개념적·방법론적 쟁점을 분석하고 다양한 각자의 지식과 경험이 어떻게 맞아 들어가는 가를 밝혀내는 데 있다.

이러한 과학철학에 대한 이해는 자연과학 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에서도 과학적 지식을 탐구하는 방안으로 매우 유용하다. 그러나 국내에서 사회과학 분야에서 과학철학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 실정이며, 과학철학 연구의 일부 이론에 대해서만 언급하거나, 연구방법론의 기초로서 과학철학을 다루고 있다.


# 과학철학의 특성

첫째, 과학철학은 응용논리학이기 때문에 그 방법은 논리적 방법이 된다. 다시 말해서 과학철학은 자연과학이나 정신과학 같은 사실과학의 응용이 아니라 논리학의 응용인 동시에 경험과학의 철학적 기반을 논한다. 과학철학이 이처럼 논리학적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과학철학의 이해는 논리학에 대한 인식을 전제로 삼는다.

둘째, 과학철학은 메타수학적 방법과 과학논리를 수정하여 심화한 것으로 그 연원은 칸트의 선험론이라고 할 수 있다. 선험적 관념론은 선험적 관념론은 판단의 체계를 수립하고 있기 때문에 그 성격은 메타 이론적 탐구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셋째, 과학철학의 과제는 과학성이다. 과학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① 간주관적 이해성, ② 간주관적 검증성, ③ 합리적 추론 등이 가능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과학적 주장은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주관과 주관사이의 이해가 가능한 것이어야 하고, 주장의 검증도 다른 사람에 의해 가능한 것이어야 하며, 동시에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 합리적인 추론에 근거를 둔 것이어야 한다.

넷째, 과학철학의 또 다른 과제는 실재과학의 의미문제를 탐구하는 것이다. 우선 의미를 명백히 하고 다음에 타당성 여부를 밝혀야 하는데 지금까지 의미문제를 도외시한 것이 철학이 지닌 결함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섯째, 과학철학은 어떤 특정 철학의 신조에 의존하지 않는다. 과학철학적 탐구를 하는데 신조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이론이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론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더 큰 이론의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따라서 과학활동과 그 산물인 이론적 지식의 합리성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갖기 위해서는 단일의 이론이 아니라 어떤 근본적인 탐구원리에 의해서 다소간에 통합되어 있는 이론군을 고려해야 한다.


# 과학철학의 주요이론

·논리적 실증주의와 논리적 경험주의

20세기에 들어와서 과학철학자들은 특히 기호논리학의 발전에 힘입어 수학을 부분적으로 논리적인 공리체계로 재정식화하는데 성공하자 학문적 분과를 막론하고 모든 과학이론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지식의 확실한 토대, 통일적인 방법론 체계를 세우려고 시도하였다. 이러한 결과, 20세기 전반기의 과학철학을 지배했던 실증주의의 전통이 전개되었다. 그것은 처음에는 논리적 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라는 급진적인 철학운동의 형태로 나타났으나, 이것은 곧 논리적 경험주의(logical empiricism)로 바뀌게 되었다.

논리적 실증주의는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의미의 증명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에 의하면 문장과 명제는 오직 경험적으로 증명될 때만이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 있는 문장과 그렇지 않은 문장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과학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논리적으로 철저히 분석함으로써 과학으로부터 모든 비과학적 요소를 배제시킨다면 가장 순수한 형태의 과학적 합리성의 모습이 확립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 나타나게 되었다.

즉, 과학적 지식이나 이론은 결국 외적으로 경험되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고, 어떤 과학이론이 타당한가 하는 여부는 경험적 사실과 일치하는가, 또는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들은 과학은 검증할 수 있는 명제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으로, 외부세계의 실재를 통해 직접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명제들만이 과학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검증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과학적인 것과 비과학적인 것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나아가 이들은 검증할 수 있는 명제만이 ‘의미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들에 의하면 사람들이 하는 말에는 의미 있는 것과 의미 없는 것이 있는데, 의미있는 언어란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것이며, 검증할 수 없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논리적 실증주의는 이 같은 인식하에 의미있는 언어를 무의미한 언어로부터 분리시킬 수 있는 구획기준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구획기준에 따르면 인식적으로 의미있는 단어는 단 두 가지 종류밖에 없다. 하나는 논리적 언어이고 다른 하나는 관찰적 언어 또는 그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언어이다. 그 외의 언어는 모두 무의미한 것 또는 형이상학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구획기준에 기초해서 과학을 비논리적 또는 비경험적 요소로부터 해방시키려하였던 논리적 실증주의는 귀납법이 가지고 있던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했다. 즉, 논리적 실증주의자들은 일반적인 과학적 명제들은 경험적으로 증명이 되었을 때만이 참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한정된 수의 경험적인 증명만으로 일반적인 문장들을 진리라고 주장하는데는 무리가 있다. 귀납에 의한 추론은 결코 순수한 논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논리적 경험주의는 이러한 논리적 실증주의의 문제점들을 근거로 Rudolf Carnap의 실증주의에 의해 발전되었다. Carnap은 증명이 완벽하고 명확한 진리를 설정하는 것이라면 일반적인 문장들이 결코 증명될 수 없으므로 증명의 개념을 ‘점증적으로 확정이 증가되는 것’으로 대체시키고, 일반적인 문장들은 연속적인 경험적 검증의 축적에 의하여 진리로 확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논리적 경험주의의 특성은 귀납적인 통계학의 사용으로 볼 수 있다. 논리적 경험주의자들의 견해는 관찰이 과학의 출발점이며, 과학의 이론들은 궁극적으로 이들을 확률적으로 검증하는 관찰에 의해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논리적 경험주의 역시 귀납법의 문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비록 확률적 관계를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소수의 관찰에 의하여 일반적인 문장이 참이라는 논리적 결론을 유도하기에는 여전히 무리가 따른다.

또한 귀납법의 문제 이외에도 확실한 관찰에 의존하려는 의도 때문에 두 개의 문제점에 봉착하게 되는데, 첫째는 관찰에서 관찰자의 주관적인 개입이 필수적이므로 관찰에는 항상 측정오차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사회과학에서 항상 측정의 신뢰성이 타당성에 관계된 깊은 관심이 이를 증명한다. 측정오차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지만 관찰과정과 측정기술이 향상됨에 따라서 측정오차를 가능한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보다 심각한 문제는 관찰이 이론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관찰은 관찰자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의 범주 안에서 해석하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결국 이론에 의존하는 것과 관찰의 오류는 경험적 검증을 채택하는 논리적 경험주의의 심각한 문제점으로 볼 수 있다.


·Popper의 반증주의

과학적 방법론의 진의를 가장 잘 창도한 사람이 Karl Popper이다. Popper에 의하면 타당한 경험적 방법이란 그 이론이 반증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는 경험과학에 대한 방법론적 규칙을 제안하였는데, 그의 핵심적인 주장은 과학이론을 확증해 주는 귀납과정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실증주의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과학철학에서 귀납은 확증이론을 뒷받침하는 어떤 몫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논리적 실증주의가 점증적으로 확정을 증가시키는 귀납법에 의존하는 것에 비하여 반증주의는 논리적으로 연역법에 의존하게 된다. Popper는 일반적인 가설들이 하나의 예외로 반증될 수 있고 연역적으로 도출된 가설이 거짓으로 판명이 되면 이론 자체도 거짓으로 간주된다고 한다.

Popper는 과학과 비과학의 구분, 소위 구획기준을 세우는 일에서 시작하여, 여러 경쟁적인 과학적 가설을 현실성의 정도에 따라 평가하는 기준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구획의 문제는 형이상학이나 사이비과학으로부터 과학이론을 구별해 낼 수 있는 기준을 찾아내는 문제이다. 그에게 있어서 구획기준은 검증가능성이 입증가능성 또는 확증가능성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그는 기초적 진술로 표현되는 경험적 사실에 의해서 과학이론을 입증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또한 확증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과학이론을 검증하는 이유는 그것을 경험적으로 비판하려는 시도, 그것이 거짓임을 보이려는 시도, 즉 그것을 반증하려는 시도에 있다. 과학적 명제의 본질적인 특징은 그것이 거짓임을 보이려는 시도, 즉 그것을 반증하려는 시도에 있다. 과학적 명제의 본질적인 특징은 잠재적으로 경험적인 사실에 의해서 반박될 수 잇다는 점에 있는데, 이것을 반증가능성의 요건(requirement of falsifiability)이라고 한다. 반증주의라는 명칭은 이것으로부터 유래한다. 그의 이론 밑바탕에 자리잡고 있는 방법론적 견해는 두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첫째는 Popper가 지식성장의 문제를 과학철학의 중심적인 과제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는 “인식론의 중심문제는 언제나 지식성장의 문제이며, 지식의 성장은 과학적 지식의 성장에 의해 가장 잘 연구될 수 있다.”고 함으로써 지식성장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둘째는 Popper의 과학철학이 비판적 합리주의에 입각해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는 “모든 합리적 토론의 단 하나의 방법은 자신의 문제를 분명하게 진술하고, 그것에 대해 제출된 여러 가지 결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방법이다.”라고 함으로써 합리적 태도와 비판적 태도를 동일시하고 있다.

Popper에 있어 과학철학이란 일단 이론이 제시될 때 이를 평가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는 소위 ‘의미의 검증가능성 원리’에 내포되어 있는 논리적 실증주의를 비판하는데서 출발한다. ‘의미의 검증가능성 원리’에 의하면 모든 설명은 분석적이거나 종합적이다. 이들 설명은 정의 상 참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실제 경험 상 참이며 따라서 모든 종합적 설명은 적어도 원칙적으로 경험적 검증이 가능할 경우에만 의미있는 설명이라는 것이다.

과학적 가설이란 항상 입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반증될 수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는 논리적 경험주의에 내재되어 있는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반증주의(falsificationism)를 제시하고 있다. 논리적 경험주의자들과는 달리 Popper는 관찰이 항상 기대하는 체계의 존재를 전제하게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과학의 발전은 기존의 이론과 상충되는 현상을 관찰하는 데에서 출발하게 된다고 보고 있다. 반증주의는 문제해결을 위해 제시된 이론에 대해 엄격한 경험적 검증을 하게 된다. 이러한 검증의 목적은 가설의 반박에 있으며, 이론의 예측이 반박되는 경우에 이론은 기각이 되고 이러한 반증에 대항하여 남게 되는 이론이 채택되게 된다.


·Kuhn의 과학적 혁명론

Thomas Kuhn에 있어서 가장 중심이 되는 개념은 패러다임(Paradigm), 정상과학(normal science), 및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이다.

쿤은 패러다임이란 “어떤 과학계에서 생기는 문제와 해답의 선택, 평가 및 비판의 판정기준을 제공하며 나아가서 정당한 설명과 과학의 정의를 지배하는 이론적·도구적 및 방법론적 약속의 네트워크”라고 한다. 패러다임에는 ‘상징적 일반화’와 공통된 가치관 또는 이론평가를 위한 기준을 포함하며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알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포함된다.

정상과학은 패러다임을 정교화하면서, 패러다임의 경험적 적용가능성을 확장시키는 활동이다. 정상과학의 연구는 패러다임으로 확립된 선배 과학자들의 문제해결방식을 모델로 하여 그것이 제시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해 가는 작업이다. 정상과학은 패러다임에 관하여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며 결코 새로운 것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그 결과로 연구의 능률성을 얻게 된다. 이러한 정상과학에서 패러다임은 문제 해결의 방식 뿐 아니라 해결해야 할 문제거리와 그 문제해결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기준을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한다.

과학혁명이란 지배적인 패러다임의 교체를 말한다. 패러다임은 정상과학 안에서 적용되는 범주를 확장시키고 정확성을 증대시켜 주지만, 어느 단계에 이르러 패러다임의 기본이론과 모순되는 변칙이 나타나게 되면 정상과학은 위기를 맞게 된다. 이러한 변칙이 패러다임의 역할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게 되는 위기를 맞게 되면 패러다임의 붕괴가 시작되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타나 위기를 해결하게 되면 과학혁명이 일어나게 되고, 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과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지면 과학혁명은 종결되고 새로운 정상과학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쿤은 과학적 발전이 지식의 축적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전통적 과학관, 즉 Popper의 지식성장론을 부정하면서 과학적 발전의 불연속적인 발전을 주장하고 있다. 과학의 발전이 불연속적인 것은 패러다임의 영향 아래 연구가 진행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쿤의 가장 핵심적인 견해는 이러한 패러다임이 과학적 혁명을 통해 변동된다는 것이다. 즉, 패러다임이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혁명 동안에 기존의 패러다임과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이 혁신적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쿤의 과학적 혁명을 통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지배적 패러다임의 성립 -> 정상과학 -> 이변의 누적 -> 패러다임의 위기 -> 과학혁명 등의 순환적 관계를 가지게 된다.


Lakatos의 과학적 연구프로그램 방법론

Imre Lakatos는 Popper의 반증주의에 대한 Kuhn의 비판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면서, 쿤이 초래한 비합리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합리성의 이론을 구성하려고 하였다. 그의 과학적 연구프로그램 방법론은 Popper의 비판적 합리주의의 전통 안에서 이론평가의 논리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Lakatos가 Popper의 방법론을 발전시켰다고 평가받는 것은 그가 Popper의 합리적 평가기준 만으로는 과학사에서 발견되는 연구활동의 연속성을 설명할 수 없다는 문제를 인식한 데에서 비롯한다.

그는 “과학사가 결여된 과학철학은 내용이 없고, 과학철학이 없는 과학사는 맹목이다.”라는 전제하에 과학사를 ‘서로 경쟁하는 연구프로그램들의 역사’로 보고 있다. 그는 단일이론이 아닌 이론의 복합체가 과학적 탐구대상의 기본 단위이고, 단일이론이 경험과 직접 대면하는 것이 아니며, 과학자들은 그들이 지지하는 이론이 경험에 의해 반증된다고 하더라도 그 이론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제시하였다.

Lakatos는 세련된 반증주의의 관점에서 ‘반증’과 ‘구획기준’을 재해석하면서 이러한 재해석과 일치하는 ‘과학적 연구프로그램의 방법론’을 제시하였으며, 이 방법론은 그간에 행해진 과학사 연구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면서 과학의 합리성을 지지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Laudan의 연구전통론

Larry Laudan은 Popper와 Kuhn의 뒤를 이어 과학의 목적은 문제의 해결에 있으며, 과학에서 이론선택의 합리성이란 이론의 문제해결능력에 의해서 정의된다고 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문제해결능력에 의해서 정의된다고 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문제 해결능력이 높은 이론이 그렇지 않은 이론보다 진보적인 이론이며, 이 같은 진보적인 이론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이론 선택이다. 합리성이란 진보의 함수이며, 진보는 문제 해결의 유효성의 함수이다.

Laudan은 형식적 합리주의와 이에 대한 안티테제인 비합리주의를 극복하고 대안적인 합리성의 이론을 제시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Lakatos의 출발점과 동일하다. 그러나 Lakatos가 상대적으로 Kuhn의 입장에 가깝다면 그의 입장은 Popper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Laudan도 Kuhn의 패러다임 또는 Lakatos의 과학적 연구프로그램 방법론에 대응하느 이론인 연구전통을 제시하고 있는데, Laudan에 의하면 과학적 분야이든 비과학적 분야이든 관계없이 모든 지적인 학문 분야들은 연구전통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연구전통은 무엇을 연구해야 하는가에 대한 연구영역에 대한 규정과 어떻게 그 영역이 연구되고, 어떻게 이론들이 검증되고, 어떻게 데이터들이 수집되는가에 대한 일련의 인식론적이고 방법론적인 규범을 포함하고 있다. 연구전통이란 “연구영역의 존재와 과정, 그 영역의 문제를 탐구하고 이론을 구성하는데 사용되는 적절한 방법에 대한 일련의 일반적인 가정”이라고 할 수 있다. Laudan은 자신의 연구전통을 ‘문제해결 진보모형’이라고 하고 잇는데, 그것은 그가 과학을 본질적으로 문제해결의 활동으로 보기 때문이다. 과학적 사고는 문제로부터 출발하며, 이론은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제공된다. “이론의 기능은 모호성을 해소시키고, 불규칙성을 규칙성으로 환원시키고, 일어나는 사건이 어쨌든간에 그것이 이해가능하며 예측가능하다는 것을 찾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이론의 합리성과 진보성은 이론이 확증되느냐 혹은 반증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이론이 가지고 있는 문제해결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Feyerabend의 방법적 다원론

Paul Feyerabend는 이에 대해 그의 저서 Against method에서 Lakatos와 Laudan가 이론 선택에 대한 합리적인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서 무방법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무방법이 인식론의 가장 좋은 기초이며, 어떠한 규범적인 방법이라도 과학발전에 저해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과학발전을 저해하지 않는 유일한 원칙이란 ‘어떻게 해도 좋다’라는 것이다.

그의 무방법론(방법적 다원론)에 의하면, 아무리 그럴듯하고 인식론에 기초를 두고 있다 하더라도 과학사의 어떤 시점을 위반 없이 무사히 지나온 과학적 방법론상의 규칙이란 없다. 더구나 일부 위대한 과학자들은 건전한 절차상의 모든 규정을 고의적으로 위반함으로써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모든 구체적 연구들은 잠재적인 응용력을 가지고 있다. 즉 과학자들은 연구를 위해 기준을 갖고 있거나 기준을 유지할 수 있는 연구를 계속하려 한다고 보고 점점 어떤 유행처럼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평가기준이 도입되는 것을 강조한다. 오히려 기존의 법칙이나 연구과정들이 과학적 상상력과 창조성을 제한하게 되므로 이러한 과도기적 과정이 과학적 진보를 위해서 필요하게 된다.

Feyerabend가 다루는 중요한 측면 중의 하나는 과학과 다른 형태의 지식사이의 관계이다. 그는 다른 형태의 지식과 비교해서 과학이 우월적인 참다운 지식이라는 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대과학은 결코 신성불가침의 지식이 아니며, 서구사회에서 제도화된 과학도 결코 신성불가침의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과학은 역사적으로 변하지 않은 고정된 방법을 지니고 있는 비역사적인 진리가 아니라 세계를 보는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로 이데올로기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진리로 인도해 주는 방법을 과학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과학적 지식을 믿어야 할 어떤 이유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 정리

초기의 과학철학은 연역법과 귀납법으로부터 시작하였으며, 현재의 과학철학이라는 형태를 갖춘 것은 20세기 이후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전반의 과학철학은 실증주의를 배경으로 20년대 중엽 논리실증주의로 발전하였다가, 30년대에 비엔나학파의 Carnap 등에 의해 주도된 논리경험주의로 바뀌게 되었다. 이들 두 학파들은 모두 귀납법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였으며, 또한 관찰이 선험적인 지식에 근거해서 해석하게 된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Popper는 반증주의를 제시하고 있는데, 반증주의의 입장은 경험적인 검증을 통하여 반박되지 않고 남는 이론이 임시적으로 채택된다는 것이다.

Popper의 반증주의에 대해 Kuhn은 새로운 개념적인 틀로서 ‘과학적 혁명’의 개념을 도입하였으며, 사회구성원들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패러다임이 과학적 혁명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이동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Popper와 Kuhn의 대립적인 지식관에 대해 Lakatos와 Laudan은 양자의 종합적인 지식관을 탐색하고 있는데, Lakatos의 과학적 연구 프로그램론은 Popper의 비판적 합리주의를 견지하면서 Kuhn의 이론을 보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Laudan은 연구전통이라는 개념을 통하여 과학은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라는 견해를 바탕으로 이론의 참, 거짓의 여부보다는 이론이 중요한 경험적인 문제에 대해 설명이 가능한가의 여부가 그 가치를 결정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두 학자들의 이론은 Popper와 Kuhn의 합리주의적인 입장과 비합리주의적인 또는 상대주의적인 입장간의 조화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Lakatos는 Kuhn의 입장에, Laudan은 Popper의 입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한편, Feyerabend는 지금까지 제시되어 온 모든 방법론이 하나같이 성공적이지 못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과학의 방법론이 과학자들의 활동을 지시하는 적절한 규칙을 제시하는데 실패했음을 주장하며, 과학자들은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새로운 평가기준을 개발하게 되고 이것이 과거의 기준과 대체될 때까지는 인식론적 혼란이 존재한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과학철학에 대한 논쟁은 과학의 객관성과 합리성에 대한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의 합리성에 대한 절대적인 입장을 견지해 온 것이 논리실증주의, 논리경험주의와 반증주의라면, 과학의 합리성에 대한 절대적인 면을 부정하고 오히려 상대적인 것을 강조해온 것이 Kuhn과 Feyerabend의 입장이다. 결국 과학철학의 역사는 과학의 합리성에 대한 지지와 부정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학자들 간의 논의의 차이는 있지만, 과학의 합리성은 검증될 수 있다는 측면이 극단적인 합리주의 또는 절대주의, 객관주의라고 할 수 있으며, 반면 과학의 합리성은 부정될 수 있다는 측면이 극단적인 비합리주의 또는 상대주의라고 할 수 있다.





사회과학논총(1998)에 실린 ‘과학철학의 변천에 관한 연구’(윤석경 · 이상룡)을 참고

출 처 : http://blog.naver.com/verthan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