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크하르트 툴레, <고요함의 지혜>

Posted by 히키신
2017. 2. 15. 21:19 영원의 지헤, 그리고 철학

에크하르트 툴레, <고요함의 지혜>, 진우기 옮김, 2004, 김영사

 

p27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바로 생각이라는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p38~9

생각에만 골똘한 나는 머릿속에서 들리는 소리가 바로 나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나의 생각에 나의 자아상이 덧붙여진다. 이것이 바로 생각이 만들어낸 ‘나’ 즉 나의 에고이다. 에고는 늘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며 시시각각 변화한다. 그런 에고에게는 두려움과 욕망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삶을 휘두른다.

머릿속에서 나인 척하며 수다를 그칠 줄 모르는 목소리가 있음을 깨달을 때, 생각의 흐름이 곧 나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과거의 꿈에서 나는 깨어난다. 그때 나는 깨닫는다. 나의 본모습은 그 목소리가 아니며,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며 다만 그 목소리를 알아차리는 사람임을 깨닫는다.

그 목소리 넘어 존재하는 맑은 마음이 나라는 것을 알 때 자유가 온다.

 

p39~40

에고는 항상 무언가를 찾아다닌다. 좀더 보태어 좀더 완전해지기 위해 에고는 이것을 찾아 챙기고 저것을 찾아 소유하며,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은 더 많이 쌓아두려 한다. 에고가 강박관념처럼 미래에 그렇게 집착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내가 이 순간이 아니라 ‘다음 순간을 위해 살고 있음’을 알아차릴 때마다 나는 에고의 지배를 벗어난다. 그때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무를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진다.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무를 때 에고보다 훨씬 큰 지혜가 나의 삶 속으로 들어온다.

 

p51

지금 이 순간에 전념하는 것은 삶에 필요한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이차적으로 중요한 것들을 대하면 훨씬 여유가 생긴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지금밖에 없으므로 나는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가장 중요한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지금 이 순간을 적이 아닌 친구로 만들라는 뜻이다. 지금에 감사하고 지금에 경의를 표하라. 지금이 삶의 근본이 되고 중요한 구심점이 될 때 삶은 여유롭게 풀리기 시작한다.

 

p52~3

지금 이 순간을 책임지지 않는다면 삶에 대한 책임도 회피하는 것이다. 삶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바로 지금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을 책임진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그러함’에 마음으로 반대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지금과 싸우지 않겠다는 뜻이다. 삶과 조화를 이루겠다는 뜻이다. ...

지금 이 순간을 긍정하는 순간 나는 생명의 지혜와 힘과 조화를 이룬다. 그때 비로소 나는 이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일도 할 수 있다.

아주 단순하면서도 매우 혁신적인 정신 수행이 있다. 바로 지금 일어나는 것을 무엇이든 다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 안에서든 밖에서든 말이다.

 

p54

사람들은 대체로 ‘지금’을 ‘지금 일어나는 일’과 혼동한다. ‘지금’은 ‘지금 일어나는 일’보다 더 깊은 차원에 있다. ‘지금’은 그것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p56

나의 생각과 감정과 지각과 경험은 내가 아니다. 내 삶의 내용물은 내가 아니다. 나는 생명이다. 나는 만물이 생성되는 공간이다. 나는 순수의식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이다.

 

p61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말의 구조 속에는 이미 자신의 참모습을 모른다는 사실이 드러나 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잃었다’는 말, ‘나의 삶’이라는 말 속에는 마치 삶이나 생명이 소유하거나 잃을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있다. 나는 생명을 가진 것이 아니다. 내가 바로 생명이다. 우주 전체에 충만한 ‘한 생명’ 또는 ‘한 의식’이 잠시 한 형태를 취하여 돌멩이로, 풀잎으로, 동물로, 인간으로, 별로, 은하계로 체험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이미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가슴 깊이 느껴보라. 당신은 이미 그것임을 느낄 수 있는가?

 

p62

구도자들은 깨달음과 자기실현을 미래에서 찾는다. 구도자가 된다는 것은 미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이 그렇게 믿는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진실이 된다. 다시 말해서 본연의 당신이 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님을 깨닫는 그 순간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p64

당신 자신이 현상계의 존재들이 생성되는 맑은 마음임을 알 때 당신은 현상계에의 종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제 당신은 상황과 장소와 조건 속에서 자아상을 찾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된다. 만물이 그 무거움과 심각함을 떨궈버린다. 당신 삶에 슬며시 장난기가 들어온다. 이제 세상은 우주의 춤이다. 형상의 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p71~2

노력이란 긴장과 스트레스를 수반하며 미래에 일정 지점에 도달할 ‘필요성’을 뜻하며 특정의 결과를 이루어야 함을 의미한다. 당신의 마음속에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심정이 조금이라도 있음을 감지할 수 있는가? 그것은 삶을 부정하는 일이므로 당연히 진정한 성공은 불가능하다.

마음속에 그런 심정이 있음을 감지했다면 즉시 그 마음을 버리고 지금 하는 일에 몰입할 수 있는가?

 

p73~4

내게 다가오는 모든 체험은 그저 잠시뿐이라는 것. 더불어 세상은 지속적인 가치를 지닌 그 어떤 것도 내게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순응이 가능해진다. 순응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은 이전처럼 사람들을 만나고 활동에 몰두한다 해도 더 이상 에고가 흔드는 대로 욕망과 두려움에 지배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제 더 이상은 어떤 상황에 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나거나 어떤 장소에 있어야만 만족하고 행복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불완전하고 무상한 것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기적 같은 일이 생긴다. 불가능한 기대치를 버리는 순간 갑자기 모든 상황과 사람, 모든 장소와 시간이 두루 다 마음에 드는 것이다. 더불어 당신의 마음은 좀더 조화로워지고 좀더 평화로워진다.

 

p76

가장 고통스럽고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 속에 가장 깊은 善이 감추어져 있다. 모든 재난 속에는 사랑의 씨앗이 들어 있다. ...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이 찾아온다.

-靜, 평온(serenity)

 

p85~6

자연의 섬세한 소리에 맑은 마음을 가져가보라. 바람에 나뭇잎이 서걱이는 소리,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풀벌레 우는 소리, 새벽녘 새의 첫울음소리에 귀 기울여보라. 소리를 듣는 일에 전념하라. 귀에 들리는 그 소리 너머에 무언가 위대한 것이 있다. 생각으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성스러움이 거기 있다.

 

p91

인간은 고요해지면 생각 저편으로 넘어간다. 생각 저편의 고요함 안에는 앎과 맑은 마음의 차원이 존재한다.

자연은 나를 고요함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 그것은 자연이 내게 주는 선물이다. 내가 고요함의 장 안에서 자연을 지각하고 자연과 함께 할 때 그 안에 나의 맑은 마음이 두루 퍼진다. 그것이 내가 자연에게 주는 선물이다.

 

p97

그녀의 과거가 나의 과거이고, 그녀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며, 그녀의 의식 수준이 나의 의식 수준이라면 나도 꼭 그녀처럼 생각하고 행동했을 것이다. 그것을 깨달을 때 용서와 자비 그리고 평화로움이 온다.

 

p98

지금 이 순간의 여유로움 안으로 누가 들어오든 다 귀한 손님으로 맞이할 때, 그가 자신의 모습 그대로 존재하도록 내버려둘 때 그는 변하기 시작한다.

 

p116

20세에는 내 몸이 튼튼하고 활력 있음을 안다. 60세에는 내 몸이 약해지고 늙었음을 안다. 나의 생각 역시 20대 때와는 달라졌을 수 있다. 하지만 내 몸이 젊거나 늙었다고 아는 마음, 내 생각이 변했다고 아는 맑은 마음에는 변한 것이 없다. 그 맑은 마음이 바로 내 안에 있는 영원이다. 순수의식이다. 형상을 벗어난 ‘한 생명’이다. 나는 그것을 잃을 수 있는가? 아니다. 내가 바로 그것이다.

 

p117~8

모든 사고와 재난에는 늘 구원의 가능성이 들어 있다. 다만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흘려보낼 뿐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죽음이 코앞에 닥쳤을 때 느끼는 극도의 충격은 의식으로 하여금 형상과 나를 동일시했던 과거의 습관을 한 순간에 놓아버리게 하기도 한다. 육체가 죽기 직전 마지막 짧은 순간에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나는 나를 형상을 벗어난 자유 의식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그때 돌연히 두려움이 사라지고 한없는 평화로움이 찾아든다. ‘모든 것이 다 좋다’는 것을 깨닫는다. 죽음은 단지 형상의 해체에 불과함을 알게 된다. 그리고 죽음은 결국 착각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 나의 몸이 나라고 생각했던 착각.

 

죽음은 현대 문화가 믿도록 강요하는 것처럼 그렇게 이례적인 일도, 가장 끔찍한 일도 아니다. 죽음은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며 그 반대인 탄생에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 옆에 있을 때 이를 잊지 말라.

한 사람의 죽음을 맞이하여 임종을 지키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벗으로서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지극히 성스러운 행위이며 대단한 특권이다.

죽어가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다가오는 어떤 체험도 부정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