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카로사, <아름다운 유혹의 시절(Das Jahr der schönen Täuschungen>

Posted by 히키신
2017. 3. 7. 21:08 글쓰기와 관련하여

한스 카로사, <아름다운 유혹의 시절(Das Jahr der schönen Täuschungen>, 2004, 범우사


p11 (글의 시작)

온 세상에 있는 사과나무가 한 그루 남김없이 말라죽고 별로 볼품도 없는 단 한 알의 네트종 씨앗밖에는 남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그것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그 한 알의 씨앗을 분해하고 현미경 검사를 해서 그 정밀한 기록을 후세에 전할 것인가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운을 맡기고 새로운 나무로 자랄 가망은 희박하나마 그것을 땅에 심고 어떻게든 그 결과를 보기로 할 것인가우리들은 때때로 어떤 젊은이의 생활을 묘사하면서 그와 유사한 의문을 제기해 본다언제인가는 존재했으나 다시는 나타나지는 않을 그 생활을그런 유형의 인간은 지금은 거의 멸종되려고 하기 때문이다그러나 다행히도 예술가들은 정신계에서는 앞서의 두 가지 방법이 서로 결합될 수 있음을 우리들에게 증명해 보여줬다때문에 여기서도 그 방법을 따르고 싶으며또한 인간의 성장을 돕는 여러 가지 소재를 규명하고 싶다그러나 그보다는 차라리 살아 있는 모습 그대로를 친구들의 가슴 속에다 심어 그것이 싹트고 성장하는 것을 기다려 보는 게 더욱 좋을 듯싶다.


P18

옛 사람들을 당신의 가슴에서 떼어 버리지 않기를.” 오토 폰 라이크스네르는 그 편지의 마지막에다 그렇게 썼다그러나 그들이 그들의 시대를 보았던 내적인 눈으로 당신의 시대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당신의 내부를 깊이 파고들어서 당신의 존재의 핵심을 탐구하십시오그러나 절대로 성급하게 굴어서는 안 되며 새롭다고 해서 그것을 해결로 보지 않도록 하십시오동경에 넘친 당신의 청춘을 마음껏 즐기되 관능적인 생활에 대한 욕구를 제어하는 것을 배우십시오. 나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당신이 당신 자신의 내부에서 계획하는 하나하나의 불꽃의 힘이 당신의 찬성의 근원을 기르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결코 금욕을 설교하는 것은 아닙니다그러나 당신은 가능한 한 마음의 순결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P19

요컨대 그는 그 먼곳에서 온 현인(賢人)의 편지에서 자기 마음에 맞는 것만을 되풀이해서 읽었으며그 편지를 부적처럼 언제나 지니고 다녔다.


P26~27

오래 전부터 내 기분은 정신이나 미래에서 놀며 항상 거기에서 생명을 탐지해 내었으므로 파우스트나 안티고네편이 나의 조상의 그 어느 누구보다도 내게는 까운 존재였다때문에 지금 누가 이 앨범이라는 창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농부의 얼굴이나 관리의 얼굴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너는 지금 이렇게 생을 즐길 수도 없었으리라고 내게 설득한다 해도 나는 단연 그것을 터무니없는 농담으로 보아 넘겼을 것이다.


P33~34

기존의 사물을 넘어라! 이것이 그 잡지(게젤샤프트)의 모든 시모든 논문을 대변하는 것이었다거기에는 전대미문의 말들의 향연이 있다그것은 새로운 감각새로운 감정일체를 짓밟는 분방한 사랑나신찬앙(裸身鑽仰)의 설교이며 인류를 허탈 상태에 떨어뜨린 그리스도교에 대한 반항이었다아무리 마른 해면일지라도 그것들의 새로운 관념이 나의 내부로 힘차게 스며 들어온 만큼 물을 빨아들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P35

사십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 그 때의 흥분을 다시 불러일으키려고 하면 그것이 그 후의 내게 얼마나 불길한 의미를 가진 사건이었던가를 확실하게 깨달아진다활자로 인쇄된 것은 무엇이나 확실한 기초 위에 서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십팔 세 소년에게는 이 새로운 복음의 선포는 유혹의 소리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소년은 거기에서 지금까지 염원했던 모든 것을 끌어낼 수가 있었으며 단념이나 분별그리고 특별한 업적도 요구되지 않았으며 무제한한 자유의 향수그것이 지상명령이었다. 가령 그것에 대한 다소의 의심이 내심 중에 일어났을지라도 그것은 삶의 향수로 불러주는 다른 소리에 의하여 완화되었다그것은 가난한 자와 결핍에 괴로워하는 자들을 위한 공분과 동정의 소리였다. 사회가 갖는 암흑의 처참한 밑바닥이 규명되었고만인의 해방과 복지가 위압적인 투로써 요구되었으며그것이 궁극적인 이상으로서 널리 알려졌다경험도 사려도 없는 몸으로서 그것을 읽었을 뿐으로 이미 반은 자신을 피압박 계급의 해방자의 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P38

발터는 잡지를 검은 커버 속에다 다시 넣었으나 별로 기분이 좋은 안색이 아니었다그는 약간 냉랭하게 말했다대도회에서는 모든 것이 전부 쓰여지거나 인쇄되거나 하지는 않는다도착한 첫 날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목을 디밀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는가그것은 새로운 제복만 입고 있다면 하사관을 만나서도 원수(元首)로 생각하는 신병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지 않는가고.


P40

()그 강의에 의하여 우리들이 파인애플을 과학적으로 고찰하게 되면 그것이 기다리고 있다그 강의에 의하여 우리들이 파인애플을 과학적으로 고찰하게 되면 그것은 한 개의 응대과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그래도 그런 인식은 우리들의 갈망을 가라앉혀 주지는 못한다잠시 후 일꾼이 나타나서 보기 좋은 과실에 칼을 대어 그 조각들을 접시에 나누어 담기 시작하고 그 접시는 사방으로 돌려진다그 동안 교실에는 맛좋은 냄새가 진동한다실제 열매는 다만 상징적인 의식이라고 할 수 있어 각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극히 작은 한 조각에 불과하지만 분배를 받지 못하는 학생은 아무도 없다개개의 학생들은 자기가 그 존경하는 선생에게서 개인적인 만찬에 초대받은 것 같은 느낌이 되어 경건하게 자기에게 분배된 한 조각을 맛보는 것이었다


P43

괴테가 모든 피조물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총명하고 분별 있는 장형이 철없는 매제들에게 들려주는 것 같은 그런 취지였다즉 그 매제들이 자라나는 성장의 흔적을 그는 애정으로서 더듬고 그것을 외워 써 두었던 것이다그렇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은 보다 정확하고 냉정하고 예리하게 되어 왔다인식은 눈뜨면서 꿈꾸는 듯한 심정에서보다는 보다 오성의 탐색에서 이루어졌다과학은 생물의 내부조직의 진상을 알기 위해서 그것을 산 채로 상처를 입히거나 죽이는 그런 폭력적인 탐구법도 피하지 않게 된 덧이다스승들은 모두가 공직의 몸이 되어 국가로부터의 위탁자로서 밤낮으로 그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P44~45

그러나 어찌해서 유기체는 존재하게 되었는가-이런 수수께끼를 혼자서 더듬고 있노라면 문득 유년 시대로 돌아가서 생명은 시작이 없는 영원한 것이라는 느낌이 솟아오르는 순간이 있다생명은 열도 한기도 범할 수 없는 나라를 고향으로 삼고 있음에 틀림없다. 가령 가장 맹렬한 회오리바람도 저 정답고 부드러운 광선을 파괴할 수 있기는커녕 휘게 할 수도 없듯이 열과 한기도 생명의 그 영토에 대해서는 어떻게도 할 수는 없다생명이 지구상의 존재로 된 이후로는 그것은 끓어오르는 고열을 피하여 한쪽 구석에 틀어박혀 있었던 것이다거기에는 일종의 가장자리생명이 존속할 수 있는 부동적인 지대가 있다그 사실은 생명은 항상 위험에 쫓기고 있다는 우리들의 일상생활의 경험과 일치한다오늘날에도 생명은 다만 이 지구의 얇은 외피 위에 번성하고 있을 뿐으로 항상 그것을 잡아 다니려는 저 무섭고 어두운 작열의 지저에 있어서도또 언제나 동경하는 에테르의 한냉 속에서도 그것을 존속할 수는 없다결국 생명에는 하늘의 여러 힘이 참여하고 있어 그것은 단순히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적 세계에서 생겼다고 만은 말할 수는 없다먼저 저 불가지의 세계로 이르는 통로가 생명 자체 속에 감추어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그 때의 우리들로서는 전연 생각할 수도 없었던 사상이었다우리들은 칸트에 대해서도 또 수베텐 보르크나 그 계통의 사람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랐다만약 누군가가 우리들에게 생명의 발상에 관한 온갖 수다한 학설은 언제까지나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천사 같은 순수한 정신의 소유자만이 이 가지(可知)의 세계가 불가지의 세계로부터 생기는 과정을 알 수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였다고 해도 우리들은 그 의미를 이해할 수는 없었으리라고 생각된다


P47~48

이 순간에 또다시 유년 시대에 가졌던 그 기분이 되살아났다밝은 등에 둘러싸여서 관에 누워 있는 시체를 보았을 때의 긴장되고 엄숙한 느낌모든 죽은 자에 대해 그들의 미래의 생명과 평화에 대해 마음을 쓰던 그 당시의 생각이그러나 지금 우리들 앞에 누워 있는 이 죽은 자들은 꽃으로 장식된 저 명예로운 장례에 참여할 기회가 부여되지 않아장식도 축복도 없이 끝없는 죽은 자들의 행진이 해부학 강의실의 문을 지나 계속되는 것이다죽음조차도 다수라는 것으로 해서 무가치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 이것을 보고는 누가 감히 부활을 믿을 것인가. ()내가 완전한 여인의 나체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그런데 그것은 괴멸하고 있는 자의 육체가 아닌가며칠 전까지도 그녀에게 사랑을 바친 남자는 적지 않았으리라이제는 그녀를 위하여 최소한의 매장비용까지도 부담하려는 자가 없다눈을 감겨 주는 자도


P48~49

조직이란 즉 같은 종류의 세포의 결합으로 그 결합에서 각 기관이 만들어진다혈액까지도 우리들은 액체에 의하여 상호간에 결합도 되고 떨어지기도 하는 무수한 세포라 만드는 조직이라고 볼 수가 있다그런데 무엇이 그 무수한 짜임 손(세포)에게 그런 위탁을 하였는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도 일체를 포괄하는 일종의 신령이 모든 경우를 통하여 부성적인 생산력을 갖고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그러나 실제의 운영에서는 우리들은 더없는 모성적인 것을 느끼는 것이다감추어진 의도에 따라서 몇 만의 세포가 끊임없이 새로운 형성물을 만들기 위하여 운반되고 동원되어간다그런 경우 일은 신과 같은 인내로서 진행되어 저장고는 언제나 가득 찬다그리고 짜임 손은 아무리 일에 실패를 거듭하여도 끊임없이 새로운 활동을 개시하는 것이다. 

 강의시간은 이해의 기쁨 속에서 벌써 지나가 버렸다. (가령 혐오할 인상이라도 그것을 편안하고 고요하게 받으며 충실히 학문에 종사한다는 것은 얼마나 남자로서 어울리는 일인가를 나는 확실히 느꼈다만약에 의료직을 맡으려는 자가 타인의 죽음이나 무서운 괴멸을 목격하고 마음의 평형을 잃는다면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구원의 힘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가령 문외한으로부터 비정의 인간이라고 여겨진다고 해도 그는 다만 자신의 임무를 다하면 되는 것이다물론 미숙한 연배에 있어서는 그런 기분이 태도로서 밖으로 나타날 때는 극히 무례한 형태를 취할 때가 있겠지만 그것은 다만 혼돈의 위력과 유혹에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기 위한 정당방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리라


P50

그 순간의 일이 내게는 또 다른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겨 주었다그 시체실에 누워 있는 어떤 죽은 자도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는 감정이 나의 내부에서 눈떴던 것이다그 엄숙한 여성은 마치 방황하는 영혼의 안내자처럼 창 가까이에 서 있고 그 창 밖에는 정오의 햇살을 받고 익은 인동 덩굴의 열매가 탐스런 금빛으로 비치고 있었다죽은 자들의 운명에 부드럽고 새로운 빛이 비쳐왔다그들은 각자 독특한 의무와 권리를 갖는 계층에 들어간 것이다그렇다그들은 그들의 해체를 다른 사람과 달리 자연스럽게 맡긴다의식와 미의 사도의 손에 맡김으로서 보다 높은 왕국의 시민이 된 것이다타는 촛불이나 눈물에 젖은 의식 같은 것이 필요없는 나라로


P55

그러나 이 숙독의 폭풍이 그치자 뒤에는 우울만이 남겨졌으며또 무엇인가 다른 소리가 부르는 것이 있어 그것에 따르게 되었다그리하여 우리들은 시대의 흔들림 그대로 책에서 책으로 옮아갔다고대의 위대한 시작이 차츰 우리들의 시계에서 사라져 괴테의 모습까지도 한 때는 멀어졌을 정도였으므로 우리들은 기준을 잃어갔다그러나 뜻하지 않게도 갑자기 데멜의 힘찬 부름이 우리들의 귓전을 울렸다휴고가 어느 주간잡지에서 <들에 어둠이 내릴 때...> 로 시작되는 데멜의 짧은 시를 발견한 것이다우리들은 그것을 베끼고 매일처럼 읊조렸다물론 거기에는 후기의 괴테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내용도 있었으나 전체는 설명하기 어렵고 새로웠다이 열두 행의 시에 대해서 무엇인가 설명을 할 수는 도저히 없었다그것은 다만 항상 아름다우며 삶의 의의를 스치고 심정을 꿰뚫었다.


p59

누구나 자기에게서나 남에게서 이상한 것을 기대했으며 관습적인 것은 그 가치가 의심되었다사람은 종교를 버리고 마술로 뛰어들었고 영원히 감추어져 있는 것에 대한 호기심 그것은 당시 어떤 장소 어떤 방면에서나 퍼져 있었다거기에 모인 사람들 마음속에도 역시 눈떠 있어서 자칫하면 기묘하게 겉으로 나타났다우리들을 휘감고 있는 오관의 음울한 속임을 돌파하고 싶다는 것이 모두의 염원이었다그러나 정상적인 과정으로는 그것은 불가능하였으므로 일동은 질병을 예찬하며 그것을 천재와 위대함에 도달하는 통로처럼 생각했다그런 뒤틀린 생각에도 일종의 진리의 싹은 감추어져 있었다


p61

 다음 사람은 겨우 급제였고그 중에서 내가 최열등 성적이었다핀에 온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내게는 불가능하였다주위가 나의 안계에서 사라지자마자 그 날의 커다란 체험으로서 프로메티우스가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었다나는 여기저기를 마구 더듬어댔다마침내 정이 떨어진 듯 누군가가 눈가리개를 풀어주면서 반은 농담으로 반은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자네는 참으로 둔감하군이끌리는 대로 따르면 되는 거야. 그게 안 된단 말이군.

 이번에는 어느 젊은 조각가의 차례가 되었다.(...)그는 제법 사람들의 화제에 오르곤 했으나 조각가로서의 재능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풍채의 아름다움특히 그 풍부하고 빛나는 금발 때문이었다한편으로는 거의 승려적이라고 할 만큼 금욕적인 일상생활그리고 이렇게 서로 모순된 두 개의 현상이 상호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점이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게 한 원인이 되었다그는 몇몇 아름다운 여성의 마음을 포로로 사로잡았으나 그는 사랑의 밤을 지낸 다음 날에는 그의 멋진 두발이 언제나 조금은 그 젊은 황금의 광채를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믿었다아마도 그것은 그의 지나친 생각이거나 혹은 다소는 근거가 있었는지도 모른다어떻든 그는 를 열락의 희생으로 바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때문에 이제는 허영에서 덕성으로 인도되어 그는 여성을 피하며 지내갔다


p83

그녀는 갑자기 내게 약혼한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내가 없다고 대답하자 그 대답을 건성으로 들으면서 여자라는 것을 조심해야 된다고 내게 충고하는 것이었다악마가 악마를 경계하라고 말해주는 저 암흑의 세계우리들은 모두 한 번은 그 세계에 떨어지게 되어 있지만 그 때의 나의 눈에는 아직 그러한 세계는 비치지도 않았다.   


p89

마리아는 입 밖에는 내지 않았지만 그녀의 뜻이 무엇인가는 나는 알 수가 있었다나는 보겐라이터가인 외가를 본받는 게 현명하다절대로 뱃속을 알 수 없는 어두운 세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본받지 말고이 가계(家系)에서는 한 사람이라도 관직에 있었던 사람은 없지 않은가이런 사람들은 부인을 행복하게 하지 못합니다.” 그녀는 결론을 내리듯 말했는데그 선고는 나의 가슴을 뒤흔들었으며 훗날에도 그 말은 마치 저주처럼 내 귀에 되살아나는 것이었다내게 대한 경고로써 친절한 마음씨에서 말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되면서도 나의 부계의 성격에 있어서 내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 것즉 이상한 일에 대한 그들의 야심적인 애호일상성을 뛰어넘어 더욱 자유스럽고 활동적인 세계를 열려고 하는 그들의 노력이런 것들을 그녀는 틀림없이 좋지 않게 보는 것이다나에게는 그렇게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p100~101

-프랑스의 그늘 아래서-


어느 독일의 교육자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프랑스에서는 그 문학의 여명기에 언어적 기념비가 하나도 없었다고프랑스는 에다(북유럽의 신화 전설집산문과 운문의 두 종류가 있음)도 칼데발라도 니베룽겐의 노래도 신곡(神曲)도 가진 바가 없다그는 그것을 그 나라의 커다란 결점으로 본 것이다그러나 가령 그런 점이 유감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그런 빈곤에서 부에 이르기 위한 부를 퍼내는 힘을 가지고 있었던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들의 꿈이나 예술활동의 온갖 영역에서 거목과 같은 선인(先人)의 그림자가 없었다는 것이 참으로 그들에게는 단순히 손해였던가그들은 그 보상으로써 이교도와 같이 삶에 대하여 밝고 개방된 마음을 가지게 되었으며 현실의 여러 현상에 대해 지대한 흥미를 기울였고 어떤 심연을 앞에 두고도 눈을 감지 않았다동시에 그들은 참다운 인식을 얻기 위해 불꽃 튀기는 노력으로 도취의 능력최고의 것에도 최저의 것에도 일체 고려함이 없이 귀의하는 능력을 갖추었으며 표현의 예리함을 지니고 있다우리들 독일인은 종종 그 예리함에 아연해질 따름이다.(...)

 참다운 독일 시인이면 시인일수록 그가 프랑스의 정수에 완전히 매혹된다고 해도 그것이 조금도 그의 본질을 해치지는 않는다그는 자신의 고유의 것을 그것으로 해서 잃지는 않는다아니이 프랑스산()과의 접촉만이 그의 내부에 깃든 참다운 독일적 요소의 발현을 재촉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프랑스인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시와 진실>(괴테의 자서전적 소설)을 쓰지는 못했다그러나 그런 작품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루소의 영향이 무엇보다 필요했었다확실히 나는 아르디느가 없었더라도 이 서쪽의 이웃들이 쓴 책에 친밀해졌겠지만 그럴 경우에는 아마도 그 시기가 훨씬 늦었을 거며 생의 열성적인 입김이 스며들지는 않았겠지그러므로 이중의 이국적 매력이 내게 작용했다고 말할 수가 있다.


p104~105

인간도 노경에 이르면 예전에 이러이러한 사람을 만났었다는 사실이 자기에게 좋은 일이었는지 아닌지를 벼로 음미하려고 하지 않는다기껏해서 자기 자신이 미숙해서 사상이 굳지 않았을 때 그것과 교섭을 가지게 된 불행을 슬퍼할 뿐이다. 진실의 영혼이 배경으로 물러서면 악마들이 제멋대로 날뛰게 된다아르디노도 두 사람의 관계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나 이상으로 고민하였으리라내게는 현실의 부족함을 보충할 공상과 독서라는 것이 있지 않았는가. 나는 그녀의 내부에 있는 그 무엇도 성장시킬 수는 없었으며 그녀도 내 속에 있는 가장 깊은 것을 일부러 깨울 수는 없었다그러나 우리 두 사람은 모두가 그 일을 알지 못했으며 다만 우리들이 왜 좀더 행복하지 않은가를 의심스럽게 생각하였을 뿐이었다.

 세상에는 남자의 순진함과 명랑함에 강력하게 끌리면서도 그에게서 그 특징을 잃게 하려 하고 그런 참다운 면목에서부터 침울한 존재로 만드려는 무의식적인 결심을 하는 여성이 있다얼마 후 그녀는 슬픔에 사로잡힌 남자를 보지 않고는 그를 사랑할 수가 없게 된다아르디느는 정말로 그런 여성의 한 사람이었다.


p109~110

도망칠 재간도 없이 어떤 다른 존재에 매어 있다는 것은 실은 자기 암시자기가 자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는 기묘한 자기 암시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얼마나 멋진 발견이었던가.


p111

아마도 그날 밤 나에게 그처럼 변한 감정을 일으켜 준 것은 실제로 저 만월에 가까운 달이었으리라그것은 거부의 감정이었다죽음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인간이 시체로 변하는 것에 대한 항의인 것이다. 왜 생명소실의 순간에 어느 종류의 결정(結晶)이 물에 녹듯 또는 초가 자신의 빛 속에서 소실해 가듯 참다운 용해가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우리들이 겁을 내고 장식을 하며 그리고 땅 속에 숨기는 저 창백한 껍질은 어쩔 도리가 없단 말인가그 방정식에는 무엇인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인류가 때때로 느낀다그리고 화장(火葬)을 선택해서 그 해답을 얻으려고 한다


p126~127

(...)그러기 위해 나는 별로 바람직하지는 못하나마 어떤 암울한 책들에서 그 원조를 구하였다그것들은 여성이란 것을 깔보는 시대의 책이어서 무사려했던 청년은 여성이란 언제나 죄악 속에 빠져 있는 것이라고 쉽사리 상상을 할 수가 있었다. 아르디느가 대부호 마리한자의 구혼을 물리치고 가난한 독일의 시인을 좇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시라는 것을 우습게 생각했다만약 그녀가 데멜의 낭독회에 참석했더라면 그녀도 반드시 웃음을 터뜨렸던 사람 중의 하나였으리라이것으로 그녀에 대한 판단은 내려졌다우리 인간들이란 어떤 사람을 싫어할 겨우 거기에 따른 그럴듯한 변명을 언제나 할 수가 있지 않은가그러면서도 동정과 연민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내가 그녀의 출생에 대한 의심을 입에 내어 피력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말하자면 그녀의 지위는 프랑스 여성으로서의 그 지위와 품위가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던 것이다.


p132

다소 역설 같지만세인이 말하듯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시인의 몽상이 자아내주는 우울하고도 엄숙한 조율에 대해서도 공감을 가지지 못한다는 말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p136

(...)앞으로 정도가 나아지면 응당 받게 될 인상을 미리 체험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으나 인생이란 하나하나의 사건에 대해 미리 각오가 되어 있는가를 묻지 않는 법이다


p140

나는 잊는다는 것이 무엇임을 실감할 것 같았다우리들은 매일 음식물에 다소의 물을 섞어야 하는데 그 사람은 한꺼번에 다량의 물을 마셔버린 셈이다


**p144~145

잘 봐 두게나저분은 노년의 괴테를 만났던 노인일세. -나폴레옹의 위엄과 그 몰락만년의 베토벤실러크라이스트헵벨그릴파르차의 희곡휠덜린과 노발리스아이헨도르프와 미리케그 밖의 천재 서정시인들의 작품 <늦여름>(아돌프 슈티푸터의 소설젊은이의 발전상을 담은 작품임)과 <푸른 하인리히>(고트프리트 켈러의 소설로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와 비견할 작품>, 헤겔과 쇼펜하우어의 세계고찰베르디온 바그너의 악극프랑스의 위대한 작가와 예술가들러시아와 북구(北歐)의 문호들영화의 발명자연과학의 확충지표를 뒤덮을 철조망전력(電力)의 응용독일제국의 건국적십자조약의 체결의술과 화학의 홍융일체를 삼투하는 방사선의 발견이런 모든 것과 그것에 필적할 그 외의 많은 현상들이 모두가 이 한 세기의 소산인 것이다자랑과 환희의 감정이 현재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적셔주고 있다그들은 시대 속의 시대에 살고 있는 자신들을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로 여기며 온갖 위해(危害)는 지상에서 말끔히 제거되었다고 믿고 있으나 지령(地靈)은 두 가지의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다그리고 이미 이 빛나는 세기에 대해 탄핵자들과 폭로자들이 일어선 것이었다그들은 결코 약자나 비겁자가 아니라 가장 용감한 독수리 같은 인물들로서 그들은 카잔도라(트로야왕 프리아 모스의 딸로서 그리스편의 목마를 서에 넣지 말라고 말렸음)처럼 입을 열어 말을 시작한 것이었다기술의 근면이 낳은 어마어마한 성과데몬 같은 거대한 에너지의 전개 아래서 인류 고유의 그 깊은 소질이 얼마나 쇠퇴되는가를 알았다그리고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을 자유로운 영혼고귀한 중용뛰어난 자에 대한 외경심창조적인 슬픔청춘의 힘을 소생케 하는 아름다움 같은 보배가 상실되어 가는 모습을 보았다끊임이 없는 속도의 증대에도 일조의 기묘한 평등화가 따랐으며 각계각층이 그걸 느껴 시대가 제공하는 과도함에 불신의 눈을 번득이는 사람들이 때때로 나타났으나 그런 거부의 형식은 비참할 정도로 단순했다. 점포에다 전화기를 설치 않으려는 이름 높은 노 상인초근목피를 복용함으로써 새 시대의 왁진제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타이프라이터가 아니라 붓으로 시를 쓰는 시인들뮌헨에서 인스브룩까지의 여행에 급행열차를 타지 않고 일부러 마차를 준비시킨 사람들의 일화가 세인들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일단 진행을 시작한 지금 그걸 아직은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완고한 사람들을 사람들은 사랑했다모든 것이 다 상실돼 버린 사람들을 처절한 마음으로 사랑하듯.

 아무리 그래도 이미 되돌릴 수는 없지 않은가인간들의 거주지는 나날이 그 거리가 좁혀지지만 사람들의 영혼은 결코 서로 가까워지지는 않았다모든 것을 덮어주는 푸른 하늘이 여러 국민의 안계(眼界)에서 사라지면서 어떤 암울한 영혼이 황금의 미래를 투영하며 불화의 씨를 뿌려 주었다기묘한 두려움이 사람들의 마음에 숨어들어 그들은 서로를 희화(戱畵)로서 보기 시작했으며 두려움에서는 미움이미움에서는 파괴의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이십 세 전후의 우리들로서는 도저히 그런 변화와 그 결과를 꿰뚫어 볼 수는 없어 경고하는 예언의 외침을 들었으나 그것을 시적 공사의 산물로 해석하고는 흥겨워했다.  


p146

시간이란 과대평가를 조정해 주기 마련이다.


P150~151

리하르트 데멜이 쓴 울분의 시를 끄집어냈던 것이다그 시는 <노동자>라는 제목의 시로서 이미 널리 알려진 작품이었으며 시대적인 근본감정을 담담하고 힘판 필치로 표현한 것이었다부족한 것이 있다면 다만 시간뿐시간뿐! 이라는 말로 그 시의 각 구절은 끝나고 있다그리고 그 전체는 모든 인류의 감정에 조소와 비통에 가득 찬 음조로 그 외침을 들려준다. 노동자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그들이 자유롭고 아름다우며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시간 여가뿐이다. 그 시는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 시를 사랑했고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미워했다그러면서 그 시가 통용되지 않는 시대가 가까이에 다가와 있다는 사실은 그 어느 누구도 예감을 하지 못했었다실업(失業)이 증대되고 노동자에게 시간이 남아 돌아가게 된 시대가 온 것은 그렇게 먼 훗날은 아니었으므로. ()

 대개 자신의 체험이나 사색에 의해 얻어진 사상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신중하면서도 온화한 태도로 말하지만 기성의 사상으로서 어디에선가 받아들인 것에 대해서는 항상 성급하게 주장하게 마련이다. (나는 아직도 다정한 혁명가가 실은 가장 끈기 있는 투사임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P171

 젊은 사람이 체험담을 기술한다면 그것이 생생하면서도 직접적인 인상으로 넘쳐 있어 대개는 근시적인 성격을 탈피하지 못하는 것이 상례다나이를 먹은 뒤에야 우리들은 존재의 차원을 넓히게 되어 이런 일은 꼭 해야겠고 어떤 일은 그만 두었어야 했을 거라는 판단이 서기 때문이다사물을 보다 깊이 통찰하기 위해서는 나이를 먹어야 한다.


P180

 이윽고 하인에게 내려진 지시는 간단한 것이었다어떤 죄도 용서받지 못한다는 죄는 없다그러나 그대의 죄는 너무나 큰 것임으로 내심을 나타내 보일 틀림없는 증거를 내보여야 한다후회의 고통을 피살자 자신이 일깨워 주었으니 그대는 그것을 좋은 표정으로 보아야 한다. 속죄는 아무리 괴로운 일이라도 수행해야 된다그대가 걸어갈 길에 대해서는 그대도 알고 있겠지만 어떤 기분으로 거기에 닿는가가 중요하다무거운 마음으로 공포 속에 갇혀 그 길을 가서도 안 되며 유혹자에게 모든 죄를 떠맡기면 마음이 가벼워지겠지 하는 음모를 가져서도 안 된다그대는 영혼을 눈떠 무슨 희생이라도 달게 받겠다는 각오로 산을 내려가 재판소로 출두해야 된다


P195

나는 리하르트 헤르트뷔히 교수를 실망시키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대개는 그의 탁월한 강의 덕택이었다그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수강생의 가슴에다 요점을 새겨주어 그것을 절대로 잊지 않도록 하는 요령을 알고 있었다시험장에서 그가 질문하는 방식도 성실한 연장자가 연하의 동배의 능력을 시험하려는 것보다는 일종의 강의의 연속이었다


P205

아버지가 새 시대의 시인들의 가치를 부정할 때마다 그것이 나의 마음을 그렇게 언짢게 할 까닭도 없었다그리고 만약 아버지가 스트린트베르크나 니체나 데멜이나 몽베르트를 칭찬했다면 그 편이 오히려 내게는 이상했으리라나이가 많은 사람이 평시와 다르지 않은 태도로 젊은이에게 공경의 마음을 일으키게 하지 못하고 갑자기 젊은이에게 굴복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늙었다는 느낌을 주게 되기 때문이다


P207~209

복종하는 것이 자식된 도리라고 너의 늙은 아버지가 말하거든 그 말을 듣지 말라그에게 복종하지 말라.” 소년들은  그 시구를 무섭도록 잘 알아들었다잠시 후 그들의 떠드는 모습은 이상스러워져 가기 시작했다그들은 더 이상 가만히 있지 못하고 나무 사이로 끊임없이 뛰어다녔다동생은 계속 웃고 떠드는가 하면 형은 형대로 아버지의 말을 듣지 말라복종하지 말라 하면서 외쳐대는 것이었다이미 시인 양성은 문제가 아니었다나는 어른들이 그날 파사우로 집을 보러 간 것을 내심 다행으로 여겼다아버지가 이 꼴을 본다면 뭐라고 평을 할 것인가.

 그런 혁명적인 시를 낭송한 다음부터는 엄격한 감독자의 역할을 나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나는 점점 아파지는 마음으로 제자들의 소동을 지켜볼 뿐이었다나중에는 동생 쪽이 아직 제대로 익지도 않은 파란 자두를 보고는 따도 좋으냐고 물었고 나로서는 거절할 틈도 없게 되고 말았다그러나 좀처럼 나무에 기어오를 수는 없었다먹고 싶다는 일념에서 제일 멋진 놈이 달린 굵은 가지를 붙들고 늘어지면 그건 벌써 저만큼 멀어져 있는 것이었다내가 그 모양을 흥겹게 보고 있는 동안 제자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도를 넘었고나는 전신이 마비된 듯 제지할 능력을 잃고 하는 대로 맡길 수밖에 없었다그 때 동생에게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취한 형 쪽이 헛간에서 톱을 하나 찾아내어 그것을 동생에게 내밀어 주었다악동 두 놈은 고개를 끄덕거렸고 톱은 나무를 파고들었다그제야 나는 야단을 쳤으나 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으며 무거운 가지는 이미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다악동들은 아우성을 치며 그 귀중한 과일에 덤벼들었다어머니께서 생일에 쓰려고 고이고이 가꾸고 계시는 그 과일에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으나 마음 속으로는 화가 나서 사과주와 설익은 자두는 위 속에서 별로 잘 어울리지 않으리라고 여기고 열심히 그 악동들을 부추겨 그 과즙을 마시게 했다효과는 당장 나타났다잠시 후 동생에 이어 형 쪽이 눈썹을 찌푸리며 입을 다물더니 얼굴색이 노래지기 시작했다형제는 별안간 아무 말도 없이 일어나 나가버렸다

 그들이 어떤 상태로 집에 돌아갔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시인 교수는 그것이 처음이면서도 마지막이 되어 버렸기에그 후 두 소년의 어머니를 몇 번 만났으나 그녀의 양산이나 우산이 언제나 그 장밋빛 얼굴을 가려 내가 아무리 공손하게 인사를 하려 했어도 나의 그런 의도는 실현 불가능이었다.


P215~216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났던 것은 자신의 요구에 의해선가 그렇지 않으면 타인에 의해서 인가 라고그는 즉시 내 말을 알아들었다그런 사상은 이런 사람에게 낯익은 것이었으니까그는 비웃음기를 띠우며 머리를 흔들었다물론 좋아서 이런 도박을 시작한 것은 아닐세.

 저도 그렇습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우리 모두가 아무런 요구도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어떤 사람은 좋은 소질을 갖고 어떤 사람은 나쁜 소질을 갖고 말입니다훌륭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람도 있어 그 사람들은 좋은 범절을 배우며 해충에도 다치지 않고 잘 자랍니다그 사람의 눈에는 걱정거리는 하나도 없으며 자기의 별을 놓치는 일이 없어 별의 지시에 따라 나아갑니다그러나 한편으로는 가난하고 짓밟힌 양친 밑에서 태어난 사람도 있었습니다아버지가 그 사람의 피 속에다 분노를 낳았다면 그것은 그 사람과 함께 성숙해서 그의 손을 조종합니다때문에 그 손은 죄를 범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그러니 어떻게 그 젊은이가 어리석은 머리에 끝없이 떠오르는 나쁜 사념을 자신의 힘으로 막을 수가 있겠습니까그는 얼마나 자신에게서 탈출하고 싶을까요대개 우리 인간들은 언제인가는 그의 병적 충동을 고칠 방법을 발견하겠지만 어떻든 우리들은 그런 사람에게서 몸을 지킵니다그러나 일체를 생각하는 신은 어떻습니까


P219~221

신을 사랑하는 자는 신으로부터 사랑을 되받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스피노자의 교훈을 뼈 속까지 느끼는 사람은 극히 소수로 한정되어 있다. 거의 모든 신앙가는 신도 인간적인 방법으로 개개인을 사랑할 수가 있다고 믿는다그리고 사랑하는 이상은 신이 그 개개인을 미워할 수가 있다는 귀결에 다다른다그들 신앙가들의 생각은 궁극의 진리일 수는 없다그게 그렇다면 어떤 결론이 나올 거신가인도(印度)의 현자라면 인간의 생사는 신의 눈으로 본다면 우리들의 육신을 만들고 있는 억겁의 세포 가운데서 낡은 세포 하나가 죽고 그 대신에 새로운 세포 하나가 생겨난 것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고 만족할 수가 있겠지만 활동적인 인간에게는 그런 빈틈없는 노인 같은 가르침이 무슨 보탬이 될까. (활동하고 싸우는 인간은 자기의 부름이 영원한 자를 움직여 그걸 자신의 친구로 삼을 수가 있다고 믿어야 안심할 수가 있다그 절대자가 성좌 위에 살든 자신의 가슴 속에 살든. 그러나 그런 자문자답은 다만 희미한 예감으로서 나의 뇌리를 오고 갔을 뿐이었고 그것을 골똘히 생각해서 표현하기에는 나의 힘은 아직도 미숙했다나는 그럴수록 빨리 고뇌에 찬 사람의 곁을 떠나고만 싶었다. ()

대체 주님은 권능한가주님이 사탄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있는가그 점에 대해 간단한 교시를 받을 수가 있다면 감사하겠다고 젊은 신학생은 절망적인 몸짓으로 웃었다. (

 신은 악마에게 인정한 범위 내에서만 활동을 허락해 주었다이 세상이 침체하지 않도록 하는 자극제로서 쓰려는 것이다그런 사고는 <파우스트>를 읽은 독자라면 누구든지 납득하지만 자기 아버지에게는 소용없다는 것이 그 동창생의 의견이었다우리들은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결국 납득할만한 논법을 찾아냈다. (지옥의 마왕은 신을 향해 길을 가려는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배력도 가지지 못한다만약에 그렇게 강력하다면 하늘에는 이미 오래 전에 태양도 별도 그림자도 없게 되었을 것이다다만 신의 힘과 사랑에 의해서만이 우주는 유지되고 영원히 새롭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악마는 무슨 일도 건설할 수도 성취시킬 수도 없다그는 다만 파괴하려는 음모만을 심중에 갖고 있는데 그것은 다만 인간 영혼의 파괴만은 아니다이 아름다운 세계 전체도 악마는 파괴하려고 하면서도 파괴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p226~227

셰익스피어가 재현했던 가혹한 시대의 왕자들은 항상 권력과 위험과의 긴장상태 속에서 살고 있었으므로 측근자들은 지고의 은총이 아니면 파멸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왕의 머리에 얹힌 공허한 왕관 속에는 언제나 죽음이라는 환관들이 주권을 쥐고 있다 라고 왕관을 벗으면서 리차드 2세가 했던 말이 있다. 그러나 아직 어린 나이로 루트비히 왕이 조그마한 왕국의 왕좌에 오른 때는 이미 급격한 변화의 시대였다왕의 고결한 의지로 본다면 그는 역시 영웅시대의 왕자였으나 그분이 실제로 만난 것은 단조로운 공리성(功利性)이 지배한 범속한 세계였던 것이다그 세계는 그를 초조하게 했으며 혐오의 정을 갖게 했으나 그의 생명을 위협하지는 않았다또 왕 쪽에서도 그 세계를 위협할 수도 없었다그는 잔자분한 임무를 경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위험을 내포한 위대한 임무는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사 주어졌더라도 대처할 수도 없었겠지만 형편없는 현대와 왕자의 장려한 꿈과의 갈등은 어떻게도 손을 쓸 수가 없어 자랑스런 마음에 남겨진 유일한 길은 고독으로의 몰입이었다그것이 차츰 왕을 현실세계로부터 영원한 자유로 불러냈었다. 그런 왕자들은 물론 정치가로서는 부적합하지만 국민들은 번민하는 그 모습에 포로가 되어 그 모습을 자신의 공상세계에다 맞아들였었다.


p228~229

사회가 해독을 끼치는 자를 배제하는 것도 납득할 수가 있으나 거장 중의 거장인 신이 하잘 것 없는 재료를 갖고도 무엇인가 만들어 낸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믿어도 좋다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베어져 장작이 되지만 거기에 불붙는 불은 순수한 원소를 유지시킨다그 나무가 지상에 쓰러져서 썩어도 그것은 새로운 성장을 위한 하나의 자양분이 된다자연은 원소를 하나하나 보존하고 이용하며 위대한 예술가는 살인자의 얼굴을 갖고도 마음을 흔들어 주는 상()을 형성한다그러니 신이 쓸데없는 낭비를 한다는 게 있을 수 있겠는가!


p238

그렇다이미 낯선 존재가 되어버린 첫 여인에게로 가는 길을 막는 것또한 모든 가난한 자들의 곤궁보다는 나 자신의 갈등이 내게는 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p240

본원적인 인간이 동경하는 것은 항상 위대한 창시자의 시대이다. 그리고 어느 종교가 확실히 순수한 영향을 주는 것은 그것에 귀의를 고백하는 것이 위험을 의미하는 시대에 한정된다(...) 나는 뜻밖에도 온 생명력이 유년시대의 샘에서 흘러나옴을 느꼈다


p249

오늘날은 저작의 수나 양보다는 시인으로서의 순수성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고-.


p250

나는 지난 겨울부터 미로를 방황하며 최선의 것을 낭비하고 자기 자신을 추구하려고 하면서도 점점 거기서 멀어져 간다는 생각으로 괴로움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 

하나의 전환기에 산처럼 버텨 서서 혹은 감시하고 혹은 고무시켜 주는 준열하고도 냉담한 정신적 존재는 순수한 예술적 풍성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가끔 그 양면이 한 인간의 내부에서 만나면 한 시대에 대해 잊을 수 없는 성격을 부여하는 여러 가지 힘을 낳는다그것은 애써 세상의 애호를 얻었던 화가의 색을 퇴색시키며 하나의 효소로써 새로운 것의 생성을 촉진시키는 일체의 발아(發芽)를 정지시킨다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심연에 닿을 듯한 아슬아슬한 걸음으로 걸으며 높은 목표를 추구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빠지지 못하는 일들을 멸시한다동시대인들은 그들의 외고집에 대해 무한한 증오나 사랑으로 보답한다


p252~253

시인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 그의 기성작품들은 점점 애호가를 더 얻게 되지만 새로 태어나려는 작품에 대해서는 한 사람의 친구도 없게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아주 멀리에 있는 힘까지도 종종 그런 새싹을 저지하려는 음모에 가담하려는 것처럼 생각된다진귀한 새가 그 때까지 몸을 숨기고 있던 곳에서 시대를 향해 노래를 부르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 가운데는 반드시 그 노래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자가 있기 마련이다그들은 그 새의 노래를 듣기보다는 새와 잡담을 하려하며 다른 새들에 대한 비평을 그 새를 기준으로 해서 왈가왈부하려고 든다어느 편이든 그들은 될 수만 있다면 그 새에게서 날개죽지 하나라도 뽑으려 한다만약에 그 새가 그런 식으로 깃털을 뽑히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면 모르되 두 번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간단히 날아가 버릴 무례함을 감행할 용기가 없다면 새는 언젠가는 온몸이 발가숭이가 되어 너무나 잡담을 했던 것 때문에 멜로디를 잊어버리는 수도 있다. (...)

 그녀의 심적 상태를 헤아리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혁명적인 것에 대한 공감사회개조에 의한 정의의 나라를 수립하겠다는 선언문에서 얻어낸 듯싶은 어린애 같은 신념도취에 대한 욕구폭풍을 잉태한 강렬한 성격에 대해 느끼는 기쁨그 모든 것은 심층에 있어 뿌리 밑의 허약함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사랑에 의해서도 고쳐지지 않을 것이며 부숴지기 쉽고 상처받기 쉬운 약점이었다. (...) 그녀에게는 그녀의 본질이 무엇임을 끊임없이 지적해서 가르쳐 주는 침착한 연상의 친구가 필요할 것이다.


p267

다시 지난 밤의 은밀한 이야기가 나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다시 손에 책을 집어 들었다그것은 확실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다여러 가지 명제에서 몇 개의 커다란 변이(變異)에 대한 예감이 떠올랐으며 이미 알고 있던 것이 한층 잘 이해되었다어느 원소도 미지의 특성이 예감되었으며 괴테의 저술로서 인간계와의 일치가 생각되었다단지 극소수의 물질과만 화합을 긍정치 않는 자랑스럽고 순수한 물질이 있는가 하면 그 반면에 활동적인 물질도 있어서 다른 것은 모두가 그것들에 의해 용해되거나 분해되어 버린다게다가 그 물질 자신은 자기를 유지하고 있다또한 다른 물질의 의지를 좌절시키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물질들도 많으며 타자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그 능력을 발휘케 해주는 물질의 존재도 알려져 있다. 순간마다 세계는 무너지며 또다시 새로운 결합을 한다. 그리고 그런 현상을 통괄하는 모든 규칙이 내가 읽고 있는 페이지 위에 써 있는 것이다그것이야말로 정말로 마법의 책이다더욱이 그 때까지 내가 매일 꺼림칙하게 등에 업고 지냈던 것이 아닌가.


p269

자연이 잠시나마 자신을 아무렇게나 취급한다면 우리들의 꽃피어나는 푸른 지표(地表)는 눈도 댈 수 없는 폐허로 화해 버리리라

(...) 외적인 위험성이 적을 때는 사람들은 즐겨 위험한 상태를 공상 속에서 그려보지만 차츰 도회와 친구들에게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된다


p270

아무리 가난하여 친구가 없는 사람이라도 상렬한 영혼과 겸허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도시에서는 이 지상의 최고 존재나 사물과 깊은 교류를 가질 수가 있을 것이다. (...) 언제인가 어떤 천재가 대리석 속에다 불어넣은 사상에 내객이 접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오직 그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려있을 뿐이다. 깊은 뜻을 내포한 그림이 그를 포용하여 그를 일변시킬 수 있는지의 여부나 성좌로부터 축복을 받은 별이 그 빛나는 광선으로 그의 혼에까지 도착할 수 있는지의 여부도 그와 마찬가지다우리들의 감정을 끝없이 움직여 주는 시인의 아름다우면서도 어두컴컴한 시어도 도시에서 태어난 몽상가들로부터 온 것이 아닌가심지어 내가 읽고 있는 이 책에 담긴 지식조차 대학의 실험실이 아니고서는 어디에서도 있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p272

여행자가 이삼 일 동안에 얻은 체험 내용은 그것을 정리하고 소화하는데 몇 주일을 필요로 하기 마련이다그가 빨리 집에 돌아왔다고 해서 여행이 재미가 없었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그는 자기의 기분을 알아주지 못한다는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p279~281

예기치 않았던 달빛이 나의 침상 위에서 조금씩 이동됨에 따라서 나는 우리들이 이 세기의 아들이라는 것과 우리들이 자연계의 인식을 위해 몸을 바친 것이 결코 헛된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깨달아졌다은빛 같은 달빛과의 해후에서 느껴지는 은밀한 행복에 그냥 몸을 맡길 것이 아니라 나는 항상 우리들을 돌며 끊임없는 그 천체에 대해 지금까지 읽거나 들었던 몇 가지 일들을 생각해 보려고 했다그러자 내게는 지금껏 그 어느 누구도 이 천체에 대해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학자는 달의 운동을 계산하며 그 높이를 측량하고 시인에게는 달이란 그의 시구를 빛내주는 다정하고 신비한 빛이며 또한 친밀스러운 농담의 기연이기도 하다경건한 사람에게는 달은 아마도 영원한 하늘나라로 가는 도상에 있는 조그만 성당이어서 스스로 갈구하는 영혼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지니리라

 달이 그렇게도 가까운 곳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갈 수 없다는 것은 이상스러운 일이다일생동안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달과의 거리에 상당하는 노정을 답파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데도 달세계를 밟은 사람은 아직 없다거기에는 공기도 물도 없으며 따라서 생명도 부패도 없다행위에는 방해됨이 없고 고뇌에도 물들지 않는 침묵의 성역그 달이 우리들을 돌고 있는 것이다지구도 달이 없다면 오늘과 같은 지구는 아니었으리라. 학자들은 달이 지구가 아직 가스 상태나 유동 상태에 있을 때 지구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라고 말하고 우리들은 기꺼이 그 학설을 믿는다달은 우리들의 일부이나 우리들이 다만 그것을 자각하지 못할 뿐이기 때문이다달의 내측 궤도에서는 지구의 노래가 통용되나 그 반대쪽에서는 다른 법칙이 통용된다지구의 단단한 핵이 그렇게 가까이에 있는 아름다운 천공의 조용한 소리를 깨달을 때 그리고 이 별이 우리들의 바다에다 조석간만을 만들어 줄 때그 달은 모든 피조물의 다정다감한 마음을 사로잡아 거기다 각인을 찍지 않는가!

 그날 밤 나의 흉중에 오고 간 사념들을 말로써 다 표현할 수는 없다그것은 천문학자들이 달세계를 설명할 때 달에는 중력의 작용이 적다는 말과 관계가 있었다이 구체(球體)는 지구보다 훨씬 적으며 보다 가볍고 섬세한 물질로 이루어졌다거기서는 지상에서보다는 폭넓은 강물도 뛰어넘을 수가 있으며 무슨 물체이든 더 높이 던져 올릴 수가 있을 것이다거기서는 모든 것이 보다 경쾌하며 더 먼 거리를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사색이나 행위까지도 그렇겠지. 지구와 다른 가벼움에 대한 예감 그것이 때때로 스스로의 무거움으로 괴로워하는 우리들로 하여금 동경을 불러일으켜 주는 것이 아닐까.

(...) 이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혹은 삼라만상에혹은 자신의 내부에 눈을 돌리고 한밤중의 참다운 영()의 시간이 주는 입김을 느끼는 것이다. 지구가 갖는 영향권의 이정석(里程石), 우리들의 근친인 달그것을 젊은이는 마음속에서 다시 발견하며 그것을 보다 높은 영혼들의 집합점으로 여기고 거기다 인사를 보낸다. 특히 노 괴테와 같은 시인들의 시나 소설에 담긴 지구상의 일들이 너무나 우리들의 마음을 냉엄하게 사로잡아 우리들은 우리의 지식이 이 지구 위에서 획득된 것이라곤 믿을 수가 없다그러나 우리들은 그런 계시의 발상지로서 무엇에도 허둥대지 않고 달이 갖는 그 정적을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들은 때때로 그런 내면의 정적 속에서 살아간다. 완전히 이 세상과 절연해 본 사람만이 보다 높은 협동정신에 이르도록 성숙한다일체가 보다 가볍고 보다 청순한 그 세계에 살아감으로 해서 우리들은 괴롭고 곤란한 인생사에서 마음속의 소원을 실현할 수가 없었던 고독한 사람들을 좀더 잘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다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들은 계속 그들에게로 가까워질 수가 있다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우리들 자신의 천성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보상이 아닐는지우리들은 자신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적으며 우리들의 정신적인 눈은 우리 자신을 직접 인지할 수는 없다때문에 우리들은 다른 사람에게 깃드는 가능성을 우리 자신 속에서 개척해 나가야만 한다거기에서 비로소 풍성한 수확이 가능할 것이며 그때 우리들이 지불하는 노고에 의해 우리들의 본질이 무엇임을 가장 빨리 알아낼 수가 있다.


p283

아버지는 조용히 경청하고 있다가 누구나 전투적인 기분몸을 어디엔가 바치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는 법이라고 말씀하셨다

 ->하이데거의 기투성

(...) 우리들은 언제나 위급한 경우를 잊어서는 안 된다남자는 나라가 위급할 때면 하루 아침에 병사로 바뀔 수가 있으나 너는 의사로서 비록 평화스러운 시대에도 해매다 적에 대해 대항해야 될 것이다거기에 너무나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니라.” 그런 아버지의 훈계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나는 똑같은 말이 나와 아버지 두 사람에게 각기 다른 뜻으로 받아들여지는 시기가 시작되었음을 느꼈다아버지의 의지는 확고하며 명백하지만 나의 것은 동요하며 위태스럽다아버지는 자신의 처방에 대해 어떤 의구심도 갖지 않으며 나도 기꺼이 아버지의 그런 신념에 따르고 싶다그러나 나의 은밀한 신뢰와 애정은 그런 처방이 필요 없는 창조적인 천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기대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주무시러 나의 방을 떠나는 모습은 아주 괴로워 보였다그리고 아버지는 어떤 큰 기쁨이 가까이 다가와 있다는 사실을 나만큼은 그렇게 잘 모르고 계셨다.


*작품해설 전통의 수호자카로사 홍경호(전 한양대 교수문학박사)

p286~287

그러나 시대적인 변화와 거기에서 오는 요란한 소리그리고 표현주의의 격정(激情)같은 것들은 그에게는 직접 부딪치지 않고 스쳐서 지나갔을 뿐이다그는 그런 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고 초연한 입장에서 독자의 길을 걸어갔다또한 신 즉믈주의 문학에 동참했던 대부분의 작가들이 국외로 망명한 데 반해서 그는 국내에 잔류했었다이런 이유 때문에 괴테의 아류(亞流)라느니 나치에 협력했다는 등의 비난을 받게 되지만 이러한 비난은 그로서는 억울했다가 이토록 세속의 어지러움에서 초연하게 일상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의사로서의 직업 때문이기도 하였으나 너무나 고귀한 그의 천성 탓이기도 했다.

 그는 의사라는 직분에 지나칠 정도로 책임감을 느꼈을 뿐 아니라 작가로서는 괴테의 고전주의에 경도되어 시대와는 관계없이 고전적 필치로 자신의 체험만을 작품화했다이런 연유로 카로사의 작품은 괴테의 그것과 병렬로 비교하고 고찰할 수밖에 없다부정적으로 말한다면 카로사는 괴테의 그림자이고긍정적으로 말한다면 카로사는 독일문학의 전통에 가장 충실했던 전통의 수호자라 할 수 있다. (...)

 의사로서 작품을 쓴 작가들은 많다슈니츨러나 고트프리트 벤이나 체호프의 문학에는 의사라는 직업이 그다지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지만 카로사의 경우에는 그것을 도외시하고는 그의 문학을 생각할 수가 없다그는 의사였기에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보다 깊이 알았으며 그의 심성이 언제나 내적인 평온과 따뜻한 인간애로 가득 차 있었다그는 일찍부터 광포(狂暴)함을 사랑으로 변화시키려 노력했고인생의 비밀을 탐구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칠일 밤(Siete Noches)>

Posted by 히키신
2017. 3. 7. 21:07 글쓰기와 관련하여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칠일 밤(Siete Noches)>송병선 옮김현대문학, 2004 

 보르헤스가 말하는 문학 원형의 일곱 가지 주제


일일 밤신곡


p17

나는 단테를 밀턴Milton과 비교해보았습니다밀턴은 하나의 음조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그것은 바로 영어로 서블라임 스타일(고상한 형식)이라는 것이었습니다그 음악은 주인공들의 감정과 전혀 상관없이 항상 똑같습니다그러나 셰익스피어처럼 단테도 음악의 경우감정을 따라가고 있습니다거기서 억양과 강세는 매우 중요합니다그래서 우리는 각각의 구절을 큰 소리로 읽어야만 합니다.

 여기서 나는 큰 소리로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그것은 우리가 정말로 훌륭한 시를 읽을 때면큰 소리로 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시는 작은 소리나 속으로 읽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만일 우리가 조용히 읽을 수 있다면그것은 가치 있는 시가 아닙니다시는 항상 큰 소리로 읊을 것을 요구합니다운문은 항상 그것이 문자 예술이기 이전에 구어 예술이었다는 사실을 생각나게 합니다그것은 또한 노래였다는 사실도 떠올리게 합니다.


p19

단테는 어느 기하학 책에서 정육면체가 가장 단단한 용적이라는 것을 읽었음에 틀림없습니다그것은 시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상적인 발언이지만단테는 그것을 불행을 이겨내야 하는 인간의 은유로 사용하면서 사람은 착한 사각형정육면체라고 노래합니다그것은 정말 보기드믄 은유입니다.

 또한 화살에 대한 흥미로운 은유도 떠올리고 싶습니다단테는 활시위를 떠나 과녁에 꽂히는 화살의 속도를 우리가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그는 우리에게 화살이 과녁에 꽂혀 있고활을 떠나며활시위를 당긴다고 말합니다그는 얼마나 빨리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처음과 끝을 뒤집어 놓습니다.


p21

...그러나 시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이야기성입니다. 내가 젊었을 때 이야기성은 냉소의 대상이었습니다그것을 단지 일화로 치부했던 것입니다는 이야기가 되면서 시작되었고시의 근원에는 서사성이 자리잡고 있으며서사시가 최초의 시적 장르라는 것을 우리는 잊었던 것입니다. 서사시에는 시간이 있습니다즉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고이 모든 것은 시에도 있습니다


p24

단테의 경우모든 것이 너무나 생생해서, 우리는 그가 다른 천문학이 아닌 천동설을 믿었던 것과 마찬가지로자기의 또 다른 세상을 믿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파울 그루삭이 지적한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단테의 말을 아주 깊이 믿습니다그것은 신곡이 1인칭으로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단지 문법적 작위가 아니며(그들이보았다나 (그것은그랬다라고 말하는 대신 (내가보았다라고 말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이런 기법은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합니다즉 단테는 신곡의 등장인물 중 하나라는 사실을 뜻합니다그루삭에 의하면그것은 새로운 특징이었습니다단테 이전에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을 썼습니다그러나 그 고백록은 너무 장황한 수사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단테의 경향과는 먼 거리에 있습니다북부 아프리카 출신의 성인이 사용한 화려한 수사는 말하고자 하는 바와 우리가 듣는 것 사이에 종종 끼어듭니다.


p29~30

 현대소설은 우리에게 누군가를 알리기 위해서 오백이나 육백 페이지를 필요로 합니다그러나 단테에게는 한순간으로 족합니다바로 그 순간 작중 인물은 영원히 규정지어지기 때문입니다. 단테는 무의식적으로 그런 중심 순간을 찾습니다나는 여러 단편소설에서 그와 똑같은 것을 하고자 했고중세때 단테가 발견한 방법 때문에 만인의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그것은 인생의 암호로서 한순간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단테의 작품에는 그런 인물들이 많습니다그리고 그들의 삶은 단지 짧은 3행연구로 구성되어 있지만영원합니다그들은 한 단어나 하나의 행위에서 살고 있습니다그들은 그 이상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그들은 노래의 일부지만그 일부는 영원합니다그들은 계속 살아가고 있고기억과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다시 새로워집니다.

 카알라일은 단테의 작품이 두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말합니다물론 더 많은 특징들이 있지만두 가지가 가장 핵심적입니다그것은 다정함과 엄격함입니다이 두가지는 모순적인 것이 아닙니다한편 셰익스피어가 인간의 친절함의 우유라고 불렀던 인간의 다정함이 이 작품에 깃들어 있습니다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우리가 질서 있는 엄격한 세상의 주민이라는 것에 대한 지식입니다이 질서는 타자즉 제3의 화자에게 해당됩니다.


2일 밤악몽

p59~62

어젯밤에 숲속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꿈을 꾸었어요몹시 무서웠어요하지만 개간지에 도착했고거기에 하얀 나무집이 있었어요달팽이처럼 꾸불꾸불한 계단이 있었고층계에는 카펫이 깔려 있었고거기에는 문이 하나 있었어요그런데 바로 그 문에서 아저씨가 나왔어요.” 그러고는 갑자기 말을 멈춘 다음이렇게 덧붙였습니다그런데 그 집에서 아저씨는 뭘 하고 있었어요?

 모든 것즉 꿈이나 꿈에서 깬 다음의 일도 조카에게는 동일한 차원에서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다른 가정을 하도록 우리를 이끕니다그것은 신비주의자들의 가정과 형이상학자들의 가정입니다이 두 개는 서로 비슷하지만 정반대입니다.

 미개인이나 아이에게 꿈은 잠을 깬 이후의 일화입니다반면에 시인과 신비주의자들에게는 잠에서 깨어난 이후의 모든 삶이 꿈일 수도 있습니다스페인의 극작가인 칼데론 데 라 바르카는 무미건조한 짧은 말로 인생은 꿈이다라고 말했으며, 셰익스피어는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꿈과 같은 똑같은 재료로 만들어져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또한 오스트리아의 시인인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는 내가 내 인생을 꿈꾼 것인가아니면 꿈이었나?라는 멋진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이런 질문에 나도 뭐라고 정확하게 대답할 수는 없습니다그러나 이런 현상들은 우리를 유아론으로 이끌면서꿈꾸는 사람은 단 한 명이며그 사람은 우리 각자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게 만듭니다. 여기서 꿈꾸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해봅시다그럼 그 꿈꾸는 사람은 이 순간 여러분들을 꿈꾸고 있으며이 방과 이 강연을 꿈꾸고 있습니다꿈꾸는 사람은 단 한 명만이 있고그는 우주의 모든 과정을 꿈꾸고세계의 역사를 꿈꾸고 있으며여러분들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포함한 모든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이 모든 것은 과거에 일어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왜냐하면 바로 이 순간 존재하기 시작하고꿈을 꾸기 시작하며우리 각자가 되기 때문입니다그것은 우리가 아니라우리 각자입니다. 이 순간 나는 내가 차르카스 거리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꿈꾸고 있고내가 말할 주제를 찾고 있으며, -아마도 그 주제를 찾지 못할지도 모릅니다여러분들을 꿈꾸고 있습니다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여러분 각자가 나를 꿈꾸고 있고여기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꿈에 대해 두 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하나는 꿈이란 꿈을 깬 이후의 부분이라는 것이고다른 하나는 시인들이 가지고 있는 멋진 생각입니다그것은 바로 잠을 깬 이후의 모든 것은 꿈이라는 것입니다이 두 가지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그래서 우리의 정신 활동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는 그루삭의 글에 이르게 됩니다우리는 잠에서 깬 상태로 있을 수도 있고꿈을 꿀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우리의 정신 활동은 동일합니다바로 여기에서 셰익스피어의 말 우리는 꿈과 똑같은 재료로 만들어져 있다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p70~71

이제 나는 일부러 시인들을 인용합니다그들이 혜안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페트로니우스는 영혼이 육체의 짐에서 해방되면 놀이를 한다고 말하면서육체 없는 영혼은 놀이를 한다라고 쓰고 있습니다한편 공고라(Gongora)는 어느 소네트에서 꿈과 악몽은 허구이며 문학의 창작품이라는 생각을 아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꿈은 연출 작가

 극장 위로는 갑옷 입은 바람

 어둠은 아름다운 몸으로 옷을 입는다


 꿈은 연출입니다애디슨은 18세기의 원칙에 의거해 잡지 <관객>에 발표했던 훌륭한 글에서 이런 생각을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애디슨은 실제로 육체의 족쇄에서 해방되면 영혼이 상상을 하고꿈에서 깨어났을 때 가질 수 없는 자유를 가지고상상의 능력을 지닌다고 말했습니다그는 영혼의 모든 작용 중에서(지금 쓰는 말로는 마음의 작용입니다지금은 영혼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니까요가장 힘든 것은 무엇인가를 고안해내는 것이라고 덧붙입니다그러나 꿈속에서 우리는 너무나 빨리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우리가 만들어내고 있는 것과 우리의 생각을 혼동합니다. 우리는 책을 읽고 있는 꿈을 꾸지만사실은 우리가 책에 쓰인 각 단어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하지만 그런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것을 타인의 것으로 여겨버립니다나는 수많은 꿈속에서 이 예측적인 과정을 깨달았습니다그러니까 앞으로 다가올 것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키는 과정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p73

꿈은 가장 오래된 미학 행위입니다.

우리는 동물들이 꿈을 꾼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라틴 시구에는 사냥개가 꿈속에서 토끼를 뒤쫓으며 짖는 것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 있습니다그것은 아주 재미있는 현상입니다왜냐하면 꿈은 극적인 순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애디슨은 꿈속에서 우리가 원형 경기장이며관객이고배우이며줄거리이고우리 자신이 듣는 대화임을 알게 됩니다우리는 모든 것을 무의식적으로 하며그런 것은 현실 속에서 가질 수 없는 생동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희미한 꿈이나 힘이 없는 꿈을 꾸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그러나 내 꿈은 아주 생생합니다.


p77

7이란 숫자는 3(문법수사학논리학)과 4(산수기하천문음악)로 이루어진 일곱 개의 학예일 수도 있고일곱 개의 미덕일 수도 있지만그런건 중요하지 않습니다아마도 단테는 그 숫자가 마술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말할 필요도 없이 이 숫자는 이것 이외에도 여러 가지 설명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삼일 밤천 하룻밤의 이야기


p89

서양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는 동양의 발견입니다아니 영속적인 동양의 의식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욱 정확할 것입니다그것은 그리스 역사에서 페르시아의 존재와 비교할 수 있을 만한 것입니다이런 광범위하고 정적이며 장엄하고 이해할 수 없는 동양에 대한 의식 이외에도여러 중대한 순간들이 있고나는 이제 그 중의 몇몇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p96

일반적으로 그 이야기들은 이상한 역사를 담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처음에는 인도에서 이야기되었고그 다음에는 페르시아그 다음에는 소아시아그리고 마침내 아랍어로 씌어져 카이로에서 편찬되었습니다그것이 바로 천 하룻밤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잠시 제목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의 제목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제목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나는 이란 말이 우리에게 무한의 동의어처럼 여겨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천 밤이라고 하는 것은 무한한 밤들을 의미합니다그러니까 셀 수 없이 많은 밤들이지요그러니까 천 하룻밤이라는 것은 무한한 밤에 하나를 덧붙이는 것입니다여기에서 재미있는 영국식 표현을 떠올려 봅시다종종 영원히라는 말 대신 그들은 영원하고도 하루forever and a day라고 말합니다영원이라는 시간에 하루를 덧붙이는 것입니다이것은 어느 여자에게 쓴 하이네의 시구 나는 당신을 영원히심지어는 그 후에도 사랑하리라를 떠올리게 합니다무한의 시상은 천 하룻밤의 이야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핵심적인 생각입니다.


p98~100

 우리는 서양이란 말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알고 있습니다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서양 문화는 서양의 노력 덕택에 존재한다는 의미에서순수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합니다우리 서양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는 두 개입니다그것은 그리스(로마는 헬레니즘 전통의 연장선에 있습니다)와 동양 국가인 이스라엘입니다두 나라는 우리가 서양문화라고 부르는 것 속에서 합쳐져 있습니다동양이 드러났다고 말할 때우리는 계속된 드러남즉 성경을 떠올릴 것입니다하지만 그 사건은 상호성을 띠고 있습니다왜냐하면 서양은 동양에 영향을 끼쳤기 때문입니다. (...)

 동양은 태양이 떠오르는 곳입니다. 여기서 아름다운 독일어 하나를 떠올리고 싶습니다그것은 바로 동양을 아침의 땅이라고 부르는 모르겐란트morgenland라는 단어입니다서양은 아벤트란트abendland즉 저녁의 땅입니다여러분들은 오스발트 슈펭글러Oswald Spengler의 서구의 몰락이라는 책을 기억하실 겁니다그것은 바로 저녁의 땅이 아래로 향하고 있다는 소리입니다보다 무미건조하게 말하자면서구의 몰락이 됩니다나는 우리가  동양이라는 아름다운 말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왜냐하면 바로 그 안에 금이라는 행복한 우연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동야이라는 단어 속에서 우리는 금이란 단어를 느낍니다태양이 떠오를 때면 금빛 하늘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다시 유명한 단테의 시구 동방의 벽옥 같은 아름다운 빛이라는 말로 돌아가겠습니다여기서 동양이란 단어는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동양의 벽옥은 동쪽에서 온 벽옥입니다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아침의 황금이기도 합니다연옥의 첫 번째 아침의 황금이지요.

 동양이란 무엇일까요지리적 의미로 정의를 내린다면아마도 우리는 매우 흥미로운 현상과 마주치게 될 것입니다그것은 동양의 일부즉 북부 아프리카는 서양에 속해 있다는 것혹은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이 서양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반면에 이집트는 동양이며이스라엘소아시아박트리아페르시아인도를 비롯하여 그 너머 동쪽의 모든 나라들은 서로 공통점이 없지만 모두 동양으로 여겨집니다. 가령 타타르지방중국일본과 같은 곳이 우리에게는 모두 동양입니다동양이라는 말을 들으면나는 우리 모두가 가장 먼저 이슬람의 동양을 떠올리고그 다음에 북부 인도의 동양을 생각한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첫 번째 의미입니다그리고 이것이 바로 천 하룻밤의 이야기라는 작품입니다.


p104

 그런데 왜 처음에는 천 개의 이야기였던 것이 나중에 천 한 개가 된 것일까요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하나는 미신적인 것인데(하지만 이 경우미신은 아주 중요한 요인입니다), 짝수는 불길한 징조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그래서 홀수를 찾았고다행히도 하나를 덧붙였던 것입니다만일 구백구십구일 밤으로 했다면아마도 우리는 하룻밤이 빠졌다고 느낄 것입니다반면에 천 하룻밤은 우리에게 무한성을 느끼게 해주고게다가 덤으로 하나를 더 밭은 느낌을 줍니다


p117

천 하룻밤의 이야기는 죽지 않았습니다그것은 너무나 거대한 책이라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기억의 일부이며또한 오늘 밤의 일부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사일 밤불교


p122~3

나는 이 세상에 가장 널리 퍼진 이 종교의 정수만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불교의 원리는 기원전 오백 년 전부터 잘 보존되어 왔습니다다시 말하자면헤라클레이토스피타고라스제논 시대부터 스즈키 다이세쓰 박사가 일본에 선불교를 보급하는 지금의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그 원리들은 근본적으로 동일합니다이제 이 종교는 신화와 천문학그리고 이상한 믿음과 마법과 같은 것으로 뒤덮여 있기 때문에 몹시 복잡합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 상이한 종파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에 한정시켜 말하려고 합니다이런 종파들은 대부분 히나야나Hina-yana, 즉 소승불교에 속합니다.

 먼저 왜 불교가 그토록 장수했는지 살펴봅시다이 장수의 문제는 아마도 역사적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입니다그러나 그런 이유들은 우연에 불과한 것입니다다시 말하자면논쟁의 여지가 있고 실수를 범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나는 거기에 두 가지의 근본적인 까닭이 있다고 생각합니다첫째는 바로 불교의 관용 정신입니다다른 종교의 경우와는 달리 불교의 특별한 관용 정신은 특정한 시기에만 해당했던 것이 아닙니다불교는 항상 관용적이었습니다.

 불교는 절대로 쇠나 불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한 번도 쇠나 불이 설득의 동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인도의 아소카왕이 불교신자가 되었을 때에도 자신의 새 종교를 그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훌륭한 불교신자는 루터교인이나 장로교인 혹은 감리교인 또는 칼뱅교도도 될 수 있습니다마찬가지로 시온주의자나 가톨릭신자도 될 수 있습니다그리고 마음대로 이슬람교나 유대교로 개종할 수도 있습니다반면에 기독교인이나 유대교인 혹은 이슬람교도는 불교신자가 된다는 것을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불교의 관용은 약점이 아니라 불교 자체의 특징에 속하는 것입니다.    


p124

나는 이천오백 년 전 네팔에 싯다르타 혹은 고타마라는 왕자가 있었고잠을 자고 있거나 인생이라는 기나긴 꿈을 꾸고 있는 우리들과는 달리그가 붓다즉 覺者 혹은 깨달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믿었으며지금도 믿고 있습니다여기서 조이스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그는 역사는 내가 깨어나길 원하는 악몽이다라고 말했습니다그건 그렇고싯다르타는 서른 살의 나이에 잠에서 깨어나그러니까 득도를 하여 붓다가 되었습니다

 나는 불교신자인 그 친구와 함께ㅡ내가 기독교인인지 확신이 없지만불교신자가 아니라는 것은 확신합니다ㅡ토론을 하면서 기원전 오백 년에 카필라밧투Kapilavastu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왜 믿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죠중요한 것은 가르침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진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재치에 가까운 말을 덧붙였습니다. 붓다의 역사적 존재를 믿거나 그런 사실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수학의 법칙을 피타고라스나 뉴턴의 생애와 혼동하는 것과 같습니다중국과 일본의 사원에서 스님들의 명상의 주제 중 하나는 붓다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입니다그런 의심을 가져야만 진리에 이를 수 있습니다.


p135~6

 붓다는 쿠시나가라의 대장장이 집에서 숨을 거둡니다제자들이 그를 에워쌉니다제자들은 그 없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하면서 절망에 빠집니다그러자 붓다는 제자들에게 자기는 존재하지 않으며그 역시 제자들처럼 비현실적이고 죽어야만 하는 사람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의 법을 남깁니다여기에 그리스도와 큰 차이가 있습니다예수가 제자들에게 두 사람이 모인 곳에서 그가 세 번째 사람이 되겠다고 말한 것이 기억납니다반면에 붓다는 제자들에게 자기의 법을 남긴다고 말합니다즉 첫 번째 설법에서 그는 법의 수레바퀴를 굴렸던 것입니다이후에 불교의 역사가 시작됩니다라마교탄트라대승불교소승불교일본의 선불교 등입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거의 유사한 두 개의 불교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하나는 붓다가 가르친 불교이고다른 하나는 지금 중국과 일본에서 가르치고 있는 선불교입니다나머지는 신화로 치장되고 꾸며진 이야기입니다. 

p145~6

우주의 역사는 여러 순환의 주기로 나뉘어져 있고이런 순환 속에는 위대한 소멸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거나베다Veda의 말만 남아 있게 됩니다이 베다의 말은 사물을 창조하는 원형입니다브라마신 역시 죽어서 다시 태어납니다. 여기에 아주 감동적인 순간이 있습니다브라마는 자기의 궁궐에 있었습니다그는 어떤 겁 후에그리고 소멸 후에 다시 태어났습니다그는 텅 빈 침실들을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그는 다른 신들을 생각했습니다다른 신들은 그의 명령에 따라 모습을 드러냅니다그리고 브라마가 자신들을 창조했다고 믿습니다그것은 바로 그들의 그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역사를 이렇게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잠시 생각해봅시다불교에는 유일신이 없습니다아니 유일신이 있을 수 있지만근본적인 것은 아닙니다중요한 것은 우리의 운명이 업에 의해 미리 예정된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만일 내가 1899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야만 했고눈이 멀어야만 했으며오늘밤 여러분들 앞에서 이 강연을 해야만 했다면이 모든 것은 나의 전생의 결과입니다나의 전생에 의해 예정되지 않은 내 인생은 하나도 없습니다이것이 바로 업(카르마)이라는 것입니다이미 말했듯이 업은 정신 구조아주 미묘하고 정밀한 정신 구조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마다 우리의 삶을 짜고 있으며다른 것과 함께 섞어 짜고 있습니다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행동우리의 선잠우리의 잠우리의 비몽사몽뿐만이 아니라 영원히 우리의 업을 짜고 있는 것입니다그래서 우리가 죽으면우리의 업을 이어받은 또 다른 사람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p148~151

...다시 말하면Z라는 글자는 Y에 의해 결정되어 있고, Y는 X에 의해, X는 V에 의해, V는 U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그러니까 현재는 있지만 현재를 시작하게 만든 것은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불교신자들과 힌두교인들은 일반적으로 현재의 무한성을 믿습니다그들은 이 순간에 도달하기 위해서 이미 무한의 시간을 지나왔다는 것을 믿습니다여기서 내가 무한이라고 하는 것은 무기한이나 무수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무한한 것즉 끝이 없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에게 허락된 여섯 개의 운명 중에서(누구는 악마가 될 수도 있고누구는 식물이 될 수도 있으며누구는 동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가장 어려운 것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그래서 우리는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우리를 구원해야 합니다.

 붓다는 바다 밑에 사는 거북이와 둥둥 떠다니는 팔찌를 상상했습니다육백 년 마다 거북이는 바닷물 위로 고개를 내밉니다그 머리가 팔찌 안으로 들어갈 가능성은 아주 희박합니다붓다는 이렇게 말합니다거북이의 머리가 팔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어렵듯이 우리가 사람이 되는 것도 몹시 어려운 일이다그래서 사람이 된 시간을 이용하여 열반에 도달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유일신인 하느님이라는 개념을 부정하고우주를 창조하는 개인적인 신도 없다고 믿는다면고통의 원인즉 삶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그 개념은 바로 붓다가 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

 가령 쇼펜하우어의 의지란 말을 생각해봅시다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상상합니다거기에는 우리 각자 속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의지가 있으며그 의지는 세계라는 표상을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이런 개념을 다른 철학자들 속에서 다른 이름으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베르그송Bergson은 생의 비약elan vital이라고 말했고버나드 쇼Bernard Show는 생명력life force이라고 말했습니다이것들은 동일한 개념입니다그러나 한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베르그송과 버나드 쇼에게 생의 비약은 우리가 강요해야만 하는 힘이며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창조하며 세상을 꿈꿔야 합니다쇼펜하우어에게그러니까 염세주의자인 우울한 쇼펜하우어와 붓다에게 세상은 꿈입니다우리는 꿈꾸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그것은 오랜 노력과 연습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습니다그 첫 단계가 고통이며그것은 선이 됩니다선은 삶을 만들어내고삶은 어쩔 수 없이 가엾습니다. 그렇다면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그 무엇보다도 산다는 것은 바로 생로병사즉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 것입니다그 중에서도 붓다가 가장 슬퍼한 것은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열정을 버려야 합니다자살은 그 자체가 열정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은 항상 꿈속의 세계에 있습니다우리는 세상이란 환영이며 꿈이고인생은 꿈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그러나 우리는 그런 사실을 깊이 느껴야만 하고명상을 통해 그것에 이르러야 합니다불교 사원에서 이런 명상 연습 중의 하나는 신참내기 수도승이 자기 인생의 매 순간을 완전히 경험하며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그는 이렇게 생각해야만 합니다지금은 정오다지금 나는 마당을 지나고 있다지금 난 주지스님과 만났다.” 그리고 동시에 정오와 마당과 주지스님이 자기의 존재나 생각과 마찬가지로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야만 합니다불교는 바로 자아를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중요한 명상이 바로 자아에 대한 생각입니다이런 점에서 불교는 흄Hume과 쇼펜하우어그리고 우리 아르헨티나의 소설가인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의 생각과 일치합니다거기에는 주체가 없습니다존재하는 것은 단지 일련의 정신적 상태일 뿐입니다만일 내가 난 생각한다라고 말하면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왜냐하면 고정 주체와 그 주체의 작품인 생각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그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흄이 지적하듯이 난 생각한다가 아니라 비가 온다처럼 무인칭 주어로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비가 온다고 말할 때비가 행위를 수반하는 것이 아니라단지 무엇인가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덥다춥다비가 온다처럼 무인칭 주어로 생각한다고통받는다라고 말하면서 주어의 사용을 피해야 합니다

 (각 언어별 차이 ex) 영어 – 웬만해서는 주어 생략 x / 한국어 – 주어 생략 빈번동사만으로도 말 됨)


p155~8

 선불교의 명상 주제 중의 하나는 우리의 지나간 삶은 환영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만일 내가 스님이라면, 나는 이 순간 막 삶을 시작했으며보르헤스가 살았던 예전의 삶은 모두 꿈이고모든 세계의 역사가 꿈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정신 수양을 통해 우리는 마음대로 선을 접할 수 있습니다우리가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자아가 행복할 것이라거나 우리의 임무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그렇게 될 때 우리는 평온의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열반에 이르면더 이상 생각을 하지 못하고세상을 떠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증거는 아마도 붓다의 전설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붓다는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열반에 이르렀지만그는 계속해서 살았고오랫동안 자기의 법을 가르쳤습니다

 열반에 이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간단하게 말하자면더 이상 우리의 그림자를 투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우리는 업에 종속되어 있습니다우리의 행위는 모두 업이라고 불리는 정신 구조 속에 촘촘히 얽혀 있습니다우리가 열반에 도달하면우리의 행위는 이미 그림자를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우리는 자유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가 구원을 받으면 선이나 악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그것은 우리가 선을 생각하지 않고 선을 행하면서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열반은 무엇일까요서양에서 불교에 대해 관심을 보인 것은 대부분 이 아름다운 말 때문입니다. 열반이라는 단어가 아주 소중하고 귀한 것을 담고 있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그럼 열반이란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그것은 소멸消火를 뜻합니다우리가 열반에 이르면우리 자신의 불이 꺼진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습니다그러니까 우리가 죽으면 거기에 거대한 열반과 소멸이 있다는 것입니다하지만 어느 오스트리아의 동양학자는 붓다가 당대의 물리학을 이용했으며당시에 소멸이라는 생각은 지금과 같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왜냐하면 불꽃이란 꺼져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cf. 헤라클레이토스 불꽃) 불꽃은 계속해서 살아 있으며다른 상태로 지속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따라서 열반이란 반드시 지금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열반 후에도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계속해서 존재하는데그것은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일반적으로 신비주의자들의 메타포는 혼례의 은유를 사용합니다그러나 불교의 은유는 다릅니다우리가 열반을 말할 때우리는 열반의 포도주나 열반의 장미혹은 열반의 포옹을 말하지 않습니다오히려 그것을 과 비교합니다폭풍 속에서도 굳건히 버티고 있는 섬 말입니다물론 정원이나 탑과 비교할 수도 있습니다그것은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서 스스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

 나에게 불교는 박물관의 유품이 아니라 구원의 길입니다나에게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그렇습니다불교는 이 세상에 가장 널리 전파된 종교이며오늘밤 이 주제를 내가 경건한 마음으로 다루었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오일 밤


p169~170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라틴어로 발견하다descubrir는 만들다inventar와 동의어입니다이것은 새로이 만들거나 발견하는 것은 기억하는 것이라는 플라톤의 학설과 일치합니다베이컨은 배우는 것이 기억하는 것이라면알지 못하는 것은 잊어버리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고 덧붙입니다모든 것이 이런 식입니다단지 우리가 보지만 못할 뿐입니다.

 난 무엇인가를 쓸 때면그 무엇이 예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 나는 대략 처음과 끝을 알고 있고그런 다음 중간 부분들을 발견합니다그러나 그 부분들을 새로이 만들어낸다는 느낌도 없고그것들이 내 자유의지에 종속된다는 느낌도 없습니다그런 것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지만숨겨져 있습니다시인으로서의 내 임무는 바로 그것들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브래들리Bradley는 시의 효과 중의 하나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잊혀진 것을 기억하는 인상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p176

케베도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무덤은 플랑드르의 전쟁터이고

 그의 비명은 피 흘리는 달이다.


 바로 여기에 본질적인 것이 있습니다이 행들은 모호성 때문에 풍부합니다.


p187~9

...우리는 이 시구들이 단지 스페인어로만 말해질 수 있다고 느낍니다프랑스어의 소리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왜냐하면 다른 라틴어 계열의 언어에 있는 유음화현상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그러나 프랑스어가 형편없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그것은 다음의 빅토르 위고의 시처럼 훌륭한 시들이 씌어진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Lhydre-Universe tordant son corps ecaille dastres.

 (세계라는 히드라별들이 박힌 몸을 뒤틀면서)


 어떻게다른 언어였으면 도저히 이런 시를 쓰지 못했을 언어를 비판할 수 있겠습니까?

 영어에 대해서 말하자면영어는 고대 영어의 열린 모음들을 상실했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그렇지만 그 단점은 셰익스피어가 다음과 같은 시를 쓰게 만들어주었습니다.


 And shake the yoke of inauspicious stars

 From this world-weary flesh


 이 말은 세상에 지친 이 육신에서 기구한 운명의 별들의 멍에를 떨어버리겠소라고 번역될 수 있습니다그러나 다른 언어로 번역될 때이 시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합니다만일 내가 하나의 언어를 선택해야만 한다면(그러나 언어들을 모두 선택하지 않아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나는 독일어를 고를 것입니다독일어는 영어처럼아니 영어보다 훨씬 많은 합성어를 만들 수 있고열린 모음과 놀라울 정도의 음악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이탈리아어에 대해 말하자면그것은 <신곡>으로도 충분합니다.

 다양한 언어에 수많은 아름다움이 분산되어 있다는 사실처럼 놀라운 것은 없습니다. ... 아름다움은 도처에서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만일 우리의 감성이 예민하다면 우리는 모든 언어로 씌어진 시 속에서 그런 감성을 느낄 것입니다.


p195

 이제 어느 시인의 위대한 시구로 끝을 내려고 합니다그는 17세기에 앙겔루스 실레지우스(Angelus Silesius, 1624~1677. 독일의 신비주의적 종교시인. <천사의 순례>가 대표작이다.)라는이상하게도 시적이고 현실적인 이름을 택한 사람입니다이 시구는 오늘 밤 내가 말한 모든 것을 요약해줍니다단지 차이라면 나는 그것을 논리적으로혹은 논리의 위장을 통해 말했을 뿐입니다우선 스페인어로 말하고 나서 독일어로 읊겠습니다.


 La rosa sin porqué florece porque florece.

 Die Rose ist ohne warum ; sie blühet weil sie blühet.

 장미는 아무런 이유도 없다그것은 꽃이 피기 때문에 꽃을 피우는 것이다


육일 밤 – 카빌라


p203

피타고라스는 자기의 글을 한 줄도 남겨놓지 않았습니다많은 사람들은 그가 자신이 쓴 글에 얽매이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그는 자기가 죽은 후에도 제자들의 정신 속에 자신의 생각이 계속해서 살아 있고가지처럼 뻗어나가기를 원했습니다바로 거기서항상 잘못 사용되고 있는 Magister dixit란 말이 탄생합니다이 말은 흔히 알고 있는 스승님이 말씀하셨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그렇게 되면 모든 논쟁이 마감되기 때문입니다어느 피타고라스의 제자가 피타고라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있다는 공격을 받았다면그는 스승님이 말씀하셨다라고 대답했을 것이고그 말씀은 바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동기가 되었을 것입니다피타고라스는 책들이 우리를 속박한다고 생각했습니다성경의 말로 하자면글자는 우리를 죽이지만영혼은 삶에 활력을 준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p216

 악을 변호하려는 노력들은 여러 번 있었습니다먼저 신학자들의 고전적인 옹호를 들 수 있습니다그들은 악이란 항상 부정문이라고 말하면서 은 단지 선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조금이라도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이것이 거짓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육체적 고통은 강하며그 어떤 쾌감보다도 더욱 강렬합니다불행은 행복이 결여된 것이 아닙니다그것은 우리가 불행에 빠지면우리는 비참하게 느껴진다는 것처럼 긍정문으로도 표현됩니다.

 아주 우아하지만 동시에 거짓인 또 다른 주장도 있습니다그것은 악의 존재를 옹호하기 위한 라이프니츠Leibniz의 주장입니다가령 두 개의 도서관을 생각해봅시다첫째 도서관은 완벽한 책이라고 여겨지고 실제로 그럴지도 모르는 천 권의 <아이네이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또 다른 도서관은 상이한 가치가 있는 천 권의 책을 장서로 가지고 있고, <아이네이스>는 그 중의 한 권입니다어떤 도서관이 더 나은 것일까요말할 필요도 없이 두 번째 것입니다라이프니츠는 악이란 세상의 다양한 가치를 위한 필요악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p218~9

 웰즈Wells의 <꺼지지 않는 불>의 줄거리는 욥기를 따르고 있으며그 주인공 역시 흡사합니다마취된 상태에서 작중인물은 자기가 실험실로 들어가는 꿈을 꿉니다형편없는 실험실에서는 나이 먹은 어느 노인이 일하고 있습니다그 노인은 하느님이며상당히 화가 나 있습니다그는 작중인물에게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지만사실 그것은 힘든 재료와의 투쟁일세라고 말합니다하느님에게도 악은 다루기 힘든 재료이며선은 유순한 재료입니다그러나 길게 보면선은 승리하게 되어 있고 승리하고 있습니다우리가 진보라는 것을 믿고 있는지 나는 모릅니다그러나 나는 그렇게 믿습니다적어도 괴테의 나선형식 진보를 믿습니다우리는 앞으로 나아갔다가 뒤로 물러서지만종합적으로 보면 우리는 개선되고 있는 것입니다수많은 잔인함으로 가득한 이 시대에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그러나 이제 죄수를 생각해봅시다죄수들은 감옥이나 혹은 집단수용소로 이송될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적들을 생각해봅시다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대왕 시절에는 승리한 군대는 패자들을 죽이고전쟁에 진 도시는 불태우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였습니다아마도 우리는 지적으로도 향상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그 증거는 이 작은 사건이 될 것입니다여기서 우리는 카빌라주의자들이 생각했던 것에 흥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우리는 열린 지성을 지니고 있고타인의 지성뿐만 아니라 타인들의 우둔함과 막연한 믿음을 연구할 자세도 갖추고 있습니다카빌라는 박물관의 유품일 뿐만 아니라 일종의 사상의 은유이기도 합니다.




p220~223

 이제 나는 카발라의 신화이자 가장 흥미로운 전설 하나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그것은 바로 골렘Golem입니다골렘은 메이링크Meyrink의 유명한 소설에 영감을 제공했으며메이링크의 작품은 내가 쓴 어느 시에 대한 영감을 주었습니다하느님은 흙 한 줌을 집어서(아담은 붉은 흙을 뜻합니다그것에게 생명을 불어넣습니다그렇게 아담을 창조합니다카발라주의자들에게 그 아담은 최초의 골렘에 해당됩니다그는 하느님의 말즉 생명을 불어 넣는 말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 만일 누군가가 하느님(디오스Dios)의 이름을 소유한다면,. 혹은 누군가가 하느님의 네 글자 이름에 이르게 된다면그리고 그 이름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면마찬가지로 골렘즉 사람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내가 읽은 <카빌라의 상징주의>에서 이 책의 저자인 게르숌 숄렘Gershom Scholem은 골렘의 전설을 아주 아름답게 사용하고 있습니다나는 이 책이 이 주제를 가장 분명하게 다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골렘은 다음과 같이 탄생되었다고 전해집니다어느 랍비가 하느님 이름의 비밀을 배웠습니다아니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그리고 점토로 만든 인간의 형상 위로 그 이름을 말했습니다이 전설에 대한 어느 판본에는 진실이라는 뜻을 가진 에메트EMET라는 단어를 이마에 썼다고 합니다그 후 골렘은 주인의 손이 골렘의 머리에 닿지 않을 정도로 자라게 되었습니다그러자 주인은 신발근을 묶어달라고 말합니다골렘은 몸을 숙이고랍비는 그 틈을 이용해 입김을 불고는 에메트의 첫 글자 혹은 알레프aleph(히브리어의 첫 번째 알파벳)를 지우는 데 성공합니다그러자 메트즉 죽음이라는 글자가 남게 됩니다골렘은 다시 흙으로 변합니다. ... 

 나는 몇 가지 전설을 언급했지만처음의 전설로 돌아가고 싶습니다가장 귀기울여들을 만한 가르침이 그것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우리 각자 안에는 극히 작은 신의 입자가 있습니다이 세상이 전능하고 정의로운 하느님의 작품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은 명백합니다그러나 그것은 모두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카발라가 우리에게 남겨주는 가르침은 바로 그것입니다. ... 위고의 시집 <명상록>에 수록된 위대한 시구 어둠의 입이 외친 것(신이 우주를 창조했고우주가 악을 만들었다는 내용.)처럼 카발라는 그리스인들이 아포카타스타시스Apokatastasis(원상태로의 회복을 의미한다.)라고 부른 교리를 가르쳤습니다그 가르침에 의하면 모든 피조물심지어 카인과 악마도 기나긴 윤회가 끝나면 되돌아와서 언젠가 그들을 출현하게 만들었던 신과 뒤섞이게 될 것입니다

 

칠일 밤 – 실명


p228~9

 이제 사람들이 흔히 잊어버리고 지나가는 일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나 역시 그런 현상이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사람들은 장님이 깜깜한 세계 속에 갇혀 있다고 생각합니다장님들이 보는 어둠을 바라보면서라는 셰익스피어의 한 시구는 바로 이런 생각을 그대로 보여줍니다여기서 어둠을 깜깜한 색으로 이해한다면셰익스피어의 이 시구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님들특히 여기서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는 이 장님이 볼 수 없는 색이 바로 검은색입니다그리고 볼 수 없는 또 다른 색이 빨간색입니다적과 흑이것들이야말로 우리들이 볼 수 없는 색입니다나는 아주 깜깜해야만 잠을 자는 습관이 있습니다그래서 오랫동안 이 안개와 같은 세상그러니까 초록색이나 파란색의 안개가 끼여 있는 세상에서 잠을 자기가 몹시 힘들었습니다장님들의 세계는 바로 희미한 빛이 비추는 세계입니다나는 어둠 속에서 잠을 자고 싶었습니다빨간색은 희미한 밤색으로 보입니다실명의 세계는 사람들이 상상하듯이 밤의 세계가 아닙니다어쨌거나 나는 지금 내 이름을 걸고역시 눈이 먼 채 세상을 떠나셨던 우리 아버지와 할머니의 이름을 걸고 말하고 있습니다나 역시 그들처럼 눈이 먼 채 웃으면서 용감하게 죽고 싶습니다수많은 것들가령 눈이 멀어지는 것과 같은 것은 유전됩니다하지만 용기는 유전되지 않습니다나는 그들이 용감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장님은 매우 불편한 세계 속에서 삽니다그것은 확실하지 않은 세상이며특정한 색이 나타나는 세계입니다나는 아직도 노란색과 파란색그리고 초록색을 볼 수 있습니다흰색은 사라졌거나아니면 회색과 혼동되기 일쑤입니다빨간색은 나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그러나 나는 계속 치료를 받고 있고그래서 언젠가 시력이 나아져 그 위대한 색을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시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그 색수많은 언어에서 그토록 아름다운 이름을 지니고 있는 그 색을 말입니다


p233~4

 조금씩 나는 도서관장과 실명이라는 이상한 아이러니를 깨닫게 되었습니다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천국이란 단어를 들으면 정원을 생각하기도 하고어떤 사람은 대궐을 생각하기도 할 것입니다그런데 거기에 바로 내가 있었습니다어떤 면에서 나는 여러 언어로 되어 있는 구십만 권의 중심이었습니다나는 간신히 책표지와 책등만을 판독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그런 후, <축복의 시>를 썼습니다이 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그 누구도 눈물을 흘리거나 비난으로 깎아내리지 말길

 책과 밤을 동시에 주신

 하느님의 훌륭한 아이러니

 그 오묘함에 대한 나의 심경을...

이 두 가지 선물즉 수많은 책과 밤그리고 그것을 읽을 수 없는 무능함은 서로 모순됩니다.

... 그러나 나는 분명히 우리(그루삭과 보르헤스)의 삶이 일치했던 순간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왜냐하면 우리 두 사람은 시력을 잃었고동시에 책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 그러니까 우리의 어두운 눈에는 흰 종이와 마찬가지의 책이었고글자가 없는 책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나는 하느님으이 아이러니에 대한 시를 썼고그 시의 말미에 화자가 복수의 이면서도단 하나의 그림자로 이루어진 그 시를 쓴 사람이 과연 우리 두 사람 중에서 누구인지를 내 자신에게 물어보았습니다.


p254~7

 나는 실명이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말했습니다그것은 전적으로 불행하지만은 않습니다여기서 가장 위대한 스페인의 시인인 루이스 데 레온(Luis de Leun, 1527~1591. 스페인 중세 문학에 큰 기여르 한 신비주의자 신부이며 시인사제의 시구를 떠올려보겠습니다.

 

 나는 내 자신과 살고 싶습니다.

 하늘의 은혜를 입은 미덕을 즐기고 싶습니다

 아무런 증인도 없이 홀로,

 사랑과 질투,

 증오와 희망과 두려움에서 해방된 채.


 에드가 앨런 포는 이 시구를 외우고 있었습니다.

 나에게 증오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왜냐하면 한 번도 증오른 느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사랑 없이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행복하게도 우리 모두에게 불가능한 일입니다그러나 첫 대목인 나는 내 자신과 살고 싶습니다./하늘의 은혜를 입은 미덕을 즐기고 싶습니다를 음미해봅시다하늘의 미덕 속에 어둠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시다그렇다면 자기 자신과 가장 함께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요가장 자신을 잘 탐구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요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요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눈이 먼 사람보다 자기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작가는 살아갑니다시인의 임무는 고정된 시간표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아무도 여덟시에서 열두 시까지그리고 두 시에서 여섯 시까지 시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시인은 항상 시인이며계속해서 시의 공격을 받습니다마찬가지로 화가도 색과 모양의 공격을 받는다고 느낄 것입니다음악가 역시 예술에서는 이상한 소리의 세계가 항상 그를 찾고 있으며그를 찾는 멜로디와 불협화음이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예술가가 작업하는 데 있어실명은 전적으로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그것은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그래서 루이스 데 레온 사제는 가장 아름다운 서정시를 장님 음악가인 프란시스코 살리나스Francisco Salinas에게 받쳤던 것입니다.

 한 작가아니 모든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자기에게 일어나든지그것이 유용한 수단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모든 것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그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이것은 예술가의 경우에 더욱 그렇습니다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심지어는 수치와 장애와 불행을 포함한 모든 것은 점토로서즉 예술의 재료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 그런 것들은 우리가 변형하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그래서 우리의 삶이 처한 비참한 상황으로부터 영원하거나 영원하려고 소망하는 것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만일 눈먼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면그는 구원 받은 것과 다름없습니다실명은 하늘의 선물입니다나는 이미 여러분들을 내가 받은 선물로 여기고 있습니다나는 앵글로색슨 말을 선물로 받았고스칸디나비아 말도 부분적으로 선물받았습니다그리고 내가 과거에 무시했을지도 모르는 중세 문학의 지식을 선물로 받았고그런 선물로 여러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그 책들이 좋은니 나쁜지는 모르겠지만그것들이 씌어진 순간을 정당화시켜 주었습니다그것들 이외에도눈이 먼 사람은 모든 사람의 애정을 한 몸에 받습니다사람들은 항상 장님에게 호의를 베풀어주려고 하니까요.

 나는 이 강연을 괴테의 시구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내 독일어 실력은 형편없습니다그러나 가까이 있는 모든 것은 멀어진다라는 말 정도는 중대한 실수를 범하지 않고 인용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 해가 지면 가장 가까이 있던 것들이 우리 눈에서 멀어집니다그것은 눈에 보이는 세상이 내 눈에서 결정적으로 멀어진 것과 같습니다.

 괴테는 황혼만이 아니라 인생을 언급하기 위해 이 말을 한 것인지도 모릅니다모든 것은 우리를 떠나갑니다죽음이 최상의 고독이 아니라면아마도 늙음이 최상의 고독일 것입니다또한 가까이 있는 모든 것은 멀어진다는 실명이 천천히 진행되는 과정을 언급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그 주제가 바로 오늘밤 내가 여러분들에게 말하려고 했고그것이 전적으로 불행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입니다그것은 운명 혹은 우연이 제공하는 수많은 이상한 수단 중에서 한 가지 수단임에 틀림없습니다.


에필로그

p267~8

 보르헤스의 어머니인 레오노르 아세베도Leonor Acevedo는 99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기 침대 머리맡에 항상 보르헤스 <전집한 권을 보관했습니다그러나 이제는 그 누구도 그 책을 건드리지 않습니다그 책을 제외하고는 보르헤스의 집에 그의 책은 한 권도 없었습니다그는 자기가 사랑하고 아끼는 책과 중요하지 않은’ 자기 책들을 뒤섞어 놓는다는 것은 악취미이며참을 수 없는 허영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이런 엄격한 태도는 자신의 친구들의 책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몽테뉴가 그랬던 것처럼 보르헤스의 서재는 보르헤스 자신의 거울입니다. ... 다른 언어로 번역되었거나 아니면 스페인어로 새로 출판된 그의 책들이 도착하면그는 즉시 그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선물합니다그의 이런 괘씸한 겸손함 덕택에 나는 스웨덴어노르웨이어덴마크어영어히브리어페르시아어그리스어슬로바키아어폴란드어독일어아랍어 드으로 번역된 그의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번역된 자기의 책도 이런 지경인데어떻게 그가 집에 신문 스크랩을 해놓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강연의 내요을 점검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우선 신문 부록을 구해서 복사를 하고복사된 내용을 잘라서 흰 종이에 붙이는 것이었습니다그런 다음두 번째 작업은 오자를 교정하고옮겨 적는 작업에서 발생했던 실수를 고치고강연을 하는 도중에 끼워 넣은 쓸데없는 말들을 가차없이 제거하는 일이었습니다그렇게 한 후에 그 결과물을 보르헤스에게 읽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수년 전부터 나는 보르헤스가 불굴의 책임감을 가지고 자기가 쓴 글들을 검토하고 수정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이번 경우에는 한 구절도 그냥 지나가지 않았습니다한 번두 번다섯 번여섯 번일곱 번이 넘게 나는 각 강연의 문단이나 문장아니면 두 개나 세 개의 문장을 읽어주어야 했습니다그는 많은 부분을 삭제했지만거의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았습니다그러면서 최초의 생각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거의 모든 것을 바꾸었습니다. ...

 그는 정확한 표현을 추구하고감탄스러울 정도의 인내로 정확한 단어를 찾아 사용하고거의 대부분 그의 얼굴은 흐뭇해하는 미소를 짓습니다그는 강도 높게 작업에 집중합니다사용하지도 않을 단어의 어원을 찾으면서 반 시간 이상 보내는 경우가 있더라도그는 그 작업을 일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왜냐하면 수세기에 걸쳐 천천히 축적된 지식을 존중하고창조적 모험을 즐기고꺼지지 않는 호기심을 느끼는 그의 태도가 바로 그에게 항상 젊은 시절의 열정을 갖게 만든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 그는 어렸을 때부터 눈이 멀게 되기를 기다렸습니다그의 조상 중의 몇몇이 눈이 먼 채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그리고 날카롭고 예의 바른 심리학 교수이며보르헤스에게 단순한 보기를 들 듯이 신화와 형이상학의 문제들을 이야기하면서 가르쳐주었던 이상한 문화의 불가지론자이고보르헤스가 열다섯 살이었을 때 제네바로 데려가 세계의 시민이 되게 만들었던 그의 아버지도 눈이 먼 채 미소를 지으며”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작업이 끝나고 책 제목을 붙이자보르헤스는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나쁘지는 않군내가 보기에 나를 그토록 사로잡았던 주제에 대해서만 본다면이 책은 나의 유언장이군.....


 1980년 2월 12아드로게에서

 로이 바르톨로메우Roy Bartholomew

헨리 데이비드 소로 - 『월든』(+시민불복종)

Posted by 히키신
2017. 3. 7. 21:05 영원의 지헤, 그리고 철학

헨리 데이비드 소로월든(+시민불복종), 김율희 옮김보물창고, 2015


-경제-

p21

야만인들의 강인함과 문명인의 지성을 겸비하기란 불가능한 일일까?


p23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단지 예리한 사고를 하거나 어떤 학파를 창설하는 것이 아니라지혜를 사랑한 나머지 지혜가 명하는 바에 따라 소박하고 독립적이며 관대하고 신뢰할 만한 삶을 산다는 뜻이다삶의 어떤 문제들을 이론적으로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해결한다는 뜻이다


p26

과거와 미래라는 두 개의 영원이 만나는 지점정확히 말해 현재라는 순간에 발을 딛고 서서발끝으로 그 선을 따라 걷고 싶었다


p31~32

옷을 마련할 때 우리는 진정한 실용성보다는 새것을 좋아하는 마음과 타인의 시선에 대한 관심에 지배될 때가 더 많다일을 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옷의 목적이 첫째생명 보존에 필요한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고 둘째지금과 같은 상태의 사회에서 알몸을 가리기 위한 것임을 상기시켜 주자그러면 그는 옷장에 새 옷을 더 넣지 않고도 꼭 필요하거나 중요한 일을 얼마나 많이 해낼 수 있는지 가늠하게 될 것이다왕실 재단사나 양재사가 만든 옷임에도 그것을 단 한 번 입고 마는 왕이나 왕비는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을 때의 편안함을 알지 못한다깨끗한 옷을 걸어두는 목마나 다름없다옷은 입는 이의 개성을 받아들이며 날마다 옷 주인과 점점 닮아 가기 때문에결국 우리는 옷을 버리기를 망설이며마치 육신을 버리고 떠날 때처럼 그 시기를 늦추려 하고 의료 기구를 이용하며 엄숙한 의식을 치르기도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 헝겊 조각을 대고 기운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얕본 적이 없다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건전한 양심을 갖추기보다는 유행에 맞거나 적어도 기운 부분이 없고 깔끔한 옷을 입는데 훨씬 열을 올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그러나 찢어진 부분을 수선하지 않았다고 해도그것 때문에 드러나는 최악의 결함이라고 해 봤자 무신경함 정도일 것이다때로는 무릎에 헝겊을 덧대 깁거나 꿰맨 자국 두어 군데가 있는 옷을 입을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으로 지인들을 시험해 본다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옷을 입어야 한다면 장래가 암담해질 것이라고 믿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 (...) 그는 무엇이 진정 존경할 만한 것인가에 대한 것보다는 무엇이 좋은 평판을 받을 만한 것인가에 신경 쓰기 때문이다. (...) 자신이 마지막으로 입었던 옷을 허수아비에게 입히고그 옆에 벌거벗은 채로 서 보라누구나 보자마자 허수아비에게 인사하지 않겠는가? (...) 사람에게서 옷을 빼앗는다면 과연 각자의 상대적인 지위를 어느 정도까지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은 흥미롭다그런 경우가장 존경받는 계층에 속한 문명인 집단을 확실히 구별해 낼 수 있겠는가


p33

당부하건대새 옷을 입은 사람이 아니라 새 옷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업을 경계하라새 사람이 없는데 어찌 몸에 딱 맞는 새 옷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사업을 앞두고 있다면 헌옷을 입고 시도하라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가지고 있을 물건이 아니라 할 일혹은 되어야 할 모습이다.  


p46~47

 농부는 생계의 문제를 그 자체보다 더 복잡한 공식으로 해결하려 애쓰고 있다구두끈을 얻기 위해 투기하듯이 많은 가축을 사들인다안락과 독립을 손아귀에 넣고자신들린 듯한 솜씨로 머리카락 덫을 설치하고서는 발길을 돌리다가 그 덫에 제 발을 집어넣어 버린다이것이 농부가 가난한 이유다그리고 비슷한 이유로우리 역시 사치품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많고 많은 야생의 안락함을 누리지 못하니 가난하다시인 채프먼도 노래하지 않았던가.

 

 거짓된 인간 사회여,

 세속의 웅대함을 찾는 동안

 천상의 모든 안락이 허공으로 흩어지도다.


p55

문명인은 경험이 더 많고 더 현명한 미개인일 뿐이다.


p67

또한 나는 겸손을 떨며 악마의 대리인이 되지는 않을 작정이다진실을 제대로 대변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p68

즉 지역 사회가 이토록 값비싼 수단으로 학생들을 지원해 주는 동안학생들은 놀기만 하거나 그저 공부만 하면서 인생을 보내서는 안 되고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삶을 살아 봐야 한다.


p89

내 눈에는 오늘날의 영국이 엄청난 짐을 가지고 여행 중인 노신사처럼 보인다오랜 살림살이로 축적된 잡동사니들즉 큰 여행 가방작은 여행 가방원통 상자보따리 따위인데 그는 그것을 태워 버릴 용기가 없다적어도 처음 세 가지는 버리길오늘날 건장한 사람도 침대를 등에 지고 걷는다면 힘에 부칠 것이다그러나 병든 사람에게는 침대를 버리고 달려가라고 간곡히 충고하겠다전 재산이 든 보따리를 지고 비틀거리는 이민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그 보따리는 그의 목덜미에서 자라난 어마어마한 혹처럼 보였다그가 안타까웠던 까닭은 그 짐이 그의 전 재산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지고 다녀야 하기 때문이었다내가 덫을 끌고 다녀야 한다면가벼운 것을 골라 급소가 걸려들지 않도록 조심할 것이다그러나 아예 덫에 발을 집어넣지 않는 것이 현명한 처사이리라.


p91

일부 야만국에서는 우리가 본받으면 좋으리라 여겨지는 여러 관습이 있는데적어도 그들은 매년 허물을 벗는 것과 비슷한 의식을 치른다허물의 실체가 무엇이든그들은 그 행위의 목적을 알고 있다우리도 버스크혹은 첫 소산의 축제와도 같은 의식을 거행하면 좋지 않을까윌리엄 바트램은 버스크가 머클래스 족 인디언의 관습이었다고 설명한다마을에서 버스크를 치를 때는 새 옷새 솥과 냄비새 가재도구와 가구를 미리 마련해 두고낡은 옷과 여타 너절한 물건들을 모두 모으고집과 광장을 비롯해 마을 전체를 청소해 쓰레기를 치우고이것들을 남은 곡식 및 다른 오래된 식량과 함께 한 무더기로 만들어 불에 태워 버린다약을 먹고 사흘 동안 금식한 뒤마을에 피운 불을 모두 끈다금식 기간 중에는 식욕과 성욕을 비롯해 희열을 주는 것을 모두 억제한다대사면이 시행되어 모든 죄인들이 자기 마을로 돌아간다.

 나흘 째 아침대사제가 마른 나무들을 비벼 마을 광장에 새 불을 피우고마을의 모든 주민은 이 새롭고 순수한 불꽃을 받아 간다.

 그런 다음 그들은 햇곡식과 햇과일을 마음껏 즐기며 사흘 동안 춤추고 노래한다그리고 그다음 나흘 동안 인근 마을에서 같은 식으로 몸을 정화하고 단정한 친구들의 방문을 받아 즐거움을 나눈다.


p93

(...) 하지만 그 이후로 사업이란 그 손아귀에 들어온 모든 것에 재앙을 내린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내가 파는 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메시지라 하더라도사업이 내린 재앙이 늘 따라붙기 마련이다


p95

각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나 엄니혹은 이웃의 길을 따르는 게 아니라 매우 신중하게 자신만의 길을 찾아내 추구하기를 바란다젊은이는 건축가가 될 수도 있고 농부나 선원이 될 수도 있으니그가 하고 싶다고 말하는 일을 못하도록 방해만 하지 말자선원이나 도망 노예가 언제나 북극성을 바라보듯이우리는 아주 정확한 어떤 지표가 있어야만 지혜를 발휘할 수 있다그 지표만 있으면 평생의 길잡이가 생기는 셈이다예측 가능한 시간 이내에 항구에 도착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정당한 항로에서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p97

십중팔구 그렇겠지만 세상이 그것을 악행이라고 부르더라도 꿋꿋이 버텨 내십시오.


p98

부패한 선이 풍기는 악취만큼 고약한 냄세는 없다


p99~100

 예수회 선교사들은 화형을 당하던 인디언들이 자신들을 고문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고문 방식을 제안하자 깜짝 놀랐다고 한다디언들은 육체적 고통을 초월했기 때문에 선교사들이 제공할 수 있는 어떤 위로도 초월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또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법칙은 인디언이 듣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졌는데그들은 남이 자신에게 어떻게 하든지 상관하지 않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적을 사랑했으며 적의 모든 행동을 아주 기꺼이 용서했기 때문이었다.

p102~103

우리는 절망이 아닌 용기를질병이 아닌 건강과 평온을 나누어야 하며 절망과 질병이 전염병처럼 확산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통곡 소리가 들려오는 곳은 남부의 어느 평원인가우리가 빛을 보내야 할 이교도는 어느 지역에 살고 있는가우리가 구해 내야 할 저 무절제하고 잔인한 인간은 누구인가사람은 아파서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면심지어 배가 아프기만 해도ㅡ배는 연민이 자리 잡은 곳인 까닭에ㅡ곧장 세상을 개혁하는 일에 착수한다자기 자신이 소우주인 그는 세상이 그동안 풋사과를 먹어 왔음을 발견한다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발견이며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고 그는 생각한다실제로 그가 보기에 지구는 커다란 풋사과이며인간의 자식들이 사과가 익기도 전에 조금씩 갉아 먹어 버릴 것이라는생각만으로도 끔직한 위험이 존재하는 곳이다그는 강렬한 인류애에 사로잡혀 곧장 에스키모와 파타고니아 사람들을 찾아 나서며인구가 많은 인도와 중국의 마을을 껴안는다그리고 이런식으로몇 년 간 자선 활동을 하고 나면ㅡ그러는 동안 권력자들은 나름의 목적을 위해 그를 이용한다.ㅡ의심할 바 없이 그의 위장병은 치료되고 지구의 한쪽 뺨이나 양쪽 뺨은 익어 가기 시작한 과일처럼 희미한 홍조를 띈다삶은 미숙함을 벗고 다시 달콤하고 건강해진다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내가 저지른 죄보다 더 큰 죄가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가 없다나처럼 형편없는 인간은 지금까지도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만나지 못할 것이다.


p104

혹시 어쩌다가 이런 자선 행위 중 하나라도 하게 된다면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알릴 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준 뒤에는 자신의 신발 끈이나 묶으라잠깐 쉬었다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라.


p105

 페르시아의 시라즈에서 태어난 시인 사디가 쓴 굴리스탄’ 즉 장미원이라는 책에서 읽은 내용이다그들이 현자에게 물었다지극히 높은 신께서 만드신 높다랗고 그늘이 넓은 이름난 여러 나무들 중에서자유롭다고 불리는 나무는 열매도 맺지 못하는 삼나무뿐입니다여기에 숨은 신비가 무엇입니까?’ 현자가 답했다모든 나무는 적절한 열매와 정해진 철이 있어그 철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생기가 넘치며 꽃을 피우지만 철이 지나면 마르고 시든다그러나 삼나무는 열매도 제철도 없으니 언제나 번성한다이것이야말로 자유로운 이들즉 종교에서 독립한 이들의 특징이다그러니 그대의 마음을 덧없는 것에 쏟지 말라칼리프 백성이 멸망한 뒤에도 티그리스 강은 바그다드를 통과하며 계속 흐를 것이다그대의 손에 많은 것이 있다면 대추나무처럼 관대하게 베풀라그러나 손에 베풀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면 삼나무처럼 자유로운 사람이 되라.


-어디에서 어떤 목적으로 살았는가-

p109

결정이 끝나면 땅을 경작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그대로 놔둘 수 있는 것이 많을수록 부자이기 때문이다


p113

속세를 한 걸음 벗어나기만 하면 어디에나 올림포스 산이 있다.


p116

광대한 지평선을 자유롭게 즐기는 이 외에는 세상에 행복한 자가 없도다.” 다모다라가 자기 가축들에게 새롭고 더 넓은 목장이 필요하게 되자 했던 말이다.


p119~120

힌두교 경전인 베다에는 모든 지성은 아침과 함께 깨어난다.라는 말이 있다시와 예술 및 가장 아름답고 기억할 만한 인간의 행동은 그런 시간에 시작된다. (...) 태양과 보조를 맞추어 경쾌하고 활기차게 사고하는 사람에게 하루는 영원히 지속되는 아침이다시계가 몇 시를 알리든사람들이 어떤 태도로 어떤 일을 하든 상관없다내가 깨어 있고 내 속에 새벽이 있다면 그때가 바로 아침이다도덕적 개혁이란 잠을 쫓으려는 노력이다계속 졸고 있었던 게 아니라면자신의 하루에 대해 왜 그토록 빈약한 설명만 늘어놓는가계산에 그리 약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졸음에 정복당하지 않았다면 뭐든 이루어 냈을 것이다육체노동을 할 만큼 깨어 있는 사람은 수백만 명이다그러나 지적 능력을 효과적으로 발휘할 만큼 깨어 있는 사람은 백만 명 중 한 명이며시적인 혹은 신성한 삶을 살 만큼 깨어 있는 사람은 1억 명 중 오직 한 명뿐이다깨어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나는 지금까지 정말로 깨어 있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그러니 어찌 그와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겠는가?

 (...) 가치 있는 하루가 되도록 영향을 미치는 것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이다


p121

 신화에서는 우리가 오래전에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말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개미처럼 비천하게 살아간다. 우리는 피그미족처럼 두루미와 싸우고 있다실수에 실수를 더하고 누더기 위에 누더기를 입는다우리의 가장 훌륭한 미덕이라는 게 쓸데없고 피할 수 있는 불행을 기회로 여기는 정도이다우리의 삶은 사소한 일로 허비된다정직한 사람은 계산할 때 대부분 열 손가락만으로 충분하며 극단적인 경우에는 발가락 열 개를 보태면 될 것이고 나머지는 하나로 묶어 버리면 된다간소하게간소하게간소하게 살자


p125

원칙을 알면 됐지 무수한 사례와 응용에 왜 신경을 쓴단 말인가철학자에게 소위 뉴스란 잡담거리에 불과하며 그것을 편집하고 읽는 사람들은 차를 홀짝이는 노파들이다


p126

 뉴스가 뭐기에결코 낡지 않는 것을 아는 편이 훨씬 중요하지 않은가위나라의 대부(大夫거백옥이 공자에게 사람을 보내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알려 달라고 했다공자는 사자를 가까이 앉히고 다음과 같이 물었다선생께서는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사자가 공손히 답했다스스로의 허물을 줄이고자 하시나 이루지 못하시는 듯합니다.’ 사자가 돌아간 뒤 공자가 말했다참으로 훌륭한 사자로다훌륭한 사자로다!


p129

하루라는 시간을 자연처럼 의도한 그대로 살아 보자. 호두 껍데기와 모기의 날개가 철로에 떨어진다고 매번 탈선하지는 말자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하든지 거르든지 요란을 떨지 말고 차분히 하자손님이 오가거나 종이 울리거나 아이들이 울어도 그대로 두자즉 하루를 즐겁게 보내기로 마음먹자. 왜 시류에 굴복해 휩쓸려야 하는가정오의 여울에 자리 잡은 만찬이라는 저 무시무시한 급류와 소용돌이에 당황하거나 압도당하지 말자이 위험을 극복하면 안전하다나머지 길은 내리막이기 때문이다


-독서-

p134~135

젊은 날의 귀중한 시간을 투자해 몇 단어라도 고대 언어를 배우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그 언어는 거리의 천박함에서 벗어나끊임없는 암시와 자극을 줄 것이다농부가 어쩌다 들은 라틴 어 몇 마디를 기억하고 암송하더라도 헛된 일은 아니다때로 사람들은 고전 연구가 결국에는 더 현대적이고 실용적인 학문에 자리를 내줄 거라고 말한다그러나 모험심 강한 학생이라면어떤 언어로 쓰였건 그리고 얼마나 오래되었건 반드시 고전을 연구할 것이다고전이란 다름 아닌 인간의 가장 고귀한 생각을 기록한 것이 아닌가고전은 붕괴되지 않는 유일한 신탁이고그 안에는 델포이와 도도나의 신탁도 결코 제시하지 못할가장 현대적인 의문에 대한 답이 들어 있다고전 연구를 그만두자는 말은 자연이 오래되었으니 자연 연구를 그만두자는 말이나 다름없다독서를 제대로 하는 것다시 말해 참된 책을 참된 정신으로 읽는 것은 고귀한 훈련이며독자에게는 이 시대의 풍조가 높이 평가하는 그 어떤 훈련보다 더욱 힘든 일이 될 것이다운동선수들이 하는 것과 같은 훈련즉 거의 평생토록 독서를 하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필요하다작가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책을 쓰는데 독자도 마찬가지 태도로 책을 읽어야 한다


p136

 연설가가 때로 토해 내는 열변이 제아무리 감동적이라고 해도가장 고귀한 문어(文語)는 대개 덧없는 구어(口語)보다 훨씬 멀고 높은 곳에 있다. 별들이 자리한 창공이 구름보다 높이 있듯이 말이다그곳에는 별이 있고별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글로 적힌 말은 우리의 일상 대화나 가벼운 숨결처럼 증발하지 않는다토론회에서 달변이라 불리는 것을 서재에서 살펴보면 대개 미사여구일 뿐이다연설가는 그 순간의 감흥에 젖어 눈앞에 보이는 군중즉 그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그러나 작가는 좀 더 차분한 생활이 있어야 글을 쓰며 연설가에게 영감이 될 사건이나 군중이 있다면 주의가 산만해질 것이다작가는 지적이고 건전한 인류즉 시대에 상관없이 그를 이해할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이야기한다.


p146

단체 행동은 우리의 제도에 깃든 정신과도 일치한다(...) 귀족 대신 보통 사람이 사는 고귀한 마을을 세우자필요하다면 조금 돌아가더라도 강에 다리 하나를 덜 놓고대신 우리를 둘러싼 무지라는 더 캄캄한 심연 위에 무지개다리 하나라도 놓자.


-소리-

p147

어떤 방법이나 훈련도 늘 깨어 있으려는 태도를 대체하지 못한다제대로 고른 역사나 철학이나 시 강좌도매우 훌륭한 교우 관계나 칭찬할 만한 일과도보아야 할 것을 늘 눈여겨보는 훈련에 비하면 중요한 것이 아니다당신은 단순히 독자나 학생이 되겠는가아니면 관찰하는 사람이 되겠는가자신의 운명을 읽고 앞에 놓인 것을 바라보며 미래 속으로 꾸준히 걸어가라.


p148~149

내 하루하루는 이교도 신들의 특징을 나타내는 일주일의 어느 요일이 아니었고, 시간 단위로 잘게 쪼개고 똑딱거리는 시계 소리에 마음 졸이며 보내는 날들도 아니었다. 나는 푸리 족 인디언처럼 살았다단 한 단어로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나타내며어제를 뜻할 때는 뒤쪽을 가리키고 내일을 뜻할 때는 앞을현재 지나가는 날을 뜻할 때는 머리 위를 가리켜 그 차이를 표현한다. 같은 마을 주민들에게는 순전히 게으른 생활로 보였을 것이다그러나 새들과 꽃들이 나름의 기준으로 판단했다면 내 삶에서 부족함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진실로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서 동기를 찾아야 한다. 자연의 하루는 아주 평온하여 사람의 나태함을 전혀 나무라지 않을 것이다


-고독-

p176~180

사람들은 자주 나에게 말한다거기 있으니 분명 외롭겠군특히 비나 눈이 내리면 낮이나 밤이나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있고 싶을 거야.” 나는 그런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우리가 사는 이 지구 전체가 우주에 있는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네저 별에 사는 사람들 중 가장 멀리 떨어진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저 별의 폭은 우리가 만든 기계로는 가늠할 수 없지 않나내가 왜 외로움을 느껴야 하나우리의 지구도 은하수에 있는 게 아닌가자네가 나에게 던진 이 질문은 가장 중요한 질문이 아닌 듯하네사람을 다른 사람들과 갈라놓고 외롭게 만드는 공간은 어떤 종류의 공간인가나는 두 사람이 다리를 열심히 움직여도 서로에게 더 가까워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네우리는 무엇과 가장 가까이 살고 싶어 할까수많은 사람들 가까이는 분명 아닐 거야기차역이나 우체국술집마을 회관학교식료품점비컨 힐파이브포인츠처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아닐걸세이 문제에 관해서라면 우리가 온갖 경험으로 깨달은 바버드나무가 물가에 가까이 서서 물을 향해 뿌리를 뻗듯이 우리도 생명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오는 원천과 가까이 살고 싶을걸세본성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현명한 사람이라면 바로 그곳에 지하 저장고를 팔 거야.” (...)

 죽은 사람이 깨어나거나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면 시간과 장소는 하찮은 문제가 되어 버린다. 그런 일은 언제나 같은 장소에서 일어날 것이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우리의 감각을 즐겁게 해 준다대개 우리는 핵심을 벗어난 일시적인 상황만을 기회로 삼는다사실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정신을 산란하게 만드는 원인이다만물과 가장 가까운 곳에는 만물을 존재하게 하는 힘이 있다우리의 에서는 원대한 법칙들이 끊임없이 실행되고 있다. 우리의 에는 우리가 고용해서 유쾌한 말 상대로 삼은 일꾼이 아니라우리 자체를 일감으로 삼는 일꾼이 있다.

 천지의 오묘한 힘이 미치는 영향이 그 얼마나 광대하고 심오한가!

 우리는 그 힘을 포착하고자 하나보이지 않는다그 힘을 듣고자 하나들리지 않는다그것은 만물의 본질과 같아서 만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그 힘이 원인이 되어 온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정화하고 성화하며예복을 갖춰 입고 조상들에게 제물과 공물을 바친다이는 오묘한 신들이 존재하는 바다이다그것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우리 위에도왼편에도오른편에도 있다사방에서 우리를 에워싸고 있다.

 인간은 내가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어떤 실험의 대상이다이런 상황에서 잡담이나 주고받는 대신자기 자신에게 격려가 되는 생각을 할 수는 없을까공자는 진심으로 이렇게 말한다덕은 버림받은 고아처럼 남겨지지 않는다반드시 이웃이 생기기 마련이다.

 사색을 통해 우리는 건전한 의미에서 제정신을 잃을 수도 있다의식적인 정신 활동을 통해 우리는 행위와 그 결과에 초연할 수 있다그러면 좋건 나쁘건 모든 일은 급류처럼 우리 곁을 지나가 버린다우리는 자연에 온전히 몰입된 상태가 아니다나는 냇물에 떠내려가는 나무토막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 모습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인드라일 수도 있다나는 연극 공연에 감동받을지 모르나반면에 나와 훨씬 깊은 관계가 있을지 모르는 실제 사건에는 영향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나는 나 자신을 인간적인 실체로만다시 말해 생각과 감정이 존재하는 무대로만 인식한다그리고 타인과 마찬가지로 나 자신에 대해서도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는 어떤 이중성을 느낀다아무리 강렬한 경험을 하더라도 나의 일부가아니 그보다는 나의 일부가 아니며 내 경험을 공유하지 않고 기록하기만 하는 관객이 있어 그 경험을 비판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그것은 라기보다는 타인이다인생이라는 연극ㅡ비극일 수도 있다.ㅡ이 끝나면 관객은 제 갈 길을 간다관객에게 그것은 그저 일종의 허구이며 상상에서 나온 작품에 불과하다이런 이중성 때문에 우리는 순식간에 딱한 이웃이나 친구가 되어 버리는지도 모른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보내는 편이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아무리 좋은 사람들이라고 해도 우리는 금세 지루하고 산만해진다나는 혼자 있는 것이 참 좋다고독만큼 붙임성 있는 벗을 본 적이 없다우리는 대개 방에 혼자 있을 때보다 밖으로 나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닐 때 더 고독하다생각하거나 일할 때면 사람은 늘 혼자다그러니 그가 있고자 하는 곳에 있도록 내버려두자고독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거리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다북새통 같은 케임브리지의 대학 기숙사에서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있다면 사막에 있는 수도승만큼이나 혼자인 것이다농부는 밭을 갈거나 나무를 베며 온종일을 들과 숲에서 혼자 일하더라도 거기 몰두해 있다면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어두워져 집에 돌아 오면 방에 홀로 앉아 마음껏 생각에 잠기지 못하고 사람들을 만’ 기분 전환을 해야 한다고그것으로 혼자 지냈던 하루를 보상받는다고 생각한다때문에 농부는 학생이 어떻게 온밤과 낮 시간의 대부분을 집 안에 혼자 앉아 있으면서도 권태와 우울을 느끼지 않는지 의아해한다그러나 농부는 학생이 집에 있되 실은 농부가 그러듯이 자기 나름의 밭에서 일을 하고 자기 나름의 숲에서 나무를 베는 것이며그런 다음에는 좀 더 간결한 형태이기는 하지만 농부와 마찬가지로 휴식과 교제할 사람을 찾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손님들-

p199

사회 계층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평생 초라하고 무지하게 살아간다 하더라도 그중에는 늘 나름의 관점을 가지고 살되 모든 걸 다 아는 척하지는 않는 천재들이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그의 존재가 암시해 주었다그들은 거무스름하고 진흙투성이일지 몰라도 월든 호수만큼이나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이들인 것이다.


-콩밭-

p208

그러나 손으로 하는 노동은 제아무리 지루하게 진행되더라도 최악의 태만이라고 할 수는 없다육체노동에는 영원불멸의 교훈이 담겨 있으므로 학자에게는 대단한 성과를 가져다준다


p217~218

왜 씨앗으로 쓸 콩만 걱정하고 새로운 세대의 인간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일까? ...

  그러나 인간이나 자연에 깃든 어떤 너그러움을 인식하며 순수하고 이타적인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은 우리에게 언제나 유익한 일이다특히 알지 못하는 이유로 마음이 괴로울 때우리의 뻣뻣한 관절을 풀어 주며 몸을 탄력 있고 유연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마을-

p226

인간은 눈을 감고 한 바퀴만 돌아도 이 세상에서 길을 잃을 수 있다우리는 깨어날 때마다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길을 잃고 나서야다시 말해 세상을 잃고 나서야비로소 우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며 우리가 어디에 있으며 우리의 관계가 얼마나 무한한지를 깨닫기 시작한다.


-호수들-

P254

호수 자체는 변함이 없다어린 시절 나의 눈이 바라보았던 그 물 그대로이다. 모든 변화는 내 속에서 일어났다.


-베이커농장-

P273

...나의 수호신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날마다 멀고 넓은 곳으로 낚시와 사냥을 나가라더 멀리더 넓은 곳으로그리고 개울가든 난롯가든 두려워하지 말고 편히 쉬어라젊은 날에 그대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동이 트기 전에 근심을 벗고 자유롭게 일어나 모험을 찾아 나서라한낮에는 여러 다른 호숫가를 찾아가고 밤에는 그 어디든 집으로 삼아라이보다 더 넓은 들판은 없고여기에서 즐기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놀이는 없다그대의 본성에 따라 저 사초와 고사리처럼 야생을 즐겨라그것들은 결코 영국식 건초가 되지는 않으리니천둥이 울리면 그대로 받아들여라천둥이 농부의 작물을 해치겠다고 위협한들 어쩌랴그것은 그대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수레와 오두막으로 피하더라도 그대는 구름 밑을 피난처로 삼아라밥벌이를 의무로 삼지 말고 즐거움으로 삼아라대지를 즐기되 소유하지 말라. 사람들은 진취성과 신념이 부족해 현재에 안주하며 물건을 사고팔며 농노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P274~275

우리는 먼 곳에서 집에 돌아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날마다 모험과 위험을 겪고 새로운 것을 발견해서 새로운 경험과 인식을 가지고 돌아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더 높은 법칙들-

P276~277

그러나 호숫가에 사는 동안 한두 번쯤굶어 죽을 듯한 사냥개처럼 묘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어떤 종류의 고기라도 찾아내서 먹으려고 숲을 헤맨 적이 있었다그런 고기를 한 입 먹더라도 전혀 야만적인 행위가 아닐 것 같았다설명하기 어렵지만그야말로 야생적인 광경에도 익숙해진 탓이었다그때나 지금이나 내 속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더 높은 삶이른바 정신적인 삶을 추구하는 본능과 더불어 더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삶을 추구하는 또 다른 본능이 존재한다그리고 나는 두 본능을 모두 존중한다나는 선량함 못지 않게 야성을 사랑한다.


P282~283

동년배인 많은 사람들처럼 나는 육류나 차커피 등을 오랫동안 먹지 않았다그런 음식이 어떤 식으로든 악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알아냈기 때문이 아니라내 상상력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육류에 대한 거부감은 경험의 결과가 아니라 본능이다소박한 식사를 하며 검소하게 사는 것이 여러 면에서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비록 완벽히 그렇게 살지는 못했지만내 상상력을 만족시킬 만큼은 되었다. 나는 자신이 가진 한층 고귀한 능력이나 시적인 능력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고자 진지하게 노력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특히 육류를 삼가고 음식의 종류에 상관없이 과식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믿는다내가 커비와 스펜스의 책에서 발견한 곤충학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어떤 곤충들은 성충이 되고나면 섭식 기관을 갖추고 있음에도 사용하지 않는다.라고 하는데이는 중요한 사실이다또 그 책에서는 일반적으로 이 상태에 이른 거의 모든 곤충은 유충 상태일 때보다 음식을 훨씬 적게 먹는다게걸스럽던 애벌레가 나비로 변하고, ...... 탐욕스럽던 구더기가 파리가 되고 나면한두 방울의 꿀이나 다른 단물로 만족한다고 밝힌다.   


p284~285

인간은 다른 동물을 먹이로 먹으며 살 수 있고 상당 부분은 그렇게 살고 있다그러나 덫을 놓아 토끼를 잡거나 어린 양을 도살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것은 비참한 생활 방식이다인류에게 좀 더 순수하고 건강한 음식만 먹는 방법을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면 인류의 은인으로 여겨질 것이다. 내 자신의 식습관이 어떻든지인류가 점차 발전해 가면서 육식을 그만두게 되는 것이 인류의 운명 중 일부임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그것은 야만족이 좀 더 문명화된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서로를 잡아먹던 행위를 그만둔 것만큼이나 확실하다.

 무척 희미하지만 끊임없이 속삭이는 수호신의 제안틀림없이 진실한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그것이 우리를 어떤 극단으로심지어는 광기로 이끌어 가지 않을까 의심스럽겠지만의지와 신념이 점점 강해지면 그것이 자신이 걸어야 할 길임을 알게 된다한 건강한 사람이 느끼는 희미하지만 확실한 반발심이 결국에는 인류의 주장과 관습을 압도할 것이다그 결과로 육신이 쇠약해졌다고 해도이것이야말로 더 고귀한 원리에 부합하는 삶이므로 누구도 그 결과가 후회스럽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낮과 밤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다면삶이 꽃이나 향긋한 풀처럼 향기를 내뿜고 한층 유연해지며 더욱 별처럼 빛나며 더욱 영원에 가까워진다면 그것이 우리에게는 성공이다. 모든 자연이 우리에게 축하를 전할 것이며 우리는 시시각각 자기 자신을 축복할 이유를 얻게 된다최고의 이익과 가치는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이익과 가치가 존재하는지 쉽게 의심하고금세 잊어버린다하지만 그것들은 가장 높은 곳에 실재한다어쩌면 가장 놀랍고 가장 진실한 사람은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내가 매일의 삶에서 거두는 진정한 수확은 아침이나 저녁의 어슴푸레한 빛처럼 만질 수도표현할 수도 없는 것이다그것은 손에 잡힌 약간의 별 먼지이며내가 움켜진 무지개 조각이다.

... 나는 언제나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싶다. 취하려고 한다면 끝이 없을 것이다나는 물이야말로 현명한 사람이 마시는 유일한 음료라고 믿는다. ... 음악조차 사람을 취하게 할 수 있다. ... 이왕 취해야 한다면무엇보다 자신이 숨 쉬는 공기에 취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내가 장시간 지속되는 거친 노동을 반대하는 가장 중대한 이유는 그런 노동을 하면 어쩔 수 없이 그만큼 거칠게 먹고 마셔야 하기 때문이다


p286~287

 가끔 식욕과 아무 상관없이 먹은 음식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만족을 느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 증자는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자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들어도 듣지 못하며먹어도 음식의 맛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먹는 음식의 참맛을 아는 사람은 결코 폭식하지 않지만그 맛을 모르는 사람은 폭식하게 된다. ...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그것을 먹을 때의 식탐이 사람을 더럽힌다문제는 음식의 양이나 질이 아니라감각적인 맛에 대한 탐닉이다. ...

 우리의 인생은 놀라울 만큼 도덕적이다미덕과 악덕 사이에는 한순간의 휴전도 없다선이야말로 결코 실패하지 않을 투자다세상 곳곳에 울려 퍼지는 하프 선율 속에 우리를 전율시키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렇게 선을 고집하는 태도. ... 젊은이는 결국 그 선율에 무관심해지지만주의 법칙은 무관심해지지 않고 언제까지나 가장 민감한 사람의 편에 선다산들바람 속에는 반드시 어떤 질책이 실려 오므로 귀를 기울이자.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 지겨운 소음들도 멀리 떨어져서 들으면 우리의 천박한 생활을 당당하고 감미롭게 풍자하는 음악처럼 들린다.


p288

베다는 우리의 마음이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욕망을 자제하고 몸의 외적인 감각을 억제하며 선을 행하는 것이라고 선언한다정신은 잠시나마 몸의 모든 부분과 기능에 스며들어서 장악하고가장 천박한 관능을 순수함과 헌신으로 변형시킨다생식력은 우리가 문란할 때는 헛되이 쓰이며 우리를 불순하게 만들지만우리가 절제할 때는 활력과 영감을 준다순결은 인간을 꽃피운다. 그리고 이른바 천재성영웅적 자질신성함 등은 순결이라는 꽃이 맺은 다양한 열매일 뿐이다순결이라는 수로가 열리면 인간은 즉시 신에게 흘러간다


p291~292

인도의 법전 제정자는 어떤 것도 사소하게 다루지 않았다그는 먹는 법과 마시는 법함께 사는 법대소변 누는 법 등을 가르치며 천한 것을 드높였고거짓으로 이런 것을 사소하게 취급하며 발뺌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은 육체라는 신전의 건축가이다이 신전은 각자가 숭배하는 신을 위해 순전히 나름의 양식에 따라 지어야 한다. ...

 9월의 어느 저녘에존 파머는 힘든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집문간에 앉아 있었다그의 마음은 얼마간 자신이 했던 일에 머물러 있었다목욕은 이미 했으므로 자신의 지적인 내면을 되살려 보고자 그렇게 앉아 있었다다소 쌀쌀한 저녁이었고어떤 이웃들은 서리를 걱정하고 있었다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을 따라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누군가 연주하는 플루트 소리가 들려왔고 그 선율은 그의 기분과 썩 잘 어울렸다그래도 그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그 무거운 생각에 짓눌리고또 계속 그 생각에 매달리며 의지와는 다르게 계획을 세우고 이런저런 궁리를 해 보았지만 그 일이 도무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끝없이 벗겨지는 피부의 각질에 불과했다그러나 플루트의 선율은 그의 일이 속한 곳과는 다른 영역에서 그의 귀에 간절하게 들려왔고 그의 내면에 잠든 여러 기능에게 할 일이 있음을 일러 주었다그 플루트 소리에 그가 사는 거리와 마을나라가 조용히 사라졌다어떤 목소리가 그에게 말했다영광스러운 삶을 살 수 있건만왜 여기 머물러 이토록 천하고 악착스러운 삶을 살고 있느냐저 별들은 이곳이 아닌 다른 들판에서도 똑같이 반짝이거늘.” 그러나 어떻게 이 상황에서 벗어나 정말 그곳으로 갈 수 있을까그가 찾을 수 있는 방법은 그저 검소한 생활을 새롭게 실천하고 정신을 육체 속으로 내려보내 육체를 구원시키며자기 자신을 점점 커져 가는 존경심으로 대하자는 것뿐이었다


-난방-

 영국의 저술가 길핀은 영국의 숲 경계에 사는 사람들을 묘사하며 이렇게 말한다무단 침입자들이 숲의 경계에 짓는 집과 울타리는” 짐승들을 놀라게 하고 숲을 해칠 위험이 있어 옛 삼법에서는 심각한 불법 행위로 간주되었고 공유지 침해라는 죄목으로 엄한 처벌을 받았다그러나 나는 사슴과 사슴이 숨는 푸른 숲을 보존하는 데 사냥꾼이나 나무꾼 이상으로 관심이 많다삼림 감독관이나 다름없이 말이다비록 나는 실수로 숲에 불을 낸 적이 있기는 하지만어디든 숲의 일부가 불에 타면 나는 숲의 주인보다 더 오래 슬퍼하며 더 큰 비탄에 빠졌다아니나는 숲의 주인이라는 이들이 나무를 베어 낼 때도 슬픔을 참지 못했다이 나라의 농부들이 숲을 베어 낼 때고대 로마 인들이 신성한 숲[lucum conlucare]에 빛이 들도록 나무들을 베어 내며 품었던 그런 경외감을 가지기를 바란다로마 인들은 숲이 어느 신에게 바쳐진 것이라고 믿었다그들은 속죄 제물을 바치며 기도했다이 숲을 받은 남신혹은 여신이시여 저와 제 처자식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p332

동물들은 비바람을 막아 주는 장소에 잠자리만 마련하고제 몸으로 그것을 덥힌다그러나 불을 발견한 인간은 널찍한 방에 공기를 가두고체온을 빼앗기는 대신 그 공기를 데워 침대로 삼는다. 그곳에서는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고 돌아다니며 한겨울에도 여름 같은 기온을 유지할 수 있다그리고 창문이 있어 햇빛까지 들어오며 램프가 있어 낮을 연장할 수 있다이런 식으로 인간은 본능보다 한두 발 앞서 걸으며 예술에 쏟을 약간의 시간을 마련한다사납기 짝이 없는 바람에 장시간 시달리느라 온몸이 무감각해졌을 때집 안의 온화한 공기 속으로 들어오면 나는 금세 몸의 기능을 회복하고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는 제아무리 호화로운 집에 사는 사람들도 자랑할 점이 거의 없으며우리는 인류가 결국 어떻게 멸망할 것인지 골치 아프게 추측할 필요도 없다좀 더 매서운 북풍이 불어오기만 해도 생명의 실은 쉽게 끊어질 테니 말이다우리는 종종 혹독히 추웠던 금요일이나 대폭설이 덮친 날을 겪고도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있지만조금 더 혹독한 금요일이나 조금 더 큰 폭설이 내리면 지상에서 인간의 존재는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전에 살던 이들과 겨울 손님들-

p351

적당한 간격으로 어김없이 웃음의 예포가 터졌는데좀 전에 했던 말 때문이기도 했고 앞으로 나올 농담 때문이기도 했다우리는 묽은 귀리죽 한 그릇을 나눠 먹으며 인생에 대한 최신이론을 수없이 만들어 냈다철학이 요구하는 명석한 두뇌에 유쾌함이라는 이점을 결합한 이론들이었다.


p352~353

그 얼마나 눈이 멀었기에 평온을 보지 못하는가!

...

그는 인류의 참된 친구이며인류 발전에 대한 거의 유일한 지지자이다묘지기 노인아니 그보다는 불멸의 존재라고 할 만하다그는 불굴의 인내심과 신념으로사람의 몸에 새겨진 형상이 손상되고 기울어진 기념비일지라도 신의 형상임을 밝히 드러내려고 애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그는 친절한 지성으로 아이들과 거지미친 사람과 학자들을 모두 포용하며 모든 사상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대개 넓이와 정밀함까지 더한다나는 그가 세계의 큰길에서 모든 나라의 철학자들이 묵을 수 있는 커다란 여관을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간판에는 사람은 환영동반 짐승은 사절느긋하고 평온한 마음을 지닌 이들올바른 길을 진심으로 찾는 이들은 들어오시오.라고 써 붙여야 한다. ... 아마 그는 내가 아는 이들 중 정신이 가장 온전한 사람이며 변덕이 가장 적은 사람으로어제나 내일이나 한결 같을 것이다오래전 우리는 함께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마치 속세를 완전히 벗어난 것만 같았다그는 어떤 제도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인즉 인게누스였기 때문이다우리가 어느 쪽으로 걸음을 돌리든마치 하늘과 땅이 서로 만난 것처럼 보였다그가 풍경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해 주었기 때문이다푸른 옷을 입은 그 사람에게는 그의 평온함을 반영하는 둥근 하늘이야 말로 가장 어울리는 지붕이다나는 그가 죽으리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자연이 그의 부재를 견딜 수 없을 것이므로


p354

은둔자와 철학자 그리고 내가 말했던 오랜 개척자우리 셋은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가! 그 이야기가 부풀어 올라 내 작은 집이 삐걱거릴 정도였다지름이 2센티미터 정도인 원 하나마다 기압 외에 몇 파운드의 압력이 가해졌는지 감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판자 틈새가 얼마나 벌어졌던지 그 후에 새는 것을 막기 위해 틈새를 몹시도 지루하게 메워야 했다그러나 나에게 그런 틈새를 메울 뱃밥은 이미 넉넉했다.

 ...

어디에서나 그랬듯이 숲 속에서도 나는 결코 오지 않을 손님을 기다리곤 했다힌두교 경전 중 하나인 비슈누 푸라나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집주인은 저녁 무렵이면 마당에서 소 한 마리의 젖을 짜는 데 걸리는 시간만큼혹 괜찮다면 그보다 오랜 시간 동안 손님이 도착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나는 이런 손님 접대의 의무를 자주 수행했고소 떼 전체의 젖을 짤 수도 있을 만큼 오래도록 손님을 기다렸으나 마을에서 다가오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겨울호수-

p370

자연은 어떤 질문도 하지 않고 우리 인간이 묻는 질문에 답하지도 않는다. 오래 전에 그렇게 하기로 굳게 결심한 것이다왕이시여우리의 눈은 이 우주의 놀랍고 다양한 광경을 바라보고 탄복하며 영혼에게 전합니다밤은 분명 이 영광스러운 피조물의 일부를 베일로 가리지만낮이 찾아오면 지상에서부터 드넓은 창공까지 뻗어 나간 이 위대한 작품을 우리에게 드러냅니다.


P372

도시인이 인공적인 분야에서 박식하다면 이들은 자연이라는 분야에서 박식하다이들은 결코 책을 참고하지 않으며자신이 아는 것과 말해줄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많은 일을 해 왔다이들이 하는 일들은 세상에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p375

모든 호수가 얕다면 어떻게 될까인간의 마음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이 호수가 깊고 맑아 하나의 상징이 된다는 사실이 참으로 고맙다인간이 무한을 믿는 한바닥이 없다고 여겨지는 호수들이 존재할 것이다


p377

탁 트인 수많은 골짜기와 거기에서 뻗어 나온 옥수수밭들이 바로 물이 빠진 그 무시무시한 협곡이거늘아무 거도 모르는 주민들에게 이 사실을 납득시키려면 지질학자의 통찰력과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시야가 필요하다탐구심이 왕성한 사람이라면 종종 지평선의 야트막한 언덕들이 원시 시대의 호숫가였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도 있을 것이다원시 시대 이후에 평원이 융기하지 않았더라도 그런 과거사는 얼마든지 감춰질 수 있었다그러나 도로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소나기가 내린 뒤에 물웅덩이를 살펴보면 움푹 팬 땅을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다간단히 말해상상력은 조금만 틈을 주면 자연보다 더 깊이 잠수하고 더 높이 날아오른다그러니 바다의 수심도 그 넓이에 비하면 그리 대단하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


p381

우리가 자연의 법칙을 모두 안다면한 가지 사실이나 실제 일어난 자연 현상 하나에 대한 기록만 있어도 그 시점에 일어난 상세한 결과를 모두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우리가 아는 자연 법칙은 몇 가지뿐이므로우리가 내리는 결론은 무효가 된다물론 이는 자연에 혼란스럽거나 변칙적인 특징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계산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를 우리가 모르기 때문이다법칙과 조화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대개 우리가 파악해 낸 사례에 한정된다그러나 우리가 간파하지 못한 법칙들즉 겉보기에는 모순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일치하는 수많은 법칙들이 훨씬 경이롭게 조화를 이룬다각각의 법칙은 우리의 관점에 따라 다른 면모를 보여 준다나그네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산의 윤곽이 달리 보이듯이자연의 법칙은 절대적인 하나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에게 보여 주는 모습은 무한하다산을 쪼개거나 구멍을 뚫더라도 산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p393

하루는 1년의 축소판이다밤은 겨울이고 아침과 저녁은 봄과 가을이며정오는 여름이다


p410~412

보슬비가 한 번만 내려도 풀은 몇 배나 더 푸르러진다. 마찬가지로 더 훌륭한 생각이 밀려들면 우리의 장래도 더 밝아진다우리가 언제나 현재를 산다면 그리고 이슬이 살짝만 내려도 그 영향력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풀잎처럼 우리가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선용한다면그래서 과거에 찾아왔던 기회를 박대한 행동에 대해 속죄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면ㅡ이런일을 하면서 우리는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말한다ㅡ우리는 복된 사람이다봄은 이미 왔는데 우리는 겨울 속에서 늑장을 부린다기분 좋은 봄날 아침모든 인간의 죄는 용서받는다그런 날은 악덕과 휴전하는 날이다그런 태양이 타오르는 동안에는 제아무리 야비한 죄인도 돌아올 수 있다우리가 자신의 순수함을 회복한다면 이웃들의 순수함을 알아보게 될 것이다. ... 태양이 밝고 따뜻하게 빛나며 세상을 재창조하는 이 첫봄 날 아침우리는 평온한 어느 일터에서 그 이웃을 만나 그의 지치고 타락한 혈관이 잔잔한 기쁨으로 부풀어 올라 새날을 축복하며 어린아이의 순수함으로 봄기운을 느끼는 모습을 본다그러면 우리는 그의 모든 잘못을 잊고 마는 것이다그의 주변에서는 선의 분위기가 느껴질 뿐 아니라마치 갓 태어난 본능인 듯 표현할 길을 맹목적이고 무력하게 찾아 헤매는 신성의 기미마저 감돈다그래서 잠시 동안 남쪽 산비탈에서는 그 어떤 저속한 농담도 울려 퍼지지 않는다그의 쭈글쭈글한 얼굴에서 순수하고 아름다운 새싹이 돋아나새파랗게 어린 식물처럼 부드럽고 싱싱한 모습으로 새로운 해의 삶을 시작해 보려는 기운이 엿보인다

 ...

평온하고 자비로운 아침 숨결 속에서 매일 싹트는 선으로 되돌아가면우리는 미덕을 사랑하고 악덕을 미워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본성에 좀 더 다가가게 된다벌목된 숲에서 새싹이 돋는 것과 같다마찬가지로 사람이 낮 시간 동안 악행을 저지르면다시 돋아나기 시작한 미덕이라는 새싹은 자라지 못하고 죽어 버린다.

이와 같이 미덕의 싹이 수차례 방해를 받아 자라지 못하면자비로운 저녁의 숨결도 그 싹을 보존하기에 역부족이다저녁의 숨결이 더는 싹을 보존할 수 없게 되면 곧바로 인간의 본성은 짐승의 본성과 다름없게 된다사람들은 그의 본성이 짐승의 본성과도 같은 것을 보고 그가 애초에 선천적인 이성 능력을 소유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진정한 천성이겠는가?


 황금시대가 처음 도래했으니 보복하는 이는 없었고

 자연스레 법이 없어도 충의와 공정을 중요하게 지켰다.

 형벌과 두려움이 없었고 벽에 걸린 놋쇠 판에

 위협적인 말이 새겨져 있지도 않았다탄원하는 군중이

 판관의 말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보복할 이 없어 안전했다.

 산에서 베인 소나무가 맑은 파도 위로 굴러떨어져

 낯선 세상을 볼 일도 아직은 없었다.

 그리고 인간들은 자신들의 해안 외에는 어떤 해안도 알지 못했다.

 [중략]

 언제나 봄이었고 평온한 미풍이 따스하게 불어와

 씨 없이 태어난 꽃들을 달래 주었다.


p414

어떤 이들의 생각처럼 죽은 사람들이 무덤에서 잠을 자고 있는 것이라면그 죽은 이들마저 깨울 만큼 순수하고 밝은 햇빛이 야생의 강이 흐르는 계곡과 숲에 담뿍 내리쬐는 봄날 아침이었다. 불멸을 이보다 더 강력하게 증명해 줄 근거는 필요치 않으리라만물은 그런 빛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죽음이여너의 독침은 어디로 갔느냐무덤이여그러면 너의 승리는 어디로 갔느냐?


p415

우리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모습과 우리가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곳에서 어떤 생명이 자유롭게 풀을 뜯는 광경을 목격해야 한다죽은 동물의 썩은 고기를 보면 역겹고 기분이 나쁘지만독수리가 그 고기를 먹으며 건강과 힘을 얻는 모습을 보면 우리도 기운이 난다. ... 자연의 생명력으로 가득한 덕분에 무수한 생명이 희생되거나 서로 먹고 먹히며 괴로워하더라도 괜찮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기쁘다. ...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지만 그 이유는 거의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현명한 사람이라면 여기에서 보편적인 결백을 깨닫는다독은 결국 유해한 것이 아니며어떤 상처도 치명적이지 않다연민을 근거로 내세워도 옹호받을 수 없다연민은 분명 순간적인 감정이다연민에 근거해 호소하는 행위가 고착화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맺는말-

p418

 그대의 눈을 내면으로 돌려라그러면 그대의 마음속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천 개의 지역이 보이리라.

 그곳을 여행하라.

 그리고 자기 자신이라는 우주의 전문가가 되어라. 


p420

 그들이 여기저기 떠돌며 이국의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을 살펴보도록 내버려 두라.

 나는 신을 더 많이 알고그들은 길을 더 많이 안다.


p421~422

미라보 백작은 사회의 가장 신성한 법률에 정식으로 저항하려면 어느 정도의 결의가 필요한지 확인하고 싶어서” 노상강도질을 했다고 한다그는 대열을 지어 싸우는 병사에게 필요한 용기는 노상강도에게 필요한 용기의 반도 되지 않는다.라고 단언했고 숙고 끝에 단호히 결정을 내릴 때 명예와 종교가 방해된 적은 없었다.라고 말했다세속적인 관점에서 이는 남자다운 행동이었으나 내가 보기에는 자포자기한 게 아니라면 무익한 짓이었다좀 더 분별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신성한 법률에 따르는 과정에서 사회의 가장 신성한 법률로 여겨지는 것에 정식으로 저항하게 되는 때가 종종 있었을 것이며따라서 탈선행위를 하지 않고도 자신의 결의를 시험할 수 있었을 것이다사람이 할 일은 이렇게 저항하는 태도로 사회를 대하는 것이 아니라자기 존재의 법칙을 따르는 과정에서 갖추게 된 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공정한 정부ㅡ혹 그런 정부를 만나게 된다면 말이지만ㅡ에 저항하는 그러한 태도는 아닐 것이다.


p423

 실험 결과 나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것을 배웠다자신의 꿈을 향해 당당히 나아가며자신이 꿈꿔 온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평소에 예상치 못했던 성공과 맞닥뜨리게 된다는 것이다그런 사람은 어떤 것들을 뒤로 하고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을 것이다그러면 새롭고 보편적이며 한층 자유로운 법칙이 그의 주변과 내면에 확립되기 시작할 것이다혹은 낡은 법칙들이 확장되고좀 더 자유로운 의미에서 그에게 유리하게 해석되어 한층 숭고한 존재 법칙을 허용받아 그 법칙에 따라 살게 될 것이다그가 소박하게 살아갈수록 우주의 법칙도 그만큼 단순해질 것이며이제 고독은 고독이 아니고 가난도 가난이 아니며 약함도 약함이 아닐 것이다공중에 성채를 지었더라도 반드시 무너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그곳이 그 성채가 있어야 할 자리다그러니 그 밑에 토대를 세우자.

p424

미래나 가능성을 고려할 때우리는 앞에 선을 긋지 말고 느슨한 태도로앞에 펼쳐진 윤곽을 희미하고 흐릿하게 남겨 두며 살아야 한다우리의 그림자가 태양을 향해 보이지 않는 땀을 발산하듯이 말이다. 우리의 언어에 담긴 증발하기 쉬운 진실은 뒤에 남은 표현의 결점을 끝없이 폭로해야 한다


p425

월든 호수의 푸른색 얼음은 순수함의 증거인데남부의 고객들은 그 색깔이 마치 탁하다는 듯이 싫어하며 케임브리지의 얼음을 선호한다그러나 케임브리지의 얼음은 흰색이지만 풀 맛이 난다사람들이 좋아하는 순수함이란 지구를 감싼 안개 같은 것이지그 너머에 있는 하늘색 창공 같은 것이 아니다


p426~433

 쿠루라는 도시에 완벽함을 얻고자 노력하는 예술가가 있었다어느 날그의 머릿속에 지팡이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불완전한 작품에는 시간이 하나의 요소로 작용하겠지만 완벽한 작품에는 시간이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에그는 설혹 평생 다른 일을 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모든 면에서 완벽한 지팡이를 만들기로 다짐했다그는 부적절한 재료로는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즉시 나무를 구하러 숲으로 갔다그가 나뭇가지를 찾으며 퇴짜를 놓는 동안 친구들은 서서히 그를 떠나갔다그들은 일을 하다가 나이를 먹어 죽었지만 그는 조금도 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굳은 의지로 한 가지 목표에 골몰하며 더욱 경건해졌기에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원한 젊음을 얻게 된 것이었다그는 시간과 타협하지 않았으므로 시간은 그를 피해 갔고 그를 정복하지 못해 멀리에서 한숨만 내쉬었다그가 모든 면에서 적합한 나무를 찾아내기도 전에 쿠루 시는 고색창연한 폐허가 되었고그는 그 폐허 더미 중 한 곳에 앉아 나뭇가지의 껍질을 벗겼다그가 나뭇가지를 제대로 된 지팡이 모양으로 만들기도 전에 칸다하르 왕조가 막을 내렸고그는 지팡이 끝으로 모래 위에 그 왕조의 마지막 왕의 이름을 쓴 다음 다시 일에 몰두했다그가 지팡이를 다듬고 윤을 낼 무렵에는 칼파마저 더는 북극성과도 같은 지표가 아니었다그리고 그가 지팡이 끝에 쇠 덮개를 끼우고 지팡이의 머리를 보석으로 장식하기도 전에브라마는 깨어났다 잠들기를 수없이 반복했다그러나 나는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그가 마지막으로 지팡이를 손질하고 나자지팡이는 이 예술가의 눈앞에서 갑자기 커지더니 브라마의 모든 창조물 중에 가장 아름다운 존재로 변해 그에게 놀라움을 주었다그는 지팡이를 만들며 새로운 체계완벽하고 아름다운 비율을 갖춘 세계를 만들어 낸 것이다옛 도시들과 왕조들은 사라지고 없었지만 더 아름답고 더 영광스러운 도시와 왕조가 대신 들어선 세계였다그리고 이제 그는 발치에 수북이 쌓인 나무 부스러기가 아직도 썩지 않은 채 생생한 것을 보고자신과 자신의 작품에 있어 옛 세상에서 흐른 시간은 하나의 환상이었으며브라마의 뇌에서 튄 불똥 하나가 인간의 뇌라는 불쏘시개에 떨어져 불을 붙이는 데 필요한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음을 깨달았다재료가 순수했고 그의 예술도 순수했다그러니 그 결과가 어찌 경이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물질에 어떤 겉모습을 부여하든그것은 결국에는 진실만큼 우리에게 유익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진실만이 오래 살아남는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지금 처한 그 상황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자리에 선다천성이 허약한 우리는 어떤 상황을 가정하고 우리를 그 속에 집어넣는다이런 이유로 우리는 한 번에 두 가지 상황에 놓이게 되므로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도 두 배로 어렵다분별력이 있을 때는 사실만을즉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의무감으로 말하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을 하라어떤 진실도 거짓보다는 낫다. 땜장이 톰 하이드는 교수대에 섰을 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물음에 재단사들에게 첫 땀을 뜨기 전에 반드시 실을 매듭지으라고 전해 주시오.라고 말했다그의 동료가 드린 기도가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자신의 삶이 아무리 초라하더라도 당당히 받아들이며 살아내도록 하자삶을 회피하거나 삶을 욕하지 말자삶은 우리 자신만큼 나쁘지는 않다. 트집 잡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천국에서도 트집을 찾을 것이다가난하면 가난한 그대로 삶을 사랑하라구빈원에서도 즐겁고 짜릿하고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다저무는 해는 부자의 저택에서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노인들을 돌보는 양로원의 창에도 밝은 빛을 비춘다이른 봄이면 양로원 문 앞에서도 눈이 녹는다마음이 고요한 사람은 그런 곳에서도 궁전에서 사는 듯이 만족스럽게 지내며 유쾌한 생각을 즐길 것이다나는 때로 우리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독립적인 삶을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그들이 의심 없이 도움을 받아들일 만큼 마음이 넓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을의 지원을 받아 생활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그러나 부정한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할 때가 많은데그 편이 더욱 수치스러운 일이다뜰에서 샐비어 같은 약초를 가꾸듯이 가난을 가꾸자옷이든 친구든 새 것을 얻으려고 지나치게 애쓰지 말자낡은 옷은 뒤집어 입고 옛 친구를 다시 찾아가면 될 일이다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변하는 것은 우리다옷을 팔아 버리고 생각은 그대로 간직하자. 우리에게 사람들과의 교제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신은 아실 것이다며칠 동안 다락방 구석에 거미처럼 틀어박혀 있더라도 생각을 간직하고 있다면 세상은 나에게 변함없이 넓어 보일 것이다어느 철학자는 말했다삼군(三軍)으로부터 장수를 빼앗아 혼란을 야기할 수는 있을지언정제아무리 비루한 자라 하더라도 그에게서 생각을 빼앗을 수는 없다.” 자신을 개발할 방법을 찾느라 전전긍긍하다가 수많은 영향력에 휘둘리며 이용당해서는 안 된다모두 낭비일 뿐이다겸손은 어둠처럼 하늘의 빛을 드러낸다. 가난과 비천의 그림자가 우리 주변에 모여들면 보라만물이우리 눈앞에 펼쳐진다. 크로이소스 왕의 재산이 우리에게 주어지더라도우리의 목적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수단도 본질적으로는 같을 것임을 우리는 자주 되새기게 된다게다가 가난 때문에 활동 범위에 제약이 생긴다면예를 들어 책과 신문을 사지 못하게 된다면 우리는 가장 의미 있고 필수적인 경험에만 집중하게 된다어쩔 수 없이 당분과 전분이 가장 많이 든 재료만 취급하게 된다뼈와 가까운 살코기가 맛있듯이빈곤한 삶이 가장 달콤한 법이다. 그만큼 우리는 빈둥거리지 못하도록 보호 받는 셈이다높은 차원에서 아량을 베풀었다면 낮은 차원에서 손해 볼 일은 없다쓸데없이 많은 돈으로는 쓸모없는 것들만 살 수 있을 따름이다돈으로는 영혼의 필수품을 단 한 가지라도 살 수 없다

 ...

 나는 거창하게 행렬 지어 걷는 것보다는 할 수 있다면 우주의 건축가와 함께 거닐고 싶다불안하고 초조하며 부산스럽고 보잘것없는 이 19세기 속에서 살기보다는 이 시대가 지나가는 동안 서거나 앉아서 생각에 잠겨 있고 싶다. ... 나는 무게를 달고 결과가 나오면 가장 강력하고 정당하게 마음을 끄는 것에 자연스럽게 이끌려 가고 싶다저울대에 매달려 무게가 덜 나가도록 애쓰고 싶지는 않다어떤 상황을 가정하지 않고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내가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어떤 힘도 가로막을 수 없는 그런 길을 가고 싶다. 견고한 토대를 놓기도 전에 아치부터 쌓아 올리는 행동은 나에게 아무런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살얼음판 위에서 놀지는 말자단단한 바닥은 어디에나 있다. 한 나그네가 소년에게 앞에 있는 늪의 바닥이 단단한지 물었다는 이야기를 다들 읽은 적이 있을 것이다소년은 바닥이 단단하다고 대답했다그러나 나그네의 말은 이내 뱃대끈까지 늪에 잠겼고 나그네는 소년에게 말했다이 늪의 바닥이 단단하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소년이 대답했다맞아요하지만 단단한 바닥이 있는 곳까지 아직 절반도 가지 않으셨잖아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늪과 유사(流沙)도 마찬가지다그러나 그 사실을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드문 경우지만 생각은 말이나 행동과 일치해야만 쓸모가 있다. ... 우리가 박은 못 하나하나는 우주라는 기계에 박힌 또 하나의 대갈못이 되어야 하며우리는 계속 그 일을 해 나가야 한다.

 나에게 사랑보다돈보다명예보다진실을 달라


p436

영국인이건 미국인이건 평범한 이들이 이 모든 것을 깨닫게 되리라고는 말하지 않겠다그러나 이것이야말로 단순히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로 밝아 오는 것이 아닌새날의 특징이다눈을 멀게 하는 빛은 곧 어둠이다새날은 우리가 깨어 있을 때에만 밝아 온다밝아 올 새날이 아직 남아 있다태양은 아침에 뜨는 별에 지나지 않는다.


<시민 불복종 Civil Disobedience>

p446

우리는 대중이 준비되지 않았다고 습관처럼 말한다그러나 개선이 더디게 이루어지는 이유는 소수가 그런 다수보다 실질적으로 더 현명하지도더 선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다수가 나 자신만큼 선하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딘가에 몇 사람이라도 절대적으로 선한 사람이 있느냐가 중요하다그들이 반죽 덩어리 전체를 발효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p457

세금 징수원이나 여타 다른 공무원이언젠가 누군가 나에게 그랬듯이 하지만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이것이다진심으로 무슨 일이든 하고 싶다면공직에서 물러나십시오.” 국민이 충성을 바치기를 거부하고 공무원이 자리에서 물러난다면 혁명은 완성된다그러나 피를 흘려야 할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양심에 상처가 나도 일종의 피가 흐르지 않는가이 상처를 통해 사람의 진정한 인간다움과 불멸성이 흘러 나가며그는 피를 흘리다 영원한 죽음에 이른다나는 지금 그 피가 흐르는 광경을 보고 있다.


p458

돈이 제기하는 새로운 질문이라고는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하는 까다롭지만 불필요한 질문뿐이다이렇게 부자의 도덕적 기반은 발밑에서 무너진다소위 삶의 수단이라는 것들이 늘어날수록 삶의 기회는 그만큼 줄어든다사람이 부자가 되었을 때 교양을 기르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행동은 가난한 시절에 품었던 계획들을 실천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헤롯당에게 그들의 처지에 걸맞은 대답을 들려주었다세금으로 바치는 돈을 나에게 보여 달라. 어떤 사람이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냈다너희가 카이사르의 모습이 새겨졌고 그가 통용 가치가 있도록 만든 돈을 쓰고자 한다면다시 말해 너희가 정부의 사람들이라면 카이사르 정부가 주는 혜택을 즐겁게 누리고 그가 요구하는 그의 소유 중 일부를 되돌려 주어라따라서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바쳐라.” 그러나 헤롯당은 어느 쪽이 누구 것인지를 전보다 더 슬기롭게 파악하게 되지는 않았다알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역자해설-

p477

1817년 7월 12일에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태어나 45세의 나이에 결핵으로 생을 마감하기까지소로의 삶은 대부분 콩코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보스턴 근교에 위치한 콩코드는 풍요로운 자연환경을 갖춘 곳으로랠프 월도 에머슨을 중심으로한 초월주의자들의 근거지였다소로를 비롯해 너새니얼 호손마거릿 플러엘리자베스 피바디브론슨 올컷윌리엄 엘러리 채닝 등이 이 무리에 속했는데산업화의 부작용인 물질주의와 합리주의를 초월해 개인의 영적 상태에 집중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초월주의자라고 불렸다.

 

박이문 - <죽음 앞의 삶, 삶 속의 인간>

Posted by 히키신
2017. 3. 7. 21:04 영원의 지헤, 그리고 철학

박이문, <죽음 앞의 삶삶 속의 인간>, 미다스북스, 2016


4부 실존적 선택과 사회적 규범

01. 실존적 선택 –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p601~2

...인간이라는 존재는 비록 박테리아의 유전자로부터 진화되었더라도그 원인이나 이유를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없지만생물학적물리학적으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윤리적 존재라는 사실과 우주의 궁극적 가치가 적어도 인간의 경우 생물학적 생존일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한다윤리적이란 자신의 생물학적 욕구를 희생하면서 남을 생각하는 마음씨이다수치심은 윤리적 결함즉 내가 생물학적 나의 욕망을 초월해서 남의 아픔과 기쁨을 생각하지 않는즉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오로지 생물체로서만 존재하는 자기에 대한 반성적 의식이다나의 생존에 대해서 자부심은커녕 수치심을 느끼는 까닭은 나의 생존을 위해 남과의 생물학적유전자적 경쟁에서 나만을 위해 수많은 다른 유전자들을 희생시켜야만 했던 사실즉 유전자로서의 나는 비윤리적이었다는 사실에 대한 의식 때문이다.

 엄격히 따져볼 때 이러한 사실을 단 한 번도 윤리적으로 탓할 점이 전혀 없는 장관학자사업가사회운동윤리 운동가들은 물론 공자간디마르크스테레사와 같은 영원한 윤리적 범전으로 살아온 이들에게도 다 같이 해당된다비록 그들이 일생동안 윤리적으로 탓할 바가 없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조상 중에 적어도 누군가가 도적질이나 사기나 비겁하거나 잔인하지 않고서는 그들이 윤리적으로 위대한 인간으로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고따라서 유전자로서의 그들은 비윤리적 존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생존경쟁이 한없이 거칠고 험악하다삶이 삭막하고 살아 있음이 부끄럽다세상을 떠나고 싶다그래도 살아남아야 한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이제부터라도 수치스럽지 않은 삶을 살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중요한 것은 마치 바퀴벌레처럼 번식하고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영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실존하는 데 있다그것은 나의 유전자가 멸종하는 일이 있더라도 윤리적 주체로서의 나를 끝까지 확인하면서 긍지를 갖고 살아야 함을 뜻한다그렇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음이 차선의 선택인지 모른다


p613~4

파스칼의 말대로 혼자됨이 없이는 참다운 정신적 만족즉 행복은커녕 의미 있는 일을 성취할 수 없다.


p622~3

 절대신을 전제로 하는 종교적 세계관의 틀 밖에서도철학적 힌두교불교도교그리고 유교 등을 비롯해서 수많은 비서양적 세계관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의 생명더 나아서는 생명 일반의 존엄성이라는 이념에서 흔히 자살은 부정죄악시금기 그리고 사회적으로 규탄되어왔다그리고 자살 부정의 이유를 인격적 절대신의 존재가 아니라 형이상학적 혹은 자연적 원리로서 찾으려고 했다인간의 생명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모든 생명의 존엄성은 형이상학적 혹은 자연적 우주의 객관적 질서의 일부로서 하나의 객관적 사실이라는 것이다그러나 이런 이유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생명의 존엄성이 객관적 사실이라는 말에는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생명을 존중하지 않을 개연성이 있음을 함의한다그렇다면 생명존중과 생명존중 행위에 전제되어 있는 생명의 존엄성은 영원불변한 우주의 객관적 질서 원칙의 일부가 될 수 없다그러므로 생명존엄성에 위베되는 자살행위를 우주의 질서에 근거해서 규탄하는 논리는 타당성을 잃는다. 둘째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객관적인 형이상학적 사실로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어째서 그러한 사실에 부합하게 살아야 하는가의 당위성의 물음이 생긴다하지만 사실적 명제로부터 당위적 명제의 유추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살행위를 도덕적으로 또는 종교적으로 죄악시하고 반대하는 어떤 근거도 만족스럽지 않다자살행위의 비도덕성 및 죄악성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자살행위에 대한 인간의 부정적 심리적정서적즉 비이성적 반응의 표시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이러한 반응이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자연스럽고 정직한 반응이라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사정은 다를 바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극히 몇몇 사람들을 예외로 하고는 어느 사회나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거의 절대적 다수가 자살행위의 도덕적 악과 종교적 죄과를 마치 객관적 사실인 듯이 생각함으로써 자살을 금기시해왔다면 이러한 현상은 어떤 설명을 요구한다.

 이 현상에 대한 생물심리학적 설명이 가능하다모든 동물의 생물학적인 궁극적 가치 및 목적은 생명의 연장이다동물로서의 인간도 인간이기 이전에 생물학적 동물이며한 종류의 동물로서도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그의 궁극적 가치와 목적은 자신의 생물학적 생명의 연장이다그러나 형이상학적종교적 근거가 없는 한 그의 생명에 대한 본능은 불안하다그는 자신의 생존을 정당화하고 의미를 부여할 필요를 의식한다그런데 자살에 비친 죽음의 가치 선택은 그의 생물학적 본능에 배치되고생물학적 위협의 상징으로 다가오며비록 그것이 남의 경우일지라도 자살 긍정은 죽음의 긍정자기의 죽음의 가능성과 타당성이라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생존에 대한 본능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하는 한 그는 자신의 자살은 물론 남의 자살도 인정할 수 없다자살찬미적 세계관이 어떤 사회나 시대에서도 지배할 수 없었던 것은 극히 예외적인 몇몇 경우를 빼놓고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생존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생물학적 본능대로 가능하면 오랫동안 생존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자살의 거부는 어떤 객관적 사실의 부정이 아니라 생존을 선택한 자신을 격려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에게 던지는 집단적 구호이다.

 

P627~8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의 자살이 가치가 있고 정당화되는 것은 그것이 죽음의 찬미가 아니라 한민족 전체의 더 큰 생명을 직접적으로 긍정하는 사회적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사회적 복지를 위한 고려와는 상관없이직접적으로는 오로지 지조와 의리’ 혹은 자신에 대한 철저한 정직성이라는 도덕적 가치에 대한 신조에 따라 이루어진 사무라이나 카르멘의 자살이 숙연한 감동을 주는 것은 그러한 도덕성이 간접적으로 사회집단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 갖고 있는 중요성에 근거한다자살을 무조건 죄로죽음을 무조건 악으로만 볼 수는 없다어떤 종류의 자살은 죽음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삶의 긍정인간의 초월성의 증거이다경우에 따라 인간은 죽음을 통해서만 살고 생존함으로써 죽는다.

  

P637~8

 윤리라는 낱말은 그리스어를 어원으로 하는 영어 ethic불어 ethique독일어 Sittlichkeit라는 낱말도덕이라는 낱말은 라틴어를 어원으로 하는 영어 morality불어 moralit독일어 moralit라고 쓰는 낱말의 동의어로서 한자로 표시한 것이다.

 위의 두 개념들과 가장 유사한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의 개념으로서 인륜 및 라는 한자들을 골라낼 수 있지만이 두 개념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개념들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없었던 새로운 개념들이며따라서 신조어였으며 오늘날에는 동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개념으로서 인륜이라든가 도라는 낱말보다도 더 보편적으로 우리들의 말로 유통되고 있다.

 도대체 윤리와 도덕은 동의어인가아니면 그것은 각기 무엇을 뜻하는가윤리라는 낱말의 어원인 그리스어 에토스ethos라는 말과 도덕이라는 낱말의 어원인 라틴어 모랄리타스moralitas라는 낱말이 원래 다같이 풍습’ 혹은 관습을 뜻했었다는 것으로서 알 수 있듯이 윤리와 도덕이라는 낱말은 원래는 동일한 뜻을 갖고 있었다. 위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윤리,도덕적으로 산다는 것즉 정말 인륜에 맞게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윤리,도덕적 판단의 잣대는 무엇인가?

 

p639~640

 하지만 한 독립된 개인의 관점에서 볼 때 기존의 전통에 맞게사회적 관습이나 풍습을 따라가는 행동과 삶이 윤리-도덕적이기는커녕 그와 정반대로 오히려 비윤리-비도덕적으로 의식되는 경우가 적지 않게 생긴다실제로 인간사회의 도덕적 발전은 한 개인 아니면 소수의 개인들이 기존의 사회적 행동의 관습과 전통적 규범을 전복하고 개인이 새롭게 만든 원칙 그리고 새롭게 꾸민 관례를 세움으로써 가능했다.

 윤리와 도덕이 구별되는 것은 바로 위와 같은 두 가지 종류즉 사회적 및 개인적 행동의 관습과 원칙의 구별에 비추어 설명될 수 있다윤리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기존의 행동 관습과 범례를 지칭하고그러한 것에 맞는 행동을 윤리적이라 할 수 있다면도덕은 개인이 실존적 주체자로서 자신이 선택한 행동의 원칙과 자신이 만들어낸 관례를 지칭하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행동의 원칙과 관례즉 윤리에 대립하게 되더라도 자신이 실존적으로 선택한 원칙과 관례에 맞는 행동의 성격을 지칭한다윤리가 한 추상적 인간 집단이 무의식적으로 규정한 무기명적 행동의 원칙과 규범이라면도덕은 한 구체적 개인이 실존적으로 선택한 아주 개인적인 행동의 원칙과 규범이다. 이런 점에서 윤리적인간은 기존사회의 질서에 적응적이고 따라서 보수적인즉 집단의 일부로서의 사람이라면도덕적인간은 기존 사회에 비적응적이고기존 질서에 개혁적인즉 집단에 감성적으로 맞서는 대립적 개인이다


p642~3

<논어자로(13.18)에 윤리와 도덕의 관계의 차이에 대한 공자의 깊은 견해는 염소를 훔친 아버지를 고발한 아들의 도덕-윤리성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드러난다염소를 도둑질한 아버지를 고발한 아들을 정직한 사람의 예로 드는 사람들이 있는데그러한 아들의 행동을 정말 옳은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제자 공엽의 질문에 대해 스승 공자는 우리 고장에서는 아비는 아들을 위하여 숨기고아들은 아비를 위하여 숨기는 것을 곧은 것으로 믿는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공자의 위와 같은 말은 뜻밖의 것이다곧음즉 정직함은 정신적 가치이며모든 가치판단은 반드시 어떤 규범을 전제하고모든 규범에는 보편적 적용이 요청되므로 사회적 및 객관적 성격을 갖추어야 하는데공자가 제시하는 행동의 원칙은 사적 원칙으로서 원천적으로 보편적 적용이 불가능하다모든 이들이 사적 관점에서 공평성을 위반하여 경우에 따라 사회적으로 약속된 규범을 위반한다면그 규범은 규범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위와 같은 공자의 뜻밖의 대답에는 법윤리도덕의 각각의 본질과 그것들 간의 관계에 관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중요한 명제가 담겨 있다.

 첫째도덕의 본질이 사회적으로 입법화된 규범으로서의 실정법 혹은 비입법화된 규범으로서의 윤리와 개인이 자신의 실존적 결단에 따라 선택한 규범으로서의 도덕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명제둘째두 가지 규범이 갈등할 경우가 있다는 명제, 끝으로셋째사회적 규범으로서의 법과 윤리는 도덕적 규범즉 개인이 주체적으로 선택한 행동 규범에 비추어서만 정당화된다는 명제이다첫째 번 명제는 맞는다사회적 규범으로서의 법 혹은 윤리적 규범이 그 사회의 한 구성원인 개인적 관점에서 볼 때 행동규범으로서의 도덕적 신념과 다른 것은 문명권을 달리하는 사람들 간의 윤리-도덕적 신념의 상대성은 말할 것도 없고같은 사회의 구성원들 간에도 윤리-도덕적 가치판단의 차이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가치판단의 기준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로 알 수 있다둘째 번 명제도 맞는다윤리-도덕적 신념과 판단의 관점에서 볼 때세계를 구성하는 여러 문명권들 사이에서나 한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 사이에는 언제나 상대적인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경우 서로 상충해서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은 셋째 번즉 도덕적 판단즉 개인이 선택한 행동의 규범과 그것에 전제된 인간으로의 가치관이 사회적 관습으로서의 윤리와 그러한 윤리의 공식화를 뜻하는 공적 법에 시간적으로 선행하고 논리적으로 전제되어 있다는 주장이다이 주장도 맞는다한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적 행동규범으로서의 법은 그것이 제정되기 이전에 이미 그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행동의 관습이나 관례를 공식적으로 반영한 것에 불과하며그러한 풍습이나 관례즉 윤리는 그 사회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각기 은밀한 사적 심성 및 주관적 가치관의 반영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한편으로는 법 및 윤리와 다른 한편으로는 도덕한편으로는 사회적 규범과 다른 한편으로는 사적 규범 간의 위와 같은 긴장된 관계에 비추어서만 한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법의 끊임없는 개정 및 사회적 풍습과 관례의 부단한 변화를 설명하고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철학적 탐구작업을 해봐도 좋을 것 같다.


p653

개인적으로 나는 어느 곳에서 어떤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기를 바라는가?


5부 인간과 인생에 관한 성찰

01.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

p756

...그렇다면 인간다운 삶을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지식권력부귀사회적 명성인류에대한 공헌쾌락꼭 그런 것도 아니다자신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 죽은 이름 없는 많은 사람들무명으로 살다 사라진 일자무식의 농부가난한 노동자돈벌이에 바쁜 동대문시장의 상인들평범한 직장인 등에서도 인간다운 인간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무식나약가난무명무능고통도 인간다움과 배치되지 않는다인간다움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존엄성을 포기하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려는 심성같이 되기를 거부하는 의지이며인간다운 삶이란 동물이 아님을 스스로에게 확인해줄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삶이다

 인간다운 삶을 살기란 쉽지 않다우리는 인간으로서보다는 개처럼 살고자 하는 본능의 유혹에 항상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러한 유혹을 극복하고 인간답게 살 때 우리의 죽음은 꽃으로 피어나고그 꽃의 향기로 허무한 인생은 충만한 존재로 승화될 수 있는 것이다

 - <라 쁠륨>, 1999, 가을호

02. 인생 텍스트론-인생이란 무엇인가

p766~7

...그렇다면 어떻게 인간을 언어로인생을 텍스트로 볼 수 있는가보석 상인한테는 약간의 상품 가치밖에 없는 금반지가 그것을 주고받은 부부한테는 둘도 없는 귀중한 의미를 갖고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한테는 한낱 돌조각에 지나지 않는 불상이 불교신자에게는 무한히 중요한 정신적 실체로 보일 수 있듯이물리적으로 동일한 것도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존재로 나타날 수 있다. 1)山是山水是水, 2)山不是山水不是水, 3)山是水水是山 4)山是山水是水라는 하나의 유명한 선시禪詩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그런 것이었다. 1)의 명제와 4)의 명제는 문자적으로 동일하지만후자는 전자에서 나타난 실체와는 전혀 다른 실체를 나타내고 있다똑같은 과 를 함께 보면서도 후자와 전자는 서로 전혀 달리 보고 있다는 것이다똑같은 인식대상이 전자의 경우 지각적 존재로 파악된 데 반해서후자의 경우 형이상학적 존재로 파악되고 있다. ... 인간/인생이 지각적/과학적 인식 대상그리고 과학적 설명대상이 되지만 그것은 언어/텍스트로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이다그것은 그저 논리적 개연성이 아니라 당위성이다그렇지 않고는 우리가 관찰하고 체험할 수 있는 인간/인생은 설명되지 않는다.


p770~2

인생이란 곧 소설임을 말하며각 인간의 삶이란 각자 다른 소설로 봐야 한다는 말이다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내 자신에게 던질 때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으로 변하고이 물음은 정확히 나의 정체는 무엇인가로 되며이에 대한 물음은 결국 나의 삶이 어떤 이야기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바뀐다. ...

 부처예수공자나 네로진시황이나 히틀러가 살았던 인생을 각기 그들이 창작한 소설/이야기로 본다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칭하는가? 그것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그들의 태도생각행동그리고 그것들을 둘러싼 모든 사실과 사건들을 뜻한다그러나 모든 것들을 하나의 통일된 전체로서즉 혹은 예수혹은 공자의 시각에서 볼 때 각기 그들의 태도생각행동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모든 사실과 사건들이 논리적으로 더 연관성을 갖추어 하나의 통일된 의미를 더 보일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인생은 한 백치가 들려준 이야기이다라는 말은 바로 인생에 대한 이러한 사실을 지적해준다한 인간의 본질이 그의 주체성을 의미하고 한 인간의 주체성이 그 삶의 어떤 통일성을 지칭한다면 백치가 한 이야기같은 인생에서 주체성이란 찾을 수 없다는 말이다이러한 사실은 오직 인생 전체를 통해서 어떤 통일된 이야기가 성립될 수 있는 인생일 경우에만 그의 삶은 비로소 정체성자아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한 인간의 삶이 텍스트인 이상 어떤 텍스트이건 모두 최소한의 의미를 지니며따라서 논리적 일관성을 띤다또한 어떤 텍스트일지라도 그것의 구성 요소들의 논리적 관계가 완전히 맞추어지기에는 인생이란 텍스트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너무나 많고 복잡하다이런 점에서 모든 인생의 텍스트가 내포하는 이야기는 셰익스피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완전 백치의 이야기도 아니며그와 동시에 전지전능한 신의 이야기도 아니다따라서 언제나 정도의 차이를 막론하고 다소 애매모호하고 그만큼 난해하다그러므로 한 인간의 정체성즉 한 인간의 삶의 의미에 대해 누구나 결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주장은 지나친 독선/독단이다.


p773~5

인생이 텍스트 쓰기이며인생의 의미가 텍스트적으로만 해석되고인생의 가치가 텍스트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면 각자 인생의 의미는 그가 죽는 날에야 끝을 맺게 될 소설/텍스트에 의해서 결정된다그러나 어떤 텍스트를 써서 어떻게 끝을 맺을까의 문제는 각자 자신의 자유로운 결단에 따라 어떤 주제를 어떻게 선택하여 실천에 옮기느냐에 달려 있다.

 이 점에서 인간적 삶의 의미를 소설/텍스트로서 발견할 수 있고 이런 텍스트의 의미를 아름다운 꽃에 비교할 수 있어도텍스트 쓰기로서 인생은 꽃피는 과정과는 다르다한 꽃나무가 어떤 꽃을 피울 수 있는가가 자연의 원리에 의해 이미 결정된 데 반해자신이 어떤 인생 텍스트를 쓰는가는 오로지 나의 자유로운 실존적 결단에 의존한다오직 나만이 내가 죽는 날 끝을 내야 하는 소설/텍스트의 책임자이며내 인생의 의미 내용즉 가치의 책임자이다그러므로 인생이란 텍스트 쓰기는 죽을 때까지 창작자로서 각자 를 부단히 긴장하게 한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긴장에서만 나는 창작자로서 자부심을 아울러 체험한다인생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곧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며이는 곧 더 가치 있는 소설/텍스트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풀이될 수 있다면어떤 소설을 어떻게 써서 어떻게 끝을 내야 하는가의 문제는 오로지 각자 자신의 텍스트 쓰기가 자신의 자유로운 가치선택즉 어휘와 구성에 대한 자신의 선택 및 그것을 이행하려는 의지와 노력에 달려 있다. ...

 이러한 사실은 인간의 특수한 형이상학적 존재양식에 근거한다인간은 다른 동물과 똑같이 자연의 일부라는 점에서 자연에 내재immanence, 즉 자연 속에 폐쇄되어 갇혀 있지만 자신이 쓰는 텍스트와 그것의 의미는 결국 각자 자신이 책임을 지고 창조해야 한다는 점에서 인간은 또한 자연을 초월transcendence하여 다른 사람다른 존재에 무한히 개방적으로 열려 있다즉 인간의 본질은 자율성에 있다는 말이다.

 인간 존재양식에 대한 이런 사실은 존재 일반에 대한 형이상학적 결론을 도출한다. 적어도 인간만은 물질적 존재로 환원될 수 없으며그러한 존재를 내포한 우주에 대한 총괄적 설명은 유물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이런 점에서 지구가 우주의 물리적 중심이 아니라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인정하면서도 역시 지구는 우주의 형이상학적 중심이다라는 언뜻 보아 모순된 헤겔의 명제는 옳다인간은 그냥 존재하지 않고 의미로서 존재하며그러한 인간에 의해 우주 전체도 그냥 존재하지 않고 무엇인가의 의미로서 존재한다이 점에서 물리적으로 인간은 우주 속에 포함되지만 자신의 머릿속에 우주를 넣고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은 우주보다도 더 크다는 파스칼의 역설적 주장은 말이되고 또한 옳다.

 <철학과 현실>, 1995, 봄호


03. 아직 쓰이지 않은 텍스트

p779~782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는 하이데거의 말은 위와 같은 사실을 새삼 시적 언어로 압축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한편으로 의식즉 인지되지 않은 존재는 의미가 있을 수 없고다른 한편으로 언어 이전의 다양한 의식즉 지각-경험-세계-존재그리고 의지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기unintelligible’ 때문이다언어는 세계와 독립해 존재하며 세계를 표상하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세계 자체가 이미 언어적이라는 것이다그렇다고 언어에 의해 구성되기 전의 존재세계 그리고 경험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라 이른바 언어 이전의 객관적존재들은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말할 수 없는 혼돈상태로 무의미한채로 어둠 속에 남아 있다는 말이다이러한 어둠은 언어의 빛으로 밝아지고 비로소 의미의 질서를 갖고 인간 앞에 나타나게aletheia된다언어의 근원적 가치는 도구적이 아니다그것은 그 자체 내재적으로 귀중한 가치인 광명이기도 하다인간이 그냥 물질이나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후자가 혼돈의 어둠 속에 그대로 갇혀 있는 데 반해서전자는 질서의 빛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즉 투명성은 의미의 꽃과 향기를 창조해낸다인간의 본질은 의미를 찾는 데 있다따라서 모든 것에 대한 투명성은 인간의 가장 인간다운 이상이다이러한 이상의 실현은 인간이 언어를 발명함으로써 그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작은 끝이 아니다언어의 발명은 한밤중에 켜진 작은 촛불에 비유된다세계아니 존재 일반은 거의 전부 아직도 칠흑 같은 어둠에 싸여 있다그만큼 세계와 인간의 삶은 혼돈에 빠져 있다는 말이며이런 것을 의식하면 의식할수록 인간은 질서를 찾으려 하게 된다혼돈이 불안을 조성하고 불안이 자유를 약탈한다면질서는 안정을 가져오고 안정은 자유의 뿌리가 된다그러므로 언어에 의한 세계 질서의 건설은 곧 안정과 자유의 획득을 의미한다내가 어려서부터 말에 매료되고 언어---문학-책이 나를 매혹시키고 있었던 것은 그만큼 내가 안정을 얻어 불안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획득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 

 경험/사고는 시간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언어에 선행하며 그것들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독립된 존재처럼 보인다그러나 경험/사고와 언어는 완전히 독립할 수 없고 경험/사고는 그것이 곧 언어적 활동이며글을 쓰는 이유는 기존의 경험/사고의 표현이나 전달에만 있지 않다글로 써지기 전까지는 경험/사고가 의식활동이니만큼 그것은 그 자체로서는 유동적이며 불확실하며 막연한 채 남아 있으며 오래 지속될 수 없다그러한 경험/사고의 내용이 더 복잡해지고 세밀해지면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경험/사고라는 주관적 의식 활동이 문자로 종이에 기록되어 객관화됨으로써 경험/사고의 내용이 그만큼 확실해지고 섬세하며 복잡한 차원으로 발전될 수 있다. 우리가 우리의 경험/사고를 언어로 기록하는 이유는 고도의 경험과 사고를 하자는 데 있다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근본적 이유는 좀더 잘 생각하고 세계와 인생을 좀더 잘 인식해보자는 데 있다글을 쓰면서 우리는 더 정확히 생각하고 세계를 더 잘 인식할 수 있다는 말이다글쓰기에 대한 욕망의 근원에는 진리에 대한 깊은 숨은 욕망이 깔려 있다. ... 나는 왜 시를 쓰려 했고 문학을 하려고 했으며 철학을 하고 있는가나는 왜 글을 쓰는가나 자신과 세계를 더욱 투명하게 파악하려 하기 때문이다.

 

p785

인간은 좀더 바람직한 생활 여건의 조성이라는 실용적 요청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인간이 내재적으로 갖고 있는 순수한 정신적 요청에 의해서 세계와 자신을 투명하게 파악하려는 지적 필요성을 느낀다그것은 곧 인식적 요청을 뜻하며 인식은 의식의 객관적 사물현상의 주관적 관념화로 서술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과정이 언어적 기록에 의해서 의미의 질서를 갖게 된다. 이렇게 볼 때 글쓰기는 객관적 대상/세계나 주관적 의식/경험을 언어-기호로 서술즉 표상 혹은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 의미를 기록하는 작업이다. 객관적 대상/세계나 주관적 의식/경험은 존재론적 측면에서 그 속성을 본질적으로 달리하고 있을지 모르나 다 같이 실재하는 무엇을 지칭한다는 데는 아무 차이가 없다그것들은 다 같이 존재론적 질서ontological order에 속한다그러나 그것들이 지각/의식을 거쳐 언어로 서술 기록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그것들은 존재론적 전환을 이루어 의미론적 질서semantical order로 고정된다그러므로 글쓰기란 결국 존재의 의미화에 지나지 않으며 인식/앎은 오직 의미적 세계에만 속한다.

여기서 인식의 풀리지 않은 역설이 드러난다그것은 인식대상과 인식된 것존재 질서와 의미 질서즉 글로 쓰여지기 이전의 존재론적 질서와 글로 쓰여진 의미론적 질서 사이의 자기모순적 관계이다인식은 필연적으로 인식의 주체로서의 의식과 그와 별개의 대상을 전제로 한다그러나 인식대상은 글쓰기 속에서 의미로만 나타난다인식의 결과 의미만이 남게 되고 그것은 결국 대상의 증발을 뜻한다인식대상으로서 객관적 세계객관적 존재는 어느덧 내가 무엇 무엇으로서글로 써서 의미로 파악한 것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나의 입장 혹은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세계는 내가 또는 인간이 관념적으로 파악한 세계인 의미와 동일하다는 것이다인식에 대한 전통적 인식 모델은 인식을 일종의 객관적 대상의 의식 복사複寫 혹은 반영反映으로 보는 것이다그러나 인식에 있어서 위와 같은 점들이 사실이라면 인식에 대한 고전적 모델은 틀렸다인식은 이미 존재하는 어떤 객관적 대상의 마음 속 복사나 반영이 아니라그러한 대상의 글쓰기로 이룩하는 주관적/관념적 조직이며 구성이다이런 점에서 인식은 발견이 아니라 제작이다


p794~5

앞서 거듭 강조했듯이 어떤 객관적 존재도 그것이 언어로 기술되기 이전에는 인식될 수 없다언어더 정확히 말해서 텍스트로 전환됐을 때 비로소 객관적 세계는 인식된다그러나 인식의 구체적 내용은 비관념적 존재의 관념화존재적 질서의 의미적 질서화에 지나지 않는다바로 이러한 인식의 구조는 인식된 세계와 인식 이전의 세계가 결코 동일할 수 없음을 말해준다그러나 인식의 궁극적 목적은 인식 이전에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자는 데 있다진리라는 말의 궁극적 의미는 다름 아니라 바로 이러한 존재 파악에 지나지 않는다그러므로 모든 인식은 만족될 수 없는 인식이며 모든 진리는 필연적으로 진리가 아니다시적 글쓰기는 바로 이러한 인식의 역설적 구조의 자의식에서 비롯된다. 시적 텍스트는 철학적 텍스트로 표상/인식될 수 없었던 객관적 존재/세계를 좀더 만족스럽게 표상/인식하기 위해서 고안된 새로운 언어/세계의 구성의 시도를 나타낸다그러나 세계/존재를 파악하기 위한 글쓰기가 철학적에서 시적으로 바뀌어가면 갈수록 그렇게 쓰여진 텍스트의 의미는 그만큼 애매모호즉 시적이 되며 인식이 추구하는 투명성과 체계성에서 멀어진다따라서 글쓰기는 시적즉 애매모호한 비개념성을 탈피그곳에서 멀어져 철학적즉 좀더 개념적으로 될 필요성을 느낀다. 이렇게 볼 때 이상적 글쓰기의 작업은 철학적인 것도 아니며 시적인 것도 아니다그것은 두 가지 글쓰기를 무한히 번갈아 반복하는 작업이 된다. 이와 같이 볼 때 궁극적인 글쓰기는 페넬로페의 끝없이 되풀이되는 옷 짜기와 같다페넬로페는 남편 오디세우스가 없는 동안 자신을 아내로 삼으려는 청혼자들로부터 시간을 벌며 남편이 살아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서 한낮에 실로 짠 옷을 밤이면 다시 푸는 작업을 한없이 반복했다철학적 글쓰기를 페넬로페의 옷 짜기에 비유할 수 있다면 시적 글쓰기는 자신이 짠 옷의 실을 풀고 있는 페넬로페의 작업과 같다.

    

04. 삶에 대한 태도

p801~4

삶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긍정적인 자세는 삶 자체의 존엄성을 전제로 한다. 가을이 되면 시들어 땅에 떨어지는 한 포기의 꽃이 귀하다 한다면, 4,50년이라는 세월을 고생만 하다 죽어간다 해도 인간의 삶 자체는 모든 이유를 초월하여 귀중하다어떻게 해서무엇 때문에 한 포기의 꽃나무한 인간의 삶이 태어났느냐는 문제는 영원히 신비에 가려져 있다. 그러기에 그 꽃나무그 인간의 삶은 그만큼 귀하고 숭고한 의미를 갖는다삶 일반특히 인간의 삶을 떠나서 무엇이 의미가 있으며무엇이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삶 일반특히 인간의 삶을 떠나서 모든 존재는 그 뜻을 잃는다삶이라는 관점에서만 모든 사물들은 비로소 그 질서그것들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다그러므로 삶이야말로 가치 중의 가치즉 절대적 가치가 된다이와 같은 삶의 성격이와 같은 삶과 그밖의 사물현상들과의 관계를 의식할 때 우리는 새삼 삶의 존엄성궁극적 존엄성을 의식한다삶은 우리가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신성한 것을 지니고 있다삶의 신성한 존엄성을 의식할 때 삶을 아끼고가다듬고충만한 것으로 만들어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논리적 필연성을 갖고 있다. 한주일밖에 피어 있지 못하더라도 한 포기의 꽃의 아름다움이 의식될 때 그 꽃을 보다 잘 간직하고 감상하고자 하게 됨이 당연한 이치인 것과 같다살아 있다는 사실보다 더 귀한 것은 없고살아간다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은 생각할 수 없다왜냐하면 우리들에게 있어서 삶은 모든 가치의 근원모든 가치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언뜻 보아서 우리들 모두가 동시에 갖고 있는 또 다른 모순된 태도와 일치하지 않는 것 같다인생을 고해로 보는 입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적 뿌리가 깊다그것은 기독교힌두교불교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생각이며 고대 그리스의 이른바 금욕주의자들의 확신이기도 했다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삶은 절대적 가치는커녕아무 가치도 없는 것우리가 극복해야할 것으로 나타난다그러나 이론적으로 볼 때 그러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하루 빨리 자살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역시 고해라고 보는 삶에 끝까지 애착을 갖고 하루라도 더 살려고 애쓴다이러한 사실은 그들의 이론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그들 역시 죽음보다는 삶이 귀중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음을 반증해준다. ... 이른바 삶의 고통은 힘이 들고 몸에서 땀이 나지 않고는 테니스를 치는 즐거움을 생각할 수 없는 사실에 비유될 수 있다. ...

 어떤 이유에서든 간에 객지에서 이민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들은 문화적으로나 인종적으로나 소외감이라는 심리적 고통을 받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 부딪친다공을 열심히 쳐서 백발백중 목표지점에 명중시킨다 할지라도 도대체 무엇 때문에 치는지가 의심스럽게 여겨지기도 하고열심히 삶이라는 배를 저어 끝없는 바다에 침몰하지 않고 떠가다가도 어디로 향하여 가는지를 의심하게 되는 괴로움을 면하기 어렵다. ... 사회의 한복판에 참여하여 발언하고 사는 게 아니라 그 주변 그늘에서 안일한 그날그날을 보내왔다는 느낌을 완전히 청산할 수 없다. ...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이든 간에 우리는 이곳에서 살기를 선택한 것이다그리고 우리는 삶의 귀중함을 인식하고 있다우리는 싫든 좋든 우리의 삶과 사회의 객관적 현실을 냉정히 인정하고그런 바탕에서 우리들의 삶의 방향을 찾아야 하고 삶의 보람을 창조해야 한다우리의 상황이 남들보다 불리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적극적으로 살아가도록 애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산다고 해도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할 것인가구체적으로 무엇을 위해 애써야 할 것인가를 알아내는 데 있다아름다운 꽃은 적절한 조건에서는 저절로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마련이지만불행히도 인간은 꽃과는 다르다나의 인성이 아름다운 한 포기의 꽃처럼 되기를 원한다 해서 나는 저절로 그런 꽃으로 피어나지 않는다나의 삶이 한 포기의 꽃으로 피기 위해서는 나의 부단한 노력과 지혜를 필요로 한다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나는 무엇을 바라는가인생의 꽃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

사람은 빵으로만 살 수 없다는 말이 있다그러나 거꾸로 사람은 정신으로만 살 수 없다는 말도 위의 말에 못지않은 진리이다


p805~6

그러나 좀더 삶을 생각하는 사람은 일단 이러한 물질적 만족이 어느 정도 채워졌을 때 그러한 삶에 만족을 하지 못한다고 여겨진다만약 그러한 삶에 만족한다고 끝까지 우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정말 만족해서가 아니라 그 이상의 어떤 이상그와는 다른 삶에 대한 가능성을 찾지 못한 채로 일종의 단념에서 생기는 자위적 태도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먼저 든다이러한 나의 추측이 옳다면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옛말이 옳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 물질적 충족 외에아니 물질적 충족 이상으로 정신적으로 충족됐을 때 비로소 인간은 행복자기만족삶의 보람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그렇다면 우리는 물질적 충족을 채우며 사는 이외에도 정신적 충족을 위해서 살아야 하며물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외에도 정신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정신적 가치는 지적 가치와 도덕적 가치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지적 가치는 앎의 가치다. ... 앎 자체가 인간에게는 가치라는 말이다앎 자체가 빛이요기쁨이다인간이 동물과 다른 근본적인 면의 하나는 인간이 앎을 추구하고 앎 자체에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인간의 인간적 행복인간의 인간적 보람은 앎을 떠나서는 불가능하다바꿔 말해서 인간이 인간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가능한 한 그의 앎의 영역을 넓히고 깊게 하면서 살아간다는 말이 된다인간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 태어났으며앎을 깊게 하려고 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 공자나 아인슈타인 같은 지적 업적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고그만큼 유명하게 되는 것도 삶의 보람이 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업적을 남기고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고 유명하게 되는 것보다그런 목적 이전에 오로지 앎 자체진리 자체에 정열을 갖고 자신의 지적 세계를 가능한 한 넓혀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처럼 각자 자신의 능력분수처지에 따라 자신의 지적 세계를 넓혀간다면 그만큼 그의 세계는 확대되고 그만큼 그의 삶은 깊어지고그만큼 그의 삶은 풍부하게 된다설사 내일 눈을 감고 의식을 잃은 송장이 되더라도 그 순간까지 하나라도 더 보고느끼고알게 되는 기쁨그 보람을 의식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p808~9

 모든 사람이 생물학적지적도덕적 가치를 추구해야 하겠지만우리가 각자 갖고 있는 가능성은 선천적으로사회경제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물질적인 성공을 크게 이룰 수 있는 반면 정신적인 성취는 크게 이룰 수 없으며반대로 어떤 사람은 정신적으로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지만 물질적 성공을 희생할 수밖에 없다그러므로 문제는 물질적인 성취를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하냐 아니면 정신적인 성취가 더 중요하느냐에 있지 않다더 근본적인 문제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든 간에 그것을 가능한 한 충분히 이루는 데 있으며얼마만큼 열심히 이루느냐에 있다바꾸어 말해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열심히 한 순간 한 순간을 살아가는 일이다우리는 이것을 삶의 밀도 혹은 삶의 긴장감이라고 부를 수 있다이와 같이 볼 때 삶의 참다운 성공삶의 참다운 보람은 구체적으로 성취한 결과가 남들이 볼 수 있는 외형적인 것에 있지 않고살아가는 과정 그 자체오로지 각기 자신이 내적으로만 경험할 수 있는 그 삶의 과정의 밀도긴장인텐시티intensity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이와 같이 볼 때 장미꽃이 할미꽃보다 더 아름답다든가호랑이의 삶이 고슴도치의 것보다 더 늠름하고 보람있는 삶이라는 판단은 나올 수 없다.

 꽃이 진다고 해서 그 꽃이 아름답지 않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조만간 죽어 흙이 되고 벌레의 밥이 되게 마련이라고 해도 삶 일반특히 인간의 삶은 아름답고 귀하다아니 우리가 머지않아 사라지기 때문에 그만큼 더 우리들의 삶은 보람을 갖는다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삶의 존엄성절대적 가치를 의식하고 삶에 대한 경외삶의 성스러움을 새삼 깨달을 필요가 있다시들시들한 꽃보다 생생한 꽃이 더 아름다운 것과 마찬가지로 적극적 삶인텐스한 삶은 그만큼 더 귀중하다삶의 귀중함삶의 존엄성을 의식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만큼 더 삶을 아끼고보다 보람 있는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의욕과 에너지를 얻게 될 것이며스스로의 삶에 극치를 갖게 될 것이다또한 이러한 긍지를 가지면 가질수록 우리는 보다 더 보람 있는 삶을 창조하려는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죽는 날까지 우리는 작은 것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항상 생각하고 노력하여 경제적으로지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아름다운 한 포기의 꽃이 되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이러한 목적이러한 가치를 위해 살아가는 끊임없는 긴장의 과정 자체 속에 삶의 희열이 있을 것이며보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투쟁속에서 만물은 생하고 또 죽는다

- <삶에의 태도>(1988)



 

에크하르트 툴레 - <고요함의 지혜>

Posted by 히키신
2017. 3. 7. 21:03 영원의 지헤, 그리고 철학

에크하르트 툴레, <고요함의 지혜>, 진우기 옮김, 2004, 김영사


p27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바로 생각이라는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p38~9

 생각에만 골똘한 나는 머릿속에서 들리는 소리가 바로 나라고 생각한다그렇게 해서 나의 생각에 나의 자아상이 덧붙여진다이것이 바로 생각이 만들어낸 ’ 즉 나의 에고이다에고는 늘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며 시시각각 변화한다그런 에고에게는 두려움과 욕망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삶을 휘두른다

 머릿속에서 나인 척하며 수다를 그칠 줄 모르는 목소리가 있음을 깨달을 때생각의 흐름이 곧 나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과거의 꿈에서 나는 깨어난다그때 나는 깨닫는다나의 본모습은 그 목소리가 아니며생각하는 사람도 아니며 다만 그 목소리를 알아차리는 사람임을 깨닫는다.

 그 목소리 넘어 존재하는 맑은 마음이 나라는 것을 알 때 자유가 온다.


p39~40

 에고는 항상 무언가를 찾아다닌다좀더 보태어 좀더 완전해지기 위해 에고는 이것을 찾아 챙기고 저것을 찾아 소유하며이미 가지고 있는 것은 더 많이 쌓아두려 한다에고가 강박관념처럼 미래에 그렇게 집착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내가 이 순간이 아니라 다음 순간을 위해 살고 있음을 알아차릴 때마다 나는 에고의 지배를 벗어난다그때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무를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진다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무를 때 에고보다 훨씬 큰 지혜가 나의 삶 속으로 들어온다.


p51

지금 이 순간에 전념하는 것은 삶에 필요한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다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인정하는 것이다그런 다음에 이차적으로 중요한 것들을 대하면 훨씬 여유가 생긴다존재하는 것은 오직 지금밖에 없으므로 나는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다만 가장 중요한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지금 이 순간을 적이 아닌 친구로 만들라는 뜻이다지금에 감사하고 지금에 경의를 표하라지금이 삶의 근본이 되고 중요한 구심점이 될 때 삶은 여유롭게 풀리기 시작한다.


p52~3

지금 이 순간을 책임지지 않는다면 삶에 대한 책임도 회피하는 것이다삶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바로 지금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을 책임진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그러함에 마음으로 반대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지금과 싸우지 않겠다는 뜻이다삶과 조화를 이루겠다는 뜻이다. ...

 지금 이 순간을 긍정하는 순간 나는 생명의 지혜와 힘과 조화를 이룬다그때 비로소 나는 이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일도 할 수 있다.

 

 아주 단순하면서도 매우 혁신적인 정신 수행이 있다바로 지금 일어나는 것을 무엇이든 다 받아들이는 것이다내 안에서든 밖에서든 말이다.


p54

사람들은 대체로 지금을 지금 일어나는 일과 혼동한다지금은 지금 일어나는 일보다 더 깊은 차원에 있다지금은 그것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p56

나의 생각과 감정과 지각과 경험은 내가 아니다내 삶의 내용물은 내가 아니다나는 생명이다나는 만물이 생성되는 공간이다나는 순수의식이다나는 지금 이 순간이다.


p61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말의 구조 속에는 이미 자신의 참모습을 모른다는 사실이 드러나 있다그는 자신의 생명을 잃었다는 말나의 삶이라는 말 속에는 마치 삶이나 생명이 소유하거나 잃을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있다나는 생명을 가진 것이 아니다내가 바로 생명이다우주 전체에 충만한 한 생명’ 또는 한 의식이 잠시 한 형태를 취하여 돌멩이로풀잎으로동물로인간으로별로은하계로 체험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이미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가슴 깊이 느껴보라당신은 이미 그것임을 느낄 수 있는가?


p62

구도자들은 깨달음과 자기실현을 미래에서 찾는다구도자가 된다는 것은 미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당신이 그렇게 믿는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진실이 된다다시 말해서 본연의 당신이 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님을 깨닫는 그 순간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p64

당신 자신이 현상계의 존재들이 생성되는 맑은 마음임을 알 때 당신은 현상계에의 종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이제 당신은 상황과 장소와 조건 속에서 자아상을 찾지 않는다다시 말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된다만물이 그 무거움과 심각함을 떨궈버린다당신 삶에 슬며시 장난기가 들어온다이제 세상은 우주의 춤이다형상의 춤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p71~2

노력이란 긴장과 스트레스를 수반하며 미래에 일정 지점에 도달할 필요성을 뜻하며 특정의 결과를 이루어야 함을 의미한다당신의 마음속에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심정이 조금이라도 있음을 감지할 수 있는가그것은 삶을 부정하는 일이므로 당연히 진정한 성공은 불가능하다

 마음속에 그런 심정이 있음을 감지했다면 즉시 그 마음을 버리고 지금 하는 일에 몰입할 수 있는가?


p73~4

내게 다가오는 모든 체험은 그저 잠시뿐이라는 것더불어 세상은 지속적인 가치를 지닌 그 어떤 것도 내게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순응이 가능해진다순응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은 이전처럼 사람들을 만나고 활동에 몰두한다 해도 더 이상 에고가 흔드는 대로 욕망과 두려움에 지배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다시 말해서 이제 더 이상은 어떤 상황에 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나거나 어떤 장소에 있어야만 만족하고 행복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그런 것들이 불완전하고 무상한 것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기적 같은 일이 생긴다불가능한 기대치를 버리는 순간 갑자기 모든 상황과 사람모든 장소와 시간이 두루 다 마음에 드는 것이다더불어 당신의 마음은 좀더 조화로워지고 좀더 평화로워진다.


p76

가장 고통스럽고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 속에 가장 깊은 이 감추어져 있다모든 재난 속에는 사랑의 씨앗이 들어 있다. ...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이 찾아온다.

-평온(serenity)


p85~6

자연의 섬세한 소리에 맑은 마음을 가져가보라바람에 나뭇잎이 서걱이는 소리빗방울 떨어지는 소리풀벌레 우는 소리새벽녘 새의 첫울음소리에 귀 기울여보라소리를 듣는 일에 전념하라귀에 들리는 그 소리 너머에 무언가 위대한 것이 있다생각으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성스러움이 거기 있다.


p91

인간은 고요해지면 생각 저편으로 넘어간다생각 저편의 고요함 안에는 앎과 맑은 마음의 차원이 존재한다.

자연은 나를 고요함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그것은 자연이 내게 주는 선물이다내가 고요함의 장 안에서 자연을 지각하고 자연과 함께 할 때 그 안에 나의 맑은 마음이 두루 퍼진다그것이 내가 자연에게 주는 선물이다.


p97

그녀의 과거가 나의 과거이고그녀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며그녀의 의식 수준이 나의 의식 수준이라면 나도 꼭 그녀처럼 생각하고 행동했을 것이다그것을 깨달을 때 용서와 자비 그리고 평화로움이 온다.


p98

지금 이 순간의 여유로움 안으로 누가 들어오든 다 귀한 손님으로 맞이할 때그가 자신의 모습 그대로 존재하도록 내버려둘 때 그는 변하기 시작한다.


p116

20세에는 내 몸이 튼튼하고 활력 있음을 안다. 60세에는 내 몸이 약해지고 늙었음을 안다나의 생각 역시 20대 때와는 달라졌을 수 있다하지만 내 몸이 젊거나 늙었다고 아는 마음내 생각이 변했다고 아는 맑은 마음에는 변한 것이 없다그 맑은 마음이 바로 내 안에 있는 영원이다순수의식이다형상을 벗어난 한 생명이다나는 그것을 잃을 수 있는가아니다내가 바로 그것이다.


p117~8

모든 사고와 재난에는 늘 구원의 가능성이 들어 있다다만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흘려보낼 뿐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죽음이 코앞에 닥쳤을 때 느끼는 극도의 충격은 의식으로 하여금 형상과 나를 동일시했던 과거의 습관을 한 순간에 놓아버리게 하기도 한다육체가 죽기 직전 마지막 짧은 순간에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나는 나를 형상을 벗어난 자유 의식으로 체험하는 것이다그때 돌연히 두려움이 사라지고 한없는 평화로움이 찾아든다모든 것이 다 좋다는 것을 깨닫는다죽음은 단지 형상의 해체에 불과함을 알게 된다그리고 죽음은 결국 착각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나의 몸이 나라고 생각했던 착각.


 죽음은 현대 문화가 믿도록 강요하는 것처럼 그렇게 이례적인 일도가장 끔찍한 일도 아니다죽음은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며 그 반대인 탄생에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죽어가는 사람 옆에 있을 때 이를 잊지 말라.

 한 사람의 죽음을 맞이하여 임종을 지키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벗으로서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지극히 성스러운 행위이며 대단한 특권이다.

 죽어가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다가오는 어떤 체험도 부정하지 말라.  


기일원론

Posted by 히키신
2017. 3. 7. 21:02 영원의 지헤, 그리고 철학

“한국철학은 기일원론이다”

    2010년 07월 19일 04:44 오후

 

정신 몽롱하게 하는 이와 기

"이기론(理氣論)만 나오면 전멸이다!"

학창 시절, 윤리 철학을 공부하다가 이(理)와 기(氣)에 대한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정신을 잃게 되었다고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아무리 선생님이 시험에 나오니 중요하다고 밑줄 쫙쫙 그으며 얘기해도, 눈꺼풀은 천근만근이 되어 스르르 내려오게 되고, 교실 안의 학생들은 거의 전멸의 수준이 된다. 어찌하여 우리 조상님들께서는 우리를 이런 시험에 들게 하시나이까!

반면에 정신과 물질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정신이 무엇인지, 물질이 무엇인지를 직감적으로도 알아차릴 수 있다. 내가 앉아 있는 의자, 내가 보고 있는 책, 그 책이 놓여 있는 책상은 물질이다. 선생님의 말씀을 한 마디라도 더 듣기 위해 집중하게 되는 것은 정신이다.

100~200년 전으로 시계를 되돌려 놓으면 상황은 정반대가 될 것이다. 서당에서 회초리를 맞아가며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하늘 천, 따 지…" 하며 외우는 어린 아이에게 이와 기는 자연스런 낱말이었다. 그 아이에게 정신과 물질에 대해 말하면 그 아이는 그 뜻을 생각하느라 끙끙댔을 것이다.

이러한 상반된 상황이 나타나는 이유는 언어의 친숙성 여부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보여진다. 이와 기라는 낱말에 익숙한 서당 아이는 정신과 물질이라는 낱말을 이와 기에 연관시켜 보려고 하는데, 그것이 여의치 않으니 끙끙댈 수밖에 없게 된다. 반면 정신과 물질이란 낱말에 익숙한 오늘날의 학생들은 이와 기를 정신과 물질이란 낱말로 아무리 해석해보려 해도 되지 않으니, 그저 머리가 띵하고 졸음이 올 뿐이다.

여기에서 철학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서양의 철학과 문화의 세례를 받으며 자랐다. 학교에서는 서양에서 공부했거나 서양에서 공부한 사람들에게 교육받은 선생님들에게 교육을 받는다.

판소리는 명절날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편성되는 것조차 이제는 사라질 정도로 듣기 어렵지만, 팝송이나 대중가요는 사시사철 들으며 살고 있다. 서양의 유명 화가의 그림은 비싼 돈 내고 줄을 서가면서까지 보지만, 한국의 옛 화가들의 그림은 국립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다.

이렇듯 우리는 서양의 것, 서양의 철학과 문화에 젖으며 살아 왔고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익숙한 서양 철학의 관점으로 한국 철학을 보려니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 조상님들의 말씀이지만 딴 나라 사람들 얘기처럼 느껴진다. 1백여 년 전 개화파가 ‘문명개화’를 내걸고 서양에서 배우자 하였는데, 그 결과가 오늘날 이렇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기의 관계가 중요

이기론과 관련하여 가장 많은 질문이 "기(氣)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기란 물질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그 질문의 핵심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에서는 기를 물질로 해석한다. 중국에서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이후 나온 ‘공식적인’ 중국철학사는 그러한 입장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북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조선의 철학사를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이란 시각에서 기를 물질로 규정하고 기일원론을 유물론이라 하고 있다. 그런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기와 물질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기일원론을 불철저한 유물론이라고 단서를 붙여놓는다.

그런데 기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큰 의미가 없다. 철학적으로 볼 때, 기는 이(理)와의 관계 속에서 문제가 된다. 조선에서 성리학을 둘러싼 가장 중요한 철학적 논쟁은 이기이원론과 기일원론 사이에서 진행된 것이었다. 즉 이와 기의 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서경덕과 이황의 논쟁을 예로 들어보자.

서경덕은 <이기설>에서 "바깥이 없는 것을 태허(太虛)라 하고, 처음이 없는 것을 기(氣)라 하니 허는 바로 기이다"라고 하였다. 대중가요에 나오는 가사처럼 끝도 시작도 없는 것이 기이고, 그 기가 우주 만물의 근원이라는 얘기이다.

그런 후 "기 밖에 이(理)가 없으니 이란 것은 기의 주재(主宰)이다. 주재란 것은 밖에서 와서 이것을 주재하는 것이 아니요, 그 기의 작용이 그러한 까닭의 정당성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을 가리키어 이것을 주재라 한다"고 하였다. 이는 기 안에 있어서 그 둘은 분리할 수 없고, 또한 이는 기의 운동 원리를 가리키는 것에 불과하다는 얘기이다.

이황은 <비이기위일물변증>에서 서경덕의 주장을 비판하여 이와 기는 결코 같은 것일 수 없다고 하였다. "공자와 주자가 음양(=기)은 태극(=이)이 낳은 것이라고 밝게 말하였는데, 만일 이와 기가 본래 하나라고 한다면 태극이 곧 양의(음과 양)이니, 어찌 태극이 음양을 낳는다 할 수 있는가" 이와 기는 별개의 것이고 이가 기를 낳으니 본원적인 것이란 얘기이다.

그는 이는 도(道), 성(性, 본성)이라고 말하며, "기는 있지 않아도 성이 먼저 있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비록 물(物)은 있지 않으나 이미 물의 이치는 있는 것이다"라고 하여 이가 먼저 존재함을 말하였다.

   
  ▲ 왼쪽부터 이황, 이이, 홍대용

서경덕과 이황의 입장이 너무도 분명하여 그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서경덕이 이는 기 안에 있는 것이라고 한 반면에 이황은 이와 기는 엄격히 구분된다고 하고 있다. 기는 현실의 세계이다. 그래서 이는 현실 세계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설명되지 않는다. 이황처럼 공자, 주자 등 성현들의 말을 인용하여 그 뜻에 맞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얘기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황은 학문을 하는 올바른 태도를 ‘경(敬)’이라 하였다. 성현의 말씀을 존중하고 존경하여 받들고 받아들여 따라야 한다는 얘기이다. 현실 세계에 대한 비판의식은 실종되고 만다. 이이는 이황의 주장이 과도하다 판단하여 현실 세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 역시 이와 기를 구분하고 이의 우위성을 주장함으로써 이기이원론의 틀 내에 머물렀다.

관념론과 유물론의 대립이 아니다

현실 세계 내에서는 온갖 대립과 갈등이 생겨난다.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또한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중요하게 된다. 이기이원론과 기일원론 역시 그런 문제들을 주장의 핵심으로 한다. 따라서 그것들을 공리공론이라고 치부해버리는 태도는 옳지 않다. 동서양을 막론하여 모든 철학은 바로 이 문제에 매달리어 온 것 아닌가.

이기이원론은 이와 기를 구분하여 이는 선(善)이고 기는 선과 악이 섞여 있는 것으로 본다. 기가 악하더라도 이가 있음으로 혼란을 막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인간의 본성과 관련해서 타고난 본성을 ‘기질지성’이라 하고 본래의 본성을 ‘본연지성’이라 하였다. 앞의 것이 기이고 뒤의 것이 이이다. 인간은 기질지성을 넘어서서 본연지성으로 되돌아가야 인간다울 수 있다고 하였다.

사회적 갈등과 대립은 혼란이고 악이다. 이런 혼란은 인간이 타고난 ‘기질’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인간이 ‘본연’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임금도 인간이므로 예외일 수 없다. 그렇게 하여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자신의 위치와 처지에 맞게 도덕적인 삶을 삶으로써 조화롭고 평화로운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흘러간 레코드에서 나오는 소리처럼 들리는가. 오늘날에도 너무나 자주 듣게 되는 얘기이다. 집회와 시위가 일어나면 즉각 사회혼란으로 규정된다. 집회 참여자들을 설득하는 논리는 무엇인가. 잘못된 선동에 귀 기울이지 말고 즉각 자신의 생업으로,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집회가 해산되면 사회혼란이란 악은 제거되고 조화롭고 평화스러운 선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집회가 왜 일어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빨리 집회가 해산되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기일원론은 이와 기를 구분하지 않는다. 이는 기의 원리일 따름이고, 존재하는 것은 일체 기일뿐이다. 인간이 타고난 기질을 넘어서서 존재하는 본연이란 없다. 매일매일 살아가는 삶의 현장을 떠난 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홍대용은 도덕을 사람만이 가진 것이라는 생각에 반대하였다. 동물도 나름대로의 도덕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긴다고 보았다. 박지원은 동물이 자신의 삶을 누릴 뿐이지 사람처럼 다른 생명체를 해치지 않으니 오히려 사람보다 선하다고까지 하였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삶을 누리는 것이 선이다. 따라서 삶을 해치는 것이 악이다. 삶을 해치는 일은 동물보다 사람이 더 많이 한다. 사람 중에서는 가진 자들이 더 많이 한다. 이것이 현실 세계의 모습이 아닌가.

사회적 갈등과 대립이 일어난다면 어느 쪽을 더 꾸짖어야 하는지 자명한 일이다. 상대적 관점에서 현실을 보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가,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미생물이든 자신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기일원론의 입장인 것이다.

이쯤 되면 이기이원론과 기일원론의 대립이 관념론과 유물론의 대립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기이원론은 이와 기를 구분하고 이를 우월한 것으로 보는 차별적 세계관이다. 기일원론은 이런 구분을 부정하는 평등의 세계관이다. 이기이원론이 현실 세계의 바깥에 존재하는 근본 이치인 이를 탐구하고자 한다면, 기일원론은 기가 운동하고 있는 현실 세계에 대한 탐구를 통해 근본 이치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다.

관념론과 유물론의 논쟁처럼 관념이 먼저냐 물질이 먼저냐를 다투는 논쟁은 근본적으로 이원론을 넘어설 수 없다. 이기이원론이 이라는 우월적인 것을 설정하듯이, 관념론이든 유물론이든 우월적인 것을 설정한다. 그것과 반대쪽에 있는 것은 약하게 말하면 부차적인 것이고, 세게 말하면 악한 것이 된다.

기일원론은 정신과 물질이 모두 기라고 말한다. 어느 것이 먼저냐 하는 구분은 의미가 없다. 기는 물질이면서 물질이 아니다. 따라서 기를 물질이라 생각하게 되면 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이원론을 넘어서고자 했던 기일원론 자체를 파괴하게 되는 것이다.

기일원론이 한국의 철학이다

기일원론의 핵심은 우주 만물의 생성과 변화의 원리를 밝히려는 것이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기가 모여서 생겨나고 기가 흩어지면 사라진다.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것은 외부의 어떤 힘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기 스스로의 운동이다. 최한기는 이런 우주 만물의 원리를 가리켜 유행지리(流行之理)라고 하였다.

그러면 기가 어떻게 스스로 운동을 하는가. 서경덕은 수학을 공부한 사람답게 숫자를 들어 설명한다. <원이기>에서 "이미 일기(一氣)라 했으니 1은 절로 2를 포함하고, 이미 태일(太一)이라 했으니 1은 바로 2를 포함한다. 1은 2를 생(生)하지 않을 수 없고, 2는 저절로 생하고 극(克)한다"라고 하였다.

하나인 기는 음기와 양기라는 두 개의 기를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1은 2를 생하지 않을 수 없다. 음기와 양기의 운동에 의해 사물이 생겨나는 것이니, 2는 저절로 생한다. 사물이 생겨나는 것은 음기와 양기의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는 것이니, 2는 저절로 극한다. 따라서 "2는 저절로 생하고 극한다."

사물이 생겨난다는 것은 조화가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그것은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면서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생은 극이고 극은 생이다. 서경덕은 이를 두고 "생하면 극하고 극하면 생한다"고 말한다.

조화와 갈등은 일상생활에서 항상 일어나는 일이다. 조화에서 갈등이 생겨나고 갈등을 극복하여 조화가 이루어진다. 조화와 갈등은 현실세계의 자연스런 모습일 뿐이다.

우리가 자주 듣고 있는 ‘상생’이란 말을 예로 들어보자. 상생과 대비되는 말은 상극이다. 상생은 조화를 말하고 상극은 갈등을 말한다. 상생과 상극은 현실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모습들이다. 상생이 상극이 되고, 또 상극이 상생이 된다.

그런데 상생은 좋은 것이라 칭송되고 상극은 나쁜 것이라고 배척된다. 이기이원론적 사고방식이다. 상생은 이(理)이어서 선이지만, 상극은 기(氣)인데 악한 것임으로 부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기이원론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알 수 있다.

1백여 년 전 성리학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지만, 이기이원론에 입각한 사고는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통의 철학을 폐기하고 서양철학을 들여와 근대 사상을 이루고자 했던 시도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기일원론은 한국의 철학이다. 그것 역시 중국에서 들여온 것 아니냐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중국에서도 기일원론이 존재하였다. 북송 시대의 철학자인 장재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서경덕은 장재에 대해 "꼬투리만 내고 발명(發明)하지 않았다"며 불철저함을 비판하였다.

장재 이후 명나라가 멸망하는 시기를 전후하여 왕부지가 나와 기일원론이 부활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 기일원론은 중국 철학에서 사라졌다. 서양철학의 영향을 받아 기는 물질이란 개념으로 대체되었다. 서양철학을 기로 포괄하려 하지 않고, 물질 개념을 도입하여 기를 폐기하였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기일원론은 ‘수입품’이 아니라 독자적인 발전을 해온 것이다. 고려 시대 이규보가 ‘물자생자화(物自生自化)’, 즉 물은 스스로 생겨나 스스로 변화한다는 원리를 제시하여 기일원론의 길을 열었다. 이후 물을 기(器)라고 하다가, 성리학이 도입되면서 용어를 빌려와 기(氣)라고 명명하게 되었다.

조선 시대에 들어 김시습은 귀신에 대해 말하면서 "기가 모여 사람이 되고, 사람이 죽으면 다시 기로 흩어진다"고 하여 기의 운동을 제시하였다. 서경덕은 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기이고, 이란 기 안에 있는 원리에 불과하다고 하여 이와 기의 관계를 명확하게 하였다.

조선 후기에 임성주, 홍대용, 박지원이 등장하여 인간과 동물의 본성에 대해 논하면서, 순수한 선(善)은 인간에게만, 그것도 성인에게만 있다는 이기이원론의 인성론을 뒤집었다. 선은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있다고 하여 상대적 관점을 확립하고, 삶을 누리는 것이 선이라고 하였다.

최한기는 그 이전의 기일원론을 종합하고, 그것에 입각한 자신의 학문을 기학(氣學)이라 정의하였다. 그는 서양의 철학과 과학의 내용을 기 개념으로 수용하면서, 확고한 인식론의 체계를 세웠다. 그것은 현재 밝혀진 것을 바탕으로 하여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을 밝혀나가는 과정을 제시한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그는 기일원론을 발전시켜 근대사상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었다.

<한국의 철학자들> 연재를 시작하면서 제기했던 의문에 대한 답을 내려야 할 때이다. 한국철학은 존재하는가. 물론 존재한다. 기일원론이 한국의 철학이다. 문명개화를 하자며 전통과 단절을 시도했을 때, 단절된 것은 기일원론뿐이었다. 이기이원론은 특히 지배세력에 의해 끊임없이 재생산되면서 오늘날에도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되고 있다. 전통을 단절하고 서양 사상을 배우자고 했던 주장이 받아든 성적표는 오늘날 너무나 초라할 뿐이다.

지금까지 본 연재를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그동안 많은 분들께서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 중에서 철학과 연관된 부분만 모아 필자의 생각을 밝히는 글을 마무리 글로 하였다. 역사적 사실에 관한 것은 기회가 되면 보완을 할 예정이다.

글을 쓰는 과정은 또한 공부를 하는 과정이다. 본 연재를 하면서 또 한 번 한국의 철학에 대해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지금까지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오류가 참 많았기에 부끄러운 마음이다.

어디선가 철학을 문학처럼 하라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누구나 소설은 쉽게 읽는다. 그러나 철학책만 잡으면 한 쪽도 넘기기 어렵다고 한다. 철학책도 소설처럼 읽어버리자. 읽다 보면 눈에 띄는 것이 있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쓴 글을 사람이 못 읽겠는가? 그렇게 하여 철학, 특히 한국철학을 조금 더 가깝게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슬람 철학 메모

Posted by 히키신
2017. 3. 7. 20:59 etc

이슬람 철학 메모


- 9세기경 홍해 기준으로 동아리비아 서이라비아 철학 발달. 영토 확장되가며 그리스 철학(아리스토텔레스플라톤)이 유입되 들어옴.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하루5번 기도시 정확한 발음으로 꾸란을 암송하여야 하며 꾸란 전체를 암기하는 자를 하피즈(Hafiz)하고 한다.


*코란(꾸란) : 예언자 무하마드가 610년 이후 23년간 알라에게 받은 계시를 구전으로 전하다가 그의 제자들에 의해 여러 시대를 거쳐 기록된 기록물을 집대성한 책주석서는 타프씨르(Tafsir)로 불리고 가장 먼저 사용되는 것은 코란 그 자체의 다른 구절이고두번째로는 하디스 이며마지막으로는 사하바(무하마드의 교우)의 전승이다. 이즈마끼야스,하디스(마호메트[무하마드]가 말하고(quul) 행동하고(fi'ul) 다른사람의 행위를 묵인한(taqreer) 내용을 기록한 책

총 4가지가 샤리아(이슬람 법)의 4대 원천이다.


동방 철학(연대순 기술)

- 킨디(신플라톤주의) 9세기경 이븐 자카리야 리즈, 파라비,  *이븐 시나(아비 센나), 가잘리


서방 철학(12-13세기경)

- 이븐 밧쟈(아베파케), 이븐 트파일, *이븐 루시드(아베로에스)


현대

조명학파

초월론적 신지학 : 17세기 못라 새들러 본질주의로부터 실존주의에의 대전환

수피파 – 이븐 아라비

전통주의파


수피파(아랍어تصوّف - taawwuf, 페르시아어صوفیگری sufigari, 터키어: tasavvuf, 우르두어تصوف또는 수피즘(Sufism)은 이슬람교의 신비주의적 분파이다수피즘은 전통적인 교리 학습이나 율법이 아니라 현실적인 방법을 통해 신과 합일되는 것을 최상의 가치로 여긴다수피즘의 유일한 목적은 신과 하나가 되는 것으로 이를 위해 춤과 노래로 구성된 독자적인 의식을 갖고 있었다.


어원

수피는 아랍어의 양모를 뜻하는 어근 수프صوف ṣūf)에서 파생된 말이다수피즘의 초기 수도승들은 금욕과 청빈을 상징하는 하얀 양모로 짠 옷을 입었기 때문에 수피라 불렸다.


교리

나는 내가 사랑하는 존재가 되었고내가 사랑하는 존재는 내가 되었다우리는 하나의 육신에 녹아든 두 정신이다” 

  

— 알할라지이브라힘 할아버지와 코란에 핀 꽃 97

 

“ 뱀이 그 껍질을 벗어버리는 것과 같이나는 나라는 껍질을 벗어버렸다그리고 나는 나 자신을 꿰뜷어 보았다그랬더니 나는 그였다” 

  

— 바스타미꾸란의 지혜

 

수피즘은 이슬람의 전통적인 율법은 존중하되일체의 형식은 배격한다신도의 내면적 각성과 코란의 신비주의적 해석을 강조하며금욕청빈명상 등을 중요하게 여긴다또한정신적인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지성보다 체험이 중요하다 여긴다수피즘은 신과의 합일을 위해 진정한 자아를 찾는 것을 수행의 목표로 한다.


수피들은 예수를 특히 존중했는데수피즘은 예수를 사랑의 복음을 설교한 이상적인 수피로 보았다.


수피즘은 숨을 깊이 그리고 리듬에 맞추어 쉬는 동안 정신력을 집중하는 법을 배운다그들은 금식하고 철야하며 신의 여러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고 찬양한다빙글 빙글 돌며 춤을 추는 이러한 과정을 세마의식이라고 하며 이 과정에서 수피들은 때때로 황홀경에 빠져들기도 한다.


역사

이슬람 초기부터 존재하던 신비주의 경향은 수피들의 출현으로 하나의 분파를 이루었으며 9세기경 절정에 달했다.


수피즘의 교단은 타리카라 부른다타리카는 원래 도()를 뜻하는 말이었으나 수피즘에서는 수행의 도정(道程)을 뜻하는 말로 사용하였고 나중에는 교단을 뜻하게 되었다아바스 왕조 시기인 12세기에 창설된 카디리 교단이 실질적인 최초의 수피즘 교단으로 알려져 있다카디리 교단은 개조 알카디르 알질라니가 창립하여 그 자손이 교단의 지도자를 세습하였으며 15세기 경 이슬람 전역에 걸친 교단으로 성장했다. 13세기에 여러 타리카가 속속 등장하였으며 15세기 - 18세기에 성자 숭배민간 신앙의 도입 등으로 더욱 다양해졌다.


오늘날에도 수피즘은 전 세계에 퍼져 있으며 국제 수피즘 협회등을 통해 교류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수피즘]


Islam 神秘主義(Sufism) 수피즘(타사우프)는 이슬람 그 자체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 말과그리스도교나 그리스·이란·인도 등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하는 말도 있으며그 쌍방에 의한 것이라고 하는 말도 있다그리스도교의 금욕 고행의 수도승을 의미한다고 생각되는 말이 <코란>중에 보이고 있으므로그 영향이 일찍부터 있었다고 하는 경향도 있다금욕주의의 독신가(篤信家)로서 우선 역사에 기록된 사람은 바스라의 하산 알바스리(728 사망)와 여성으로는 라비아 알 아다위야(801 사망)등이 있다이들은 다함께 수피즘의 선구자로 인정되고 있다후자는 처음에 사막에서 정진생활(精進生活)을 하고 있었으나후에 바스라에 거주하며 여러 가지의 기적을 일으켰다고 한다이슬람의 고행자를 수피(값싼 양모직의 寬衣를 입었기 때문이라 한다.)라고 부르게 된 것은 8세기 중엽부터이다그들은 대접이나 사발 등을 가지고 탁발(托鉢여행을 계속하면서 불교도(佛敎徒)의 염불에 비유할 만한 데이클을 부르며 걸어다녔던 것이다수피즘의 이론을 처음으로 정리한 사람은 9세기의 알 무하시비(857 사망)라고 한다그의 제자에 아츠·쥬나이드(910 사망)라고 하는 영걸이 나왔다또 알 하라쥬(922 사망)는 수피의 대사(大師)들 중에서 가장 걸출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으나바그다드에서 형을 받아 죽었다그는 이란의 농촌에서 출생했으며 쥬나이드의 제자중의 한 사람이다특히 "나는 진리(眞理이다"라고 하는 그 말은 알라와 융합하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하는 수피즘의 이상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여 이름이 높다또한 에스파냐의 이븐 아라비(1240 사망)라든가 이집트의 이븐 알 파리드(1235 사망등의 이름도 거론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요컨대 수피즘에서는 명상(瞑想망아(忘我등의 수양에 의하여 오로지 알라를 사랑함으로써 마침내 그것과 융합한다고 하는 법열(法悅)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이상으로 하고 있다그렇기 위해서는 무욕(無欲무사(無私)의 생활이 필요하다고 한다이런 점에서 나중에는 많은 승단(僧團)을 만들어 속세(俗世)를 떠난 생활을 보내는 것이 보통으로 되었다.

[위키문헌-글로벌대백과사전수피즘]


*참고 싸이트

http://www.qura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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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에 대한 여러 관점들

Posted by 히키신
2017. 3. 7. 20:56 etc

1. 유신론(有神論)


  인격신(人格神)론이라고도 하는 유신론은 말 그대로 신()이 존재한다는 사상입니다또한 그렇게 존재하는 신이 우주에 대해 초월적으로 존재하며 늘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인격적인 신이라는 것이 핵심입니다여기서 인격은 신을 논하는 데 있어 면밀히 인식해야할 중요한 개념으로 자기 결정적이고 자율적 의지를 가진 개인을 의미하는데유신론의 개념에서 신은 이성과 의지를 가진 그러한 인격으로서 초월적인 힘을 시공간 전체에 걸쳐 미치고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입니다그래서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 인간은 신에 대해 일방적인 의존관계가 되며 신은 늘 인간 위에 위치하게 됩니다.  

  유신론은 신의 존재를 아예 부정하는 무신론과 대립하며자연이 곧 신이라는 범신론(汎神論)과도 대립합니다신의 존재를 인정하되 신이 인격적 존재로서 숭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이신론과 구별되며 과학적 세계관과도 대립합니다또한 신은 존재하되 인간이 알 수 없는 존재라는 불가지론은 유신론과 무신론 모두를 부정합니다

 한편유신론에서 신의 인격적인 특성은 인간이 전지전능한 신의 존재를 자신의 의식 속에  투영시켜 표상화한 결과이기도 합니다즉 초월적이며 전지전능한 존재를 인간의 이미지를 통해 드러내면서 신의 존재가 인격화되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물론 인격신에서의 신은 인간과 같은 존재는 아니지만 인간적인 이미지를 통해 확대된 개념이라고 이해해볼 수 있는 것입니다.    

  

2. 이신론(理神論)


  자연신교(自然神敎)라고도 하는 이신론은 신을 우주 저 멀리에 초월해 있는 인격적인 것에서 찾지 않고 이성(理性)과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우리 곁에 펼쳐져 있는 자연(自然속에서 찾고자 하는 이론입니다이것은 17~18세기 계몽주의 시기에 발생한 신관으로 전지전능하며 우주 초월적인 존재로서의 신과 신의 세계 창조를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유신론과 비슷하지만 그 신이 인격신이 아니며 이성적이며 과학적인 사유로써 파악할 수 있는 비물질적이며 추상(抽象)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다릅니다무엇보다 이신론에서의 신은 세계 창조 후 더 이상 자신이 펼쳐놓은 세계에 관여하지 않는 존재이기도 합니다유신론과 이신론의 이와 같은 차이에 대해 칸트(I. Kant)는 그의 순수이성비판에서 이신론자는 한 하나님을 믿으나유신론자는 한 살아 있는 하나님(최고예지)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이신론의 이와 같은 특성은 계몽주의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계몽주의의 이념은 중세의 신적 권위와 광신적 신앙을 멀리하여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신에게 의지하기보다는 각 개인이 평등 가운데 존중되고 인간이 자신의 이성을 발휘하여 자유와 주체성을 회복하는 데 있습니다그래서 과학적이며 합리적인 사유로써 스스로 삶을 개척해나가고자 함에 따라 신관에 있어서도 자연히 신은 세계를 창조만 했을 뿐 인간과 세계 위에서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하는 존재가 아니게 되었습니다따라서 중세적 교회의 가르침을 인정하지 않아 삼위일체나 계시기적 등과 같은 비합리적인 것을 부정하고 성서를 합리적이며 비판적으로 연구하고자 함으로써 이론적이며 과학적인 방식의 신 해명을 추구했습니다그런 면에서 헤겔은 종교철학에서 이신론을 지성적 종교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3. 범신론(汎神論)


 범신론에서 정의하는 신은 곧 우주 만물입니다유신론과 이신론에서처럼 신이 인격적이거나 세계를 초월한 곳에 따로 존재해 있지 않습니다세계와 신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신이 현실 속에 드러난 모습이 바로 우주 만물인 것입니다다시 말해만물 하나하나가 신이 자신의 모습을 펼쳐 보인 결과입니다이러한 범신론의 이론에서 신과 만물은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가 아닌 존재와 그 존재 스스로의 드러난 모습의 관계가 됩니다그렇게 되면 신과 만물에게는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의 상대적 위계 관계가 없어지며따라서 창조자로서의 인격적 신도 생각할 수 없게 됩니다오로지 신은 만물 위에 군림하는 존재도 아니며 그저 만물 전체이며 만물 스스로인 것입니다

  그래서 존재간의 위계가 수평화 되는 범신론은 유신론자들로부터 극단적인 무신론이라고 비난받으며 대립하게 됩니다이것은 한편으로 순수하게 종교적인 측면보다는 사회정치적인 면에서 이해해볼 필요가 있습니다역사적으로 서양 중세의 봉건제에서 교황은 최고의 권력자였는데그 권력을 근거하고 있던 것이 유신론적 정통 신학이었습니다범신론은 그 신학즉 그 권력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이론으로 당시 봉건제에 대항한 사회세력이 정통 신학의 이론을 새롭게 해석하는 과정에서 범신론을 내세웠던 것입니다당시 신의 대변자로서의 교회 권력에 대한 반발로 교회를 통하지 않고 바로 신과 통하려던 민중의 입장이기도 합니다범신론적 사상은 이미 고대 그리스나 인도에서 오래 전에 발전된 사상이었고 르네상스기의 그와 같은 사회 정치적인 상황에서 피지배계급의 입장 속에서 발현된 것입니다이것은 계몽주의 시기의 이신론의 배경과도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4. 범재신론 범재신론(panentheism)은 세계가 신에게 포함되나신이 세계 그 자체는 아닌 것을 말한다. (만유내재신론세계내재신론범재신론이라고도 한다.)


만유재신론에서 신은 인격적 존재로서 우주 만물을 포괄하고 있으며 또한 만물에 내재하고 있습니다그와 동시에 우주 만물에 초월해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신은 세계에 내재하면서도 세계보다 더 크고 위에 있는 존재라는 것인데이렇듯 만유재신론은 범신론과 유신론의 모순되는 특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한꺼번에 종합하려고 한 이론입니다.


5. 범이신론


범이신론(pandeism)은 이신론에 대한 '왜 신은 세계를 만들고 방관하는가.' 하는 질문과범신론에 대한 '세계가 왜 만들어졌는가.' 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범이신론에 따르면세계는 곧 신이므로신이 스스로 존재하게 되면서 신과 동일한 세계도 동시에 만들어진 것을 의미한다.


6. 불가지론


불가지론(不可知論, Agnosticism)은 몇몇 명제(대부분 신의 존재에 대한 신학적 명제)의 진위 여부를 알 수 없다고 보는 철학적 관점또는 사물의 본질은 인간에게 있어서 인식 불가능하다는 철학적 관점이다.[1] 이 관점은 철학적 의심이 바탕이 되어 성립되었다절대적 진실은 부정확하다는 관점을 취한다불가지론의 원래의 의미는 절대적이며 완벽한 진실이 존재한다는 관점을 갖고 있는 교조주의(敎條主義)의 반대 개념이다.


불가지론자들 중 사물의 본질은 인간에게 있어서 인식 불가능하다는 철학적 입장에 있는 이들은 인간이 감각을 통해서 인식하는 것은 사물의 본질이 아니라 본질의 거짓 모습인 현상에 불과하다고 본다.[1] 이 경우 본질적 실재는 완전히 불가지(不可知)라는 흄의 설과그것은 신앙의 영역에 관한 문제라 하여 남겨 놓는 칸트의 설도 있다감각이나 표상은 본질적 실재가 자기를 인간에게 제시하기 위한 상형문자(象形文字), 혹은 기호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프레하노프 등의 상형문자설도 불가지론의 일종이다


어원

서양 제어에서 불가지론은 언어별로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Agnosti-'와 주의를 나타내는 어미로 이뤄져 있다예를 들면 영어에서 Agnosticism이고 프랑스어에서는 Agnosti"cisme"이라고 사용한다이는 그리스어 αγνωστικισμός(Agnosticismos)에서 나온 단어이고이 단어 역시 '모르는'이란 뜻의 그리스어 agnôstos와 "앎 혹은 지식"이란 뜻의 gnosis, 두 개가 합쳐져서 나왔다여기서 앎 혹은 지식이란 단순히 사전적 의미의 앎이 아니라 영지주의(gnosticism)에서 말하는 지식 (gnosis)을 말한다.[2]


불가지론은 자주 형이상학계시예언 등의 적절성에 자주 문제 제기를 하는 인식론적 입장을 취한다. Agnosticismos이란 단어는 토머스 헉슬리가 사용하면서 유명해졌다.


오해

불가지론은 종종 철학의 다른 개념과 연관 혹은 결합하여 잘못 사용되기도 한다예를 들면 불가지론은 무신론(無神論)과는 다르게 신의 존재를 논하지 않는다다만 우리에게 소개되어 있는 신()의 존재나 초자연적 현상의 가능성에 대해서 논한다그리고 모든 것이 불분명함 아래에 있다는 회의주의와도 구분이 된다또한 불가지론은 설명할 수 없는 한 명의 절대자가 있다고 가정하는 이신론(理神論)과도 다르다.[3] 결국 불가지론은 철학적 관점이지 종교 자체는 아니다.


*러셀의 찻주전자

러셀의 찻주전자 또는 우주의 찻주전자는 버트런드 러셀이 기독교와 불가지론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한 유추이다러셀의 찻주전자는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글의 일부에서 등장하는 것이다이 글은 1952년 Illustrated지에서 청탁한 것이지만 출판하지는 않았다.

 

만일 내가 지구와 화성 사이에 도자기 찻주전자 하나가 타원 궤도로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고 주장하고 이 찻주전자는 너무나 작아서 가장 좋은 망원경으로도 볼 수 없다고 덧붙인다면 아무도 내 주장을 반증하지 못할 것이다하지만 아무도 내 주장을 반박할 수 없기에내가 이를 의심 하는 것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억측이라고 주장한다면모두들 당연히 내가 헛소리 하는 것이라 여길 것이다하지만 만약 이 찻주전자가 존재한다는 것이 고대의 책에도 나오고 일요일마다 신성한 진리로 가르치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주입한다면이 존재를 믿기 망설이는 것은 기행의 표식이 되고 이를 의심하는 자들은 현대의 정신과 의사나 옛날의 이단 재판관의 관심 대상이 될 것이다.

 

If I were to suggest that between the Earth and Mars there is a china teapot revolving about the sun in an elliptical orbit, nobody would be 

able to disprove my assertion provided I were careful to add that the teapot is too small to be revealed even by our most powerful telescopes. 

But if I were to go on to say that, since my assertion cannot be disproved, it is an intolerable presumption on the part of human reason to 

doubt it, I should rightly be thought to be talking nonsense. If, however, the existence of such a teapot were affirmed in ancient books, 

taught as the sacred truth every Sunday, and instilled into the minds of children at school, hesitation to believe in its existence would become 

a mark of eccentricity and entitle the doubter to the attentions of the psychiatrist in an enlightened age or of the Inquisitor in an earlier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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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역설들(paradox)

Posted by 히키신
2017. 3. 7. 20:52 etc

역설(paradox)


(every), (some), (and), (or), (not), (if-then)


1.러셀의 역설

러셀의 역설(Russell's paradox)은 수학자 버트런드 러셀이 1901년 발견한 논리적 역설로 프레게의 논리체계와 칸토어의 소박한 집합론(naïve set theory)이 모순을 지닌다는 것을 보여준 예이다.

 

그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M이라는 집합을 "자신을 원소로 포함하지 않는 모든 집합들의 집합"으로 정의하자다시 말해, A가 M의 원소가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A가 A의 원소가 아닌 것으로 한다.

 

칸토어의 공리체계에서 위와 같은 정의로 집합 M은 문제없이 잘 정의된다여기서 M이 자기 자신을 원소로 포함하는가?란 질문을 던져본다만약 포함한다고 가정하면 그 정의에 의해 M은 자신을 원소로 포함하지 않는다반대로 M이 자신을 원소로 포함하지 않는다고 가정했을 때에는 다시 그 정의에 의해 M은 자신에 포함되어야 한다즉 "M은 M의 원소이다"라는 명제와 "M은 M의 원소가 아니다"라는 명제는 둘 다 모순을 도출하여 맞다 혹은 그르다 중에 어떤 답으로 답할 수 없다.

 

프레게의 공리체계에서 M은 "자신을 정의하는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다(not fall under its defining concept)"라는 개념(concept)에 해당한다따라서프레게의 체계 역시 모순을 낳는다.


 -유사 개념


논리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게 러셀 자신이 그의 역설을 예로 설명한 것이 세비야의 이발사 이야기이다.

 

만약 세비야에 스스로 이발을 하지 않는 모든 이의 이발만을 해주는 이발사가 있다고 하자이 이발사는 이발을 스스로 해야 할까만약 스스로 이발을 하지 않는다면그 전제에 의해 자신이 자신을 이발시켜야 하고역으로 스스로 이발을 한다면자신이 자신을 이발시켜서는 안 된다이는 바로 러셀의 역설과 동일한 문제에 걸리는 것이다.


거짓말쟁이의 역설(Liar Paradox)는 이 말은 거짓이다라는 말이다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자기모순적인 말들이 있다.

 나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이 문장은 거짓이다.

 

이 말들은 자기모순적인데그 이유는 정확히 참 또는 거짓으로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거짓이다'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만약 이 문장이 참이라면문장 내용에 의해 이 문장은 거짓이어야 한다반대로 이 문장이 거짓이라면역시 문장 내용에 의해 이 문장은 반드시 참이 되어야 한다.

 

거짓말쟁이의 역설은 다음처럼 하나의 문장이 아닌여러 개의 문장으로 구성할 수도 있다.

 이 다음 문장은 참이다이 앞의 문장은 거짓이다.


현재 알려진 거짓말쟁이의 역설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4세기에 살았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우불리데스(Eubulides)의 역설이다에우불리데스가 에피메니데스의 글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에우불리데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한 남자가 자기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그가 말한 것은 참인가아니면 거짓인가?


알프레트 타르스키는 스스로를 다시 참조하지 않는 문장들도 조합할 경우 스스로를 다시 참조하면서 역설적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논하였다이러한 조합의 한 예는 다음과 같다.

 1.2번 문장은 참이다.

 2.1번 문장은 거짓이다.

 

그는 이러한 '거짓말쟁이의 순환(liar cycle)' 문제를 하나의 문장이 다른 문장의 참/거짓을 참조할 때의미상 더 높도록 하여 해결하였다참조되는 문장은 '대상 언어(object language)'의 일부가 되며참조하는 문장은 목표 언어에 대한 '메타 언어(meta-language)'의 한 일부로 간주된다의미 계층(semantic hierarchy)의 더 높은 '언어들(languages)'에 있는 문장들은 '언어(language)' 계층에 있는 낮은 순위의 문장들을 참고해야 하며순서를 거꾸로 바꾸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이것은 시스템이 자기 참조가 되는 것을 막는다.


2. 비모순율

비모순율 또는 무모순성의 원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에서, 'A이다'와 'A는 아니다'라는 것은 동시에 성립할 수 없다 또는 참이면서 동시에 거짓인 명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원리를 일컫는 논리학 용어이다.

 

보다 수학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P∧┐P).


3.무어의 역설

무어의 역설(Moore's paradox)은 조지 에드워드 무어에 의해 만들어진 역설로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이 역설은 지식과 믿음에 관한 역설로다음과 같은 두 가지 형태 중 하나를 갖는다.

p가 참이지만 나는 p를 믿지 않는다.

p가 참이지만 나는 not p를 믿는다.


두 명제 사이의 차이는 부정 기호가 어디에 위치하는가에 달려있다예를 들면 전자의 경우 지금 비가 오지만 나는 비가 온다고 믿지 않는다.와 같은 문장이후자의 경우 지금 비가 오지만 나는 비가 오지 않음을 믿는다.와 같은 문장이 있을 수 있다로이 소렌센(Roy Sorensen)은 전자를 omissive 후자를 commissive 형이라 명명하였다.


이 역설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해결책이 제안되었지만 아직까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해결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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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칠현인 / 참주

Posted by 히키신
2017. 3. 7. 20:50 etc

그리스 칠현인(그리스 七賢人그리스어οἱ ἑπτὰ σοφοί hoi hepta sophoi 호이 헤프타 소포이)은 기원전 620년부터 기원전 550년에 영리하다고 불린 고대 그리스의 인물들이다.


칠현인의 멤버에 대해서는 고대의 서적에 대해 가지각색이며반드시 통일되어 있지 않다, '칠현인'이지만플루타르코스는 '델포이의 Ε에 임해서'에서 본래는 다섯 명이었지만두 명의 참주가 덕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에 의해서 그 이름을 강탈했다고 주장하고 있다최초로 누가 왜 영리하다고 불렀는지는 불명하다.


플라톤이 '프로타고라스중에서 든 것은 다음과 같다.

린도스의 클레오불로스

아테나이의 솔론

스파르타의 킬론

프리에네의 비아스

밀레토스의 탈레스: '최초의 철학자'로서 유명기자의 피라미드의 높이를 비율을 사용해 구했다.

미틸레네의 피타코스

코린토스의 페리안드로스


그러나뮤손을 들고 있는 것은 플라톤만으로 대체로는 그 대신에 코린토스의 페리안드로스가 들어지고 있다이 일곱 명은 고대의 서적에 대해 가지각색이며반드시 통일되어 있지 않다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드는 곳은 25명이나 된다.


칠현인의 유명한 일화로서는 그들의 사이에 생긴 지혜 비교가 있다바다 속에 가라앉고 있고우연히 발견된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황금의 정을 둘러싸고 코스와 미레토스와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많은 사망자가 나왔기 때문에그들은 델포이로 받은 '과거현재미래를 지로 적시는 사람'에게 정이 가까스로 도착할 때까지는 양국의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는 신탁에 근거해 현자로서 유명했던 탈레스에 정을 주었지만그는 자신에게는 적격이지 않다며 다른 현자에게 양보했다결국 정은 칠현인의 사이에 대야 돌려로 되어 탈레스의 아래에 돌아왔다거기서 그는 아폴론에 봉납해신탁을 전하는 퓨티아(무녀)가 이 정에 앉고 신탁을 말하게 되었다.


참주(僭主그리스어τυραννος 튀라노스[*], 영어: tyrant)란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장악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산시킨 지배자 또는 그러한 독재 체제를 말한다.


참주는 후대에 "폭군"이라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탁월한 능력을 갖는 참주의 경우 참주정이라는 과도기가 오히려 폴리스 정치의 전진 요소였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귀족정에서 참주정으로 이행하는 시기에 해당하는 기원전 7세기에서 기원전 6세기 동안에 걸쳐 폴리스 세계는 전반적으로 체제 확립이라는 내부 충실 시대에 들어간다.


이 시기는 폴리스의 정치적 발전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참주정이 그리스 본토로 확산되고 있던 가운데 기원전 636(또는 기원전 632아테네에서는 키론이 이웃 나라(폴리스메가라의 참주 테아케네스와 공모하여 참주를 꾀어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실패한다참주정은 일단 방지되었다고는 하지만 솔론의 조정에도 불구하고 3파 정쟁 후에 이르러서는 결국 참주정을 면할 수 없었다.


그 후 기원전 508(기원전 507)에 클레이스테네스가 민주정을 선포했고 고대 그리스에서는 많은 시간 끝에 민주정을 수립한 폴리스가 증가하는 정치적 발전을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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