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강현실 / 사이버네틱스

Posted by 히키신
2017. 3. 7. 20:50 etc

증강현실


증강 현실(Augmented Reality, AR)은 가상 현실(Virtual Reality)의 한 분야로 실제 환경에 가상 사물이나 정보를 합성하여 원래의 환경에 존재하는 사물처럼 보이도록 하는 컴퓨터 그래픽 기법이다디지털 미디어에서 빈번하게 사용된다.


증강 현실은 사용자가 눈으로 보는 현실세계에 가상 물체를 겹쳐 보여주는 기술이다현실세계에 실시간으로 부가정보를 갖는 가상세계를 합쳐 하나의 영상으로 보여주므로 혼합현실(Mixed Reality, MR)이라고도 한다현실환경과 가상환경을 융합하는 복합형 가상현실 시스템(hybrid VR system)으로 1990년대 후반부터 미국·일본을 중심으로 연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현실세계를 가상세계로 보완해주는 개념인 증강현실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가상환경을 사용하지만 주역은 현실환경이다컴퓨터 그래픽은 현실환경에 필요한 정보를 추가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사용자가 보고 있는 실사 영상에 3차원 가상영상을 겹침(overlap)으로써 현실환경과 가상화면과의 구분이 모호해지도록 한다는 뜻이다.


로널드 아즈마(Ronald Azuma)의 증강 현실에 대한 정의가 그 특징을 가장 잘 설명해 주고 있다거기에서 그는 증강 현실의 목적에 대한 몇 가지 요소를 거론하는데 그것을 통해서 전체적인 증강 현실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아즈마의 정의에 따르면증강 현실 시스템이란,


현실(Real-world elements)의 이미지와 가상의 이미지를 결합한 것.

실시간으로 인터랙션(interaction)이 가능한 것.

3차원의 공간 안에 놓인 것.


으로 여겨진다이 정의들은 이제 종종 리서치 보고서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Azuma, 1997).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의 구분

1.가상현실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환경을 투정보를 디스플레이 및 렌더링 장비를 통해 사용자로 하여금 볼 수 있게 한다그리고 이미 제작된 2차원, 3차원 기반을 사용하므로 사용자가 현실감각을 느낄 수는 있지만 현실과 다른 공간 안에 몰입하게 된다.

2.증강현실 가상현실과는 달리 사용자가 현재 보고 있는 환경에 가상 정보를 부가해준다는 형태이다즉 가상현실이 현실과 접목되면서 변형된 형태 중 하나이다때문에 사용자가 실제 환경을 볼 수 있으므로 가상의 정보 객체(:기후정보버스노선도,맛집 길안내)가 현실에 있는 간판에 표시되기도 한다.


디스플레이를 통해 모든 정보를 보여준다면이는 가상현실이며음식점 간판에 외부 투영장치를 통해 현재 착석 가능한 자리 정보를 제공한다면 이는 증강현실이라 말 할 수 있겠다.


증강 현실의 역사를 기술하기 위해서는인간의 자연 세계에 대한 의미 부여의 역사를 같이 기술해야 한다.

15,000 BC : Lascaux 동굴 벽화는 어두운 동굴 속에서도 현실 세계의 의미를 덧붙이려는 "가상"의 이미지들을 보여 준다.

1849 : Richard Wagner 는 어두운 공연장 안에서의 이미지와 소리를 이용해 관객들에게 몰입의 경험을 소개했다.

1938 : Konrad Zuse는 Z1라고 불리는 첫 번째 디지털 컴퓨터를 개발했다.

1948 : 노버트 위너는 사이버네틱스라는 과학분야를 만들었다그 분야의 목적은 인간과 기계 간의 메시지 전달이다.

1962 : 영화 촬영기사였던 morton Heilig는 Sensorama라 불리는 오토바이 시뮬레이터를 개발했는데그것은 영상과소리진동 그리고 냄새까지 이용했다.

1966 : 이반 서덜랜드 는 가상 세계로 안내하는 창(Window)이 될 것이라고 제안하면서, HMD를 개발했다.

1975 : Myron Krueger는 처음으로 사용자로 하여금 가상의 물건들과 인터랙션을 가능하게 했던 Videoplace를 만들었다.

1989 : Jaron Lanier는 가상 현실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고첫 번째로 가상 세계를 이용한 수익 창출 모델을 고안했다.

1990: Tom Caudell은 보잉사가 작업자들에게 항공기의 전선을 조립하는 것을 돕기 위한 과정에서 증강 현실이란 용어를 만들었다.


사이버네틱스 (인공두뇌학)


사이버네틱스 또는 인공두뇌학은 일반적으로 생명체기계조직과 또 이들의 조합을 통해 통신과 제어를 연구하는 학문이다예를 들어사회-기술 체계에서 사이버네틱스는 오토마타와 로봇과 같은 컴퓨터로 제어된 기계에 대한 연구를 포함한다사이버네틱스라는 용어는 고대 그리스어 퀴베르네테스Κυβερνήτης (kybernetes, 키잡이조절기(governor), 또는 방향타)에서 기원한다예로부터 현재까지 이 용어는 적응계인공지능복잡계복잡성 이론제어계결정 지지 체계동역학계정보 이론학습 조직수학 체계 이론동작연구(operations research), 시뮬레이션시스템 공학으로 점점 세분화되는 분야들을 통칭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1956, 루이 쿠피냘(Louis Couffignal)이 하나의 철학적 정의로 제안한 바에 따르면 사이버네틱스는 '행위의 유효성을 보증하는 기예'로 정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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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론(game theory)

Posted by 히키신
2017. 3. 7. 20:48 etc

게임 이론(game theory) 상호 의존적인 의사 결정에 관한 이론이다게임(game)이란 효용 극대화를 추구하는 행위자들이 일정한 전략을 가지고 최고의 보상을 얻기 위해 벌이는 행위를 말한다게임 이론은 사회 과학특히 경제학에서 활용되는 응용 수학  분야이며,생물학, 정치학, 컴퓨터 공학, 철학에서도 많이 사용된다게임이론은 참가자들이 상호작용하면서 변화해가는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상호작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순간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이득이 되는지를 수학적으로 분석해 준다.

 

 이론은  개인의 전략적 상황(자신의 의사결정 의한 성공이 다른 사람의 선택에 의존적인 상황)에서의 행동을 수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처음에는 제로섬 게임(zero sum game,  개인이 다른 사람의 이익을 빼앗는 상황)에서의 경쟁을 분석하기 위해 개발되었으나지금은 다양한 조건의 광범위한 상호 작용을 다룰  있도록 확장되었다오늘날 게임이론은 사회과학의 이성적인 부분을 다루는 마치 우산처럼 드리워진 통합된 이론으로 사회라는 것을  확장하여 인간뿐 아니라 컴퓨터동식물의 상호작용(interaction)까지 포괄하고 있다. [2]

전통적인 게임이론의 응용은 게임에서의 균형점( 개체들이 자신의 행동을 바꾸지 않는 전략들의 집합) 찾는 것이다이러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많은 균형개념들이 개발되었다  내시 균형(Nash equilibrium) 가장 유명하다이런 균형개념은 중복되거나 비슷하기도 하지만적용되는 분야에 따라 상이하게 발전되어 왔다이런 방법론은 비판도 없지 않고특정 균형개념의 적절성이나 전체 균형개념들의 적절성 일반적으로는 수학 모델들의 유용성에 대한 토론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내시 균형(Nash equilibrium) 게임 이론에서 경쟁자 대응에 따라 최선의 선택을 하면 서로가 자신의 선택을 바꾸지 않는 균형상태를 말한다상대방이 현재 전략을 유지한다는 전제 하에  자신도 현재 전략을 바꿀 유인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죄수의 딜레마 게임 또는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밀접한 관계가 있다.


파레토 효율성(效率性)이란 하나의 자원배분 상태에서 다른 사람에게 손해가 가도록 하지 않고서는 어떤  사람에게 이득이 되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할   배분 상태를 파레토 효율적이라고 한다

반면에 파레토 비효율은 파레토 개선(Pareto improvement) 가능한 상태를 말한다어떤 배분상태가 파레토 비효율적이면어느 사람에게도 손해가 가지 않게 하면서 최소한  사람 이상에게 이득을 가져다주는 파레토 개선(改善) 가능해진다


파레토 효율은 최소한의 개념이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자원분배를 뜻하지 않는다이것은 사회 전체의 평등이나 복지를 말하지 않는다파레토 효율의 개념은 공학  유사분야에서 대안 선택에 적용할  있다각각의 옵션은 다수의 기준아래서 처음평가되고 다른 부분집합의 옵션은 어떤 다른옵션도 절대적으로 그것의 구성원들을 뛰어넘을수 없는 성질로써 식별된다.


사슴 사냥 게임(stag hunt game)  자크 루소의 이야기를 따서 만들어진 게임으로 안전 사회적 협력 사이의 갈등 관계를 설명하는 말이다 이야기에서는  명의 사냥꾼은 각각 토끼나 사슴을 잡을  있다 게임자는 상대편의 선택을 알지 못하고하나의 행동만 선택해야 한다만약  사람이 사슴을 잡고자 한다면그는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파트너와 협력을 해야 한다토끼는 홀로 사냥할  있지만토끼는 사슴보다 가치가 떨어진이것은 사회적 협력의 중요한 필요성을 가져오게 된다.

사슴 사냥은 게임자가 각각 협력하고각각 변절하는  개의 내시 균형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죄수의 딜레마 다르다그러나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파레토 효율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게임자가 변절할때는 하나의 내시 균형만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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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 갈무리

Posted by 히키신
2017. 3. 7. 20:47 영원의 지헤, 그리고 철학

아나키즘


정의

아나키즘(영어: anarchism /ˈænərˌkɪzəm/, 프랑스어: anarchisme 아나르시슴[*])은 모든 정치적인 조직·권력 따위를 부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이데올로기 또는 이를 전파하고 실현하려는 운동으로ἀν-()와 ἀρχός(지배자통치자)가 합성된 고대 그리스어 아나르코스(ἄναρχος)에서 비롯된 말이다무정부주의(無政府主義)라고도 불리지만대부분의 아나키스트들은 아나키즘의 본질을 왜곡할 수 있다며 이런 표현을 사용하기 꺼려한다대신에 그냥 '아나키즘또는 '자유연합주의'라는 용어를 선호한다.[1]역사에서는 고대의 공동체에서 비롯하여 갖가지 공동체나 고대의 철학사상에서도 연원을 찾아 볼 수 있으나 근대에 이르러 자본주의와 권위주의의 폐해에 대한 반발로 공산주의사회주의와 함께 발흥하였으며 페미니즘펑크 문화 등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아나키즘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장점을 포용하는 중용이념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자유주의의 분파사상으로 보기도 한다.


사상

아나키즘은 그 특징때문에 다른 사상들과 달리 정의내리기가 매우 까다롭다일반적으로 아나키즘은 사회주의적 아나키즘을 말하며이 외에도 다양한 성향이 있다아나키즘은 자본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일어난 만큼 평등을 중요하게 본다하지만 현대의 일부 아나키스트들이나 개인주의자들은 평등보다는 자유를 중요시 하기도 한다한편으로는 국가와 권력에 대한 반대로 자유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부정하기에 공산주의와 대립한다이와 같은 평등과 자유를 추구하기에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모두를 반대하고 있다. 19세기 후반에는 공산주의와 세를 다툴 만큼 세계 도처에서 큰 세력을 형성하였으나권력이 부여되는 조직 자체를 부정하는 성향으로 차츰 세력을 잃었지만혁명 운동이 일어난 어느 곳에서나 아나키즘은 자유와 평등을 외치면서 살아났다대표적인 아나키즘의 투쟁은 파리 코뮌에스파냐 내전그리고 프랑스 학생혁명이며 21세기에 들어서서는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운동에 많은 아나키스트들이 참가 하고 있다러시아에서 발흥한 니힐리즘과의 차이점은 허무주의가 구제도 모두를 부정하고 철저한 파괴를 주장하면서도새로운 사회에 대한 대안이 없었으나 이에 반해 아나키즘은 새로운 대안을 공동체 자치에서 찾았다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는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파괴나몰락후의 계획 경제를 대안으로 하였으나아나키즘은 계획 자체를 부정하고 공동체 내의 자립자치자영 경제를 대안으로 한 점에서 차이가 있다.


종류

1. 사회주의적 아나키즘

사회주의적 아나키즘혹은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는 상호호혜주의공산주의노동조합주의 등의 형태로 나타나며아나키스트 사상계중 제일 많은 세력을 보유하고아나키스트들의 주요사상으로 남아있다보통 아나키즘하면이 사회주의적 아나키즘을 의미한다사유재산의 말소와 생산수단의 공유를 주장한다사회주의적 아나키즘은 프루동에 의해 최초로 시작되었으며 후에 바쿠닌과 그의 추종자들은 제1인터내셔널에서 중요한 세력을 형성했으나 카를 마르크스와의 대립으로 바쿠닌이 국제당에서 축출된 이후 독립된 세력이 되었다사회주의적 아나키즘은 자본주의와 권위주의에 대항하며 공동체주의와 자유지상주의적 연방주의등의 형태로 사회주의와 개인주의 사이의 다리 역할로 간주된다.

 

하위분류로 다음과 같은 분파들이 존재한다.

 마르크스주의적 아나키즘

 집산주의적 아나키즘

 아나코생디칼리즘

 아나코공산주의

 룩셈부르크주의

 무장아나키즘

 후기아나키즘

 좌파아나키즘

 의회공산주의

 생디칼리즘

 프루동주의

 정강주의


2.개인주의적 아나키즘

 

자유지상주의적 아나키즘은 사유재산의 소유를 인정한다이들에 따르면 권위주의 조직은 민중의 외면 속에서혹은 투쟁의 결과로 사라져야 하는 존재이며 이것은 사회에 의해 억압받는 개인의 자유를 위한 중요한 요소로 본다국가에 대한 견제 목적으로 개인들 사이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중간적 조직들은 군대를 조직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국가적"인 조직이 되지 않는 한 올바른 것으로 본다.

 인도주의적 아나키즘

 에고이스트적 아나키즘

 자유방임적 아나키즘

 자본주의적 아나키즘

 시온주의적 아나키즘


추가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영어: Libertarian Socialism) 또는 사회주의적 무정부주의은 정치경제사회적인 계급과 폭력적강제적인 명령이 사라지고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공평하게 정보 및 생산 수단에 접근할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회주의 사상이다현재는 아나키즘의 분파사상인 개인주의적 아나키즘환경주의적 아나키즘의 구성원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구성원을 보유하고있으며아나키즘의 주류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는 권위적 명령 체계와 사유 재산제를 폐지하고 노동 계층과 사회 전체 구성원들이 생산 수단과 자원을 직접 통제함으로써목표(자유와 평등)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이 사상은 또한 정체성을 찾는 것사회 전반의 불법적인 권위에 대해 비판 의식을 가지는 것그 권위의 해체를 실천하는 것 등의 생각을 담고 있다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자는 모든 형태(경제적정치적종교적성적인 형태 등)의 관행화된 권력 행사는권력을 휘두르는 자와 영향을 받는 자들 모두를 잔인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사회주의 사상들이 국가 통제와 사회공학을 촉진하기 위해 국가나 정당의 역할을 강조하는 데에 반해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은 노동 조합노동자 의회지방자치제시민 집회기타 비관료주의적·분권적 행위 수단 등을 통해 그들의 의사를 표출할 수 있다고 본다대부분의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은 국가 체제를 자본가 계층의 보루로 인식하며이를 완전히 철폐하는 것을 지지한다또한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은 특별한 정당 활동을 하지 않으며 국제노동자협동전선과 같은 국제 노동 조합 단체 같은 국제적이고 광범위한 노동 조합 기구에서 활동을 한다.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은 아나키즘와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는 동의어가 아니라고 한다한편몇몇 학자들은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를 무정부주의와 동의어처럼 사용하고 있다또한 사회주의적 무정부주의와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 또한 묘한 차이가 있는데전자의 경우 주요 이론가는 미하일 바쿠닌과 크로포트킨이었으며후자의 주요 이론가는 노엄 촘스키라는 것이다그 외 학술적인 면에서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와 사회주의적 무정부주의의 이론적 차이는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는 고전적이냐현대적이냐를 따지지 않는 사상이며시기와 무관하게 생존권자유권재산권법을 완전히 없애지 않는한 자유주의적인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조류 사상도 포함한다는 것이다하지만사회주의적 아나키즘은 사회주의 사상이 태동하는 19세기 법군대정부를 해산시키는 것을 옹호하는 사회주의 사상이었기 때문에 그 역사가 다르다는 것이다또한 이 부분에서는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는 현대적인 좌파적 자유지상주의를 총칭하고사회주의적 아나키즘은 고전적 아나키즘(과거 무력 혁명적이고불법주의적인까지도 포함한다하지만 현대적인 사회주의적 아나키즘에서는 큰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관련 분파 사상

 

정치 철학자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사상들이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자유주의적 마르크스주의

 무정부 집산주의

 무정부 조합주의

 무정부 공산주의

 룩셈부르크주의

 무장아나키즘

 후기아나키즘

 좌파아나키즘

 의회공산주의

 생디칼리즘

 프루동주의

 정강주의

 

그 외 잡다한 아나키즘 사상들이 있다.

 

기타

 

사회주의적 아나키즘과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는 동의어처럼 쓰이긴 하나엄밀히 말해서 그 교집합의 범위만 클 뿐 전혀 다른 의미이며정작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들은 자유지상주의라는 단어를 꺼려한다고 한다주로 현실에서 자유지상주의는 우파적 자유지상주의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환경주의적 아나키즘

 

환경주의적 아나키즘은 모든 형태의 산업화 경제와 자연의 파괴를 거부하며산업화를 주장한 공산주의적 아나키스트들에도 반대한다현재 아나키즘의 세 번째 극으로 자리 잡혔으며자연으로의 회귀를 주장한다산업화와 기술의 지배를 거부하며 원시적 사회로의 회귀를 주장하기도 한다.

 원시주의적 아나키즘

 녹색아나키즘

 사회생태주의

 채식아나키즘


결론

아나키즘의 배경이 되는 철학의 다양성은 아나키즘 내의 다양한 흐름의 존재에서 드러나며이 때문에 동일한 목적을 가진 아나키스트들이라고 해도 그 강령적인 부분에서 서로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하나의 통일된 운동을 형성하지는 못한다.


참고자료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AIE0&articleno=12935559

(3.크로포트킨의 사상부터 다시 읽어볼 것!)

크로포트킨



신디칼리즘(syndicalism)

신디칼리즘은 혁명적 노동 조합주의를 말한다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항하여 노동 조합을 기반으로 총파업사보타주 등의 직접 행동으로 사회 개혁을 성취하고 노동 조합이 지배권을 장악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신디칼리즘은 무정부주의적 색체가 강하며생디칼리즘이라고도 한다.


사보타주

사보타주(프랑스어: sabotage)는 생산 설비 및 수송 기계의 전복장애혼란과 파괴를 통해 원수 또는 고용주를 약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의도적인 행동이다노동 쟁의의 수단으로서의 동맹 태업을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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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키신
2017. 3. 7. 20:46 영원의 지헤, 그리고 철학

분석 철학 /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

(출처는 모두 위키피디아짜깁기된 자료이므로 연결이 부자연스러울 수 있음)


*논리(분석)철학


  1. 버트런드 러셀

3대 러셀 백작 버트런드 아서 윌리엄 러셀(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3rd Earl Russell, OM, FRS, 1872년 5월 18일 ~ 1970년 2월 2)은 영국의 수학자철학자수리논리학자역사가사회 비평가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이자 지성인으로 여겨진다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일생의 여러 부분에서 자유주의자사회주의자평화주의자 순으로 자신의 이상을 생각해왔으나자신이 이 중 어느 쪽도 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일생의 대부분을 잉글랜드에서 보냈으나그는 웨일스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사망했다.

 

러셀은 1900년대 초반 "관념론 반대운동(revolt against idealism)" 을 일으켰으며그의 선배 프레게제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과 함께 분석철학의 창시자 중 하나로 꼽히며, 20세기의 선두 논리학자로 자리매김했다그는 화이트헤드와 함께 수학 원리를 저술했으며이는 수학을 이용해 논리학의 기틀을 닦고자 한 시도이다그의 철학 에세이 On Denoting은 "철학의 패러다임으로 간주되고 있다그의 저술은 논리학수학집합론언어학철학중에서도 언어철학인식론형이상학에 영향을 주었다.

 

러셀은 당시 반전 운동가로서 크게 활약했다그는 자유 무역을 지지했으며반제국주의 운동가로도 활약했다러셀은 1차 세계대전 때 반전 운동으로 인해 감옥에 수감되었으며이후 아돌프 히틀러스탈린주의자전체주의미국의 베트남 전쟁에 대한 비판과 반대 운동을 펼쳤다그는 핵무장 반대운동에도 열렬히 참가했다.

 

1950러셀은 "인본주의와 양심의 자유를 대표하는 다양하고 중요한 저술을 한 공로를 인정받아노벨 문학상을 받는다.


러셀의 부모는 당시 정치사상이 극단적인 쪽이었다러셀의 아버지 존 러셀은 무신론자였으며아이들의 가정교사였던 생물학자 더글러스 스펄딩과 자신의 아내간의 정사를 공식적으로 인정했으며부모 양쪽 모두 당시 사회 분위기에 앞서가는 "산아제한"의 지지자였다아버지 존 러셀의 무신론은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에게 러셀의 대부가 되어줄 것을 부탁한 데서 명확히 드러난다밀은 러셀이 태어난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사망했지만그의 저술은 러셀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당시 러셀 백작부인은 종교적으로 보수적이었으나종교 이외의 부분에서는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여 다윈 사상을 지지했으며버트런드 러셀에게 사회정의에 대한 시각을 키워주었다할머니가 좋아하던 성서 이야기인 '다수의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를 때에도 그들을 따라가서는 안 되며다수의 사람들이 정의를 굽게 하는 증언을 할 때에도 그들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출애굽기 23:2/새번역성서)는 러셀의 좌우명이 되었다당시 러셀이 살던 펨브로크 롯지도 종교적으로는 상당히 보수적인 분위기였는데러셀의 형 프랭크는 저항적이었으며러셀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면서 생활했다할머니는 공교육에 반대해 손자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가정교사를 초빙해 가르쳤으며 이 때문에 친구를 사귀지 못한 러셀은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 공포를 느꼈다.


러셀의 사춘기 는 굉장히 고독했으며그는 몇 차례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회고한다러셀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당시 자신의 주된 관심사는 종교와 수학이었으며수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자살을 하지 않았다고 서술한다그는 집에서 몇 명의 가정교사에게 교육받았다그의 형 프랭크는 러셀에게 유클리드 기하학을 가르쳐러셀의 삶을 극적으로 바꾸었다.


또한이 기간 중에 러셀은 퍼시 비시 셸리의 저술을 찾게 되었다자서전에 그는 "나는 내 생각이나 기분을 말할 사람이 없다는 걸 알고서모든 여가 시간을 그의 저술을 읽으며마음 깊이 새기는 데 보냈다나는 셸리의 저술을 알게 된 것이 정말 환상적이라고 느꼈으며내가 인간으로서 그를 만났다면 큰 동정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다"고 기록했다.[17] 15세가 되며 러셀은 기독교의 교리가 합당한가에 대해 생각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으며, 18세에 그는 완전한 무신론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러셀은 분석철학의 창시자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비트겐슈타인과 함께 선구자적 업적을 이뤘다고 평가받는다. 20세기 초에는 헤겔에 영향받은 이상주의에 반대했고, 30년 뒤에 이는 비엔나에서 논리실증주의자들에 의해 형이상학 반대를 반복했다.

 

논리와 수리 철학

 

러셀은 근대 수리 논리에 큰 영향을 주었다미국의 철학자이자 논리학자인 윌러드 밴 오먼 콰인은 러셀이 자신의 철학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러셀의 첫 수학에 관한 책은 기하학기초론에 관한 에세이(An Essay on the Foundations of Geometry)이다이 작품은 칸트에게 크게 영향을 받았다러셀은 자신의 책이 아인슈타인의 시공간 스키마를 받아들일 여유 공간이 없다는것을 깨닫고칸트의 수학과 기하학을 완전히 거부했다그는 자신의 최초의 작업에 대해 거의 중요성 없다는 평가를 했다.

 

그는 또한 1+1=2를 증명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왔으니사랑에 대한 갈망지식에 대한 탐구욕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이러한 열정들이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거짓과 더불어 제정신으로 사느니진실과 더불어 미치는 쪽을 택하고 싶다.


*대표저작 The Principles of Mathematics러셀 서양철학사(A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Why I Am Not a Christian. London: Watts


2. 루트비히 비트켄슈타인

루트비히 요제프 요한 비트겐슈타인(독일어: 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년 4월 26일 오스트리아 – 1951년 4월 29)은 오스트리아와 영국에서 활동한 철학자이며논리학수학 철학심리 철학언어 철학 분야에 업적을 남겼다많은 사람들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손꼽는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 실증주의와 일상 언어 철학에 영향을 끼쳤고 분석 철학을 대표하는 인재로도 알려져 있다. 20세기 말 한 철학 포럼이 정리한 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에서도 비트겐슈타인의 논리 철학 논고와 철학 탐구는 상위 5위권에 모두 선정되었다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은 후일 인문학과 사회 과학의 여러 방면에 영향을 주었고 분석 철학자로서는 예외로 예술가들에게 전파되었다비트겐슈타인이라는 이름은 종종 천재를 가리키는 낱말로 쓰인다.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은 논리 철학 논고로 대표되는 전기와 철학 탐구로 대표되는 후기로 나뉜다논리 철학 논고에 나타난 전기 사상은 명제에 사용된 낱말의 은유다운 관계를 분석하여 기존 철학에서 잘못된 개념 탓에 빚어진 논리에 상충하는 점을 지목하는 것인 일변후기 사상에서 언어-놀이에서 상호 변환되는 자연 언어가 논리에 부합한 구조로 정형화한 언어와는 다른 의미가 있다는 점을 역설하였다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의미는 사용에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사상을 대표하는 말이다.


비트겐슈타인의 가족은 우울증에 따른 자살 경향을 보였다장남인 한스는 네 살 때 작곡할 정도로 신동이었으나 1902년 쿠바의 아바나에서 자살했다뒤를 이어 삼남 루돌프가 1904년 베를린에서 자살하였고 차남 쿠르트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1918년 10월 오스트리아군의 총 퇴각이 결정되자 자신이 지휘하던 진중에서 총을 이용해 자살하였다.[19] 루트비히도 청년 시절 줄곧 자살 충동에 시달렸고러셀로부터 천재로 인정받은 후에야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학교 생활 동안 비트겐슈타인은 높은 톤의 어투에 약간 말더듬이가 있었고 우아한 옷을 입은 민감하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심중으로만 생각하는 학생이었다동급생 거의 대부분이 비트겐슈타인의 이런 점을 특징으로 꼽았다비트겐슈타인은 "선생", "헤어 루트비히"(독일어: Herr Ludwig루트비히씨)와 같은 별명으로 불렸다.


비트겐슈타인은 1905년 하늘을 나는 문제를 해결한 영웅과 천재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 루트비히 볼츠만의 선집을 읽고 볼츠만에게서 물리학을 배우려고 했으나 볼츠만은 1906년 생을 자살로 마감하였다.


1906년 베를린에서 기계공학을 배우기 시작한 비트겐슈타인은 갈릴레오레오나르도 다 빈치파우스토 베란치오 같은 사람들이 남긴 르네상스 시기 작업에 흥미를 느꼈다. 1908년 맨체스터 빅토리아 대학교에서 항공과 관련한 논문으로 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비트겐슈타인은 공학 연구소의 연구생으로 등록되어 대기권 상층에 연을 띄우는 연구하였고 작은 제트 엔진에 사용될 프로펠러를 제작하였다맨체스터에서 연구 생활하는 동안 버트런드 러셀과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가 공저한 수학 원리고틀로프 프레게의 산수의 근본 법칙를 읽고 수학기초론에 흥미를 느꼈다. 1911년 여름 비트겐슈타인은 프레게를 방문한 후부터 연락을 자주 교환했고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버트런드 러셀에게서 배우기로 하였다.


1913년에 비트겐슈타인은 노르웨이의 송네 피요르드의 끝에 있는 스크욜덴 인근의 오지에서 독거에 들어갔다비트겐슈타인은 이곳의 한 집 이층을 빌려 겨우내 지내면서 자신의 작업에 몰두하였다이 시기는 비트겐슈타인에게서 가장 정열 있고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 시간이었다이 시기에 이루어진 비트겐슈타인의 작업은 흔히 "논고"라고 불리는 논리 철학 논고로 정리되었다.


전쟁 기간 비트겐슈타인은 군인의 눈으로 목격한 천박을 대상으로 한 경멸을 노트에 기록하였다종전 뒤에도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노트에 철학과 종교를 대상으로 한 단상을 적어나갔다노트에 적힌 단상을 보면 비트겐슈타인의 종교를 향한 태도에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케임브리지 대학교 시절 비트겐슈타인은 종교를 대상으로 해 불가지론다운 태도를 견지했는데 전쟁 중에 비트겐슈타인은 레프 톨스토이의 믿음 안의 찬송을 갈리시아 루마니아 왕국에 있던 한 서점에서 구입한 후 어디나 가지고 다니면서 읽었으므로 후일 비트겐슈타인의 지휘에 있던 부대원들은 찬송과 함께하는 사람들이란 별명을 얻었으며루트비히 요제프 요한 비트겐슈타인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여러 저작에서 종교상 영향받았다.


윤리종교에 딸린 기호를 가지고 "논리"에 부합한 연구를 시작한 비트겐슈타인은 초기에 관심했던 논리 분석을 윤리 개념에 접합하면서 전쟁 기간에 발전하게 한 소위 "그림 이론"을 적용하였다여기에 케임브리지 대학교 시절과 노르웨이에서 은둔 생활한 시기에 한 작업이 "논고"의 바탕이 되었다.



세계의 모든 현대다운 시각의 바탕이 되는 착각인 소위 자연법칙은 자연현상을 대상으로 한 설명이라서 사람들은 자연법칙이 고대의 신이나 운명처럼 거스를 수 없는 어떤 것이라는 생각을 즉시 멈춰야 한다— 비트겐슈타인논고, 6.3716.372


논고를 번역한 프랭크 램지가 1923년 가을 비트겐슈타인의 편지에 적힌 주소를 찾아 갔을 때 비트겐슈타인은 매우 검소하게 생활하고 있었다좁다란 텅 빈 방에 침대가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작은 테이블과 난로가 고작이었다프랭크 램지는 저녁 식사로 질긴 빵 하나와 버터와 코코아 한 잔을 건네받았다비트겐슈타인은 아침 여덟 시에서 정오나 오후 한 시까지 수업하였고 오후 시간은 자유롭게 보냈다.

 

비트겐슈타인은 교직 생활하면서 아이들을 이롭게 하려고 42쪽으로 된 철자와 발음이 표기된 사전을 만들었다어린이를 위한 사전(독일어: Wörterbuch für Volksschulen)은 논고를 제외하면 비트겐슈타인 생전에 그의 이름으로 출판된 유일한 책이다이 사전은 1926년 빈에서 출판되었고 횔데르 피흘러 템프스키의 간단한 서문이 들어 있다이 사전의 초판은 2005년 2월 경매에서 75,000 £에 판매되었다교직 생활하면서 체벌 문제에 휩싸인 비트겐슈타인은 1926년 4월 11살 소년을 심하게 때렸다는 이유로 고발당하였고 결국 교직 생활을 그만두게 되었다교직을 그만 둔 후 비트겐슈타인은 빈에서 잠시 머문 후 휘텔도르프 자비의 형제 수도회에서 정원사로서 일하였다.


1926년 비트겐슈타인은 누나인 그레틀을 위해 새 집을 구상하였다건축은 전쟁 중에 친구가 된 파울 엥겔만이 진행하였다비트겐슈타인과 파울 엥겔만은 참호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었다파울 엥겔만은 새 집이 아돌프 루스 이후 현대 건축을 나타내는 공간으로 자리잡기를 바랐다비트겐슈타인은 이 집을 짓는 일에 온통 매달렸고 창틀난방기 같은 것까지 일일이 살펴보았다문 손잡이와 난방기는 직접 설계하기도 하였다비트겐슈타인의 요구로 모든 창문에 150Kg에 이르는 금속 차양막을 달았다비트겐슈타인의 건축을 쓴 버나드 라이트너는 이 건축물이 건축사에서 다른 예를 찾기 힘든 독특한 것이라 평가하면서 "이 집은 비트겐슈타인의 의도로 매우 정교하게 지어졌다모든 철제는 바닥에 숨겨져 있도록 하였다"고 기술하였다집이 거의 완공되었으나 비트겐슈타인은 천정의 높이를 30mm 더 높이라고 하였고그가 원한대로 천정을 높이고서야 마침내 완공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의 누나 헤르미네는 이 집을 두고 "나는 언제나 내가 그 집 안에서 살아도 되는 걸까 자문하곤 하였다그 집은 신의 거처처럼 만들어져 있었다"라고 기록하였다그 집을 좋게 말하면 너무 소박하게 지었다고 생각한 비트겐슈타인은 이 집이 건축의 기본이 되는 생활이나 건강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고 여겼다.[49]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이 집은 러시아 군인들의 병영으로 사용되었다. 1950년대 그레틀의 아들이 개발업자에게 집을 팔아 없어질 위기에 놓였으나 빈 랜드마크 협회가 1971년 이 집을 구매해 보존한다이 집은 현재 불가리아 대사관으로 사용된다.


비트겐슈타인은 건축 작업을 마치고 모리츠 슐리크와 만났다슐리크는 빈 학파를 이끌고 있었다비트겐슈타인의 "논고"는 빈 학파의 논리실증주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슐리크 자신은 빈 학파의 논의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을 계승하였다고 한 적이 없으나 프리드리히 바이스만과 같은 빈 학파의 학자들은 비트겐슈타인과 철학에 기초한 주제를 화제로 하여 자주 대화했다슐리크와 빈 학파의 회원들이 자신의 논고를 오해한다고 생각하여 자주 좌절한 비트겐슈타인은 종교에 딸린 생활과 신비에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념이 있다고 생각하였고 논리실증주의는 이러한 것을 쓸모 없는 것으로 비하한다고 간주했다한 모임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의 시를 돌아가면서 낭송하는 사이 자신의 책 언급을 거부하여 좌중을 짜증나게 하였다이런 일이 있었어도 비트겐슈타인은 모임에 참석하였으며 철학에 다시 관심을 가졌다모임이 이어지는 동안 프랭크 램지가 논고와 관련해 토론하려고 빈을 방문하기도 하였다비트겐슈타인은 이 토론을 통해 프랭크 램지가 자신의 논고를 오해한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은 동성애 성향이 있었고 빈의 프라테르 공원에서 젊은 남자들과 관계를 맺었다윌리엄 워렌 바틀리는 비트겐슈타인의 전기를 쓰면서 1973년 발견된 비트겐슈타인의 노트에는 프라테르에서의 만남을 "친구의 격려"와 같이 표기하였다고 밝혔다뒷날 바틀리의 주장은 여러 면에서 의심받았으나 비트겐슈타인이 데이비드 핀센트프랜시스 스키너벤 리처드와 같은 사람들과 동성애 관계에 있었다는 풍문은 거의 정설이 되었다.

일각에서는 비트겐슈타인이 정치적으로 좌파적 입장을 지녔다고 평가한다비트겐슈타인 스스로가 자신이 "심장에서부터 공산주의자"라고 말한 적이 있고 많은 방면에서 노동자에 대한 낭만주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하였다.[56] 비트겐슈타인은 도덕적 성찰이 없다는 이유로 과학적 방법을 혐오하였으며음악취향은 보수적이었고핵무기의 사용에 반대하였다.[57] 오스트리아 철학자 오토 바이닝거를 존경한 비트겐슈타인은 바이닝거의 이론을 복사하여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배포하기도 하였다.[58] 오토 바이닝거처럼 비트겐슈타인도 민족성과 성 정체성으로 말미암아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었다.[59] 1930년대 초반 기록된 MS 154와 같은 노트에는 자신의 정체성으로 말미암아 자책하는 여러 문구가 적혀 있다.

 

성자는 단지 유대인 천재일 뿐이다가장 뛰어난 유대인 사상가라 할지라도 더는 재능이 없다. (내 자신을 대상으로 해)


음악을 거론하지 않고는 나를 표현할 수 없다어쨌거나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 비트겐슈타인, 1949

 

후일 비트겐슈타인은 "내 생각은 100% 헤브라이즘답다"라고 스스로 비판하였다.

 

비트겐슈타인이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에 대한 자기부정은 스스로를 파멸로 몰았다그러나 유대인이라는 것 때문에 그는 자신의 참신함과 천재성을 확신하였다— 한스 슬루거


1934년 비트겐슈타인은 친구인 케인스가 쓴 러시아에 대한 간략한 소개에서 서술된 소비에트 생활에 매료되어 스키너와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련방으로 이민을 고려하였다그들은 러시아어를 배웠고 1935년에는 비트겐슈타인이 안전 요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레닌그라드와 모스코바를 여행하였다비트겐슈타인은 러시아 당국에 교사 자리가 있는지 문의하였으나 이에 대답은 3주가 지나서야 돌아왔다.

 

1936년부터 37년 사이에 비트겐슈타인은 스키너와 함께 노르웨이에 다시 머물렀다.[63] 비트겐슈타인은 노르웨이에서 연구를 계속하였고 이것을 철학적 조사라고 불렀다


일을 마무리 지은 다음 비트겐슈타인은 영화관 제일 앞자리에서 영화를 보는가하면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편안히 서방세계를 관망하였다.[68] 노먼 말콤은 비트겐슈타인이 강의를 마치자마자 영화관으로 달려가곤 했다고 회고하였다.

 

강의를 마친 학생들이 교실을 나가려고 의자에서 몸을 빼는 순간 비트겐슈타인은 친구를 향해 "갈 수 있겠어?"하고 낮은 목소리로 묻곤 하였다영화관에 갈 때면 비트겐슈타인은 빵이나 파이 따위를 사들고서는 영화를 보면서 먹었다.— 노먼 말콤


이 무렵 비트겐슈타인은 수학기초론에 대한 자신의 기존 견해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비트겐슈타인의 초기 사상에서 논리는 단단한 기호였으며그는 러셀과 화이트헤드의 수학 개론에 대해서도 이러한 사고를 기초로 비평하였다하지만 이 무렵에 이르러서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글과 강의를 통해서 과거 자신의 사상을 부정하였다.

몽크의 회고에 따르면 비트겐슈타인은 전쟁이 시작되었는데도 철학 강의나 하고 있는 스스로의 처지를 견디기 힘들어하였다고 한다. 1941년 9월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자 길버트 라일의 형제였던 존 라일 교수에게 요청하여 런던에 있는 가이스 병원에서 봉사하겠노라고 요청하였다존 라일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의학 교수였다그는 비트겐슈타인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이에 따라 비트겐슈타인은 가이스 병원에서 약품을 관리하는 일을 하였다.[71]

 

병원의 직원들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철학자가 자신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간혹 비트겐슈타인을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비트겐슈타인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주세요."하고 부탁하였고자신을 비트겐슈타인 교수님이라 부르지 말고 여느 의사들과 같이 박사님이라 불러주기를 바랐다.

 

이 무렵 비트겐슈타인은 몹시 외로웠다.

 

내 생활의 미래를 대상으로 해 나는 더는 어떤 희망도 없다살아있는 사망이 길게 늘어진 것과 같은 이런 것은 예전에는 없었다최악 상황 말고는 내 미래를 상상할 수 없다친구도 없고 기쁨도 없고— 비트겐슈타인, 1942년 4월 1



죽음은 삶에서 일어나는 그저 그런 일이 아니다우리는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다만일 우리가 영원히 계속되는 시간이 아니라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 들어선다면 삶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만 속한 것이다제한없이 펼쳐진 이 길에서 우리의 삶에 끝은 없다.

— 비트겐슈타인논고, 6.4311


1951년 초 비트겐슈타인은 유언장을 다시 작성하였다그는 노먼 말콤에게 "내 마음은 이미 죽었어더이상은 고통일 뿐이지내 알기로 삶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고 그 다음엔 정신적인 삶만이 남게 되는거야"라고 말하였다.

 

62번째 생일이던 1951년 4월 26일 의사가 생이 이제 몇일 남지 않았다고 하자 비트겐슈타인은 "좋군요사람들에게 내 삶이 참 멋있었다고 전해주시오"라고 말하였다비트겐슈타인은 4월 29일 사망하였고 로마 가톨릭 식 장례의식을 거쳐 묻혔다.


논리-철학 논고(라틴어: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는 비트겐슈타인의 전기 철학을 대표하는 저서이다초판의 서문은 비트겐슈타인의 스승이자 동료였던 버트런드 러셀이 썼다비트겐슈타인은 1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본문을 썼으며 일정량이 모이면 러셀과 무어에게 보냈고 1918년 완성하였다초판의 출간은 전쟁이 끝난 후인 1922년에 이루어졌다흔히 논고로 줄여부른다.

 

비트겐슈타인은 논고에서 기존의 철학에서 적용하는 철학적 문제란 언어의 논리를 잘못 적용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철학적 문제들을 다루고 있으며내가 믿기에는이러한 문제들의 문제 제기가 우리의 언어 논리에 대한 오해에 기인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이 책의 전체적인 뜻은 대략 다음의 말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말해질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해질 수 있다그리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나에겐 여기서 전달된 사고들의 진리성은 불가침적이며 결정적이라고 보인다따라서 나는 본질적인 점에서 문제들을 최종적으로 해결했다고 생각한다.


주요 저작 

논리-철학 논고


논고를 집필하던 시점의 비트겐슈타인이 보기에 기존의 철학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고 함으로써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비트겐 슈타인은 이러한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그림 이론(picture theory)을 제시한다그림 이론을 구상하게된 까닭은 프랑스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재판에서 모형들이 사용된 것을 본 것 때문이었다그림 이론이란 언어는 세계를명제는 사실을이름은 대상을 지칭한다는 것으로이러한 것들이 실제 대응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일기장에 한 문장에는 하나의 세계가 연습삼아 조립되어 있다고 기록하였다이러한 그림 이론은 기존의 철학특히 형이상학이나 도덕학에서 신이나 자아도덕과 같은 것들은 실제 그것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없어서 뜻(Sinn)이 없다고 본다따라서 이러한 개념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자연과학과 같은 것은 실제 세계를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있다고 본다이러한 점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논리 철학 논고를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라고 끝맺었다논리 실증주의자들은 이 명제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비트겐슈타인은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오히려 말할 수 없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고백했다말할 수 없는 것이 증명할 수 없어서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구태여 증명하려 하여 무가치하게 만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철학적 탐구

비트겐슈타인의 회고에 따르면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함께 재직하던 이탈리아 출신의 경제학자 피에로 스라파와 자신의 그림 이론에 대해 토론을 하던 가운데 잘못을 깨달았다고 한다비트겐슈타인이 이론에 스라파가 반론하면서 손가락 끝으로 목부분을 밀어 올렸다스라파의 행동은 이탈리아에서 의문이나 조소를 뜻하는 것으로 사용되는 제스처였다순간 비트겐슈타인은 논고에서 주장했던 언어의 논리학과는 달리 일상 생활에서 쓰이는 언어의 의미는 결코 한 가지로 고착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84]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생각의 전환을 바탕으로 철학적 탐구를 집필하였으나 출판하지는 않았다철학적 탐구는 비트겐슈타인의 사후에 남겨진 초고를 합하여 출판되었다.[85]

 

철학적 탐구에 이르러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철학을 상당부분 수정하게 된다초기의 그림 이론과는 달리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언어를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그림 이론을 포함한 기존에 있었던 사물과 언어가 일치한다는 주장을 반대하였다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언어가 있기 전에 생활 양식이 있다또한언어는 그 ''[주해 3] 이 아니라 '사용'[주해 4] 에 본질이 있으며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삶의 형식을 공유한다고 생각했다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에는 하나의 공통된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쓰임에서 나타나는 여러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그는 이것을 '가족 유사성'(family resemblances)[주해 5] 이라고 불렀다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놀이에 비유했는데줄넘기 놀이술래잡기가위바위보 등의 '놀이'에서도 어떤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가족처럼 서로 유사한 점이 있다는 뜻이다대니얼 솔로브는 이러한 비트겐슈타인의 가족유사성 접근을 현대형 프라이버시 개념을 정리하는 방법으로 활용하자고 주장하기도 하였다.[86]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이라는 학문이 어떠한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학문이 아니라그러한 것들을 연구하는 학문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다비트겐슈타인은 논리 실증주의자들이 명료하고 논리적인 이상적인 상태의 언어를 추구하는 것을 비판했다이러한 철학은 옥스퍼드학파라고도 불리는 일상언어학파가 잇게 된다.


3.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OM, FRS, 1861년 2월 15일 ~ 1947년 12월 30)는 영국의 철학자·수학자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기호논리학(수학적 논리학)의 대성자 중 한 사람이다.

사적(史蹟)이 많은 영국 남부의 켄트 주 램스게이트에서 태어났으며아버지는 영국 성공회의 신부로 사립학교 교장이었다이러한 환경은 역사·종교·교육에 대한 그의 관심을 함양시켜 주었다. 1880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하여 수학을 전공하였으며이어 장학금 연구원(펠로)으로 선발되고 강사가 되었다.

 

1910년에 런던 대학교의 응용수학 교수가 되기까지 버트런드 러셀과 10년간에 걸쳐 협력하여 수학의 논리적 기초를 논한 고전 수학 원리》 3권을 완성하였는데이미 1898년의 보편대수학론(이 논문으로 왕립 학회 회원으로 선출되었다등에 이러한 논리-수학적 관심이 나타나 있었다또한 런던 대학교 시절에 상대성이론에 강한 관심을 보였고그의 철학자로서의 업적은 자연이라는 개념》 등 과학철학에 관한 여러 저작에 의해 확립되었다.

 

1924년 63세로 하버드 대학교의 철학 교수로 초빙되어 미국으로 건너갔고매사추세츠 주의 케임브리지에 살며 과학과 근대 세계상징작용과정과 실재관념의 모험사상의 제 양태가 계속 간행되어 우주론 내지 형이상학 체계의 건설이 시작되었다이와 같이 과학의 기초에 각별한 관심을 가진 수학자 화이트헤드는 실재론적 기초 위에서 넓은 시야의 문명론을 전개하면서 '유기체 철학'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철학 사상을 구축했다.

 

그는 부인과 함께 담화의 명수였으며그의 집은 계속 찾아드는 학생이나 동료를 위해 개방되어 있었다또 전 생애에 걸쳐 사회와 정치에 대해 강한 관심을 가졌다. 1945년에 문화훈장인 '오더 오브 메릿'(Order of Merit)을 수여받았다주요 저서로는 수학 원리(버트런드 러셀과 공저, 3권 1910-1913), 과정과 실재(1929), 관념의 모험(Adventures of Ideas, 1933)이 있다.


4. 모리츠 슐리크

모리츠 슐리크(Moritz Schlick, 1882~1936)는 독일의 철학자이다베를린에서 태어나 빈 대학 교수를 지냈다노이라트·카르나프 등과 마흐 협회·빈 학단을 창설하였다논리실증주의 운동의 지도자사실과 엄격히 대응하는 명제를 진리로 보는 경험적 인식론논리학 및 수학의 선험성(先驗性등을 연구했으며정신착란에 걸린 학생에게 살해되었다.


*고대 희랍 철학


1. 고르기아스(그리스어Γοργίας기원전 485년 경 기원전 385년 경)는 시칠리아 레온티노이 출신의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이자 철학자웅변가이다프로타고라스와 함께 1세대 소피스트를 형성하였다몇몇 고전학자는 그가 단지 몇 살만 어렸을 뿐인데도 엠페도클레스의 제자였다고 보고한다고르기아스의 강연에서 특이한 면은 청중으로부터 여러 질문을 받고 즉석에서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만물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설령 존재한다고 해도 인식 할 수 없다만약 인식한다 하여도 타인에게 말할 수 없다"는 일종의 허무주의적 경향이 그의 근본 사상으로이것은 당시 잦은 전쟁으로 참혹해진 희랍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그의 허무주의를 극복하려는 데에 플라톤의 철학의 동기가 있다저서 중에 팔라메데스론헬레네론비존재론화평론〉 등이 유명하다고르기아스의 철학에서 모든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그는 저작 비존재에 관하여에서 3개의 주장을 제시한다첫째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둘째존재하더라도 인식되지 않는다셋째인식되더라도 언어로 전달되거나 해석되지 않는다이 주장은 한 번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고르가아스가 최초로 작성했다는 증거는 없다섹스투스 엠피리쿠스의 언급과 멜리소스크세노파네스고르기아스에 대하여을 통하여 이것이 고르기아스의 주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독일어: Vorsokratiker, 영어: Presocratics)란 문자 그대로 소크라테스 이전에 살았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를 한데 묶어서 쓰는 낱말이다이 낱말은 처음 독일의 고전 문헌학자 헤르만 딜스가 이들 철학자의 단편들을 한데 모아 엮은 책의 제목에서 비롯된다그 뒤영어와 프랑스어에서 독일어를 직역하여 그대로 쓰고 있으며오늘날 서양 철학사에서 굳어진 낱말이라고 볼 수 있다이들은 흔히 고대 그리스의 자연 철학자라고 불리기도 하며또는 그들이 태어난 지방의 이름을 따서 이오니아엘레아 철학자 등으로 일컫기도 한다.


소크라테스 이전 사상에 대한 중요한 분석들은 그레고리 블라스토스조너선 번스고든 클라크 그리고 프리드리히 니체의 책 그리스 비극 시대의 철학에 의해 다루어졌다.


그들 대부분은 중요한 문헌들을 남겼다고는 하지만그 문헌들이 완성된 형태로 남아 있지는 않다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은 후대의 철학자들과 역사학자들에 의해 인용되었던 것들과 단편적으로 남아 있는 문헌들뿐이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은 그들 주위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대해 전통적으로 행해지던 신화적 해석들을 거부했으며대신 좀 더 이성적인 해석을 내놓았다그들 대부분은 다음과 같이 물었다:

만물은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만물은 무엇으로부터 창조되었는가?

자연에서 발견되는 사물들의 다수성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자연은 수학적으로 어떻게 기술해야 하는가?


일부는 나중에 수학적과학적 그리고 철학적 연구의 기초가 되는 문제들과 역설들을 정의하는 데 집중했다물론초기의 그리스 철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우주론은 근대 과학에서 기초된 관점에 의해 수정되었다그 이후의 철학자들은 대부분 그들이 내놓은 대답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그들이 물었던 질문들은 이후 철학자들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문제였다.

 

 






주역 64괘 상하괘 도해

Posted by 히키신
2017. 3. 7. 20:41 영원의 지헤, 그리고 철학

여러가지 용어 정리

Posted by 히키신
2017. 3. 7. 19:25 etc

ㆍ시온주의 유대인을 팔레스타인에 복귀시키려는 유대 민족 운동.

ㆍ이니셔티브 목표 달성을 위한 핵심적인/전략적인 실천 프로그램

ㆍ패권(覇權그리스어ἡγεμονία또는 헤게모니(영어: hegemony) : 어떤 집단을 주도할 수 있는 권력이나 지위이자 어느 한 지배 집단이 다른 집단을 대상으로 행사하는 정치경제사상 또는 문화적 영향력을 지칭하는 용어이다문화 패권 또는 문화 헤게모니는 지배집단의 문화를 피지배집단이 수용하도록 조작된 이념이다. (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참조)

ㆍ타뷸라 라사(tabula rasa) : 白紙狀態백지상태 

程朱學派(정주학파) : 정호(程顥)ㆍ정이(程頤)와 주희(朱熹)의 학파(學派).

ㆍ불교의 8(八識: 8가지의 식) : ()이란 시각기관() · 청각기관() · 후각기관() · 미각기관() · 촉각기관() · 사고력()을 매개로 하는 6가지 인식기능즉 6(六識)을 말한다그리고 의()는 이 6가지의 인식기능에 수반되는 자아의식을 의미하는데이 자아의식을 말나식(末那識)이라 한다마지막의 심()은 보편적인 인식기능의 근저에 있는 잠재의식을 의미하는데이 잠재의식을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 한다.


데마고그[demagogue] 

 자극적인 변설(辯舌)과 글을 바탕으로 감정적ㆍ정서적으로 대중을 기만하여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웅변술이 좋은 선동가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시민과 민중지도자를 가리키는 데마고고스(domagogos)가 데마고그의 어원이다당대에는 비난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나현대에는 대중의 감정과 편견에 호소하여 권력을 취하려는 정치가를 의미한다사실과 다른 내용을 가지고 선동적으로 벌이는 허위선전을 '데마고기(demagogy)' 또는 줄여서 '데마'라고 한다.


교조주의(敎條主義,Dogmaism)란 특정한 사상이나 종교경전을 역사적 배경을 생각하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종교적으로는 경전의 역사적정치적경제적사회적 배경을 생각하지 않고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종교인을 교조주의자나 원리주의자라고 한다교조주의는 사상과 종교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것이므로학문적 곧 논리적 비평에 대해 대화와 토론으로 극복하기보다는 무조건 거부하거나 탄압하는 전체주의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양비론(兩非論)은 서로 충돌하는 두 의견이 모두 틀렸다는 것을 말한다어떤 주장이 대립되는 모든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용어이다학문적 이론이나 사회적 주장이 양분되어 있을 때어느 한편에도 동의하지 않는 제3자가 새로운 주장을 전개하는 경우에 주로 나타난다특히 정치적인 의미에서는대립되는 두 주장을 시시비비 가림없이 양쪽 모두가 다 잘못되었다고싸잡아 비판하는 태도를 함축하고 있다.

양비론 비판

양비론은 양측을 똑같이 비판함으로써 누구의 과실이 얼마나 되는지를 가리기 어렵게 한다찬성과 반대를 분명히 가리거나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찬반의 대립구조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에 의사결정에 장애가 될 수 있다중도적인 입장으로 양측을 모두 존중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과실이 더 큰 쪽을 유리하게 만들어 준다.

홍세화는 '쎄느 강은 좌우를 나누고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라는 책에서 양비론을양쪽을 모두 비판하면서 양쪽으로 자기보신하는 기회주의적 속성으로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양쪽에서 훈수를 두는 사람과 비슷하다고 하며양비론을 펴는 것은 사회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으면서 토론을 죽이는 행위라고 하였다.

 아이들의 싸움

 아이들에 대해 권위주의적이었던 한국전통사회에서는 부모들은 싸우는 행위를 그 자체만으로 둘다 잘못했다고 양쪽을 똑같이 벌주었다반면프랑스의 부모들은 싸움이 시작된 원인을 찾고 누가 더 많은 잘못을 했는지를 따져그 잘못한 점에 대해서 야단친다고 한다

정치적 싸움

 과거 특히 제5공화국 시절의 여당의 날치기 법안 통과에 여야 의원들의 몸싸움에 대해서 거대 언론사들이 날치기와 몸싸움 자체만 비판하고그 원인에 대해서는 제대로 기사화하지 않아국민들로부터 여야 할 것 없이 정치인이 모두 나쁘다는 이미지만 심어줘정치에 환멸을 느끼게 한 점 등으로 양비론이 가장 큰 비판을 받는다

연평도 포격 사태로 본 중국의 이이제이 수법

 연평도 포격이 있은 후미국을 비롯한 서방 여러나라 뿐만 아니라 러시아마저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았다하지만 중국은 이에 대해 대한민국과 북한 양측을 모두 비판하면서 중국의 전통적인 외교수법인 이이제이 수법을 통해 자신들이 주도하는 형국으로 이끌어 가려는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취했다

우유부단함과 소극적 성격을 키우는 부작용

 예를들어 축구의 공격을 함에 있어 내가 상대방 골문 근처에서 공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이때 슛하는 것이 좋을지 동료에게 패스하는 것이 좋을지 결정할 때가 되었다슛을 하자니 골키퍼 등으로 인해 실패해 욕먹을 것이 싫고패스를 하자니 좋은 기회를 날려버렸다고 욕먹을 것이 또한 싫어 망설인다하지만 이러한 수동적인 태도(양비론)만 가지고 있으면 시간이 지나 결국 상대방 수비의 전열이 더욱 견고해져 이미 있던 기회마저 날려버릴 확률이 더 크다

양비론 비판에 대한 비판

 양비론 비판을 남용할 경우에는 정당한 비판마저도 흑백논리로 몰아세울 수 있다.

 양측의 주장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닌양측의 오류들을 지적하는 정당한 비판마저도 진영논리로써 양비론으로 몰아세우는 식의 사태가 있다.

 토론은 일반적으로 특정주제에 대해서 편을 갈라 싸우게 되므로 자신의 뜻에 맞지 않아 누구의 편도 들어주지 않는 중립적인 입장이 결코 나쁜것이 아니다사람은 누구나 오류나 실수가 있을 수 있고 그러한 오류를 정당하게 지적하는 사람마저 양비론으로 치부하여 기득권을 보호한다고 공격하는 것은 너무나도 정치적인 것으로 사회의 고명한 의견이나 소수의 의견을 묵살할 우려가 있다.

 위에서 각각 언급된 "양비론적인 비판개념의 경우와토론의 태두리와 논리학적인 오류와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토론은 주장과 근거를 들어 비판을 하는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뜻이 맞지 않는것과 정당하게 주장된 부분과는 구분되기 때문이다.


*유명론(唯名論, nominalism)은 중세 스콜라 철학의 보편 논쟁의 하나이다.

중세 초기부터 보편(普遍)과 개체(個體)의 관계에 대해 실념론(實念論, Realism)과 유명론(Nominalism)의 대결이 있었다보편이 우선해서 존재한다고 하는 실념론에 대해 개체가 우선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유명론이다.

처음으로 유명론을 주장한 사람은 로스켈리누스였다그 후 주류를 이룬 실념론에 대항하여 다시 유명론을 내세워서 스콜라 철학에 도전한 사람은 페트루스 아우레올루스나 뒤랑 드 생푸르생이었다페트루스는 개체는 언제나 지각(知覺)의 대상이라 하였고또한 뒤랑은 이성에 의존하는 것이 권위에 의존하는 것보다 옳다고 하였다.

이러한 경향을 대성하여 유명론을 실념론과 대비되는 하나의 큰 학파로 형성시킨 사람은 오컴이었다그는 영국인 특유의 경험주의를 바탕으로 그 무렵 옥스퍼드에 일어난 과학적 연구를 신학·철학에 응용하여 새로운 경험과학의 길을 열었다그에 의하면 참된 명제는 직접 명료하게 증명되지 않으면 안 된다그에 반하여 추상적 인식은 그 대상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지 못한다확인되는 것은 특수한 개체의 인식뿐이다따라서 보편은 개념 또는 소리에 지나지 않고 실재하는 것은 개체뿐이다이것은 로저 베이컨의 원리가 철학적으로 전개된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그를 계승한 것은 애덤 워덤미르쿠르의 존 등이다그중에도 오트르쿠르의 니콜라우스는 모순율(矛盾律)만이 확실한 기본원칙이며 5관의 판단인 경험에 의해 인식되는 것 이외에는 긍정할 수 없다고 하였다자연에 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와 형상의 이론을 버리고 아톰설을 택했다뷔리당은 오컴주의를 신봉하여 자연 연구에 종사했고 타성의 원리를 발견하였다이러한 의미에서 그는 근대 역학(力學)의 개조이다최후의 스콜라 학자 가브리엘 빌은 유물론을 쉽게 해설하여 멜란히톤 및 루터에게 영향을 미쳤다이와 같이 하여 유명론은 스콜라학의 벽을 뚫고 근대과학·근대사상의 길을 준비했다.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 또는 Ockham's Razor)은 흔히 '경제성의 원리' (Principle of economy)라고도 한다. 14세기 영국의 논리학자이며 프란체스코회 수사였던 오컴의 윌리엄 (William of Ockham)의 이름에서 따왔다원문은 라틴어로 된 오컴의 저서에 등장하는 말이다.

"Pluralitas non est ponenda sine neccesitate."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까지 많은 것을 가정하면 안 된다)

"Frustra fit per plura quod potest fieri per pauciora." (보다 적은 수의 논리로 설명이 가능한 경우많은 수의 논리를 세우지 말라.)

간단하게 오컴의 면도날을 설명하자면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불필요한 가정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좀 더 쉬운 말로 번역하자면,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개의 주장이 있다면간단한 쪽을 선택하라(given two equally accurate theories, choose the one that is less complex)'는 뜻이다여기서 면도날은 필요하지 않은 가설을 잘라내 버린다는 비유로필연성 없는 개념을 배제하려 한 "사고 절약의 원리"(Principle of Parsimony)라고도 불리는 이 명제는 현대에도 과학 이론을 구성하는 기본적 지침으로 지지받고 있다.

잘못된 이해

오컴의 면도날은 진위 판단에 관해 유효성을 가진다고 오해받기 쉽다오컴의 면도날은 단순히 "여러 가지 가설이 세워지게 된다면 그 중 하나를 고를 때 사용하는 일종의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그렇기에 오컴의 면도날로 어느 가설을 선택했다고 해서 반드시 그 가설이 옳다고 볼 수는 없다거꾸로도 마찬가지로어느 가설을 오컴의 면도날로 "잘라"버렸다 하더라도 그 가설이 틀렸다고 할 수 없다오컴의 면도날은 진위를 가르는 잣대가 아니다.


Cf)핸런의 면도날(Hanlon's razor)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어리석음으로 충분히 설명이 되는 일을 악의의 탓으로 돌리지 말라.

조지프 비글러(Joseph Bigler)가 쓴 머피의 법칙에 관한 여러 농담을 소개하는 책 Murphy's Law Book Two, More Reasons Why Things Go Wrong에 따르면 이는 로버트 J. 핸런(Robert J. Hanlon)이 처음으로 말했다고 한다하지만 로버트 A. 하인라인의 1941년 단편 소설 Logic of Empire에 이와 거의 비슷한 구절이 나오기 때문에 핸런이 하인라인의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저서 속에서 이와 비슷한 고찰을 한 사람으로는 괴테알베르트 아인슈타인프리드리히 실러엘버트 허버드 등이 있다.


자살 메커니즘

프로그램화된 세포의 죽음(programmed cell death), 즉 세포의 '자살 메커니즘'을 처음으로 제기하여 이를 규명했다세포가 생성되고 사멸하는 과정이 준비된 프로그램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이다즉 세포는 조직이 완전히 기능하도록 스스로 사멸하는데 이때 일련의 유전자가 이를 조절한다는 것이다그는 또한 1960년대 초 전령 RNA(mRNA)의 존재를 확정하고 mRNA의 뉴클레오티드의 순서가 단백질 속의 아미노산 서열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도 했다. 1980~90년대에는 인간 게놈 계획을 선도하여 분자생물학과 유전학의 발전에도 기여했고, 2002년에는 제자 존 E. 설스턴, H. 로버트 호비츠와 함께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네이버 지식백과브레너의 빗자루 [Brenner's Broom] (슈뢰딩거의 고양이, 2009. 1. 20., 도서출판 들녘)


현대과학에 이르면 오컴의 면도날에 정반대되는 도구가 등장한다브레너의 빗자루(Brenner's Broom)가 바로 그것이다이것의 발명가는 1927년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영국의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과학자로 이름을 날린 분자생물학자 시드니 브레너(Sidney Brenner)브레너는 유전자 코드를 해독하여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기여하고선형동물 연구를 통해 생물학적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등 여러 해에 걸쳐 놀라운 업적을 쌓았다.

분자유전학처럼 새로 생겨난 학문이 기존의 학문분야들 사이에서 제자리를 잡으려면 과감해야 한다브레너의 빗자루는 이런 신생학문이 아직 불안정한 상황에서 학문적 요건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제시한다우선 새로운 가설이나 발견이 당장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하리란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자신이 탁월한 아이디어나 명쾌한 통찰을 지녔다고 믿는 사람은 일단 그것을 용감하게 발표해야 한다그러고 나서 아직 해결되지 않았거나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 내용은 브레너의 빗자루를 가지고 양탄자 밑으로 쓸어 넣어버리면 된다그런 다음 자신이 여전히 양탄자 위에 제대로 서 있을 수 있는지그럴 마음이 계속 드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분자생물학의 예를 들면 유전자를 구성하는 물질즉 DNA의 발견이 그렇다. 1943년 이 발견이 처음 소개되었을 때 여기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문제들이 남아 있었다그런 상태로는 아무도 만족시킬 수 없었고 아무런 확실한 근거도 제시할 수 없었으므로 브레너의 빗자루는 할 일이 아주 많았다하지만 불과 몇 년이 지나자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브레너의 빗자루가 양탄자 밑에 감추어야 했던 내용들이 1950년대에 들어서자 새 양탄자를 깔려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허시의 천국참조)

브레너의 빗자루는 일거리가 떨어지는 법이 없다브레너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지닌 젊은 과학자들이 미해결의 난제들에 짓눌려 기가 꺾이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 빗자루를 발명했다또한 브레너의 빗자루는 과학이 한두 차례의 성공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상기시킨다그랬다가는 본질적인 물음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생물학의 본질적인 물음은 유전자가 무엇으로 구성되었는지가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기능하며새 생명을 만들어내기 위해서어떤 작용을 하는지 묻는 것이다브레너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유전자 코드와 유전자의 화학적 성분만으로는 그와 같은 물음에 충분히 답할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여기에는 아직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듯이 보인다현대생물학에서 브레너의 빗자루가 활기차게 비질을 해댄다면 지금은 평평해 보이는 많은 양탄자들이 불룩한 배를 내밀게 될 것이 분명하다.


'P이면 Q이다'라는 명제가 참이라고 가정하였을 때,

P는 Q이기 위한 충분조건이고, Q는 P이기 위한 필요조건[필수조건]이다만일 P와 Q가 동일하다면(이를 '동치'라 한다) P는 Q이기 위한 필요충분조건혹은 Q는 P이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한다

P  ⇒ 라는 표현을 집합으로 나타내면,  P  ⊂ 가 된다충분조건인 P가 필요조건인 Q의 부분집합이 되는 것이다쉽게 말해 '부분집합은 충분조건전체집합은 필요조건'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 P가 Q의 충분조건이 되려면, P가 참일 때 항상 Q도 참이어야 한다.


아포리아(aporia)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즉 난제를 의미한다원래는 '막다른 골목'정도의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그러나 이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문제점을 명확히 한다는 의미에서 아포리아의 발견을 중시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스어로 통로가 없는 것’ ‘길이 막힌 것이라는 뜻철학용어사물에 관하여 해결의 방도를 찾을 수 없는 난관을 의미한다일반적으로는 해결이 곤란한 문제를 가리키는 말이다소크라테스는 대화의 상대를 아포리아에 빠뜨려 무지(無知)를 자각시켰으며아리스토텔레스는 아포리아에 의한 놀라움에서 철학이 시작된다고 하였다플라톤의 경우에는 대화에서 로고스의 전개로부터 필연적으로 생기는 난관을 아포리아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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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전집 2. 단편소설

Posted by 히키신
2017. 3. 7. 19:17 글쓰기와 관련하여

지도의 암실

 

- 그는 왜 버려야 할 것을 버리는 것을 버리지 않고서 버리지 못하느냐 어디까지라도 괴로움이었음에 변동은 없었구나 그는 그의 행렬의 마지막의 한 사람의 위치가 끝난 다음에 지긋지긋이 생각하여 보는 것을 할 줄 모르는 그는 그가 아닌 그이지 그는 생각한다.

 

지주회시(蜘蛛會豕)

 

- 참 신통한 일은ㅡ어쩌다가 저렇게 사(生)는지ㅡ사는 것이 신통한 일이라면 또 생각하여 보면 자는 것은 더 신통한 일이다. 어떻게 저렇게 자나? 저렇게도 많이 자나? 모든 일이 희(稀)한한 일이었다.

- (문학)(시) 영구히 인생을 망설거리기 위하여 길 아닌 길을 내디뎠다 그러나 또 튀려는 마음ㅡ비뚤어진 젊음 (정치)

- ...그대는 그래 고소할 터인가 즉 말하자면 이 사람을 어떻게 하였으면 좋겠는가. ... 지금 내가 어떻게 하였으면 좋을까는 누구에게 물어보아야 되나요. 거기 섰는 오 그리고 내 안해의 주인 나를 위하여 가르쳐주소, 어떻게 하였으면 좋으리까 눈물이 어느 사이에 뺨을 흐르고 있었다. 술이 점점 더 취하여 들어온다.

 

동해(童骸)

 

*TEXT

- "불장난을 못 하는 것과 안 하는 것과는 성질이 아주 다릅니다. 그것은 컨디션 여하에 좌우되지는 않겠지요. 그러니...일러 드리지요. 저는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입니다.

 자각된 연애니까요.

 안 하는 경우에 못 하는 것을 관망하고 있노라면 좋은 어휘가 생각납니다. 구토. 저는 이것은 견딜 수 없는 육체적 형벌이라고 생각합니다. 온갖 자연발생적 자태가 저에게는 어째 유취만년(乳臭萬年)의 넝마 쪼각 같습니다. 기뻐해 주세요. 저를 이런 원근법에 좇아서 사랑해 주시기 바랍니다." ...

 안 하는 것은 못 하는 것보다 교양, 지식 이런 척도로 따져서 높다. 그러나 안 한다는 것은 내가 빚어내는 기후(氣候) 여하(如何)에 빙자해서 언제든지 아무 겸손이라든가 주저없이 불장난을 할 수 있다는 조건부 계약을 차도(車道) 복판에 안전지대 설치하듯이 강요하고 있는 징조에 틀림은 없다.

 

*전질(顚跌)

 

- 나는 조심도 할 줄 모르는 야인(野人)이니까 반쯤 죽어야 껍적대지 않는다. ...

 "우리 의사는 죽으려 드는 사람을 부득부득 살려 가면서도 살기 어려운 세상을 부득부득 살아가니 거 익살맞지 않소?"

 말하자면 굽 달린 자동차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거기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고들 있다.

 

종생기

 

- 어머니 아버지의 충고에 의하면 나는 추호의 틀림도 없는 만 25세와 11개월의 '홍안(紅顔) 미소년(美少年)'이라는 것이다. 그렇건만 나는 확실히 노옹(老翁)이다. 그날 하루하루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랗다.' 하는 엄청난 평생(平生)이다.

 나는 날마다 운명(殞命)하였다. ...

 그러나 고독한 만년(晩年) 가운데 한 구의 에피그람을 얻지 못하고 그대로 처참히 나는 물고(物故)하고 만다.

 일생의 하루ㅡ.

 하루의 일생은 대체 (위선) 이렇게 해서 끝나고 끝나고 하는 것이었다. ...

 나는 내 감상(感傷)의 꿀방구리 속에 청산(靑山) 가던 나비처럼 마취(痲醉) 혼사(昏死)하기 자칫 쉬운 것이다. 조심조심 나는 내 맵시를 고쳐야 할 것을 안다.

- 나는 아침 반찬으로 콩나물을 3전어치는 안 팔겠다는 것을 교묘히 무사히 3전어치만 살 수 있는 것과 같은 미끈한 쾌감을 맛본다. 내 딴은 다행히 노랑돈 한 푼도 참 용하게 낭비하지는 않은 듯싶었다.

- 넘어가는 내 지지한 종생, 이렇게도 실수가 허(許)해서야 물화적(物貨的) 전 생애를 탕진해 가면서 사수(死守)하여 온 산호편(珊瑚篇)의 본의가 대체 어디 있느냐? 내내(乃乃) 울화가 복받쳐 혼도(昏倒)할 것 같다. ...

 나는 내가 그윽히 음모(陰謨)한 바 천고불역(千古不易)의 탕아(蕩兒), 이상(李箱)의 자지레한 문학의 빈민굴을 교란시키고자 하던 가지가지 진기(珍奇)한 연장이 어느 겨를에 뻬물르기 시작한 것을 여기서 깨단해야 되나 보다. 사회는 어떠쿵, 도덕이 어떠쿵, 내면적 성찰, 추구, 적발(摘發), 징벌(懲罰)은 어떠쿵, 자의식과잉이 어떠쿵, 제 깜냥에 번지레한 칠(漆)을 해 내어걸은 치사스러운 간판(看板)들이 미상불(未嘗不) 우스꽝스럽기가 그지없다.

- 미문에 견줄 만큼 위태위태한 것이 절승(絶勝)에 혹사한 풍경(風景)이다. ...

 왜 나는 미끈하게 솟아 있는 근대건축의 위용을 보면서 먼저 철근철골, 시멘트와 세사(細砂), 이것부터 선뜩하니 감응(感應)하느냐는 말이다. 씻어버릴 수 없는 숙명의 호곡(號哭), 몽골리언 플렉[蒙古痣], 오뚝이처럼 쓰러져도 일어나고 쓰러져도 일어나고 하니 쓰러지나 섰으나 마찬가지 의지할 얄판한 벽 한 조각 없는 고독, 고고(枯稿), 독개(獨介), 초초(楚楚).

- 이것은 물론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재앙이다.

 나는 이를 간다.

 나는 걸핏하면 까무러친다.

 나는 부글부글 끓는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 철천(撤天)의 원한에서 슬그머니 좀 비껴서고 싶다. 내 마음의 따뜻한 평화 따위가 다 그리워졌다.

 즉 나는 시체다. 시체는 생존하여 계신 만물의 영장을 향하여 질투할 자격도 능력도 없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깨닫는다. ...

 누루(累累)한 이 내 혼수(昏睡) 덕으로 부디 이 내 시체에서도 생전의 슬픈 기억이 창궁(蒼穹) 높이 훨훨 날아가나 버렸으면ㅡ.

 나는 지금 이런 불쌍한 생각도 한다. 그럼ㅡ.

 ㅡ만 26세와 3개월을 맞이하는 이상(李箱) 선생님이여! 허수아비여!

 자네는 노옹일세. 무릎이 귀를 넘는 해골일세. 아니, 아니.

 자네는 자네의 먼 조상일세. 이상(以上)

 

환시기

 

- 태석(太昔)에 좌우(左右)를 난변(難辨)하는 천치(天痴) 있더니

 그 불길한 자손이 백대(百代)를 겪으매

 이에 가지가지 천형병자(天刑病者)를 낳았더라.

- 그야말루 송 군은 지금 절벽에 매달린 사람이오ㅡ. 송 군이 가진 양심, 그와 배치되는 현실의 박해로 말미암은 갈등, 자살하고 싶은 고민을 누가 알아주나ㅡ. ...

 그러나 한 사람의 생명은 병원을 가진 의사에게 있어서 마작의 패 한 조각, 한 컵의 맥주보다도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다.

- 자꾸 삐뚤어졌다구 그랬더니 요샌 곧 화를 내데ㅡ.

 아까 바른쪽으루 비켜서란 소리는 괜헌 소리구 비켜서기 전에 자네 시각을 정정ㅡ그 때문에 다른 물건이 죄다 바른쪽으루 비뚤어져 보이드래두 사랑하는 안해 얼굴이 똑바루만 보인다면 시각의 적능은 그만 아닌가ㅡ그러면 자연 그 블라디보스톡 동경 사이 남북 만 리 거리두 배제처럼 바싹 맞다가서구 말 테니.

 

실화(失花)

 

-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

- 꿈ㅡ꿈이면 좋겠다. 그러나 나는 자는 것이 아니다. 누운 것도 아니다.

- 적빈(赤貧)이 여세(如洗)ㅡ콕토가 그랬느니라ㅡ재주 없는 예술가야 부질없이 네 빈곤을 내세우지 말라고. 아ㅡ내게 빈곤을 팔아먹는 재주 외에 무슨 기능이 남아 있누.

- 꿈ㅡ꿈이면 좋겠다. 그러나 10월 23일부터 10월 24일까지 나는 자지 않았다. 꿈은 없다.

 (천사는ㅡ어디를 가도 천사는 없다. 천사들은 다 결혼해 버렸기 때문이다.)

- 나왔으니, 자ㅡ어디로 어떻게 가서 무엇을 해야 되누,

 해가 서산에 지기 전에 나는 이삼 일 내로는 반드시 썩기 시작해야 할 한 개 '사체'가 되어야만 하겠는데, 도리는?

 도리는 막연하다. 나는 십 년 긴ㅡ세월을 두고 세수할 때마다 자살을 생각하여 왔다. 그러나 나는 결심하는 방법도 결행하는 방법도 아무것도 모르는 채다.

 나는 온갖 유행약(流行藥)을 암송하여 보았다.

 그러고 나서는 인도교(人道橋), 변전소(變電所), 화신상회(和信商會), 옥상(屋上), 경원선(京元線) 이런 것들도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렇다고ㅡ정말 이 온갖 명사의 나열은 가소롭다ㅡ아직 웃을 수는 없다.

 웃을 수는 없다. 해가 저물었다. 급하다. 나는 어딘지도 모를 교외에 있다. 나는 어쨌든 시내로 들어가야만 할 것 같았다. 시내ㅡ사람들은 여전히 그 알아볼 수 없는 낯짝들을 쳐들고 와글와글 야단이다. 가등(街燈)이 안개 속에서 축축해한다.

- 아스팔트는 젖었다. 스즈란도 좌우에 매달린 그 영란(鈴蘭) 꽃 모양 가등도 젖었다. 클라리넷 소리도ㅡ눈물에ㅡ젖었다.

 그리고 내 머리에는 안개가 자옥ㅡ히 끼었다. ...

 법정대학(法政大學) Y군, 인생보다는 연극이 더 재미있다는 이다. 왜? 인생은 귀찮고 연극은 실없으니까.

- "각혈이 여전하십니까?"

 "네ㅡ그저 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치질이 여전하십니까?"

 "네ㅡ그저 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

 "신념을 빼앗긴 것은 건강이 없어진 것처럼 죽음의 꼬임을 받기 마치 쉬운 경우더군요."

 "이상(李箱) 형! 형은 오늘이야 그것을 빼앗기셨습니까? 인제ㅡ겨우ㅡ오늘이야ㅡ겨우ㅡ인제."

- '슬퍼? 응ㅡ슬플밖에ㅡ20세기를 생활하는데 19세기의 도덕성밖에는 없으니 나는 영원한 절름발이로다. 슬퍼야지ㅡ만일 슬프지 않다면ㅡ나는 억지로라도 슬퍼해야지ㅡ슬픈 포즈라도 해 보여야지ㅡ왜 안죽느냐고? 헤헹! 내게는 남에게 자살을 권유하는 버릇밖에 없다. 나는 안 죽지. 이따가 죽을 것만 같이 그렇게 중속(衆俗)을 속여 주기만 하는 거야. 아ㅡ그러나 인제는 다 틀렸다. 봐라. 내 팔. 피골(皮骨)이 상접(相接). 아야 아야. 웃어야 할 터인데 근육이 없다. 울려야 근육이 없다. 나는 형해(形骸)다. 나ㅡ라는 정체(正體)는 누가 잉크 짓는 약으로 지워 버렸다. 나는 오직 내ㅡ흔적일 따름이다.'

 

단발(斷髮)

 

- 공연히 그는 서먹서먹하게 굴었다. 이렇게 함으로 자기의 불행에 고귀한 탈을 씌워 놓고 늘 인생에 한눈을 팔자는 것이었다.

- 사실 그는 무슨 그렇게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있는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악인일 것도 없었다. 말하자면 애호하는 가면을 도적을 맞는 위에 그 가면을 뒤집어 이용당하면서 놀림감이 되고 말 것밖에 없다.

 그러나 그라고 해서 소녀에게 자그마한 욕구가 없는 바는 아니었다. 아니 차라리 이것은 한 무적 '에고이스트'가 할 수 있는 최대 욕구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결코 고독 가운데서 제법 하수(下手)할 수 있는 진짜 염세주의자는 아니었다. 그의 체취처럼 그의 몸뚱이에 붙어 다니는 염세주의라는 것은 어디까지든지 게으른 성격이요 게다가 남의 염세주의는 어느 때나 우습게 알려 드는 참 고약한 아리아욕(我利我慾)의 염세주의였다.

 죽음은 식전의 담배 한 모금보다도 쉽다. 그렇건만 죽음은 결코 그의 창호(窓戶)를 두드릴 리가 없으리라고 미리 넘겨짚고 있는 그였다. 그러나 다만 하나 이 예외가 있는 것을 인정한다.

 A double suicide

 그것은 그러나 결코 애정의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는다. 다만 아무것도 이해하지 말고 서로서로 '스프링보드'노릇만 하는 것으로 충분히 이용할 것을 희망한다. 그들은 또 유서를 쓰겠지. 그것은 아마 힘써 화려한 애정과 염세의 문자로 가득 차도록 하는 것인가 보다.

 이렇게 세상을 속이고 일부러 자기를 속임으로 하여 본연의 자기를, 얼른 보기에 고귀하게 꾸미자는 것이다. 그러나 가뜩이나 애정이라는 것에 서먹서먹하게 굴며 생활하여 오고 또 오는 그에게 고런 마침 기회가 올까 싶지도 않다.

- "...불행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이 제게는 더없는 매력입니다. 그렇게 내어버리구 싶은 생명이거든 제게 좀 빌려주시지요."

 연애보다도 한 구(句) 위티시즘을 더 좋아하는 그였다. 그런 그가 이때만은 풍경에 자칫하면 패배할 것 같기만 해서 갈팡질팡 그 자리를 피해 보았다.

... 소녀는 비로소 '세월'이라는 것을 느꼈다. 소녀의 방심(放心)을 어느결에 통과해 버린 '세월'이 소녀로서는 차라리 자신에게 고소하였다.

 고독ㅡ그런 어느 날 밤 소녀는 고독 가운데서 그만 별안간 혼자 울었다. 깜짝 놀라 얼른 울음을 끊쳤으나 이것을 소녀는 자기의 어휘로 설명할 수 없었다.

- "가령 자기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물을 상 찌푸리지 않고 먹어보는 거 그래서 거기두 있는 '맛'인 '맛'을 찾아내구야 마는 거, 이게 말하자면 '패러독스'지. 요컨대 우리들은 숙명적으로 사상, 즉 중심이 있는 사상 생활을 할 수가 없도록 돼먹었거든. 지성(知性)ㅡ흥 지성의 힘으로 세상을 조롱할 수야 얼마든지 있지, 있지만 그게 그 사람의 생활을 '리드'할 수 있는 근본에 있을 힘이 되지 않는 걸 어떡허나? 그러니까 선(仙)이나 내나 큰소리는 말아야 해. 일체 맹세하지 말자ㅡ허는 게 즉 우리가 해야 할 맹세지."

- 운명에 억지로 거역하려 들어서는 못쓴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나는 오랫동안 '세월'이라는 관념을 망각해 왔소. 이번엔 참 한참 만에 느끼는 '세월'이 퍽 슬펐소. 모든 일이 '세월'의 마음으로부터의 접대에 늘 우리들은 다 조신하게 제 부서에 나아가야 하지 않나 생각하오. 흥분하지 말아요.

- 저는 결코 오빠를 야속하게 여긴다거나 하지 않아요. 애정을 계산하는 버릇은 언제든지 미움받을 버릇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세월'이오? ... '세월'! 좋군요ㅡ교수ㅡ, 제가 제 맘대로 교수를 사랑해도 좋지요? 안 되나요? 괜찮지요? 괜찮겠지요 뭐?

- 단발(斷髮)했습니다. 이렇게도 흥분하지 않는 제 자신이 그냥 미워서 그랬습니다.

 단발? 그는 또 한번 가슴이 뜨끔했다. 이 편지는 필시 소녀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인데 그에게 의논 없이 소녀는 머리를 잘렸으니, 이것은 새로워진 소녀의 새로운 힘을 상징하는 것일 것이라고 간파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눈물났다. 왜?

 머리를 자를 때의 소녀의 마음이 필시 제 마음 가운데 제 손으로 제 애인을 하나 만들어놓고 그 애인으로 하여금 저에게 머리를 자르도록 명령하게 한, 말하자면 소녀의 끝없는 고독이 소녀에게 1인 2역을 시킨게 틀림없었다.

 소녀의 고독!

 혹은 이 시합은 승부 없이 언제까지라도 계속하려나ㅡ이렇게도 생각이 들었고ㅡ그것보다도 싹뚝 자르고 난 소녀의 얼굴ㅡ몸 전체에서 오는 인상은 어떠할까 하는 것이 차라리 더 그에게는 흥미 깊은 우선 유혹이었다.

 

김유정(金裕貞)

 

- 암만해도 성을 안 낼 뿐만 아니라 누구를 대할 때든지 늘 좋은 낯으로 해야 쓰느니 하는 타입의 우수한 견본이 김기림(金起林)이라.

 좋은 낯을 하기는 해도 적(敵)이 비례(非禮)를 했다거나 끔찍이 못난 소리를 했다거나 하면 잠자코 속으로만 꿀꺽 업신여기고 그만두는, 그러기 때문에 근시안경을 쓴 위험인물이 박태원(朴泰遠)이다.

 업신여겨야 할 경우에 "이놈! 네까진 놈이 뭘 아느냐."라든가 성을 내면 "여! 어디 뎀벼봐라."쯤 할 줄 아는, 하되, 그저 그럴 줄 안다뿐이지 그만큼 해두고 주저앉는 파(派)에, 고만 이유로 코밑에 수염을 저축(貯蓄)한 정지용(鄭芝溶)이 있다.

 모자를 홱 벗어 던지고 두루마기도 마고자도 민첩하게 턱 벗어 던지고 두 팔 훌떡 부르걷고 주먹으로는 적(敵)의 벌마구니를, 발길로는 적의 사타구니를 격파하고도 오히려 행유여력(行有餘力)에 엉덩방아를 찧고야 그치는 희유(稀有)의 투사가 있으니 김유정(金裕貞)이다.

 

 누구든지 속지 마라. 이 시인 가운데 쌍벽(雙璧)과 소설가 중 쌍벽(雙璧)은 약속(約束)하고 분만(分娩)된 듯이 교만하다. 이들이 무슨 경우에 어떤 얼굴을 했댔자 기실은 그 교만에서 산출된 표정의 데포르마시옹 외의 아무것도 아니니까 참 위험하기 짝이 없는 분들이라는 것이다.

 이분들을 설복할 아무런 학설도 이 천하에는 없다. 이렇게들 고집이 세다.

 나는 자고로 이렇게 교만하고 고집 센 예술가를 좋아한다. 큰 예술가는 그저 누구보다도 교만해야 한다는 일이 내 지론이다.

 

봉별기

 

- 금홍이는 겨우 스물한 살인데 서른한 살 먹은 사람보다도 나았다. 서른한 살 먹은 사람보다도 나은 금홍이가 내 눈에는 열일곱 살 먹은 소녀로만 보이고 금홍이 눈에 마흔 살 먹은 사람으로 보인 나는 기실 스물세 살이요 게다가 주책이 좀 없어서 똑 여남은 살 먹은 아이 같다. 우리 내외는 이렇게 세상에도 없이 현란하고 아기자기하였다.

 부질없는 세월이ㅡ.

 일 년이 지나고 팔월, 여름으로는 늦고 가을로는 이른 그 북새통에ㅡ.

 금홍이에게는 예전 생활에 대한 향수가 왔다.

- "그렇지만 너무 늦었다. 그만해두 두 달지간이나 되지 않니? 헤어지자, 응?"

 "그럼 난 어떻게 되우. 응?"

 "마땅헌 데 있거든 가거라, 응."

 "당신두 그럼 장가가나? 응?"

 헤어지는 한(限)에도 위로해 보낼지어다. 나는 이런 양식(良識) 아래 금홍이와 이별했더니라.

- 어디로 갈까.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동경(東京)으로 가겠다고 호언했다. 그뿐 아니라 어느 친구에게는 전기기술(電氣技術)에 관한 전문 공부를 하러 간다는 둥, 학교 선생님을 만나서는 고급 단식인쇄술(單式印刷術)을 연구하겠다는 둥, 친한 친구에게는 내 5개 국어에 능통할 작정일세 어쩌구 심하면 법률을 배우겠소까지 허담(虛談)을 탕탕하는 것이다. 웬만한 친구는 보통들 속나 보다. 그러나 이 헛선전(宣傳)을 안믿는 사람도 더러는 있다. 하여간 이것은 영영 빈털털이가 되어 버린 이상(李箱)의 마지막 공포(空砲)에 지나지 않는 것만은 사실이겠다.

- 밤은 이미 깊었고 우리 이야기는 이게 이 생에서의 영이별(永離別)이라는 결론으로 밀려갔다. 금홍이는 은수저로 소반전을 딱 딱 치면서 내가 한 번도 들은 일이 없는 구슬픈 창가를 한다.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굽이 뜨내기 세상 그늘진 심정에 불질러 버려라 운운(云云)."

 

<지도의 암실> 주석 중

- 活同是死胡同 死胡同是活胡同.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로 나뉘어 있다. 최초의 해석은 이어령 교수가 '사는 것이 어째서 이와 같으며, 죽음이 어째서 같은가. 죽음이 어째서 이와 같으며 삶이 어째서 같은가.' (이어령 편, <전작집 1>, 181~2쪽)라고 했다. 김윤식 교수는 '사는 것이 어찌하여 이와 같으며, 죽음이 어째서 같은가. 죽음이 어째서 이와 같으며, 사는 것이 같은가.'(김윤식 편, <전집 2>, 177쪽)라고 이어령 교수와 비슷하게 풀이하였다. 최근 김주현 교수는 이 대목을 백화문으로 보고, '뚫린 골목은 막다른 골목이요, 막다른 골목은 뚫린 골목이다.' (김주현 편, <전집 2>, 154쪽)라는 새로운 해석을 제기한 바 있다. 이 구절이 한문식 독법과 백화문식 독법에 따라 그 의미가 전혀 달라진다는 점을 밝힌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상(李箱) 자신도 바로 이 같은 성질을 활용하고자 의도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구절의 기호적 중의성(重義性)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에 맞춰본다면, '살아 있는 것이 곧 죽은 것이며, 죽은 것이 곧 살아 있는 것이다.'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상 전집 2. 단편소설, 권영민 엮음, 문학에디션 뿔, 2009

 

 

쇠렌 키르케고르

Posted by 히키신
2017. 3. 7. 00:54 음미할만한 말과 단편들

불안이란 자유의 현기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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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Posted by 히키신
2017. 3. 7. 00:53 음미할만한 말과 단편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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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속담

Posted by 히키신
2017. 3. 7. 00:52 음미할만한 말과 단편들

To understand all is to forgive 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