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1971)
<오랑우탄처럼 살 것인가, 태엽 장치 인간이 될 것인가?>
-라캉의 정신분석학적 관점을 통해 본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
영화 역사상 가장 최초로 광범위한 모방 범죄를 일으킨 영화이기도 한 <시계태엽 오렌지>는 당대(1971년도)의 기준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매우 잔혹한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영화의 주인공과 똑같은 흰색 유니폼을 입은 갱들이 어린 소년을 칼로 찔러 사망에 이르게 하고, 주인공처럼 <사랑은 비를 타고>의 주제곡을 부르며 십대 소녀를 강간하기도 했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인 스탠리 큐브릭을 다룬 다큐멘타리 <a life in pictures>에서는 위 영화가 상영되던 당시, 폭력을 조장했다는 비난과 항의가 심해져 심지어는 감독이 살해 협박까지 받아 자녀들을 학교에 등교시키지도 못했고, 자신도 이대로는 더 견딜 수 없다며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상영중지를 부탁했다고 감독이 말하는 부분도 나온다. 그러나 이렇게 잔혹한 장면들이 많이 나오고 영화사 최초의 모방 범죄 조장작 이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작이 관객들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2014년의 지금도 충분한 사유를 할 수 있게끔 한다.
영화는 주인공 알렉스(말콤 맥도웰)가 감옥에 수감되기 전과 후, 그리고 자살을 시도 이후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영화의 전반부에서 알렉스는 폭력, 도난, 강간 등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모든 것들을 자신의 유흥거리로써 행한다. 마치 이루지 못하는 사랑 앞에서 더욱 더 욕망이 일어나는 듯이. 그러한 알렉스의 심경을 감독(스탠리 큐브릭)은 다양한 남근의 상징물들을 배치함으로써 더욱 극대화한다. 라캉의 거울 단계에서 아이가 상징계에 진입하고 나면, 주체는 근본적인 결핍을 느끼며 분열된다. 알렉스는 바로 이러한 근본적으로 충족될 수 없는 ‘욕망’을 전혀 거리낌 없이 따르는 사람이라 볼 수 있다. 칸트의 관점처럼 일반적인 보편 타당한 사회적 기준에서는 전혀 납득할 수 없는 극악무도한 싸이코패스이지만, 라캉의 정신분석과 관련하여 보면 그야말로 ‘본능에 충실한, 순수한 한 개인’ 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알렉스의 계속되는 잔인한 범행은 결국 경찰에 덜미를 붙잡히게 되고, 알렉스는 감옥에 수감된다. 여기서 알렉스는 ‘루도비코 요법’을 통해 자유의 몸이 되는데 이 부분이 중요한 영화의 전환점이 된다. 이 치료법은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고 영화와 원작 소설에만 등장하는 허구의 치료법이다. 2주동안 알 수 없는 주사를 맞으며 강제적으로 눈을 뜨게 한 채로 잔인한 영상을 계속해서 보게끔 하여, 그러한 장면들을 목도하게 되는 순간 구역질과 메스꺼움을 느끼게끔 하는 것이다. 마치, 유명한 심리학 실험인 파블로프의 개 실험(실험실의 개에게 종소리를 들려주고 곧이어 음식을 주는 행위를 반복하여 나중엔 종소리를 들으면 자동적으로 침을 흘리게 됨)처럼 고전적 조건화 학습을 통한 치료이다. 영화 속에서 이 요법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내무부 장관은 이 방법으로 악한 범죄자의 본성을 의학적으로 원천 거세시켜 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으로 욕망을 거세시킬 수는 없다. 파블로프의 개 실험을 예로 들면, 개가 종의 소리를 듣고 침을 흘리는 것은 단순히 학습된 반응일뿐, 개의 본성이 바뀌어서 종소리를 듣고 침을 흘리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출소하자마자 알렉스는 자신이 이전에 하던 대로, 본능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려고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구역질과 메스꺼운 고통을 느끼며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나는 나쁜 것을 제거하려는 시도가 더 나쁜 것을 남겨 놓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항상 더 나쁜 것을 이끌 것이다’ 라캉이 어느 강연에서 말했듯이, 알렉스는 출소 이후 수감되기 전 같이 범행을 저질렀던 동료들이 도리어 경찰이 되어(정부의 범죄자 교화정책에 의해) 그들에게 구타당하게 된다. 그와 더불어 입소 이전 알렉스에게 당했던 피해자들에 의한 보복에 알렉스는 대응하려 하지만, 이미 고전적 조건화된 그는 내외부적으로 동시에 고통받을 뿐이다.
감독은 영화 전반부에서의 너무도 태연하게 잔인한 행위를 일삼는 주인공을 이 대목에서는 조금 슬프게 묘사한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마음의 문제에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칙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라캉과 프로이드 식으로 해석하자면 상이든 벌이든 행위에 따르는 댓가는 등가일 수 없기에, 늘 잔여를 남긴다. 비록 알렉스가 극 초반부에 정말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의 악행을 저질렀으나, 그때의 피해자들이 느낀 고통과 출소 이후 알렉스가 겪는 고통은 같다고 볼 수 없고 잔여가 남는다는 점을 감독은-비록 가해자였지만-알렉스의 입장을 통해 대변하는 듯 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위의 루도비코 요법을 통한 죄수들의 갱생도모가 극중 내무부 장관(정부)의 권력 장악 및 유지를 위한 수단이었다는 점이다. 출소 이후 오갈 데 없는 알렉스를 휴식하게끔 해주는 소설가가 등장하는데, 이 소설가는 루도비코 요법을 사회 전반에 걸쳐 시행하려는 정부를 향해 ‘죄수들에게 자유를 더 조용한 삶이라는 꾐으로 팔아 대중을 무력하게 만드는 기술의 채택’, 또 ‘전체주의로 가득찬 실정’ 이라고 비판한다. 또 알렉스가 출소하기 직전까지 감옥에서 죄수들을 교화시키는 일을 하는 신부가 정부가 시행하려는 위의 요법을 반대하며 외친 한 마디도 의미심장하다. ‘개인의 자유 의지를 말살시킨 강요된 선이 과연 옳은 것인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알렉스는 자살을 시도하고 전신이 부러진 채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러나, 알렉스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병원에서 그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여러 슬라이드를 보여주는데 그는 처음에 ‘다른 사람들이 대답하는 것처럼 대답해야 하나요?’ 라고 물으나, 의사가 그럴 필요 없이 마음이 드는 대로 말하라고 하자 여지없이 원색적이고 욕망이 이끄는 대로 말한다. 그리고 이후 병동에 찾아온 장관은 알렉스에게 유감을 표하며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그에게 협력해줄 것을 요구한다. 이에 알렉스가 응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기자들이 득달같이 밀려들었고, 그 순간 알렉스는 잘 차려입은 신사숙녀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성교를 하는 상상을 하며 ‘나는 완벽하게 치유되었다’ 라는 나레이션과 함께 영화는 끝이 난다. ‘죽음 충동은 그 성격상 말이 없고 삶의 외침은 주로 에로스를 통해 표출된다’ 고 프로이드는 그의 저서 <자아와 이드>에서 말했다. 영화의 마지막 엔딩에서 주인공 알렉스는 병상에 누운 채 채울 수 없는 욕망을 상상하며 환하게 웃는다. 다시금 본래의 자신대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면서.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알렉스가 라캉과 프로이드의 정신분석과 너무나도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 놀랍다. 조금은 난해한 라캉의 철학을 영화에 적절히 녹여놓은 감독의 놀라운 표현력에 영화가 나온지 4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전율이 흐를 정도이다. 감독은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 를 통해 욕망을 순수하게 따르는 개인과 이를 둘러싼 사회 구조적 모순을 함께 보여준다. 잔혹하고 원색적인 장면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어 영화 사상 가장 최초로 광범위한 모방 범죄를 일으키게 한 문제작이지만, 깊은 철학적 사유를 할 수 있게 해주었기에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작으로 남게 된 작품이 아닐까?
(참고로 영화명인 <시계태엽 오렌지>에서의 오렌지(Orange)가 인도네시아어로 사람을 의미하는 어근인 오랑Orang (영어에서는 오랑우탄 Orang-utan)이 변형된 말이라는 설도 있다. 그렇게 본다면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태엽장치 인간’ 즉, 시계태엽을 감아주면 움직이는 인간을 뜻한다. 루도비코 치료를 받은 알렉스는 바로 사회에서 원하지 않는 것은 할 수 없는,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의 자유가 없는 태엽장치 인간인 것이다.)
-참고 문헌 및 자료-
위키피디아.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
http://ko.wikipedia.org/wiki/%EC%8B%9C%EA%B3%84%ED%83%9C%EC%97%BD_%EC%98%A4%EB%A0%8C%EC%A7%80_(%EC%98%81%ED%99%94)
엔하위키 미러.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
https://mirror.enha.kr/wiki/%EC%8B%9C%EA%B3%84%ED%83%9C%EC%97%BD%20%EC%98%A4%EB%A0%8C%EC%A7%80
김석. <라캉의 ‘승화’ 개념을 보여주는 예들>.
http://www.youtube.com/watch?v=nd2jX7y_hk8
블로그 <라캉중심> [라캉이 발견한 세명의 환자]
(검색해봐도 출판된 자료가 나오질 않아서, 블로그 내용을 간접적으로 참고만 했습니다)
http://lacancenter.org/lacan/category/%B0%AD%C0%C7%B7%CF?page=3
E.루디네스코. <자크 라캉>. 새물결. 2010. p151
Sigmund Freud. <The Ego and the Id>. Internationaler Psycho- analytischer Verlag (Vienna), W. W. Norton & Company. 24 April 1923.
(원문을 찾아 읽어본 것은 아니고, 원문에 있는 한 문구만 인용 하였습니다.)
김도훈. 네이버 영화 매거진 스페셜 리포트. <영화 모방범죄 QnA>
http://today.movie.naver.com/today/today.nhn?sectionCode=SPECIAL_REPORT§ionId=1410
조민준. 네이버 영화 매거진 스페셜 리포트. <영화로 세뇌가 가능한가 QnA>
http://today.movie.naver.com/today/today.nhn?sectionCode=SPECIAL_REPORT§ionId=1695
정란기. <욕망이론과 영화에 대하여>
http://italcinema.com/review/review3.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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