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 나의 아름다운 하루
"어떤 것이 아름다운가?" : 내 경험을 중심으로. 형식은 자유.
나는 떠오르는 아름다운 기억의 하루를 천천히 써내려갔다. 오롯이 나의 시선으로.
생각해보면 이런 나날도 분명 많았었는데,
힘들고 지칠 적에는 이런 행복한 시간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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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미학과예술 필수과제
“어떤 것이 아름다운가?”
: 내 경험을 중심으로
<나의 아름다운 하루>
2015. 9월 추석을 며칠 앞둔 어느 날의 일과.
아침 8시. 아버지의 밥 먹으라는 성화에 못 이겨 잠에서 깨어 일어납니다. 찬은 김치, 생선, 고추, 된장찌개, 계란 후라이, 김정도입니다. TV에서는 ‘인간극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잔잔하고 투박하지만, 그래서 더 와 닿는 이야기를 아버지와 함께 보면서 식사를 합니다.
“오늘 저녘에 느그 형 내려오고 느그 어미도 주간근무하고 퇴근하니까 저녘에 시간 맞춰 들어 온나!”
“네, 알겠습니다.”
저에게 말씀하시면서 아버지는 시마한테 연신 생선을 입에 넣어주시고 있습니다. 시마는 저희 집에 있는 반려동물입니다. 아버지는 시마를 정말로 열렬히 사랑하십니다. 아버지께선 ‘장사 접은 뒤에 본인을 위로해준 것은 시마밖에 없다’시며 시마에게 뽀뽀를 하십니다. 생선 비린내가 날 법도 한데, 아버지는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십니다. 어쨌거나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화로운 하루의 아침입니다.
오토바이에 올라 학교에 가려던 순간 아버지가 시마를 안고 나와서 말씀하십니다.
“잘 갔다 온나! 항상 오토바이 운전 조심하고!”
“예!”
스무 살 무렵부터 7년 동안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큰 사고한번 난 적 없지만, 부모님은 항상 제가 걱정되나 봅니다. 저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입니다.
학교 가는 길, 집 건너편 도로의 신호 앞에서 대기합니다. 다들 뭐가 그리도 바쁜지 사람 한명 겨우 지나갈 정도의 거리를 두고 도로에 차가 빽빽이 늘어서 있습니다. ‘저 사람들은 어떤 하루를 보낼까?’ 나름대로 이리저리 추측하며 관찰해보면 참 재밌는 풍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학교 가는 길엔 위협적으로 제 차선으로 들이밀고 추월해가는 차도 있고, 한편 먼저 지나가라며 양보해주는 차도 있습니다. 신호를 받아 대기하는 동안, 제 옆에 멈춰선 차에서 창문을 내리며 저에게 말을 거는 경우도 제법 많습니다.
“그 오토바이 기종이 뭐요?”
“아, 혼다 CG-125라는 건데, 저는 조금 튜닝을 해서 오리지널 모델하고는 조금 다릅니다.”
“음, 거 쓸만해 보이는데...!”
“감사합니다.”
바이크를 타고 도로를 달릴 때면 마치 세상의 풍경과 제가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듯한 환상적인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거기에 적당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까지 더해지면 그보다 더 기분 좋은 때도 없을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다 보면 다른 모터사이클 라이더들과 서로 눈빛을 주고받거나 엄지손가락을 척 올려주며 서로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합니다. 마치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우리를 이해 못해도 우리끼리는 무슨 마음으로 오토바이를 타는지 잘 안다는 듯 말이죠.
제 귀에는 장사익의 ‘찔레꽃’이 흘러나오는 중입니다.
‘역시 찔레꽃은 매번 들어도 감동적이군!’
감탄하면서 가다 보니 어느새 학교에 도착합니다.
강의실에 도착해 눈에 보이는 아무 빈자리에 앉아 교수님의 강의를 듣습니다. 교수님은 자신만의 강의 스타일대로 강의를 하십니다. 이 수업, 저 수업 듣다보면 교수님들마다의 스타일이 각각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어떤 교수님의 강의를 듣건, 꼭 하나씩은 얻어가는 게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듭니다. ‘아무 규정 없이 정해진 학점만 이수하면 졸업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듣고 싶은 수업들이 너무나도 많지만 정해진 규정대로 할 수 밖에 없음이 참 아쉬워집니다.
오후 6시. 수업이 끝난 뒤, 집으로 향합니다. 저희 가족은 누군가의 생일이나 명절, 연말 연초, 온 가족이 모인 날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외식을 하거나 집에서라도 풍성한 차림에서 다 같이 밥을 먹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단한 곳에 간다든지, 으리으리하게 차려 먹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저 평소보다 조금 더 괜찮은 곳에서, 좀 더 차린 상에서,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저희 가족은 온천장 쪽에 위치한 엄마가 일하는 병원 근처에서 만납니다. 그리고는 적당한 대안이 없을 때 보통 가곤 하는 돼지갈빗집에 갑니다. 아버지는 벌써부터 기분이 살짝 업 되십니다. 온 가족이 모일 때 저희집의 분위기메이커는 항상 아버지시거든요.
“니 서울 생활은 이제 적응 할만 하제?”
“예. 뭐 괜찮아요.”
“그래. 그 서울 깍쟁이들하고 생활하는게 보통 일 아니데이. 느그 알제? 아버지는 16살때부터 객지생활했다이가. 그때 생각하면 참...”
아버지는 기분이 좋아지셨는지 형 안부를 묻자마자 본인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러나 사실 형이 전혀 안 괜찮음을 우리는 모두 다 알고 있습니다. 불편한 몸으로 객지에서 홀로 생활함이란 정말 힘든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 어머니는 항상 형을 걱정하고, 걱정하고, 또 걱정하시죠. 곧이어 마음처럼 잘 해줄 수 없는 현실에 답답해하십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늘 그래왔듯, 적절한 유머와 농담을 던지면서 분위기가 무거워지지 않게끔 만드십니다. 고기가 익고, 술이 한잔 두잔 들어갑니다. 아버지는 점점 취기가 오르십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술을 단 한잔이라도 마시는 모습을 보기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또 아버지를 타박하시기 시작합니다. 아버지도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그래서 금주도 몇 번씩이나 시도하고 꽤 오랜 기간 유지하기도 하시지만, 결국 다시 소주를 드십니다. 이제 이때부터는 제 역할이 시작됩니다.
“에이, 엄마~ 오늘은 좋은 날이잖아? 기분 좋게 가자~ 알겠지?”
“느그 아부지 엊그제도 소주를 두병이나 혼자 뭇다. 맨날천날 저래 술마셔가 되나? 약 먹으면서...”
“아부지가 알아서 잘 하신다이가. 너무 뭐라하지마 엄마~”
“음...”
엄마는 뭔가 불만이 안 풀리신 눈치지만 더 이상 타박하시지 않고 식사를 하십니다. 서빙을 보시는 아주머님이 저희 테이블에 찌개와 밥, 반찬 등을 갖다 주십니다. 아버지는 외식을 나가면 종업원 아주머님께 꼭 농담을 하십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 안나지만, 옆에 같이 있는 사람이 조금 부끄러워지는 그런 농담입니다. 그럴 때면 사실
‘안 해도 될 말을 꼭 아버지는 하신다니까’
싶으면서도, 아주머니가 웃으시며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면 아버지의 유머는 나름 성공적인 듯합니다. 어머니의 얼굴을 봅니다. 어머니도 무안한 듯하지만 늘상 봐왔기에 체념한 듯 살며시 웃으십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지극히 평범하고 기분 좋은 식사자리입니다.
“아~ 오래간만에 우리 식구 다 모였는데, 노래방이나 갔다 갈까?”
“네. 가시죠!”
아버지는 온 가족이 함께 외식을 나올 때면 무조건 노래방에 가려고 하십니다. 아버지는 참 흥이 많은 분이십니다. 저와 저희 형 또한 그런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근처에 있는 노래방에 들어갑니다. 첫 곡은 거의 제가 부르는 편입니다.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을 부릅니다. 아버지는 기분이 한층 더 업 되시는지 맥주도 한잔 시키십니다. 어머니는
‘그래 소주를 몇 병이나 먹고 또 맥주도 마시냐’
는 말을 들릴 듯 말 듯 하게 하십니다만, 아버지는 이미 그 말이 들리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맥주가 들어옵니다. 이어서 아버지께서는 본인 평생의 레퍼토리 중 하나인 김태곤의 ‘망부석’을 부르십니다. 아버지는 박자를 자신만의 것으로 갖고 노시며 열창하십니다. 아, 물론 교과서적으로 보자면 박자를 잘 못 맞추시는 것일 수 있지만, 제가 보기엔 아버지가 박자를 갖고 노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버지는 흥에 겨워 노랫말처럼 ‘둥실 둥실’ 춤사위도 선보이시며 노래를 부르십니다.
노래가 끝난 뒤, 아버지는 만족하신 듯 웃으시며 어머니 옆에 바짝 붙어 앉으십니다. 그리고는
‘여보, 사랑해!’
하시며 볼에 뽀뽀를 하십니다. 어머니는 질겁하시며 이를 피하려 하시지만, 결국은 받아주십니다. 제가 보기엔, 어머니는 겉으론 싫은 척 하시지만 내심 기분이 나쁘진 않으신 듯 보입니다.
“당신도 한곡 해봐라!”
“아이, 난 안할라요.”
저는 어머니가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시는 모습을 딱 한번 본 적 있습니다. 그때도 정말 마지 못해 부르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 못 부르시는 편도 아니시지만, 어머니는 거의 노래를 부르지 않으십니다. 아마도 어머니는 노래 부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집에서 음악과 관련된 프로그램들은 꼭 챙겨 보시곤 하십니다. 문득 궁금해져서 어머니께 여쭤봅니다.
“엄마도 노래 좋아하나?”
“뭐, 부르는 건 자신 없지만 듣는 건 좋아하지. 그리고 요새 프로그램들이 보다보면 재밌데.”
부부는 서로 약간 상반된 면이 있는 게 오히려 살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보면 여러 면에서 참 다른 점이 많다 싶은데도 여태껏 저렇게 사시는 걸 보면 그 말이 어느 정도는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노래방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향합니다. 집으로 가는 길엔, 보통 온천천을 따라 걸어갑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집에 도착합니다. 현관문을 열면 하루 종일 홀로 저희 집을 지키고 있던 시마가 왕왕 짓어댑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시마를 다독거려줍니다. 저희 가족은 참 다른 듯 하면서도 꼭 닮았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형, 그리고 시마까지. 저희 식구가 모두 모여 냉장고에 있는 과일을 꺼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TV는 혼자 떠들어대고는 있지만, 왠지 소외된 것처럼 여겨집니다.
“야, 이 얼마나 좋노? 식구는 원래 이렇게 같이 한집에서 생활하면서 밥 먹고 이야기하고 그런긴데 참...어쨌든 다들 자기 위치에서 잘 하고 있으니 좋다! 지금처럼 열심히 하면 잘 될끼다. 아부지도 아직 팔팔하다이가!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알겠제?”
“예!”
늘상 아버지는 같은 얘기를 하시지만, 예전에는 아버지가 말씀하시던 바를 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고리타분하고 뻔한 이야기라고만 생각했고, 전 어떻게든 집에서 뛰쳐나와 뭔가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어 안달이 났었죠. 그러나 지금, 가족들과 기분 좋게 보낸 하루를 되돌아보며 저는 생각합니다.
‘행복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돌이켜보면 딱히 특별한 하루를 보낸 것도 아니지만,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편안함이 느껴집니다. 그래서일까요. 이런 하루는 다른 날보다 유독 더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참, 아름다운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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