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 날개

Posted by 히키신
2017. 2. 24. 02:44 음미할만한 말과 단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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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아마 고등학생 무렵즈음부터 나는 이상을 굉장히 존경하고 또 좋아했다. 그의 시와 소설 전집을 읽어내리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함에도 어떤 알 수 없는 묘한 동질감에 사로잡혔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 시절에도 두어 번 읽어 보고 또 나름 흉내내보려 했던 적도 있었다. 오랜만에 이상의 유명한, 그리고 그나마 덜 난해한, <날개>를 다시 읽어 본다. 작가가 사망한 지 70년이 지나면 저작권 시효가 소멸되므로 전문을 다 실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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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1936년에 발표한 소설. 잡지 《조광》에 발표. 1930년대 심리주의 또는 주지주의 문학 중에서 대표적인 작품이다. 대적 불안과 자의식을 표현한 작품으로, 사회와 역사에 대한 절망과 자아(自我)의 해체를 보여준다. —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의 〈근대 문예사조와 본격 문학기〉에서 인용.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횟배 앓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릿속에 으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오. 그 위에다 나는 위트와 패러독스를 바둑 포석처럼 늘어놓소. 가증할 상식의 병이오.

나는 또 여인과 생활을 설계하오. 연애기법에마저 서먹서먹해진 지성의 극치를 흘깃 좀 들여다본 일이 있는, 말하자면 일종의 정신분일자말이오. 이런 여인의 반 — 그것은 온갖 것의 반이오. — 만을 영수하는 생활을 설계한다는 말이오. 그런 생활 속에 한 발만 들여놓고 흡사 두 개의 태양처럼 마주 쳐다보면서 낄낄거리는 것이오. 나는 아마 어지간히 인생의 제행이 싱거워서 견딜 수가 없게끔 되고 그만둔 모양이오. 굿바이.

굿바이. 그대는 이따금 그대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을 탐식하는 아이러니를 실천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소. 위트와 패러독스와…….

그대 자신을 위조하는 것도 할 만한 일이오. 그대의 작품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기성품에 의하여 차라리 경편하고 고매하리다.

19세기는 될 수 있거든 봉쇄하여 버리오. 도스토옙스키 정신이란 자칫하면 낭비일 것 같소. 위고를 불란서의 빵 한 조각이라고는 누가 그랬는지 지언인 듯싶소. 그러나 인생 혹은 그 모형에 있어서 ‘디테일’ 때문에 속는다거나 해서야 되겠소?

화를 보지 마오. 부디 그대께 고하는 것이니…….

“테이프가 끊어지면 피가 나오. 생채기도 머지않아 완치될 줄 믿소. 굿바이.” 감정은 어떤 ‘포우즈’. (그 ‘포우즈’의 원소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닌지 나도 모르겠소.) 그 포우즈가 부동자세에까지 고도화할 때 감정은 딱 공급을 정지합네다.

나는 내 비범한 발육을 회고하여 세상을 보는 안목을 규정하였소.

여왕봉과 미망인— 세상의 하고 많은 여인이 본질적으로 이미 미망인이 아닌 이가 있으리까? 아니, 여인의 전부가 그 일상에 있어서 개개 ‘미망인’이라는 내 논리가 뜻밖에도 여성에 대한 모험이 되오? 굿바이.

그 33번지라는 것이 구조가 흡사 유곽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다.

한 번지에 18가구가 죽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서 창호가 똑같고 아궁이 모양이 똑같다. 게다가 각 가구에 사는 사람들이 송이송이 꽃과 같이 젊다.

해가 들지 않는다. 해가 드는 것을 그들이 모른 체하는 까닭이다. 턱살밑에다 철줄을 매고 얼룩 진 이부자리를 널어 말린다는 핑계로 미닫이에 해가 드는 것을 막아 버린다. 침침한 방안에서 낮잠들을 잔다. 그들은 밤에는 잠을 자지 않나? 알 수 없다. 나는 밤이나 낮이나 잠만 자느라고 그런 것을 알 길이 없다. 33번지 18가구의 낮은 참 조용하다.

조용한 것은 낮뿐이다. 어둑어둑하면 그들은 이부자리를 걷어 들인다. 전등불이 켜진 뒤의 18가구는 낮보다 훨씬 화려하다. 저물도록 미닫이 여닫는 소리가 잦다. 바빠진다. 여러 가지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비웃 굽는 내, 탕고도오랑내, 뜨물내, 비눗내.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도 그들의 문패가 제일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이다.

이 18가구를 대표하는 대문이라는 것이 일각이 져서 외따로 떨어지기는 했으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 번도 닫힌 일이 없는, 한길이나 마찬가지 대문인 것이다. 온갖 장사치들은 하루 가운데 어느 시간에라도 이 대문을 통하여 드나들 수 있는 것이다. 이네들은 문간에서 두부를 사는 것이 아니라, 미닫이를 열고 방에서 두부를 사는 것이다. 이렇게 생긴 33번지 대문에 그들 18 가구의 문패를 몰아다 붙이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들은 어느 사이엔가 각 미닫이 위 백인당이니 길상당이니 써 붙인 한 곁에다 문패를 붙이는 풍속을 가져 버렸다.

내 방 미닫이 위 한 곁에 칼표 딱지를 넷에다 낸 것만한 내— 아니! 내 아내의 명함이 붙어 있는 것도 이 풍속을 좇은 것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러나 그들의 아무와도 놀지 않는다. 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사도 않는다. 나는 내 아내와 인사하는 외에 누구와도 인사하고 싶지 않았다. 내 아내 외의 다른 사람과 인사를 하거나 놀거나 하는 것은 내 아내 낯을 보아 좋지 않은 일인 것만 같이 생각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만큼까지 내 아내를 소중히 생각한 것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내 아내를 소중히 생각한 까닭은 이 33번지 18가구 속에서 내 아내가 내 아내의 명함처럼 제일 작고 제일 아름다운 것을 안 까닭이다. 18가구에 각기 빌어 들은 송이송이 꽃들 가운데서도 내 아내가 특히 아름다운 한 떨기의 꽃으로 이 함석지붕 밑 볕 안 드는 지역에서 어디까지든지 찬란하였다. 따라서 그런 한 떨기 꽃을 지키고 — 아니 그 꽃에 매어달려 사는 나라는 존재가 도무지 형언할 수 없는 거북살스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나는 어디까지든지 내 방이 — 집이 아니다. 집은 없다. — 마음에 들었다. 방안의 기온은 내 체온을 위하여 쾌적하였고, 방안의 침침한 정도가 또한 내 안력을 위하여 쾌적하였다. 나는 내 방 이상의 서늘한 방도 또 따뜻한 방도 희망하지 않았다. 이 이상으로 밝거나 이 이상으로 아늑한 방은 원하지 않았다. 내 방은 나 하나를 위하여 요만한 정도를 꾸준히 지키는 것 같아 늘 내 방에 감사하였고, 나는 또 이런 방을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 같아서 즐거웠다.

그러나 이것은 행복이라든가 불행이라든가 하는 것을 계산하는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나는 내가 행복되다고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고, 그렇다고 불행하다고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그날을 그저 까닭없이 펀둥펀둥 게으르고만 있으면 만사는 그만이었던 것이다.

내 몸과 마음에 옷처럼 잘 맞는 방 속에서 뒹굴면서, 축 쳐져 있는 것은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그런 세속적인 계산을 떠난, 가장 편리하고 안일한 말하자면 절대적인 상태인 것이다. 나는 이런 상태가 좋았다.

이 절대적인 내 방은 대문간에서 세어서 똑 일곱째 칸이다. 러키세븐의 뜻이 없지 않다. 나는 이 일곱이라는 숫자를 훈장처럼 사랑하였다. 이런 이 방이 가운데 장지로 말미암아 두 칸으로 나뉘어 있었다는 그것이 내 운명의 상징이었던 것을 누가 알랴? 아랫방은 그래도 해가 든다. 아침결에 책보만한 해가 들었다가 오후에 손수건만 해지면서 나가 버린다. 해가 영영 들지 않는 윗방이 즉 내 방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볕드는 방이 아내 방이요, 볕 안드는 방이 내 방이요 하고 아내와 나 둘 중에 누가 정했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불평이 없다.

아내가 외출만 하면 나는 얼른 아랫방으로 와서 그 동쪽으로 난 들창을 열어 놓고 열어놓으면 들이비치는 햇살이 아내의 화장대를 비춰 가지각색 병들이 아롱이 지면서 찬란하게 빛나고, 이렇게 빛나는 것을 보는 것은 다시없는 내 오락이다. 나는 조그만 돋보기를 꺼내가지고 아내만이 사용하는 지리가미를 꺼내 가지고 그을려가면서 불장난을 하고 논다. 평행광선을 굴절시켜서 한 초점에 모아가지고 그 초점이 따끈따끈해지다가, 마지막에는 종이를 그을리기 시작하고, 가느다란 연기를 내면서 드디어 구멍을 뚫어 놓는 데까지 이르는, 고 얼마 안 되는 동안의 초조한 맛이 죽고 싶을 만큼 내게는 재미있었다.

이 장난이 싫증이 나면 나는 또 아내의 손잡이 거울을 가지고 여러 가지로 논다. 거울이란 제 얼굴을 비칠 때만 실용품이다. 그 외의 경우에는 도무지 장난감인 것이다. 이 장난도 곧 싫증이 난다.

나의 유희심은 육체적인 데서 정신적인 데로 비약한다. 나는 거울을 내던지고 아내의 화장대 앞으로 가까이 가서 나란히 늘어 놓인 그 가지각색의 화장품 병들을 들여다본다. 고것들은 세상의 무엇보다도 매력적이다. 나는 그 중의 하나만을 골라서 가만히 마개를 빼고 병 구멍을 내 코에 가져다 대고 숨죽이듯이 가벼운 호흡을 하여 본다. 이국적인 센슈얼한 향기가 폐로 스며들면 나는 저절로 스르르 감기는 내 눈을 느낀다. 확실히 아내의 체취의 파편이다.

나는 도로 병마개를 막고 생각해 본다. 아내의 어느 부분에서 요 냄새가 났던가를…… 그러나 그것은 분명하지 않다. 왜? 아내의 체취는 여기 늘어섰을 가지각색 향기의 합계일 것이니까.

아내의 방은 늘 화려하였다. 내 방이 벽에 못 한 개 꽂히지 않은 소박한 것인 반대로, 아내 방에는 천장 밑으로 쫙 돌려 못이 박히고, 못마다 화려한 아내의 치마와 저고리가 걸렸다. 여러 가지 무늬가 보기 좋다. 나는 그 여러 조각의 치마에서 늘 아내의 동체와, 그 동체가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포우즈를 연상하고 연상하면서 내 마음은 늘 점잖지 못하다.

그렇건만 나에게는 옷이 없었다. 아내는 내게 옷을 주지 않았다. 입고 있는 코르덴양복 한 벌이 내 자리옷이었고 통상복과 나들이옷을 겸한 것이었다. 그리고 하이넥의 스웨터가 한 조각 사철을 통한 내 내의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다 빛이 검다. 그것은 내 짐작 같아서는 즉 빨래를 될 수 있는 데까지 하지 않아도 보기 싫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한다. 나는 허리와 두 가랑이 세 군데 다— 고무 밴드가 끼어 있는 부드러운 사루마다를 입고 그리고 아무 소리 없이 잘 놀았다.

어느덧 손수건 만해졌던 볕이 나갔는데 아내는 외출에서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요만 일에도 좀 피곤하였고 또 아내가 돌아오기 전에 내 방으로 가 있어야 될 것을 생각하고 그만 내 방으로 건너간 다. 내 방은 침침하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낮잠을 잔다. 한 번도 걷은 일이 없는 내 이부자리 는 내 몸뚱이의 일부분처럼 내게는 참 반갑다. 잠은 잘 오는 적도 있다. 그러나 또 전신이 까칫까칫하면서 영 잠이 오지 않는 적도 있다. 그런 때는 아무 제목으로나 제목을 하나 골라서 연구하였다. 나는 내 좀 축축한 이불속에서 참 여러 가지 발명도 하였고 논문도 많이 썼다. 시도 많이 지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내가 잠이 드는 것과 동시에 내 방에 담겨서 철철 넘치는 그 흐늑흐늑한 공기 에 다 비누처럼 풀어져서 온데간데없고, 한잠 자고 깨인 나는 속이 무명헝겊이나 메밀껍질로 띵띵 찬 한 덩어리 베개와도 같은 한 벌 신경이었을 뿐이고 뿐이고 하였다.

그러기에 나는 빈대가 무엇보다도 싫었다. 그러나 내 방에서는 겨울에도 몇 마리의 빈대가 끊이지 않고 나왔다. 내게 근심이 있었다면 오직 이 빈대를 미워하는 근심일 것이다. 나는 빈대에게 물려서 가려운 자리를 피가 나도록 긁었다. 쓰라리다. 그것은 그윽한 쾌감에 틀림없었다. 나는 혼곤히 잠이 든다.

나는 그러나 그런 이불 속의 사색 생활에서도 적극적인 것을 궁리하는 법이 없다. 내게는 그럴 필요가 대체 없었다. 만일 내가 그런 좀 적극적인 것을 궁리해내었을 경우에 나는 반드시 내 아내 와 의논하여야 할 것이고, 그러면 반드시 나는 아내에게 꾸지람을 들을 것이고— 나는 꾸지람이 무서웠다느니 보다는 성가셨다. 내가 제법 한 사람의 사회인의 자격으로 일을 해 보는 것도 아내에게 사설 듣는 것도 나는 가장 게으른 동물처럼 게으른 것이 좋았다. 될 수만 있으면 이 무의미한 인간의 탈을 벗어 버리고도 싶었다.

나에게는 인간 사회가 스스러웠다. 생활이 스스러웠다. 모두가 서먹서먹할 뿐이었다.

아내는 하루에 두 번 세수를 한다.

나는 하루 한 번도 세수를 하지 않는다.

나는 밤중 세 시나 네 시쯤 해서 변소에 갔다.

달이 밝은 밤에는 한참씩 마당에 우두커니 섰다가 들어오곤 한다. 그러니까 나는 이 18가구의 아무와도 얼굴이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 18가구의 젊은 여인네 얼굴들을 거반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내 아내만 못하였다.

열한 시쯤 해서 하는 아내의 첫 번 세수는 좀 간단하다. 그러나 저녁 일곱 시쯤 해서 하는 두 번째 세수는 손이 많이 간다. 아내는 낮에 보다도 밤에 더 좋고 깨끗한 옷을 입는다. 그리고 낮에도 외출하고 밤에도 외출하였다.

아내에게 직업이 있었던가? 나는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만일 아내에게 직업이 없었다면 같이 직업이 없는 나처럼 외출할 필요가 생기지 않을 것인데— 아내는 외출한다. 외출할 뿐만 아니라 내객이 많다. 아내에게 내객이 많은 날은 나는 온종일 내 방에서 이불을 쓰고 누워 있어야만 된다.

불장난도 못한다. 화장품 냄새도 못 맡는다. 그런 날은 나는 의식적으로 우울해 하였다. 그러면 아내는 나에게 돈을 준다. 오십 전짜리 은화다. 나는 그것이 좋았다.

그러나 그것을 무엇에 써야 옳을지 몰라서 늘 머리맡에 던져두고 두고 한 것이 어느 결에 모여서 꽤 많아졌다 어느 날 이것을 본 아내는 금고처럼 생긴 벙어리를 사다 준다.

나는 한 푼씩 한 푼씩 그 속에 넣고 열쇠는 아내가 가져갔다. 그 후에도 나는 더러 은화를 그 벙어리에 넣은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게을렀다. 얼마 후 아내의 머리 쪽에 보지 못하던 누깔잠이 하나 여드름처럼 돋았던 것은 바로 그 금고형 벙어리의 무게가 가벼워졌다는 증거일까. 그러나 나는 드디어 머리맡에 놓았던 그 벙어리에 손을 대지 않고 말았다. 내 게으름은 그런 것에 내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싫었다.

아내에게 내객이 있는 날은 이불 속으로 암만 깊이 들어가도 비 오는 날만큼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나는 그런 때 나에게 왜 늘 돈이 있나 왜 돈이 많은가를 연구했다. 내객들은 장지 저쪽에 내가 있는 것을 모르나보다. 내 아내와 나도 좀 하기 어려운 농을 아주 서슴지 않고 쉽게 해 던지는 것이다. 그러나 내 아내를 찾은 서너 사람의 내객들은 늘 비교적 점잖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자정이 좀 지나면 으레 돌아들 갔다.

그들 가운데에는 퍽 교양이 얕은 자도 있는 듯싶었는데, 그런 자는 보통 음식을 사다 먹고 논다.

그래서 보충을 하고 대체로 무사하였다. 나는 우선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가를 연구하기에 착수하였으나 좁은 시야와 부족한 지식으로는 이것을 알아내기 힘이 든다. 나는 끝끝내 내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말려나보다.

아내는 늘 진솔 버선만 신었다. 아내는 밥도 지었다. 아내가 밥을 짓는 것을 나는 한 번도 구경한 일은 없으나 언제든지 끼니때면 내 방으로 내 조석 밥을 날라다 주는 것이다. 우리 집에는 나와 내 아내 외의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밥은 분명 아내가 손수 지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아내는 한 번도 나를 자기 방으로 부른 일은 없다. 나는 늘 윗방에서나 혼자서 밥을 먹고 잠을 잤다.

밥은 너무 맛이 없었다. 반찬이 너무 엉성하였다. 나는 닭이나 강아지처럼 말없이 주는 모이를 넓적넓적 받아먹기는 했으나 내심 야속하게 생각한 적도 더러 없지 않다.

나는 안색이 여지없이 창백해가면서 말라 들어갔다. 나날이 눈에 보이듯이 기운이 줄어들었다. 영 양 부족으로 하여 몸뚱이 곳곳의 뼈가 불쑥불쑥 내어 밀었다. 하룻밤 사이에도 수십 차를 돌쳐 눕지 않고는 여기저기가 배겨서 나는 배겨낼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이불 속에서 아내가 늘 흔히 쓸 수 있는 저 돈의 출처를 탐색해 내는 일 변 장지 틈으로 새어나오는 아랫방의 음성은 무엇일까를 간단히 연구하였다.

나는 잠이 잘 안 왔다.

깨달았다. 아내가 쓰는 그 돈은 내게는 다만 실없는 사람들로밖에 보이지 않는 까닭 모를 내객들이 놓고 가는 것이 틀림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왜 그들 내객은 돈을 놓고 가나? 왜 내 아내는 그 돈을 받아야 되나? 하는 예의 관념이 내게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저 예의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혹 무슨 대가일까? 보수일까? 내 아 내가 그들의 눈에는 동정을 받아야만 할 한 가엾은 인물로 보였던가? 이런 것들을 생각하노라면 으레 내 머리는 그냥 혼란하여 버리고 버리고 하였다. 잠들기 전에 획득했다는 결론이 오직 불쾌하다는 것뿐이었으면서도 나는 그런 것을 아내에게 물어 보거나 한 일이 참 한 번도 없다. 그것은 대체 귀찮기도 하려니와 한잠 자고 일어나는 나는 사뭇 딴 사람처럼 이것도 저것도 다 깨끗이 잊어버리고 그만 두는 까닭이다.

내객들이 돌아가고, 혹 외출에서 돌아오고 하면 아내는 간편한 것으로 옷을 바꾸어 입고 내 방으로 나를 찾아온다. 그리고 이불을 들치고 내 귀에는 영 생동생동한 몇 마디 말로 나를 위로하려든다. 나는 조소도 고소도 홍소도 아닌 웃음을 얼굴에 띠고 아내의 아름다운 얼굴을 쳐다본다. 아내는 방그레 웃는다. 그러나 그 얼굴에 떠도는 일말의 애수를 나는 놓치지 않는다.

아내는 능히 내가 배고파하는 것을 눈치 챌 것이다. 그러나 아랫방에서 먹고 남은 음식을 나에게 주려 들지는 않는다. 그것은 어디까지든지 나를 존경하는 마음일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배가 고프면서도 적이 마음이 든든한 것을 좋아했다. 아내가 무엇이라고 지껄이고 갔는지 귀에 남아 있을 리가 없다. 다만 내 머리맡에 아내가 놓고 간 은화가 전등불에 흐릿하게 빛나고 있을 뿐이다.

고 금고형 벙어리 속에 은화가 얼마만큼이나 모였을까? 나는 그러나 그것을 쳐들어 보지 않았다. 그저 아무런 의욕도 기원도 없이 그 단춧구멍처럼 생긴 틈바구니로 은화를 떨어뜨려 둘 뿐이었다.

왜 아내의 내객들이 아내에게 돈을 놓고 가나 하는 것이 풀 수 없는 의문인 것같이, 왜 아내는 나에게 돈을 놓고 가나 하는 것도 역시 나에게는 똑같이 풀 수 없는 의문이었다.

내 비록 아내가 내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 싫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만 고것이 내 손가락 닿는 순간에서부터 고 벙어리 주둥이에서 자취를 감추기까지의 하잘것없는 짧은 촉각이 좋았달 뿐이지 그 이상 아무 기쁨도 없다.

어느 날 나는 고 벙어리를 변소에 갖다 넣어 버렸다. 그 때 벙어리 속에는 몇 푼이나 되는지 모르겠으나 고 은화들이 꽤 들어 있었다.

나는 내가 지구 위에 살며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지구가 질풍신뢰의 속력으로 광대무변의 공간을 달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참 허망하였다. 나는 이렇게 부지런한 지구 위에서는 현기증도 날 것 같고 해서 한시바삐 내려 버리고 싶었다.

이불 속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난 뒤에는 나는 고 은화를 고 벙어리에 넣고 넣고 하는 것조차 귀찮아졌다. 나는 아내가 손수 벙어리를 사용하였으면 하고 생각하였다.

벙어리도 돈도 사실은 아내에게만 필요한 것이지 내게는 애초부터 의미가 전연 없는 것이었으니까 될 수만 있으면 그 벙어리를 아내는 아내 방으로 가져갔으면 하고 기다렸다.

그러나 아내는 가져가지 않는다. 나는 내가 아내 방으로 가져다 둘까 하고 생각하여 보았으나 그 즈음에는 아내의 내객이 워낙 많아서 내가 아내 방에 가 볼 기회가 도무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변소에 갖다 집어넣어 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서글픈 마음으로 아내의 꾸지람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내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않았을 뿐 아니라 여전히 돈은 돈대로 머리맡에 놓고 가지 않나! 내 머리맡에는 어느덧 은화가 꽤 많이 모였다.

내객이 아내에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나 아내가 내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나 일종의 쾌감 — 그 외의 다른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을 나는 또 이불 속에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쾌감이라면 어떤 종류의 쾌감일까를 계속하여 연구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불 속의 연구로는 알 길이 없었다. 쾌감, 쾌감, 하고 나는 뜻밖에도 이 문제에 대해서만 흥미를 느꼈다.

아내는 물론 나를 늘 감금하여 두다시피 하여 왔다. 내게 불평이 있을 리 없다. 그런 중에도 나는 그 쾌감이라는 것의 유무를 체험하고 싶었다.

나는 아내의 밤 외출 틈을 타서 밖으로 나왔다. 나는 거리에서 잊어버리지 않고 가지고 나온 은화를 지폐로 바꾼다. 오 원이나 된다.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나는 목적지를 잃어버리기 위하여 얼마든지 거리를 쏘다녔다. 오래간만에 보는 거리는 거의 경이에 가까울 만큼 내 신경을 흥분시키지 않고는 마지않았다. 나는 금시에 피곤하여 버렸다.

그러나 나는 참았다. 그리고 밤이 이슥하도록 까닭을 잃어버린 채 이 거리 저 거리로 지향 없이 헤매었다. 돈은 물론 한 푼도 쓰지 않았다. 돈을 쓸 아무 엄두도 나서지 않았다. 나는 벌써 돈을 쓰는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것 같았다.

나는 과연 피로를 이 이상 견디기가 어려웠다. 나는 가까스로 내 집을 찾았다. 나는 내 방을 가려면 아내 방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아내에게 내객이 있나 없나를 걱정하면서 미닫이 앞에서 좀 거북살스럽게 기침을 한 번 했더니, 이것은 참 또 너무도 암상스럽게 미닫이가 열리면서 아내의 얼굴과 그 등 뒤에 낯선 남자의 얼굴이 이쪽을 내다보는 것이다. 나는 별안간 내어 쏟아지는 불빛에 눈이 부셔서 좀 머뭇머뭇했다.

나는 아내의 눈초리를 못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모른 체하는 수밖에 없었다.

왜? 나는 어쨌든 아내의 방을 통과하지 아니하면 안 되니까…….

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무엇보다도 다리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불 속에서는 가슴이 울렁거리면서 암만해도 까무러칠 것만 같았다. 걸을 때는 몰랐더니 숨이 차다. 등에 식은땀이 쭉 내배인다. 나는 외출한 것을 후회하였다. 이런 피로를 잊고 어서 잠이 들었으면 좋았다. 한잠 잘 자고 싶었다.

얼마동안이나 비스듬히 엎드려 있었더니 차츰차츰 뚝딱 거리는 가슴 동계가 가라앉는다. 그만해도 우선 살 것 같았다. 나는 몸을 들쳐 반듯이 천장을 향하여 눕고 쭉 다리를 뻗었다.

그러나 나는 또 다시 가슴의 동계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아랫방에서 아내와 그 남자의 내 귀에도 들리지 않을 만큼 낮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는 기척이 장지 틈으로 전하여 왔던 것이다. 청각을 더 예민하게 하기 위하여 나는 눈을 떴다. 그리고 숨을 죽였다.

그러나 그 때는 벌써 아내와 남자는 앉았던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섰고 일어서면서 옷과 모자 쓰는 기척이 나는 듯하더니 이어 미닫이가 열리고 구두 뒤축 소리가 나고 그리고 뜰에 내려서는 소리가 쿵 하고 나면서 뒤를 따르는 아내의 고무신 소리가 두어 발짝 찍찍 나고 사뿐사뿐 나나 하는 사이에 두 사람의 발소리가 대문 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아내의 이런 태도를 본 일이 없다. 아내는 어떤 사람과도 결코 소곤거리는 법이 없다. 나는 윗방에서 이불을 쓰고 누운 동안에도 혹 술이 취해서 혀가 잘 돌아가지 않는 내객들의 담화는 더러 놓치는 수가 있어도 아내의 높지도 낮지도 않은 말소리는 일찍이 한마디도 놓쳐 본 일이 없다.

더러 내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있어도 나는 그것이 태연한 목소리로 내 귀에 들렸다는 이유로 충분히 안심이 되었다.

그렇던 아내의 이런 태도는 필시 그 속에 여간하지 않은 사정이 있는 듯 시피 생각이 되고 내 마음은 좀 서운했으나 그보다도 나는 좀 너무 피로해서 오늘만은 이불 속에서 아무것도 연구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하고 잠을 기다렸다. 낮잠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문간에 나간 아내도 좀처럼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 흐지부지 나는 잠이 들어 버렸다. 꿈이 얼쑹덜쑹 종을 잡을 수 없는 거리의 풍경을 여전히 헤매었다.

나는 몹시 흔들렸다. 내객을 보내고 들어온 아내가 잠든 나를 잡아 흔드는 것이다. 나는 눈을 번쩍 뜨고 아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내의 얼굴에는 웃음이 없다. 나는 좀 눈을 비비고 아내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노기가 눈초리에 떠서 얇은 입술이 바르르 떨린다. 좀처럼 이 노기가 풀리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아 버렸다. 벼락이 내리기를 기다린 것이다. 그러나 쌔근 하는 숨소리가 나면서 부스스 아내의 치맛자락 소리가 나고 장지가 여닫히며 아내는 아내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다시 몸을 돌쳐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개구리처럼 엎드리고 엎드려서 배가 고픈 가운데도 오늘 밤의 외출을 또 한 번 후회하였다.

나는 이불 속에서 아내에게 사죄하였다. 그것은 네 오해라고…… 나는 사실 밤이 퍽 이슥한 줄만 알았던 것이다. 그것이 네 말마따나 자정 전인지는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다. 나는 너무 피곤하였다. 오래간만에 나는 너무 많이 걸은 것이 잘못이다.

내 잘못이라면 잘못은 그것 밖에 없다. 외출은 왜 하였더냐고? 나는 그 머리맡에 저절로 모인 오 원 돈을 아무에게라도 좋으니 주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내 잘못이라면 나는 그렇게 알겠다. 나는 후회하고 있지 않나? 내가 그 오 원 돈을 써 버릴 수가 있었던들 나는 자정 안에 집에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리는 너무 복잡하였고 사람은 너무도 들끓었다. 나는 어느 사람을 붙들고 그 오 원 돈을 내어 주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여지없이 피곤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좀 쉬고 싶었다. 눕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내 짐작 같아서는 밤이 어지간히 늦은 줄만 알았는데, 그것이 불행히도 자정 전이었다는 것은 참 안된 일이다. 미안한 일이다. 나는 얼마든지 사죄하여도 좋다. 그러나 종시 아내의 오해를 풀지 못하였다 하면 내가 이렇게까지 사죄하는 보람은 그럼 어디 있나? 한심하였다.

한 시간 동안을 나는 이렇게 초조하게 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이불을 홱 젖혀 버리고 일어나서 장지를 열고 아내 방으로 비칠비칠 달려갔던 것이다. 내게는 거의 의식이라는 것이 없었다.

나는 아내 이불 위에 엎드러지면서 바지 포켓 속에서 그 돈 오 원을 꺼내 아내 손에 쥐어 준 것을 간신히 기억할 뿐이다.

이튿날 잠이 깨었을 때 나는 내 아내 방 아내 이불 속에 있었다. 이것이 이 33번지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 내가 아내 방에서 잔 맨 처음이었다.

해가 들창에 훨씬 높았는데 아내는 이미 외출하고 벌써 내 곁에 있지는 않다. 아니! 아내는 엊저녁 내가 의식을 잃은 동안에 외출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을 조사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전신이 찌뿌드드한 것이 손가락 하나 꼼짝할 힘조차 없었다. 책보보다 좀 작은 면적의 볕이 눈이 부시다. 그 속에서 수없이 먼지가 흡사 미생물처럼 난무한다. 코가 콱 막히는 것 같다.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낮잠을 자기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코를 스치는 아내의 체취는 꽤 도발적이었다. 나는 몸을 여러 번 여러 번 비비꼬면서 아내의 화장대에 늘어선 고 가지각색 화장품 병들의 마개를 뽑았을 때 풍기는 냄새를 더듬느라고 좀처럼 잠은 들지 않는 것을 나는 어찌하는 수도 없었다.

견디다 못하여 나는 그만 이불을 걷어차고 벌떡 일어나서 내 방으로 갔다. 내 방에는 다 식어빠진 내 끼니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이다. 내 방에는 다 식어 빠진 내 끼니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이다. 아내는 내 모이를 여기다 두고 나간 것이다. 나는 우선 배가 고팠다. 한 숟갈을 입에 떠 넣었을 때 그 촉감은 참 너무도 냉회와 같이 써늘하였다. 나는 숟갈을 놓고 내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하룻밤을 비었던 내 이부자리는 여전히 반갑게 나를 맞아 준다. 나는 내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번에는 참 늘어지게 한잠 잤다. 잘—

내가 잠을 깬 것은 전등이 켜진 뒤다. 그러나 아내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나보다.

아니! 돌아왔다 또 나갔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것을 상고하여 무엇하나? 정신이 한결 난다. 나는 밤일을 생각해 보았다. 그 돈 오 원을 아내 손에 쥐어 주고 넘어졌을 때에 느낄 수 있었던 쾌감을 나는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객들이 내 아내에게 돈 놓고 가는 심리며 내 아내가 내게 돈 놓고 가는 심리의 비밀을 나는 알아낸 것 같아서 여간 즐거운 것이 아니다.

나는 속으로 빙그레 웃어 보았다.

이런 것을 모르고 오늘까지 지내온 내 자신이 어떻게 우스꽝스럽게 보이는지 몰랐다.

따라서 나는 또 오늘 밤에도 외출하고 싶었다. 그러나 돈이 없다. 나는 또 엊저녁에 그 돈 오 원을 한꺼번에 아내에게 주어 버린 것을 후회하였다. 또 고 벙어리를 변소에 갖다 처넣어 버린 것도 후회하였다. 나는 실없이 실망하면서 습관처럼 그 돈 오 원이 들어 있던 내 바지 포켓에 손을 넣어 한번 휘둘러보았다. 뜻밖에도 내 손에 쥐어지는 것이 있었다. 이 원 밖에 없다. 그러나 많아야 맛은 아니다. 얼마간이고 있으면 된다. 나는 그만한 것이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기운을 얻었다. 나는 그 단벌 다 떨어진 코르덴 양복을 걸치고 배고픈 것도 주제 사나운 것도 다 잊어버리고 활갯짓을 하면서 또 거리로 나섰다. 나서면서 나는 제발 시간이 화살 단듯해서 자정이 어서 홱 지나 버렸으면 하고 조바심을 태웠다. 아내에게 돈을 주고 아내 방에서 자 보는 것은 어디까지든지 좋았지만 만일 잘못해서 자정 전에 집에 들어갔다가 아내의 눈총을 맞는 것은 그것은 여간 무서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저물도록 길가 시계를 들여다보고 들여다보고 하면서 또 지향 없이 거리를 방황하였다. 그러나 이날은 좀처럼 피곤하지는 않았다. 다만 시간이 좀 너무 더디게 가는 것만 같아서 안타까웠다.

경성역(京城驛) 시계가 확실히 자정을 지난 것을 본 뒤에 나는 집을 향하였다. 그날은 그 일각대문에서 아내와 아내의 남자가 이야기하고 서 있는 것을 만났다. 나는 모른 체하고 두 사람 곁을 지나서 내 방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아내도 들어왔다. 와서는 이 밤중에 평생 안 하던 쓰레질을 하는 것이었다. 조금 있다가 아내가 눕는 기척을 엿보자마자 나는 또 장지를 열고 아내 방으로 가서 그 돈 이 원을 아내 손에 덥석 쥐어 주고 그리고— 하여간 그 이 원을 오늘 밤에도 쓰지 않고 도로 가져온 것이 참 이상하다는 듯이 아내는 내 얼굴을 몇 번이고 엿보고— 아내는 드디어 아무 말도 없이 나를 자기 방에 재워 주었다. 나는 이 기쁨을 세상의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편히 잘 잤다.

이튿날도 내가 잠이 깨었을 때는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또 내 방으로 가서 피곤한 몸이 낮잠을 잤다. 내가 아내에게 흔들려 깨었을 때는 역시 불이 들어온 뒤였다. 아내는 자기 방으로 나를 오라는 것이다. 이런 일은 또 처음이다. 아내는 끊임없이 얼굴에 미소를 띠고 내 팔을 이끄는 것이 다. 나는 이런 아내의 태도 이면에 엔간치 않은 음모가 숨어 있지나 않은가 하고 적이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내의 하자는 대로 아내의 방으로 끌려갔다. 아내 방에는 저녁 밥상이 조촐하게 차려져 있는 것이다. 생각하여 보면 나는 이틀을 굶었다. 나는 지금 배고픈 것까지도 긴가민가 잊어버리고 어름어름하던 차다.

나는 생각하였다. 이 최후의 만찬을 먹고 나자마자 벼락이 내려도 나는 차라리 후회하지 않을 것을. 사실 나는 인간 세상이 너무나 심심해서 못 견디겠던 차다. 모든 것이 성가시고 귀찮았으나 그러나 불의의 재난이라는 것은 즐겁다.

나는 마음을 턱 놓고 조용히 아내와 마주 이 해괴한 저녁밥을 먹었다.

우리 부부는 이야기하는 법이 없었다. 밥을 먹은 뒤에도 나는 말이 없이 부스스 일어나서 내 방으로 건너가 버렸다. 아내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나는 벽에 기대어 앉아서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그리고 벼락이 떨어질 테거든 어서 떨어져라 하고 기다렸다.

오 분! 십 분!

그러나 벼락은 내리지 않았다. 긴장이 차츰 풀어지기 시작한다. 나는 어느덧 오늘 밤에도 외출할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돈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돈은 확실히 없다. 오늘은 외출하여도 나중에 올 무슨 기쁨이 있나? 내 앞이 그저 아뜩하였다. 나는 화가 나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굴렀다. 금시 먹은 밥이 목으로 자꾸 치밀어 올라온다. 메스꺼웠다.

하늘에서 얼마라도 좋으니 왜 지폐가 소낙비처럼 퍼붓지 않나? 그것이 그저 한없이 야속하고 슬펐다.

나는 이렇게 밖에 돈을 구하는 아무런 방법도 알지는 못했다. 나는 이불 속에서 좀 울었나 보다.

왜 없느냐면서…….

그랬더니 아내가 또 내 방에를 왔다. 나는 깜짝 놀라 아마 이제야 벼락이 내리려 나보다 하고 숨을 죽이고 두꺼비 모양으로 엎드려 있었다. 그러나 떨어진 입을 새어나오는 아내의 말소리는 참 부드러웠다. 정다웠다. 아내는 내가 왜 우는지를 안다는 것이다. 돈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란다.

나는 실없이 깜짝 놀랐다. 어떻게 사람의 속을 환하게 들여다보는고 해서 나는 한편으로 슬그머니 겁도 안 나는 것은 아니었으나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아마 내게 돈을 줄 생각이 있나보다, 만일 그렇다면 오죽이나 좋은 일일까. 나는 이불 속에 뚤뚤 말린 채 고개도 들지 않고 아내의 다음 거동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옜소’하고 내 머리맡에 내려뜨리는 것은 그 가뿐한 음향으로 보아 지폐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내 귀에다 대고 오늘일랑 어제보다도 늦게 돌아와도 좋다고 속삭이는 것이다.

그것은 어렵지 않다. 우선 그 돈이 무엇보다도 고맙고 반가웠다.

어쨌든 나섰다. 나는 좀 야맹증이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밝은 거리로 돌아다니기로 했다.

그리고는 경성역 일 이등 대합실 한 곁 티이루움에를 들렀다. 그것은 내게는 큰 발견이었다. 거기는 우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안 온다. 설사 왔다가도 곧 돌아가니까 좋다. 나는 날마다 여기 와서 시간을 보내리라 속으로 생각하여 두었다. 제일 여기 시계가 어느 시계보다도 정확하리라는 것이 좋았다. 섣불리 서투른 시계를 보고 그것을 믿고 시간 전에 집에 돌아갔다가 큰 코를 다쳐서는 안 된다.

나는 한 복스에 아무것도 없는 것과 마주 앉아서 잘 끓은 커피를 마셨다. 총총한 가운데 여객들 은 그래도 한 잔 커피가 즐거운가보다. 얼른얼른 마시고 무얼 좀 생각하는 것같이 담벼락도 좀 쳐다보고 하다가 곧 나가 버린다. 서글프다. 그러나 내게는 이 서글픈 분위기가 거리의 티이루움들의 그 거추장스러운 분위기보다는 절실하고 마음에 들었다. 이따금 들리는 날카로운 혹은 우렁찬 기적 소리가 모오짜르트보다도 더 가깝다.

나는 메뉴에 적힌 몇 가지 안 되는 음식 이름을 치읽고 내리읽고 여러 번 읽었다. 그 것들은 아물아물하는 것이 어딘가 내 어렸을 때 동무들 이름과 비슷한 데가 있었다.

거기서 얼마나 내가 오래 앉았는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중에 객이 슬며시 뜸해지면서 이 구석 저 구석 걷어치우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아마 닫는 시간이 된 모양이다. 열 한 시가 좀 지났구나, 여기도 결코 내 안주의 곳은 아니구나, 어디 가서 자정을 넘길까? 두루 걱정을 하면서 나는 밖으로 나섰다. 비가 온다.

빗발이 제법 굵은 것이 우비도 우산도 없는 나를 고생을 시킬 작정이다. 그렇다고 이런 괴이한 풍모를 차리고 이 홀에서 어물어물하는 수도 없고 에이 비를 맞으면 맞았지 하고 그냥 나서 버렸다.

대단히 선선해서 견딜 수가 없다. 코르덴 옷이 젖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속속들이 스며들면서 치근거린다. 비를 맞아 가면서라도 견딜 수 있는 데까지 거리를 돌아다녀서 시간을 보내려 하였으나, 인제는 선선해서 이 이상은 더 견딜 수가 없다. 오한이 자꾸 일어나면서 이가 딱딱 맞부딪는다. 나는 걸음을 늦추면서 생각하였다. 오늘 같은 궂은 날도 아내에게 내객이 있을라구?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집으로 가야겠다. 아내에게 불행히 내객이 있거든 내 사정을 하리라. 사정을 하면 이렇게 비가 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알아주겠지.

부리나케 와 보니까 그러나 아내에게는 내객이 있었다. 나는 너무 춥고 척척해서 얼떨결에 노크 하는 것을 잊었다. 그래서 나는 보면 아내가 덜 좋아할 것을 그만 보았다.

나는 감발자국 같은 발자국을 내면서 덤벙덤벙 아내 방을 디디고 내 방으로 가서 쭉 빠진 옷을 활활 벗어 버리고 이불을 뒤썼다. 덜덜덜덜 떨린다. 오한이 점점 더 심해 들어온다. 여전 땅이 꺼져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만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튿날 내가 눈을 떴을 때 아내는 내 머리맡에 앉아서 제법 근심스러운 얼굴이다.

나는 감기가 들었다. 여전히 으스스 춥고 또 골치가 아프고 입에 군침이 도는 것이 씁쓸하면서 다리팔이 척 늘어져서 노곤하다. 아내는 내 머리를 쓱 짚어 보더니 약을 먹어야지 한다. 아내 손이 이마에 선뜻한 것을 보면 신열이 어지간한 모양인데 약을 먹는다면 해열제를 먹어야지 하고 속생각을 하자니까 아내는 따뜻한 물에 하얀 정제약 네 개를 준다. 이것을 먹고 한잠 푹 자고 나면 괜찮다는 것이다. 나는 널름 받아먹었다. 쌉싸래한 것이 짐작 같아서는 아마 아스피린인가 싶다.

나는 다시 이불을 쓰고 단번에 그냥 죽은 것처럼 잠이 들어 버렸다.

나는 콧물을 훌쩍훌쩍 하면서 여러 날을 앓았다. 앓는 동안에 끊이지 않고 그 정제약을 먹었다.

그러는 동안에 감기도 나았다. 그러나 입맛은 여전히 소태처럼 썼다.

나는 차츰 또 외출하고 싶은 생각이 났다. 그러나 아내는 나더러 외출하지 말라고 이르는 것이다. 이 약을 날마다 먹고 그리고 가만히 누워 있으라는 것이다. 공연히 외출을 하다가 이렇게 감기가 들어서 저를 고생시키는 게 아니란다. 그도 그렇다. 그럼 외출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그 약을 연복하여 몸을 좀 보해 보리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나는 날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밤이나 낮이나 잤다. 유난스럽게 밤이나 낮이나 졸려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잠이 자꾸만 오는 것은 내가 몸이 훨씬 튼튼해진 증거라고 굳게 믿었다.

나는 아마 한 달이나 이렇게 지냈나보다. 내 머리와 수염이 좀 너무 자라서 후틋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 내 거울을 좀 보리라고 아내가 외출한 틈을 타서 나는 아내 방으로 가서 아내의 화장대 앞에 앉아 보았다. 상당하다. 수염과 머리가 참 상당하였다.

오늘은 이발을 좀 하리라고 생각하고 겸사겸사 고 화장품 병들 마개를 뽑고 이것저것 맡아 보았다. 한동안 잊어버렸던 향기 가운데서는 몸이 배배 꼬일 것 같은 체취가 전해 나왔다. 나는 아내의 이름을 속으로만 한 번 불러 보았다. “연심이—”하고…… 오래간만에 돋보기 장난도 하였다. 거울 장난도 하였다. 창에 든 볕이 여간 따뜻한 것이 아니었다. 생각하면 오월이 아니냐.

나는 커다랗게 기지개를 한 번 켜 보고 아내 베개를 내려 베고 벌떡 자빠져서는 이렇게도 편안하고 즐거운 세월을 하느님께 흠씬 자랑하여 주고 싶었다. 나는 참 세상의 아무것과도 교섭을 가지지 않는다. 하느님도 아마 나를 칭찬할 수도 처벌할 수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다음 순간 실로 세상에도 이상스러운 것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최면약 아달린 갑이었다.

나는 그것을 아내의 화장대 밑에서 발견하고 그것이 흡사 아스피린처럼 생겼다고 느꼈다. 나는 그것을 열어 보았다. 꼭 네 개가 비었다.

나는 오늘 아침에 네 개의 아스피린을 먹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잤다. 어제도 그제도 그끄제도…… 나는 졸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감기가 다 나았는데도…… 아내는 내게 아스피린을 주었다. 내가 잠이 든 동안에 이웃에 불이 난 일이 있다. 그때에도 나는 자느라고 몰랐다. 이렇게 나는 잤다. 나는 아스피린으로 알고 그럼 한 달 동안을 두고 아달린을 먹어온 것이다. 이것은 좀 너무 심하다.

별안간 아뜩하더니 하마터면 나는 까무러칠 뻔하였다. 나는 그 아달린을 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산을 찾아 올라갔다.

인간 세상의 아무것도 보기가 싫었던 것이다. 걸으면서 나는 아무쪼록 아내에 관계되는 일은 일 체 생각하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길에서 까무러치기 쉬우니까다. 나는 어디라도 양지가 바른 자리를 하나 골라 자리를 잡아 가지고 서서히 아내에 관하여서 연구할 작정이었다. 나는 길가의 돌 장판, 구경도 못한 진개나리꽃, 종달새, 돌멩이도 새끼를 까는 이야기, 이런 것만 생각하였다. 다행히 길 가에서 나는 졸도하지 않았다.

거기는 벤치가 있었다. 나는 거기 정좌하고 그리고 그 아스피린과 아달린에 관하여 연구하였다.

그러나 머리가 도무지 혼란하여 생각이 체계를 이루지 않는다. 단 오 분이 못가서 나는 그만 귀찮은 생각이 번쩍 들면서 심술이 났다. 나는 주머니에서 가지고 온 아달린을 꺼내 남은 여섯 개를 한꺼번에 질겅질겅 씹어 먹어 버렸다. 맛이 익살맞다. 그러고 나서 나는 그 벤치 위에 가로 기다랗게 누웠다. 무슨 생각으로 내가 그 따위 짓을 했나, 알 수가 없다. 그저 그러고 싶었다. 나는 게서 그냥 깊이 잠이 들었다. 잠결에도 바위틈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졸졸 하고 언제까지나 귀에 어렴풋이 들려 왔다.

내가 잠을 깨었을 때는 날이 환히 밝은 뒤다. 나는 거기서 일주야를 잔 것이다. 풍경이 그냥 노오랗게 보인다. 그 속에서도 나는 번개처럼 아스피린과 아달린이 생각났다.

아스피린, 아달린, 아스피린, 아달린, 마르크, 말사스, 마도로스, 아스피린, 아달린…… 아내는 한 달 동안 아달린을 아스피린이라고 속이고 내게 먹였다.

그것은 아내 방에서 이 아달린 갑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증거가 너무나 확실하다.

무슨 목적으로 아내는 나를 밤이나 낮이나 재웠어야 됐나? 나를 밤이나 낮이나 재워 놓고, 그리고 아내는 내가 자는 동안에 무슨 짓을 했나? 나를 조금씩 조금씩 죽이려던 것일까? 그러나 또 생각하여 보면 내가 한 달을 두고 먹어 온 것이 아스피린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무슨 근심되는 일이 있어서 밤이면 잠이 잘 오지 않아서 정작 아내가 아달린을 사용한 것이나 아닌지? 그렇다면 나는 참 미안하다.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큰 의혹을 가졌다는 것이 참 안됐다.

나는 그래서 부리나케 거기서 내려왔다. 아랫도리가 홰홰 내어 저이면서 어찔어찔한 것을 나는 겨우 집을 향하여 걸었다. 여덟 시 가까이였다.

나는 내 잘못된 생각을 죄다 일러바치고 아내에게 사죄하려는 것이다. 나는 너무 급해서 그만 또 말을 잊어버렸다. 그랬더니 이건 참 큰일 났다. 나는 내 눈으로 절대로 보아서 안 될 것을 그만 딱 보아 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얼떨결에 그만 냉큼 미닫이를 닫고 그리고 현기증이 나는 것을 진정시키느라고 잠깐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기둥을 짚고 섰자니까, 일 초 여유도 없이 홱 미닫이가 다시 열리더니 매무새를 풀어헤친 아내가 불쑥 내밀면서 내 멱살을 잡는 것이다. 나는 그만 어지러워서 게가 나둥그러졌다.

그랬더니 아내는 넘어진 내 위에 덮치면서 내 살을 함부로 물어뜯는 것이다. 아파 죽겠다. 나는 사실 반항할 의사도 힘도 없어서 그냥 넙적 엎드려 있으면서 어떻게 되나 보고 있자니까, 뒤이어 남자가 나오는 것 같더니 아내를 한 아름에 덥석 안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다소곳이 그렇게 안겨 들어가는 것이 내 눈에 여간 미운 것이 아니다. 밉다.

아내는 너 밤새워 가면서 도둑질하러 다니느냐, 계집질하러 다니느냐고 발악이다. 이것은 참 너무 억울하다. 나는 어안이 벙벙하여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너는 그야말로 나를 살해하려던 것이 아니냐고 소리를 한 번 꽥 질러 보고도 싶었으나, 그런 긴가민가한 소리를 섣불리 입 밖에 내었다가는 무슨 화를 볼는지 알 수 없다. 차라리 억울하지만 잠자코 있는 것이 우선 상책인 듯시피 생각이 들길래, 나는 이것은 또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툭툭 떨고 일어나서 내 바지 포켓 속에 남은 돈 몇 원 몇십 전을 가만히 꺼내서는 몰래 미닫이를 열고 살며시 문지방 밑에다 놓고 나서는, 나는 그냥 줄달음박질을 쳐서 나와 버렸다.

여러 번 자동차에 치일 뻔 하면서 나는 그래도 경성역으로 찾아갔다. 빈자리와 마주 앉아서 이 쓰디쓴 입맛을 거두기 위하여 무엇으로나 입가심을 하고 싶었다.

커피! 좋다. 그러나 경성역 홀에 한 걸음 들여 놓았을 때 나는 내 주머니에는 돈이 한 푼도 없는 것을 그것을 깜박 잊었던 것을 깨달았다. 또 아뜩하였다. 나는 어디선가 그저 맥없이 머뭇머뭇하면서 어쩔 줄을 모를 뿐이었다. 얼빠진 사람처럼 그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면서…….

나는 어디로 어디로 들입다 쏘다녔는지 하나도 모른다. 다만 몇 시간 후에 내가 미쓰꼬시 옥상에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거의 대낮이었다.

나는 거기 아무 데나 주저앉아서 내 자라 온 스물여섯 해를 회고하여 보았다. 몽롱한 기억 속에서는 이렇다는 아무 제목도 불거져 나오지 않았다.

나는 또 내 자신에게 물어 보았다. 너는 인생에 무슨 욕심이 있느냐고, 그러나 있다고도 없다고도 그런 대답은 하기가 싫었다. 나는 거의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조차도 어려웠다.

허리를 굽혀서 나는 그저 금붕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금붕어는 참 잘들도 생겼다. 작은놈은 작은놈대로 큰놈은 큰놈대로 다 싱싱하니 보기 좋았다. 내려 비치는 오월 햇살에 금붕어들은 그릇 바탕에 그림자를 내려뜨렸다. 지느러미는 하늘하늘 손수건을 흔드는 흉내를 낸다. 나는 이 지느러미 수효를 헤어 보기도 하면서 굽힌 허리를 좀처럼 펴지 않았다. 등이 따뜻하다.

나는 또 오탁의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서는 피곤한 생활이 똑 금붕어 지느러미처럼 흐늑흐늑 허우적거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적끈적한 줄에 엉켜서 헤어나지들을 못한다. 나는 피로와 공복 때문에 무너져 들어가는 몸뚱이를 끌고 그 오탁의 거리 속으로 섞여 가지 않는 수도 없다 생각하였다.

나서서 나는 또 문득 생각하여 보았다. 이 발길이 지금 어디로 향하여 가는 것인가를…… 그때 내 눈앞에는 아내의 모가지가 벼락처럼 내려 떨어졌다. 아스피린과 아달린.

우리들은 서로 오해하고 있느니라. 설마 아내가 아스피린 대신에 아달린의 정량을 나에게 먹여 왔을까? 나는 그것을 믿을 수는 없다. 아내가 대체 그럴 까닭이 없을 것이니, 그러면 나는 날밤을 새면서 도둑질을 계집질을 하였나? 정말이지 아니다.

우리 부부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인 것이다. 내나 아내나 제 거동에 로직을 붙일 필요는 없다. 변해할 필요도 없다.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서 세상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이 발길이 아내에게로 돌아가야 옳은가 이것만은 분간하기가 좀 어려웠다. 가야하나? 그럼 어디로 가나?

이때 뚜우 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일어나 한 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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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니엘 호손 단편선

Posted by 히키신
2017. 2. 19. 15:23 음미할만한 말과 단편들

나사니엘 호손 단편선, 천승걸 옮김, 민음사, 1998

 

웨이크필드

- 생각은 항상 그 자체의 추진력을 갖고 있고 어떤 이상한 사건도 그 나름의 교훈을 지니고 있는 법이다.

- 인간의 정에 틈새를 만드는 것은 위험한 일이오. 그 틈새가 길고 멃게 벌어져서가 아니라 그 틈새가 곧 다시 닫혀버리기 때문이라오.

P102

이 행복한 사건은ㅡ우리가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ㅡ전혀 사전에 계획되지 않은 순간에만 일어날 수 있었을 그런 사건이었다. 우리의 친구를 문지방 너머까지 따라가진 말자. 그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었다. 그중의 한 부분은 교훈에 지혜를 제공하고 구체적인 어떤 형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혼란스러워 보이는 알 수 없는 세상 속에서도 개개인은 어떤 체계에 아주 잘 적응하고 또 각각의 체계들은 서로서로, 그리고 전체의 체계에 아주 잘 적응을 해서, 한순간이라도 거기서 벗어나면 인간은 자신의 자리를 영원히 잃는 끔찍한 위험에 스스로를 노출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웨이크필드처럼 우주의 방랑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야망이 큰 손님

P107

그는 지금까지 멀리 혼자서 여행을 해왔다. 그의 모든 삶은 사실 혼자만의 고독한 여정인 셈이었다. 왜냐하면 고아하고 신중한 성격 때문에, 그는 그렇지 않았으면 자기의 친구가 될 수 있었을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고립시켜 왔기 때문이었다. 이 가족들 역시 그처럼 친절하긴 하지만, 모든 가정의 울타리 안에 낯선 사람이 침입할 수 없는 성스러운 장소를 유지해야 할 그들만의 어떤 일체감과 세상 사람들로부터의 고립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날 밤 어떤 예언적인 동류감이 그 세련되고 지적인 젊은이로 하여금 소박한 산골 사람들 앞에서 그의 마음을 다 털어놓도록 만들었고 또한 그들로 하여금 마찬가지의 허심탄회한 믿음으로 젊은이의 이야기에 응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래야만 했을 것이다. 같은 운명을 공유한 사람들 사이의 유대가 단순한 혈육의 그것보다 더 강한 것이 아니겠는가?

 

목사의 검은 베일

P148

"내가 슬픔 때문에 얼굴을 가린다면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만일 죄 때문에 얼굴을 가린다면 어떤 인간이 그러지 않을 수 있겠소?" 그는 그렇게 대답할 뿐이었다.

 

P155~6

"당신들은 왜 나만 보면 두려워 몸을 떠십니까?"

 베일에 가린 얼굴로 창백해진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며 그는 외치듯 말했다.

 "서로 서로를 보고 두려워 떠십시오! 오직 나의 검은 베일 때문에 남자들은 나를 피하고 여자들은 동정심을 보이지 않고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달아난 것입니까? 이 천 조각을 그처럼 무섭게 만든 것이 그것이 막연히 상징하는 알 수 없는 신비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친구가 친구에게, 연인이 그가 가장 사랑하는 연인에게 속마음을 다 보여줄 수 있을 때, 사람들이 가증스럽게 자신의 죄를 남몰래 쌓아가며 창조주의 눈앞에서 움츠러들지 않을 수 있을 때, 그때, 내가 그 밑에서 살아왔고 죽어간 그 상징물을 보고 나를 괴물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지금 내 주위를 둘러보면, 보시오!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검은 베일이 씌워져 있지 않습니까!"

 

반점

P183~4

그 숙명적인 진홍빛 손은 삶의 신비를 풀어보려고 몸부림쳤고 결국 천사의 정신과 인간의 육체를 하나로 묶느 결속의 역할을 한 것이었다. 인간의 불완전함의 상징인 그 반점의 마지막 진홍빛이 그녀의 뺨에서 사라졌을 때 이제 완전해진 그 여자의 마지막 숨결이 공기 속으로 사라져갔고, 그녀의 영혼은 남편 곁에서 잠깐 머뭇거리다가 이윽고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그때 껄껄대는 거친 웃음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완전히 성숙치 못한 이 희미한 인간 세계에서 보다 높은 상태의 완전함을 요구하는 그 불멸의 요소는 번번이 이 거친 지상의 숙명에 패배하고, 거친 지상의 숙명은 저처럼 승리의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다. 하지만 에일머가 좀더 깊은 지혜에 도달했더라면 지상의 삶과 천상의 삶을 같은 천으로 얽어 짜줄 수 있었을 그 행복을 그처럼 내던져버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 덧없는 환경은 그에겐 너무 힘겨웠다. 그래서 그는 시간의 그늘진 부분 그 너머를 보지 못했고 오직 영원 속에서만 삶으로써 현재 속에서 완전한 미래를 보아내는 일에 실패한 것이었다.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

P221

생각의 표현을 추구하는 예술가는 그 섬세함과는 양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강한 힘을 소유해야 하는 것이다. 좀처럼 믿으려들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그들의 철저한 불신을 무기로 공격해올 때 그는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지켜야 하며, 스스로 자신의 재능과 그 재능이 지향하는 목표의 철저한 추종자가 되어 인류 전체에라도 맞서 대항해야 하는 것이다.

 

P226

시인이든 다른 매체를 사용하는 예술가든 아름다움을 내면적으로 즐기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후딱 사라져가는 그 신비를 그의 영적인 영역의 경계 너머까지 쫓아가서 그 가녀린 신비를 육체적인 힘으로 움켜쥐어 결국 찌그러뜨려야만 하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P228

만일 자신이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의 공감과 이해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그의 외롭고 힘겨운 추구의 삶에 얼마나 큰 도움과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인가! 일상적인 삶으로부터 격리된 어떤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들, 인류를 앞서가는 선각자나 인류로부터 소외된 사람들, 이들은 때로 얼어붙은 고독한 극지(極地)에서처럼 그들의 정신을 떨게 만드는 도덕적 냉기를 느끼게 되는 법이다.

 

P230

그러나 천재적인 인간에 있어서 영적인 부분이 흐려지면 세속적인 부분이 더욱더 걷잡을 수 없이 그 영향력을 발휘하는 법이다. 왜냐하면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경우와는 달리 신이 특별히 아주 정교하게 조정해 놓은 예민한 균형 상태로부터 그의 인격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까닭이다.

 

P232

마을 사람들은 이 모든 괴팍한 행위를 한마디로 종합해서 설명했다. 즉 오웬 워랜드가 돌았다는 것이었다! 이 세계의 가장 평범한 한계를 벗어나는 모든 것에 대한 설명으로서 이 쉬운 방법은 얼마나 효과적이며, 또한 편협함과 아둔함으로 상처받은 감정에 얼마나 만족스런 위안을 주는가! 사도 바울 시절부터 우리의 가련한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의 이 시대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현명하고 너무나 훌륭하게 말하고 행동한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담긴 모든 신비를 설명하는 데 바로 이 부적 같은 설명 방법이 적용되어 온 것이다.

 

P236~9

"그런 생각은 이제 다 집어치워버렸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항상 스스로를 미혹시키는 그런 꿈이지요. 이제 철이 들어 생각하니 우습군요."

 아, 전락해 버린 가련한 오웬 워랜드여! 이런 태도는 그가 이제 우리 주위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고 있는 보다 훌륭한 세계의 주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징후였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신념을 잃어버리고, 그런 불행한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그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많은 것들까지도 거부해 버리는 그런 지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오직 그의 손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만을 철저히 믿게 되었다. 이런 것은 정신적은 고귀한 부분이 사라져버리고 천박한 이해에 의하여 인식할 수 있는 것들에만 점점 더 동화되어 가는 사람들의 불행인 것이다. 그러나 오웬 워랜드에 있어서 정신은 완전히 죽거나 사라지지는 않았고 오직 잠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

 "내가 할 일에 대해서 지금처럼 이렇게 강한 의욕을 느낀 적은 없었지"

 그는 혼자 생각했다.

 그러나 스스로 건강하다고 느끼기는 하면서도 한참 일하는 도중에 갑자기 죽음이 닥쳐들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그는 더욱더 열심히 일에 몰두하게 되었다. 아마도 이러한 불안감은 자신들의 생각에 아주 높은 목표를 세우고 오직 그 목표의 달성 여부에 인생의 중요성이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인생을 그 자체로서 사랑하는 한 우리는 인생을 잃어버릴까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반면에 어떤 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삶을 희구할 때 우리는 삶의 결이 아주 연약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

그러나 역사는 아주 고귀한 정신이 어떤 시기에 인간의 형태로 나타났다가 인간의 판단으로 볼 때 이 지상에서의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허락받지 못하고 일찍 죽어간 예를 허다하게 보여준다. 예언자는 죽어가고 둔한 가슴과 멍한 머리를 가진 사람은 살아남는다. ... 그러나 이 세상에서 이루지 못한 그런 계획들은 결국 아무 곳에서도 완전히 이루어 질 수 없으리라. 이처럼 자주 좌절되는 인간의 고귀한 계획들은 이 지상에서의 행위는 아무리 경건함이나 재능으로 영성화된다 하더라도 오직 정신의 훈련이나 발로로서 가치가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아마도 증명해 보이고 있을 것이다. 천국에서는 모든 평범한 생각들도 밀턴의 노래보다 더 우아하고 아름답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밀턴이 지상에서 채 끝내지 못한 노래에 한 절을 더 보태서 그것을 완성하려고 하겠는가?

P249

예술가가 진실로 아름다움을 성취할 만큼 높은 경지에 이르면 그 아름다움을 사람들의 감각에 느껴지도록 만드는 상징물 자체는 그의 눈에 그다지 가치가 있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의 정신은 상징물이 아닌 실체 자체를 즐긱 되는 것이니까.


라파치니의 딸


P259

꽃과 아가씨는 다르기도 했고 또 같기도 했으며, 각자의 모습 안에는 이상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아침의 밝은 햇빛 안에는 해가 진 후, 혹은 밤의 어둠 속에서, 혹은 음울한 달빛 속에서 우리가 일으킬 수 있는 그릇된 환상이나 잘못된 판단을 교정시켜 주는 묘한 영향력이 있는 법이다.


P268

지오바니는 무엇을 두려워해야 할지를 알지 못했고 무엇을 희망해야 할지는 더 더욱 알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희망과 두려움이 그의 가슴 속에서 계속 다투면서 한쪽이 이겼다가는 다시 다른 쪽이 이기고 그렇게 하면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모든 다눈한 감정은 그것이 어두운 것이든 밝은 것이든 다 축복을 받은 것이다! 지옥의 벌건 불길을 만들어내는 것은 밝음과 어둠의 무시무시한 혼합이 아니던가.


P273

그는 이제 돌이킬 수 없이 그녀의 영향권에 들어서서, 점점 더 원을 좁혀가며 그를 계속 앞으로 세차게 몰아가는 절대적인 힘에 복종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향한 것인지 그는 예측해 보려고 시도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지만 그 순간 갑작스런 의심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자신의 이 짙은 관심이 하나의 망상이 아닌가, 자신을 이처럼 가늠할 수 없는 상태로 몰아붙이는 것을 스스로에게 정당화시켜 줄 수 있을 만큼 그 관심이 그렇게 깊고 확실한 성질의 것인가, 그것이 그의 가슴과 별 관계가 없거나 전혀 관계가 없는 젊은이의 들뜬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의문이었다. 

 그는 잠시 멈춰 서서 망설이며 몸을 반쯤 돌리기도 했지만 결국은 다시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

 불가능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꿈의 뿌연 환영이 명확한 현실로 선명히 뒤바뀔 때,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상상하면 기뻐 날뛰거나 비탄에 빠질 것 같은 상황에서 오히려 침착하고 냉정하게 되는 경우를 우리는 얼마나 자주 경험하는가! 운명은 우리를 그처럼 어긋나게 하면서 쾌감을 느낀다. 또한 열정은 제 마음대로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왈칵 달겨들면서도 정작 적절한 상황이 그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때에는 뒤에서 미적거리며 게으름을 피운다. 지금의 지오바니의 경우가 바로 그랬다.


이선 브랜드

P305

웃음이란 적절치 않은 장소에서 적절치 않은 시간에, 또는 흐트러진 감정의 상태에서 터져나올 때 인간의 가장 무서운 억양의 목소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자면서 웃는 웃음소리ㅡ비록 어린아이일 경우라 하더라도ㅡ미친 사람의 웃음소리, 바보 천치의 흥분해서 내지르는 웃음소리들은 들으면 때로 소름이 끼치고 항상 잊고 싶은 소리들이다. 그래서 시인들은 악마나 도깨비가 내는 소리 중에서 공포감을 가장 적절히 나타내는 소리가 웃음소리라고 상상해 온 것이다. 


P319

그의 삶을 사로잡은 그 한 가지 생각은 그에게 하나의 교육적인 수단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그의 힘을 계속 최대한으로 개발시켰고, 그를 무식한 노동자의 수준에서 대학의 학문적 지식을 갖춘 이 지상의 철학자들도 그를 따라 아무리 오르려 해도 오를 수 없는 높은 경지로 끌어올린 것이었다. 그의 지적인 힘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이야기하자! 그러면 그의 가슴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의 가슴은 말라 시들고, 오그라들고, 굳어지고, 그래서 결국 죽어버린 것이다! 그의 가슴은 모든 사람들의 맥박과 함께 뛰기를 멈추고, 자석처럼 사로 달라붙어 있는 인간성의 고리를 놓쳤다. 그는 더 이상 우리 인간의 공통된 본성의 방이나 감방을 성스러운 공감의 열쇠로, 그 모든 비밀을 함께 나눠가질 권리를 우리에게 주는 그 열쇠로 열 수 있는 형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이제 인간을 실험의 대상으로 삼고 마침내 인간을 꼭두각시로 만들어서 자신의 연구에 필요한 정도의 죄악을 범하도록 줄을 당겨 조정하는 그런 냉혹한 관찰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선 브랜드는 악마가 된 것이었다. 도덕적인 본성이 지적인 힘과 같은 보조로 발전해 가기를 그친 그 순간부터 그는 악마가 된 것이다. 


<주홍글자> 서문 "세관" 중

...우리에게 익숙한 방의 카펫 위를 비치면서 모든 물걸들을 분명한 모습으로 아주 세세히 드러내면서도 아침이나 낮에 볼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보여주는 달빛, 그런 달빛이야말로 로맨스 작가가 그의 환상적인 손님들과 친숙해지기 위해 사용할 가장 적절한 매체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 방 안의 모든 구체적인 물건들은 자세히 드러나면서도, 이 이상한 달빛에 의하여 영성화(한자)되어서 그들의 구체적인 실체에서 벗어나 지적인 아떤 것으로 변형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작고 하찮은 것이라도 이러한 변화를 겪을 수 있고 그런 변화에 의하여 어떤 위엄을 띨 수가 있다. ... 그래서 이 익숙한 방의 마루는 실제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이 서로 만나서 서로의 본질에 섞여 스밀 수 있는, 사실적 세계와 환상적 세계 사이 어딘가의 중립 지대가 되는 것이다.


작품 해설 중

이렇듯 호손의 작가로서의 임무는 바로 <자신이 선택하고 창조해 낸 자유로운 상황에서 인간의 가슴의 진실을 제시하는 것>이었고, 그런 작가 의식 위에 세워진 그의 작품 세계는 우리에게 친숙한 일상적인 방의 세계이긴 하되 밝은 대낮의 햇빛이 아니라 <신비롭고 환상적인 달빛>에 의하여 사물들이 구체적인 실체보다는 <영적인 변형된 모습>으로 드러나는, <현실과 환상과 실제와 상상이 교묘히 섞이는 중립 지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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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하르트 툴레, <고요함의 지혜>

Posted by 히키신
2017. 2. 15. 21:19 영원의 지헤, 그리고 철학

에크하르트 툴레, <고요함의 지혜>, 진우기 옮김, 2004, 김영사

 

p27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바로 생각이라는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p38~9

생각에만 골똘한 나는 머릿속에서 들리는 소리가 바로 나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나의 생각에 나의 자아상이 덧붙여진다. 이것이 바로 생각이 만들어낸 ‘나’ 즉 나의 에고이다. 에고는 늘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며 시시각각 변화한다. 그런 에고에게는 두려움과 욕망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삶을 휘두른다.

머릿속에서 나인 척하며 수다를 그칠 줄 모르는 목소리가 있음을 깨달을 때, 생각의 흐름이 곧 나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과거의 꿈에서 나는 깨어난다. 그때 나는 깨닫는다. 나의 본모습은 그 목소리가 아니며,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며 다만 그 목소리를 알아차리는 사람임을 깨닫는다.

그 목소리 넘어 존재하는 맑은 마음이 나라는 것을 알 때 자유가 온다.

 

p39~40

에고는 항상 무언가를 찾아다닌다. 좀더 보태어 좀더 완전해지기 위해 에고는 이것을 찾아 챙기고 저것을 찾아 소유하며,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은 더 많이 쌓아두려 한다. 에고가 강박관념처럼 미래에 그렇게 집착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내가 이 순간이 아니라 ‘다음 순간을 위해 살고 있음’을 알아차릴 때마다 나는 에고의 지배를 벗어난다. 그때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무를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진다.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무를 때 에고보다 훨씬 큰 지혜가 나의 삶 속으로 들어온다.

 

p51

지금 이 순간에 전념하는 것은 삶에 필요한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이차적으로 중요한 것들을 대하면 훨씬 여유가 생긴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지금밖에 없으므로 나는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가장 중요한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지금 이 순간을 적이 아닌 친구로 만들라는 뜻이다. 지금에 감사하고 지금에 경의를 표하라. 지금이 삶의 근본이 되고 중요한 구심점이 될 때 삶은 여유롭게 풀리기 시작한다.

 

p52~3

지금 이 순간을 책임지지 않는다면 삶에 대한 책임도 회피하는 것이다. 삶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바로 지금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을 책임진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그러함’에 마음으로 반대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지금과 싸우지 않겠다는 뜻이다. 삶과 조화를 이루겠다는 뜻이다. ...

지금 이 순간을 긍정하는 순간 나는 생명의 지혜와 힘과 조화를 이룬다. 그때 비로소 나는 이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일도 할 수 있다.

아주 단순하면서도 매우 혁신적인 정신 수행이 있다. 바로 지금 일어나는 것을 무엇이든 다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 안에서든 밖에서든 말이다.

 

p54

사람들은 대체로 ‘지금’을 ‘지금 일어나는 일’과 혼동한다. ‘지금’은 ‘지금 일어나는 일’보다 더 깊은 차원에 있다. ‘지금’은 그것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p56

나의 생각과 감정과 지각과 경험은 내가 아니다. 내 삶의 내용물은 내가 아니다. 나는 생명이다. 나는 만물이 생성되는 공간이다. 나는 순수의식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이다.

 

p61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말의 구조 속에는 이미 자신의 참모습을 모른다는 사실이 드러나 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잃었다’는 말, ‘나의 삶’이라는 말 속에는 마치 삶이나 생명이 소유하거나 잃을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있다. 나는 생명을 가진 것이 아니다. 내가 바로 생명이다. 우주 전체에 충만한 ‘한 생명’ 또는 ‘한 의식’이 잠시 한 형태를 취하여 돌멩이로, 풀잎으로, 동물로, 인간으로, 별로, 은하계로 체험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이미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가슴 깊이 느껴보라. 당신은 이미 그것임을 느낄 수 있는가?

 

p62

구도자들은 깨달음과 자기실현을 미래에서 찾는다. 구도자가 된다는 것은 미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이 그렇게 믿는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진실이 된다. 다시 말해서 본연의 당신이 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님을 깨닫는 그 순간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p64

당신 자신이 현상계의 존재들이 생성되는 맑은 마음임을 알 때 당신은 현상계에의 종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제 당신은 상황과 장소와 조건 속에서 자아상을 찾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된다. 만물이 그 무거움과 심각함을 떨궈버린다. 당신 삶에 슬며시 장난기가 들어온다. 이제 세상은 우주의 춤이다. 형상의 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p71~2

노력이란 긴장과 스트레스를 수반하며 미래에 일정 지점에 도달할 ‘필요성’을 뜻하며 특정의 결과를 이루어야 함을 의미한다. 당신의 마음속에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심정이 조금이라도 있음을 감지할 수 있는가? 그것은 삶을 부정하는 일이므로 당연히 진정한 성공은 불가능하다.

마음속에 그런 심정이 있음을 감지했다면 즉시 그 마음을 버리고 지금 하는 일에 몰입할 수 있는가?

 

p73~4

내게 다가오는 모든 체험은 그저 잠시뿐이라는 것. 더불어 세상은 지속적인 가치를 지닌 그 어떤 것도 내게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순응이 가능해진다. 순응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은 이전처럼 사람들을 만나고 활동에 몰두한다 해도 더 이상 에고가 흔드는 대로 욕망과 두려움에 지배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제 더 이상은 어떤 상황에 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나거나 어떤 장소에 있어야만 만족하고 행복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불완전하고 무상한 것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기적 같은 일이 생긴다. 불가능한 기대치를 버리는 순간 갑자기 모든 상황과 사람, 모든 장소와 시간이 두루 다 마음에 드는 것이다. 더불어 당신의 마음은 좀더 조화로워지고 좀더 평화로워진다.

 

p76

가장 고통스럽고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 속에 가장 깊은 善이 감추어져 있다. 모든 재난 속에는 사랑의 씨앗이 들어 있다. ...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이 찾아온다.

-靜, 평온(serenity)

 

p85~6

자연의 섬세한 소리에 맑은 마음을 가져가보라. 바람에 나뭇잎이 서걱이는 소리,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풀벌레 우는 소리, 새벽녘 새의 첫울음소리에 귀 기울여보라. 소리를 듣는 일에 전념하라. 귀에 들리는 그 소리 너머에 무언가 위대한 것이 있다. 생각으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성스러움이 거기 있다.

 

p91

인간은 고요해지면 생각 저편으로 넘어간다. 생각 저편의 고요함 안에는 앎과 맑은 마음의 차원이 존재한다.

자연은 나를 고요함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 그것은 자연이 내게 주는 선물이다. 내가 고요함의 장 안에서 자연을 지각하고 자연과 함께 할 때 그 안에 나의 맑은 마음이 두루 퍼진다. 그것이 내가 자연에게 주는 선물이다.

 

p97

그녀의 과거가 나의 과거이고, 그녀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며, 그녀의 의식 수준이 나의 의식 수준이라면 나도 꼭 그녀처럼 생각하고 행동했을 것이다. 그것을 깨달을 때 용서와 자비 그리고 평화로움이 온다.

 

p98

지금 이 순간의 여유로움 안으로 누가 들어오든 다 귀한 손님으로 맞이할 때, 그가 자신의 모습 그대로 존재하도록 내버려둘 때 그는 변하기 시작한다.

 

p116

20세에는 내 몸이 튼튼하고 활력 있음을 안다. 60세에는 내 몸이 약해지고 늙었음을 안다. 나의 생각 역시 20대 때와는 달라졌을 수 있다. 하지만 내 몸이 젊거나 늙었다고 아는 마음, 내 생각이 변했다고 아는 맑은 마음에는 변한 것이 없다. 그 맑은 마음이 바로 내 안에 있는 영원이다. 순수의식이다. 형상을 벗어난 ‘한 생명’이다. 나는 그것을 잃을 수 있는가? 아니다. 내가 바로 그것이다.

 

p117~8

모든 사고와 재난에는 늘 구원의 가능성이 들어 있다. 다만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흘려보낼 뿐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죽음이 코앞에 닥쳤을 때 느끼는 극도의 충격은 의식으로 하여금 형상과 나를 동일시했던 과거의 습관을 한 순간에 놓아버리게 하기도 한다. 육체가 죽기 직전 마지막 짧은 순간에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나는 나를 형상을 벗어난 자유 의식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그때 돌연히 두려움이 사라지고 한없는 평화로움이 찾아든다. ‘모든 것이 다 좋다’는 것을 깨닫는다. 죽음은 단지 형상의 해체에 불과함을 알게 된다. 그리고 죽음은 결국 착각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 나의 몸이 나라고 생각했던 착각.

 

죽음은 현대 문화가 믿도록 강요하는 것처럼 그렇게 이례적인 일도, 가장 끔찍한 일도 아니다. 죽음은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며 그 반대인 탄생에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 옆에 있을 때 이를 잊지 말라.

한 사람의 죽음을 맞이하여 임종을 지키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벗으로서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지극히 성스러운 행위이며 대단한 특권이다.

죽어가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다가오는 어떤 체험도 부정하지 말라.

 

전인권 - 자유

Posted by 히키신
2017. 2. 15. 21:03 영혼의 위로_Music

 전인권. 김현식과 더불어 좋아라 하는 불세출의 보컬.

내가 좋아하는 그의 Favorite songs : <북소리>, <다시 이제부터>, <돛배를 찾아서>, <운명>, <우리>, <돌고 돌고 돌고> 

이외에도 라이브 앨범에 실려 있는 <나뭇잎 사이로>, <Desperado> 나 웬만큼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그의 히트곡들을 포함.

그 모진 세월의 풍파를 겪고서도 변치 않는 그의 순수함을 나는 좋아하고 부러워한다.

 

김훈 - 밥벌이의 지겨움

Posted by 히키신
2017. 2. 15. 20:58 음미할만한 말과 단편들

- 아, 밥벌이의 지겨움!! 우리는 다들 끌어안고 울고 싶다. ... 모든 '먹는다'는 동작에는 비애가 있다. ..

 전기밥통 속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나는 한평생 목이 메었다. 이 비애가 가족들을 한 울타리 안으로 불러 모으고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아 밥을 벌게 한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 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술이 덜 깬 아침에, 골은 깨어지고 속은 뒤집히는데, 다시 거리로 나아가기 위해 김 나는 밥을 마주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을 이룬다. 이것을 넘겨야 다시 이것을 벌 수가 있는데, 속이 쓰려서 이것을 넘길 수가 없다. 이것을 벌기 위하여 이것을 넘길 수가 없도록 몸을 부려야 한다면 대체 나는 왜 이것을 필사적으로 벌어야 하는가. 그러니 이것을 어찌하면 좋은가. 대책이 없는 것이다. ...

 예수님이 인간의 밥벌이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을 나는 새를 보라. 씨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거늘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먹이시느니라"라고 하셨다지만, 나는 이 말을 믿지 못한다. 하느님이 새는 맨입에 먹여주실지 몰라도 인간을 맨입에 먹여주시지는 않는다. ...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이 글을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밥벌이는 밑도 끝도 없다. 그러니 이 글에는 결론이 없어도 좋을 것이다. 나는 근로를 신성하다고 우겨대면서 자꾸만 사람들을 열심히 일하라고 몰아대는 이 근로감독관들의 세계를 증오한다. 나는 이른바 3D 업종으로부터 스스로 도망쳐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인간들의 저 현명한 자기방어를 사랑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근로감독관들아, 제발 인간을 향해서 열심히 일하라고 조져대지 말아 달라. 제발 이제는 좀 쉬라고 말해 달라. 이미 곤죽이 되도록 열심히 했다. 나는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 신년 아침에, 신호의 떨림과 신호의 아름다움을 생각했다. 삶의 하찮음까지도 경건하게 느껴졌다.

 신호는 남으로부터 나에게로 오는 것이고, 나로부터 남에게로 가는 것이다. 신호는 깜빡이거나 혹은 떨림으로서 해독되기를 갈망하고 있다. 내가 보내는 신호들도 떨리거나 깜빡거리고, 나에게 와 닿는 신호들도 떨리거나 깜빡거린다. 그래서 인간은 나의 떨림으로 너의 떨림을 해독할 수 있다. 핸드폰을 진동수신으로 바꾸어 놓으면 신호는 부르르 진저리를 치며 내 몸을 울린다. 신호는 떨리는 진저리인 것이다.

 

- 멀거나 큰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 먼 것들은 그 풍경을 바라보는 자를 눈멀게 한다. 기어이 바라보려는 자의 시선은 아득한 저편 연안에 닿지 못하고 시선은 방향을 잃는다. 시선의 모든 방향이 열려진 공간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기어이 보려 하는 자의 갈등은 몸속에 가득 차 오른다. 본다는 것은 아마도 걸리적거림이었던 모양이다.

 

한 편의 문학평론과 하나의 인터뷰

남재일 : <자전거 여행> 서문인가에 "사람들아 이 남루한 수사학을 욕하지 말아다오"란 문장이 있다. 여기서 '남루한 수사학'이란 표현은 작가 안의 무인이 펜을 든 자아를 지켜보는 지형에서 나온 것 같다. 칼 대신 펜으로 긁어놓은 것은 무인의 시선에는 남루한 것이며 수사학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래서 이 문장에는 문과 무가 불화하는데, 불화의 양상이 무가 문을 지배하고 문이 무에 도전하는 위계적 구조다. 나는 문장의 전압이 이 수직적 낙차에서 발전되는 게 아닌가 싶다. 쉽게 말해 문과 무의 불화는 무가 문보다, 혹은 칼이 펜보다 더 순도 높은 미학적 형식으로 자리매김되는 순간 발생하는 것 같다. 그런데 <칼의 노래>에서 칼은 미학적 형식으로서의 무의 환유적 대상물이자 동시에 잡다한 무인의 손아귀에 있는 역사적 실재이기도 하다. 김훈의 미학이 어떤 사회적 담론의 지형에 투입되면 칼은 역사적 실재로서 변신하게 된다. 이념을 둘러싼 전쟁과 군부독재를 통해 칼을 체험한 한국에서 칼의 의미가 곧바로 역사적 상처와 연결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이기도 한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훈 : 칼에 대해 조건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과민함은 앞으로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지금의 문제는 칼이 아니다. 비틀린 펜의 폭력, 주인 없는 비열한 가면의 폭력이 더 큰 문제다. 내가 칼로서 잘라내고 싶은 게 그런 것들이다. 그런데 말은 사실 절대 칼이 될 수 없다. 말이 칼이 되기 위해서는 말을 버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다시 말을 해야 한다. 이 문제는 노자도 해결 못했다. 말은 하찮은 것, 한줌밖에 안 되는 것이지만 말을 통하지 않고는 칼이 될 수 없는 것, 그게 불우함이다. 내가 예술가를 보는 것도 이 맥락이다. 더러운데 하는 것, 하면서 견디는 것, 그게 좋은 거다. 죽지 않고 산다는 것은 흥정과 타협의 산물이 아니면 안 된다.

 

- 김훈, <밥벌이의 지겨움>, 생각의 나무,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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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니츠의 형이상학

Posted by 히키신
2017. 2. 15. 20:42 영원의 지헤, 그리고 철학

라이프니츠의 형이상학, 박제철 지음, 서강대학교출판부, 2013

 

Keyword

- 논리주의

- 예정조화설

- 모나드론

 

p159

라이프니츠 철학 체계내의 기본적 실재물(entity)은 실체(모나드)와 실체가 갖는 속성(지각)이다. 그리고 라이프니츠는 자신의 존재론 내에, 실체에 대응하는 완전 개체 개념, 그리고 속성에 대응하는 요소 개념들을 허용한다. 그 밖의 모든 것, 예컨대, 시간-공간-물질 등은 모두 이러한 기본적 실재물로 환원된다. 그래서 우리는 라이프니츠 철학 내의 존재론적 기본 벽돌로서 실체와 속성, 그리고, 완전 개체 개념과 요소 개념들을 갖는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개념을 통해 시간을 정의한다면, 그러한 개념들은 완전 개체 개념 내의 요소 개념들로 이해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p215

스피노자의 철학은 매우 강한 결정론적 성격을 갖는다. 그에 따르면, 신은 그가 합리적으로 계획한 바로 그것을 창조할 수밖에 없었다. 비유를 하자면, 스피노자에 따르면 이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하나의 대본에 맞추어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반면, 완전한 자유론적 입장은 스피노자와 정반대의 위치에 놓인다. 이 입장에 따르면, 이 세상 모든 사물들은 자신들이 따라야 할 대본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행동은 극히 자유롭다. 라이프니츠는 이 두 입장 중간에 위치한다.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신은 무수히 많은 대본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해 실현시켰다. 이 경우, 라이프니츠도 스피노장와 마찬가지로 결정론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라이프니츠의 구도에서 진정 자유로운 것은 이 세상의 사물들이 아니라 신뿐이기 때문이다. 신이 여러 대본 중 어느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했다면, 이 세상 모든 사물들은 그 대본에 맞추어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스피노자와 입장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라이프니츠가 결정론에 빠지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후에 라이프니츠가 직접 저술한 저서들과 더불어 다양한 연구 서적들을 탐독한 뒤에 정리하여 다시 추가하여야 겠다.

'16. 07. 06.

Posted by 히키신
2017. 2. 15. 17:31 순간의 감상[感想]

형은 잠든 것일까? 아니, 쥐죽은듯 가만히 있는 것처럼 하고서 속으론 온 힘을 다 쥐어짜내 버티고 있는 것일 게다.
형과 같은 자세를 취해본다. 그러나 아무리 흉내내보려해도 결코 나는 형과 같은 상태를 느껴볼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오늘 하루는, 아니 형이 엎드려 보내야만 하는 사흘동안만이라도 한번 비슷한 자세를 취해보자.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래도 최대한 형의 고통을 따라 느껴보자 생각해본다. 잠이 쏟아진다. 형은 전혀 잠이 오질 않는 듯 계속해서 뒤척인다.

형과 함께 보낸 나날들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되리라 확신이 선다.
처음 서울에 올라온 날과 딱 1주일이 지난 지금, 하루가 유난히도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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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Posted by 히키신
2017. 2. 15. 17:17 음미할만한 말과 단편들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욕망을 사랑하는 것이지, 욕망한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 니체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중에서

나를 죽이지 못한 시련은 나를 더욱더 강하게 만들 것이다.
<우상의 황혼>, 1부:잠언과 화살, 8 (백승영 옮김)

삶에 대한 자신의 이유인 왜냐하면을 가진 자는, 거의 모든 방법, 거의 모든 어떻게를 견뎌낼 수 있다.
-같은 책, 12쪽

동정은 죄악이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 사랑으로 행해진 일은 언제나 선악을 초월한다

- 망각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의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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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나드 쇼

Posted by 히키신
2017. 2. 15. 17:14 음미할만한 말과 단편들

나는 모든 것이며 모든 사람들이고 아무것도 아닌 무 이자 그 누구도 아니다. - 프랭크 해리스가 쓴 버나드 쇼의 전기중 버나드 쇼가 쓴 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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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창

Posted by 히키신
2017. 2. 15. 17:12 음미할만한 말과 단편들

김우창

-큰 마음의 눈은 세상의 모든 것에서 아름다움을 본다.

-우리가 알고 만나는 세계는 세계의 지극히 작은 부분이다. 드러난 세계는 감추어진 세계의 아주 작은 사건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신비로운 것은, 만물은 드러나면서 더 큰 세계로 자신을 감추기에 신비로운 것이다. 드러남은 더 큰 감춤과 더불어 존재의 무한한 신비를 우리에게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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