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문제]어떻게 살 것인가
위 글과 마찬가지로 <동아시아미학과예술>의 시험문제에 대비하여 미리 작성했던 글이다.
당시 이진오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스스로 시험문제를 내고 스스로 답하라는 굉장히 파격적인 방식으로 시험문제를 출제하셨다.
그 덕분에 나에게는 강의 시간에 배운 내용을 '나 이만큼 많이 알고 있소'를 자랑하듯 끄적거리지 않고,
보다 깊이 있게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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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니 자연스레 뒤이어 떠오르는 또 하나의 물음이 있었다. “(그런 아름다움을 꿈꾸는 너는)어떻게 살 것인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물음은 최근에 갑자기 한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래로 수없이 궁리하고 찾아보고자 했었던, 내 삶의 방향을 잡아줄 이정표였다. 고대 희랍의 철학자였던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나는 ‘내 스스로를 탐구하기 시작했던(I searched into my self)‘것이다.
끊임없이 생각해보고 고민해봐도 그 답은 쉽게 나오질 않았다. 그리고 확신을 얻기 위해 지난 7년여동안을 방황해왔었다. 괴테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다”라고 했지만, 지난 시절 진정으로 내가 노력했었는지 되묻는다면 그렇지는 못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찌됬건 내가 지내온 방황의 시간들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는것도 의미있을 것 같다.
어린시절, 나는 ‘새하얀색’이었다. 전국어린이미술경연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었고, 창작 시쓰기 대회로 교내에서 상도 많이 탔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전 문학들이 좋아 틈틈이 읽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때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참 순수했다. 누구나 어린시절엔 다 그럴테지만.
그러나 중,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나는 점점 ‘어두워져갔다.’ 부모님께서 하시던 장사가 부도가 났고, 이후 아버지는 꽤 오랜 시간을 술로써 지새셨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를 보내던 터라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나도 싫어 자주 반항했다. 그리고 그때서야 알게된 아버지의 과거(어머니와 형을 자주 구타했었다는 사실)와 더불어 내 눈앞에 펼쳐지는 아버지의 그러한 모습. 게다가 형의 건강도 매우 안좋아졌었기에 나는 집에 가기가 참으로 싫었었다. 솔직히 말해서, 안좋은 생각을 한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 당시엔 너무나도 괴로웠기에 뒷일 생각안하고 그냥 아버지를 어떻게 해버리고 싶다는 생각과 그렇게 하는게 결국은 어머니나 형이 더 편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직접 행동하기 일보직전에까지 이르른 적이 여러번이었다. 잘못 엇나가기 너무나도 좋았던 그시절의 나에게 어머니와 형은 나를 잘 타일러주셨다. 그 덕분에 나는 그나마 그 시절을 잘 견디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다행이다.
수능 시험을 치른 뒤, 나는 억눌러왔던 충동을 마구 분출해내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시절, 나의 유일한 해방구는 ‘음악’이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집안 상황이 정말 말이 아니었기에 그때는 단지 음악을 듣고 가끔씩 노래부르는 정도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을 이제는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명목상으로는 정말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하기 위한, 내 꿈을 쫓겠다는 것이었으나, 실상은 현실 도피에 불과한 것이었다. 매일을 술로 지새기 일쑤였고 항상 내 안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는 씻겨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난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에는 조금 더 성숙해져서 마음을 바로 잡을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으나, 난 전혀 그러질 못했다. 여전히 학교의 강의는 따분하기 이를데가 없었고, 과연 내가 대학을 무사히 졸업이나 할 수 있을지 앞이 깜깜했다. 도서관에서 열심히 스펙을 쌓는 아이들을 보고는 ‘난 저들처럼 저렇게 살지는 않겠다’며 조소하며 문학책을 읽고 기타를 치며 입대 전의 ‘나’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내 방에서 불이 났다. 다행이 중간에 건너편에 사시는 어느 분께서 이를 발견하고 알려주셔서 중간에 소화하긴 했지만, 내 방에 있던 모든 것들이 잿더미가 되었다. 내 기타와 cd, 일기장, 악보들...그러나 난 그것들이 불타 재가 된 것 보다 불이 나던 그날, 술에 취해 친구집에서 세상모르고 잠들고 있던 바로 그날, 나의 부모님은 뿌연 연기 속에 내가 잠들어있는 줄로 아시고 발바닥을 다 데여가며 날 찾아 부르짖으셨다는 것을 알게 된 것에 너무나도 부끄럽고 ᄄᆃ 죄스러운 심정이 들었다. 또 한가지는 만약 조금 더 늦게 알았더라면, 옆 방에서 곤히 잠들어있던 형이 정말 위험한 상황에 처할수도 있었기에 형에게도 너무나도 미안한 마음이들었다. ‘그 날 내가 술안마시고 집에 들어갔었더라면...’ 나는 화마에 덮인 집을 좀 정리한 이후, 집을 나왔다.
지금도 나는 그날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그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제로베이스에서부터 다시 시작해라. 여태까지 너는 너무나도 잘못 살았다. 정신차려라!” 라는 어떤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이후 나는 거제도의 조선소에서도 일하고, 울산 등지로 떠돌이 생활(일명 숙식노가다)을 하며 돈을 벌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마치 오함마로 머리를 한 대 딱 맞은 듯한 번쩍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내가 좀 더 내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도록 공부해야겠다.’ 그러한 자각이 든 이후 내 삶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 치 앞도 안보이던 우울의 끝에, 희망의 빛이 보이는 듯했다.
대학에 다시 복학한 이후, 나는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할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물으며 닥치는대로 이것 저것 동시에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거짓말처럼 수업도 너무 재미가 있었고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의 삶이 그제서야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씩 내 안의 어두움이 걷히는 듯했다.
그러다 정토회에서 주관하는 “깨달음의 장”이라는 곳을 다녀오게 되었다. 일종의 템플스테이 같은 것으로 나는 그곳에서 불교의 핵심 에센스를 체득할 수 있었다. 이후 나는 철학에 흥미가 생겨 동서양의 철학자들과 철학책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하나 하나 읽어갈수록, 점점 머리가 트이는 듯한 느낌과 동시에 마음이 편안해져갔다. ‘아, 이것이다!’ 내가 그토록 찾고 헤매던 것을 드디어 찾은 듯한 느낌에 나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지금 나의 사유가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그 여정을 되돌아 보니 짧은 세월에 꽤 많은 일들을 겪었구나, 그동안 참 많은 변화를 겪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또 얼마나 내가, 내 생각이, 바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현재까지에 이르러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全人的인 사람이 되기 위해 사회에 대한 우환의식(憂患意識)을 가지고 함장가정(含章可貞)하자. 그리고 때가 되면 세상에 이롭게 쓰일 수 있도록 내 모든 것을 쏟아내자.” 이러한 삶을 과연 내가 진정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는 매우 힘든 여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새는 알에서 태어나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한 세상을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진짜 태어나기 위해 나는 투쟁하고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고 언젠가 그 알을 깨고 나올 그 날을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나가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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