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Posted by 히키신
2017. 3. 20. 22:44 時쓰는 詩人의 始

<나는 왜>

지금 우리에게 소네트는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는 점점 자기를 잊어만 가는데
지금 우리에게 취선(醉仙)의 시는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는 점점 까막눈이 되어만 가는데
지금 우리에게 일생을 걸고
피와 눈물로 쓰여진 편지들은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는 너무도 불안하여 무엇에 굶주렸는지
알 수 없는데

침묵은 기다려주지 않고
달은 구름에 가리워져 가까스로 희미한
옅은 빛을 쏘려 안간힘을 쓴다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여느 후미진 골목에서
지하의 단칸방에서 외로운 골짜기에서
에워싼 짙은 구름떼를 쫓아내려는
태양은 빛을 쏘고 있다
지상에 다다르지 않을지언정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정녕
젖은 영혼의 눈물은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지독한 무(無)에로
빠질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데
가(邊)에서 노니는 이들은
가운데 허우적대는 이들을 구원할
마음이 없는 가운데
저 높은 곳에서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오늘도 악수하며 의를 맺는 이들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나
부치지 못할 편지를
수취인도 불명한 나는
왜 이리도 쓰려고 쓰려고만 하는지

⁃ '16. 0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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