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6.21~26] 제주도 여행 셋째 날~마지막 날까지. 휴대폰이 셋째날 오후에 침수되어 한번에 몰아 씀!

Posted by 히키신
2015. 8. 30. 13:52 etc

오늘까지는 흐리기만 하고 비는 안내릴거라더니 어제보다 더 굵은 빗줄기가 내얼굴을 때린다.

따갑고, 아프고, 추웠다.

그러나 어제와 마찬가지로 잠시 숨 돌릴겸 멈춰세우면, 날씨는 거짓말같이 빗줄기가 약해졌고-아니 실은 약하게 느껴진 것이 맞을지도-몸은 다시금 따뜻해졌다.

날씨가 화창한 날엔 바이크를 타고 달릴때가 쉬어가는 느낌인데, 날씨가 사나울땐 달리지 않고 머물러있는 것이 휴식이 되는 구나.

 

중문관광단지 근처 식당에서 제주도 전통 음식 몸국을 한그릇 마시고, 다시 달리고 달려 이중섭거리에 도착했다. 도중에 얼굴이 도저히 따가워 때마침 보이는 이마트에서 아무 모자나 하나 사가지고 갈까 하여 잠시 멈췄으나, 이내 돈이 아깝다는 생각에 다시 달렸다. 그러나 다시 달리는 동안 또 퍼붓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그냥 모자하나살걸...'하는 생각에 또 후회했다.

 

아마 모자를 사건 안사건 후회했을 것이다.

 

인생은 결국 '苦' 라지만, 그 속에 때때로 '樂' 이 있어 살 맛이 난다.

이번 여행동안이 딱 그랬다.

여행은 삶의 축소판인가. 

 

~~~

 

그리하여 내가 미리 리스트에 적어뒀던 곳, '이중섭 거리'에 도착했다.

때마침 비도 딱 그쳤다.

거리 중간 적당한 곳에 바이크를 세워두고 나서 옆을 바라보니 60년대 초등학교 교과서를 전시해둔 벽이 있었다.

 

 

너무너무 멋진 글이다. 그냥저냥 지나치는 사람들 틈에 나는 카메라 셔터를 연방 눌러댈 수밖에 없었다.

 

 

 다문화가정 멘토링을 하며 본 요즈음의 교과서는 이 시절의 교과서랑 비교했을땐 완전 '판타지'였다!

너무 많이 변해서 교과서라기보다 문제집, 참고서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60년대 어린이가 쓴 시.

 나도 초등학교 시절엔 시로 교내대회 최우수상도 수상하고 도 대회에도 나가고 그랬었는데...어쩌다가.....

 

 이중섭 거리의 전경 모습. 차량이 지나가지 못하도록 막아두어 천천히 걸어다니기 좋은 환경이었다.

 

 

 

 

거리가 너무 예뻐서 어디 아무데나 들어갈까 하고 있는 찰나에...!

 

 

 유독 눈에 들어오는 멋진 공간을 발견했다.

 

 

 제주도에 거주하는 유명 건축가가 지은 카페 '유토피아'. 도심에 있는 여느 카페들처럼 실내 인테리어가 멋진 것과는 차원이 다른, 건물 전체가 투박하지만 자연스러운 제주도를 그대로 빼닮은 인상적인 카페이다.

 

 

 카페에 들어오기 전, 조그만 공방에서 이중섭 화백 작품이 그려져 있는 동 책꽂이를 하나 구입했다. 지금도 요긴히 잘 쓰고있는 책꽂이이다.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가지고온 기형도 시집을 읽고 몸과 마음을 정화한 뒤

다시금 거리를 나섰다.

 

 

 이 곳은 서귀포문화예술인들이 모여 장터처럼 자신들의 작품을 전시, 판매하는 공간인 듯 한데 내가 간 날은 궂은 날씨 탓인지 휑했다.

 

 사진의 설명 대로 옛날 초가집을 새로이 현대적으로 리모델링하여 문화예술 커뮤니티 공간으로 재탄생한 곳이다.

 

 이중섭 거리엔 이중섭 화백의 생가도 함께 있다. 사진은 생가 내에서 촬영한 것.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라는 글귀가 마음에 와닿는다.

 

 

 이중섭 화백이 살아 생전 사용했던 팔레트. 놋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동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세월이 흘러 빈티지함이 더해져 더욱 멋스럽다.

예술가가 사용하던 도구가

그 자체만으로도 예술작품이 되는...

 

 

 가장 유명한, 이중섭 화백이 살아 생전 가장 많이 그렸던 '소'.

 

아쉬움을 뒤로 한채, 이중섭 거리를 나서서 준형 형님이 추천해준 사려니 숲길로 향했다.

이중섭 거리에서는 꽤 거리가 멀었지만, 좋은 날씨 다시 험악해지기 전 어서 가자 싶어 스로틀을 힘껏 감았다.

 

 

 사려니 숲길로 접어드는 입구 부근에서 우연히 잘못 눌려져 찍힌 사진.

가라는 길로 안가고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 내 바이크는

마치 내 현재 모습을 비유하는 듯해 묘한 감정이 들었다.

 

 

 

 

수상하다...

어째 차도 사람도, 개미도, 강아지도, 고양이 한마리도 없지...?

내가 잘 가고 있는게 맞는지 의심스러웠지만,

일단 계속 갔다.

 

 

 맞게 왔구나-!

 

 

 울창한 나무 숲길 사이로 뻥 뚫린 길. 어디까지고 달려나가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잠시 멈추고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리는 듯했다.

 

 

입구 부근에 바이크를 세워두고

 숲길을 거닐어 보았다.

 

 

 길 보수 공사로 인해 한쪽 길은 출입이 통제되 있었다.

뭐든지 하지말라 하면 더 하고 싶은게 사람들의 심리인지라

나도 옆으로 슬쩍 들어가서 가볼까 하는 마음도 올라왔지만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

 

 

 울창한 나무 숲. 영화 '아바타' 속에 내가 들어와 있는 듯 온세상이 푸르렀다.

 

 

 길가에 피어있는 꽃들과 비에 젖어 촉촉한 길바닥.

그리고 지저귀는 새소리.

풀 냄세.

그야말로 완벽한 자연 숲속 산책길이다.

 

 

 

 아무렇게나 막 찍어도 작품이라는 건 바로 이럴때 쓰는 표현인 듯!

 

 우연히 노란점백이 풍뎅이를 발견!

내가 발견한걸 눈치챘는지 죽은 척 꼼짝안고 있기에

그 모습이 귀여워서 사진만 한장 찍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뒤돌아보니 다시 제갈길 잘 가고 있더군.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사려니숲 길을 거닐던 그 때의 감동이 그대로 전해져 떨린다.

 

사려니 숲길을 매우 매우 길다. (내 기억에 꼬불꼬불 이어진 길이 족히 20km는 됬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걸 다 걸어서 통과할 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도로 거슬러 나와 다음 숙소로 향했다.

 

 

 뻥 뚫린 작은 일차선 길과 바로 옆에 뻥 뚫린 바다.

제주도에서 익히 자주 봐왔던 해안도로이지만

지나칠 때마다 가슴이 탁 트이며

잠시 멈춰서게 될 수밖에 없었다.

 

 

 

 

 모래사장이 앞에 있는지 돌들이 앞에 있는지

사람들이 많이 있는지 없는지

화창한 날인지 어둑어둑한 날인지 새까만 밤인지

수평선에 걸리는 것 하나 없이 바다만 보이는지

등대나 고기잡이 배가 보이는지 다리가 있는지

등등...에 따라

바다는 제각각 나에게 다르게 다가온다.

제각각 다 매력이 있지만,

나는 사람이 없는 곳에 뻥 뚫린 수평선이 보이는 곳에서

바라보는 바다가 좋다.

 

 

 

이후 날씨는 다시 험악해졌고

숙소까지 거리는 한참 남았는데 해도 저물어가는 시간이어서

조급한 마음에 멈추지 않고 계속 스로틀을 감았다.

바보같이 휴대폰에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거치대에 달아 놓고 계속 비를 맞춘 바람에...

결국 내 휴대폰은 이성을 상실했다!

 

이후에도 사진을 찍을 곳이 너무도 많았는데...

특히 넷째 날에 머문 모모 게스트하우스(드림 게스트하우스)의 캡슐 집에서 머문 하루는 정말 잊지 못할 기억이다.

모모 게스트하우스의 인자하시고 친절하신 사장님. 그리고 사장님이 배풀어주신 배려와 드림 게스트하우스의

일일 운영자가 되어 손님들을 맞이하게 된 우연.

하루 동안 숲 속의 캡슐집과 바닷가의 캡슐집에 모두 가보게 된 행운.

푹 자고 일어난 아침 통나무 캡슐집 창문밖으로 바라본 제주 앞바다의 풍광은

현재 내 짧은 필력으로는 담아내지 못하겠다.

언젠가 시로 은유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아니면, 음악으로.

 

(밑의 사진들은 각각 구글에서 '모모게스트하우스' 및 '드림게스트하우스' 로 검색하여 얻은 이미지입니다.

 사진의 원작자분께 허락받고 퍼온 것이 아니라 문제가 된다면 그 즉시 삭제하겠습니다.)

숲속에 위치한 모모게스트하우스의 캡슐집.

다음 카페 '제주모모' 에 몇일에 묵을 것인지, 어떤 연유로 여행을 왔는지 등을 간단히 작성해 글을 남기면

인자하신 사장님께서 일자를 확인하신 후 머물게 허락해주신다.

가격은 놀랍게도 '무료'이다!

 

바닷가에 위치한 드림게스트하우스의 캡슐집.

이곳은 숲속 모모 캡슐집보다 한층 더 쾌적하며 깨끗하고 옆의 게스트하우스의

샤워실, 여러 음식을 사먹거나 해먹을 수 있는 공간도 이용 가능하다.

하지만 이곳은 유료(1일 2만원)이다.

그러나 충~분히 2만원 이상의 값어치를 하는 곳이니

각각 자신에게 맞는 곳을 선택하여 가면 될 것이다.

 

드림게스트하우스의 맞은편 전경. 풍력발전기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다.

위에 있는 캡슐집 내부 창문 밖에서 바라본 바닷가는

이 이상으로 훨씬 더 아름답다!

 

 

사진을 남기지 못함이 너무나 아쉽지만, (그리고 휴대폰 고치는 데 왔다 갔다한 수고로움과 비용...ㅠㅠ)

휴대폰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느끼고 가슴에 담아 왔기에

휴대폰 없이 돌아다닌 제주도가 더욱 더 의미있게 남았다.

 

또 생각 밖의 저렴한 가격으로(약 6만 얼마 정도의 돈) 유상 리퍼를 받게 되어

결과적으로는 침수된 것이 훨씬 더 잘된 일이라 여겨진다.

 

역시...같은 일이라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감정은 천지차이로 바뀐다.

 

 

마지막 날 밤에 머문 '아프리카 게스트하우스' 역시 인상적이었다.

제주도에 있지만 그 이름에 걸맞게(?) 아프리카 스러운 내부 인테리어와 더불어 인상 좋은 촌장님(여기선 사장님을 전부 촌장님이라고 부르시는 듯했다)께서

버스에 내린 나를 픽업해 주셨다.

이날 아프리카 게스트하우스에서의 밤은 예상을 훨씬 더 뛰어넘는 신선함과 즐거움이 있었다.

좋은 사람들과 여행지에서 만나 어우러지니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떠들어도 취하지 않았다.

 

그 다음날 부산으로 떠나는 비행기 시간도 뒤로 늦출 정도로 나는 제주도에 빠져버렸다.

 

그날 밤에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르게 지나간 후,

월정리 해변가로 간다는 형님 차편에 함께 실려 제주도에서의 마지막을 정리한 후 부산으로 돌아왔다.  

 

나에게 있어 제주도는 단순한 관광지 그 이상으로 의미가 깊다.

제주도는 갈때마다 느낀 바지만

항상 기분 좋은 추억을 가득 안고 돌아오게 된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틈날 때마다 제주를 찾을 것이다.

나중엔 제주도에 머물러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