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李箱)
'익은불서 목대불도(翼殷不逝 目大不覩)'
날개가 커도 날지 못하고 눈이 커도 보지 못한다
이상의 시
오감도
거울
꽃나무
아침
이상한 가역반응
신록특집 시인 이상(李箱) 김해경
작가 횡보 염상섭
[국제문예] 특집 신년호는 시인 만해 한용운, 작가 김유정 신춘 호에 시인 김소월, 작가 나도향에 이어 한국문학의 지표와 지층을 바꿔 놓은 시인 이상, 김해경, 자연주의 사실주의 대표적 작가 횡보 염상섭의 작품세계를 살펴본다.
한국문학의 지표와 지층이 두텁고 한국문학의 뜨거운 열정과 시심 작가 혼이 불타오르는 1930년대 이상은 크나 큰 시의 자화상이었다.
이상이라는 존재는 시의 화로(火爐) 같다고나 할까 뜨거운 활화산 같은 시의 열정과 또한 알레고리를 품고 있다. 한국문학의 이단아요 한국시의 초현실주의의 표징이었다.
“시인 이상의 시와 그 난해함 을 종횡으로 굴려 추파를 남발하였다”, ‘시 제12호’에서 “때 묻은 빨래 조각이 한 뭉텅이 공중으로 날아 떨어진다. 그것은 흰 비둘기의 떼이다.”, “지비-어디갔는지 모르는안해-”에서 “아내는 조류(鳥類)이면서 염체 닻과 같은 쇠를 삼켰더라”, ‘화로’에서 “빨래 방망이가 내 등의 더러운 의상을 뚜들긴다” 등:등의 시구(詩句)들이 초-현:실주의 작시(作詩)인 것이다.
이상(李箱) 시인이 난해(難解)하게 작시(作詩)하게 되는 또 다른 이:유(理由)는, 일제 군국주의 ‘공:포(恐怖) 정치’와 ‘무법 천지(無法天地)의 세:상(世上)’을 고발(告發)하는 내:용의 시(詩)를 작시(作詩)하였기 때문이다.‘이상(異常)한 가역반응’에서 “직선(直線)은 원(圓)을 살해(殺害)하였는가”는, ‘일제 군국주의 전:쟁놀음의 땅뺐:기, 곧 침략 전:쟁이 이 지구(地球)를 다 정복(征服)하였는가’를 형이상학적 표현으로써 묻고 있는 것이다.
“건축무한육면각체” 연작시 ‘二十二(22)’과 ‘시 제5호’에서 고사(故事)를 들추어 내:어 “익단불서(翼段不逝) 목대불도(目大不覩)”라고 한자(漢字)를 시어화하여 독해(讀解)를 어렵게 만들었다. 이것은 ‘삭제(削除)를 전후 좌:우로 마구 해:대니 내 작품이 날개가 부러져서 날지 못하는 모양새가 되고, 크게 눈-뜨고 못 보아 주겠다’라는 뜻이다. 이것이 ‘시 제5호’에 이르러 “익은불서(翼殷不逝) 목대불도(目大不覩)” 즉 (내 작품의) ‘날개가 커도 날지 못하니 크게 눈뜨고 못 본다’로 바뀐다. 시작(詩作)의 끝머리 끝마무리를 튼튼하게 하여 전후 좌
우삭제하는 검:열에 대:비(對備)하였지만 좌:우를 삭제하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당하여 내 면전(面前)에서 낙상(落傷)하는 것이 여전(如前)하더라는 말:씀.
‘출판법’에서도 “직(直)에 관한 전고일칙(典故一則)” “기부양양(其父壤羊) 기자직지(其子直之)”라는, 말하자면 ‘바로-잡음에 관한 전고(典故) 하나의 법칙’이라면서, ‘그 아비가 양을 훔친 것을 그 아들이 이를 바로잡다’라는 뜻이니, 다시 말하면 “허위 고발이라는 죄명이 나에게 사형(死刑)을 언도(言渡)하였다”라는 첫머리 시구(詩句)를 비아냥거리며 비:예(睥睨)한 것을 이르는 한자(漢字) 전:고(典故=전례와 고사)이다. 한마디로 ‘무법 천지(無法天地)’라는 말:씀.
‘시 제7호’는 온:통 한자(漢字) 시구(詩句)로 작시(作詩)하여 독자(讀者)를 질리게 한다. 그 내:용은 요양 차(療養次) 갔던 배천 온천에서 “특이한 4월의 화초”인 여인을 만나, 요양(療養)커녕 의형(劓刑) 즉 코를 베는 형벌로 ‘코를 떼:고’ 보니, 죄를 짓고 귀양살이를 한 격(格)이라, 몸과 마음이 만:신 창이(滿身瘡痍)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 여인(女人)이 ‘시 제6호’에 나오는, “이 소저(小姐)는 신사 이상(李箱)의 부인이냐” “그렇다”의 주인공으로서, “지비(紙碑)”와 “지비(紙碑)-어디갔는지모르는안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지비”는 ‘지비’를 묶어 어법 쓰면 ‘집이’가 되는데, 이 ‘집이’는 ‘집-사람’ 곧 ‘아내’를 이름이다. ‘지비’를 한자(漢字)로 써서 “紙碑(지비)”라고, 작가 나름으로 시어화한 것이다.
이러한 이상(李箱) 시인(詩人)의 한자(漢字)투성이 사설(辭說)과 사설(私說)이 그의 작시(作詩)를 난해(難解)하게 하는 것이다. 라고 고은 시인은 “이상평전”에서 직시(直視)하여 표현하고 있다.
고은 시인은 “이상평전”에서 이상의 작품생산시기를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시점이 이상의 죽음직전으로 보고 있다. 이상의 불안의식은 큰아버지의 양자로 간 것 등이 심리적 불안의 작품세계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상이 죽기 바로 전 해이다. 사건사고가 많았다. 작품 활동도 가장 활발한 해였다. 1935년 9월 10일 이상은 다방 제비의 문을 닫는다. 쫄딱 망한 것이다.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이상은 갑자기 행방불명이 된다. 박태원, 윤태영 등 친한 친구들이 서울 시내를 뒤졌지만 그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한참 후에야 ‘성천 마을에서 이상’이라고 쓴 엽서가 윤태영에게 날아온다. 인천을 거쳐 평양에서 평원선을 타고 아는 사람도 없는 낯선 성천 땅의 간이역에 내린 것이었다. 그런데 우연히도 그곳에서 고보 동창인 원용성을 만나 한 달 이상 성천에 머무르게 된다.
성천에 다녀온 이상은 구본웅의 출판사인 창문사에서 김진섭, 정지용, 이동구, 이헌구, 박용철, 구본웅 등이 하던 <청색지> 발행을 돕고, 볼멘소리를 해대면서도 구인회 동인지 <시와 소설>을 편집한다. 수상정(수표동)에 임시 거처도 마련한다.
성천에서 돌아온 이상은 가장 정력적인 작품 활동을 펼친다. 시 <지비> 시리즈, <역단> 시리즈, <위독> 시리즈, <가외가전> 등을 쓰고, <날개>, <지주회시>, <봉별기>, <동해> 등의 소설도 집필한다. 1936년 이상은 이렇게 그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종생기>, <공포의 기록>, <권태>, <슬픈 이야기> 등을 정인택의 매일신보, 김기림의 <조광>과 조선일보 등에 발표한다. 그렇다고 해도 그의 경제적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꿈꾸던 도쿄행을 실현에 옮긴다. 그렇게 이상은 우리 곁에서 떠나간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불귀의 객이 된다. 도쿄에서 추위에, 병고에 시달리면서 엄청난 에너지로 작품을 써내려 간다. 조그만 방에 칩거하면서 마지막 불꽃을 태운 것이다.
1936년 3월 <시와 소설>이 발간된다. 이상은 거의 모든 일을 혼자 마무리했다. 구인회 동인들의 무성의, 나태함에 대해 이상 혼자 마지막 몸부림처럼 편집을 한 것이다.
1936년 6월 27일 27세의 이상과 23세의 동림은 신흥사로 가서 상견례를 하고 신흥사 여관에서 신방 첫날밤을 꾸미게 된다. 그리고는 황금정(을지로 3가)의 셋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다. 황금정에 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집’은 제비의 구석방과 다를 바가 없었다.
천재시인 박제된 슬픔을 아시나요 시인 이상은 1937년 4월17일 도쿄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폐결핵으로 26년 7개월의 짧은 생애를 마감한다. 이상의 유해는 화장하여 경성으로 돌아왔으며 같은 해 숨진 김유정과 함께 합동영결식을 하여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치되었으나 후에 유실되고 없다.
한국의 천재시인 이상, 김해경 짧은 생애에 남겨 놓은 그의 시와 소설은 한국문학의 보석으로 우리의 가슴을 울리게 한다. 아, 박제된 슬픔의 시편들이 신록의 계절에 반짝이고 있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수없소이다. 내차례에 못올사랑인줄은 알면서도 나혼자는 꾸준히생각하리다. 자그라면 내내어여쁘소서.'
- '이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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