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아우토노미아 운동' - 우리에게 자발적 대중은 가능한가?

Posted by 히키신
2016. 6. 5. 23:45 영원의 지헤, 그리고 철학

몇 년 전부터 국내에 소개되어온 아우토노미아 운동은 우리에게 두가지 방식으로 읽혀지고 있다. 하나는 90년대 이후 침체되어온 변혁운동 ‘조직’의 새로운 대안으로서, 다른 하나는 개인과 국가라는 억압적 질서를 전복시킬 반(反)정치학으로서이다. 이러한 가능성을 떠안고 아우토노미아는 이미 우리나라의 부문운동과 적잖은 교접을 시도하고 있다. 이미 학생운동 진영의 일부는 꼬뮤니즘적 시도로서 아우토노미아를 주목하고 있고, 최근에는 페미니즘까지 구획적인 성정체성을 횡단하려는 기획 아래 이 운동과 접선을 만들고 있다.

80년대와 90년대를 넘나들며 운동에 ‘경험이 있는’ 세대라면 이 대중의 자발성이란 것에 대해 의심을 품을 만하다. 여태껏 우리는 대중의 자발적인 변혁시도를 경험한 적이 드물며, 게다가 전위로서의 오랜 경험 덕에 자발적인 대중의 그림조차 그리기 어려운 실정인지 모른다.
이런 찰나, 조지 카치아피카스의 내한은 일종의 청량음료와 같다. 이번이 두 번째 방한인 그는 지난 13일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와 ‘진보평론’이 공동주관한 “유럽의 아우토노미아 운동”이라는 콜로키움에 발표자로서 참석했다.

카치아피카스는 우선 유럽의 아우토노미아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을 볼 경우, “혁명을 위해 모인 자들도 있지만, 집이 필요해서 혹은 부모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과 같이 다양한 군집들이 형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이론적 실천이 결여되어 있을 위험성이 있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어떤 이데올로그도 필요 없다. 따라서 알튀세르가 발견했던 이데올로기로부터 언제나-이미 자유로울 수 있으며, 권력에 예속될 수밖에 없는 푸코적인 딜레마로부터도 벗어나 있다.

그렇지만 카치아피카스의 부연이 우리의 의구심을 완전히 씻기우지는 못한다. 아우토노미아 운동의 근간이 비조직에 있다고는 하지만, 핵발전 시설에 반대하고 건물을 불법적으로 점거하는 데에 어떤 추동력도 없었다는 것은 믿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카치아피카스의 말대로 아우토노미아가 “주변성의 힘”이라고 정의될 수는 있어도, 한국적 경험의 감정구조(structure of feeling)로서는 이 주변적인 힘마저 포괄·결집하면서 전략·전술을 수립하는 동작방식이 존재할 것이라는 의심이다.

이러한 의문이 떨어지자 카치아피카스는 “아우토노미아에는 여러 군집이 존재한다”는 전제를 상기시키며 “그 그룹 중의 일부가 선전작업의 일부를 떠맡을 수는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곧 이들의 회합방식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의 답변인 즉, “아우토노미아 참가자들은 하루에도 수십번씩 회의를 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싸움으로 회의가 도배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토론의 주제 역시 전략을 수립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것일 수 있지만, 공동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문제며 다양하기만 하다.” 그의 답변은 이들이 누구에 의해 계몽되거나 조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것이다.

아우토노미아가 자랑하는 ‘주변성의 힘’은 어떤 복수적이거나 몰적인 동작방식에 의존하지 않고, 이와 대비되는 단수적(singular)이며 분자적(molecular)인 초한적 추동력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궁금증은 여전하다. 그래도 뭔가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침잠되어 있는 것이다. 레이건이 독일에 방문했을 때 모였던 수만 군중이 정말 자발성에 의해서만 모였을까 하는 여전한 의심이다. 이에 대해 이날 콜로키움에 참가했던 윤수종 교수(전남대 사회학과)는 “우리가 이해하기 힘들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며 “서로(서구와 우리)가 가졌던 애초의 출발점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카치아피카스의 대답이 시원치 못한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우리로서는 전혀 체득치 못한 ‘대중의 자발성’과 ‘전위의 부재’에 대한 무경험이 가져오는 평행선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변혁운동이 아우토노미아 운동을 수용할 때 이 부분이 가장 맹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당장에 아우토노미아가 우리에게 체득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유럽과는 달리 부문운동간의 네트워크적인 횡단적 가로지르기가 부재했던 탓이다. 가령 우리의 변혁노선은 IMF 당시 노숙자들이 서울역을 ‘점거’했을 때, 연대활동은 물론이고 어떤 설득적인 비전조차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노동자들 역시 전위-대중의 이항적 구도를 깨뜨리기에는 ‘사회적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이 성숙되지 못하였기는 매한가지이다.

그러나 카치아피카스의 방한과 이를 둘러싼 쟁점의 발산은 분명 우리를 새로운 경험의 장으로 유도하고 있다. 아우토노미아 운동이 우리에게 체득, 그야말로 몸으로 닿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눈에 점점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김성윤 기획위원> caupress@press.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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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아우토노미아 운동

토론내용 보기
조지 카치아피카스(미 웬트워쓰대 교수)


발표자 소개

신좌파의 상상력, 웬트워쓰 institute for technology 교수. 68년에 활동.

60년대 학생운동. 反 WTO 운동에도 참여. 오늘날 국제적 연대관계 수립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 신자유주의가 지구적인 운동이기 때문에, 우리도 지구적으로 연대해야함. 민중에게 권력을!

<윤수종 선생의 발제>

신좌파의 상상력에서 제기된 운동들이 이후에 어떻게 전개되었나. 전투적, 적극적 운동들은 80년대 독일에서 주로 이루어짐. 이 책은 주로 독일에 대한 것. 전체적인 입장은 하버마스 의식을 선호하는 듯. 체제의 억압에 대항해 일상생활의 식민화되기 때문에, 식민화되는 일상생활을 자율적으로 조직화해서 넘어서자는 초점. 신좌파의 상상력에서는 에로스 효과를 강조했는데, 여기서는 그다지 강조하지 않음. 아우토노미아 운동은 나름대로 조직화된 운동이라는 측면이 있기 때문. 전체적으로는 자생성을 강조. 자기조직화라는 개념 등을 사용. 주변화된 사람들이 체계에 대해서 전투적으로 거부하고 나선다는 것이 기본테제. 특히 서구, 독일의 경우 80년대 실업, 특히 청년실업, 주택 부족 등의 문제. 주요운동으로 점거운동이 가장 중심적. 뿌리가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공장 내 노동자들에 의해 제기, 확산. 서독의 경우에는 여러 원천.
1)여성운동. 기존의 전통적 운동에 도전. 집중화된 조직 모델에서 자율화된 공간을 찾아나가는 지점
2)반핵, 평화운동. 원자력 발전소, 고속도로 건설 반대. 아예 그 장소를 점거, 거주하는 다른 특징. 공간을 점거하면서 다른 활동을 벌여나가는 흐름이 아우토노미아적 흐름
3)청년문화. 신좌파에서 펑크좌파로. 주변화되기 쉬운 상태에 있는 청년문화. 음악 등을 통해 다른 삶을 추구.
4)대안(alternatives). --- 아우토노멘(자율주의자 집단)
특징들로는 인공적인 지도자를 거부하기 위한 스키마스크. 국제적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흐름. 내부문제 발생(성차별주의, 마약문제)했을 때 내부적으로 정화해나가는 과정. free republic(?) 다른 한편으로는 무장운동의 흐름이 내재. militancy 조직화. 여성 militant group(Red Zoras). 통독이후 신나치주의자의 흐름이 나타나면서, 반파시즘 운동이 아우토노미아 운동의 큰 줄기로 변모됨. 80년대에는 자율적 공간 창출이 중심이었다면, 90년대에는 반나치주의.
이후에는 녹생당과의 관계 등에 대해 기술. 의회활동에 집중. 출신은 풀뿌리 민주주의에서 출발했지만, 집중화된 모델. 아우토노미아를 적군파와 녹색당 사이에 놓여있는 흐름. 전통적인 좌파에 대해서는 이념중심적, 집중화된 조직, 지도와 명령 등에 대해 비판. 대의민주주의에 대항해서 참여민주주의. 네그리 비판, 벤하빕... 정치를 전복하자!(대표 반대, 자율적 집단 강조)
결론은 마음(heart)의 합리성. compulsory relocation. 일상생활의 탈식민화와 민주주의. 정체성(identity)의 정치. particule을 보편적으로 확장


<발표>

아우토노미아 운동의 가장 중요한 운동의 중요한 측면은 68년에 시작된 혁명이 아직도 진행중이라는 점. 이탈리아도 1969년에 일어났던 운동들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침. 이탈리아의 운동들이 1999년에까지 영향을 미침. 청소년운동, 여성운동 등. 이러한 운동들은 사실상 정부의 강압적인 조치들에 의해서만 억압될 수 있었는데, 적군파의 수상 납치 등의 일 이후에 주로 억압됨. 독일에서도 독일의 가을. 납치, 살해 이후 국가권력의 억압. 아우토노미아 운동의 공간은 게릴라 활동과 의회집단의 합법적 활동 사이에 존재. 아우토노미아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두 가지. 범죄화와 의회 영역안에 통합하는 두 가지 방식. 특성은 노동자운동(이탈리아)에서 기원. 이러한 상식적 견해와는 달리, 노동자 운동 이전에 여성들의 움직임(19세기 말). 아우토노미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성격을 가로지르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 실질적으로는 직접 민주주의 이상이며, 의회주의에 대한 불신. 정당의 규율보다는 자기규율(self discipline)을 중시. 아우토노미아운동의 역사는 이탈리아에서 시작, 스위스, 암스테르담, 독일, 덴마크 등등으로 확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주택점거운동(squatter)이 독일이나 암스테르담으로 전파, 더욱 확장. 독일 아우토노미아 운동은 하나의 쟁점을 문제삼아서 결집한 성, 평화, 반핵 등의 단체. 이러한 각각의 특성들이 나중에 종합되어서 아우토노멘이라는 이름. 처음에는 개별적으로 시작됨. 독일인들은 자신의 운동을 아우토노멘이라고 붙인지 5년이 지난 후에야 네덜란드 사람들이 자신을 그렇게 호명. 코펜하겐의 사람들도 자신을 그렇게 부르기 시작할 때 주위의 스위스 등의 많은 사람들도 자신의 정체성을 그렇게 규명. 1990년대에 있어서의 변화는 아우토노미아 운동의 초점을 신나치에 맞추는 것. 이러한 초점의 변화의 필요성은 집단적인 보건위생의 문제, 여성의 문제이 기반이 됨(?). 예를 들어, 독일 경찰들은 네오나치들이 이민노동자들을 공격하는 것을 방관. 도리어 아우토노미아 운동들이 세력을 동원해서 네오나치의 폭력을 저지. 90년대의 두번째 변화는 아우토노미아 하우스(점거한 주택을 합법화하는 운동)에... 재개발(gentrification?)을 막는 운동. 이러한 운동이 동독, 체코 등으로도 옮겨가고 있다. 동독의 신세대는 펑크 좌파와 다른 세대들이 나타남. (아우토노미아에 더 영향을 받음). 슬라이드를 보면서 토론합시다.



반핵 운동. 다국적기업이 핵폐기장 건설. 아우토노미아 운동가들이 촌락을 지음.

벤 나무로 지음

여성들의 집. 모든 거주자들은 다양한 도시로부터 와서 각자 집. 다른 운동에서 출발했지만, 여러 가지 정치적 이슈들에 대해 얘기하면서 관계를 만들어냄

브레멘시에서 온 집단. 많은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서 알지 못했지만 집단 토론이후 알게 됨

직접민주주의의 형태. 주요한 이슈는 경찰이 왔을 때 어떻게 싸울 것인가? 비폭력적 방식으로 싸울 것을 결정

경찰이 온 상황. 사람들은 앉아있고, 주위를 둘러싸고 경찰들이 있는데. 2차 대전 이후에 가장 많은 경찰이 동원

경찰의 폭력성을 보여줌

소극적인 저항의 형태

그러한 사건 이후 다국적 기업이 지은 건물의 모습

아우토노미아 운동가들이 모였던 마지막 탑. 쓰러뜨리기 직전의 모습

시위대 공격을 막기 위한 물대포

같은 시기의 베를린 모습. 점거된 집

굉장히 큰 빌딩, 베를린장벽에서 떼어낸 돌로 만든 집. 1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듬. 정치에 대해 토론하면서 급진화됨. 대부분이 젊은이들. 젊은 노동자들, 학생. 결혼한 경우에는 터키 사람들 등. 집세를 내지 않기 때문에 돈이 필요없고, 서로 나눠먹거나 파트타임. 정부로부터 돈을 받기도 하고, share jobs일자리 나누기, 100명이 5대의 차

자체가 위험한 장소이므로 자격은 필요없는데, 점거자가 되었을 때는 선별하기 시작. 사람들간의 갈등이 생기는 경우에는 토론. 여성만 점거한 경우도. 건물 안에 엄격한 규율이 있는 경우도 있음. 이탈리아나 암스테르담과 달리 건물이 매우 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기 때문에, 역동적인 모습이 나타날 수도 있음. 목적은 뭔가? 혁명적 목적의 일부일수도, 부모의 학대를 피해 도주한 사람들, 비싼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 다양한 동기가 있음. 아우토노미아가 되어가는 과정. 조직의 물신숭배가 없는 상황. 누가 아우토노미아 운동의 일원인지도 모르는 상태. 처음에는 비합법적이었지만, 최근에는 합법화. 메링 홀(도서관, 댄스 홀...), 합법화된 이후에도 경찰이 덮치는 경우도 있음.

기지에 1987년에 바리케이트에 불을 지름. 아우토노멘들이 불을 지름

레이건이 독일을 방문했을 때, 미디어는 미국-독일 국기만 흔드는 것을 보여줬지만, 급진적 시위가 있었음
경찰은 8시간 분리. 점거자와 같은 이들. 여성, 환경, 반핵. 조직이 없는 운동이 아우토노미아 운동. 메링 홀(merrying hall)에서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술을 많이 주지 말라고 하기도 함. 회의 조차 갖지 못하는 경우도 있음. 내일 데모가 있으니까. 조직, 위계질서, 이념 조차도 없는 상태에서 운동이 진행되는 상태. 서로 분리되어 있다가 반나치주의에 대한 이슈에 대해 서로 연합하는 방식으로 구체적인 모습을 갖췄다. 이 시위에 좌파 노동당 등 조직적으로 개입하는 경우는 없나? 젊은 노동자. ....



주택이나 직업난이 심각할 때, 이러한 아우토노멘들이 나타남. 주변화되고 배제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것. (전통적인 좌파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음) 주변화된 사람들의 힘



아우토노미아 포스터. 자체로서는 정치적이지 않음. "혁명은 모든 것이고, 그 나머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왜 로자 룩셈부르크냐? 전통적 좌파와 다른 측면이 다른 측면. 자유를 평등과 바꾸지 않고, 자생성을 강조했던 사람이므로, 좌파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기 때문. 이해의 차이. 있는 것으로부터 출발. 메링 홀내에서 난상토론이 생김.

여성, 아우토노미, 점거자 상징. 집회가 있기 전에 가장 중요한 이슈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자본주의를 상위에 두고 가부장제에 흡수하려는 것에 대한 토론. 네그리에 대한 비판

비폭력적으로 시위

함부르크, 하펜스트라세. 점거된 건물.

100m이전에 사치스러운 호텔. 그래서 정부는 맞은 편 점거된 건물들을 없애려고 함

서로 다른 그림. 끊임없이 바뀜. 모든 나라의 범죄자들이여, 단결하라

모든 고양이는 7개의 목숨을 가졌다. 건물에 대한 상징 표어

점거지에 사는 어린이

구의회 담당자 사무실에 도끼를 던짐

경찰이 건물을 부수는 장면

트레일러가 경찰에 의해 폐쇄됨

이렇게 살 수 있는 집이 많은가? 도시 중심의 슬럼화 현상에서 비롯. 고급 호텔이 들어서는 대신에 매춘, 마약굴. "우리는 콘크리트 정글에서 살지 않겠다."

우리의 권리를 위해 싸우자

건물 바로 건너편, 함부르크 항만

경찰이 들어가도록 설치물

경찰이 들어가려고하자, 사람들이 물건을 던짐. 술

주위에 사는 노인들 사람들이 지지.

우익 신문, 정면에는 바리케이트 쓰레기. 무전기를 가진 사람, 화염병을 만드는 사람, 뜨거운 물, 화염병, 돌 쌓은 장면, 총기. 왜 경찰이 들어가지 못하는가를 설명. 당신들의 시간이나 세라, 우리는 세지 않겠다

바리케이트, 경찰이 오지 않도록. 1987년. 경찰과 싸움

승리 행진

Fight the Power, 술집

모든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고, 원하는 만큼만 내는 식당

방문객 두치케의 미망인

이민 노동자 아이들이 독일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모습

동독. 버려진 동독 차량

폐쇄된 철강 회사

전체 공장이 폐쇄

동독을 해방시키기 위한 러시아 병사의 무덤

1989년 이후

암스트레담 1980년대. 여왕즉위식 때 싸우는 장면

암스트레담의 점거된 집

경찰이 크레인 동원해서 지붕으로 들어감

점거자들이 도시 바깥으로 쫓겨남

점거된 커피숍. 중요한 회의가 열림

젊은 사람들이 심하게 매를 맞아서 나체 시위

마약 진입 금지

군인이 있었던 장소를 사람들이 점거

크리스티나에서 만든 자전거

여러 가지 재료로 꾸민 집

독일 아우토노미아처럼 전투적으로 되는데, 도시 일부 점령, 해체

콜로키움 토론 정리



발표문 보기


주택점거자들은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는가?
집세를 내지 않기 때문에 큰 부담이 없고, 서로 나눠먹거나 파트타임에 종사한다. 정부로부 터 돈을 받기도 하고, 일자리를 나누기도 한다. 100명에게 5대의 차가 있으면 그것을 공유하 는 것이다.

그런 주택에서 살기 위해서는 어떤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

자체가 위험한 장소이므로 자격은 필요없는데, 점거자가 되었을 때는 내부 규칙을 따라야 한다. 사람들간의 갈등이 생기는 경우에는 토론을 통해 해결한다. 여성들만의 공간도 있다.

이들 점거의 목적은 뭔가?

혁명적 목적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부모의 학대를 피해 도주한 아이, 비싼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까지 다양하다. 주택이나 직업난이 심각할 때, 이러한 아우토노멘들이 나타난 다. 곧 주변화되고 배제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것이다. 전통적인 좌파들은 이들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

포스터에 왜 로자 룩셈부르크의 이름이 있나?

그것은 그녀가 전통적 좌파와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곧 자유를 평등과 바꾸 지 않고, 자생성을 강조했던 사람이고, 따라서 좌파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 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 수 있는 집이 많은가?

그것은 도시 중심의 슬럼화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재개발이 되는 상황에서 이들은 "우 리는 콘크리트 정글에서 살지 않겠다."라고 외친다.

한국적 상황에서 사람들은 전투성은 군대식 규율 등을 통해 가능하다고 생각해왔다. 어떻 게 금욕적이지 않고 재미있는 형태와 전투성이 같이 갈 수 있는지 궁금하다.

한국운동이 이들 운동에 비해 더욱 전투적인 것은 사실이다. 독일 사람들도 한국의 뉴스를 통해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는 조직화된 것과 전투성은 항상 같 이 가기는 어렵다. 조직화되면서 전투적이면 경찰의 탄압의 대상이 되므로, 전략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우토노미아 운동에서 여성운동이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때, 어떤 방식의 직접적이고 전투적인 행동이 가능한가?

이러한 방식으로 사는 것, 집단적으로 사는 것 자체가 직접행동이다.

아우토노미아 운동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뭔가? 너무 낙관적이고, 이들 운동을 미화하는 것은 아닌가?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현재는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소수자운동의 한계점에 대 해서도 기술했다. 소수자 운동은 아직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아우토노미아 운동은 뚜렷한 전망이나 목표가 없고 자기만족적인, 참여하는 것 자체에 의 미를 두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출발은 자발적이라고 할지라도 전략, 전략을 추진할 수 있 는 조직이 생겨야되지 않느냐?

목적과 과정에 대한 질문은 중요하다. 아우토노미아 운동의 목적은 일상 생활을 바꾸는 것 이다. 곧 내 자신의 정체성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전술과 전략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전 술은 구체적 전투에 들어가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 더욱 적합하다. 반면 전략은 거대한 행동방식으로, 항상 위에서 부과될 가능성이 있다. 공산 주의자들은 혁명에 대해 얘기만 한다. 아우토노미아의 가장 중요한 초점은 실천이고, 실제로 행동함으로써 역동성과 변화를 가질 수 있다.

지금까지 얘기된 것과 정반대의 관점에서 질문하고 싶다. 신좌파의 상상력을 읽고 오히려 68운동에 대한 평가가 너무 전통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질적 변화가 없었다는 평가가 아 우토노미아 운동의 가능성을 막는 것은 아닌가?

내가 말하는 질적 변화는 여러 가지 운동들이 횡단적으로 가로질러서 접속하는 것을 의미 한다. 나는 정체성의 정치를 강조하고 싶은데, 이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아주 보편적인 가치를 가지는 운동이다. 미국의 흑인 해방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미국인들 을 해방시키자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복잡한 인종들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것이 없 었다는 점이 문제이다. 그것이 질적 변화가 없었다고 말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략, 조직이 없었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출처 : 한국노동정책이론연구소
http://kilsp.jinbo.net/colloquium/col49.html)

남회근 선생과 그의 저서을 소개합니다

Posted by 히키신
2016. 5. 31. 11:19 영원의 지헤, 그리고 철학


一代의 종사宗師
현대의 유마거사


선생의 약력

남회근(南懷瑾) 선생은 1918년 중국 절강성 온주(溫州) 낙청현(樂淸縣)의 대대로 학문을 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대대로 선행하기를 즐기고 베풀기를 좋아했으며 대대로 출가자가 있어서 역사상 몇 분의 고승이 나왔다고 한다.
6세 때부터 수천 년 이어져온 구식 교육인 서당교육을 받기 시작하여 사서오경(四書五經)을 읽고 외웠다.
11세 때 현(縣) 소재의 소학교 마지막 학년에 편입하여 공부했다.
13세 때 서당 글공부도 다 마치고 소학교도 마쳤다. 중학교에 진학할 형편이 못되어 이때부터 3년 동안 집에서 자습을 했는데 이 시기에 사기(史記) · 문선(文選) · 강감이지록(綱鑑易知錄) · 당시송사(唐詩宋詞) 등을 두루 공부했으며 홍루몽 · 삼국연의 · 수호전 그리고 무협소설들도 구해다 읽었다.
17세 때 고향 구석에 박혀 지내고 싶지 않았다. 천하에 나아가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사업을 하고 싶었다. 항주절강국술관(杭州浙江國術館)에 입학하여 내공(內功) · 외공(外功) · 소림(少林) · 태극(太極) 등 각문각파의 무림고수들로부터 권법(拳法) · 봉술(棒術) · 검도 등 중국무예를 2년간 배웠다. 무예 외에도 국문(國文) · 역사 · 생리 등의 문화교과과정을 배웠다. 한편 과외로 상무인서관(商務印書館) 편 대학총서(大學叢書)를 빌려 읽었다, 그리고 항주 고산에 있는 문란각(文瀾閣)에 소장된 사고(四庫)전서를 빌려 읽었다. 또 한지암(閑地庵)에 늘 다니며 그곳의 장서를 읽으며 비본의 도서(道書)들을 찾아내었다. 재학기간 2년 동안 그는 무공을 배웠을 뿐 아니라 문학 · 서예 · 의약 · 역학 · 천문역법 등 도 깊이 익히며 적지 않은 책을 읽었다. 그리고 항주의 명승고적을 두루 찾아다니고 도인을 찾아 진리를 얻을 생각이 더 많았다. 도를 얻은 높은 사람을 일심으로 찾아 세상을 구제하는 천하무적의 재간을 하나 배우고 싶었다. 한 번은 알게 된 어떤 스님이 그에게 금강경(金剛經)을 주어 3일 동안 읽었는데, ‘무아상(無我相) · 무인상(無人相) · 무중생상(無衆生相) · 무수자상(無壽者相)’이라는 구절을 읽을 때 온통 공령(空靈)하여 ‘아(我)’를 찾을 수 없는 경지를 체험했다. 남선생은 그 스님에게 달려가 왜 그런 경지가 나타났는지 물었다. 스님은 말했다. “그대는 정말 대단하다. 남은 수십 년을 수행해도 그렇지 못하는데 그대는 금강경을 3일 읽고 그런 경지에 도달했다니 그대는 바로 재래인(再來人 : 전대에 유명한 사람이 다시 태어나 온 사람)이다.” 남선생은 그런 말에 개의치 않았다. 훗날 회상하여 말하기를 사실 자신은 그때 이미 깨달았으나 당시 자신이 몰랐을 뿐이었으며, 그래서 훗날 수십 년을 많은 길을 에돌아갔다고 했다.
1937년 남선생은 1등 성적으로 절강국술관을 졸업하고 무술교관자격을 획득했다. 얼마 있지 않아 중일전쟁이 발발했다. 남선생은 국술관을 졸업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사천성 성도(成都)로 갔다. 한 동안 성도에 머물면서 아무 일도 하는 게 없던 그는 먼 곳으로 사업을 하러 갔다. 천강(川康)변경 대소량산(大小凉山)지구로 가서 그곳에 대소량산간식공사(大小凉山墾殖公司)를 설립하고 사장 겸 자위단(自衛團) 총지휘를 맡았다. 궁벽한 황무지에서 땅을 개간하며 한 무리의 군대를 이끌고 국가를 보위하는 사업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1년이 못되어 간식장을 포기하고 성도로 돌아왔다.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의빈(宜賓)에 있는 금민(金岷)일보사에 들어가 편집책임자로서 짧은 기간 동안 일했다.
의빈에서 성도로 돌아온 그는 공직에 들어가고자 알아보았다. 그리하여 성도에 있는 중앙군관학교(中央軍校) 군관(軍官)교육대에서 소령등급으로 무술교관과 정치지도원을 맡았다. 아울러 중앙군관학교 정치연구반 제10기로 졸업했다. 한편 금릉(金陵)대학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도 연구하였다. 중앙군관학교의 당시 교장은 장개석(蔣介石)이었다. 교관으로서의 남회근은 수업이외에는 비교적 자유로워 일요일 등 여가시간을 이용하여 도처로 진리를 얻고자 도인을 찾고 유명 인사들과 사귀였다. 그들 중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원환선(袁煥仙) 선생이었다. 성도부근 관현(灌縣) 청성산(靑城山)에 영암사(靈巖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당시 그곳에는 풍우란(馮友蘭) · 전목(錢穆) · 곽본도(郭本道) · 이원징(李源澄) · 왕은양(王恩洋) · 부진오(傅眞吾) 등 명성이 쟁쟁한 학자들이 머물고 있었다. 여기서 원환선 선생을 알게 되었다. 원환선은 호가 염정(鹽亭)노인으로 사람들은 그를 대선사·대거사로 불렀다. 당시 원환선은 폐관 수행 중이었다. 원환선은 남회근이 어린 나이지만 보통의 인물이 아님을 알아보고 그를 제자로 삼아 도(道)를 전해주고자 했다. 남회근이 원환선 선생을 처음 알았을 때는 그가 대 명인일 뿐 선종대사인줄은 몰랐다. 당시 남회근은 선종에 대해 깊게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원환선 문하에 들어간 남회근은 그의 일생의 진로를 바꾸었다. 방문좌도(旁門左道)에 대해서는 이미 큰 흥미가 사라져버렸고 중앙군관학교의 무술교관직도 마음에 두지 않게 되었다. 오로지 원환선을 따라 불교와 선(禪)을 배울 뜻뿐이었다.

1942년 겨울 원환선(袁煥仙) 선생이 폐관을 마치고 성도에 유마정사(維摩精舍)를 창립하였는데 일종의 불교의 선종도량이었다. 남선생은 중앙군관학교 교관 직을 사직하고 원환선을 따랐다. 처음에는 남선생 한 사람만이 신변을 따랐으나 뒷날 원환선의 제자들은 갈수록 많아졌으며 많은 사람들이 남선생보다 나이가 열 살 혹은 스무 살 이상 연장자였다. 원환선은 유마정사에서 강의를 하였는데 그 내용이 풍부하고 유불도(儒佛道) 삼가 학문에 관련된 것이었다. 강의를 남선생과 기타 제자들이 함께 기록하여 엮은 책이 유마정사총서(維摩精舍叢書)이다. 이 해 겨울 원환선 선생과 함께 중경으로 가서 허운(虛雲)대사를 뵙고 친히 가르침을 들었다.
1943년 가을 남선생은 스승께 인사도 없이 몰래 아미산(峨眉山)으로 폐관하러 떠났다. 폐관했던 대평사(大坪寺)는 아미산 중봉(中峰)에 있는 절인데 사원의 규정에 따라 출가승처럼 삭발하고 승복을 입고 하루 한 끼 낮 식사만 했다. 먹는 것으로는 고추 · 소금 그리고 말린 채소류였으며 초하루와 보름에만 약간의 두부를 먹었다. 3년 동안 외부와 모든 연락을 끊고 대평사 깊은 방에서 홀로 지내며 팔만대장경을 완독했다.
1945년 폐관을 마치고 산에서 내려온 남선생은 또 오통교(五通橋) 다보사(多寶寺)에서 폐관 수행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많아 마침내 한 제자의 집으로 옮겨 지내며 선 수행을 하는 한편 영락대전(永樂大典) · 사고전서비요(四庫全書備要) 등 경전과 역사 전적들을 읽었다.
그 뒤 신통이 구족한 풍혈(風穴)화상을 모시고 통역인과 함께 멀리 서강(西康)과 티베트로 들어가 밀교의 각 종파의 상사(上師)들을 참방하고 여러 상사로부터 밀교상사로서 인증을 받았다. 특히 공갈활불(貢噶活佛)은 뒤에 성도에서 특별히 남선생을 위해 현교와 밀교의 대소(大小)계율을 전하고 친히 티베트어로 전법전계(傳法傳戒)증서를 써주었다.

그 뒤 곤명(昆明)으로 가서 운남(雲南)대학에서 한동안 가르치고 다시 돌아와 사천(四川)대학에서 가르쳤다.
1946년 말 곤명을 떠나 항주를 거쳐 고향에 돌아왔다. 이것이 고향을 떠난 후 두 번째 귀가이자 마지막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1947년 집을 떠나 항주의 천축사(天竺寺)에 은거하면서 절강성성립도서관 소장의 문연각(文淵閣) 사고전서(四庫全書)와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을 자세히 읽었다. 이어 강서성 여산(廬山)의 천지사(天池寺) 곁에 오두막을 지어 수행하였다.
1948년 대만에 갔다가 3개월 후에 돌아왔다.
1949년 봄 부모와 처자식을 남겨두고 책 보따리만 지닌 채 다시 단신으로 대만에 갔다. 이때가 31세였다.
30세 이전의 남선생의 경력은 전기적인 색채가 상당히 짙었다. 주목할 점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불문(佛門)으로 출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심지어 20여세 때 장개석의 비서로 추천되었지만 하지 않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불법과 선종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20대의 젊은 나이에 도를 얻고 깨달은 사람으로 인정되었지만 불문으로 출가하지는 않았다.

1949년 2월 28일 대만에 도착하여 1985년 7월 4일 떠나기까지 줄곧 36년간 대만에 살았다.
대만 기륭(基隆)에 정착한 남선생은 세 척의 선박으로 해운업을 시작하여 몇 달간은 순조로웠으나 선박들이 뜻밖에 대만으로 퇴각하는 국민당정부에게 강제 징용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알거지로 변했다.
1950년대 남선생은 해운업을 했던 몇 개월간 이외에는 일생 중 생활이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해운업에 실패한 후 대북시로 이사하여 한 채소시장 근처에 집을 얻어 살았다. 몹시 빈궁한 가운데도 문화방면에 온 힘을 쏟아 중화문화의 발전을 위해 묵묵히 씨앗을 뿌리고 김을 맸다.

1960년대에서 70년대 중기까지는 남선생의 사업공로가 빛나고 왕성하던 시기였다. 이른 바 저작이 키만큼이나 되고 제자들이 천하에 가득한 국면이 바로 이 시기에 형성된 것이다.
1963년 중국문화대학에 교수로 초빙되었는데 대만에서 처음가진 정식 일자리였다. 뒤에는 보인(輔仁)대학에서도 초청하여 철학과 선종(禪宗)을 강의했다.
이 기간은 비교적 안정된 생활환경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대학에서 강의하는 한편 사회단체 여기저기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하지만 남선생은 그런 현실상황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큰 무대 더욱 큰 범위에서 전통문화를 널리 보급함으로써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좋은 것들을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남선생의 강의 특징은 강의원고가 없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그의 40여종의 저작들은 대부분 강의 녹음테이프를 기록 정리하여 출판된 것이다. 그의 일부 저작은 오늘날 영어 · 불어 · 네덜란드어 · 스페인어 · 포르투갈어 · 이탈리아어 · 한국어 · 루마니아어 등 8개 국어로 번역 유통 되고 있다.
1969년 8월 외국국적의 학자전문가들과 남선생의 제자들이 계획하여 미국캘리포니아에 동서정화협회(東西精華協會)를 설립하였다. 동년 11월 대북에 동서정화협회 본부를 창립하고 남선생이 회장을 맡았다. 또 11월에는 중일문화방문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방문했다.
1971년 4월 인문세계(人文世界) 잡지를 창간하여 거의 10년간 운영했다. 자신의 여러 저작들을 먼저 동 잡지에 발표했다.
1976년 노고(老古)문화사라는 출판사를 설립하여 자신이 발행인이 되었다.
1976년 말 남선생은 시끄러운 도심에서 3년간의 폐관에 들어갔다. 이번이 일생 중 두 번째 폐관수행이었다.
1979년 말 폐관을 마치고 출관했다.
1980년 1월 시방총림서원(十方叢林書院)을 개원했다. 이미 정간된 인문세계 잡지를 이어 지견(知見) 잡지를 창간했다.
이후 역경 · 장자 · 사서(四書) 등 강좌를 개설하고 강의하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수강했다. 그리고 매주 목요일 저녁 특별반을 두어 사기(史記) · 장단경(長短經) · 전국책(戰國策) · 소서(素書) · 음부경(陰符經) 등에서 발췌한 자료로 역사철학적인 면에 비중을 두고 4년 남짓 강의했다. 참가자 대부분은 정관계 · 경제계 · 방송계 · 교육계 등의 고위층 인사들이었다.
1985년 7월 미국으로 떠나 2년 반 동안 머물다 1987년 12월 31일 떠나 홍콩으로 이주 은거하면서 학문을 강하는 한편 중국의 통일을 위해 힘썼다.
한편 중국 절강성의 금화(金華)에서 온주(溫州) 간 251km의 철도건설 난공사를 주창, 절강성 정부와 총공사비 인민폐 30억 위안에 달하는 합작투자를 했다. 1992년 공사를 시작하여 1997년 4월에 완공 개통했으며 준비기간을 포함하여 10년이나 걸렸다. 과거에 7번이나 시도했으나 이루지 못한 이 난공사(터널 66개 총길이 31km, 교량 123개 총길이 14km, 배수로 970개)를 성공시킴으로써 그 지역 2천만 주민의 반세기 숙원을 풀어주고, 자신은 초연히 물러났다.

그 밖의 활동을 소개하면, 미국 버지니아주에 동서방문화학원, 캐나다 토론토에 중국문화서원, 홍콩에 국제문교기금회를 설립하였다. 중국 온주에 남씨의약과학기술기금회 · 농업과학기술기금회 를 설립하고, 낙청현의 고향자택을 중건하여 지방정부로 하여금 노유문강중심(老幼文康中心)으로 활용하도록 넘겨주었으며, 마카오의 남보타사(南普陀寺)에 선당(禪堂)을 건립해주었다. 미국워싱턴대학은 남회근학원을 설립하였다. 한 문하생 박사가 거액의 자금을 내어 그의 명의로 중국내 광화(光華)장학기금회를 설립하여 30여개의 저명한 대학과 연구소등에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근년에는 중화문화의 단층(斷層)을 다시 이어주고 아동지력개발을 위해 아동독경(兒童讀經)운동을 전개하여 수백 만 명의 어린이가 참가하고 있다. 또한 대륙의 학자들의 촉구로 황하강의 흐름을 끊어 남북지역 간 수리조절을 위해 참천수리자원공정연고회(参天水利资源工程研考会)를 주창 설립하여 과학적인 연구를 선도하며 노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93세인 2010년 현재는 중국의 강소성 오강(吳江)에 소재한 태호대학당(太湖大學堂)에 머물면서 교육문화 연구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남선생은 위진남북조 시대의 양(梁)나라 부대사(傅大師)에 비유할 수 있다. 부대사가 무제(武帝)를 만날 때 머리에는 도관(道冠)을 쓰고 몸에는 승복을 입었으며 발은 유자(儒者)의 신발을 신었었다. 남선생은 국학(國學)대사로 일대의 대유(大儒)이며 불교 선종의 대사요 도가 인물로서 당대의 대은(大隱)이라고 할 수 있다. 남선생은 유불도 삼가의 학문에 정통하고 유불도를 떠받들지만 그의 일생의 행의(行誼)는 어느 한 가에 구속되지 않고 삼가 학문의 정화를 소화 흡수한 후 자유롭게 운용한 분이라고 할 수 있다.
남선생을 50여 년 동안 따랐던 장상덕(張尙德) 교수는 남회근 선생의 성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회와 각계 인사들이 남회근 선생의 성취에 대해 부르는 칭호는 여러 방면이다. 종교가 · 불학대사 · 선학대사 · 교육가 · 실업가 · 밀교대사 · 의학대가라거나 국학대사라는 등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에 대한 이런 찬탄 호칭은 모두 마땅하다.
중국전통에서는 한 인간의 성취를 삼불후(三不朽)의 관점에서 평론한다. 즉 입덕(立德) · 입공(立功) · 입언(立言)이 그것이다.
입덕의 입장에서 보면 남선생은 일생동안 어느 때나 좋은 일을 해왔다.
입공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대만에서는 중국고유 정화(精華) 문화에 참여 보존 보급했으며, 미국에 머문 후 홍콩으로 돌아와서는 남몰래 일부 친구들과 함께 대륙 양안간의 한 시대를 전환시켰다.
입언 면에서 보면 그는 저작이 아주 많다. 뿐만 아니라 글짓기나 내용 · 문자 · 언어는 그 구성이 사람들을 황홀하게 하고, 저작 마다 말에는 일리가 있고 내용이 있다. 빈말이거나 그저 높은 이론이나 늘어놓는 것이 절대 아니다. 미래에 틀림없이 길이 전해져 갈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일생에 삼불후를 성취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50여 년 동안 그를 따랐던 학생으로서 이상의 말이 물론 사실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떤 심경(心境) 아래서 어떤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러한 성취를 했는가야말로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총괄적으로 말해 그의 성취는 다음과 같다.
평범[平實] 속에서 ‘도리에 어긋나지 않아 마음이 편안한[心安理得] 일’을 함으로써, 자기에게 본래 있어야 할 ‘적정(寂淨)’으로 돌아간다.
‘적정’ 속에서 일상의 평범한 일을 거둠으로써, 자기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도리에 어긋나지 않아 마음이 편안함’을 보여준다.
또한 그의 학문은 지극히 깊고 넓으면서 구체적 사실로써 표현되었다. 그는 정말 역사상 극히 보기 드문 잡학(雜學)대사이기도 하다. 참위학(讖緯學)이나 운명감정, 점술 · 관상 등 제자백가에 대한 지식, 각파의 무술에 정통하다. 그러므로 남선생은 정통학문이외에도 잡학을 깊이 알고 크게 성취한 분이다. 남선생은 매사를 배울 뿐만 아니라 늙어갈 수록 더욱 배우는 분이다.”
연성건(練性乾)이 쓴 남선생의 전기 아독남회근(我讀南懷瑾)은 말한다. “남회근 선생이 읽은 책은 몇 권이나 될까? 아마 그 자신도 모를 것이다. 내가 판단하기는 30세 이전에 이미 중국전통문화의 중요한 저작을 다 읽었다. 그렇게 많은 고서를 읽었고 기억하고 있고 말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독창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선생은 자주 학생들에게 말한다. ‘여러분들의 오늘날 그 정도도 독서라고 하는가! 몇 권이나 보았는가? 내가 읽은 책은 모두 전생에 읽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일생동안 책을 읽고 있다. 언제나 책이 손에서 떠나지 않으며 무슨 책이든 본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 읽은 무협소설만 해도 10만 권이 넘는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많은 책을 읽었지만 한 번 보면 잊지 않는다. 남선생의 장서는 거의 작은 대학 도서관 수준이다. 그는 날마다 책을 읽고 있다.”
끝으로 남회근 선생이 소속된 기구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소개한다.
http://www.laokubook.com/(金粟閣圖書公司)
http://www.laoku.com.tw/(老古文化事業公司)
http://www.icikids.org/(ICI香港國際文教基金會)

선생의 저서

1. 선해려측(禪海蠡測 , 선에서 바라본 동서철학) (1955) 남회근 저
남회근 선생이 경전처럼 후세에 전하기 위해 집필한 저술이다. 선종의 종지, 공안, 기봉(機鋒), 깨달은 종사들의 전법, 신통묘용 그리고 도가, 밀종, 정토종 등과의 관계에 대해 그 깊은 요점을 뽑아 불교의 대도에 이르는 길을 보여준다.

2. 능엄대의금석(楞嚴大義今釋 , 능엄경대의풀이) (1960) 남회근 술저
옛사람이 “능엄경을 한 번 읽고 나서는 세상의 찌꺼기 책을 보지 않게 되었다” 고 했듯이 이 경은 우주인생의 진리를 탐구하는 기서(奇書)이며, 공(空)의 이치를 깨달아 들어가는 문이자, 단계적인 수행을 거쳐 최후에 부처의 과위에 이르기까지 거울로 삼아야 할 경전이다. 옛날부터 난해하기로 이름난 이 경전을 현대적 개념으로 대의만 풀이했다.

3. 능가대의금석(楞伽大義今釋, 능가경대의풀이) (1965) 남회근 저
선종에서는 5조 이전 까지는 능가경으로써 수도인의 깨달음을 검증하였다. 이경에 나오는 108가지 인생사상철학문제는 유식학의 보배 전적이다. 유심과 유물의 모순을 풀어주는 경전으로 저자가 현대적으로 대의를 풀이했다.

4. 선여도개론(禪與道槪論, 선종과 도가의 개론) (1968) 남회근 저

선종의 종지와 그 종파의 원류, 중국문화에 대한 영향을 논한다. 후반부에서는 정통도가와 은사, 방사, 신선단파의 사상기원과 내용을 논한다. 학술계를 조명하는 방외서라 할 수 있다.

5. 유마정사총서(維摩精舍叢書, 유마정사법문집)(1970) 원환선(袁煥仙) 남회근 합저
천만금의 재산도 다 뿌려 버리고 천하를 행각하면서 오직 진리를 구하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여 확철대오한 사천의 선종대덕인 염정노인(鹽亭老人) 원환선(袁煥仙) 선생의 대작이다. 선종, 밀종, 정토종, 유식, 중관, 도가 등 각 종파의 핵심을 천고에 드문 독창적인 견해로 가려 보이는 내용으로 유불도 삼가를 연구하고자 하면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남회근 선생은 원환선 선생의 의발제자이다.

6. 정좌수도여장생불로(靜坐修道與長生不老, 정좌수도강의) (1973) 남회근 저
유불도 삼가의 정좌의 원리를 융합하는 동시에 중국의학과 서양의학을 결합시키고, 지난 수백 년 동안의 제방 수도자의 수행경험에 대해 깊은 내용을 알기 쉽게 소개함으로써 수천 년 동안의 수행되어 오면서도 감춰졌던 오묘한 비결을 공개한다.

7. 선화(禪話, 선 이야기) (1973) 남회근 술저
선종의 역대 조사들의 공안을 중심으로 조사들의 구도와 깨달음의 과정을 오늘의 언어로써 풀이하고 선종의 정법안장 실상무상 직지인심의 대 비결을 그려 보인다. 상승의 선종 참구에 뜻을 둔 사람은 읽어보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8. 습선록영(習禪錄影, 참선법어집) (1976) 남회근 강술
선종대사인 남회근 선생이 여러 차례 주관한 7일참선정진법회의 법문과 다양한 출신의 수행참가자들의 참선수행체험 보고로서 선종의 풍모를 엿볼 수 있다.

9. 논어별재(論語別裁, 논어강의)(상,하) (1976) 남회근 술저
논어로 논어를 풀이함으로써 지난 2천년 동안 잘못된 해석을 바로잡은 저자의 독창적인 견해가 담긴 대표작이다. 동서고금과 유불도 제자백가를 넘나들면서 흥미진진한 강해를 통해 중국 고유문화의 정수를 보여주어 현대인들로 하여금 중국전통문화를 이해하게 하고 나아가 미래를 창조하게 하는 교량역할을 한다.

10. 신구적일대(新舊的一代, 신세대 구세대) (1977) 남회근 강술
원 제목은 20세기청소년의 사상과 심리문제이다. 지난 백 년 동안의 학술사상의 변천과 최근 60여 년 동안의 교육문제, 그리고 현대사회 청소년의 사상문제의 근원을 분석하여 다룬다.

11. 참선일기(초집)(參禪日記, 원제목은 外婆禪) (1980) 김만자(金滿慈) 저 남회근 비(批)
미국에 거주하던 한 노인이 만년에 일상생활 속에서 참선 수도한 일기이다. 이 속에는 많은 수행 공부와 경계가 담겨있는 바 여성수행자에게 대단히 좋은 수행거울이자 지도서이다.

12. 참선일기(속집) (1983) 김만자 저 남회근 비
김만자 여사 일기 속집이다. 이를 통해 현대인들은 수행에 정진 성공한 생생한 사례를 볼 수 있다.

13. 정혜초수(定慧初修, 불교수행입문강의) (1983) 원환선 남회근 합저
원환선 선생과 그 문인인 남회근 선생이 지관수정(止觀修定)에 대하여 강의한 기록을 모아 놓은 책이다. 선 수행자나 정토 수행자에게 올바른 지견과 진정한 수행 방법을 보여 주는 것으로 초학자에게 가장 적합하다.

14. 금속헌시사영련시화 합편(金粟軒詩詞楹聯詩話合編, 남회근선생시사집) (1984)
고금의 깊고 신비한 시의 비결을 열어 보이면서 그 법어는 신비롭고 선기가 번득인다. 남회근 선생의 작품을 포함하여 수록된 시사(詩詞)와 주련 작품들은 모두 천고에 전할 보기 드문, 시문학 숲에서 울리는 절묘한 메아리이다.

15. 맹자방통(1)(孟子傍通, 맹자강의) (1984) 남회근 강술
논어별재에 이어서 나온 획기적인 대작이다. 중화문화가 다시 꽃필 수 있는 씨앗을 뿌리기 위해 이 책속에 제자백가 사상의 정화를 담고 하나를 추리하여 열을 아는 방식으로 5천년 역사의 인간세상사를 검증해 나간다. 그야말로 사마천이 말 한대로 ‘고금의 변화에 통달하여 일가견을 이루었다’고 찬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16. 역사적경험(1) (歷史的經驗, 역사의 경험) (1985) 남회근 강술
남회근 선생의 외학(外學) 강의기록이다. 경사합참(經史合參)의 방식으로 장단경(長短經)과 전국책(戰國策)을 중심으로 군신간의 관계, 유무상생(有無相生), 이로움과 폐단의 맞물림의 도리를 강의한 치세의 보감이자 리더십의 예술이며 난세를 바로잡는 소중한 보배 책이다.

17. 도가밀종여동방신비학(道家密宗與東方神秘學, 도가 · 밀교와 동양신비학) (1985) 남회근 술저
수행과 도가의 신선, 그리고 불가의 성불에 관한 천고의 비결을 열어 보인다. 도가와 역경, 중국의학과 신선단도, 나아가 티베트 밀교 원리를 알기 쉽게 소개하고 비판하고 있다.

18. 관음보살여관음법문(觀音菩薩與觀音法門, 관음보살과 관음법문) (1985) 남회근 등 강술
집집마다 아미타불 염불하고 사람마다 관세음보살을 부른다 할 정도로 천여 년 이상 민간에 깊이 뿌리내린 관음신앙과 그 수행법에 대해 남회근 선생께서 여러 해 동안 했던 법문이다. 선생의 법문은 물론 함께 수록된 고금 대덕들의 관세음보살에 대한 현교적 밀교적 관점과 수행법문은 불교를 배우는 기초이자 불교의 깨달음에 이르는 가장 직접적이고 적합한 방편법문이다.

19. 역사적경험(역사의 경험)(2) (1986) 남회근 강술 (출판 잠정 중지)
유방이 항우를 격파하고 천하를 통일하도록 도왔던 장량의 병법모략은 대부분 황석공의 소서(素書)에서 계발 받은 것이었다. 소서는 모두 1,336언으로 부도, 불신, 불성, 불현지인에게는 전하지 말라며 만일 전해 받을 만 사람이 아닌데도 전해주면 반드시 재앙을 당하고 전해 받을 만 사람을 만났는데도 전하지 않아도 그 재앙을 당하리라고 은밀히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장량 이후에 이 책의 행방을 몰랐는데 진(晉)왕조 때에 어떤 사람이 장량의 묘를 도굴하여 장량의 옥 베게 밑에서 이 책을 발견하여 소서가 비로소 다시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다는 등의 기록이 있다. 이 책의 뒷부분에는 음부경(陰符經)과 태공삼략(太公三略)이 실려 있는바 모두 병법의 원조들이다. 남회근 선생의 강의는 3천년에 걸친 역사의 사례를 원문 사이사이에 배치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경사합참 방식으로 천고의 시비성패의 인과를 뚜렷이 이해하게 해주는 바 개인적인 창업이나 입신처세의 참고로 삼을 수 있다.

20. 습선산기(習禪散記, 참선 수기록) (1986) 노고편집부
과거에 남회근 선생이 주관하였던 음력 정월초 선칠(禪七, 7일참선정진)법회에 참가하였던 제자들이 선칠을 마치고 제출한 각자의 진솔하고 성실한 심득보고 기록이다.

21. 중국문화범언(中國文化泛言―序集, 중국문화를 말한다) (1986) 남회근 저
남회근 선생이 그동안 썼던 여러 책의 서문을 모아 놓은 책으로 정밀하고 깊으면서도 폭넓은 내용을 담고 있다. 인생학문과 수행, 깨달음에 대한 견지는 고금에 고매하여 속세를 멀리 초탈하면서 유불도 삼가 사상의 정화를 발휘하고 있다. 초학 입문자의 지도서로 삼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준 있는 연구자도 진일보하여 자신의 수준을 검증해 볼 수 있으며 이 책을 통해 남회근 선생의 사상정신을 대강 엿볼 수 있다.

22. 일개학불자적기본신념(一個學佛者的基本信念, 불자의 기본신념) (1986) 남회근 강술
화엄경보현행원품의 내용을 남김없이 밝혀준다. 특히 보현행원의 수지법문을 공개하고 현교와 밀교 양쪽을 회통한 점은 지금까지 나왔던 이 경의 어떤 강해에도 일찍이 없었던 것이다. 책 뒷부분에는 보현보살 관련 경문과 제불보살행원을 실어 놓았다.

23. 선관정맥연구(상) (禪觀正脈硏究: 선밀요법경강의) (1986) 남회근 등 강술
불경기록에 따르면 석가모니 부처가 세상에 살아 계신 동안에는 무수한 제자들이 수행하여 깨달음을 이루었는데 돌아가신 후 2천여 년 동안 불법은 보급되었고 수행자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음에도 무슨 까닭으로 깨달음을 이룬 자가 얼마 되지 않았을까 라는 문제가 큰 의문이었다. 그런데 그 까닭을 알고 보니 재세시의 세존의 제자들은 거의 대부분 백골관으로 부터 시작하여 수행의 기초로 삼았기 때문에 쉽게 증과를 이루었던 것이다. 남회근 선생이 선밀요법경(禪密要法經)을 토대로 백골관 수행법을 제창한 이래 이 관법 수행자들은 숙업이 점점 소멸하면서 질병이 많이 낫고 선관정력(禪觀定力)이 날이 다르게 진보하였다. 그래서 남회근 선생에게 간청하여 당초의 강의기록을 정리하여 출판하여 수행인들의 참고로 제공한다. 후반부는 교정 작업과 자료 보충을 위해 추후에 출판하기로 하고 먼저 상권을 출판했다.

24. 노자타설(상) (老子他說, 노자강의) (1987) 남회근 술저
노자는 용(龍)일까요? 남회근 선생은 이 책에서 경사합참(經史合參)과 이경해경(以經解經)의 방식으로 노자의 깨달음의 입장에 서서 노자를 강해하면서, 중국문화 속에서 도가은사사상이 역사의 거대한 변화과정에서 시세에 영향을 미친, 위대하고도 성대하고 찬란했던 일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아울러 지난 수천 년 동안 서원(書院)학자들이 모르거나 언급할 수 없었던 도덕의 함의를 밝혀주고 있다. 노자타설에서 남회근 선생은 노자는 지도자 학문이자 수양의 극치로서, 문화에 뜻을 둔 사람이나, 지도자로서의 업적에 뜻을 품은 자, 수도하여 성인의 경지에 다다르고자 한 사람은 반드시 읽고 또 읽어야 할 책이라고 한다.

25. 역경잡설(易經雜說) (1987) 남회근 강술
역경의 이치에 정통한 남회근 선생을 사회 일반인들은 당대의 역학대사라고 왕왕 찬탄하지만 그의 역경강해는 심원한 역경의 이치를 누구나 알기 쉽고 접근이 용이하도록 이끌어 주면서 고금의 학자와는 다른 자신만의 독특하고 절묘한 이해와 깨달음이 있다. 선생의 견해는 백가의 뛰어난 점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도 있고 스스로 한 일가를 이루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은 자신의 마음이 내키는 대로 강의한 기록을 모아 이루진 것으로 초학자에게는 물론 깊은 연구자에게도 계발해 주는 바가 꼭 있으리라 믿는다.

26. 중국불교발전사략술(中國佛敎發展史略述, 중국불교발전사)(1987) 남회근 저
불교의 인도 기원에서부터 중국으로의 전래시기 상황과 현대 불교계에 이르기까지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불교역사의 연원과 선종총림제도를 연구하는 학자에게 명확한 사료와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부록에는 ‘선종총림제도와 중국사회’라는 논문 전편이 실려 있다.

27. 중국도교발전사략술(中國道敎發展史略述, 중국도교발전사)(1987)
남회근 저
수천 년에 걸친 도교역사의 변천에 대해 그 학술사상, 종교형식, 그리고 수련내용이라는 세 방면과, 종교와 과학이라는 두 측면에서 바라보고 도교가 존재하게 된 역사적 원인과 도교의 위대한 공헌과 가치를 공평하게 비판 분석한다. 나아가 미래의 도교가 응당 지향해야 할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28. 금속헌 기년시 초집(金粟軒紀年詩初集, 남회근 시사집) (1987) 남회근 저
남회근 선생이 15세 때부터 70세 때 사이에 한가히 지낼 때면 때때로 느꼈던 바를 담아 지었던 시사(詩詞)작품을 모아 놓은 책이다. 선생의 시에는 자신의 사상과 감정이 농축되어 있는 곳이자 제자들이 스승의 생명을 이해할 수 있는 가교가 되는 바, 이 시집은 풍진세상을 맑고 시원하게 하는 무상의 감로수라 할 수 있다.

29. 여하수증불법(如何修證佛法, 불교수행법강의) (1989) 남회근 강술
불교수행이 의지해야 할 세 가지 요강이 있는데 그것은 무엇일까? 대승은 소승을 기초로 해야 하는데 소승의 수행법은 또 어떻게 닦아야 할까? 어느 법문이 가장 성취하기 쉬울까? 수지는 단지 정(定)을 얻기 위한 것일까? 정은 또 어떻게 얻을까? 수행과정에서는 어떤 문제들에 부딪치게 되며 갈림길은 무엇일까? 능엄경에 나오는 50음마 경계에는 수행하여 해탈에 이르는 대비밀이 감춰져 있을까? 이런 문제들이 바로 남회근 선생이 수십 년의 시간을 들여 발견한 비밀들인데 이 책에서 공개했다. 수행의 길을 걸어가는 분들은 귀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30. 역경계전별강(易經繫傳別講, 주역강의)(상, 하) (1991) 남회근 강술
역경잡설을 이은 강의로 계사전은 공자가 역경을 연구한 심득보고서이자 역경을 배워들어 가는 문이다. 이 책은 역경에 대해 더욱 정밀하게 강의하는 동시에 공자사상과 유가학설의 근원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자연의 도리에서부터 인문정신, 인생의 도리, 수행의 도리를 말하고 있으므로 세속인이나 출가수도자나 모두 하루빨리 지녀야 할 마니주 같은 보배 책이다.

31. 원각경 략설(圓覺經略說, 원각경강의) (1992) 남회근 강술
원각경은 인생의 고통과 번뇌를 철저히 해결해주는 경전으로서, 어떻게 수행하여 성불할 것인가를 가리켜 이끌어 주는 경전이다. 남회근 선생의 강해는 쉽고 평이하면서도 어떻게 견성할 것인가와 수행과정에서의 제 문제들을 분명히 가려 보여준다. 참선을 하려거나 불교를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이 반드시 보아야 할 책이다.

32. 금강경설삼마(金剛經說什麽, 금강경강의) (1992) 남회근 강술
금강경은 철학과 종교를 초월하는 책으로 일체의 종교의 한계를 지워 버린다. 천여 년 동안 무수한 사람들이 금강경을 연구하고 염송하며 이 경에서 도를 깨쳤으며 금강경을 통해 불가사의한 감응을 얻었는데 그 까닭이 무엇일까? 사구게(四句偈)는 도대체 어느 사구일까? 선종은 왜 금강경을 제창했을까? 금강경의 위력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 이 모든 문제에 대해 해답한다.

33. 약사경적제세관(藥師經的濟世觀, 약사경강의) (1995) 남회근 강술
약사경은 통속적이지만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경전인데, 왜 약사불은 동방에 계실까? 약사불의 약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죽어서 살아 날 수 있을까?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까? 어떻게 재앙을 소멸시키고 수명을 늘일 수 있을까? 이 모든 문제를 이 책에서 토론한다.

34. 원본대학미언(原本大學微言, 대학강의)(상,하) (1998) 남회근 강술
남회근 선생이 근년에 강의한 것으로 풍부한 자료를 인용 논증하면서 고금동서의 학설과 역사를 한 용광로에 녹여 격물(格物), 치지(致知), 정심(正心), 성의(誠意) 및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 등 수양단계와 치용(致用)의 학에 대해 자세하고 투철하게 논하고 있다. 지(知), 지(止), 정(定), 정(靜), 안(安), 려(慮), 득(得)의 7개항의 내면수증 공부에 대하여는 옛사람의 견해를 뛰어 넘고 있다. 2천여 년 동안 제대로 드러나지 못했던 원본대학이 이 책에서 찬연히 드러나면서 현대인의 수신처세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양서이다.

35. 현대학불자 수증대화(現代學佛者修證對話, 현대불교수행자와의 대화) (상, 하) (2003) 남회근 강술
당신은 밀교를 배운 적이 있는가? 당신은 졸화정(拙火定)을 수련한 적이 있는가? 당신은 밀교의 기본학술이론을 이해하고 있는가? 상권 내용에는 미국인들의 졸화 수련 경험보고에 대해 평론 분석하고 티베트 밀교의 성취자의 수행 경험을 토론한다. 그리고 밀교의 기본 학술이론을 소개한다.
당신은 선정에 들 수 있는가? 무슨 선정에 드는가? 당신은 수행이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가? 당신은 경전이해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가? 하권은 5온해탈의 수증을 도와주고, 수행의 방법과 단계를 이해시켜주며, 자기의 진도를 정확히 파악하게 한다. 그리하여 길을 헤매지 않고 마구니 경계에 들어가지 않게 도와준다.

36. 화우만천 유마설법(花雨滿天維摩說法, 유마경강의)(상, 하) (2005) 남회근 강술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유마경을 좀 읽고 났더니 마음의 크기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확대되어서 더 이상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바세계에 국한되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당신이 불법을 배우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에 유마경 속에 그 답안이 들어 있으며, 사리를 모르겠을 때도 유마경 속에 그 답안이 들어있다고 했다. 남회근 선생이 1981년에 시방서원에서 출가자와 불교도를 위주로 했던 강의로 수행방면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불경강해와는 다르다. 유마경은 현대인들에게 그 원전경문이 너무 옛스러운데 남선생은 간단명료한 말로써 강해하였기에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다.
37. 장자남화(莊子諵譁, 장자강의) (상, 하) (2006) 남회근 강술
장자 내7편에 대한 강해이다. 장자란 책은 사고전서에서 도가로 분류한다. 그리고 도교에서는 이를 수지의 근거로 삼아 남화경(南華經)이라고 높여 부른다. 그러나 천고 이래로 식견 있는 선비는 모두 그것을 제자백가의 중요한 지위로 생각했다. 내용은 세간과 출세간의 일체의 관념 법칙과 실제의 심신수양의 도리를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중화문화의 가장 위대한 불후의 저작으로 생각했다. 더욱이 미국의 1977년도 노벨상 수상자인 프리고진은 70년대 일어난 중요한 물리이론으로서 카오스이론은 장자의 혼돈설과 서로 꼭 부합한다고 했다. 서방의 최신 과학인 카오스이론은 뒷날 계속 발전하여 중국 문화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새로운 관점을 낳았다. 그러므로 장자가 중시된 것을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 비록 수천 년의 시간과 공간이 바뀌었지만 장자가 말한 바는 시종 우뚝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장자의 문장 기세가 얼마나 우미하고 고아하건 간에 현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여전히 어렵고 그 높이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근대에 많은 학자들이 관련된 주해나 어역(語譯)이나 주석 같은 것들을 참고로 읽어보면 대부분은 문자적인 해석이거나 다른 사람의 주해를 모아 논 것일 뿐 일반 독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 그 속으로부터 이익을 얻기가 어렵다. 더욱이 문학가나 철학자들은 세간법적 해설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출세간의 도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또 다른 방면의 전문가들은 출세간 부분의 연구를 위주로 하기 때문에 양쪽을 다 겸비한 사람이 아주 드물다. 그런데 남회근 선생님은 청년 시기에 이미 제자백가의 학문을 두루 연구했고 30대에는 경전 도법(道法)에 깊이 들어가 여러 해에 걸쳐서 몸소 힘써 실제 수증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장자강해는 경사자집(經史子集)에서 노닐고 있다. 출세간이든 입세간이든 평가하고 비교할 때 알맹이의 의미를 평가 비교하고 정설(正說)로 말하기도 하고 반설(反說)로 말하기도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장자의 선도(禪道)에의 출입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 또 통속적인 말로써 깊은 내용을 쉽게 풀어내서 독자 청중을 위하여 문을 열어주고 있다. 남선생의 강의가 따로 일가의 품격을 갖췄다고 일컫더라도 과분한 칭찬이 되지 않을 것 같다.

38. 남회근여피득·성결(南懷瑾與彼得聖吉, 남회근과피터센지)(2006) 남회근 강술
한 서양 관리학의 대가가 왜 선종을 배우려고 했을까? 왜 중국의 유불도 삼가를 중요시하는 것일까? 서양 관리학이 탐색하는 공동 기초는 무엇일까? 한 동양문화의 행자가 어떻게 사람들을 과학영역의 실증으로 인도하는가? 동서양 문화가 합류하기 시작한 것일까? 본서가 그런 소식을 드러낸다.

39. 남회근강연록2004-06(南懷瑾講演錄)(2006) 남회근 강술
남회근선생이 2004년에서 2006년 사이에 상해에서 여러 대학과 언론매체의 초청에 응하여 했던 강연기록이다. 주로 인문 · 역사 그리고 교육에 관한 내용이다.

40. 여국제과영역령도인담화(與國際跨領域領導人談話, 국제CEO들과의 대화) (2007) 남회근 강술
남회근 선생이 태호대학당에서 12개국에서 온 인사들에게 했던 강연기록이다. 인사들 중에는 국제단체와 기업의 지도자들로서 의사 · 학자 · 유엔의 환경고문 등이 있었으며 강연내용은 문화 · 생명과학...등에 관한 것이다.

41. 인생적기점화종참(人生的起點和終站, 생과 사 그 비밀을 말한다) (2007) 남회근 강술
생사문제를 해설한 기록으로 사망에 대해서부터 얘기를 시작하여 사람의 출생을 설명한다. 인간의 정상적인 생명의 윤회환생 변화를 기준으로 말한 것으로, 불법의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종교의식에 물들지 않고 순수하게 생명과학의 입장에서 한 상세한 설명이다. 진귀한 자료로서 자세하고 명확하여 독자의 마음속에 있는 적지 않는 미혹의 덩어리를 풀어준다

42. 답문청장년참선자(答問靑壯年參禪者, 청장년참선자와의 문답) (2007) 남회근 강술
열 명의 청년 출가승들과 수행에 관하여 토론하면서 그들 각자에 대하여 분석하고 바른 수행 길로 인도한다. 평범한 대화와 재미있는 문답을 읽다보면 빙그레 웃음 지으면서 더욱 계발을 받게 된다. 남선생은 불법이 중국에서의 발전한 과정을 말하고 호흡법문의 초보적인 실제수련방법, 그리고 관련된 수행상의 여러 가지 맹점을 해설한다.

43. 소언황제내경여생명과학(小言皇帝內經與生命科學, 황제내경 소강의) (2008) 남회근 강술
황제내경은 의서일 뿐만 아니라 세상과 사람과 나라와 사회를 치유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른 바 모든 심의서(心醫書)인데 다만 먼저 양생을 통하여 사람을 장수하게 하는 데서부터 시작할 뿐이다. 내경의 중심은 황로학(黃老學)의 요점이자 정치 · 경제 · 교육 · 군사 등 어느 분야든 그 대원칙이 된다. 이 책은 남회근 선생이 황제내경의 요점을 발췌하여 간략하게 강의한 기록이다.

44. 선여생명적인지초강(禪與生命的認知初講, 선과 생명의 인지 강의) (2008) 남회근 강술
생명이란 무엇일까? 당신의 생명은 무엇일까? 선(禪)은 생명가운데 또 어떠할까? 당신은 자신의 지성(知性)을 이해하는가? 당신은 자신의 생명을 장악할 수 있는가? 범부를 뛰어넘어 성자의 경지에 들어가고 싶은가? 적어도 범부는 초월할 수 있다!

45. 만담중국문화(漫談中國文化, 중국문화만담) (2008) 남회근 강술
고대가 없다면 현대가 없다. 조상이 없다면 우리들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 책은 관자(管子) · 화식열전(貨殖列傳) · 식화지(食貨志) 등 고대 전적속의 재화관(財貨觀)에 대하여 깊이 분석하고 근대 1백 년간의 금융·기업과 관리체제의 발전을 강의하면서 과거를 현재로 바꾸어 시야를 넓혀준다.

46. 아설참동계(我說參同契, 참동계강의) (상, 중, 하) (2009) 남회근 강술
참동계는 심신 생명의 신비를 연구하는 저작으로 정통 도가의 환골탈태 법문이다. 생명을 전화시키는 실증적인 지도서이자 중국양생학의 근본 보배 책이다. 노년을 동년으로 돌이키고 장생불로하는 연단방법이다. 심신수양의 실험과학과 유가철학사상을 단도(丹道)의 용광로에 융회한 저작이다. 이 책은 남회근 선생의 참동계 80강 기록이다.
47. 노자타설(속집)(老子他說續集, 노자강의) (2009) 남회근 강술

(이상 괄호안의 한글 제목은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잠정적으로 풀어본 것이며 이미 한글번역 출판된 책의 제목은 그대로 표시하였습니다)

(출처 : 유마불교학당 번역자 송찬문 http://m.cafe.daum.net/youmawon/88iH/2?)

이스라엘의 건국과 생존 배경, 역사

Posted by 히키신
2016. 5. 31. 02:02 영원의 지헤, 그리고 철학

이스라엘의 건국과 생존 배경, 역사

sungyuyam | 2009.12.19 | 역사

시온주의의 태동

 

이스라엘의 건국은 나라를 잃고 전세계에 흩어져 유리 방랑하던 유대민족이 '약속의 땅' 팔레스타인에 돌아와 나라를 세우려는 시온주의 운동의 열매로서 이루어졌다. 이 시온주의 운동의 비젼은 19세기 중엽부터 헤스, 핀스커, 헤르쩰등과 같은 유대민족 선각자들에 의해 제시되었고, 다음 세대들이 이 비젼을 구체화하고 발전시켰다. 자신들의 민족독립국가를 건설하려는 시온주의의 활동은 19세기말 데오도르 헤르쨀에 의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그는 1896년 유대인 문제는 오직 유대국가 건설만으로 해결된다는 요지의 소책자 '유대국가'(Der Judenstaat)를 저술한다. 이 책자는 유대인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1897년에는 그의 주도로 스위스 바젤에서 2백여명의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제1회 시온주의 의회가 개최되고 '국제법의 지지를 얻어 팔레스타인에 유대민족을 위한 국가건설을 시온주의의 목표'로 결정한다.


II. 이스라엘의 건국과 국가발전 

한편, '약속의 땅'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하는 물결은 1882년부터 시작되었다. 유대민족의 귀환사는 보통 1882년부터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포한 1948년까지 시대별로 5대 이민군으로 구분한다. 즉, 1차 1882-l903 (20,000-30,000명), 2차 1904-1914 (35,000-40,000명), 3차 1919-1923 (35,183명), 4차 1924-1931(81,613명), 5차 1932-1948(366,061명)인데, 2차와 3차 대이민시 들어온 귀환자들이 이스라엘 건국을 이루어 내는 지도 세력을 형성한다. 특히 2차 대이민시에 들어온 벤구리온 (David Ben-Gurion: 초대수상), 벤-쯔비 (Yitzhak Ben-Zvi: 2대 대통령), 쉬프린작 (Yosef Shprinzak: 초대 국회의장)등이 1920년대부터 각종 유대민족의 자치조직들을 결성하여 팔레스타인 시온주의 운동좌 지도자로 부상한다. 이들은 주로 러시아와 폴란드등 돌구권출신 유대인인데 조상의 뼈가 묻혀있는 팔레스타인에 자유와 평등의 이상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꿈을 안고 돌아와 정착한 사람들이며, 대부분 비 종교인이다. 19세기말 부터 러시아, 폴란드등 이곳 동구권에서 유대인들에 대한 핍박이 시작되자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풍요와 가능성의 나라 미국으로 몰려간다. 그러나 시온주의 운동에 공감한 일부 청년들은 '약속의 땅' 팔레스타인에 돌아와 민족국가 재건의 꿈을 키워간다. 벤구리온을 정점으로한 유대민족 지도자들은 세계의 이곳 저곳에서 돌아오기 시작하는 사람들을 정착시키는 한편 정당과 유대인 기구 (Jewish Agency), 그리고 주민들의 대표기구등 준국가적인 기구들을 조직하고, 지하 군사 조직을 창립하면서 독립 국가 건설을 위한 주춧돌을 놓아 간다. 벤구리온을 비롯한 이들 지도 세력은 1920년대부터 유대 민족의 지도자로 부상하여 1948년 독립국가 건설에 성공하고, 1970년대 중반까지 이스라엘의 정치, 경제, 문화, 교육등 각분야의 발전을 주도했다.

나치 독일에 의해서 전민족 구성원 삼분의 일이 학살당하는 민족적 재앙을 겪기도 하지만 이러한 유대 민족에 대한 핍박과 학살이 역설적으로 유대 민족이 팔레스타인 땅에 돌아오는데 도움을 주며 결국 이스라엘 건국의 중요한 요인이 된다. 이스라엘의 비종교적인 학자들은 유대인 6백만 학살과 2차례의 세계대전등 극히 일어날 확률이 낮은 연속적 우연한 사건의 발생으로 유대민족의 대대적인 귀환과 이스라엘의 건국이 가능했음을 인정한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기독교인인 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 과정에 하나님의 손길이 작용했음을 믿을 수밖에 없다.)
유대 민족 지도자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큰 흐름에 바탕하여 밀려오는 도전과 기회를 잘 극복하고 활용하여 인류역사상 보기 드문 기적을 창출한 것이다. 이들은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언하고 그 이후 전개된 아랍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 독립을 지키므로 서 시온주의 운동의 기본적인 목표 달성에 성공한다. 물론 당초 벤구리온등 지도자들이 꿈꾸었던 자유와 평등, 번영된 복지국가의 이상이 어느 정도 실현되었는가 에는 이론이 있지만, 당초의 기본 목표인 유대 민족 자체의 독립국가 창립과 그 유지에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1882년 팔레스타인 땅의 유대인 인구가 2만 4천명에 불과하던 것이 1948편 65만명(이스라엘 전체 인구 87만명)으로 늘어났으며, 지금은 494만 명(이스라엘 전체 604만 명. 1997. 5월 현재)에 이른다. - 인구 (1998년 통계) 총 6,041,400명(이스라엘 시민권 소유자) : 유대인 4,936,000명 아랍인 1,105,400명 종교별: 유대인 4,785,100명 모슬렘 899,800명 기독교인 128,700명 드루즈 99,000명 기타 128,700명. 출처: "Statistical Abstract Of Israel 2000" (Central Bureau of Statistics) - 전세계의 유대인 인구에 대한 팔레스타인 인구의 비율도 1882년 0.3%에서 1948년 5%, 그리고 현재 33%로 늘어나 이스라엘이 명실공히 유대 민족의 중심지로 자리잡게 되었다. 1948년 독립선언 이후 불과 3년만에 이스라엘 전체 인구의 두 배로 불어났다. 최근 구 소련의 붕괴와 함께 약 50만명의 유대인이 조국을 찾은 것을 비롯, 유럽에서, 미국에서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끊임없이 이 땅에 돌아와 현대 이스라엘의 역사에 합류하고 있다. 독립선언과 함께 전쟁을 이끌어야 했던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갑자기 밀려오기 시작한 동족들을 수용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전쟁의 피해를 복구할 틈도 없이 밀어닥친 동족들에게 의식주를 해결해 주며, 학교를 짓고 직장을 마련해 주는 것이 힘겨운 일이었지만,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이를 오히려 민족 도약을 위한 기회로 생각하고, 국내외의 인적, 물적인 자원을 동원하는 한편, 민족 구성원의 힘을 모아 이들을 수용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벤구리온 수상은 독일과 국교를 정상화하고 배상금을 받아 필요한 재정에 충당했으며, 미국, 유럽등 해외에 있는 유대인들의 모금 운동과 자원 봉사를 통한 헌신 역시 큰 도움이 되었다. 

벤구리온 수상이 이렇게 무리하게 일을 벌이고 사업을 확대해 나가는 것에 대해 경제학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현실과 경제 원칙을 무시한 무모한 국가 경영이라고 경고와 함께 제동을 걸곤 했다. 독일로 부터의 배상이 끝나면 재원은 고갈될 것이며 국가 재정이 파탄에 빠질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들 전문가들의 예측과 전망과는 달리 독일의 전후 배상이 끝나고도 이스라엘 정부 지도자들은 해외 유대인의 모금 운동, 각종 국제기구의 지원등 끊임없이 다른 물적, 인적 자원을 개발, 동원하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지도자들의 리더쉽, 국가 발전을 위한 국내외 유대인들의 열정, 그리고 당시 국제 경기의 호황과 유리한 국제 환경에 힘입어 이스라엘은 1950년대, 60년대 10%이상의 고도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1961년 우리 나라의 1인당 국민 소득이 73 달러에 불과할 때, 이스라엘은 이미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서 1인당 국민 소득이 814 달러를 기록했다 (당시 일본의 1인당 국민 소득은 502 달러였다)- 1996년 이스라엘의 1인당 국민 소득은 16,800 달러다. 1980년EN 들어서 레바논 전쟁에 따른 전비 부담과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어려움을 겪던 이스라엘 경제는 최근 회복되어 1992년 6.6%, 1993년 3.5%, 1993년 5.0%의 경제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이스라엘은 GNP의 24% 가량을 국방비에 투입하고 (일본 0.9%, 미국과 한국은 약 5.6%). 최근 구 소련과 에디오피아 등지에서 몰려오는 수십만 명의 유대인 이민을 수용하느라 경제 개발 부문에 위한 투자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높은 과학 기술과 질 높은 인력 자원 개발로 이러한 난관을 극복해 가고 있다. 이스라엘은 과학 기술, 문화, 교육등 분야에서도 괄목할 만한 발전을 계속하고 있다.


III. 아랍 제국과의 생존을 위한 투쟁과 평화 


해외에 있는 유대인의 이스라엘로의 귀환과 이들에 의한 독립 국가의 건설, 그리고 경제, 사회 발전이 시온주의 운동의 가장 기본적인 목표이며, 이스라엘 정부가 항상 중요하게 여기는 정책이지만, 유대 민족이 극복해야 갈 최대의 난제는 그 무엇보다도 아랍 제국과 생존을 건 투쟁에서 살아 남는 것이다.

1948년 5월 14일 독립이 선언되고 나서 24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요르단, 사우디 아라비아 그리고 이집트 6개국은 신생 독립국 이스라엘을 향해 사방에서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다. 이스라엘은 8개월간 계속된 이 전쟁에서 유대인 인구의 1%에 가까운 6천명이 전사했다- 그리고 대부분 지역에서 아랍 연합군 부대를 물리쳤으나, 유대 민족의 최대 성지인 통곡의 벽 등 구 예루살렘 성안 유대인 지역을 요르단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그러나 이 독립 전쟁은 시작에 불과했다. 1950년대 들어 이집트에서 나세르 대통령에 와해 범아랍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나고 석유 자원이 풍부하여 국제 전략상 중요 지역으로 부상한 중동 지역에 소련은 영향력을 증대시키기 시작했다. 소련이 요르단, 시리아, 이집트 등에 군사 원조를 제공하며 군비를 증강시킨 끝에 1956년 이집트가 수웨즈 운하를 국유화함으로서 위기가 조성된다. 이로 인해 영,프와 이집트가 갈등 가운데 대립하게 되자 이스라엘은 '시나이 작전'이라는 이름 하에 순식간에 시나이 반도를 점령함과 동시에 최신 장비로 무장한 이집트 군을 무력화시킨 후 휴전 협정을 체결하여 전쟁을 종결시킨다. 당시의 벤구리온 수상은 문제의 소지가 될 시나이 반도를 즉각 돌려주는 대신 소련의 지원을 받는 아랍 제국에 대항하여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구 제 국과 동맹 체제를 구축하는데 성공할 뿐만 아니라 당시 기세 등등하여 이스라엘을 위협하던 나세르 대통령의 기를 꺾는데 성공했다.

독립 전쟁을 포함 6차의 중동전중 [독립 전쟁 (1948), 시나이 작전 (1956), 6일 전쟁 (1967) 이집트와의 소모전 (1968-1970), 10월(욤 키푸르) 전쟁 (1973), 레바논 전쟁 (1982)] 현대 이스라엘 역사의 분수령이 된 것은 6일 전쟁이다. 애꾸눈의 모세 다얀 장군이 국방 장관으로서 활약한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로부터 골란 고원, 가자 지구, 요르단 서안 지구 시나이 반도 등 자기 영토의 3배나 넘는 넓은 지역을 점령한다. 통곡의 벽을 다시 탈환하는 감격을 맛보며 순식간에 감람산, 구 예루살렘성, 베들레헴, 헤브론, 세겜, 여리고 등 자기 민족의 성지들을 순식간에 점령해 버렸다. 그러나 이러한 승리의 이면에는 2,000년 동안 핍박받아 왔던 유대 민족이 팔레스타인 민족을 총칼로 지배하는 정복자의 입장이 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 동안 거인 골리앗에 대항하여 용감하게 싸운 다윗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이스라엘은 어린 소년에게 총을 들이대는 잔인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국민의 사기는 충천했으며, 비록 조그만 영토와 인구를 가진 소국이지만 중동 지역에서는 그 누구도 상대하기 어려운 군사 대국으로 부상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며 자만심에 빠져있던 이스라엘의 허를 찔러 치욕감을 안겨준 전쟁이 1973년 10월에 발발한 10월(속죄일) 전쟁이었다. 수에즈 운하를 따라 설치되어 난공 불략의 요새라고 자랑하던 바르 레브 선 (Bar Lev Line)이 이집트 군의 기습 공격에 힘없이 무너지고 속죄일을 맞아 손을 놓고 있던 병사들은 전선 곳곳에서 패퇴하여 전사하였다. 골란 고원에서는 시리아군의 탱크 공격에 곤욕을 치렀다. 시간이 지나면서 전열을 가다듬은 이스라엘 군은 미국의 신속한 무기 보급과 미군 첩보 위성의 도움을 받아 결국 시리아와 이집트를 격퇴하는데 성공했으나, 많은 사상자를 내는 등 엄청난 댓가를 치러야 했다. 무엇보다도 슈퍼맨의 이미지와 함께 자신만만하던 이스라엘 군의 자존심을 흔들어 놓았다. 그 동안 2.000년만의 민족국가의 재건, 계속된 전쟁에서의 승리, 그리로 경제 이론과 자연법칙을 뛰어넘는 경제성장등 기적 같은 일련의 성공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고 계속적인 발전을 이루어 가는데 장애가 되었다. 시대 상황은 급속히 변화하는데 이에 대응하는 지도자들의 사고와 대처 방식은 변하지 않음으로서 대응 능력을 상실케 된 것이다. 여장부 골다 메이어 총리는 이 전쟁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으며, 참모총장을 비롯한 군 수뇌부도 문책을 당했다.

그러나 이 전쟁은 절망적이던 화약고 중동에 평화의 싹이 돋는 계기가 되었다. 다섯 차례에 걸쳐 아랍 제국의 선두에 서서 이스라엘과 싸운 끝에 상처만 얻고 빚더미에 눌리게 된 이집트가 소련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미국의 도움을 걷어 이스라엘과 평화를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스라엘과 전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스라엘 역시 대아랍 제국과의 계속된 전쟁에서 승리하여 독립을 지키는데는 성공했으나 당시 300만의 작은 인구와 경제 규모로 1억 5천만의 대아랍 제국을 상대하기는 힘이 부친 노룻이었다. 특히, 아랍 제국중 인구 규모나 전력 면에서 최강인 이집트와의 평화는 아랍 국가들간의 분열을 촉진시켜 대아랍 투쟁에서 이스라엘을 한결 수월케 하였다.

1977년 메나헴 베긴 총리는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을 이스라엘에 초청하고 1977년 ll월 20일 사다트 대통령은 적국 이스라엘의 국회인 크네세트에서 극적인 연설을 함으고서 전쟁의 악순환의 고리를 풀고 평화에의 물꼬를 텄다.
  1979년 3월 26일 이스라엘과 이집트간에 캠프 데이비드 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협정에 의해 이스라엘은 유일하게 석유가 나던 시나이 반도를 1982년까지 이집트에게 돌려주었다.
그러나 평화를 향한 낙관적인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1982년 레바논 전쟁이 발발하고 베이루트 근방, 사브라, 샤틸라에서는 수많은 양민이 이스라엘 군의 방관하에 레바논의 팔랑헤당 군에 의해 학살되었다. 1967년 이후 이스라엘 군의 점령 통치가 계속되던 팔레스타인 점령 지역의 상황 역시 심각했다. 1987년 팔레스타인 민족의 이스라엘군 통치에 항거하는 대봉기 즉 인티파다가 폭발하였다. 다윗이 골리앗에게 물멧돌을 던졌던 것처럼 팔레스타인의 어린이들은 이스라엘군 병사에게 돌을 던지며 이 대봉기에 앞장서 싸웠다. 그 많은 전쟁과 테러에도 꿈쩍 않던 이스라엘 군도 이 "추하고 기묘한" 전쟁에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스라엘의 학계, 언론계, 그리고 작가 등 지식인 계층의 양심적 인사들이 이스라엘 정부의 반성을 촉구하기 시작했다. 레이보비츠 교수 같은 이는 2000년 동안 핍박과 함께 고난받았던 유대 민족이 총과 칼로 타민족을 핍박하는 정복자로 변했다며 민족적인 양심과 도덕성 회복을 호소했다. 국제 사회에서도 비난이 끊이지 않았고 이스라엘의 지도 세력은 분열되어 방향성을 잡지 못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에 큰 영향을 준 전쟁이 1967년 6일 전쟁입니다. 바로 이 전쟁에서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요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그리고 동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이 점령한 것입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이 지역을 이스라엘이 통치해 왔습니다. 

이스라엘과 이집트간의 캠프 데이비드 협정 (1979년)을 시작으로 물꼬가 트인다. 1992년 이스라엘에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집권하고 나서 그 동안 우리가 수많은 전쟁으로 많은 피를 흘렸는데 최소한 우리 자손들만큼은 피를 흘려서는 안되겠다, 평화적으로 어떻게 해결해 보자, 이런 결단을 내립니다. 그래서 1993년 오슬로 합의를 시작으로 두 민족간 평화과정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평화과정은 이츠학 라빈 전 총리의 암살, 네탄니야후 강경우파 리쿠드당의 집권, 수많은 유혈 테러 사건의 발생에도 불구하고 당초 일정보다 지연되긴 했습니다만 8년 가량이 지난 지금까지 이 평화과정은 꾸준히 진행되었습니다. 그래서 1994년 예리고와 가자에서부터 이스라엘군이 철수하고 팔레스타인 자치가 실시되었습니다. 야세르 아라파트 PLO의장에 30년 가까운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가자에 돌아와 자치정부를 이끌어왔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요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43%지역에서 철수했고, 이 지역에 팔레스타인 자치가 실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두민족간 평화과정의 마지막단계에 와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측에서는 외교, 국방권을 행사할 수 있는 독립국가를 이스라엘이 1967년 점령했던 요단강 서안과 가자 전지역에 창립하겠다. 이스라엘은 점령지역 거의 전역(98%)에서 철수하라. 수도는 동 예루살렘이다. 점령지역에 건설한 이스라엘 정착촌 모두 철거해야 한다. 그리고 해외에 쫏겨난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을 보장하라. 이렇게 요구하고 있고 샤론 총리 당선자는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점령지역 중 43% 정도 철수했는데, 더 이상은 안된다. 동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이고 유대교 성지로서 조금도 내줄수 없다. 정착촌 하나도 철거하지 못하겠다. 이런 강경한 입장입니다.


IV. 이스라앨 건국과 생존의 요인 

유대 민족은 지난 2천년 동안 수많은 핍박과 고난, 민족 멸절의 위기를 극복하고 결국 독립 국가 재건에 성공한다- 이스라엘은 1948년 독립한 이래 아랍 제국과 여섯 차례의 중동전을 치르는 등 수많은 도전과 위기를 극복하면서 독립을 지켜 오고 있으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기술등 각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유대 민족의 성공 요인은 무엇인가? 인구 600만의 소국 이스라엘이 어떻게 2억의 아랍 제국과 싸우며 독립을 지킬 수 있었는가?

유대 민족은 우리 한민족처럼 명석한 두뇌와 높은 교육열이 있는 민족이다. 세계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민족이며, 미국 유명 대학 교수진의 20%를 유대인 교수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곳 이스라엘의 과학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율 역시 그 어느 나라보다도 높다. 노동 인구 1만명 당 자연과학 분야에서 석사 이상의 학위를 소지한 자가 4.6명 (미국 2.6명, 일본 0.5명, 영국 2-5명이며, 국제적인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는 비율이 노동 인구 1만명 당 60명 (미국 30명, 일본 12명 영국 30명 독일 23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유대 민족의 창조성과 교육 우선의 문화 형성에는 성경(구약 성경)이 큰 역할을 담당했다. 성경은 유대 민족 신앙의 경전이자 가장 기본적인 법규범이며. 그들 민족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들은 이 성경에 근거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선민 의식을 갖게 되었다. 이 성경과 함께 좀 더 구체적인 관습과 전통을 규범화시킨 구전 율법(미쉬나)에 토론과 설명이 덧붙여져 편찬된 것이 탈무드이다. 유대 민족은 성경과 탈무드 공부를 통해서 학문과 교육을 중시하고 생활화하는 문화와 전통을 창조, 계승해 왔다. 성경 연구를 통해 민족문화의 바탕이 되는 히브리어가 보존될 수 있었다. 민족 종교인 유대교, 성경과 탈무드 공부가 생활화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교육과 학문 중시의 전통, 선민 의식, 그리고 핍박과 고난의 삶 가운데서 형성된 가족주의와 민족 성원간의 유대감, 이러한 요소들이 지난 2천년간 자신의 민족성을 지녀 오면서 민족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데 원동력이 되었다.

유대 민족 역사의 주변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 이스라엘의 독립에 유리한 상황을 조성한 측면이 있으나, 민족 내부의 다양한 세력간 갈등을 조정하고 민족의 에너지를 결집, 밀려온 도전과 기회에 창조적으로 응전한 지도자들의 리더쉽이 2천년만의 독립국가 재건이라는 기적을 가능 케 했다. 이들 지도자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비젼을 제시하면서 민족의 국내외 인적, 물적 자원을 개발하고 동원하여 밀려오는 도전을 극복해 가고 있다. 개발 도상 국가의 급속한 경제 개발 추진 과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도층의 부정과 부패 현상을 거의 볼 수 없고,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보다 민족과 국가의 이익을 우선하는 이스라엘 지도층의 행태가 하나의 특징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냉전 체제가 와해된 이후 유일한 슈퍼 파워로 등장한 미국의 지원, 이곳 미국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의 도움 역시 큰 힘이 되고 있다. 이들이 미국의 각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독립과 생존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선민 의식, 창조적인 교육, 민족 성원간의 유대 의식과 가족주의,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유리하게 전개된 국제 정세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조건들이지만, 이러한 조건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민족의 역량을 결집하고 극대화 시켜 민족의 운명을 개척해 가는 것은 지도자들의 몫으로 간주되고 있다. [2001.3.14]

 

 

최 창 모 (건국대 히브리학과)

 

 

역사는 모든 학문의 기초이자 중심이다. 건축을 공부해도 건축사, 음악을 공부해도 음악사, 미술을 공부해도 미술사, 문학을 공부해도 문학사, 이렇듯 모든 학문이 역사로 통한다. 왜냐하면 역사는 그 학문의 흔적이며 발자취이기 때문이다. 그 학문의 발전이 어떻게 이루어졌나 하는 것은 역사 발전과 맥을 같이 한다. 우리가 왜 한국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가하는 것은 한국인은 한국의 얼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이 한국의 얼을 갖는다는 것은 두 가지 방법을 통해서 가능하다. 모국어인 한국말과 한국의 역사를 통해서 한국의 얼을 획득할 수 있다. 우리가 이스라엘을 공부하려면 히브리어를 알아야 한다. 히브리어를 통과하지 않고 이스라엘을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성경을 이해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 할 수 있다. 한국말로도 성경을 볼 수는 있지만 그 얼, 이스라엘의 정신은 한국말로 번역 된 것으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얼이 빠졌다는 것은 정신 가운데 에센스, 즉 본질이 없다는 것이다. 또 이스라엘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그 사람들, 혹은 민족의 얼이 어떻게 이어져왔는가 어떤 격동의 시대를 거치면서 어떻게 변해왔는가 하는 것을 공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를 공부하면 그 사람, 혹은 민족을 이해 할 수 있다. 현재의 이 사람들을 이해함으로써 즉, 과거를 공부하면서 현재를 이해하고 나아가 미래를 예측하는데 용이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고대사는 주로 성경의 기록과 일치한다. 그것은 성경상의 초기 이스라엘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성경이 역사책은 아니지만 역사적인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중요한 역사사료이다. 역사를 이해할 때 가장 필수적인 것 가운데, 역사를 구성하고 있는 역사 사료, 즉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는 역사의 자료, 즉, Historical Material이 있다. 역사는 현재사, 미래사도 있겠지만 주로 과거이다. 시대마다 그 시대에 만들어진 여러 사료들이 있다. 그 사료들은 주로 문자로 기록되어진 것들은 텍스트(text)라 한다. 여기에는 성경, 혹은 탈무드, 요세푸스 같은 역사책들이 해당된다. 또 하나는 꼭 문자로는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그 시대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 가운데 하나가 고고학적인 자료들이다.

고고학이라는 학문의 역사는 채 100년도 안되었다. 그것은 땅을 파서 실제로 물건을 보는 것이다. 도자기나 혹은 동전, 무기 종류 등이 있는데 어느 시대에 누가 사용하던 것인가 하는 것을 따져 볼 때 그 시대로 되돌아가기에 아주 좋은 자료들인데 이 자료들을 모아 좋은 것을 박물관이라고 한다. 실물을 보는 것은 사실적 실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성서 박물관, 역사 박물관 등이 필요하다. 그 외에도 주변의 역사적인 상황, 요즘 같으면 사회적 문화적 요소들을 역사 이해의 또 다른 자료들로 활용할 수 있다.

성서에서 말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뿌리, 혹은 기원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곧 이스라엘 역사의 시조이기도 하다. 우리 나라의 시조는 단군 때로부터라고 보기도 한다. 신화인가 역사인가 하는 문제에서 단군을 역사적 인물로 이해하는 한국의 고고학자들이나 역사가들도 있다. 혹은 그것을 신화라 보고 역사 이전의 시대로 분류해서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신화라는 것을 반드시 허무맹랑한 단지 옛날의 꾸며진 이야기로만 보기보다는 다분히 그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해서 생각한 고대인들의 사고방식, 내지는 사고의 구조로 본다면 그것은 역사와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인 것만은 아니다. 한국역사를 공부할 때 고조선, 단군에서 시작하듯이 이스라엘의 역사의 시작은 아브라함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다. 고대 근동의 지도를 보자면 그는 지금의 이라크,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사람이다.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티그리스 강을 따라서 남쪽으로 약 400km 내려가면 우르라는 곳이 있는데 성경은 아브라함이 이곳 출신이라고 말하고 있다. 갈대아는 고대어로 메소포타미아를 일컫는다. 이 지역은 평야 지대이며 문명의 발상지이다. 인류 4대 문명 발상지 중 가장 오래 된 곳이다. 아브라함은 대략 BC 18세기경의 사람이라 추정된다. 그렇다면 메소포타미아의 아브라함의 본향인 우르의 그 당시는 현대로서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문명을 꽃피우던 장소였다. 아브라함은 시골 촌뜨기가 아니었다. 그는 문명의 한복판, 즉, 그 꽃 봉우리에서 살던 사람이었다. 여기에서 세계의 가장 우수한 문학, 역사, 신화, 종교를 공부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우르 사람들이 다 문명인이었기 때문이다. 우르는 BC 30세기부터 상하수도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곳으로부터 아브라함을 굉장히 먼 길을 지나 가나안으로 부르셨다. 최소한도 이스라엘 역사의 시작은 팔레스타인에 있던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외국인 로서 이 땅에 들어온 이민자에 의해서였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주제이다. 이스라엘 역사의 시작은 원주민들의 역사가 아닌 이주민의 역사다. 

신앙적으로 말한다면 우리는 이민자이다.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왔는가 저 세상으로부터 와서 저 세상으로 가는 존재들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은 무엇인가 잠시 있다가 떠날 장소인 것이다. 이는 성경의 신앙 고백의 시초이다. 그것은 곧 이스라엘의 역사이기도 하다. 신앙고백이란 어느 날 꿈꾸는 자의 머릿속에서 발동한 상상력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역사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는 신앙이라는 것이다. 종교적 입장을 떠나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역사라고 하는 것을 신앙적 고백으로, 즉 역사적 의미로 본다. 역사는 하나의 사실이 아니라 사실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의미작용-역사 철학적 용어이지만-이다. 역사를 흔히 객관적 사실이라고 하지만 불행히도 아무도 객관적 사실을 알 수 없다. 또 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객관적 사실인지 아닌지를 판단할만한 기준이 없다. 어제 우리에게 어떤 일이 있었다고 하자. 우리 중 역사가가 있어 어제의 역사를 오늘 쓴다면 이 수많은 세상일들 가운데 어떤 것을 역사로 쓸것인가? 조금 역사 철학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역사는 모든 사실, 즉 객관적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쓰는 것이며 기억 중에서도 사실을 경험한 사람이 그 사실 중에 일부를 기억해서 그 기억의 일부를 역사로 쓰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바로 여과, 즉 필터링(filtering)이라는 작업이다.

그러한 한정적인 기록을 통해서 우리가 그 시대 전체를 이해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19세기 꽁트의 역사 실증주의는 과거 사실을 밝히는 것을 역사의 목적으로 보았다. 역사학의 목적을 곧 과거 사실의 재구성으로 보았던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 이러한 학풍은 반박되었고 역사는 역사의 의미를 밝히는 학문으로 보기 시작했다. 곧 History가 아니라 Meaning of History인 것이다. History는 결코 Fact가 아니다. 물론 역사는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역사학의 근본적인 목적을 말하자는 것이다. 역사는 왜 중요하며 왜 우리가 역사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전에 말했던 것처럼 얼 이야기로 돌아가 그것은 정신이며 일종의 무형인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의미 작용이라는 것과도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장황하게 얘기를 하게 되었다. 어쨌든 다시 돌아가 이스라엘의 시초는 이민자이다. 본토민들의 역사가 아니다. 하나님은 왜 자기 백성의 역사를 다른 나라 사람을 데려다가 시작하셨을까?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민자로부터 시작한 이스라엘의 역사는 끊임없는 이민으로 점철된다. 그것은 모으셨다가 때로는 역사를 파괴해서 흩어지게 만드셨다가 다시 역사를 형성하게 하고 하는 반복의 역사였다. 신앙적 입장에서 말한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세계를 구원하셔야 했다. 그런 선교적 측면에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아주 고난이 많았다. 고난은 곧 훈련이다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자들은 이처럼 고난이 많다. 전사를 만드는데는 훈련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런 점에서 다른 사람을 데려다가 자신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신 역사였다.

유목민들의 얘기를 들으셨겠지만 족장들의 삶의 형태는 대부분 떠돌이 생활이다. 이스라엘에는 아직도 베두윈이라는 떠돌이 유목민이 있다. 아브라함 역시 그런 물과 목초지를 따라 떠도는 떠돌이였다. 사회구조는 족장 중심의 부족 사회였다. 아브라함 이하 이삭, 야곱은 모두 족장이었다. 족장의 말은 곧 법이었다. 국가나 상비군이나 세금이 따로 없었다. 족장이 모든 가축이나 재산, 사람들을 보호할 권리가 있었다. 지금도 이스라엘에는 족장들이 있는데 그들의 권위는 참으로 대단하다. 그들의 말이 곧 법이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선거철이 되면 정치가들이 그들 족장을 만나 표를 놓고 흥정을 하게 된다. 그 당시에는 여러 부족들이 가나안을 떠돌며 살고 있었고 부족과 부족간의 충돌이 일어나면 사회 구조상 계약이라는 방법으로 그 충돌을 해결하곤 했다. 성경의 역사를 보면 부족과 다른 부족들간의 분쟁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이삭의 시대에 브엘세바의 아비멜렉과의 충돌도 그러한 한 예이다. 이 부족간의 충돌에서 이삭이 슬그머니 양보를 하게 된다. 물론 이것이 실재의 역사에서 어떤 사건을 두고 얘기했는지 우리는 직접적으로 알기는 어렵지만 그 당시의 사회구조상 그것은 흔한 일 중의 하나였다. 만약에 계약이 파기되면 즉, 어느 한쪽이 계약을 위반한다면 계약을 위반한 그 A라는 사람은 C라는 사람과 D라는 사람과 계약을 맺고 있는 B가 그들과 연맹해서 A를 쳐부수게 된다. 고로 부족사회에서는 계약을 위반하면 살수가 없게끔 되어있다.

그래서 구약의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신 것이다. 계약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약속, 즉, 계약을 하신다. 계약을 위반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곧 죽음뿐이다. 그것이 곧 죄의 개념이다. 그래서 창세기 15장에서처럼 계약 당사자들끼리 계약할 때 참 흥미로운 방식으로 계약을 한다. 양쪽에 재단을 쌓아놓고 소를 한 마리 잡아서 각을 떠서 반쪽은 저쪽에 반쪽은 이쪽에 놓고 두 계약 당사자가 그 가운데 서고 계약 문을- 당시에는 주로 토판이나 가죽 종이에 그것을 기록했다.-읽는다. 그리고 두 당사자는 반 동강난 제물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이 재물에 불을 피우고 하늘에 그 연기를 올려 보낸다. 이것이 곧 창세기 15장의 계약 방식이었는데 이것이 곧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두 사람 중에 한사람이 계약을 위반하면 반 동강난 동물처럼 그 당사자도 죽게 되리라는 것을 서약하는 의미였던 것이다. 그 증인들이 바로 태양, 별, 달, 이런 것들이 곧 증인이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계약을 하려면 증인, 곧 변호사를 필요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계약이라는 것은 아직, 국가가 형성되기 이전의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사회구조에서 아주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그래서 성경상에 계약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이다. 

이 계약은 나중에 신명기의 모세의 십계명 사건으로도 연결되어진다. 십계명은 바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사이의 계약법인 것이다. 그 계약을 위반하면 이스라엘이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족장의 시대가 대략 5세기를 점하게된다. 성경에도 있듯이 세월이 흘러 이스라엘 민족에게 기근의 큰 위기가 닥치게 된다. 당시 이스라엘은 기근이 들면 비옥한 토지를 갖고 있던 이집트로 먹을 것을 구하려 갔다. 이집트는 일년 열두 달 비가 안 오는 나라이며 이스라엘은 6개월(겨울)은 비가 오고 6개월(여름)은 비가 안 온다. 이집트 카이로에는 하수구라는 것이 도시에 없다. 그러면 어떻게 이집트가 문명국이 되었을까 그것은 나일강 때문이다. 지구 상 가장 긴 강 중의 하나인 나일강의 제일 끝에서 비가 오면 나일강은 범람한다. 그래서 당시 나일강은 그 퇴적층으로 인해 매우 기름진 땅이었다. 씨만 뿌리고 놀면 곡식은 자기가 알아서 열매를 맺는다. 예로 신명기 11장에 보면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얘기 중에 ‘너희들이 들어가서 얻을 가나안 땅과 이집트 땅은 다른데 이집트 땅에서는 발로 물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라고 기록한다. 그런데 “너희가 들어갈 땅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먹고사는 땅인데 하나님이 지키시는 땅이다“라는 내용의 이야기인데 이는 곧 이집트 땅의 그 비옥함을 잘 알 수 있는 구절이기도 하다. 야곱도 그리하여 이집트로 식량을 구하러 가게 된다. 하나님은 이민자를 보내실 때 반드시 먼저 가서 자리를 잡고 다음에 자기 조상들을 보내게 한다. 

언제인지는 정확치 않지만 대략 BC 15~17세기에 이집트로 내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후 400년간을 종살이하게 된다. 그리고 이후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낸다. 이 출애굽의 역사는 대략 BC 15내지는13세기로 보여진다. 성경에 보면 창세기 37장 이후에 요셉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성경은 왜 그렇게도 이 요셉이라는 인물에 대해 창세기에서 가장 많은 장을 할애했던 것일까? 요셉의 이야기는 역사라기보다는 한 개인의 삶을 자세하게 적어 내려간 이야기이다. 심지어는 이집트의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해서 요셉이 옷 벗고 도망가는 에로틱한 장면까지 묘사되어 있다. 왜 성경은 요셉에 대해 그렇게 상세하게 쓸 필요가 있었던 것일까? 

역사는 앞서도 얘기했듯이 후대 사람들이 정리한다. 즉, 후대에 흩어져서 떠돌아다니던 이스라엘 사람들, 다시 말해 나라가 망해 소위 여기저기 흩어져 살던 이주민들, 혹은 유랑민들이 자기 나라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유랑민족의 선대를 죽 거슬러 올라가다가 현재 유랑의 처지에 있는 자신의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했던 요셉의 이야기, 여기서 쫓기고 저기서 쫓기고 모함 받고, 도망 다니는 그러한 모습은 바로 그들 조상들의 이야기인 동시에 바로 지금 역사를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했던 것이다. 누구나 자기관심사를 역사에 반영하기 마련이다. 즉 역사를 기술하는 사람의 어떤 관심사가 그 시대를 정리하도록 하느냐 하는 관점의 문제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대인들은 철저하게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이야기, 즉, 먼 곳에서 온 사람 이야기, 떠돌아다니다가 그래도 성공하고 출세한 사람의 이야기 등, 자기 조상들의 이야기를 죽 정리하게 된 것이다.

출애굽의 과정을 넘어 가나안 정착 과정에서 조금 살펴보자면 이 시기는 왕정으로 이어지는 과도기로서의 BC 10세기경이다. 곧, 출애굽으로부터 300~500년 가까이되는 시대로서 사사시대라고 하는 시기인데 이 시대의 특징을 좀 정리해보자. 사사시대는 족장들의 시대가 끝났으면서도 아직 왕이 없었을 시대에 과도기적 구조를 갖추고 있던 아주 독특한 시기들이다. 이스라엘이 아닌 우리 식대로 생각해 본다면 한 큰 민족의 부족의 책임자가 없다고 하자, 부족사회도 아니기에 족장도 없고 여기에는 어떤 명령권 자도 없다. 아직 왕도 없다. 왕이라는 것은 부족 사회의 족장보다 큰 권력을 가진 중앙집권적인 군주제의 출발이다. 500년 동안 적어도 가나안 시대에 족장도 왕도 없었다면 도대체 그 사회가 무정부 상태였겠지라고 생각하겠지만 이스라엘 역사 중에서 적어도 고대사에서 이 시기 만큼 안락하고 평온하고 행복했던 시절이 없었다고 성경은 고백한다.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간단히 말한다면 서로 간섭하지 않고 잘 살았다는 뜻이다.
사사는 왕도 명령권 자도, 족장도 아니었다. 오직 전쟁 시에 용맹한 장군이 되어 나라를 안정되게 하고는 다시 평민으로 돌아가곤 했다. 사사출신의 신분은 사실 별 볼일 없었다. 입다는 창녀의 자식이요, 기드온도 양반출신이 아니었다. 사사시대는 오히려 왕이 되기를 거부했던 시대이다. 왕도, 법도 세금도 군대도 필요 없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우리대로 살겠다는 그러한 시대였다. 사사기 마지막 부분을 보면 “각자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았던” 시대라는 구절이 있다. 어찌 보면 법도 질서도 없으므로 무정부 상태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평화로운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선지자들은 나라가 어려워 질 때 계속해서 이때를 회고하며 이 시기를 굉장히 그리워한다.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는 바로 “평등“이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의 평등이었다. 그런데 그 후 왕이 있었던 단일 국가로서의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략해 들어온다. 블레셋은 원래 문명이 있던 도시국가인 그리스의 크레테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신병기인 철병거를 가지고 있었다. 왕정 초기였던 이스라엘의 사울과 다윗의 시대에 이스라엘은 청동기 시대였다. 당시 블레셋은 이미 철기로 진입한지 오래였다. 이집트 박물관에 보면 왕이 타던 철병거가 있는데 수레바퀴를 인류 최초로 발명한 나라가 바로 이집트였다.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 이외에는 칼을 가진자가 없었더라고 기록했듯이 전쟁 당시 다윗은 물맷돌이었고 블레셋과의 엄청난 문화적 차이가 있었음을 볼 수 있다. 그리하여 국민들은 사무엘에게 우리도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를 만들자고 요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BC 10세기였다. 500년간의 평화로왔던 사사시대는 국제 정세의 변화, 곧 이스라엘에게 강력히 도전하는 블레셋이라는 세력으로 인해 변화의 국면을 요구받게 된다. 그리하여 시작된 왕정은 이후 BC 6세기까지 이어지게 된다.

BC 586년 이스라엘의 왕정이 무너지게 되는데 이 사이에 물론 남북분열 등 여러 과정을 거친다. 이것이 곧 1차 성전의 멸망이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충격의 이유는 첫째로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였다. 왕정과 신전은 깊이 결부되어 있는 것이었다. 왕은 중앙집권의 전제 군주가 되고 신이 사는 신전은 대부분 수도에 머물게 되는데 특히 이스라엘은 유일신교였기에 신전도 하나였고 그 신은 예루살렘에만 있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다른 곳으로 옮겨 다니는 신이 아니었다. 그 이전까지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었던가? 떠돌아다니는 하나님이었다. 텐트 치고 머무는 그곳에 하나님도 머물러 계셨다. 불과 구름기둥사이로 움직이셨던 하나님이었다. 그러던 것이 예루살렘의 성전은 곧 “하나님, 여기만 계셔요, 다른데 가시면 안돼요.” 라는 뜻이다. 이것은 곧 무엇을 의미하는가, 곧 종교와 정치가 기묘한 방식으로 얽혀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세계사적으로 본다면 정교일치의 시대와 정교 분리의 두 시대가 있다. 역사를 연구할수록 정치와 종교 간에 사이가 좋든 나쁘든 간에 양자가 합할 때 역사에는 반드시 위기가 온다는 것이다. 종교적 본질인 진리라는 것과 변화와 현실을 중시하는 것은 현실논리요, 힘의 논리인,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는 현실중심의 정치라는 것은 그 속성상 맞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는 불변하며 현실을 중시하는 정치는 매순간 변하는 현실 논리이기 때문이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예배를 드리던 예루살렘 성전이 그것도 이방 왕에게 파괴당했다. 고대사의 전쟁에 있어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정복 할 때 그 최종결말은 정복된 나라의 신전에 그 왕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곧 신성 모독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 신이 죽는 것이다. 로마와 같은 경우에 있어 자기나라에 판 신전이 있었기에 정복한 나라의 신상을 거기에 가져다주곤 했기에 신을 없애지는 않았다. 따라서 거기엔 무수한 신상이 있었고 다신교적이었다. 로마는 정복 할 때 따라서 종교를 멸망시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앗수르나 바빌론은 달랐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도 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신을 제거했다. 유대인들이 볼 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그 우주적 하나님이 사시는 집이 더러운 이방인의 선에 멸망당했다는 것은 엄청난 신학적 충격이었다. 이스라엘의 종교는 여기서 깨지기 시작한다. 이는 곧 민족 종교로부터 우주 종교로를 의미한다. 

종종 하나님은 사람을 때려서 깨닫게 하시는 경우가 많다. 성전 멸망 이후 이사야서는 말한다 하나님은 사람이 만든 집에는 살지 않으신다고....이 고백이 있을 때까지 이스라엘은 얼마나 충격적인 사실 속에 살아야 했던가? 그렇다면 예루살렘의 솔로몬의 성전에는 처음부터 하나님이 사시지 않았다는 말이다. 여기에는 혼란이 있다. 역사의 위기에서 그들은 새로운 사조와 새로운 사상을 창출해 내는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을 예수님이 만났을 때 “그 날이 되면 이곳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 때가 오리니” 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곧 근본적으로 500년간 믿어왔던 신앙의 내용이 깨어졌음을 의미한다. 나중에 이르겠지만 이것이 소위 귀향이라든지 메시야라든지 곧 완전한 새로움, 곧 새 하늘과 새 땅, 예레미야의 경우에는 새로운 계약을 필요로 하고 또 창출하게 되기를 희망하게끔 되었던 것이다. 새 계약을 위해서 이는 곧 약간이기는 하지만 이전 것과 장차 올 새로 올 것과의 사이에 ‘단절’을 선언하게 되는 것이다. 

또 적어도 가나안 땅에 아브라함 이후에 정착한 1500년 가까이의 팔레스타인의 터전이 깨어지면서 이들의 삶의 현장은 이산이라고 하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바벨론으로, 이집트로 요르단 등지로 터어키 지역으로 이들은 흩어진다. 이 들이 나중에 돌아온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대로라면 그루터기는 남아있다. 둥지는 잘렸지만 그루터기는 남아있어 언젠가는 나라를 회복할거라는 소망이 있었다. 그 귀향의 꿈은 머지않아 BC538년에 이루어진다. 페르시아의 고레스가 BC538년 바벨론의 수도인 바벨론을 멸망시키게 된다. 그리하여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페르시아의 식민지의 속국이 됩니다. 고레스왕은 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유를 주게 되는 것이다. 페르시아는 지금의 이란이며 백인들이었다. 그는 포로 민들에게 귀향의 자유를 주고 본래의 성전을 다시 지을 수 있도록 관용정책을 펴게 된다. 그에 비해 그 전의 메소포타미아의 바벨론이나 앗시리아는 그렇지 않았다. BC721년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시리아나 이후의 바벨론이 이스라엘에 대해 더 강력한 억압 정책을 썼던 것에 비하면 대조적이다. 고레스는 이스라엘사람들을 자기민족의 고향 땅으로 돌려보내게 하고 그들이 돌아와서 그 당시에 소위 스룹바벨 총독이 서게 된다. 

이 사람과 함께 일했던 것이 여호수아, 제사장이었고 이들이 결합하여 제 2차 성전을 완성한 것이 BC515년이었다. 에스라, 느헤미야서를 보면 이 성전을 짓는 동안에 공사를 방해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사람들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살펴보기는 어렵지만 간단히 말한다면 이렇다. 원래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는 팔레스타인 땅에 정착했던 사람들로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50년만에 돌아온 사람들이다. 성경에는 스룹바벨이 돌아올 때 함께 돌아왔던 사람들의 명단이 나오는데 그 명단 중에는 성전 멸망 시 잡혀갔다가 50년이 지나서야 늙어서 돌아온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나라로 말한다면 지금 남북이 가라진지 50년이 넘어서 점차적으로 그 2세대들만이 남는 것처럼 당시의 이스라엘도 귀향 시에 2세대들이 많았다. 50년의 세월 속에 이 팔레스타인의 사정도 많이 변했던 것이다. 물론 잡혀간 이들은 당시에 귀족, 왕족, 혹은 기술자들이었고 그 땅에는 주로 농민들 층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한 사회는 어떤 위기를 맞게 되면 그 위기를 진정국면으로 해소하기 위한 자발적이고도 자율적인 사회질서의 재편을 이루게 된다. 만약에 사회변종이 없었더라면 한국형 재벌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처럼 BC586년 이스라엘이 망하고 귀족들이 잡혀간 사이에 그 땅에 남아 있던 천민들 사이에서 새로운 계급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곧 이 땅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권력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들의 새로운 계급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바벨론에 잡혀갔던 기존의 지배층들이 돌아와 그 정통성과 기존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당시 팔레스타인의 신흥계급층들과의 사이에 갈등을 겪게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통일이 되었을 때 북한 땅에 대한 과거의 집문서와 땅문서를 가진 이들이 자기주장을 하고 나선다면 과연 그들이 그 땅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훗날 과연 ‘통일’이라는 사회변동이 다시 북한 땅에 왔을 때 과거의 체제로 다시 복귀하는 가의 여부는 정치적 갈등과 알력을 통해서 결정될 것이다. 이후에 페르시아는 헬라의 마케도니아에 의해 정복된다. 헬레니즘의 시대가 도래했고 이후 이스라엘은 기원전 167-4년에 마카비 전쟁을 통해 독립을 쟁취하고 하스모니안 왕조를 탄생시킨다. 이런 와중에 이스라엘의 내부는 두 세력이 형성된다. 하나는 국수주의자인 정통파 바리새파였고 또 하나는 진보주의적이며 친 헬라적인 사두개인들이었다. 결국 이후의 이스라엘은 보수파인 바리새파를 중심으로 독립을 쟁취한다.

BC141년 경 시몬이라는 사람이 왕이 된다. 그는 혼자서 왕인 동시에 제사장, 군대 사령관이된다. 하시딤이란 그 단어가 뜻하듯이 히브리어로 율법에 충실하다는 뜻으로, 바리새파 사람중에 아주 경건한 유대인을 일컫는 말이었다. 이들은 마카비 가문의 후예에 의해 세워진 하스모니안 왕조가 율법에 위배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율법에 의하면 유다 지파의 다윗 왕조의 후예가 아니고서는 안 되었다. 제사장 출신의 시몬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막강한 지도력을 발휘한 이후에 왕이 된 것은 기원전 586년 유다 멸망 이후 거의 400년만에 모진 고생 끝에 독립운동을 통해 세운 왕조임에도 불구하고 그 정통성을 상실한 결과가 되었던 것이다. 이 왕조가 시작되자마자 하시딤과 왕조와는 대립하게 되었다. 하스모니안 왕조의 몇몇 왕들은 이 하시딤의 세력을 축출하기 시작한다. 그들 중 요한 히르카누스2세라는 왕은 하루아침에 바리새파 사람 800여명을 예루살렘에서 십자가 처형한다. 그리하여 이들이 옮겨 간 곳이 에세네파, 즉, 사해의 쿰란 공동체였다. 열심으로 싸워 나라를 되찾은 이들은 결국 예루살렘에서 모두 쫓겨나게 된다. 이들은 쿰란을 형성하고 기도와 근신의 암흑시기를 보내면서 메시야가 곧 오실 것이라는 임박한 종말론적 사상을 가지게 된다. 

하스모니안 왕조는 대를 이어오다가 알렉산드라 살로메가 여왕으로 즉위한다. 그런데 그 왕자들 가운데 요한 히르카누스3세와 아리스토불루스2세가 세력다툼을 한다. 형제간의 정권찬탈의 과정에서 이들은 각각 로마와 사막의 제국 나바티안 왕조를 각각 개입시킨다. 페트라라는 도시가 이 나바티안 왕조(BC 2C~ AD 2C)의 수도였다. 이들은 후에 로마의 하드리안 황제에 의해 멸망한다. 그리하여 이 두 제국이 팔레스타인에서 충돌하면서 하스모니안 왕조는 물러나면서 로마는 BC63년부터 팔레스타인을 통치하게 된다. 이 때 로마는 안티 파테르를 등극시킨다. 이는 곧 헤롯 대왕의 아버지였다. 안티 파테르는 원래 유대인이 아니었다. 요한 히르카누스라는 하스모니안 왕조 때 헤브론이라는 유다 남쪽, 이두메 지방을 정복하면서 그 이두메인들을 할례를 줄 때 유대인에 편입된 자였다. 유대인들은 이 이방인 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그는 유대인들을 박해했다. 이것이 예수님 당시의 정황이었다. 그것은 지파 간의 갈등, 외세의 개입, 내분, 사회적 혼란의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은 탄생하게 된다. 하스모니안 왕조는 BC63년경에 몰락한다. 

BC63년경 폼페이가 들어오면서 로마의 개입을 받게 된 이스라엘은 점차로 로마의 속국이 된다. 이 같은 행정적 간섭이 심화되면서 이스라엘은 저항하게 된다. 그것이 곧 제1차 유대반란(AD66~70년, 성전 파괴까지)인데 유대 반란이라 함은 역사적으로 전쟁이란 말이 주권국가간의 충돌을 일컫는 말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은 자치정부이긴 하지만 국제세계에서 아직 국가로서 인정을 못 받고 있다. 팔레스타인 분쟁이란 말이 이미 전쟁상태나 다름없는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표현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부 외신, 프랑스의 좌파 신문이나 친 아랍 측에서는 ‘팔레스타인 대통령 아라파트‘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러한 저항은 로마로 하여금 보다 강력한 무력수단을 통해 예루살렘을 정복하게 하면서 70년 급기야 예루살렘 성전은 멸망한다. 제1차 성전의 파괴와 2차 성전의 파괴는 성격상 큰 차이가 있는데 전자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새로운 BC 515년 2차 성전 재건과 연결된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현재까지 예루살렘의 성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전파괴이후 ,종교적인 측면에서 유대교와 기독교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양자간의 관계를 교리사나 신학적인 것을 떠나 역사적으로만 간략히 조명해 본다면, AD70년 성전파괴이후 이스라엘은 디아스포라, 소위 이산이 시작되어 전 세계로 흩어진다. 전통적인 신앙구조에 있어 이스라엘이라는 집은 두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다. 그 하나는 성전이며 다른 하나는 율법, 즉 토라였다. 성전과 율법이 이스라엘을 혹은 유대교를 국가로서 종교로서 지탱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혹은 유대교를 지탱하고 있는 유일한 기둥은 토라만이 남게 되었다. 그래서 AD70년 이후의 유대교는 완전히 토라 중심의 종교가 되어 버린다. 더 이상 성전은 없게 되었다, 오늘날까지도... 따라서 성전이 없기 때문에 대제사장도 제사장도 동물 희생제사도, 다 나아가 교리적으로 동물 희생 제사를 통한 속죄도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통해 그들은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남은 것은 오직 율법밖에 없었다.

성전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듯이... 완전한 토라 중심의 종교를 유대교라 부른다. 오늘날 유대교라 부르는 것과 ‘이스라엘의 종교’라 명했던 과거의 종교는 전혀 다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 종교라 함은 AD70년 이전의 성전과 율법 중심의 두 기둥을 가진 이스라엘의 종교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유대교란 성전이 없는 율법 중심의 종교를 말하는 것이다. 유대교에 있어서는 오직 토라를 잘 지키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길인 것이다. 따라서 유대교는 토라를 보다 잘 지키기 위해서 공부하는 종교이다. 중심은 이제 성전 대신에 율법을 공부하는 장소인 회당이 되었다. 회당은 율법을 공부하는 학교를 말한다. 이후로 점차적으로 회당은 예배의 기능까지 흡수한다. 여기서의 예배란 동물을 잡아서 피를 드리는 희생제사는 물론 아니다. 유대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어렸을 때부터 회당에서 율법을 공부한다.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공부하는 민족은 이스라엘 민족밖에 없다.
그만큼 그들에게 율법의 공부는 구원과 직결되는 것이다. 

5세기부터 1894년까지는 이스라엘은 나라도 주권도 없는 국제 고아 내지는 떠돌이의 삶을 보낸다. 독일에 살면 독일계 유대인이요, 프랑스에 살면 프랑스계 유대인이, 스페인에 살면 스페인계 유대인이었다. 유대인의 이 같은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너무도 광범위해서 히브리대학을 예로 들자면 역사학부중 디아스포라 역사학부가 따로 있는데 그 중에서도 모로코 내지는 북 아프리카계, 혹은 터어키계, 동 유럽계, 아메리카계, 스페인계 등 유대인만 따로 연구하는 파트가 있을 정도이다.

그 동안의 역사는 팔레스타인이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볼수 있는데 AD 5세기에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것은 기독교인들인 비잔틴 사람들이었다. AD 7세기경에는 마호메트의 혁명이 일어나고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무슬림 들이 이곳을 점령하고 비잔틴을 축출하게 된다. 그러다가 10세기 후반 정확하게는 1091년 경 십자군들이 유럽으로부터 건너와서 무슬림 들을 제거하고 이곳에 기독교 왕국을 건설한다. 이것이 13세기까지 계속되다가 당시 이집트 무슬림인 마물룩 인들이 이곳을 점령하다가 16세기에 터어키인 들에게 19, 20세기 초에는 다시 영국이 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게 된다. 그리고 50년의 영국 통치 후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하게 되는 것이다. 약 1500년 동안 팔레스타인은 역사의 주인들이 빈번하게 교체되었다. 만약에 팔레스타인 땅에 흘린 이들의 피를 채취해 본다면 아랍, 기독교, 무슬림, 십자군, 터어키계, 심지어는 몽골의 징기스칸까지 문명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너무도 혼혈적일 것이다. 

그러다가 유럽에서 한 유대의 지식인이 탄생하는데 그의 이름은 테오도르 헤르쩰이었다. 이 사람은 원래 비엔나 대학의 법과대 출신이었고 어느 날 운명적인 신문기사를 접하게 된다. 프랑스에서 이 시기에 드레퓌스 사건이라는 것이 발생하게 된다. 프랑스군내에서 드레피스라는 대위를 독일의 간첩으로 체포하게 되는데 이 사람이 바로 유대인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이 사람은 첩보활동과 무관한 자였는데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재판을 받아 사형언도를 받는 희생양이 된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 에밀 졸라를 비롯한 프랑스의 지식인들이 드레퓌스 사건을 비판하면서 구명운동을 벌인다. 드레퓌스의 무죄함과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처형당해야하는 부당성을 고발한 것이다. 언론사에서 드레퓌스 사건은 유명한 사건이다. 프랑스의 언론사 내지는 19세기의 프랑스를 이해하는데 유효한 사건인 것이다. 테오도르 헤르쩰은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유대인이 유럽사회에서 얼마나 차별 받고 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그 자신도 랍비의 아들이었다. 1984년 그는 ‘데어 쥬덴스타트’ 라는 독일어로 된 소책자를, 자세히 말하자면 50페이지도 안 되는 작은 팜플렛을 출판한다. ‘쥬덴스타트’ 란 ‘유대국가’란 뜻이다. 이것이 바로 시온주의를 제창한 최초의 이론서가 되었던 것이다. 그 내용이란 천년 이상의 방랑과 차별에 있는 유대인이 그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대국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고 시온으로 즉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19세기말 당시의 이 같은 이야기는 현실적으로 전혀 불가능한 하나의 환상으로만 여겨졌다. 테오도르 헤르쩰은 각 나라별로 유럽의 머리가 깨인 지식층들, 소위 계몽주의 운동가들 시온주의 이상아래 조직하고, 시온주의 총회를 여는 등의 활동을 한다. 많은 유대의 지식층들이 이 운동에 가담하면서 전 세계적인 조직을 확보해 나가는데 제 4차 시온주의 총회의 연설을 하고 그 다음해에 41세라는 젊은 나이에 병으로 그는 죽는다. 그것이 1904년이었다. 그는 마지막이 된 그 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꾸는 이 꿈은 5년 내지는 50년 후에는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다.“ 그가 죽은 지 50년이 채 안되어 일부에서는 그를 예언자였다고 까지 할 정도로 그의 말은 현실로 이루어졌다. 

이는 중요한 부분이고 현대 이스라엘사를 잘 모르는 관계로 우리는 이 시온주의에 대해 적잖은 오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시온주의의 두 가지 특징만 설명하고 이제 이 강의를 마치고자 한다. 한마디로 시온주의는 메시야 운동이 아니다. 이전에 잠깐 언급한 적이 있지만 메시야 운동이란 제1차 성전이 멸망하고 바벨론에 잡혀간 유대인들이 선지자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등을 통해서 귀향과 회복의 꿈을 품는데 그것은 언젠가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할 메시야를 보내서 화평케 하시고 그들에게 아름다운 세계를 주실 것이라는 소망이다. 이것을 종교적인 의미에서 메시야 사상이라 한다. 이러한 꿈은 테오도르 헤르쩰 당시에도 일부 종교적인 유대인들을 통해서 계속적으로 유지되어 왔던 사상이었다. 하지만 테오도르 헤르쩰이 우리의 고향, 시온으로 돌아가자는 주창을 했을 때의 이 귀향은 종교인들이 꿈꾸는 그런 귀향은 아니었다. 이것은 정치적인 귀향이다. 이것은 정치적인 사건이며 정치적인 운동이다. 현대 이스라엘의 독립을 메시야 운동의 완성으로 보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요한계시록의 이스라엘의 회복을 1948년의 이스라엘의 독립과 일치시켜 보는 시각이다. 하지만 그것은 역사적으로 옳은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치와 종교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것은 나의 관점이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실제로 그렇다. 테오도르 헤르쩰의 초기 운동에 있어서 많은 정통파 종교인들 -소위 메시야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었던-이 제휴를 요청해 왔지만 그는 한번도 이 제휴에 흔들리거나 그것을 수용했던 적이 없었다. 같은 목적 하에 정치적으로 종교인들과 손잡아 국가 건설을 앞당길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런 상황에서 미래에 무엇이 문제로 다가올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고 본다. 심지어는 그들과 제휴하기를 꾀했던 자기의 측근중 하나인 막스 노르다오 -그는 막시스트 출신의 유대인이었고 헤르쩰의 사상적 이념에 많이 기여했던- 마저 시온주의 총회에서 자기 손으로 제명시킨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볼 때 메시야 운동과 시온주의 운동은 다른 것으로 보아야 한다. 나의 주장은 이렇다. 이스라엘의 건국은 메시야 운동의 결과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스라엘내의 팔레스타인 문제를 조금 논의해보면 좀 더 분명해 지리라.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를 암살한 사람은 바르 일란 대학교 법과대 3학년 재학 중이었던 한 유대인 청년이었다. 그는 바로 구쉬 에무님이라는 운동의 중심 세력을 이루는 정통파 종교인 출신이다. 구쉬 에무님이란 곧 믿음으로 이스라엘을 구원시킨다는 뜻으로서 현재의 이스라엘을 세속 정부의 결과로 보아 부정하며 허상으로 규정한다. 참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세속 정부를 전복시켜야 한다고 그들은 믿는다. 그들은 땅을 나눠줘서라도 팔레스타인과의 협상을 이루려 했던 라빈의 평화정책의 비 신앙성에 분개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국토는 곧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거룩한 개념이었던 것이다. 과연 라빈 총리의 암살은 옳은 것인가? 하지만 한국 기독교인들 중의 상당수는 그들을 정신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생각이 다르다고 폭력을 쓴다면 우리 중 몇 사람이나 살아 남겠는가? 기독교는 유대교의 실체를 알 필요가 있다. 종교라는 것은 때로는 편협한 생각으로 그 폭력성을 드러낼 때가 있다. 라빈 총리의 암살 사건에서 보듯이 적은 항상 내부에 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판 것은 유다였다. 나는 중동에 평화가 하루 빨리 정착되기를 원하며 그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이라 믿는다. 누가 이념적으로 옳든지 동족 간에 서로 피 흘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시온주의는 메시야 운동의 산물이 아닌 동시에 안티 세미티즘, 소위 반유대주의의 산물이다. 유대인들은 떠돌아다니는 수천년 동안 다른 민족으로부터 박해를 , 미움을 받았다. 소위 테오도르 헤르쩰이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는 인간의 dignity, 존엄성을 얻을 수 없다’라 외칠 정도였다. 테오도르는 물론 랍비의 아들이었기에 어렸을 적부터 종교적인 자기 민족의 귀향을 배우면서 자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시온주의 제창’은 철저하게 유럽의 현실을 -드레퓌스 사건 같은 것을 경험하면서- 예고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50년이 채 못 되어 나치가 등장해서 60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된다. 그 이전에 이미 상당수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에 이민하기도 했었다. 그리하여 2차대전의 종결과 함께 남은 유대인 생존자들은 급거 팔레스타인으로 몰려들었다. 1948년 유엔의 지지를 얻어 이스라엘이 독립 시에 신생 이스라엘의 인구는 불과 60만이었다.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물론 여러 가지 외교적 노력도 있었지만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이스라엘 건국의 결정적인 촉매 작용을 했다. 그러므로 테오도르 헤르쩰의 시온주의 운동은 철저히 현실성의 결과이다. 그는 곧 유대인의 학살과 박해라는 현실로부터 이 운동을 전개했고 따라서 종교적인 유토피아의 사상의 결과가 아니라 현실적인 정치적 운동으로 보아야 한다. 물론 그 결과로서 탄생한 이스라엘이 종교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초대 수상인 벤구리온 등이 종교인들과 정치적으로 제휴하면서 종교인들에게 세금면제와 그 자녀들의 병역의 의무면제를 약속한 것이 지금은 법으로 명문화되었을 정도이다. 현대 이스라엘의 문제에 있어 내적인 것은 소위 종교인들과 세속인들 간의 갈등이요 외적인 것은 아랍과의 갈등이라 할 수 있다. 

 

 출처:이스라엘문화원

고대희랍읽기1

Posted by 히키신
2016. 5. 25. 17:57 영원의 지헤, 그리고 철학



(1) [ἑ]과 [ἐ]의 차이
[ἐ] : ε위에 쉼표가 여는 쉼표인가, 닫는 쉼표인가에 따라 발음에 [h]발음이 들어가는가, 들어가지 않는가가 결정됩니다. 여는 쉼표에선 [h]발음이 없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닫는 쉼표에선 [h]발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ἐπακτικοὶ는 발음대로 쓰면 [epaktikoi]가 되는 반면에, ὁρίζεσθαι에서는 [ὁ]에서 보듯, 닫는 쉼표이기 때문에 [h]발음이 첨가되고 그래서 [오]가 아니라 [호]발음이 나는 것입니다.

(2) 나머지는 희랍어 발음표에 나온 영어발음을 참고하면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나머지 부분은 제가 올린 부분들을 참고해서 읽어보세요.

(3) 뜻은 상관하지 말고, 지금은 발음만 배우는 겁니다.

(출처 : http://m.cafe.naver.com/smofskhu/655)

과학철학의 변천

Posted by 히키신
2016. 5. 23. 12:54 영원의 지헤, 그리고 철학



# 과학철학이란?

과학은 논리성·실증성·객관성 등을 바탕으로 인간이 알 수 있는 문제, 즉 경험할 수 있는 문제를 다룸으로써 문제의 소재와 해결을 분명히 하는 역할을 해왔다. 과학의 세계는 어디까지나 ‘경험의 세계’에 머무르기 때문에 사실적이며 실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철학은 체계적이면서 인간의 이성을 따지는 지식이라는 점에서는 과학과 유사하지만, 과학과 철학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보다도 과학은 경험적으로 알 수 있는 세계에 대한 지식인데 반하여 철학은 이러한 세계를 인식하는 인간의 사유에 대한 지식이라는 점에 있다. 이러한 철학이 수학이나 물리학과 같이 객관성을 존중하게 된 그 자체를 과학과 같은 확고한 지반이 형성되었다고 해서 과학적 철학(scientific philosophy)이라고 일컫는다.

과학철학(philosophy of science)은 연구입장에 따른 철학의 어느 단면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지식을 밝혀내려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따라서 인식론적 논의가 주축을 이루며 확률이론이나 귀납논리의 정립 같은 것을 다룬다. 그 대상은 어디까지나 과학이기 때문에 과학철학자의 임무는 개념적·방법론적 쟁점을 분석하고 다양한 각자의 지식과 경험이 어떻게 맞아 들어가는 가를 밝혀내는 데 있다.

이러한 과학철학에 대한 이해는 자연과학 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에서도 과학적 지식을 탐구하는 방안으로 매우 유용하다. 그러나 국내에서 사회과학 분야에서 과학철학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 실정이며, 과학철학 연구의 일부 이론에 대해서만 언급하거나, 연구방법론의 기초로서 과학철학을 다루고 있다.


# 과학철학의 특성

첫째, 과학철학은 응용논리학이기 때문에 그 방법은 논리적 방법이 된다. 다시 말해서 과학철학은 자연과학이나 정신과학 같은 사실과학의 응용이 아니라 논리학의 응용인 동시에 경험과학의 철학적 기반을 논한다. 과학철학이 이처럼 논리학적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과학철학의 이해는 논리학에 대한 인식을 전제로 삼는다.

둘째, 과학철학은 메타수학적 방법과 과학논리를 수정하여 심화한 것으로 그 연원은 칸트의 선험론이라고 할 수 있다. 선험적 관념론은 선험적 관념론은 판단의 체계를 수립하고 있기 때문에 그 성격은 메타 이론적 탐구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셋째, 과학철학의 과제는 과학성이다. 과학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① 간주관적 이해성, ② 간주관적 검증성, ③ 합리적 추론 등이 가능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과학적 주장은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주관과 주관사이의 이해가 가능한 것이어야 하고, 주장의 검증도 다른 사람에 의해 가능한 것이어야 하며, 동시에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 합리적인 추론에 근거를 둔 것이어야 한다.

넷째, 과학철학의 또 다른 과제는 실재과학의 의미문제를 탐구하는 것이다. 우선 의미를 명백히 하고 다음에 타당성 여부를 밝혀야 하는데 지금까지 의미문제를 도외시한 것이 철학이 지닌 결함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섯째, 과학철학은 어떤 특정 철학의 신조에 의존하지 않는다. 과학철학적 탐구를 하는데 신조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이론이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론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더 큰 이론의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따라서 과학활동과 그 산물인 이론적 지식의 합리성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갖기 위해서는 단일의 이론이 아니라 어떤 근본적인 탐구원리에 의해서 다소간에 통합되어 있는 이론군을 고려해야 한다.


# 과학철학의 주요이론

·논리적 실증주의와 논리적 경험주의

20세기에 들어와서 과학철학자들은 특히 기호논리학의 발전에 힘입어 수학을 부분적으로 논리적인 공리체계로 재정식화하는데 성공하자 학문적 분과를 막론하고 모든 과학이론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지식의 확실한 토대, 통일적인 방법론 체계를 세우려고 시도하였다. 이러한 결과, 20세기 전반기의 과학철학을 지배했던 실증주의의 전통이 전개되었다. 그것은 처음에는 논리적 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라는 급진적인 철학운동의 형태로 나타났으나, 이것은 곧 논리적 경험주의(logical empiricism)로 바뀌게 되었다.

논리적 실증주의는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의미의 증명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에 의하면 문장과 명제는 오직 경험적으로 증명될 때만이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 있는 문장과 그렇지 않은 문장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과학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논리적으로 철저히 분석함으로써 과학으로부터 모든 비과학적 요소를 배제시킨다면 가장 순수한 형태의 과학적 합리성의 모습이 확립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 나타나게 되었다.

즉, 과학적 지식이나 이론은 결국 외적으로 경험되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고, 어떤 과학이론이 타당한가 하는 여부는 경험적 사실과 일치하는가, 또는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들은 과학은 검증할 수 있는 명제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으로, 외부세계의 실재를 통해 직접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명제들만이 과학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검증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과학적인 것과 비과학적인 것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나아가 이들은 검증할 수 있는 명제만이 ‘의미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들에 의하면 사람들이 하는 말에는 의미 있는 것과 의미 없는 것이 있는데, 의미있는 언어란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것이며, 검증할 수 없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논리적 실증주의는 이 같은 인식하에 의미있는 언어를 무의미한 언어로부터 분리시킬 수 있는 구획기준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구획기준에 따르면 인식적으로 의미있는 단어는 단 두 가지 종류밖에 없다. 하나는 논리적 언어이고 다른 하나는 관찰적 언어 또는 그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언어이다. 그 외의 언어는 모두 무의미한 것 또는 형이상학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구획기준에 기초해서 과학을 비논리적 또는 비경험적 요소로부터 해방시키려하였던 논리적 실증주의는 귀납법이 가지고 있던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했다. 즉, 논리적 실증주의자들은 일반적인 과학적 명제들은 경험적으로 증명이 되었을 때만이 참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한정된 수의 경험적인 증명만으로 일반적인 문장들을 진리라고 주장하는데는 무리가 있다. 귀납에 의한 추론은 결코 순수한 논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정당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

논리적 경험주의는 이러한 논리적 실증주의의 문제점들을 근거로 Rudolf Carnap의 실증주의에 의해 발전되었다. Carnap은 증명이 완벽하고 명확한 진리를 설정하는 것이라면 일반적인 문장들이 결코 증명될 수 없으므로 증명의 개념을 ‘점증적으로 확정이 증가되는 것’으로 대체시키고, 일반적인 문장들은 연속적인 경험적 검증의 축적에 의하여 진리로 확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논리적 경험주의의 특성은 귀납적인 통계학의 사용으로 볼 수 있다. 논리적 경험주의자들의 견해는 관찰이 과학의 출발점이며, 과학의 이론들은 궁극적으로 이들을 확률적으로 검증하는 관찰에 의해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논리적 경험주의 역시 귀납법의 문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비록 확률적 관계를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소수의 관찰에 의하여 일반적인 문장이 참이라는 논리적 결론을 유도하기에는 여전히 무리가 따른다.

또한 귀납법의 문제 이외에도 확실한 관찰에 의존하려는 의도 때문에 두 개의 문제점에 봉착하게 되는데, 첫째는 관찰에서 관찰자의 주관적인 개입이 필수적이므로 관찰에는 항상 측정오차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사회과학에서 항상 측정의 신뢰성이 타당성에 관계된 깊은 관심이 이를 증명한다. 측정오차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지만 관찰과정과 측정기술이 향상됨에 따라서 측정오차를 가능한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보다 심각한 문제는 관찰이 이론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관찰은 관찰자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의 범주 안에서 해석하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결국 이론에 의존하는 것과 관찰의 오류는 경험적 검증을 채택하는 논리적 경험주의의 심각한 문제점으로 볼 수 있다.


·Popper의 반증주의

과학적 방법론의 진의를 가장 잘 창도한 사람이 Karl Popper이다. Popper에 의하면 타당한 경험적 방법이란 그 이론이 반증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는 경험과학에 대한 방법론적 규칙을 제안하였는데, 그의 핵심적인 주장은 과학이론을 확증해 주는 귀납과정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실증주의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과학철학에서 귀납은 확증이론을 뒷받침하는 어떤 몫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논리적 실증주의가 점증적으로 확정을 증가시키는 귀납법에 의존하는 것에 비하여 반증주의는 논리적으로 연역법에 의존하게 된다. Popper는 일반적인 가설들이 하나의 예외로 반증될 수 있고 연역적으로 도출된 가설이 거짓으로 판명이 되면 이론 자체도 거짓으로 간주된다고 한다.

Popper는 과학과 비과학의 구분, 소위 구획기준을 세우는 일에서 시작하여, 여러 경쟁적인 과학적 가설을 현실성의 정도에 따라 평가하는 기준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구획의 문제는 형이상학이나 사이비과학으로부터 과학이론을 구별해 낼 수 있는 기준을 찾아내는 문제이다. 그에게 있어서 구획기준은 검증가능성이 입증가능성 또는 확증가능성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그는 기초적 진술로 표현되는 경험적 사실에 의해서 과학이론을 입증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또한 확증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과학이론을 검증하는 이유는 그것을 경험적으로 비판하려는 시도, 그것이 거짓임을 보이려는 시도, 즉 그것을 반증하려는 시도에 있다. 과학적 명제의 본질적인 특징은 그것이 거짓임을 보이려는 시도, 즉 그것을 반증하려는 시도에 있다. 과학적 명제의 본질적인 특징은 잠재적으로 경험적인 사실에 의해서 반박될 수 잇다는 점에 있는데, 이것을 반증가능성의 요건(requirement of falsifiability)이라고 한다. 반증주의라는 명칭은 이것으로부터 유래한다. 그의 이론 밑바탕에 자리잡고 있는 방법론적 견해는 두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첫째는 Popper가 지식성장의 문제를 과학철학의 중심적인 과제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는 “인식론의 중심문제는 언제나 지식성장의 문제이며, 지식의 성장은 과학적 지식의 성장에 의해 가장 잘 연구될 수 있다.”고 함으로써 지식성장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둘째는 Popper의 과학철학이 비판적 합리주의에 입각해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는 “모든 합리적 토론의 단 하나의 방법은 자신의 문제를 분명하게 진술하고, 그것에 대해 제출된 여러 가지 결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방법이다.”라고 함으로써 합리적 태도와 비판적 태도를 동일시하고 있다.

Popper에 있어 과학철학이란 일단 이론이 제시될 때 이를 평가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는 소위 ‘의미의 검증가능성 원리’에 내포되어 있는 논리적 실증주의를 비판하는데서 출발한다. ‘의미의 검증가능성 원리’에 의하면 모든 설명은 분석적이거나 종합적이다. 이들 설명은 정의 상 참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실제 경험 상 참이며 따라서 모든 종합적 설명은 적어도 원칙적으로 경험적 검증이 가능할 경우에만 의미있는 설명이라는 것이다.

과학적 가설이란 항상 입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반증될 수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는 논리적 경험주의에 내재되어 있는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반증주의(falsificationism)를 제시하고 있다. 논리적 경험주의자들과는 달리 Popper는 관찰이 항상 기대하는 체계의 존재를 전제하게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과학의 발전은 기존의 이론과 상충되는 현상을 관찰하는 데에서 출발하게 된다고 보고 있다. 반증주의는 문제해결을 위해 제시된 이론에 대해 엄격한 경험적 검증을 하게 된다. 이러한 검증의 목적은 가설의 반박에 있으며, 이론의 예측이 반박되는 경우에 이론은 기각이 되고 이러한 반증에 대항하여 남게 되는 이론이 채택되게 된다.


·Kuhn의 과학적 혁명론

Thomas Kuhn에 있어서 가장 중심이 되는 개념은 패러다임(Paradigm), 정상과학(normal science), 및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이다.

쿤은 패러다임이란 “어떤 과학계에서 생기는 문제와 해답의 선택, 평가 및 비판의 판정기준을 제공하며 나아가서 정당한 설명과 과학의 정의를 지배하는 이론적·도구적 및 방법론적 약속의 네트워크”라고 한다. 패러다임에는 ‘상징적 일반화’와 공통된 가치관 또는 이론평가를 위한 기준을 포함하며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알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포함된다.

정상과학은 패러다임을 정교화하면서, 패러다임의 경험적 적용가능성을 확장시키는 활동이다. 정상과학의 연구는 패러다임으로 확립된 선배 과학자들의 문제해결방식을 모델로 하여 그것이 제시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해 가는 작업이다. 정상과학은 패러다임에 관하여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며 결코 새로운 것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그 결과로 연구의 능률성을 얻게 된다. 이러한 정상과학에서 패러다임은 문제 해결의 방식 뿐 아니라 해결해야 할 문제거리와 그 문제해결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기준을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한다.

과학혁명이란 지배적인 패러다임의 교체를 말한다. 패러다임은 정상과학 안에서 적용되는 범주를 확장시키고 정확성을 증대시켜 주지만, 어느 단계에 이르러 패러다임의 기본이론과 모순되는 변칙이 나타나게 되면 정상과학은 위기를 맞게 된다. 이러한 변칙이 패러다임의 역할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게 되는 위기를 맞게 되면 패러다임의 붕괴가 시작되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타나 위기를 해결하게 되면 과학혁명이 일어나게 되고, 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과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지면 과학혁명은 종결되고 새로운 정상과학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쿤은 과학적 발전이 지식의 축적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전통적 과학관, 즉 Popper의 지식성장론을 부정하면서 과학적 발전의 불연속적인 발전을 주장하고 있다. 과학의 발전이 불연속적인 것은 패러다임의 영향 아래 연구가 진행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쿤의 가장 핵심적인 견해는 이러한 패러다임이 과학적 혁명을 통해 변동된다는 것이다. 즉, 패러다임이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혁명 동안에 기존의 패러다임과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이 혁신적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쿤의 과학적 혁명을 통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지배적 패러다임의 성립 -> 정상과학 -> 이변의 누적 -> 패러다임의 위기 -> 과학혁명 등의 순환적 관계를 가지게 된다.


Lakatos의 과학적 연구프로그램 방법론

Imre Lakatos는 Popper의 반증주의에 대한 Kuhn의 비판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면서, 쿤이 초래한 비합리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합리성의 이론을 구성하려고 하였다. 그의 과학적 연구프로그램 방법론은 Popper의 비판적 합리주의의 전통 안에서 이론평가의 논리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Lakatos가 Popper의 방법론을 발전시켰다고 평가받는 것은 그가 Popper의 합리적 평가기준 만으로는 과학사에서 발견되는 연구활동의 연속성을 설명할 수 없다는 문제를 인식한 데에서 비롯한다.

그는 “과학사가 결여된 과학철학은 내용이 없고, 과학철학이 없는 과학사는 맹목이다.”라는 전제하에 과학사를 ‘서로 경쟁하는 연구프로그램들의 역사’로 보고 있다. 그는 단일이론이 아닌 이론의 복합체가 과학적 탐구대상의 기본 단위이고, 단일이론이 경험과 직접 대면하는 것이 아니며, 과학자들은 그들이 지지하는 이론이 경험에 의해 반증된다고 하더라도 그 이론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제시하였다.

Lakatos는 세련된 반증주의의 관점에서 ‘반증’과 ‘구획기준’을 재해석하면서 이러한 재해석과 일치하는 ‘과학적 연구프로그램의 방법론’을 제시하였으며, 이 방법론은 그간에 행해진 과학사 연구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면서 과학의 합리성을 지지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Laudan의 연구전통론

Larry Laudan은 Popper와 Kuhn의 뒤를 이어 과학의 목적은 문제의 해결에 있으며, 과학에서 이론선택의 합리성이란 이론의 문제해결능력에 의해서 정의된다고 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문제해결능력에 의해서 정의된다고 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문제 해결능력이 높은 이론이 그렇지 않은 이론보다 진보적인 이론이며, 이 같은 진보적인 이론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이론 선택이다. 합리성이란 진보의 함수이며, 진보는 문제 해결의 유효성의 함수이다.

Laudan은 형식적 합리주의와 이에 대한 안티테제인 비합리주의를 극복하고 대안적인 합리성의 이론을 제시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Lakatos의 출발점과 동일하다. 그러나 Lakatos가 상대적으로 Kuhn의 입장에 가깝다면 그의 입장은 Popper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Laudan도 Kuhn의 패러다임 또는 Lakatos의 과학적 연구프로그램 방법론에 대응하느 이론인 연구전통을 제시하고 있는데, Laudan에 의하면 과학적 분야이든 비과학적 분야이든 관계없이 모든 지적인 학문 분야들은 연구전통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연구전통은 무엇을 연구해야 하는가에 대한 연구영역에 대한 규정과 어떻게 그 영역이 연구되고, 어떻게 이론들이 검증되고, 어떻게 데이터들이 수집되는가에 대한 일련의 인식론적이고 방법론적인 규범을 포함하고 있다. 연구전통이란 “연구영역의 존재와 과정, 그 영역의 문제를 탐구하고 이론을 구성하는데 사용되는 적절한 방법에 대한 일련의 일반적인 가정”이라고 할 수 있다. Laudan은 자신의 연구전통을 ‘문제해결 진보모형’이라고 하고 잇는데, 그것은 그가 과학을 본질적으로 문제해결의 활동으로 보기 때문이다. 과학적 사고는 문제로부터 출발하며, 이론은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제공된다. “이론의 기능은 모호성을 해소시키고, 불규칙성을 규칙성으로 환원시키고, 일어나는 사건이 어쨌든간에 그것이 이해가능하며 예측가능하다는 것을 찾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이론의 합리성과 진보성은 이론이 확증되느냐 혹은 반증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이론이 가지고 있는 문제해결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Feyerabend의 방법적 다원론

Paul Feyerabend는 이에 대해 그의 저서 Against method에서 Lakatos와 Laudan가 이론 선택에 대한 합리적인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서 무방법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무방법이 인식론의 가장 좋은 기초이며, 어떠한 규범적인 방법이라도 과학발전에 저해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과학발전을 저해하지 않는 유일한 원칙이란 ‘어떻게 해도 좋다’라는 것이다.

그의 무방법론(방법적 다원론)에 의하면, 아무리 그럴듯하고 인식론에 기초를 두고 있다 하더라도 과학사의 어떤 시점을 위반 없이 무사히 지나온 과학적 방법론상의 규칙이란 없다. 더구나 일부 위대한 과학자들은 건전한 절차상의 모든 규정을 고의적으로 위반함으로써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모든 구체적 연구들은 잠재적인 응용력을 가지고 있다. 즉 과학자들은 연구를 위해 기준을 갖고 있거나 기준을 유지할 수 있는 연구를 계속하려 한다고 보고 점점 어떤 유행처럼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평가기준이 도입되는 것을 강조한다. 오히려 기존의 법칙이나 연구과정들이 과학적 상상력과 창조성을 제한하게 되므로 이러한 과도기적 과정이 과학적 진보를 위해서 필요하게 된다.

Feyerabend가 다루는 중요한 측면 중의 하나는 과학과 다른 형태의 지식사이의 관계이다. 그는 다른 형태의 지식과 비교해서 과학이 우월적인 참다운 지식이라는 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대과학은 결코 신성불가침의 지식이 아니며, 서구사회에서 제도화된 과학도 결코 신성불가침의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과학은 역사적으로 변하지 않은 고정된 방법을 지니고 있는 비역사적인 진리가 아니라 세계를 보는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로 이데올로기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진리로 인도해 주는 방법을 과학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과학적 지식을 믿어야 할 어떤 이유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 정리

초기의 과학철학은 연역법과 귀납법으로부터 시작하였으며, 현재의 과학철학이라는 형태를 갖춘 것은 20세기 이후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전반의 과학철학은 실증주의를 배경으로 20년대 중엽 논리실증주의로 발전하였다가, 30년대에 비엔나학파의 Carnap 등에 의해 주도된 논리경험주의로 바뀌게 되었다. 이들 두 학파들은 모두 귀납법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였으며, 또한 관찰이 선험적인 지식에 근거해서 해석하게 된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Popper는 반증주의를 제시하고 있는데, 반증주의의 입장은 경험적인 검증을 통하여 반박되지 않고 남는 이론이 임시적으로 채택된다는 것이다.

Popper의 반증주의에 대해 Kuhn은 새로운 개념적인 틀로서 ‘과학적 혁명’의 개념을 도입하였으며, 사회구성원들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패러다임이 과학적 혁명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이동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Popper와 Kuhn의 대립적인 지식관에 대해 Lakatos와 Laudan은 양자의 종합적인 지식관을 탐색하고 있는데, Lakatos의 과학적 연구 프로그램론은 Popper의 비판적 합리주의를 견지하면서 Kuhn의 이론을 보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Laudan은 연구전통이라는 개념을 통하여 과학은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라는 견해를 바탕으로 이론의 참, 거짓의 여부보다는 이론이 중요한 경험적인 문제에 대해 설명이 가능한가의 여부가 그 가치를 결정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두 학자들의 이론은 Popper와 Kuhn의 합리주의적인 입장과 비합리주의적인 또는 상대주의적인 입장간의 조화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Lakatos는 Kuhn의 입장에, Laudan은 Popper의 입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한편, Feyerabend는 지금까지 제시되어 온 모든 방법론이 하나같이 성공적이지 못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과학의 방법론이 과학자들의 활동을 지시하는 적절한 규칙을 제시하는데 실패했음을 주장하며, 과학자들은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새로운 평가기준을 개발하게 되고 이것이 과거의 기준과 대체될 때까지는 인식론적 혼란이 존재한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과학철학에 대한 논쟁은 과학의 객관성과 합리성에 대한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의 합리성에 대한 절대적인 입장을 견지해 온 것이 논리실증주의, 논리경험주의와 반증주의라면, 과학의 합리성에 대한 절대적인 면을 부정하고 오히려 상대적인 것을 강조해온 것이 Kuhn과 Feyerabend의 입장이다. 결국 과학철학의 역사는 과학의 합리성에 대한 지지와 부정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학자들 간의 논의의 차이는 있지만, 과학의 합리성은 검증될 수 있다는 측면이 극단적인 합리주의 또는 절대주의, 객관주의라고 할 수 있으며, 반면 과학의 합리성은 부정될 수 있다는 측면이 극단적인 비합리주의 또는 상대주의라고 할 수 있다.





사회과학논총(1998)에 실린 ‘과학철학의 변천에 관한 연구’(윤석경 · 이상룡)을 참고

출 처 : http://blog.naver.com/verthandi

괴델의 불완전성정리와 하이델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

Posted by 히키신
2016. 5. 23. 12:44 영원의 지헤, 그리고 철학


수학은 경험을 넘어선 선험적 추론을 통해 진리를 찾는다. 그래서 일단 확립된 결론은 세상의 본질에 대한 어떤 경험적 발견으로도 뒤엎을 수 없다는 특성을 지닌다. 이런 수리과학 분야에서 20세기 초반 수십년 동안 인식 능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혁명이 연이어 일어났다. 괴델의 불완전성정리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그것이다.

괴델의 불완전성정리

명확하게 표현된 모든 수학 문제는 반드시 명괘한 해결책을 갖고 증명 가능한 한 수학만큼 확실한 진리에 세계는 없다 라는
수학에 대한 절대적 믿음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한 사람이 쿠르트 괴델이다.
수학적 실체가 객관적을 존재하다는 사실을 믿고 이를 추구하는 관점이 수학적 플라톤주의다. 합리주의자인 괴델은 이런 수학적 플라톤주의를 지지했다. 수학의 진리성은 결국 소수 공리에 의해 보장되고 공리는 직관위에 구축된다. 따라서 수학이 경험적 학문은 아니지만 세상을 서술하다는 게 플라톤주의의 핵심이고 괴델은 말한다.

괴델의 반대편에는 경험주의를 계승한 논리실증주의자들이 있었다. 전통적 경험론에 따르면 세계의 본질에 관계되는 모든 명제는 오직 경험적 수단을 통해서만 진위가 가려진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나아가 인식가능성의 한계는 의미의 한계와 같으므로 유의미한 것은
모두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논리학과 마찬가지로 수학에는 서술적 내용이 없음을 밝히려고 시도한다. 이들은 공리와 정의와 추론규칙과 증명으로 인공적 형식체계를 구축하고, 이로부터 모든 수학적 진리가 도출될 수 있음을 보이려 했다. 이 체계가 성립하면 수학적 직관은 인간의 미혹에서 비롯된 환상에 지나지 않게 된다.

괴델의 정리는 이 체계를 무너뜨린다. 제1정리는 어떤 계가 무모순이면 그 안에서 표현 가능한 참이면서 증명불가능한 명제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제2정리는 수론에 적합한 어떤 형식체계의 무모순성은 그 체계 안에서는 증명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이들 정리는 인간 인식 능력의 한계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제1불완전성정리: 산술을 포함하는 어떤 무모순인 공리계는 참이지만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존재한다.
제2불완전성정리: 그러한 공리계는 자기자신의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 없다.

- 증명과정 -
어떤 언어 안에서 그 언어 자체에 대해 연구할 필요가 있을 때 그 언어에 대해서 얘기할 다른 언어가 또 다시 필요하게 된다. 이때 대상이 되는 언어를 '대상언어'라 하고, 그 언어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언어를 '메타언어'라고 한다.
괴델은 불완전성정리를 증명하기 위해, 대상언어를 자연수에 일대일 대응시켜 메타언어를 대상언어의 영역으로 갖고오는 새로운 착상을 하게 되는데 이 1:1 대응된 수를 괴델수라고 부른다.

먼저 화이트헤드와 러셀에 의해 쓰여진 수학원리(Principia Mathematica)의 기호들에게 괴델수를 붙입니다.
예를 들어, 여덟개의 원시기호, 0 f ~ ( ) → = A에 각각 2, 3, 4, 5, 6, 7, 8, 9 를 부여하고,
개체변수(type1) x y z ... 에 각각 11, 13, 17... 을
술어변수(type2) F G H ... 에 각각 11^2, 13^2, 17^2... 을
이런식으로 각 기호마다 괴델수를 붙인다
그러면 모든 문장에도 괴델수를 부여할 수 있게된다.

어떤 메타수학적 명제 G == "논리식 G는 증명 불가능하다"라는 논리식을 형식체계에서 구성한다. 또 논리식 G의 괴델수를 n이라 하면, 이 n이 "괴델수 n에 대응되는 논리식은 증명불가능하다"라는 명제에 대응하도록 구성한다.

만일 G가 증명가능하다면, 곧 참이고, 그러면 G는 증명불가능한 명제이므로, n을 괴델수로 갖는 명제가 증명불가능하고, 이는 다시 G가 증명불가능임을 말하므로 가정과 모순이다. 또 ~G가 증명가능하다면, G는 곧 거짓이고, 그러면 G는 증명가능한 명제이므로, 그럼 G가 참이므로 또 가정과 모순된다. 따라서 G와 ~G는 모두 증명불가능한 명제여야 한다.

그런데 G가 거짓이라면 ~G가 증명가능하다고 했을 때와 똑같이 모순이 생기므로, G는 참이어야 한다.
G가 참이면서 증명 불가능함으로, 제1불완전성정리가 증명되었다.

이번에는 "산술체계가 무모순이다"는 메타수학적명제라는 논리식 J를 구성한다. 그러면 괴델의 제1불완전성정리는 J->G 와 같이 쓸 수 있다. 만일 J가 증명가능하다면 G도 증명가능하다. 하지만 이는 모순을 일으킴을 앞에서 보았다. 따라서 J는 증명불가능하다. 이로부터 괴델의 제2불완전성정리를 얻어진다.


불과 스물다섯살에 내놓은 그의 불완전성 정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 등과 함께 20세기 지적 체계를 구성하는 세 개의 기둥으로 꼽힌다. 어떤 체계가 안주할 확고부동한 근거가 있을 수 없다는 이 정리는 포스트모던의 지적 토대, 컴퓨터 이론의 기초가 되기도 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실성 원리


전자나 빛이 본질적으로 성질이 다른 입자와 파동의 2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일견 모순된 것같이 생각되지만, 이것은 물질이 존재하는 데 대한 견해의 차이이다. 관측 방법의 선정에 따라 어떤 때는 입자로서, 어떤 때는 파동으로서 관측되며 양쪽 성질이 동시에 관측되는 일은 없다. 따라서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 이것은 양자 역학의 특징적인 기초 원리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실성 원리라고 한다.

시공간의 동시성은 이전까지 심지어 상대성 이론의 아인슈타인조차 절대적인 믿음으로 가지고 있던 절대진리이다
하지만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실성의 원칙은 소립자의 위치와 속도를 둘 다 정확하게게 측정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입자의 위치를 정하려고 하면 운동량이 확정되지 않고 운동량을 정확히 측정하려 하면 위치가 불확정해 진다. 이것은 어떤 물체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헥 측정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불확정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 유명한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란 말을 남겼다.
그럼에도 양자 역학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관찰자의 관찰이라는 행동 차제가 전자의 영향을 끼쳐 정확한 관찰을 방해하는 뜻으로 자연과학이 아닌 사회과학과 철학에 확고한 자리를 잡았다. 이로 말미암아 17세기부터 이어온 합리성과 이성의 시대는 끝나고 포스트모더니즘, 구조주의 철학의 시대가 들어서가 된다.

(출처 : http://sungyuyam.tistory.com/m/post/37)

[스크랩] 시의 운율과 음악성

Posted by 히키신
2016. 5. 17. 23:43 글쓰기와 관련하여

시의 운율과 음악성


1. 시의 운율

운율(韻律)은 이름 그대로 운(韻)과 율(律)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합한 한자어로서 전자를 압운(押韻, rhyme, rime), 후자를 율격(律格, meter)이라고 하는데 포괄적으로 말하면 '운'은 같은 소리 또는 비슷한 소리의 반복을, '율'은 소리의 고저, 장단, 강약 등의 주기성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요소는 다시 여러 하위 범주로 구분되기도 하는데 오늘날 이 말은 좀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용된다. 즉, 압운과 같이 외적으로 드러나는 소리의 일정한 규칙적 질서뿐만 아니라 형태로 포착할 수 없는 내재적 리듬을 말할 때도 운율이라는 말을 쓴다.


(1) 운(韻)

운(韻)이란 같은 소리 또는 비슷한 소리의 반복을 그 기본 형태로 하는 것을 말한다.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 서정주, '귀촉도'에서

이 시에서는 자음 'ㅅ'과 'ㅇ'이 반복되어 운(韻)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시에서의 운은 서구시나 한시에서처럼 엄격하거나 다양하지 못하고 단조로우며 발견하기도 어렵다. 대체로 단순한 소리의 반복이거나 동어 반복 정도로 되어 있는 것이 우리시의 운이다. 그것은 우리말이 교착어인 까닭으로 어절이나 단어의 끝 음상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2) 율격(律格)

율격은 앞에서 말한 대로 소리의 고저, 장단, 강약을 규칙적으로 반복함으로써 생겨난다. 그것은 고저율(tonal), 강약율(dynamic), 장단율(durational)로 세분되지만, 우리시를 논할 때는 거기에 다시 음수율(音數律)이 보태어진다. 그러나 고저율, 강약율, 장단율이 모두 적용되지 않는 한국시의 율격은 음보율(音步律)이 일반화되어 있는 통념이다.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박목월, '나그네'에서


이 시는 7.5조의 음수율을 기조로 한 시의 일부이다. 그러나 우리시의 이러한 음수율은 그 음절 배열의 규칙이 엄격하지 않고 느슨해서 가변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음수율보다 음보율을 적용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2. 운율의 구성 요소

시의 운율은 말이 지니고 있는 음성적 요소의 규칙적 배열, 특정한 음보의 반복, 음성 상징어의 구사, 일정한 음절의 규칙적 배열과 반복, 통사 구조 및 행과 연의 규칙적 배열 등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운율은 또한 의미 구조에도 밀착되어 있어서 시인이 작품 속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 의식에 의해서도 이루어지는데, 음악성에 대한 욕구를 시의 내면으로부터 충족시키려고 하는 추세는 현대시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다.


3. 운율의 갈래

(1) 외형률(外形律)

외형률은 운율이 시의 표면에 드러나 가시적, 물리적으로 따질 수 있는 것으로 객관적 운율이라고도 한다.


① 음성률(音聲律)

소리의 고저, 장단, 강약, 음질 등의 여러 속성들이 한 단위가 되어 규칙성을 띠고 반복되는 것을 말한다. 음성률은 주로 서구시나 한시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우리시에서는 잘 인식되지 않는다. 우리말에도 소리의 고저, 장단, 강약 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에서 그것을 인식할 수 있을 만큼 개발되지도 않았고, 또 창작할 때 그것을 고려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② 음수율(音數律)

음절의 수를 단위로 하여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계측함으로써 나타나는 율격을 말한다. 주로 1행을 기준으로 그 속에 드러나는 각 음보의 음절수를 헤아려 그 규칙성을 따지게 되는데 이른바 3.4조, 4.4조, 7.5조 등은 이 음수율에 의해 계측된 율격적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한때는 많은 날을 / 당신 생각에
밤까지 새운 일도 / 없지 않지만
아직도 때마다는 / 당신 생각에
축업은 베갯가의 / 꿈은 있지만
- 김소월, '임에게'에서


빗금(/)을 중심으로 앞은 7음절, 뒤는 5음절로 되어 있어 전형적인 7.5조의 음수율을 보여 준다. 이렇게 음수율은 시행에 배치된 음절의 수를 따져 그 규칙성을 밝혀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음수율은 우리말의 특성상 매우 불안정한 것으로 지적된다. 다시 말하면, 우리말의 어절 구조는 대체로 1∼3음절이 대부분이므로 여기에 조사가 붙으면 2∼5음절의 어휘가 되므로 자연스럽게 3·3, 3·4, 7(3.4, 4.3)·5(2.3, 3.2)조의 음수율을 형성하게 된다. 이와 같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은 운율적 자질로 보기 어려우므로 이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제기하기도 하다.


③ 음보율(音步律)

불안정한 운율적 자질을 가진 음수율보다는 호흡의 단위로 측정하려는 것이 음보율인데, 음수율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된 이후 이것은 널리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음보율을 따지는 방법은 서구시에서처럼 몇 개의 음보(音步, foot)가 모여 한 행을 이루고 있는가를 따지는 방법과 음절 및 각 음절이 지니는 장단(長短)의 속성이 실현되면서 이루어지는 시간적 길이가 같은(시간의 등장성, 等長性 equal length) 단위로 따지는 방법으로 사용하므로, 현대시와 같이 한 행을 이루는 음절수가 불규칙한 경우에 적용하기에 알맞다.

얇은 사(紗) / 하이얀 고깔은 // 고이 접어서 / 나빌레라.
파르라니 / 깎은 머리 // 박사(薄紗) 고깔에 / 감추오고,
두 볼에 / 흐르는 빛이 // 정작으로 고와서 / 서러워라.
- 조지훈, '승무'에서


이 시는 음절수로는 운율의 파악이 어렵지만, 호흡 단위인 시간의 등장성(等長性)으로 파악해 보면 2음보의 중첩형인 4음보격의 음보율을 갖춘 시임을 인식할 수 있다.


④ 음위율(音位律)

음위율은 동일한 말소리가 일정한 위치에 규칙적으로 반복될 때 형성된다. 음위율에는 두운(頭韻), 요운(腰韻), 각운(脚韻) 등이 있지만, 이것도 우리시에서는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양식이 아니다. 주로 서구시나 한시에서 발달된 것으로, 우리의 경우는 한시의 영향에서 각운의 형태가 더러 사용되는 예를 볼 수 있다. 특히, 우리말은 종결 어미가 거의 한정이 되어 있어 서구시에서와 같이 의도적으로 배치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각운의 형태가 형성되기 때문에 운적(韻的) 자질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다음은 각운의 예가 드러난 시이다.
섬은 날 가두고 ·
회오리바람으로 날 가두고 ·
원산도 앞에는 삽시도 

삽시도 앞에는 녹도 ·
파도가 날 가두고
피몽둥이 바람으로 날 가두고
-홍희표, '섬에 누워'에서

(2) 내재율(內在律)

시의 표면에 드러나지 않고 시의 내면에 존재하는 주관적, 정서적 운율을 내재율이라고 한다. 즉, 시인이 형상화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에 의해 이루어지는 주관적 운율로서 개개의 시 속에 흐르는 시인의 특유한 맥박과 호흡이라 할 수 있다

 

(출처 : 다음 블로그 '리모컨 / 조점기 (擧石)' http://m.blog.daum.net/sds7002/18166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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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언어의 음악성

Posted by 히키신
2016. 5. 17. 23:42 글쓰기와 관련하여

6)언어의 음악성

 

언젠가 말씀드리면서 원시시대엔 음악과 시가 하나였다고 말씀 드린 기억이 있습니다. 제천의식에서 예술이 발전했다고 볼 때 원래는 하나에서 가사와 노래로 분리 된 것이지요.

 

그래서 시에는 곡조가 없지만 시를 읽으면 감동에 젖어 슬퍼지거나, 흥에 겨워 자연히 가락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처럼 곡조는 없어도 어떤 율격이 있어 음악성을 느끼게 하는 것은 운율이라 하는데 이는 시의 아주 중요한 특성이며, 다른 문학과 장르의 구별을 짓게 하는 핵심적 요소입니다.

 

조태일님은 "운율은 시가 갖게 되는 구조나 형식, 분위기, 어조, 문장의 호흡, 음절 수, 음보, 음운의 반복 등에 의하여 형성 되지만 언어자체가 지닌 소리[형식]에 의해서도 생겨난다. 그러므로 의미전달을 중심으로 하는 일상 언어가 언어의 소리 부분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과는 달리 시의 언어는 소리가 빚어내는 미묘하고 섬세한 부분까지 그 음악적 효과를 살릴 수 있도록 사용하는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프랑스의 대문호이며 어느 누구보다도 언어에 대하여 엄격한 태도를 지녔던 작가 플로베르가 그의 대표작 『보봐리 부인』을 집할 때의 일화입니다. 책상 앞에서 창작에 열중하던 플로베르는 갑자기 펜을 내려놓고 피아노 앞에 가서 난데없이 건반을 쳐 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모습을 지켜보던 부인은 행여 남편이 작품을 구상하는데 혼란이라도 생길까봐 걱정스러워서 한 곳에 집중시키지 못하고 산만스러운 그의 행동을 나무라자 플로베르는 "내가 피아노를 치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오. 나는 이 피아노 소리로써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문장의 단어들이나 구절들이 소리가 듣기 좋고 서로 조화가 잘 되었는가를 알아보는 중이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프로베르가 소설을 쓰면서도 언어의 소리가 지닌 음악성이나 어감까지 살폈는데 시에선 그 음악성을 강조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겠지요. 이런 점에서 음악을 전공으로 하신 분들은 유리한 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요즘 산문시들도 많이 유행하고 있습니다만, 그 안에 운율이 빠지면 이는 산문시가 아니라 바로 산문으로 빠질 염려가 있는 만큼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언어의 소리는 단지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나 형식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솔 그 자체로서 우리에게 어떤 느낌을 자아내게 하고, 분위기를 불러일으키며 감각을 자극하는 것이지요. 의성어나 의태어에게 그런 요소가 충분한데요. 보실까요?

 

 

돌돌, 졸졸, 살랑살랑, 출렁출렁, 모락모락,

 

우줄우줄, 철썩철썩, 사락사락, 옹알옹알, 팔랑팔랑,

 

설레설레, 옹기종기, 곤드레만드레, 붉으락푸르락,

 

포실포실, 앙알앙알 덩실덩실, 꼬르륵꼬르륵,

 

 

 

얼마든지 있지요. 여러분들이 여기에 없는 것들을 한번 말 해보세요.

 

그러면 언어의 소리가 빚는 음악성을 제대로 살려내고 있다는 평을 받는 김영랑님의 <동백 잎에 빛나는 마음>을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내 마음의 어딘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 흐르네

 

돋쳐오르는 아침날빛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듯 눈엔듯 또 핏줄엔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있는 곳

 

내마음의 어딘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내면에 흐르는 강물의 부드러운 움직임이 언어의 소리 그 자체에서도 느껴질 만큼 의미와 소리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시입니다. 예를 들면 4행의 '도도네'는 '돗 우네'의 사투리이지만 같은 음운을 반복해서 사용함으로써 마치 강물이 흐르는 것 같은 리듬 감각을 살려낸 것이라든지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유성음(ㄴ,ㄹ,ㅁ,ㅇ)이 깔려서 밝고 맑은 시적 분위기를 나타낸다고 평자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 언어의 음악성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시의 장치로 쓰는 이미지 중에 청각이미지라는 것이 있는데요. 이는 우리가 시를 통해 음향 등 모든 소리를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시의 묘사에 있어서 청각적 이미지는 그 시를 생동감 있게 또 역동적인 이미지로 전개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청각적 이미지는 언어의 음악성을 강조하는 결과가 됨으로 여기 대표되는 시 몇 편을 옮겨 봄으로 서, 생동감 있는 시를 만드는 청각이미지를 살펴보는 한 편, 언어의 음악성이 시에 나타나는 모습을 관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허영자님의 <가을 다 저녁 때> 입니다.

 

 

나무들이

 

울음을 삼키고 있다

 

 

 

돌들이

 

울음을 삼키고 있다

 

 

 

 

조그만 귀또리도

 

울음을 삼키고 있다

 

 

 

가을

 

어느 다 저녁 때

 

 

 

울고 싶은 나도

 

울음을 삼키고 있다.

 

이 시는 조용한 청각적 이미지의 한 전형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4개의 연마다 마지막 시행을 '울음을 삼키고 있다' 고 동어반복을 함으로서 시끄럽게 우는 것보다 더욱 강하게 독자에게 아픔을 주는 청각적 이미지를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리드미컬한 반복으로 음악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유성음(ㄴ,ㄹ,ㅁ,ㅇ)이 반복 사용됨으로 언어가 부드러움을 갖도록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나희덕님의 <못 위의 잠>을 올립니다. 그냥 주변의 일상사를 담담하게 올린 것 같아도 그 행의 바꿈에 따라 운율이 생기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속으로 읽지 마시고 낮게 소리를 내어 그 운율을 최대한 살리면서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저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들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봅니다

 

 

 

종암동 버스 정류장,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 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젖은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 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 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도 흙바람이 몰려오나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

 

 

경주대학교 손진은 교수의 <시와 리듬>이 참고가 되실까 하여 그 일부를 발췌하여 봅니다.

 

 

"현대시는 전통 율격으로부터 벗어나는 시들이 많다. W.H 파울러의 말처럼 '파도의 모양과 크기 속도만큼이나 무한히 다양한 흐름'이 리듬을 갖고 있다. 그만큼 현대시는 형태적으로 매우 다양해지고 도 운율에 관한 감각과 이론이 발달 하여 단순하게 적용시키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현대시의 두드러진 특징은 말의 의미상 중요성이나 정서의 변화가 리듬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시인들이 의미의 단위(단어, 어절, 문장 등), 음성단위(음운, 음절, 호흡), 음보, 어법 등을 일정한 틀에 맞추지 않고 개인의 창조성에 의해 변용시킨 리듬으로 창작을 하고 있는 데서 나타난 현상이다.

 

 

 

미루나무 끝 바람들이 그런다

 

이 세상 즐펀한 노름판은 어데 있더냐

 

내가 깜박 취해 깨어나지 못할

 

그런 웃음판은 어떼 있더냐

 

미루나무 끝 바람들이 그런다

 

내가 걸어온 길은 삶도 사랑도 자유도

 

고독한 쓸개들뿐이 아니었더냐고

 

미루나무 끝 바람들이 그런다

 

 

 

믿음도 맹서도 저 길바닥에 잠시 뉘어놓고

 

이리 와바 이리 와바

 

미루나무 끝 바람들이 그런다

 

흰 배때아리를 뒤채는 속잎새들이나 널어놓고

 

낯간지러운 서정시로 흥타령이나 읊으며

 

우리들처럼 어깨춤이나 추며 깨끼춤이나 추며

이 강산 좋은 한 철을 너는 무심히 지나갈 거냐고

 

미루나무 끝 바람들이 그런다

 

 

-송수권, <미루나무 끝>

 

 

이 시는 '니루나무 끝 바람들이 그런다'라는 구절을 5회 반복하면서 반복을 통하여 의미를 강화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구절 사이의 행동은 첫 번째

 

구절(1행)과 두 번째 구절(5행)사이가 3행, 두 번째 구절과 세 번째 구절(8행) 사이, 세 번째 구절과 네 번째 구절(11행)사이가 각각 2행, 네 번째 구절과 다섯 번째 구절(16행)사이가 4행이 되는 형태를 이루면서 단조로움을 피하고 바깥의 3행,4행이 안의 2행을 감싸고도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또 이 구절들 앞에 놓인 행말의 어미도 "더나", "더냐고", "와봐", "거냐고'의 변화를 주면서 시의 생기를 살리고 있는데 전달하려고 하는 내용을 다를 것이 없다. 그래서 이 시의 반복은 시의 시적 화자의 호흡 조절과 함께 시의 리듬에 기여하는 면으로 작용한다."

 

아무튼 복잡한 이론은 잊어버리시고요. 시에는 내재율 이란 것이 있어 음악성을 띄우고, 여러 가지 형태가 변해도 시에는 그 음악성이 있어야한다는 것만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시의 언어가 갖는 특성 6

 

오늘로 시의 언어가 갖는 특성을 마칠까 합니다. 먼저 언어의 압축성과 간결성에 대해서 고찰해 보기로 하지요.

 

 

7)언어의 압축성과 간결성

 

김준오의 『詩論』에 보면 "산문이 '축적의 원리'에 의한 설명이지만, 시는 '압축에 의 원리'에 의한 암시성을 그 본질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시는 산문처럼 사건의 연속이나 줄거리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체험이나 직관, 감정 등이 최대한 집중되어서 하나의 결정체로 나타내야 합니다.

 

말하자면 요즘 젊은이들의 유행어로 엑기스로 뽑아야 합니다. 엑기스는 양은 작지만 그 효능이나 강도가 아주 높듯이, 시어가 지닌 이런 압축성과 간결성 때문에 언어가 각각 갖고 있는 무게와 비중은 아주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헤밍웨의 친구 하나가 자기가 쓴 원고를 가지고 그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헤밍웨이가 한 쪽 다리를 들고 서서 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 친구는 헤밍웨이에게 그렇게 괴로운 자세로 글을 쓰고 있는 까닭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헤밍웨이가 "앉아서 쓰면 아주 편안하네. 그러나 써 놓은 글을 보면 문장은 길고 지저분하네. 한 쪽 다리로 서서 글을 쓰면 다리가 아프니까 간결하게 쓰도록 내 자신을 핍박하게 된다네." 하고 대답했습니다.

 

산문을 쓰는 헤밍웨이의 자세가 이러할 진데, 그의 글의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아름다운 이유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산문 보다 훨씬 간결성과 압축성을 필요로 하는 시를 다루는 분들의 태도가 어떠해야할 지를 가르쳐주는 좋은 모범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김지하님의 <중심의 괴로움>을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봄에

 

가만 보니

 

꽃대가 흔들린다

 

흙밑으로부터

 

밀고 올라오던 치열한

 

중심의 힘

 

 

 

꽃피어

 

퍼지려

 

사방으로 흩어지려

 

 

 

괴롭다

 

흔들린다

 

나도 흔들린다

 

 

 

내일

 

시골 가

 

 

비우리라 피우리라

 

 

이 시에 대한 조태일님이 해설을 보겠습니다.

 

"인용한 시 역시 시어가 갖는 간결성과 압축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이 압축되고 간결한 시어들이 시의 주제와 서로 조화를 이루는 점이다. 중심의 괴로움은 사방으로 퍼지고, 흩어져 나가려는 행위에서 비롯된다. 이 중심의 분산으로 인하여 틈이, 여백이, 공간이 생겨난다. 그런데 시어와 행, 연들 역시 지극히 간결함 속에서 여백과 틈을 만들어내고 있다. 즉 시어들은 최대한 경제적으로 사용하면서 주제와 형식의 일치를 보여주고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간결한 시어들 속에 내재된 힘이다. 시어들은 한껏 수축되어 있는 용수철처럼, 씨앗들처럼 혹은 위 시에서 보여준 '중심의 힘'처럼 그 안에 저장된 에너지들로 인하여 무수한 울림으로 솟아 퍼져 나간다. 군더더기가 없이 정제되고 압축될수록 시어가 지닌 힘은 더욱 강해지게 마련이다" 말하자면 위의 시는 오늘의 주제처럼 언어의 압축성과 간결성이 아주 전형적으로 나타난 시라는 것입니다.

 

여기 서정주님의 <冬天>을 올립니다. 이 시는 시인 자신이 가장 아끼던 시 중의 하나입니다.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옴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1연 5행의 아주 간결한 시입니다. 이 시에 대해 황동규 시인이 해설한 것을 요약해보면 겨울 하늘은 텅 비어 있고 조각달만 하나 떠 있는 풍경입니다. 그 달은 꿈에 천 번이나 나타났던 임의 눈썹으로 보입니다. 그건 바람(꿈)으로 <맑게 씻어 놓은> 눈썹입니다. 화자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동지섣달의 <매서운> 새까지 비끼어 갑니다. 그 것은 인간의 일에 자연히 참여하는 정신의 한 섬세한 극치인 것입니다.

 

이 시는 정말 많은 비평가들이 다룬 시입니다. 아주 간결한 시인 데도요. 김재홍의 <미당 서정주>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시는 <화사>(1936) 이후 만 30년째인 1966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 다섯 줄의 시는 20대에서 지천명의 나이 50대로 접어든 시인의 정신적 성숙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이 시에서 시인이 노래하는 것은 역시 사랑이 문제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의 사랑은 <화사>에서와는 현격히 다른 정신적 사랑으로 상승되어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아주 해설이 길지만 오늘의 주제와 관계없음으로 여기서 줄입니다.

 

 

이어서 좋은 시 소개하겠습니다.

 

주제하고는 관계가 없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이론이 너무 어려우니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시 읽기를 하시고, 시인의 마음을 엿보자는 것입니다.

 

 

강현국님의 <너에게로 가는 길>과 시인의 변을 읽어보겠습니다.

 

 

너에게로 가는 길엔

 

자작나무 숲이 있고

 

그해 여름 숨겨 둔 은방울새 꿈이 있고

 

내 마음 속에 발 뻗는

 

너에게로 가는 길엔

 

낮은 침묵의 草家가 있고

 

호롱불빛 애절한 추억이 있고

 

저문 날 외로움의 끝까지 가서

 

한 사흘 묵고 싶은

 

내 마음 속에 발 뻗는

 

너에게로 가는 길엔

 

미열로 번지는 눈물이 있고

 

왈칵 목메이는 가랑잎 하나

 

맨발엔 못 박힌 불면이 있고

 

"시는 필경, 피가 돌지 않아서 손발이 뻣뻣한 도서관 서책들의 근엄과 같은 것이 아니라면 춥고 쓸쓸했던 날들의 기억으로부터 말길을 트는 것이 좋겠다. 그해 겨울 내게는 괴이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볼품 사나웁게 어느 단체장 선거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차마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고약한 체험이었다. 글쟁이들의 선거판도 예외는 아니었다.(중략) 그 무렵 나는 당연히 천사를 꿈꾸었다. 따뜻한 가슴과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의 모습을 한... 나는 지금, 내 마음 속에 발 뻗는 너에게로 가는 길 위에 있다. 텔레비전으로부터, 삐걱이는 일상의 계단으로부터, 목 조이는 언 라인의 거미줄로부터, 정연한 제복과 가지런한 넥타이로부터, 비누와 칫솔과 젖은 손수건으로부터, 길고 긴 죽음맞이 소말리아로부터, 끈질기게 달라붙는 파리 떼들로부터, 성급한 희망과 안이한 구원의 갈보들로부터, 여의도로부터, 마침내 돋보기 너머 먼지 앉은 도서관으로 부터 멀리 떠나 너에게로 가는 길 위에 있다. 타고 온 자동차는 人家 가까운 산발치에 두었다.

 

(중략)

 

나는 지금 너에게로 가는 길 위에 있다. 비유컨대 시는 길 떠나기이다. 삶이 고단한 여정이듯이, 멀리 길 떠나기 이다. 길을 잃을 때까지 길 떠나기이다. 안개에 갇혀 길을 잃는다. 현자의 말씀처럼 길을 잃으므로 우리는 길을 찾는다. 길을 잃은 자만이 비로소 제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시는 길 찾기이다. 길은 상징이다."

 

이하 너무 장황하여 생략합니다. 여기서 작가의 말은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여성시인의 시에 대한 관심이 많아 이번엔 강계순님의 <압력솥, -슬픔에게 20>을 읽어보시겠습니다.

 

 

압력솥 하나 들여놓기로 했네

 

불을 사용하지 않고는 아무래도

 

섭취할 수 없는 일용할 양식

 

쉽게 끓고 쉽게 넘치는 얇은 냄비로

 

걸핏하면 화상 입으면서

 

아리고 쓰린 자리 문지르고 또 문지르면서

 

팽팽하게 긴장하여 오랜날

 

두려움에 몸서리쳐 왔네

 

이제 끓여도 넘치지 않는 압력솥 하나

 

들여놓고 이만큼 비켜 앉아

 

지켜보고 있네

 

극도의 압축에도 터지지 않고

 

조용히 억장 무너지는 법

 

맹렬한 불길에도

 

넘치지 않는 법

 

곤죽이 되어 풀리는 법 이젠

 

알 것 같아

 

 

원래는 빛이던 것 초록이던 것

 

약속이던 모든 것 끓이고 또 끓여

 

서로가 서로에게 스미듯 흔적없이

 

풀기로 했네.

 

(여기서는 마지막 부분에만 마침표가 있는데요. 아마 이 건 작가가 여기에서 시가 끝났다는 의미로 제일 마지막 행에만 마침표를 치는 것이구요. 도중에는 시가 그 언어의 맥이 끊이지 않도록 생략하는 것일 겁니다. 즉 아직 시가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는 뜻이겠지요. 시에서는 부호 하나가 한 행이 될 수도, 한 연이 될 수도 있을 만큼 중요합니다.)

어떻습니까?

자기 주위의 모든 사물을 어떤 눈길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평범한 밥솥으로 남기도 하고, 이렇게 아름다운 시로 남기도 합니다.

 

(출처 : 詩가 있는 풍경 http://m.blog.daum.net/mesire/8928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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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다노 브루노 [Bruno, Giordano] - 이탈리아 철학자

Posted by 히키신
2016. 5. 16. 13:09 영원의 지헤, 그리고 철학



브루노 [Bruno, Giordano, 1548~1600.2.17]
이탈리아의 철학자·천문학자·수학자·신비주의자.

개요
현대 과학을 예상하는 이론들을 제시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무한한 우주에 관한 이론과 다양한 세계에 관한 이론이다. 브루노는 이 이론들을 통해 지구 중심의 전통 천문학을 거부했으며, 나아가 여전히 항성 천구를 가진 유한한 우주를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 이론을 직관으로 넘어섰다. 로마 가톨릭 교회와 개혁 교회가 모두 유럽의 복음화를 위한 투쟁 속에서 엄격한 아리스토텔레스적·스콜라적 원리들을 재확인하던 시기에 비정통 사상을 집요하게 고수하다가 화형대에서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유명하다.

초기생애
직업 군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세례명은 필리포였고, 나중에는 태어난 곳의 지명을 따서 '일 놀라노'라고 불렸다. 1562년 나폴리로 가서 그리스·라틴의 고전문학, 논리학, 변증론(논증법)을 연구했다. 아베로에스주의(이슬람 철학자 아베로에스의 아리스토텔레스 해석에 영향을 받은 여러 서구 그리스도교 철학자들의 사상)에 경도된 것으로 알려진 G.V.데 콜레의 강의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기억장치와 기억술에 관한 저작의 영향도 받았다. 1565년 나폴리에 있는 산도메니코마지오레의 도미니쿠스 수도원에 들어갔고 조르다노라는 이름을 받았다. 비정통적 태도 때문에 이단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켰지만, 1572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같은 해 나폴리 수도원으로 배치되어 신학 공부를 계속했다. 시시콜콜한 신학 논의들로 짜증을 느꼈지만 1575년 7월 정규과정을 마쳤다. 그에 앞서 금서인 에라스무스의 주석서를 2권 읽고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정한 아리우스파의 이단 학설을 거리낌없이 논의한 일 때문에 수도원장이 이단죄로 재판을 하려 하자 1576년 2월 로마로 피신했다. 그곳에서 자신이 부당하게 살인자로 고발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다시 파문 절차가 시작되어 1576년 4월 다시 도망쳤다. 도미니쿠스 수도회를 나와 북부 이탈리아를 떠돌아 다니다가, 1578년 제네바로 가서 교정일로 생계를 꾸려갔다. 형식적으로는 칼뱅주의를 받아들였으나, 칼뱅주의자 교수에 대한 격렬한 비판문을 공표한 뒤 개혁 교회도 가톨릭 못지않게 비관용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체포되어 파문당했지만 발언을 철회함으로써 복권되었다. 마침내 제네바를 떠나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지자 프랑스 툴루즈로 갔다. 그곳에서 가톨릭 교회의 사면을 받으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럼에도 브루노는 툴루즈에서 철학강사로 임명되었고 1581년 파리로 갔다.
파리에서 브루노는 마침내 마음 편하게 일하고 가르칠 수 있는 자리를 발견했다. 가톨릭과 위그노(프랑스 프로테스탄트) 사이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당시 앙리 3세의 궁정은 ' 폴리티크'(1584년 프로테스탄트로서 프랑스 왕위의 법정추정 상속인이 된 나바라 왕 엔리케 3세에게 동조하는 온건 가톨릭 교도들)라는 관용파가 지배하고 있었다. 종교에 대한 브루노의 태도는 이 집단과 양립할 수 있었고, 따라서 그는 앙리 3세의 보호를 받았다. 앙리 3세는 그를 임시 임명했다. 1582년 기억술에 관한 3권의 책을 펴냈고 이 책에서 그는 실재를 깊이 파악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했다. 〈양초쟁이 Il candelaio〉(1582)라는 이탈리아어로 쓴 희극을 발표했는데 이 희극은 당시의 나폴리 사회를 생생하게 재현함으로써 당대의 도덕적·사회적 부패에 저항하고 있다.
1583년 봄 브루노는 앙리 3세의 소개장을 가지고 런던의 주영대사 미셸 드 카스텔노를 찾아갔다. 그는 곧 옥스퍼드로 불려가 그해 여름에 연속 강의를 시작했고, 이 강의에서 지구가 운동한다고 주장하는 코페르니쿠스 이론을 설명했다. 그러나 옥스퍼드 출신자들의 적대적인 태도 때문에 프랑스 대사의 초청을 받아 런던으로 돌아왔다. 그는 엘리자베스 1세의 궁정을 자주 드나들면서 필립 시드니 경과 레스터 백작 로버트 더들리 같은 영향력있는 인물들과 교분을 맺었다.

저작
1584년 2월 시드니 모임의 회원인 폴크 그레빌의 초대를 받아 옥스퍼드대학의 몇몇 박사와 함께 지구의 운동에 관한 자신의 이론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 그러나 토론은 말다툼으로 끝나고 말았다. 며칠 뒤 그는 이탈리아어로 대화편을 쓰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서술했다. 이 대화편은 6편으로 3편은 우주론, 3편은 도덕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재의 수요일 성찬 Cena de le Ceneri〉(1584)에서 태양중심 이론이 참임을 재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우주가 무한하고 태양계와 실질적으로 비슷한 수많은 세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대화편에서 그는 동료인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앞서 성서는 천문학적 함축들 때문이 아니라 도덕적 가르침 때문에 추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영국사회의 예의범절과 옥스퍼드대학 박사들의 박식한 체하는 태도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원인·원리·일자(一者)에 관하여 De la causa, principio e uno〉(1584)에서는 자신의 우주관의 토대를 이루는 물리학 이론을 정교히 가다듬었다. 그는 '형상'과 '질료'는 긴밀히 결합되어 있고 '일자'를 이루고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의 전통적 이원론을 일원론적 세계관으로 대체했다. 이 세계관에 따르면 모든 실체는 기본적으로 통일되어 있고 대립자들은 존재의 무한한 통일 속에서 일치되어 있다. 〈무한한 우주와 무한한 세계에 관하여 De l'infinito universo e mondi〉(1584)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을 체계적으로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우주론을 전개했다. 또한 그는 철학과 종교 사이의 관계에 대한 아베로에스주의적 견해를 정식화했는데, 이에 따르면 종교는 무지한 백성을 가르치고 통치하는 수단이고 철학은 스스로 처신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통치할 수 있는 선택된 사람들의 학문이다. 그의 도덕 3부작의 첫번째 대화편 〈승리에 도취된 짐승의 추방 Spaccio de la bestia trionfante〉(1584)은 당대의 미신과 악덕에 관한 풍자로서 그리스도교 윤리를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브루노는 특히 신앙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칼뱅주의 원리에 반대하면서 인간의 모든 활동이 존엄하다고 떳떳하게 주장했다. 이 저작과 비슷하지만 비관주의적인 〈페가소스의 음모 Cabala del cavallo Pegaseo〉(1585)는 인간영혼과 보편영혼 사이의 관계를 논의하고 인간영혼의 절대적 개별성을 부정하는 결론을 내린다. 〈영웅적 열광 De gli eroici furori〉(1585)에서는 신플라톤주의적 심상 표현을 사용해 인간영혼에 의한 무한한 일자와의 결합을 다루고 사람들에게 덕과 진리를 얻도록 열심히 권고하고 있다.
1585년 10월 파리로 돌아온 브루노는 정치적 분위기가 변했다는 것을 알았다. 앙리 3세는 이미 프로테스탄트와의 평화조약을 폐기했고 엔리케 3세는 교황으로부터 파문당한 상태였다. 그러나 브루노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가톨릭 분파의 하수인인 수학자 파브리치오 모르덴테와 논쟁을 시작했다. 브루노는 4개의 〈대화편 Dialogi〉에서 모르덴테를 비웃었고, 1586년 5월에는 〈소요학파에 반대하는 자연과 세계에 관한 120편의 글 Centum et viginti articuli de natura et mundo adversus Peripateticos〉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공개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를 공격했다. 정치가들은 그와의 관계를 부인했고, 그는 파리를 떠났다.
브루노는 독일로 갔다. 독일에서는 대학 도시들을 떠돌아 다니면서 강연을 했고 여러 소규모 저작들을 발표했다. 그중에는 당대의 수학자와 철학자를 비판한 〈160편의 글 Articuli centum et sexaginta〉(1588)이 있는데, 이 저작에서 그는 자기의 종교관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의 종교관은 상호이해와 상호토론의 자유를 바탕으로 모든 종교의 평화공존을 추구했다. 그러나 1589년 1월 헬름슈테트에서 지역 루터 교회에 의해 추방되었다. 봄까지 헬름슈테트에 머무르면서 자연적·수학적 마술에 관한 저작들(사후 출판)을 완성했고 라틴어로 3편의 시, 〈3중의 극소와 척도에 관하여 De triplici minimo et mensura〉· 〈단자·수·도형에 관하여 De monade, numero et figura〉·〈측정할 수 없는 것과 셀 수 없는 것에 관하여 De immenso, innumerabilibus et infigurabilibus〉를 썼다. 이 저작들은 모두 이탈리아어로 쓴 대화편에서 설명한 이론들을 재정리한 것으로 물질과 존재의 원자적 기초에 관한 브루노의 생각을 전개하고 있다. 이 저작들을 출판하기 위해 그는 1590년 프랑크푸르트암마인으로 갔다. 그러나 그곳 행정부는 그의 체류 신청을 기각했다. 그런데도 그는 카르멜 수도원에 거처를 정하고 프로테스탄트 성직자들에게 강의를 했고 '보편인'이라는 평판을 들었다. 수도원장은 그가 "종교의 흔적을 갖고 있지 않고", "주로 글쓰기와 새로운 것에 관한 공허하고 비현실적인 상상에 몰두한다"고 생각했다.

말년
1591년 8월 베네치아의 귀족 조반니 모체니고의 초청을 받아 이탈리아로 운명의 발길을 돌렸다. 당시에는 그다지 큰 위험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도시국가 가운데 가장 자유로웠고, 유럽의 긴장은 1590년 비타협적인 교황 식스투스 5세의 죽음 이후 일시적으로 이완되어 있었다. 프로테스탄트인 엔리케 3세는 프랑스의 왕이었고, 종교적 평화 조약은 임박한 것처럼 보였다. 더욱이 브루노는 여전히 자신의 이론을 설명할 강단을 찾고 있었다. 그는 파도바대학교의 수학교수 자리가 비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즉시 파도바로 가서 1591년 늦여름 동안 개인적으로 독일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하학 강의 Praelectiones geometricae〉와 〈변형술 Ars deformationum〉을 썼다. 겨울이 시작되었을 때 교수 자리를 얻지 못할 것처럼 보이자(그 자리는 1592년 갈릴레오가 차지했음) 모체니고의 손님으로 베네치아로 돌아갔다. 거기서 자신처럼 신학적 함축과는 상관없이 철학적 연구를 좋아하던 베네치아의 진보적 귀족들과 토론했다. 그러나 기억술에 관한 브루노의 개인 교습에 실망한 데다가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가 새 작품을 출판하려는 브루노의 생각에 격분한 모체니고가 그의 이단적 이론들을 이유로 1592년 5월 베네치아 종교재판소에 고발했을 때 브루노의 자유는 끝났다 (→ 종교재판). 브루노는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다. 그는 몇몇 사소한 신학적 오류를 시인했지만, 자신의 기본 교의의 신학적 성격보다는 오히려 철학적 성격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을 변호했다. 베네치아 종교재판은 브루노에게 호의적인 방향으로 진행되는 듯했다. 그때 로마의 종교재판소가 그의 인도를 요구했다. 1593년 1월 27일 브루노는 로마 교황청 감옥에 수감되었다. 로마에서 7년 동안 재판을 받으면서, 처음에 브루노는 똑같은 노선에 따라 자신을 변호하면서 신학적 문제에 대한 어떤 특별한 관심도 부인했고 자신이 가진 사변의 철학적 성격을 거듭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구별에 종교재판관들은 만족하지 않았다. 종교재판관들은 브루노에게 자신의 이론을 무조건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브루노는 자신의 견해가 신과 창조에 관한 그리스도교의 견해와 양립할 수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재판관들은 그의 변호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공식적인 철회 압력을 가했다. 마침내 브루노는 자신은 철회할 것이 전혀 없고 자기에게 무엇을 철회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교황 클레멘스 8세는 브루노를 회개할 줄 모르는 완강한 이단자로 선고하도록 명령했다. 공식으로 사형이 선고된 1600년 2월 8일 브루노는 재판관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고를 받는 나보다 선고를 내리는 당신들의 두려움이 더 클 것이요." 얼마 후 그는 캄포디피오리로 이송되어 입에 재갈이 물린 채 불에 타죽었다. /브리태니커


조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 1548년 ~ 1600년 2월 17일)는 이탈리아의 사상가이며 철학자이다.
로마 가톨릭의 도미니코회의 수사로 활동했으나, 수도원에서 이단으로 여겨졌다. 가톨릭교회로부터 이단 판정을 받을 것을 우려하여 1576년에 나폴리를 떠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자전설을 말하거나 학문을 가르쳤다. 라틴어·희랍어에 능통하였고 다방면에 박식하였다. 그는 신플라톤주의의 피치노나 피코등의 영향을 받고 있어 마술이나 점성술에도 강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1591년 베네치아 공화국(현재의 이탈리아의 일부)에서 잡혀 8년 간의 감옥 생활을 했고, 로마 교황청 이단 심문소로부터 이단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아 로마에서 공개적으로 화형에 처해졌다. 화형을 당할 때 "말뚝에 묶여 있는 나보다 나를 묶고 불을 붙이려 하고 있는 당신들(사형 집행인) 쪽이 더 공포에 떨고 있다" 라는 내용의 발언으로 유명하다.
브루노의 발언이나 주장 가운데 가장 이단으로 여겨진 부분은 그의 세계관과 우주관이었다. 그의 우주관은 말하자면, "우주는 무한하게 퍼져 있고 태양은 그 중에 하나의 항성에 불과하며 밤하늘에 떠오르는 별들도 모두 태양과 같은 종류의 항성이다"라는 무한 우주론을 주장했다. 물론 이 학설은 지금은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당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할지라도 분명히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은 없었다.
브루노의 무한 우주론은 지동설과는 직접은 관계없는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당시 주장되고 있던 지동설은 우주의 중심에 태양이 있고 항성은 천구라고 하는 공에 붙어 있는 모양이었다.
브루노의 화형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자유로운 문화 활동의 시대의 마지막을 상징하는 것이다. 또한 가톨릭과 대립하고 있던 개신교측에서 보면 가톨릭의 횡포를 나타내는 모습의 사례이기도 했다.)

재판과 처형
로마에서 그는 7년 동안 재판을 받으면서 감옥에 갇혔고, 마지막에는 노나 탑에 갇혔다. 심리 과정의 일부 중요한 문서들은 현재 남아있지 않지만, 어떤 문서는 남아있으며, 그 중 하나는 1940년 발견된 요약집이다. 그가 지은 책과 그가 증언했던 데 대한 혐의를 받고 있었으며, 죄목에는 신성모독, 비윤리적 행동, 교리에 대한 이단적인 해석, 그리고 그의 철학과 우주론에 대한 이론들에 대한 것이었다. 루이지 피르포(Luigi Firpo)는 다음과 같은 목록을 전한다.
1. 가톨릭 믿음과 교리, 그리고 성직자들에 배치되는 의견.
2. 삼위일체,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부인함.
3. 그리스도에 대한 잘못된 의견.
4. 성체와 미사에 대한 잘못된 의견
5. 복수의 세상이 있으며, 그들의 영원성을 주장함.
6. 윤회와 인간 영혼이 짐승에게 들어간다고 믿음.
7. 마법을 다루고 점을 침.
8. 마리아의 처녀성을 부인함.
브루노는 베네치아서 변호에서 교회의 교리적 가르침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철학을 유지하는 방법을 썼다. 특히 브루노는 세상이 하나뿐이 아님을 믿었고 그 생각을 포기하라고 강요당했다./위키백과

(출처 :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5VDx&articleno=15951095
다음 블로그, '깨달음과 평안함' )

그리스로마 신화 사전

Posted by 히키신
2016. 5. 13. 17:48 영원의 지헤, 그리고 철학

【가니메데스(Ganymede)】 [그리스] 헤베가 하던 신들의 컵을 보관하는 일을 가끔 대신하던 트로이의 왕자. 제우스의 독수리가 그를 잡아다 올림포스로 데려갔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의 술시중을 들었던 미소년. 트로이 왕가의 조상 트로스의 아들로 인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이었다. 그래서 여러 신들이 제우스의 시동(侍童)으로 삼기 위해 하늘로 채 갔다고도 하고, 제우스 자신이 독수리가 되어 낚아채 갔다고도 하는데, 신들은 그 보상으로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황금의 포도 또는 멋있는 신마(神馬)를 소년의 아버지에게 주었다. 그의 아름다운 모습은 예로부터 문학이나 그림에 등장한다.



【가이아(Gaia)】 [그리스] 혼돈속에서 나타난 대지의 신. 잠자던 중 아들 우라노스(Ouranos)를 낳았다. 우라노스가 하늘로 올라가 감사의 마음으로 비를 내렸는데 이로 인해 땅속에 잠자던 모든 씨앗들이 생명을 얻게 되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大地)의 여신. 게이아라고도 한다. 그리스의 서사시인(敍事詩人) 헤시오도스의 작품인 신들의 계보를 말한 《신통기(神統記)》에 따르면, ꡐ무한의 공간ꡑ 카오스(혼돈)의 뒤를 이어 태어났다고 한다. 가이아는 우라노스(하늘)와 폰토스(바다)와 산들을 낳고, 뒤에 우라노스를 남편으로 삼아 티탄이라는 신들의 일족과 외눈의 괴물 키클로프스를, 그리고 헤카톤케이르(百手의 거인)들을 낳았다. 또 폰토스와 가이아에게서는 바다의 노인이라는 해신(海神) 네레우스와 타우마스․포르키스․케토․엥우리비아 등 남녀 신들이 태어났다. 이는 그리스 민족의 천지창조 신화로서, 제우스를 중심으로 한 올림포스의 신들은 이 뒤에 태어난다. 로마에서도 ꡐ대지ꡑ라는 뜻으로 숭배받는 텔루스와 동일시되고 있다.


갈라에수스

<Galaesu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라티움(Latium)의 주민. 베르길리우스의 《아에네이스  Aeneis》에 의하면 아이네이아스(Aineias)의 아들 아스카니오(Askanios)가 티루스(Tyrrhus)의 사슴을 죽인 것이 발단이 되어 일어난 트로야인(Troia人)과 루툴리인(Rutuli人) 사이의 싸움을 중지시키려다가 살해되었다.


【갈라테이아(Galateia)】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신 네레우스의 딸로 바다의 요정. 이 이름은 <젖빛깔의 여자>라는 뜻. 시칠리아의 키클롭스(Kyklops;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거인족)의 한 사람인 폴리페모스의 사랑을 받았다. 이 이야기는 목가시인이 즐겨 다루는 제재로서, 못생기고 재주 없는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가 갈라테이아에게 구애(求愛)하는 과정이 우스꽝스럽게 다루어지고 있다. 폴리페모스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 갈라테이아에게는 아키스라는 애인이 있어 폴리페모스의 사랑의 노래를 두 사람은 숨어서 엿듣고 있었는데 폴리페모스에게 발견되자 아키스는 도망쳤다. 그러나 거인 폴리페모스는 큰 바위를 던져 그를 죽였다. 그때 갈라테이아는 아키스를 강물로 만들어 버렸다. 일설에는 그녀가 폴리페모스와 정을 통해 거기서 갈라테이아인(人)․켈트인․일리리아인의 조상인 갈라스․켈토스․일리리오가 태어났다고 한다.


【갈레오테스(Galeotes)】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아폴론과 테미스토 사이의 아들. 텔미소스와 함께 도도나의 신탁(神託)을 청하자, 한 사람은 동쪽으로 또 한 사람은 서쪽으로 가다가, 희생으로 바쳐진 고기를 독수리가 채어간 곳에 제단을 쌓으라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 텔미소스는 갈리아를 향해 가고 갈레오테스는 시칠리아에 머물러 이 섬의 예언자 일족의 조상이 되었다. 또 이들은 갈레오타이(Galeotai)로 불렸으며, 이들이 살던 히블라거리는 갈레오티스(Galeotis)로 불렸다


갈린티아스

<Galinthia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알크메네의 여종. 여신 헤라는 알크메네가 헤라클레스를 낳으려고 하는 것을 방해하였으나, 갈린티아스는 거짓으로 헤라클레스가 태어났다고 소리쳤다. 여신은 감쪽같이 속았고, 아기는 무사히 태어났다. 그러나, 갈린티아스는 여신의 벌을 받아 도마뱀이 되었다.


◀참 조▶

☞알크메네

강게스

<Gange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도 갠지스강(江)의 신. 인도스와 님프인 칼라우리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술에 취하여 부지불식간에 어머니를 범한 후, 술에서 깨자 극도의 절망감에 빠져서 강물에 투신하여 자살하였다. 클리아로스(Chliaros)라고 하던 이 강의 명칭은 이 후 강게스로 바뀌었다.


【게니우스(Genius)】 [로마] 사람의 출생과 죽음을 돕는 신. 모든 곳에 존재하는 것으로 믿었다. 개인 또는 토지의 수호신으로, 인간이 나서 죽을 때까지 인간을 수호(守護)하고 고락(苦樂)을 같이한다고 하여 탄생일과 그 밖의 날에 향․포도주 등을 바친다. 또 개인뿐 아니라 단체와 장소의 수호신인 게니우스가 있다


게라나

<Gerana>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피그미족(族)이 신으로 받들던 여인. 그녀는 신들을 경시하였으므로 헤라 여신이 노하여 그녀를 학(鶴)으로 변신시켜 버렸다. 그녀는 외아들 모프소스를 만나보고 싶어서 사람일 때 살았던 집에 가려고 하였으나, 피그미와 학이 싸우는 중이어서 학들이 게라나의 행동을 제지하였으므로 그녀는 몹시 고민하였다고 한다.

게리온

<Geryon>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크리사오르(포세이돈과 메두사의 아들)와 칼리로에(오케아노스의 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게리오네스 또는 게리오네우스라고도 한다. 삼두삼신(三頭三身)의 괴물로서, 오케아노스 대하(大河) 근방에 있는 에리테이아(Erytheia)섬에 살며 많은 소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소몰이는 에우리티온, 도둑을 지키는 개는 오르트로스였다. 헤라클레스가 소를 도둑질하러 왔다가 그에게 달려든 개를 먼저 몽둥이로 때려 죽이고, 이어서 개를 구하러 온 소몰이 에우리티온도 죽였다. 근처에서 하데스(Hades)의 소를 먹이고 있던 메노이테스(Menoites)가 이 사실을 게리온에게 알렸다. 게리온은 안테무스(Anthemus) 강변에서 소를 몰고 달아나는 헤라클레스를 쫓아가 싸우다가 사살되었다. 에리테리아(헤스페리스 중의 한사람인 에리테이아와 동명)는 가데스(Gades) 근처의 가데이라(Gadeira)섬이라고도 하고, 에페이로스의 암브라키아(Ambrakia) 지방의 한 지역이라고도 한다.


【고곤(Gorgon)】 [그리스] 고곤 세 자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메두사인데, 그녀는 머리카락 대신에 뱀을 달고 있는 괴물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고곤이라고 부르는 괴물은 소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의 고곤의 모습에 대해서는 2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머리카락이 뱀, 이빨은 멧돼지와 같은 큰 어금니, 청동 갈코리 발톱, 뱀의 머리를 가진 괴물이라는 것이다. 소와 닮은 고곤과 이러한 설, 그리고 메듀사의 공통점은 그를 본 사람을 돌로 변하게 하는 눈과 청동 갑옷으로 되어 있다는 두 가지 특징 정도일 것이다. 메두사와 다른 두 자매에게 왜 이러한 차이가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다. 추측하건데 페르세우스의 이야기에 등장한 메두사가 유명해짐에 따라 여러 가지 설이 만들어진 것 같다. 그러나 다른 두 자매는 무서운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스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그것도 입에서 불을 뿜어내거나 청동 발굽을 가진 것)와 결합되어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마녀들. 복수형은 고르고네스이며, 바다신 포르키스(Phorkys)


의 딸인스텐노(Sthenno;강한 여자)․에우리알레(Euryale;멀리 뛰는 여자)․메두사(Medousa;통치하는 여자)의 세 자매를 총칭한다. 이들 중에서 스텐노와 에우리알레에게는 특별한 신화가 없기 때문에 고르곤이라고 하면 곧 메두사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그녀들은 많은 뱀으로 이루어진 머리, 멧돼지의 엄니 같은 큰 이, 보는 것을 돌로 만들어 버리는 눈을 가진 무서운 존재로, 아득한 서쪽 헤스페리데스 동산 근처에 있다는 그녀들의 소굴은 그녀들의 세 언니(나면서부터 늙었고, 3명이 눈 1개, 이 1개를 공유한다), 즉 그라이아이(Graiai)에 의해 지켜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고르곤의 목을 쳐 가져올 것을 명령받은 영웅 페르세우스가 우선 그라이아이의 눈을 빼고 고르곤들의 거처로 가는 길을 물은 다음, 그 눈으로 인해 돌이 되지 않도록 거울에 비치는 모습을 의지하여 잠자고 있던 그녀들에게 다가가 세 자매 중 불사신(不死身)이 아니었던 단 한 사람, 즉 메두사의 목을 잘랐다. 이 때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이를 밴 메두사의 피에서 날개 달린 천마(天馬)인 페가소스가 태어났다. 메두사의 목은 뒤에 여신(女神) 아테네의 방패에 장식품이 되었다고 하며, 죽은 뒤에도 그 마력을 가진다고 알려진 결과 고르곤의 머리(고르고네이온이라 불림)가 부적으로서 무기나 벽에 부착되었다. 아르고스(Argos)에서는 아고라(Agora)의 지하에 묻혀 있었다고도 전해진다.


고르게

<Gorge>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자. 오이네우스의 딸. 멜레아그로스와 데이아네이라의 자매. 티데우스는 그녀와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라고 한다. 안드라이몬과의 사이에서도 아들 토아스가 있다. 멜레아그로스의 다른 자매가 자고(:꿩과의 새)로 변신하였을 때 그녀와 데이아네이라만은 변신하지 않았다.


고르게

<Gorge>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자. 메가레우스의 딸. 코린토스시(市)의 창건자 코린토스와 결혼하였는데, 그녀의 아이들이 살해되자 호수에 투신자살하였다. 그 후 호수의 명칭은 고르고피스호(湖)가 되었다.

고르고포네

<Gorgophone>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의 딸. ꡐ고르고의 퇴치자(退治者)ꡑ라는 뜻이다. 페리에레스와 결혼하여 아파레우스와 레우키포스의 두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이카리오스와 틴다레오스는 이 두 사람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페리에레스가 죽은 후 고르고포네가 재혼한 오이발로스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그녀는 그리스 여성으로서 두 번 결혼한 최초의 여자이었으므로, 그 이전에는 과부가 재혼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고르고포노스

<Gorgophono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피다우로스의 왕. ꡐ고르고의 퇴치자ꡑ(남성)라는 뜻이다. ꡒ칼집 끝에 씌운 두겁을 발견한 장소에 도시를 창건하라ꡓ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 그는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퇴치하고 돌아가다가 떨어뜨린 두겁을 발견하고 그곳에 미케나이시(市)를 창건하였다.


【고르디아스(Gordia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리지아의 왕. 고르디온시(市)의 창건자. 키벨레가 그를 사랑하여 외아들 미다스를 낳았다. 원래 농부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프리지아에서 내란이 일어났을 때, 왕이 수레를 타고 와서 난을 진압할 것이라는 신의 계시가 내려진 바로 그때 그가 수레를 타고 나타났으므로 즉시 왕이 되었다. 고르디온시의 아크로폴리스에는 그가 바친 전차(戰車)가 있었는데, 그 수레의 채[轅]에는 대단히 복잡한 매듭이 있었다. 그 매듭을 푸는 자에게는 아시아의 지배가 약속되어 있었으나 아무도 풀지 못하였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원정(遠征) 도중 이 곳에 들러서 칼로 매듭을 절단하였다.


【고르디아 매듭(Gordian Knot)】 [그리스] 미다스의 아버지 고르도스는 프리기아의 왕이 되기 전에 농부였다. 마차를 타고 광장에 들어오는 사람이 왕이 될 것이라는 신탁 때문에 왕이 되었다. 고르도스는 신탁을 내린 신전에 마차를 묶어 두었다. 이 묶은 매듭을 푸는 사람이 아시아의 주인이 될 것이라는 말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알렉산더 대왕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그러자 칼로 매듭을 잘라버렸다.


구네우스

<Guneus>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오키토스의 아들. 아이니아니아인(人)과 테사리아의 페라이비아인(人)의 장수로서 22척의 군함을 이끌고 트로야에 출정하였는데, 귀국 도중 리비아에 표착하여 키닙스강(江) 기슭에서 자리잡고 살았다.



【그노소스(Gnossus)】 [그리스, 로마] 크노소스 참조.


그라이아이

<Graiai>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3명의 요녀들. 그라이아이란 원래 ꡐ노녀ꡑ 또는 ꡐ노파ꡑ라는 뜻으로, 팜프레도(Pamphredo)․에니오(Enyo)․데이노(Deino)의 3자매를 말한다. 해신(海神) 포르키스(Phorkys)와 케토(Keto)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나면서 백발노파의 모습이었고, 3명이 한 개의 눈, 한 개의 이빨을 공유하고 있어 서로 빌리고 빌려주고 하였다. 태양도 달도 없는 서쪽 지방에서 살았으며, 자기들의 자매인 괴물 고르곤을 지켜주었다. 영웅 페르세우스는 고르곤 가운데 한 명인 메두사를 물리칠 때, 그녀들의 하나의 눈과 이빨을 빼앗아 고르곤이 있는 곳을 말하게 하였다.


그리노스

<Gryno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 미시아의 왕 텔레포스의 아들인 에우리필로스의 아들이다. 아버지 에우리필로스가 트로야에서 네오프톨레모스에게 정복당한 후 측근자들이 그를 왕좌에서 몰아내려고 획책하므로, 네오프톨레모스와 안드로마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페르가모스에게 도움을 청하여, 그의 도움으로 적을 제압하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페르가몬과 그리니온의 두 시(市)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리폰(Griphon)】 [그리스] 그리핀이라고도 한다. 제우스의 사냥개. 결코 짖지 않고 새의 부리를 갖고 있었다. 일설에는 사자의 몸,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를 갖고 있다고 한다. 등은 깃털로 덮여 있다. 그리폰은 아리스마프시가 훔치려 했던 북쪽의 금을 지켰다. 이 괴물이 태어난 고향은 인도라고 한다. 새처럼 둥지를 틀며 알 대신에 보석(마노)을 낳는다고 한다.

  독수리 머리와 날개를 가지고 있고, 뒷다리와 몸은 사자인 상상의 동물. 그리폰(griffon, gryphon)․그리프스(gryps)라고도 한다. 눕거나 앉아 있는 모습이 많은데, 다른 동물을 덮치고 있는 유린도(蹂躪圖)도 있다. 주로 고대 동방 여러 나라와 그리스의 장식미술에서 즐겨 다룬 제재(題材)이다. 신전이나 분묘의 장식 무늬에 사용된 것으로 보아 신성한 괴수(怪獸)임에는 틀림없으나 거기에 담긴 의미는 분명하지 않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그리프스라 하는데, 북방의 히페르볼레오이 사람과 외눈족(族)인 아리마스포이 사람들이 사는 중간지점인 리파이오스산(山)속의 황금을 지키는 괴수로 황금을 훔치러 오는 것을 막았다고 전한다.



【그리핀(Griffin)】 [그리스] 그리폰 참조.


【글라우코스(Glaucus)】 [그리스, 로마] ① 바다의 신. ② 벨레로폰의 손자. 트로이 전쟁에 참전. ③ 코린트의 왕. 그리스신화에 둥장하는 신. 이 이름을 가진 신이 그리스신화에 여럿 등장한다. ① 보이오티아의 안테돈(Anthedon)의 어부:마법의 약초를 먹고 불사(不死)의 몸이 되어 바다로 들어가 해신(海神)이 되었다. 바다 괴물을 이끌고 여러 바다와 섬을 돌아다니면서 예언한다고 하며, 어부들의 숭앙을 받았다. 그는 또 메넬라오스의 귀국 도중 말레아(Malea)에 나타났으며, 또 아르고나우타이들을 보호했다. ② 미노스와 파시파에와의 아들:어릴 때 쥐를 쫓다가 큰 꿀단지 속에 빠져 죽었다. 이것을 모르고 아들의 행방을 수색하던 미노스는 신탁(神託)을 구했다. 쿠레스(Kures)들이 미노스에게 자신들이 소유한 소 중에서 3색의 암소가 1마리 있는데, 그 빛깔의 이름을 교묘하게 표현한 자에게 소년을 살아 있는 채 돌려주겠다고 했다. 예언자 폴리두스가 그 빛을 처음은 희고, 다음엔 붉어지며, 마지막에 검어지는 검은 뱀딸기에 비유했다. 미노스는 술창고에서 벌꿀을 찾고 있던 올빼미를 따라 소년을 발전하긴 했으나, 이미 죽어 있었으므로 그대로 먼지를 닫아 버렸다. 잠시 후 뱀이 그 시체에 접근하는 것을 보고 해를 입히지 않을까 염려되어 죽여 버렸더니, 또 다른 한 마리의 뱀이 나타나 이상한 풀을 죽은 뱀에게 덮자 그 뱀이 살아나므로, 이것을 본 폴리두스가 그 풀을 시체에 대어 소년이 되살아났다고 한다. ③ 보이오티아의 포트니아어(Potniae)의 왕:사나운 암말을 기르면서 사람을 먹이로 먹었더니, 자기도 그 말에 찢겨 죽었다. ④ 벨레로폰의 아들:③ 과 같은 인물인 것으로 보인다. ⑤ 벨레로폰의 아들 히폴로쿠스(Hippolochus)의 아들:트로이전쟁 때 트로이쪽에 가담하여 뤼키아 군을 이끌고 가서 도왔으머 아버지대(代) 이래 우정의 표시로, 자기의 황금 무구(武具)와 디오메데스의 구리 무구를 교환했다. 뒤에 아킬레우스의 시체를 둘러싼 전투에서 아이아스에게 살해되었다


기간테스

<Gigante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족(巨人族). 단수형(單數形)은 기가스. 천공(天空)의 신 우라노스와 대지(大地)의 여신 가이아 사이에 태어난 아들들이다. 우라노스가 자신의 아들인 크로노스에 의해 생식기를 잘렸을 때 흘린 피가 대지에 떨어져 24명의 아들이 태어났는데, 이들이 바로 기간테스이다. 힘이 세고 사나운 종족으로서 흔히 인신사족(人身蛇足)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들은 올림포스의 신들에게 도전하여 격렬한 싸움을 벌였으나, 결국 헤라클레스의 도움을 받은 올림포스의 신들에게 정복당하였다. 이 ꡐ거인들의 싸움ꡑ을 기간토마키아(Giganthomachia)라고 하는데, 이는 서사시의 좋은 소재로 다루어졌으며 조각이나 벽화 등의 조형미술 분야에서도 자주 다루어졌다.



【나르키소스(Narcissus)】 [그리스] 수선화로 변한 미남자. 나르키소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테스피아이의 미소년. 오이오티아의 하신(河神) 케피소스와 님프(요정) 레이리오페의 아들. 그가 태어났을 때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나르키소스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면 오래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많은 처녀와 님프들이 나르키소스의 미모에 반해서 구애를 하였으나 그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님프인 에코는 애를 태운 끝에 몸이 여위어 마침내 목소리만 남아 메아리가 되었고, 아메이니아스라는 그에게 거절당하여 나르키소스가 준 칼로 자살하고 말았다. 어느 날 나르키소스는 사냥을 하다가 목이 말라 목을 축이려고 샘물을 마시다가, 우물에 비친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모습을 사랑하게 되었다. 자기의 그림자에 홀린 그는 그곳에서 한 발짝도 떠나지 못하고 물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그는 죽어서 수선화(水仙花:나르키소스)가 되어 피어났다는 전설도 있다. 나르시시즘(Narcissism:자기도취)이라는 말도 이에서 유래한다.



【낙소스(Naxos)】 [그리스] 아르테미스가 사라진 장소. 테세우스가 방문.


네다

<Neda>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성. 오케아노스의 딸 중에서 스티쿠스와 피릴라에 이은 셋째딸이다. 아르카디아의 전설에 의하면 제우스는 이 고장의 산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이때 어머니인 레아가 갓난아기를 씻길 목욕물을 찾았으나 강에도 우물에도 물이 없었다. 난처해진 그녀는 자신의 지팡이로 대지를 두들겨 가이아(대지)에게 기원(祈願)하여 훗날 레프레이온시(市)가 세워진 곳에 우물물이 솟아나게 하였으며, 그녀는 이 우물에 님프인 네다의 이름을 주었다. 키케로는 말하기를 가장 오래 된 전설에 의하면 네다는 제우스와의 사이에 4명의 무사(인간의 지적활동을 다루는 여신), 즉 텔크시노에, 아오이데, 아르케, 멜레테를 낳았다고 한다.


【네레우스(Nereu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폰토스와 가이아의 아들. 호메로스가 ꡐ바다의 노인ꡑ이라고 부른 해신(海神)으로, 현명․온화하고 예언의 능력이 있었다. 오케아노스의 딸 도리스를 아내로 삼아 50명(또는 100명)의 딸, 즉 네레이데스의 아버지가 되어, 그녀들과 함께 해저(海底:특히 에게海)에서 살았다. 그는 선원들의 보호자였으며, 자신의 모습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었다. 헤라클레스가 ꡐ헤스페리스의 능금ꡑ이 있는 곳을 알기 위해 네레우스를 습격하여 잡으려고 하였을 때, 불과 물, 그 밖의 여러 모습으로 변하여 달아나려고 하였으나, 마침내 헤라클레스에게 사로잡혀 헤스페리스가 있는 곳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또한 아프로디테의 교육을 맡았다는 설도 있다. 미술에서는 그가 흰 수염에 삼지창(三枝槍)을 손에 들고 포세이돈의 아들 트리톤 위에 올라앉은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참 조▶☞네레이스



【네레이드-네레이스(Nereid)】 [그리스] 네레우스와 도리스의 딸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님프들. 복수(複數)로는 네레이데스라고 한다. 해신(海神) 네레우스와, 대양신(大洋神) 오케아노스의 딸 도리스 사이에 태어난 50명의 아름다운 딸들로, 노래하고 춤추고, 악기를 연주하면서 해마(海馬) 또는 그 밖의 바다짐승의 등에 올라타고 바다 위를 행렬한다고 상상되어 왔다. 뱃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구해 준다고 하여 특히 해안지방이나 섬사람들의 숭배를 받았다. 그녀들 가운데서 영웅 아킬레우스의 어머니가 된 테티스와,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가 연모하던 갈라테이아 등이 특히 유명하다.◀참 조▶☞갈라테이아☞네레우스


네리테스

<Nerite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 네레우스와 도리스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 50명의 딸 네레이데스와 남매간이다. 아프로디테가 아직 바다 속에 있을 때 그녀의 사랑을 받았다. 그녀가 올림포스에 오르면서 그에게 날개를 주고 뒤따를 것을 명하였으나 그가 따르지 않자, 그녀가 노(怒)하여 네리테스를 움직일 수 없는 조개껍질이 되게 하고, 대신 에로스에게 날개를 주었다. 또한 일설에는 그가 포세이돈의 사랑을 받아 굉장한 속력으로 포세이돈의 뒤를 따르고 있었으나, 헬리오스가 질투하여 그를 조개껍질이 되게 하였다고도 한다.


【네메시스(Nemesis)】 [그리스] 복수의 여신. 닉스(밤의 신)의 딸. 제우스의 열렬한 사랑을 거절하기 위해 거위로 변신하였으나, 제우스도 백조의 모습으로 변신, 그녀와 교접함으로써 그녀가 알을 낳았다. 이 알에서 태어난 것이 훗날 트로이 전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 헬레네이다. 네메시스는 율법의 여신으로, 인간의 우쭐대는 행위에 대한 신의 보복을 의인화(擬人化)한 것이다. 그녀는 한 손에 사과나무 가지를 들고, 다른 손에는 물레바퀴를 든 모습, 또는 괴수(怪獸)가 끄는 전차(戰車)를 탄 모습으로 표현된다.

◀참 조▶☞레다


【네메아(Nemea)】 [그리스] 네메아의 사자.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불사(不死)의 괴물. 에키도너와 티폰의 자식, 또는 키마이라와 오르토스의 자식이라고도 한다. 아르고리스 북부의 네메아 계곡에 살며 부근의 주민을 잡아먹는다고 하는데, 헤라클레스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2년에 1번씩 네메아제(祭)가 열렸으며 이 사자는 헬라 여신에 의하여 하늘로 올라가서 별자리가 되었다고 한다.


【네오프톨레모스(Neoptolemo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에서의 용사. 아킬레우스와 데이다메이아의 아들로, 그 이름은 ꡐ젊은 용사ꡑ란 뜻이다. 어머니의 고향인 스키로스에서 자랐으나 트로이의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서는 네오프톨레모스가 필요하다는 예언에 따라 그리스군(軍)을 위하여 활약하였다. 또한 트로이의 함락을 위해서는 필록테테스도 필요하였기 때문에 그는 오디세우스를 도와 필록테테스가 참가하도록 힘썼다. 그리고 목마(木馬) 속에 숨어 낙성(落城)을 위한 최후의 공격에 분전, 적국 왕 프리아모스를 죽이고 그의 딸 폴리크세네를 산 제물로 받침으로써 아버지 아킬레우스의 원수를 갚았다. 트로이성을 함락시킨 후, 적장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를 포로로 잡아 귀국하였는데, 그 후의 행적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무사히 고향에 돌아와 영웅 메넬라오스의 딸 헤르미오네를 아내로 삼았다고도 하고, 에페이로스라는 곳에 이르러 몰로소스인(人)의 조상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또한 델포이로 가서 그 고장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했다고도 하고, 헤르미오네의 과거의 약혼자였던 오레스테스의 손에 죽었다는 등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실제로 고대 말기 델포이에 그의 묘가 있어 숭배를 받아온 것만은 확실하다.

네크베트

<Nekhbet>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여신. 오래 전부터 상부(上部) 이집트 특히 네케브(엘카브)의 수호신으로 독수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어머니의 여신으로서 산파(조산원)의 역할도 하고, 왕이나 왕가(王家)의 자식들에게 젖을 먹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안티노에의 개구리 모습을 한 탄생의 여신 헤케트와 동일시되었다. 나중에는 태양신의 외눈박이 딸로도 알려졌으며, 그리스․로마인들에 의해 월신(月神) 에이레이티아니르시나와 동일시되기도 하였다.


네크타르

<nektar>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를 비롯한 올림포스의 신(神)들이 마시는 술. 신들의 음식물인 암브로시아와 마찬가지로 이것을 마시면 늙지 않고 죽지도 않는다고 한다. 이 신주(神酒)를 얻은 자는 이상한 생명력을 얻어 신성함과 활력에 넘치고 건강과 행운이 따른다고 믿어졌다. 원래는 꿀로 만든 술의 일종으로 생각된다.


네팔리온

<Nephalion>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 크레타섬의 왕 미노스와 님프인 파레이아의 아들. 헤라클레스가 아마존의 여왕의 띠를 빼앗으려고 성(城)을 떠나 네팔리온과 그의 형제인 에우리메돈․크리세스․필로라오스 그리고 안드로게오스의 아들 알카이오스와 스테넬로스가 살고 있는 파로스섬에 기항(寄港)했을 때, 2명의 승무원이 살해당하자 헤라클레스는 파로스섬의 도시를 공략(攻略)하여 네팔리온 형제를 죽였다. 섬사람은 살해당한 두 승무원 대신 다른 사람을 데리고 갈 것을 헤라클레스에게 요청하자 헤라클레스는 알카이오스와 스테넬로스를 데리고 출항하였다.



넬레우스

<Neleu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   살모네우스의 딸 티로와 포세이돈 사이에 태어난 아들. 펠리아스의 쌍둥이 형제이다. 티로는 아버지의 형제 클레테우스의 손에서 자랐으며, 그녀는 자기가 낳은 쌍둥이를 버렸으나 말지기가 주워다가 길렀다. 그들은 성인이 되어 그들의 어머니가 살모네우스의 후처인 시데로에게 학대받고 있음을 알고, 헤라의 신전(神殿)으로 도망간 시데로의 뒤를 쫓아가 붙잡아다가 제단(祭壇) 위에서 칼로 베어 죽였다. 그 후 형제가 서로 싸우게 되어 넬레우스는 쫓겨 메세네로 가서 필로스를 건설하고, 암피온의 딸 클로리스를 아내로 삼아 외동딸 페로와 타우로스․아스테리오스․필라온․데이마코스 등 12명의 아들을 낳았다. 헤라클레스가 이피토스를 죽였을 때, 넬레우스는 헤라클레스의 살인죄를 씻어줄 것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헤라클레스는 필로스를 공격하여 게레니아인(人)의 땅에 있던 네스토르를 제외한 11명의 아들들을 죽였다. 일설에는 넬레우스 자신도 이때 죽었다고 하고, 그 후 코린토스에서 죽자 그곳에 묻혔다고도 전한다.


노르넨

<Nornen>


북구(北歐) 신화에 나오는 운명과 예언의 여신. 노르니르(Nornir)라고도 하며, 복수(複數)로는 노른(Norn)이다. 그리스 신화의 모이라에 해당한다. 첫째 우르드(과거), 둘째 언니 베르단디(현재), 막내 스쿨드(미래)의 세 자매로, 우주수(宇宙樹) 이그드라실의 뿌리 끝에 있는 우물에 살면서, 그 우물물을 이그드라실에 뿌려, 나무가 말라죽지 않도록 보살핀다. 신도 인간도 그녀들이 정하는 운명을 바꿀 수 없다. 민화 등에서 아기가 태어났을 때 나와서 예언하는 무녀(巫女)는 그 후신으로, 근년까지만 해도 그런 종류의 무녀가 북구에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 등장하는 마녀도 노르넨이다.


<Nun>


고대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우주신(宇宙神). 누라고도 한다. 만물의 기원인 원초적(原初的)인 물로써 만물을 모두 에워싸고 있는 신이며, 카오스[混沌]나 그리스의 오케아노스보다도 넓은 의미에서의 대양(大洋)의 인격화이다. 헬리오폴리스(태양의 도시)의 신화에서는 태양은 그로부터 나왔다고 하며, 그리스 헤르무폴리스시(市)의 신화에서는 원초적인 물에서 태어난 알[卵]에서부터 태양이 생겨나 만물을 창조하고 팔신일좌(八神一坐)의 신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한다.


【네펜테(Nepenthe)】 [그리스] 헬렌이 이집트에 있을 때 복용했던 진통제.


【넥타르(nectar)】 [그리스] 신들의 음료. 원료는 꿀이었을 것이다.


【넵투누스(Neptune)】 [로마] 포세이돈 참조.


【니사 요정(Nysaean nymph)】 [그리스] 니사 계곡에서 바쿠스를 돌보던 님프. 나중에 히아데스 계곡으로 이름이 바뀐다.


【니소스(Nisos)】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메가라의 왕(王). 그의 생명은 보랏빛 머리카락에 걸려 있다는 신탁(神託)이 있었는데, 딸 스킬라가 크레타 왕(王) 미노스를 사랑하여 연인(戀人)에게 승리를 주기 위하여 아버지의 머리카락을 잘랐으므로 니소스는 잠든 채 죽고 베가라는 미노스의 손에 넘어갔다. 미노스는 이 행동을 미워하여 스킬라를 바다에 빠지게 하였으며, 니소스는 큰 독수리가 되어 스킬라의 변신(變身)인 키리스라는 새를 언제나 쫓고 있다고 한다.



니소스

<Niso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왕과 영웅 이름. ① 메가라의 왕. 아테네의 왕 판디온과 메가라의 영주 필라스의 딸 필리아 사이에서 낳은 네 아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한 가닥뿐인 보랏빛의 머리털을 뽑히면 죽는다는 신탁(神託)이 있었는데, 딸 스킬라가 메가라를 포위한 크레타의 왕 미노스를 사랑하여 아버지의 머리털을 자름으로써 메가라는 미노스의 손에 넘어갔다. 니소스는 죽어 흰꼬리 수리가 되고, 미노스에게 버림받은 스킬라는 키리스라는 새 또는 물고기로 화신하였다고 전해진다. ② 《아에네이스》에서 아에네이스의 부하로 나오는 영웅. 히르타고스의 아들로 도보경기에 뛰어났다. 루투리인(人)과의 싸움에서 친구인 에우리알로스와 함께 전사하였다.


니오베

<Niobe>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성. 리디아의 왕 탄탈로스의 딸로 테베의 왕 암피온의 아내이다. 7명의 아들과 7명의 딸을 두었는데 그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 테베에서 숭배받던 여신 레트에게는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라는 두 남매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녀보다 자기가 훌륭하다고 뽐냈다. 그래서 화가 난 레트는 아폴론에게는 니오베의 아들들을 죽이게 하고, 아르테미스에게는 그녀의 딸들을 죽이게 하였다. 한꺼번에 모든 자식을 잃고 비탄에 빠져 울며 세월을 보내던 니오베는 고향인 리디아의 시필로스산(山) 위에서 밤낮 울며 탄식하다가 돌이 되고 말았다. 그녀는 돌이 되어서도 계속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인간의 교만에 대한 신의 벌을 시사하는 이야기로, 그리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문학이나 미술에서 많이 다루었다.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의 비극 외에도 오비디우스가 《변신이야기》에서 다루었다. 조각에 있어서는 피렌체에 있는 니오베의 자식들의 군상(群像) 《니오비데》는 유명하다.


◀참 조▶

☞니오비데


니오비데

<Niobid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니오베의 아이들, 또 그것을 소재로 삼은 조각품. 아버지는 테베의 왕 암피온이다. 아들 7명, 딸 7명 등 형제자매가 14명이나 되었다. 어머니 니오베가 자식 자랑만 하다가 이를 미워한 여신 레트에게 모두 살해되었다. 미술품으로는 BC 5세기경 그리스 원작이 로마의 국립미술관에 1점, 코펜하겐의 조각진열관에 2점이 있고, 1583년에 로마에서 발견된, 로마시대의 일련의 복사작품들이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있다.


◀참 조▶

☞니오베


【니케(Nike)】 [그리스] 승리의 여신. 영어로 나이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 로마 신화의 빅토리아에 해당한다. 신화에서는 팔라스와 스티크스의 딸. 로젤로스(경쟁심)․크라토스(지배)․비아(폭력)와는 자매 관계이다. 싸움의 여신 아테나와의 관계가 깊고 모습도 비슷하나, 날개를 가지고 있고 종려 잎을 손에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미술작품으로는 올림피아 출토(出土)의 파이오니오스와 현재 프랑스의 루브르 미술관에 있는 사모트라케 출토의 조각이 유명하다. 미국 육군의 대공유도탄(對空誘導彈) 나이키는 그녀의 이름을 딴 것이다.


니크테우스

<Nykteu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리에우스와 님프인 클로니아의 아들. 일설에는 크토니오스의 아들, 또는 포세이돈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형제인 리코스와 함께 테베로 가서 어린 라이오스의 섭정(攝政)이 되었다. 딸 안티오페가 제우스와 관계를 맺고 임신하여 시키온의 왕 에포페우스에게로 도망갔을 때, 리코스에게 두 사람의 처벌을 명하고 슬퍼한 나머지 세상을 떠났다.


닉스

<Nyx>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 닉스는 ꡐ밤ꡑ이라는 뜻이다. 서사시인 호메로스에 의하면 그녀는 주신(主神) 제우스도 두려워하는 여신이며, 헤시오도스의 시에서는 우주의 원초에 카오스(혼돈)에서 태어난 먼 옛날의 신으로 되어 있다. 특히 오르페우스교(敎)에서는 우주창조에 관계되는 중요한 여신이라 하고, 또한 동굴 속에서 특별한 신탁(神託)을 내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님프(Nymph)】 [그리스] 세계를 구성하는 4대 원소 중의 하나인 '물'의 정령이다. 매우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 옛날 사람은 님프가 나오는 장소에 따라 다른 이름을 붙였다. 나무 속에 살고 있는 것이 드리아드스(Dryads), 바다에 사는 것은 네레이드스(Nereids), 강과 호수 등의 담수에 사는 것은 나이아드스(Naiads), 협곡에 사는 것은 나파에아스(Napaeas), 산에 사는 것은 오레아드스(Oreads), 삼림에 사는 것은 알세이드스(Alseids)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요정(妖精)의 총칭. 그리스 말 님페(Nymphe)․늄페(Numphe)의 영어 이름이다. 그리스인들은 산에는 오레이아데스, 숲에는 알세이스가 살고 있다는 식으로, 자연계에는 여러 정령(精靈)이 깃들어 있다고 믿어 이것들을 님프라고 하였다. 님프들이 저마다 차지하는 영역은 물의 경우, 오케아니데스는 대양(大洋), 네레이데스는 지중해, 나이아데스는 담수(淡水) 등으로 대별되는데, 한편 이름있는 강이나 우물은 대개가 고유의 님프를 가지고 있었다. 님프들은 신화 속에서 일반적으로 아름답고 젊은 아가씨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춤과 음악을 즐기는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때로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수도 있으나, 대개는 호의적이고 시인에게 영감을 주거나 예언능력을 주는 것으로 여겼다. 또한 들에 꽃을 피게 하고, 목축을 돕기도 하며, 우물에 약효를 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되어 각지에는 님프의 사당(祠堂)이 세워졌는가 하면, 특히 님프의 거처라고 생각되는 동굴은 신성한 장소로 숭배되었다. 히라스나 다프니스 등 인간을 상대로 하는 연애담도 많이 있다. 이것들은 신들 가운데서 하층에 속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신들과는 달리 수명이 매우 길다. 그러나 님프라고 해서 영원히 죽지 않고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다나안(Danaan)】 [그리스, 로마] 아르고스의 다나우스(Danaus)의 백성. 일리아드에서는 일반적으로 그리스인들 지칭하는 말로 사용.


【다나에(Danae)】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오스와 라케다이몬의 딸. 아크리시오스는 딸의 아들(외손자)의 손에 죽는다는 신탁(神託)을 받는다. 그 후로는 딸을 지하에 있는 청동의 방안에 가두어 놓고 어떤 남자도 접근할 수 없도록 하였으나, 다나에를 사랑하는 제우스가 황금의 비[雨]로 변신하여 그녀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두 무릎 사이로 스며들어가 교접(交接)을 하여 페르세우스가 태어났다. 왕은 다나에와 페르세우스 모자를 상자에 넣어 바다에 띄워 보냈는데, 이들은 세리포스섬에 표착, 이 섬의 왕 폴리데크테스의 동생인 디크티스에게 구조되어 페르세우스가 성인이 될 때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뒤에 경기회(競技會)에서 페르세우스가 던진 원반(圓盤)에 경기를 관람하고 있던 아크리시오스 왕이 맞아 왕은 죽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많은 화가의 그림 소재로 다루어졌으며, R.슈트라우스의 가극 《다나에의 사랑》도 있다.


【다나오스】<Danao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벨로스와 안키노에의 아들. 아이깁토스의 쌍둥이 동생. 아이깁토스에게는 50명의 아들이 있었고, 다나오스에게는 50명의 딸이 있었다. 아버지가 죽자 형제 사이에 왕권다툼이 일어나, 다나오스는 딸들을 데리고 조상들의 땅인 그리스의 아르고스로 가 그곳 왕 겔리노르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아이깁토스의 50명의 아들이 찾아와서 그의 딸들에게 결혼할 것을 강요하자, 다나오스는 딸들에게 단도를 주어, 결혼 첫날밤에 남편의 목을 베도록 명하였다. 딸들은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 명령을 따랐기 때문에, 지옥에서 구멍 뚫린 물통에다 물을 부어 채워야 하는 영겁(永劫)의 벌을 받았다. 다나오스는 결국 유일하게 살아 남은 사위 린케우스의 손에 죽었다.


【다나이스(Dana)】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나오스의 50명의 딸. 복수(複數)는 다나이데스(Dana뷶es). 다나오스는 부왕(父王)이 죽자 형인 아이깁토스와 왕권을 놓고 다투다가, 그 형의 50명의 아들들이 두려워 조상의 땅인 아르고스로 피신하였는데, 아이깁토스의 아들이 뒤쫓아와서는 사촌 자매들에게 강제로 구혼(求婚)을 하였다. 다나오스는 하는 수 없이 동의하고 딸들을 그들에게 짝지어 주었다. 그리고는 딸들에게 칼을 주어 첫날밤에 각기 신랑을 죽이도록 하였다. ◀참 조▶☞다나오스



다르다노스

<Dardano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 호메로스의 시에는 프리아모스의 아버지 또는 조부로 되어 있는데, 두 가지 설이 있다. ① 제우스와 엘렉트라 사이에서 난 아들로, 이아시온과 형제간이다. 사모트라케섬에서 태어났으나 데우칼리온의 홍수 때 표류(漂流)하여, 또는 데메테르에게 도전한 이아시온이 벼락에 맞아 죽었기 때문에 그는 사모트라케를 떠나 소아시아로 건너가, 스카만드로스 하신(河神)의 손녀 바티에이아와 결혼하고 영지의 일부를 받았는데, 이 땅을 다르다니아라고 하였다. 일설에는 다르다노스의 손자 트르스에서 트로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하고, 이 도시를 건설한 사람은 다르다노스라고도 한다. ② 이탈리아의 전승에 따르면, 코리토스의 아들로, 이아손과 형제간. 다르다노스는 트로이로 가고, 이아시온(또는 이아시오스)은 사모트라케 섬으로 갔다고도 하고, 또 일설에는 다르다노스가 이아시온을 죽였다고도 한다.


【다이달로스(Daedalus)】 [그리스, 로마] 미궁을 설계한 장인. 이카로스의 아버지이며 테세우스가 미궁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 ꡐ명장(名匠)ꡑ이라는 뜻의 이름인데, 대장간의 신(神) 헤파이스토스의 자손이다. 여신 아테네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은 건축과 공예의 명인으로서 각지에서 존경받았다. 도끼․송곳․자 등 많은 연장을 발명하였고, 그가 만든 조상(彫像)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고 한다. 조카인 탈로스를 제자로 삼았으나, 후에 그의 뛰어난 솜씨를 시기하여 죽였기 때문에 사형을 선고받고 크레타섬으로 도망쳤다. 여기서도 그의 기술이 크레타의 왕 미노스의 인정을 받아, 흰 소를 사랑한 미노스왕의 아내 파시파에가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낳았을 때, 이 괴물을 가두기 위한 미궁(迷宮) 라비린토스를 지었다. 또한 테세우스를 사랑한 그의 딸 아리아도네를 위하여 미궁으로 들어갈 때 몸에다 매주려고 실을 뽑았었는데, 이것이 원인이 되어 다이달로스 자신도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라비린토스에 갇히게 되었다. 이때 다이달로스는 날개를 만들어, 그것을 자신과 아들의 어깨에 밀[蠟]로 붙이고 함께 날아올라 탈출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의 명령을 어기고 태양 가까이로 너무 접근하였기 때문에, 태양열에 밀이 녹아 날개가 떨어져 나가면서 바다에 떨어져 죽었다. 혼자 하늘을 날아 시칠리아로 도망친 다이달로스는 시칠리아의 왕 코카로스의 보호를 받았다.



【다크틸(Dactyl)-다크틸로이】 [그리스] 철의 발견하여 야금술을 발전시킨 사람들. 이들은 크레타의 이다(Ida) 산에 살았다고 한다. 이들은 마법을 부릴 수 있었다고 믿어졌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령(精靈)들의 이름. 단수(單數)는 다크틸로스(Daktylos)이다. 프리기아 또는 크레타섬에 있는 이데산(山)에 살고 있다고 생각되어 ꡐ이데의 다크틸로이ꡑ라고 한다. 한편, 그들은 철(鐵)을 발견하여 야금술(冶金術)의 발명자로 생각되고 있다. 그들의 어머니는 님프인 안키아레로, 동굴에서 그들을 낳을 때 고통스런 나머지 양손으로 흙을 움켜쥐었다 하며,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제우스의 유모가 손가락으로 뒤쪽에 던진 먼지에서 그들이 태어났다고 하여 다크틸로이(손가락)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들은 남자 5명, 여자 5명인데, 남자들은 훌륭한 야금공(冶金工)들이고, 여자들은 주술(呪術)이 뛰어났다고 한다. 또한 5사람의 다크틸로이가 어린 제우스를 지켰었는데, 그들이 제우스를 위로하기 위해서 올림피아 경기를 고안하였다는 전설도 있다.


【다프네(Daphne)】 [그리스] 월계수나무의 요정. 강의 신 페네우스(Peneus)의 딸. 영어로는 대프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님프. 월계수(月桂樹)란 뜻으로, 아르카디아의 라돈강(江)의 하신(河神)의 딸 또는 테살리아의 페네이오스강(江)의 하신의 딸이라고도 한다. 아버지의 소망에도 불구하고 아폴론의 구혼을 거절하고 시녀들과 산야에서 사냥을 즐기면서 지냈다. 그러나 아폴론은 그녀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한편 그녀를 사랑하는 레우키포스는 여장(女裝)을 하고 그녀들 틈에 몰래 끼여들었다. 이를 질투한 아폴론은 그녀들에게 목욕을 하게 함으로써 레우키포스의 정체가 드러나 레우키포스는 그녀들의 손에 죽었다. 이 기회에 아폴론이 다프네를 사로잡으려고 했고 이때 그녀가 아버지인 하신에게 드린 기도가 받아들여져 그녀의 몸이 월계수로 변하였다. 이런 일이 있은 뒤 아폴론은 이 나무의 잎을 항상 푸르게 하고 그녀를 추억하기 위해 항시 월계관을 몸에 지니게 되었다. 다프네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벨리니의 조각과 조르조네의 그림, H.작스의 극, 그리고 H.슈크, G.H.헨델, R.슈트라우스의 가극 등이 있다.


【다프니스(Daphnis)】 [그리스] 황금시대에 살았던 시킬리아의 양치기. 잘생겨서 님프와 뮤즈의 사랑을 받았다. 아프로디테와 에로스가 그를 시험했지만 사랑한 님프를 배신하지 않았다는 전설이 있다. 다른 전설에는 사랑을 배신하여 장님이 되는 벌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목양자(牧羊者). 헤르메스와 님프의 아들로, 어머니가 그를 낳자마자 월계수(月桂樹:다프네) 밑에 버렸는데 목양자가 주워다가 길렀다. 그리하여 다프니스(월계수의 아들)라 하였다고도 전한다. 그는 예술을 좋아하여 목신(牧神) 판에게서 노래와 피리를 배우고 시칠리아에서 목양자로 있었다. 님프인 노미아가 그를 사랑하여 그로 하여금 성실을 맹세하게 하였으나 그가 배신하였기 때문에 격분한 노미아는 그를 소경으로 만들었다. 소경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노래하는 다프니스를 가엾게 여긴 헤르메스가 그를 천상(天上)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다프니스는 목가(牧歌)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대모신(Magna Mater)】 [그리스] 신들의 어머니.


【데메테르:데미테르(Demeter)】 [그리스] 농업의 여신. 뜻은 "보리 어머니". 페르세포네(Persepone)의 어머니. 크로누스와 레아의 딸. 딸 페르세포네를 잃고 하데스에게 찾아간 동안 지상의 생육이 멈추어,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일년중 반을 어머니와 같이 있도록 양보함. (케레스 참조.) 신전은 엘에우시스에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곡물 또는 대지(大地)의 여신. 인류에게 최대의 은혜를 베푼다고 하여 올림포스의 신들 중 특히 숭배되었다. 크로노스와 레아의 딸로, 제우스의 누이이면서 제우스와의 사이에 딸 페르세포네를 낳았다. 그런데 《헤르메스의 찬가》에 따르면 페르세포네를 짝사랑한 명부(冥府)의 왕 하데스플르톤이 그녀를 납치하여 지하로 데려가자 데메테르는 딸을 찾아서 천계(天界)를 떠나 엘레우시스까지 가서 늙은 여자로 변신, 그곳 왕자의 유모가 되었다. 데메테르가 천계로 돌아오지 않으므로 대지의 곡식이 여물지 않아 사람들이 곤란을 받자 제우스는 하데스에게 페르세포네를 돌려주라고 명령하였다. 이렇게 해서 어머니인 데메테르와 함께 천계로 돌아온 페르세포네는 명부에서 석류알을 먹었기 때문에 규칙에 따라 1년 중 3분의 1은 지하에서 하데스와 함께 지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데메테르는 딸 페르세포네와 함께 엘레우시스 및 그리스의 각지에서 ꡐ두 여신ꡑ이라는 이름으로 숭배되었다. 데메테르는 곡물의 이삭을 관(冠)으로 쓰고, 손에는 홀장(笏杖)이나 보리이삭을 든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로마에서는 케레스가 곡물의 여신으로 데메테르와 동일시되었다.


데모폰

<Demophon>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테세우스와 파이드라의 아들. 그리스군(軍)의 트로이원정 당시 형제인 아카마스와 동행하여 용사들과 함께 용감하게 싸웠다. 트로이 함락 후 헬레네와 함께 트로이에 잡혀 있던 할머니 아이트라를 찾아 귀국하는 도중 트라키아의 왕 시톤에게 들렀다. 그곳에서 왕의 딸 필리스를 사랑하게 되어 결혼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약속한 날이 지나도 데모폰이 돌아오지 않자 필리스는 그를 저주하면서 자살해 아먼드나무가 되었다. 약속한 날이 지나서야 트라키아로 돌아온 데모폰은 그녀가 나무로 변한 것을 한탄한 나머지 그 나무를 얼싸안고 자신도 그 나무의 싹과 잎으로 변신(變身)하였다고 한다.


【데우칼리온(Deucalion)】 [그리스] 대홍수에 살아남은 사람. 프로메테우스의 아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으로, 테살리아프티아의 왕. 프로메테우스와 클리메네의 아들. 피라(빨간머리의 여인)와 결혼하여 그리스인(人)의 조상 헬렌을 낳았다. 제우스가 인류를 홍수로 멸망시키려고 하였을 때, 방주(方舟)를 건조(建造)하여 난(亂)을 피하여 아내와 함께 파르나소스산(山)에 도착하였다. 그들이 제우스에게 희생(犧牲)을 바치고 새로운 인종의 탄생을 간청하자, ꡒ어머니의 뼈를 등 뒤로 버려라ꡓ 하는 말이 들려와, 돌을 어머니인 대지 뼈라고 해석하고 등 뒤로 돌을 던지니, 데우칼리온이 던진 돌에서는 남자가, 피라가 던진 돌에서는 여자가 태어났다고 전한다.



【데이다미아(Deidamia)】 [그리스, 로마] ① 사르페돈의 어머니. ② 네오프톨레무스의 어머니.


데이모스와포보스

<Deimos and Phobo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ꡐ공포ꡑ와 ꡐ패주(敗走)ꡑ의 신. 헤시오도스의 《서사시》에 의인신(擬人神)으로 나타나며, 언제나 군신(軍神) 제우스의 아들 아레스의 종자(從者)로 등장한다. 아레스와 아프로디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라고도 한다.


데이아네이라

<Deianeira>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의 아내. 아이톨리아의 왕 오이네우스와 알타이아의 딸이다. BC 5세기의 시인 박쿨리데스에 의하면 헤라클레스가 명부(冥府)에 내려갔을 때, 멜레아그로스로부터 데이아네이라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지상으로 돌아와, 하신(河神) 아켈로우스와 싸워 이긴 끝에 그녀를 아내로 삼았다. 그 뒤 강을 건널 때 켄타우로스의 네소스가 그녀를 범하려고 하자 헤라클레스는 독화살을 쏘아 그를 죽여 버렸다. 훗날, 원정에 나간 헤라클레스가 오이칼리아의 왕녀 이올레를 포로로 잡아 고향으로 보냈으나, 아름다운 이올레의 모습을 본 데이아네이라는 남편의 사랑을 잃을까 두려워한 나머지, 일찍이 네소스가 죽으면서 사랑의 미약(媚藥)이라고 속여 그녀에게 준 네소스의 독혈(毒血)을 흰옷에 발라 남편에게 보냈다. 희생제(犧牲祭)에서 이 옷을 입은 헤라클레스가 독혈로 인하여 살이 상하여 죽음 직전에 아내 곁으로 돌아오자, 비로소 진상을 알게 된 데이아네이라는 자살하고 말았다. 한편, 죽음이 다가온 것을 안 헤라클레스는 자신을 오이타 산상으로 옮기라 하여 분신(焚身)하였다. 이렇게 하여 그의 몸은 승천하여 신(神)의 열(列)에 끼었다고 한다.


【델로스(Delos)】 [그리스] 아폴로와 아르테미스가 태어난 곳.


【델리안(Delian)】 [그리스] 델로스와 피티아 사람들이 아폴론을 부르는 이름.


【델피(Delphi)】 [그리스] 아폴로 신의 위대한 성스런 신전. 그리스 중부 파르나소스 산(Mount Parnassus) 기슭에 있었다. 이곳은 고대부터 종교적 중심지였다. 기원전 6세기나 7세기 무렵부터 아폴로를 모시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세계의 중심이 되는 돌(navel stone) 옴팔로스(omphalos)가 있었다. 델피는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되었다. 환각상태에 빠진 노파가 유명한 신탁를 전했다. 그녀는 피티아(Pythia) 또는 피토네스(Pythoness)라고 알려졌다. 카드무스, 헤라클레스, 오레스테스, 페르세우스, 크수투스 등이 신탁을 얻기 위해 방문했다.


【도도나(Dodona)】 [그리스] 제우스 신전과 그 일대. 에피루스 산 안에 있다. 팜보리스(Pamboris) 호수 남서쪽에서 수 십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비둘기들의 집이기도 한 성스러운 오크나무의 유명한 신탁이 있는 곳이었다.


【도리아인(Dorians)】 [그리스, 로마] 그리스 민족의 일파. 헬렌의 아들, 도루스의 후손이라고 믿었다.


【디도(Dido)】 [그리스, 로마] 아이네이아스가 명계에서 만난 사람.


【디스(Dis)】 [로마] 플루토의 별칭. 뜻은 "부유하다".


【디아나(Diana)】 [그리스, 로마] 영어로 다이애나. 아르테미스 참조.


【디오네(Dione)】 [그리스, 로마] 아프로디테의 어머니.


【디오니소스(Dionysos)】 [그리스] 뜻은 "불완전한 신". 포도나무, 포도주의 신. 남자이름 Denis의 어원. 바쿠스 참조.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 로마 신화에서는 바코스(Bachos)라고 한다. 바카스․바쿠스․바커스 등으로도 불린다. 제우스와 세멜레의 아들. 제우스의 사랑을 받는 세멜레를 질투한 제우스의 비(妃) 헤라가 세멜레를 속여서 제우스가 헤라에게 접근할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게 해 달라는 소원을 하도록 세멜레에게 권하였다. 어떤 소원이라도 들어 주기로 약속한 바 있는 제우스는 본의는 아니지만 번개의 모습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세멜레는 그 자리에서 타죽었다. 그러나 태내에 있던 디오니소스는 살아나 제우스의 넓적다리 속에서 달이 찰 때까지 자란 끝에 태어났다. 이렇게 태어난 디오니소스는 니사의 요정(님프)의 손에서 자란 후로 각지를 떠돌아다녔는데, 이것은 헤라가 그에게 광기(狂氣)를 불어넣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먼저 이집트로 갔고, 이어 시리아로 옮겼다가 아시아 전역을 떠돌아다니면서 포도재배를 각지에 보급, 문명을 전달했다고 전한다. 또한 그는 지옥에서 어머니인 세멜레를 데리고 나와 천상(天上)에 있는 신들의 자리에 앉혔다. 디오니소스에 대한 신앙은 트라키아 지방으로부터 그리스로 흘러들어온 것으로 생각되며, 디오니소스는 대지의 풍요를 주재하는 신인 한편, 포도재배와 관련하여 술의 신이 되기도 한다. 이 술의 신에 대한 의식(儀式)은 열광적인 입신(入神)상태를 수반하는 것으로, 특히 여성들이 담쟁이덩굴을 감은 지팡이를 흔들면서 난무하고, 야수(野獸)를 때려죽이는 등 광란적인 의식에 의해 숭배되는 자연신이었으나, 그리스에 전해져서는 이 신의 제례에서 연극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시되고 있다. 로마 시대에 와서도 이 신앙은 계속되어 점차 비교적(秘敎的) 경향이 강해졌다.



【디오메데스(Diomedes)】 [그리스] 아킬레스의 친구인 트로이전쟁의 영웅. 티데우스(Tydeus)의 아들. 헤라클레스에게 죽었다.  칼리돈의 왕 오이네우스의 아들인 아르고스의 왕. 티데우스와 데이플레 사이에 태어났다. 80척의 아르고스 선단(船團)을 이끌고 트로이 전쟁에 참가하였으며, 용감한 무장으로서 《일리아드》에도 등장하고 있다. 여신 아테나의 가호(加護)로 트로이 군대를 격파하고, 트로이 편인 여신 아프로디테와 군신(軍神) 아레스에게까지 상처를 입히고 트로이의 팔라스상(像)을 훔쳐내어 목마(木馬) 속으로 숨었다. 전쟁이 끝나고 아르고스로 돌아오자 아프로디테의 복수로 아내 아에기아레아의 부정(不貞)을 알게 되었다. 이탈리아로 건너간 그는 다우니아의 왕이 되어, 남(南)이탈리아에 많은 도시를 건설하였다. 그는 죽어서 가르가눔 앞 바다에 있는 바위섬에 묻혔는데, 그 섬을 디오메데스의 섬이라 부른다고 한다.


디오스쿠로이

<Dioskuroi>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쌍둥이형제인 카스토르와 폴리데우케스(로마 신화에서는 폴룩스). ꡐ제우스의 아들들ꡑ이라는 뜻이다. 틴다레오스의 아내 레다의 아들들이고, 헬레네와 클리타임네스트라의 형제이다. 레다는 백조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그녀에게 접근한 제우스와 관계를 맺어 그들을 낳았다. 한편 다른 전설에 따르면 그들은 알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호머는 그들을 사람으로 언급하였으나, 그리스와 로마 각지에서는 그들을 싸움의 신, 항해의 수호신으로 섬겼다. 제우스는 그들을 하늘로 올려 가 쌍둥이별 제미니(Gemini)가 되게 하였다고 한다.


【디티람브(Dithyramb)】 [그리스, 로마] 디오니소스 숭배와 관련된 시가의 형태. 디티람보스. 고대 그리스에서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찬양하고 노래한 합창. 주로 신화를 이야기 형식으로 부른다. BC 6세기 초에 시인 아리온이 이 합창의 내용과 형식을 예술적으로 정리하였으며, 페이시스트라토스에 의하여 디오니소스제(祭)에서 경기의 한 행사로 거행되면서부터 유명해졌다. 라소스․시모니데스․핀다로스․바킬리데스 등 시인이 다투어 이 행사에 참가하였다 한다.



【라다만토스】 [그리스] 명계의 세 재판관중 하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와 에우로페의 아들. 크레타의 왕 미노스의 형제.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는 선경(仙境) 엘리시온의 들[野]에 살고 있으며, 핀다로스에 의하면 ꡐ복자(福者)의 섬, Makaron Nesoiꡑ에 살고 있다고 한다. 라다만티스는 이 세상에서는 뛰어난 지혜와 정의로써 널리 알려져 크레타섬의 입법자였으며, 저승에서는 미노스 및 아야코스와 함께 사자(死者)의 3대 재판관이었다. 그리스 이전의 문명에 속한 신격(神格)으로 짐작된다.



【라돈(Ladon)】 [그리스] 헤스페리데스의 황금사과를 지키는 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로, 머리가 여러 개 달린 용(龍). 라돈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였고, 잠자는 일이 없었다. 포르키스와 케토 사이에 난 아들이라고도 하며, 상반신은 여자이고 하반신은 뱀인 괴물 에키드나와 거대한 괴물 티폰 사이에 태어난 자식이라고도 한다. 님프인 헤스페리스들의 동산에 있는 황금의 사과를 지키고 있었는데, 영웅 헤라클레스에게 도둑맞고, 목숨까지 잃었다. 죽어서는 헤라에 의해 하늘로 올라가 성좌(星座) 속에 들었다. 또 오케아노스와 테티스 사이에 태어난 아들, 아르카디아의 하신(河神)도 라돈이다.



【라미아(Lamia)】 [그리스] 상반신은 여성, 하반신은 뱀. 그리스 신화에서의 아름다운 요녀(妖女). 벨로스와 리비아 사이에서 태어난 딸인데, 주신(主神) 제우스의 사랑을 받아 아기를 낳았으나 제우스의 아내 헤라의 질투를 사 차례로 살해되었다. 이에 비탄한 나머지 요귀(妖鬼)가 된 그녀는 아기만 보면 앗아가 버렸는데, 죽이지는 않고 삼켰다가 다시 토해냈다고 한다. 이를 소재로 한 키츠의 시 《라미아》가 있다.



【라브다쿠스(Labdacus)】 [그리스] 오이디푸스의 할아버지.


라비린토스

<Labyrintho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크레타섬에 있는 건물. 크레타의 왕 미노스가 명공(名工) 다이달로스에게 명하여 지은 것으로, 그 안에 한번 들어가면 출구를 찾을 수 없도록 아주 복잡하게 설계되었기 때문에 ꡐ미궁(迷宮)ꡑ 또는 ꡐ미로(迷路)ꡑ라는 이름이 붙었다. 미노스는 이 건물 안에 왕비(王妃) 파시파에가 낳은 반우반인(半牛半人)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가두어 놓고 아테네에서 보내오는 소년소녀를 먹이로 주고 있었는데, 영웅 테세우스가 이를 물리쳤다. 이 건물은 크레타섬의 크노소스에 있었다고도 하고, 또는 고르틴에 있었다고도 전해진다. 따라서, 그리스 사람들은 미로적인 복잡한 건물을 모두 라비린토스라 부르게 되었고, 영어의 labyrinth(미궁) 등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라에르테스

<Laerte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의 아버지. 아크리시오스와 칼코메두사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 안티클레이아를 아내로 삼아 오디세우스를 낳았다. 그녀는 라에르테스를 만나기 전에 시시포스와 관계를 가진 때가 있었으므로, 오디세우스를 시시포스의 아들로 보기도 한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에 원정하였을 때에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으나, 아들이 귀국한 후 아테나 여신의 마법으로 활력을 되찾아 안티노스의 아버지 에우페이테스를 죽였다.



라오다메이아

<Laodameia>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성으로, 프로테실라오스의 아내. 아카스토스와 아스티다메이아의 딸. 트로이 원정에 참가한 남편이 트로이에 상륙한 최초의 그리스 쪽 전사(戰士)였는데, 그가 전사하자 결혼한 지 얼마 안되는 그녀는 신들에게 남편을 3시간만 소생시켜 달라고 빌어 뜻을 이루었다. 그 뒤 남편과 죽음의 여로(旅路)를 함께 하였는데, 남편 의상을 밤마다 품고 자다가 시아버지가 그것을 태우자, 불 속에 뛰어들어 죽었다는 등 그녀의 죽음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라오메돈

<Laomedon>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헤시오네․티토노스의 아버지이며, 헥토르․파리스․카산드라의 할아버지이다. 이 라오메돈에게는 약속불이행(約束不履行)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한 아폴론과 포세이돈은 그를 추종, 트로이의 고성벽(古城壁)을 쌓았는데도 그가 약속한 보수를 지불하지 않자, 바다의 괴물을 보내어 트로이의 땅을 유린하게 하였다. 그 괴물을 달래기 위하여 그의 딸인 헤시오네를 바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때 ꡐ구원(救援)의 영웅ꡑ 헤라클레스가 나타나 괴물을 물리치고 헤시오네를 살려냈다. 그 보수로 라오메돈은 자기 소유의 신마(神馬)를 주기로 하였으나 또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화가 난 헤라클레스가 트로이를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이 싸움에서 공을 세운 영웅 텔라몬에게 헤시오네를 주었다. 또, 라오메돈은 가니메데스의 아버지인데, 제우스가 이 미소년(美少年)을 라오메돈으로부터 빼앗아가고, 그 대가로 신마(神馬)를 그에게 보냈다는 전설도 있다.


【라우수스(Lausus)】 [그리스, 로마] 메젠티우스의 아들.



라이스트리곤

<Laistrygon>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식인거인(食人巨人). 복수(複數)는 라이스트 리고네스. 시칠리아 또는 남(南)이탈리아 캄파니아의 남단부인 포르미아이에 있었다고 하는 전설적 민족이다. 트로이전쟁에서 이기고 귀로에 오른 영웅 오디세우스가 항해하는 도중, 그 나라 항구에 도착하자 3명의 정탐꾼을 보냈었는데, 그들은 도성입구에서 물을 긷는 여인(공주)을 만나 그녀의 집으로 따라갔다. 안티파테스 왕이 3명을 보자마자 당장 하나를 잡아먹자, 2명은 도망쳐 달아났지만 거인족이 그들을 뒤쫓아와 오디세우스가 타고 있는 배를 제외하고 11척의 배를 침몰시켰다.


【라이오스(Laius)】 [그리스] 오이디푸스가 죽임.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라케다이몬(Lacedaemon)】 [그리스] 스파르타의 다른 이름.


【레다(Leda)】 [그리스] 헬렌의 어머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이톨리아의 왕 테스티오스와 에우리테미스 사이에 난 딸. 스파르타의 왕 틴다레오스의 아내가 되었으나, 주신(主神) 제우스의 사랑을 받아 제우스가 백조의 모습으로 그녀에게 접근하였다. 그래서 레다는 백조의 알을 낳고, 그 알에서 헬레네․폴리듀케스․카스토르․클리타임네스트라가 깨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카스토르와 클리타임네스트라는 같은 날 밤 틴다레오스에 의해서 생긴 자식이라고도 하며, 한편 헬레네는 레다의 자식이 아니라 제우스와 네메시스 사이에서 생긴 알을 레다가 곁에 두고 있는 동안 그 알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다.


【레다만토스(Rhadamanthus)】 [그리스, 로마] 에우로파의 아들.


레소스

<Rheso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라키아의 왕. 에우리피데스에 의하면 스트리몬의 하신(河神)과 9명의 무사(여신) 중 하나인 칼리오페 사이에 난 아들이다. 트로이 전쟁 10년째 되는 해에 트로이를 돕기 위해 왔으나, 도착하던 날 밤 몰래 숨어든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에게 부하와 함께 살해당했으며, 그의 명마(名馬)도 빼앗겼다.



【레아(Leah)】 [그리스] 신들의 어머니. 그로노스(Cronos)의 아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大地)의 여신. 천공신(天空神) 우라노스와 대지의 여신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크로노스의 아내가 되어 헤스티아․데메테르․헤라․하데스․포세이돈․제우스 등을 낳았으나, 자기 자식에게 왕좌를 빼앗길 것이라는 예언을 믿은 크로노스는, 자식을 낳는 대로 삼켜버렸다. 그래서 제우스를 낳았을 때 레아는 아들 대신 돌을 배내옷에 아기처럼 속에 싸서 크로노스로 하여금 삼키게 함으로써 아들 제우스의 목숨을 구하여 크레타섬의 산중에서 몰래 키웠다. 이렇게 하여 마침내 성인이 된 제우스는 크로노스로 하여금 그 때까지 삼킨 자식들을 모두 토해 내게 하였다. 레아에 대한 숭배는 크레타섬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되나, 그 후 소(小)아시아의 그리스인(人)들은 키벨레나 아그디스티스 등 아시아의 대지의 모신(母神)과 같은 신으로 보게 되었고, 또한 로마인들은 여신 오프스와 같은 것으로 생각한 듯하다.



레안드로스

<Leandro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헬레스폰투스(다르다넬스) 해협의 마을 아비도스의 미남 청년. 해협의 건너 마을 세스토스에 사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무녀(巫女) 헤로와 사랑에 빠져, 밤마다 헤로가 비추어 주는 불빛을 목표로 해협을 건너가서 애인과 만나곤 하였다. 폭풍이 부는 어느날 밤 역시 바다를 건너는데, 헤로가 밝히고 있던 등불이 바람에 꺼지는 바람에 그만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헤로는 그의 죽음을 슬퍼한 나머지 자신도 바다에 몸을 던져 그의 뒤를 따랐다고 전해진다.


레우코테아

<Leukothea>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 그 이름은 ꡐ흰 여신ꡑ의 뜻으로, 아타마스의 아내인 이노(카드모스의 딸)가 바다에 빠져 죽어 여신이 된 뒤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헤라의 질투 때문에 미친 이노가 아들인 멜리케르테스를 가마솥에 넣어 죽인 뒤 아들의 시체를 안고 바다로 뛰어들어 바다의 여신 레우코테아가 되었다. 이 이야기를 소재로 한 J.S.바흐의 《칸타타》와 도니체티의 가극(歌劇)이 있다.


레우키포스

<Leukippo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메세네왕. 그의 딸 힐라이라와 포이베는 제우스의 아들들에게 약탈되어, 각각 그들의 아내가 되었다. 루벤스가 이를 주제로 하여 그린 《레우키포스 딸들의 약탈》이 있다.


【레테(Lethe)】 [그리스] 명계의 망각의 강.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망각(忘却)의 강(江).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불화의 여신 에리스의 딸이기도 하다. 죽은 사람은 명계(冥界)로 내려가 이 강물을 마시고 이 세상의 기억을 잊는다고 한다. 일설에는 영혼이 새로운 육체 속에 들어가 다시 태어날 때 이 물을 마시고 전세(前世)를 잊는다고 한다. 보이오티아의 트로포니오스 신탁소(神託所) 부근에 같은 이름의 샘물이 있는데, 신탁을 받은 사람은 이 물과 또 하나의 샘물 무네모시네(기억)의 샘물을 마셔야만 했다.



【루나(Luna)】 [그리스, 로마] 셀레네 참조.


리노스

<Linos>


그리스 신화(神話)에 나오는 인물. ꡐ슬픔의 노래ꡑ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오르페우스와 더불어 일컬어지는 음악의 신이다. 리노스라는 이름에는 두 인물 이상의 계보(系譜)가 얽혀 있다. 아폴로도로스에 의하면 그는 무사(舞士:詩神)의 한 사람인 칼리오페와 오이아그로스의 아들이고 오르페우스의 형제라고도 한다. 헤라클레스의 음악선생이 되어 그에게 하프를 가르치다가, 이 영웅을 나무랜 것이 화근이 되어 그의 하프에 맞아죽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그는 무사인 우라니아의 아들로, 리듬과 멜로디를 발명하고, 테베의 시조(始祖) 카드모스에게 알파벳을 가르쳤는데, 자만하여 자신의 음악적 기량을 감히 아폴론에 비교했기 때문에 비명(非命)에 죽었다고 한다.



【리베라(Libera)】 [로마] 페르세포네의 로마식 이름.


【리베르(Liber)】 [그리스, 로마] 리아이우스 참조.


【리베트라(Libethra)】 [그리스] 오르페우스의 시신이 묻힌 곳.


【리비티나(Libitina)】 [로마] 명계의 여신.


【리아이우스(Lyaeus)】 [그리스] 바쿠스의 이름. 로마의 리베르와 같다.



리카스

<Licha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의 부하. 헤라클레스가 오이칼리아를 점령하자, 제복(制服)을 가져오도록 리카스를 아내 데이아네이라에게 사자(使者)로 보냈을 때, 그는 네소스의 피가 묻은 제복을 가지고 돌아왔다. 데이아네이라는 리카스를 통해 헤라클레스가 이올레를 사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므로, 네소스의 피를 미약(媚藥)으로 믿고 한 행동이었다. 이 제복을 입은 헤라클레스는 아픔을 견딜 수 없자, 노하여 리카스를 바닷속에 내던져 돌로 변하여 리카데스 제도가 되었다고 한다.


◀참 조▶

☞헤라클레스


리카온

<Lykaon>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르카디아의 왕 펠라스고스의 아들. 많은 아들(일설에는 50명)을 두었는데, 어느 날 주신(主神) 제우스의 신격(神格)을 시험해 보기 위해 아들을 죽여 그 살을 제우스의 식탁에 바쳤다. 리카온의 속셈을 알아차린 제우스는 화가 나서 번갯불을 일으켜 리카온과 그의 자식들을 불태워 죽였다. 이 때 막내인 니크티모스만은 죽음을 면했다고도 하고, 또 리카온은 이리로 변신했다고도 전한다. 이같은 전설의 배경에는 실제로 아르카디아의 리카이오스산의 제우스제(祭)에서 인신(人身)을 희생(犧牲)으로 바치는 관습이 있어, 인육(人肉)을 먹은 자는 9년간 이리로 되고, 그 뒤 인육을 먹지 않으면 다시 사람으로 되돌아온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리쿠르고스

<Lykourgos>


그리스 신화의 인물. 동명이인이 많다. 가장 유명한 인물은 디오니소스를 추방한 리쿠르고스이다. 디오니소스는 바닷속으로 도망했으나, 리쿠르고스는 독신(瀆神)의 벌로서 정신착란을 일으켰다. 그 뒤 자기의 가족을 포도나무 가지로 잘못 알고 죽인 뒤에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리키안(Lycian)】 [그리스] 아폴로의 별칭. 뜻은 "리키아의 신, 늑대신, 빛의 신".



리타이

<Litae>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선(善)을 회복시켜 주는 여신. 제우스의 딸로, 악 또는 재앙의 여신인 아테와 대비되며, 아테로부터 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보상해 주는 역할을 하였다. 호머는 《일리아스》에서 ꡒ절름발이에 주름투성이이고 사팔눈을 하고 있는데, 그 때문에 힘이 세고 발빠른 아테가 항상 리타이를 앞질러 가서 인간을 해치면, 리타이가 그 뒤를 쫓아가서 이를 위로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준다ꡓ고 묘사하였다. 인간이 이런 신격을 만들었다는 것은 인간사회에서 선과 악이 함께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참 조▶

☞아테


【리티에르세스(Lityerses)】 [그리스] 프리기아의 농부. 리티에르세스는 이방인이 찾아오면 그를 위해 추수를 시켰다. 자기보다 수확량이 적으면 목을 잘라 시체를 추수단에 묶었다. 그리고는 어떤 노래를 불렀다. 헤라클레스가 수확경기에서 다프니스를 이긴 다음 그를 죽이려면서 리티에르세스의 시체를 메안데르강에 같이 던졌다고 한다.


마르시아스

<Marsya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르시아스강(江)의 정령(精靈). 그는 아테나 여신이 만든, 불면 볼이 튀어나오고 얼굴이 미워진다는 피리를 주워 연습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훌륭히 불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우쭐해져 아폴론에게 음악의 기량을 겨루자고 도전하였으나 패배, 나무에 묶여 살가죽이 벗겨지는 형벌을 받았다. 이때 흘러내린 그의 피는 마르시아스강이 되었다고 하며 이를 심판한 신은 미다스왕(王)이었다고도 하고 무사(Musa)들이었다고도 한다. 후세에 미켈란젤로와 루벤스 등의 조각과 그림의 소재가 되었다.


마이나데스

<Mainades>


그리스 신화에서 주신(酒神) 디오니소스(바쿠스)를 수행하는 여자들. 단수(單數)로는 마이나스이고, 마이나데스는 ꡐ광란하는 여자들ꡑ이라는 뜻이다. 이 밖에 바케 또는 바카이, 티아데스, 바사리데스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표범 등 짐승의 가죽을 걸친 그녀들은 나뭇가지로 만든 관(冠)을 쓰고, 한 손에는 뱀이나 포도송이를, 또 다른 한 손에는 ꡐ티르소스(thyrsos)ꡑ라고 하는 디오니소스 숭배의 표지(標識)인 지팡이를 든 채 노래하고 춤추면서 산과 들을 뛰어다님으로써 인간의 습관이나 두려움을 잊고 지냈다. 그녀들의 몸 속에는 신의 영력(靈力)이 넘치기 때문에 괴력(怪力)을 발휘, 나무를 뿌리째 뽑는가 하면 야수를 갈갈이 찢어 생식(生食)하였다고 한다. 디오니소스는 이 여자들을 거느리고 리디아, 프리기아, 그 밖의 동방 여러 나라를 포교(布敎) 원정을 하였다. 일반적으로 그녀들은 디오니소스 숭배의 본고장인 트라키아나 프리기아에서 디오니소스 제례(祭禮)가 있을 때면 열광적으로 난무(亂舞)하는 여신도들의 신화적 반영이 아닌가 보고 있다. 이런 종류의 제례를 ꡐ오르기아(orgia)ꡑ라 하고, 짐승을 생식하는 제식(祭式)을 ꡐ오모파기아(omophagia)ꡑ라고 한다. 이런 제례는 일종의 밀의(密儀)로서, 사람들은 이 의식이 행해지는 동안 자기 속에서 신을 느낌으로써 일상의 습관이나 금기(禁忌)에서 벗어나 자연과 일치하는 감정으로 생활하였다. 따라서 그것은 인간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원시생명의 체험이기도 하였다.


【마이아(Maia)】 [그리스] 헤르메스의 어머니.


【마이안데르(Maeander)】 [그리스] 프리기아에 굴곡이 심한 강.


【마카온(Machaon)】 [그리스, 로마] 아이스쿨라피우스의 아들.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인의 의사.


【마테르 마투타(Mater Matuta)】 [로마] 이노의 로마 이름. 바다의 여신. 아우로라 참조.


【마테르 투리타(Mater Turrita)】 [로마] 키벨레 참조.


만토

<Manto>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언자.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딸. 에피고노이의 테베 공략 후,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전리품(戰利品)으로 바쳐졌다. 나중에 신의 지시에 따라 크레타 사람 라키오스와 결혼, 역시 예언자로 유명한 딸 모프소스를 낳았다. 아폴론의 신탁(神託)으로 유명한 클라로스시(市)를 창건하였다.


메가라

<Megara>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의 아내. 테베의 왕 크레온의 딸. 해마다 테베에 공물(貢物)을 강요해 오던 이웃나라 오르코메노스의 왕을 영웅(英雄) 헤라클레스가 무찌르자, 크레온은 그 포상으로 헤라클레스에게 자기의 딸 메가라를 아내로 주었다. 그런데 남편 제우스가 딴 여자를 보아 얻은 자식인 헤라클레스를 미워한 헤라가 헤라클레스를 미치게 만들어, 메가라는 결국 자식들과 함께 남편의 손에 죽는다. 한편 다른 전설에 따르면 미친 헤라클레스가 자식들을 죽인 다음, 메가라를 조카인 이올라오스에게 아내로 주었다고도 한다.


【메넬라오스(Menelaus)】 [그리스, 로마] 아가멤논의 동생. 헬렌의 남편. 프로테우스를 사로잡음. 텔레마쿠스를 방문.


【메노에케오스】 [그리스] 오이디푸스의 외할아버지.


【메두사(Medusa)】 [그리스] 머리카락이 뱀인, 여자의 모습을 한 무서운 괴물. 메듀사는 원래 아름다운 처녀였으나 여신 아테네(Athene)와 미(美)를 겨루었기 때문에 아테네의 노여움을 사서 무서운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다. 자신을 쳐다본 사람을 돌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가장 유명하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고르곤이라는 세 마녀들 중의 하나로, 고르고 메두사라고도 한다. 원래는 아름다운 소녀였으나, 여신 아테네의 신전(神殿)에서 해신(海神) 포세이돈과 정을 통했다고 하여, 아테네 여신의 저주를 받아 무서운 괴물로 변하였다. 그녀가 영웅 페르세우스의 손에 목이 잘린 때, 그 피에서 포세이돈의 자식인 날개 달린 천마(天馬) 페가수스와 크리사오르가 태어났다. 한편, 그녀의 목은 아테네의 갑옷에 장식으로 붙여졌다. 로마의 론다니니궁(宮)에서 뮌헨으로 옮겨진 메두사의 대리석 마스크는 조각예술의 걸작으로 꼽힌다. 한편 정신분석학에서 메두사는 아들을 사랑할 위험이 큰 어머니, 혹은 여성생식기, ꡐ자식에게 성적 요구를 가하는 여성의 상징ꡑ이라고 P.E.슬레이터는 해석하고 있다.


메디아

<Media>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젊고 아름다운 마녀(魔女). 동방의 나라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의 딸. 따라서 일신(日神) 헤리오스의 손녀, 키르케의 질녀에 해당한다. 이아손이 황금의 양모(羊毛)를 찾아서 콜키스에 왔을 때, 그를 사랑한 메디아가 양모를 찾아 주고 함께 콜키스를 탈출하였다. 아버지와 함께 그녀를 뒤쫓아오는 동생을 잡아죽여 갈갈이 찢어 뿌림으로써 아버지의 추적을 벗어났다. 이아손과 결혼하여 그의 고향인 이올코스에 갔을 때, 이아손과 그의 아버지 아이손의 적인 펠리아스를 살해하기 위해 펠리아스의 딸들에게 재생의 마법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마법을 믿은 펠리아스의 딸들은 아버지를 칼로 썰어서 끓는 가마솥에 넣고 살아나기를 기대했으나 펠리아스는 되살아나지 않았다. 그 뒤 메디아는 이아손과 함께 코린트로 도망간다. 코린트에 와서 이아손이 국왕 크레온의 딸을 아내로 삼으려고 하자, 메디아는 마법을 써서 왕녀와 국왕을 죽이고 자기 자식까지 죽임으로써 남편에게 보복한 후, 아티카의 왕 아이게우스 곁으로 갔다가 다시 아이게우스와 함께 아테네로 떠난다. 한편 에우리피데스가 코린트에서의 메디아의 비극적 운명을 《메데이아》에서 다루었고, 이것을 바탕으로 세네카가 다시 《메데아》라는 작품을 썼다.


메로페

<Merope>


그리스 신화에서 천공(天空)을 떠받드는 신. 아틀라스와 플레이오네의 딸. 플레이아데스라고 불리는 7자매 중 하나로 코린토스의 왕 시시포스의 아내가 되었다. 시시포스는 갖가지 악행 때문에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자, 메로페는 이를 부끄럽게 여겨 자매들이 천공의 별이 되었을 때 자기만은 보이지 않도록 모습을 감추었다. 다른 전설에 의하면, 자매 중 그녀만이 인간의 아내가 된 것을 창피하게 여겨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한 별이 되었다고 한다.


【메르쿠스(Mercury)】 [로마] 헤르메스 참조. 프시케를 신들의 궁전으로 데려감. 유피테르가 가장 좋아하는 동료.


【메안데르(Meander)】 [그리스] 마이안데르 참조.


【메티스(Metis)】 [그리스] 자기가 밴 아이가 제우스보다 위대해질 것이라는 경고를 했다. 제우스가 그녀를 삼겼는데, 나중에 아테나가 그의 머리에서 솟아났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여신. 대양(大洋)신 오케아노스와 그 여동생인 테티스 사이에 난 딸로, 주신(主神) 제우스의 첫번째 아내이다. 제우스의 아버지인 크로노스는 자기 자식들이 태어나기만 하면 모두 삼켜버렸는데, 메티스가 제우스를 시켜 크로노스에게 약을 먹게 한 다음 제우스의 형들을 토해내게 하였다. 이번에는 메티스가 아기를 갖자 첫째는 딸, 둘째는 아들을 낳을 터인데, 그 아들에게 왕위를 빼앗길 것이라는 예언을 들은 제우스가 메티스를 삼켜 버렸다. 훗날 제우스가 두통으로 괴로워할 때 프로메테우스 또는 헤파이스토스가 제우스의 이마를 도끼로 찍어 쪼개자, 거기서 여신 아테네가 무장을 한 채로 튀어나왔다고 전한다.


멘토르

<Mentor>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 오디세우스의 친구로, 친구의 영토인 이오니아 해상의 이타케섬에서 살았는데,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원정을 떠날 때 집안 일과 아들 텔레마코스의 교육을 멘토르에게 부탁하였다. 그는 친구의 부탁을 충실히 수행하려고 노력하였다. 텔레마코스가 아버지를 찾아 나선 여행길에 여신 아테나가 그를 도와 멘토르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오디세우스의 소식을 알기 위하여 함께 항해를 한다. 이 때문에 멘토르의 이름은 충실하고 현명한 조언자의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멜람푸스

<Melampu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언자. 아미타온과 페레스의 딸인 에이도메네의 아들이다. 어미 잃은 두 마리의 새끼뱀을 길러 주었더니, 뱀이 자라서 그가 잠자는 동안에 그의 귓구멍을 핥자, 모든 동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게다가 알페이스강(江) 언저리에서 아폴론을 만난 후 세계 제일의 예언자가 되었다. 그에게는 비아스라는 형이 있었는데, 그 형이 백부(伯父)인 넬레우스의 외동딸 페로를 아내로 삼고자 하였다. 그런데 넬레우스는 딸에게 청혼자가 너무도 많았으므로 테세리아의 필라코스가 가지고 있는 암소를 가져오는 자에게 딸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멜람푸스는 형을 대신하여 소를 훔치러 갔다가 현장에서 붙들려 옥에 갇히었다. 이 때 옥사(獄舍)의 천장을 날고 있는 벌레들이 ꡒ이 집은 우리가 들보를 파먹어 곧 무너질 것이라ꡓ고 하는 말을 알아듣고, 멀지않아 그 건물이 무너질 것을 안 그는 다른 옥사로 옮겨줄 것을 요청, 허락을 얻었다. 그러자 정말 옥사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그의 예언력에 놀란 필라스코스가 그를 석방시키면서 아들 이피클로스가 자식을 낳지 못하는 이유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다. 멜람푸스는 독수리에게 이유를 물어 자식 낳는 방법을 그에게 가르쳐 줌으로써 암소를 가져와, 비아스와 페로가 결혼에 성공하였다. 그는 또, 아르고스의 왕 프로이토스의 딸들이 미쳤을 때 이들을 치료해 준 대가로, 형인 비아스와 함께 프로이토스로부터 왕국의 1/3씩을 얻고, 왕의 딸들 가운데 리시페를 아내로 맞았다. 이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손들에게도 역시 예언의 능력이 있었다고 전한다.


멜레아그로스

<Meleagro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ꡐ멧돼지 사냥ꡑ으로 유명한 영웅. 아이토리아의 칼리돈 왕 오이네우스와 그의 아내 아르타이아의 아들. 그가 태어난 후, 운명의 여신이 예언하기를, 난로 안에서 타고 있는 저 장작불이 다 타 버리면 그의 목숨도 다한다고 하였다. 아르타이아는 곧 타다 남은 장작을 주워 불을 끈 다음 상자 안에 간직하였다. 그가 자란 후, 오이네우스가 들판을 주관하는 여신 아르테미스에게만은 제물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에 노한 여신이 커다란 멧돼지를 들에 풀어 놓아 해를 입혔다. 멧돼지는 멜레아그로스의 손에 죽었는데, 사냥에 함께 참가했던 스코이네우스의 딸 아탈란테를 사랑한 멜레아그로스는 멧돼지 가죽을 그녀에게 주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아르타이아의 형제들이 아탈란테로부터 가죽을 빼앗으려고 하자 성난 멜레아그로스는 그들을 죽여 버렸다. 동기들을 잃은 아르타이아는 화가 나서 상자 속에 간직했던, 타다 남은 장작을 꺼내어 불 속에 던졌고  멜레아그로스의 목숨은 그 자리에서 다하고 말았다. 나중에야 이를 후회한 어머니는 자살하고 그의 자매들도 비통한 나머지 죽고 말았는데, 이를 가엾게 여긴 여신 아르테미스가 그녀들을 색시닭(멜레아그로스)으로 태어나게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멤논

<Memn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티오피아의 왕. 새벽의 여신 에오스와 티토노스 사이에 난 아들로, 절세의 미남이다. 헥토르가 죽은 후 트로이 전쟁에 참가, 프리아모스를 도와 용감하게 싸우다가 아킬레우스의 손에 죽었다. 어머니인 에오스는 그의 시체를 에티오피아로 옮겼다. 어머니의 눈물은 아침이슬이 되었고 멤논의 부하들은 새가 되어 멤노니데스라고 불렸다. 후에 그는 제우스의 배려로 불사의 존재가 되었다. 멤논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서사시 《아이티오피스:Aithiopis》가 있으나 남아 있지 않다.  한편  멤논신화는 이집트에도 전래되어 테베 근처의 아멘호테프 3세 묘역에는 거대한 멤논석상이 조성되었다.



【모르스(Mors)】 [로마] 죽음의 신. 그리스의 타나토스와 같다.


【모이라(Moira)】 [그리스] 운명의 요정. 신은 아니지만 미지의 존재이며,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신들보다 더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모이라를 비웃으면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에게 끌려갔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운명의 여신. 그리스어(語)로 ꡐ배당(配當)ꡑ 또는 ꡐ수명(壽命)ꡑ이라는 뜻인데, 운명의 여신으로 의인화(擬人化)되었다. 보통 세 자매로 알려졌고, 복수형은 모이라이이다. 로마 신화의 파타 또는 파르카이에 해당한다. 주신(主神) 제우스와 테미스의 딸, 또는 밤의 여신 닉스의 딸로 알려졌다. 모든 인간의 운명을 주관한다고도 하고, 인간의 수명을 주관한다고도 하는데, 서사시인 헤시오도스에 의하면 세 자매들 중 클로토는 운명의 실을 뽑아내는 여신, 라케시스는 인간에게 운명을 배당하는 여신, 아트로포스는 운명의 실을 가위로 끊는 여신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녀들은 미술작품에서 각각 방추(紡錘)․지팡이․천평칭(天平秤) 등을 손에 든 젊은 처녀로 표현되고 있으나, 전설에서는 무섭게 생긴 노파에다가 절름발이로 전해지고 있으며, 그래서 운명의 걸음걸이는 무거운 것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모이레(Moirae)】 [그리스] 모이라 참조.


【몰리(Moly)】 [그리스] 헤르메스가 오디세우스를 키르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주었던 마법의 약초.


【몹소스(Mopsus)】 [그리스] 아르고호 승무원들의 진통제.


【무사이(Muse)】 [그리스, 로마] 음악의 요정. 제우스와 므네모시네의 딸들. 문화의 신. 영어로는 뮤즈(Muse).


뮤즈

<Muse>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학예(學藝)의 여신. 무사(Musa)의 영어 이름. 현재는 일반적으로 시나 음악의 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고대에는 널리 역사나 천문학까지도 포함하는 학예 전반의 신으로 간주되었다. 주신 제우스와 여신 므네모시네(기억) 사이에서 9명의 무사가 태어났다. 보통 복수인 무사이(Musai)로 알려져 있지만, 옛날에는 그 수가 일정하지 않았다. 시인 헤시오도스 이후로는 9명으로 생각되었고, 로마시대에는 각각 분담하는 분야가 일정하여 클레이오는 역사, 에우테르페는 서정시, 탈레이아는 희극, 멜포메네는 비극, 테르프시코라는 합창․가무, 에라토는 독창, 폴리힘니아는 찬가, 우라니아는 천문, 칼리오페는 서사시를 주관하였다. 신화 속에서는 아폴론과 마르시아스의 음악경연 때의 심판역을 맡았고, 또 음악가인 타미리스와 바다의 요정 세이레네스들은 그녀들과 노래솜씨를 겨루다 패하여 타미리스는 소경이 되고, 세이레네스들은 바다에 투신했다고 하나 이들 고유의 신화는 매우 드물다. 특히 보이오티아 지방의 헬리콘산(山)과 트라키아 지방의 피에리아에서 각별한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영어에서 음악을 의미하는 ꡐmusicꡑ이나 미술관을 의미하는 ꡐmuseumꡑ 등은 이 여신들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물키베르(Mulciber)】 [그리스] 헤파이스토스 참조.


【므네모시네(Mnemosyne)】 [그리스] 기억의 신. 거인족. 뜻은 "기억".  그리스 신화에서 기억을 의인화한 여신. 티탄족의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딸, 또는 대양(大洋)의 신 오케아노스와 테티스의 딸로 피에리아의 땅에서 제우스와 아홉 밤을 같이 지내고 1년 후 9명의 무사이(Musai) 즉 뮤즈를 낳았다.


◀참 조▶

☞뮤즈



【미궁(Labyrinth)】 [그리스] 크레타섬에 다이달로스가 만든 미로.


【미네르바(Minerva)】 [그리스] 아테나 참조. 아라크네의 도전을 받음.


【미노스(Minos)】 [그리스, 로마] 아테네를 침공.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를 투옥. 메가라 포위 공격. 에우로파의 아들.


【미노스(Minos)】 [그리스] 명계의 세 재판관중 하나. 크레타(Creta)의 왕.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크레타의 왕. 제우스와 에우로페의 아들. 아내 파시파에와의 사이에서 아리아도네, 파이드라, 안드로게오스를 얻었다. 동생인 라다만티스와 함께 뛰어난 입법자로 이름을 떨쳤고, 죽어서는 저승에서 사자(死者)의 심판관이 되었다. 포세이돈으로부터 제물용으로 선사받은 아름다운 황소를 신에게 바치기 싫어 죽이지 않은 탓으로 벌을 받아, 사랑하는 아내 파시파에가 황소를 사랑한 끝에 우두인신(牛頭人身)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낳았다. 그래서 미노스는 다이달로스에게 명하여 라비린토스(labyrinthos:迷宮)를 짓게 하고, 미노타우로스를 그곳에 가두었다. 나중에, 도망간 다이달로스를 쫓아 시칠리아에 갔다가 그 곳의 왕인 코칼로스에게 죽었다.


◀참 조▶

☞미노타우로스



【미노아문명(Minoan)】 로마인들은 이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기원전 2,000년에서 1,000년까지의 크레타(Crete)와 그리스 문명을 묘사하는 현대 용어. 로마인들도 이 문명을 알았지만 그들이 어떻게 불렀는지는 알 수 없다.


【미노타우로스(Minotaur)】 [그리스] 켄타우로스가 하나의 종족으로 등장하는 것과는 달리 미노타우로스는 진짜 괴물로 등장한다. 미노타우로스는 크레타섬에 살고 있으며, 멋진 뿔이 난 소의 머리에 용자처럼 탄탄한 체격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성질이 매우 난폭하고 힘도 세기 때문에 다이달로스(Daidalos)가 만든 복잡한 미궁(Labyrinth)에 갇히고 말았다. 크레타의 왕 미노스는 매년 7명의 젊은 남녀를 미노타우로스의 제물로 바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미노타우로스도 마지막에는 영웅 테세우스(Theseus)에게 죽고 만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우두인신(牛頭人身)의 괴물. ꡐ미노스의 소ꡑ라는 뜻. 크레타의 왕 미노스는 해신(海神) 포세이돈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아 그의 노여움을 산 결과, 왕비 파시파에는 해신이 보내온 황소를 사랑한 끝에 머리는 황소이고 몸뚱이는 사람의 모양을 한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낳았다. 그러자 미노스 왕은 건축과 공예의 명장 다이달로스에게 명하여 라비린토스(labyrinthos:迷宮)를 짓게 한 후, 미노타우로스를 그곳에 가두었다. 그리고 해마다 아테네에서 각각 7명의 소년 소녀를 뽑아 이 괴물에게 산 제물로 바쳤었는데, 세 번째 제물이 바쳐질 때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의 손에 괴물은 죽고 말았다. 이 같은 괴물을 생각해낸 배경에는 선사시대(先史時代)에 크레타 섬에서는 황소를 숭배하는 관습이 있었고, 또 황소의 모습으로 분장한 왕이 주재하는 제식(祭式)이 행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미니아이(Minyae)】 [그리스, 로마] 테살리아의 왕, 미니아스의 후손.


【미다스(Midas)】 [그리스] 그리스 도시국가의 왕.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부자(富者)로 이름난 프리기아의 왕. 헤로도투스에 따르면 BC 700년경 델포이 신전에 제물을 바쳤으며, 또 아이오리스의 왕 큐메의 딸과 결혼하였다고도 한다. 미다스 왕의 이름은 산가리우스 지방에 있는 바위기념비에 새겨져 있으며, 또 아시리아에서는 ꡐ미타ꡑ로 기록되어 있으나 인명보다는 왕조의 이름으로 추측되는데, 최후의 미다스 왕은 외적의 침입을 받고 BC 700년 직후에 자살하였다고 한다. 그에 관한 주된 전설을 보면 다음과 같다. ① 디오니소스를 길러 주었다는 시레노스가 길을 잃었을 때 그를 후대하였다고 하여 주신(酒神) 디오니소스가 무슨 소망이든 한 가지만 말하면 들어주겠다고 하자, 미다스는 자기의 손이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하게 해 달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그 소망이 이루어져 마침내 먹는 음식까지도 황금으로 변하는 바람에 난처해진 미다스는 신에게 자기의 소청을 철회해 달라고 요청, 신의 명령에 따라 파크톨로스강에서 목욕을 하고 원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 일이 있은 뒤부터 파크톨로스강에서는 사금(砂金)이 나오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② 아폴론과 판 또는 마르시아스가 음악 솜씨를 겨룰 때 심판을 보던 미다스는 아폴론의 패배를 선언했다. 이에 아폴론의 노여움을 사, 그 벌로 미다스의 귀가 당나귀 귀로 변하였다. 미다스는 이 사실이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두건(頭巾)으로 귀를 싸매고 다녔으나, 이발사만은 이 귀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발사는 죽을 힘을 다해서 침묵을 지키려고 애썼으나, 마침내 견디지 못하여 땅에 구멍을 파고 거기에 대고 비밀을 말한 다음 흙으로 구멍을 메웠다. 그런데 그 구멍에서 갈대가 자라났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갈대가 흔들리며 ꡒ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ꡓ라는 소리를 내는 바람에 모든 사람이 미다스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미라(Myrrha)】 [그리스] 아도니스의 어머니.


미르틸로스

<Myrtilo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피사의 왕인 오이노마오스의 마부(馬夫). 탄탈로스의 아들 펠로프스가 왕의 딸 히포다메이아에게 구혼하자 왕이 전차(戰車)경주 조건을 내걸어 전차경주를 할 때, 펠로프스에게 매수되어 오이노마오스가 탄 전차의 제동장치를 납(蠟)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승리한 펠로프스는 약속한 보수를 지불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를 미르톤해(海)에 던져 죽였다.



【밀라니온(Milanion)】 [그리스, 로마] 멜라니온 참조.


【바다(Ocean)】 [그리스] 땅을 둘러싼 거대한 강의 신. 테티스와의 사이에서 이아페투스를 낳았다. 에우리노메의 아버지.


【바실리스크(Basilisk)】 [그리스] 기본적인 특징은 대형 도마뱀으로 다리가 8개나 있으며 머리에는 왕의 표시인 계관(볏)이 달려 있다는 것이다. 가장 큰 특징은 노려보는 상대를 돌로 변하게 만드는 능력일 것이다(메듀사의 능력과 같음).


【바우키스(Baucis)】 [그리스] 대홍수에 살아남은 프리기아(Prigia) 사람.


【바칸테스(Bacchantes)】 [그리스, 로마] 마에나드스(Maenads) 참조.


【바쿠스(Bacchus)】 [그리스, 로마] 디오니소스(Dionysus) 참조.


【바투스(Battus)】 [그리스, 로마] 헤르메스(Hermes)가 자신의 가축을 훔쳤다는 말을 아폴로에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깨는 바람에 돌로 변한 농부.


【베누스(Venus)】 [로마] 아프로디테 참조.


베스

<Bes>


고대 이집트의 신. 비수라고도 한다. 수단(소말릴란드, 혹은 아랍)이 그 기원(起源)이라고 하는데, 그에 대한 신앙은 제18왕조 시대에는 시리아에까지 퍼져 있었다. ꡐ쾌활한 베스ꡑ라고도 불리며, 북을 치거나 하프를 타면서 신들을 위로하는 모습이 많아, 그리스 신화의 사티로스의 원형이 아닌가 보고 있다. 처음에는 여성이었으나 나중에는 남성으로 숭배되었고, 어린이나 출산의 신, 또는 악령이나 유해동물로부터의 수호신으로서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그 도상은 흔히 거울같은 화장도구에 남아 있다. 델 엘 바하리의 동굴신전의 조각에 여왕의 출산을 돕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이 이 신의 가장 오래된 도상으로, 단신(短身)에 머리가 크고 혀를 빼 문 괴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벨레로폰

<Bellerophon>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코린토스의 왕자․영웅. 벨레로폰테스라고도 한다. 죄를 짓고 아르고스의 왕에게로 피신해 있던 미남 벨레로폰이, 자신에게 반한 아르고스의 왕비 안테이아의 사랑을 거절하자 왕비는 오히려 벨레로폰이 자기를 농락하려 하였다고 남편에게 거짓으로 고하였다. 노한 왕은 자기 식객(食客)을 직접 죽이는 것을 꺼려하여 한 장의 편지와 함께 벨레로폰을 리키아의 왕 이오바테스에게 보냈다. 그 편지에는 이 편지를 지참한 자를 죽이라고 써 있었으나, 이오바테스는 벨레로폰에게 괴물 키마이라를 물리치라는 어려운 문제를 주었다. 벨레로폰은 날개 달린 천마(天馬) 페가소스를 입수하여, 하늘을 날아 괴물을 죽이고, 이어 이오바테스의 명령대로 솔리모인(人)과 아마존족(族)을 정복한 대가로 리키아의 왕녀 필로노에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나중에 그는 페가소스를 타고 천계(天界)로 오르려고 하다가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 번개에 맞아 죽었다고도 하고, 말에서 떨어져 불구가 되었다고도 전해진다.


【베스타(Vesta)】 [로마] 헤스티아 참조.


【베스페르(Vesper)】 [그리스] 헤스페르의 다른 이름.


【벨레로폰(Bellerophon)】 [그리스] 뜻은 "벨레로스(Belelos)를 죽인 자". 프로메테우스(Proetheus)의 오해를 받은 사람. 페가수스(Pegasus)을 타고 키메라를 죽인 영웅. 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고 올림포스에 가려다 페가수스에서 떨어져 불구로 여생을 지냈다.


【벨로나(Bellona)】 [로마] 로마의 전쟁의 여신.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싸움의 여신.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싸움의 여신 에니오, 또는 군신(軍神) 마르스의 아내 네리오와 동일시된다. 로마의 북서쪽 성 밖에 그 신전이 있었다.

에뇨(Enyo) 참조.


【벨루스(Belus)】 [그리스, 로마] 다나이드스(Danaids)의 할아버지.


보레아스

<Borea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 거친 북풍을 의인화(擬人化)하였다. 아테네의 왕 에렉테우스의 딸 오레이티아를 약탈하여 그녀와의 사이에 칼라이스와 제테스를 낳았다. 흔히 턱수염을 기르고 날개가 달린 모습으로 묘사된다. 로베스가 그린 보레아스는 파우사니아스의 표현에 따라 뱀꼬리를 달고 있다.


【보외테스(Bootes)】 [그리스, 로마] 북두칠성(Dipper) 뒤에 있는 별. 아르크투루스(Arcturus)와 마부(Wagoner)라고도 부름.


【볼룹타스(Voluptas)】 [로마] 쾌락의 여신.


【부(Wealth)】 [그리스] 재산의 신. 하데스 참조.


부시리스

<Busiri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집트 왕. 포세이돈과 리시아나사 사이에 난 아들. 해마다 프라시오스의 예언에 따라 이집트를 찾아오는 외국인을 제우스의 제단에 산 제물로 바쳐왔으나, 나중에 이곳을 지나가던 헤라클레스에게 살해되었다.



【불칸:불카누스(Vulcan)】 [로마] 헤파이스토스 참조. 로마 신화에 나오는 불의 신. 그리스 신화의 헤파이스토스와 동일시된다.


【불화의 여신(Discord)】 [그리스, 로마] 에리스 참조.


【브로미우스(Bromius)】 [그리스, 로마] 디오니소스(Dionysus)의 이름.


【브론테스(Brontes)】 [그리스, 로마] 키클롭스(Cyclops)의 일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우레(천둥)의 신.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대지의 여신 가이아 사이에 난 아들. 번개의 신 스테로페스, 백열(白熱)의 빛 아르게스와 함께 3형제를 이룬다. 외눈 거인족인 키클로페스 중 하나로, 제우스를 도와 싸운 후, 지하세계로 내려가 신들의 싸움에 필요한 무기를 만드는 공장(工匠)이 되었다.


◀참 조▶

☞키클로페스

아르게스(Arges) 참조.


【브리아레우스(Briareu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백수(百手)거인 헤카톤케이레스의 한 사람. 올림포스의 신들이 티탄 신족들과 싸울 때 그는 형제들과 함께 제우스의 편에 들어 티탄신들을 격파하여 지하에 가두고 그 문지기 노릇을 하였다고 한다. 또 일설에는 포세이돈이 그의 공로를 포상하여 딸을 주어 문지기 노릇을 면하게 해주었다고도 한다.

[그리스, 로마] 헤카톤키레스(Hecatonchires) 참조.



비블리스

<Bybli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성. 쌍둥이 형제인 카우노스를 사랑하였는데, 이 사실을 안 카우노스가 도망을 가버려 그녀는 카리아에 카우노스시(市)를 세웠다. 그런 후에도 그녀는 그를 사모하면서 헤매다가 바위에서 몸을 던져 죽었다. 이를 불쌍히 여긴 님프들이 그녀를 그의 눈물처럼 마르지 않는 샘으로 바꾸어 놓고 그 샘의 이름을 비블리스라고 하였다.



【빅토리아(Victoria)】 [로마] 승리의 여신. 그리스의 니케.  원래 아테네 신의 하녀였는데, 로마인들에 의해 독립신으로서 숭배되었다. 도상(圖像)은 등에 날개가 돋고 종려나뭇가지를 손에 든, 월계관을 쓴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리스 신화의 니케에 해당한다.


◀참 조▶

☞니케


사라뉴

<Saranyu>


힌두교 《베다》에 나오는 여신(女神). 생산․기술의 신에서 전 우주의 창조신까지 오른 토바스트리의 딸로서 태양신의 하나인 비바스바트의 아내. 암말로 변신하여 남편 곁을 떠났는데, 남편이 수말이 되어 그녀를 뒤쫓아가 정액을 연못 속에 흘렸다. 암말이 된 그녀가 그 정액냄새를 맡고 접근하자 잉태되어 나사라티아와 다스테, 즉 아슈빈 쌍신(雙神)을 낳았다고 한다. 이 쌍신은 밤과 낮, 밝음과 어둠을 상징하는 신으로 생각되고 있다. 사라뉴는 새벽의 여명, 또는 해질녘의 땅거미의 신격화(神格化)로 간주되므로 태양신인 비바스바트와 관련시킨 것이 흥미로운 점이다. 또 야마(염라대왕)와 야미(Yami)의 쌍둥이아들을 낳아 인간 최초의 사망자, 또는 죽은 자의 왕인 야마의 부모가 되었다는 점에서, 비바스바트와 사라뉴의 두 신은 중요한 뜻을 지닌다. 인도 유럽의 비교언어학, 비교신화학에서는 사라뉴가 그리스 신화의 에리니스와 비교되고 있다.


【사르페돈(Sarpedon)】 [그리스, 로마] ① 제우스와 에우로파의 아들. 리키아인들의 조상. ② 벨레로폰의 손자. 트로이전쟁에서 트로이측에 참가.   트로이 전쟁 때 트로이 측의 용장(勇將). 제우스와 라오다메이아의 아들이다. 글라우코스와 함께 리키아군(軍)을 이끌고 트로이전쟁에 참가하여 용감히 싸웠으나 그리스군의 파트로클로스의 손에 죽었다. 아폴론은 자식의 죽음을 슬퍼하는 제우스의 명령에 따라, 쌍둥이 신 히프노스(잠의 신)와 타나토스(죽음의 신)를 붙여, 사르페돈의 시체를 그의 고향인 리키아로 옮겨 매장하였다. 다른 전설에 따르면 그는 제우스와 에우로페의 아들이고 미노스와는 형제인데, 미노스에게 쫓겨 크레타로 갔다가 다시 리키아로 가서 그 곳의 왕이 되었다고도 한다.


사바지오스

<Sabazios>


고대 소아시아의 프리기아 및 트라키아계 지방에서 숭배하던 풍요의 신. 그리스 신화에서는 가끔 디오니소스, 또는 제우스와 같은 신으로도 취급되고 있다. 사바지오스에 대한 숭배는 키벨레와 아티스에 대한 숭배와 결부되어 BC 5세기경 그리스에 도입되었는데, 자기도취적인 광란을 수반하는 것이 특징이다. 뱀․숫양․독수리․태양 등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특히 ꡐ사바지오스의 밀의(密儀)ꡑ에서는 금빛 뱀을 품에 넣고 가랑이 밑으로 빠져나가게 하는 일이 중요한 행사이기도 하였다. 한편 BC 2세기 말에는 소(小)아시아의 유대인들이 사바지오스를 제우스와 동일한 신으로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만군(萬軍)의 주신(主神, The Lord of Sabaoth)과 동일시하기도 하였다.


【사이렌(Sirene)】 [그리스] 아름다운 가성(歌聲)으로 선원들을 유혹하여 배를 난파시키는 바다의 님프이다. 그 모습에 대해서는 여성답다는 것 외에 하반신이 해조(海鳥), 물고기라는 것 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모두 확실치는 않다. 확실한 것은 마법의 참(Charm)처럼 그 노래를 들은 사람을 사로잡아 버리는 특수한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사이클로프스(Cyclops)】 [그리스] 큐클로프스라고도 불리는 외눈박이 거인이다. 원래 사이클로프스는 '둥근 눈'이라는 뜻인데, 이것은 사이클로프스의 얼굴 한 가운데에 눈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의 오딧세우스의 모험에 등장하는 괴물로, 오딧세우스 일행이 트로이 전쟁 후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가는 길에 들렸던 섬(현재의 시실리섬)에 살고 있다고 전해진다. 식량과 물을 보급하기 위해 오딧세우스가 상륙했을 때 그들은 동굴 하나를 발견했다. 안에 들어가 보니 양이 사육되고 있었으며 버터 등이 놓여 있었다. 나중에 사이클로프스가 돌아와 오딧세우스 일행을 그곳에 가두어 버렸다. 오딧세우스는 뭔가 이야기를 건네려고 했지만 그 사이에 동료들은 하나 둘씩 잡아먹혔다. 이에 오딧세우스는 계략을 짜서, 사이클로프스에게 술을 먹여 잠든 사이에 눈에 나무말뚝을 박았다. 오딧세우스는 일단 탈출에 성공했지만 사이클로프스는 죽지 않고 배로 도망친 오딧세우스 일행을 향해 거대한 바위를 던졌다고 한다.


【사투르누스(Saturn)】 [로마] 그리스의 크로노스와 동일. 유피테르에게 쫓겨 이탈리아 반도로 와서 황금시대를 열었다고 한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농경신(農耕神). 그 이름은 ꡐ씨를 뿌리는 자ꡑ라는 뜻이다. 로마인은 그를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와 같은 신으로 보는데, 크로노스가 제우스에게 쫓겨 이탈리아로 도망가 농업기술을 보급함으로써 황금시대를 이룩하였다고 한다. 사투르누스의 축제를 사투르날리아(Saturnalia)라고 하여, 12월 17일에서 19일까지 열었으나 나중에는 23일까지 연장하여 7일간이나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씨를 뿌리고 그 씨앗의 발아성장과 그 해의 풍작을 비는 제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고대 문헌상에 나타난 사투르날리아는 로마시(市) 전체가 축제 기분에 젖어 떠들썩한 날로, 이 날은 모든 공공업무도 쉬고 전체 시민이 환락으로 밤과 낮을 보냈다고 하는데, 이것이 크리스마스 축제의 원형이 아닌가 보기도 한다. 또한 그의 이름은 행성의 이름(Saturn:토성)과 요일의 이름(Saturday:토요일)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사튀로스:사티로스(Satyr)】 [그리스, 로마] 농경의 신. 몸과 팔과 얼굴이 인간이며 하반신은 염소인 괴물. 상반신이 인간이며 하반신은 발이 네 개 달린 동물은 보통 켄타우로스이지만, 사튀로스는 발이 2개라는 점이 다르다. 또 머리에는 2개의 뿔과 뾰족한 귀가 달렸으며 메부리코 아저씨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의 사튀로스는 술의 신 바카스를 수행하는 반신반인(半身半人)이며, 여자와 술을 좋아한다고 한다. 음악도 좋아하여 항상 참(CHARM)의 마법과 같이 움직이는 악기를 가지고 다닌다. 로마에서는 파우누스(Faunus)나 팬(Pan) 등으로 불리기 때문이다. 사튀로스는너무나 여자를 좋아하여 현재는 'Satyric=호색(好色)'이라는 형용사가 되었다.


살모네우스

<Salmoneu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살모네의 왕. 바람의 신(神) 아이올로스와 에나레테 사이에 난 아들. 일설에는 아이올로스와 라오디케, 또는 이피스와의 사이에 태어났다고도 한다. 테사리아에서 엘리스로 옮겨가 그곳에 살모네시(市)를 세우고 왕이 되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그는 경신자(敬神者)로 나오나, 그 후 전하는 바에 따르면 불경(不敬)한 사람으로 되어 있고, 그 불경 때문에 제우스에 의해 망하였다. 즉, 그는 제우스로 분장, 제우스의 뇌성(雷聲)의 흉내를 내고 청동(靑銅)의 길 위를 마차로 달렸으며, 또한 번갯불을 흉내내어 횃불을 하늘에 던졌다. 그래서 그는 제우스의 번개에 맞아 죽고, 따라서 그의 도시와 주민도 함께 멸망하였다고 전한다.



【살리이(Salii)】 [그리스, 로마] 마르스 사제. 누마지역의 하늘에서 떨어진 방패를 지킨다.


【삼지창(trident)】 [그리스] 포세이돈의 무기. 삼지창은 어떠한 것도 파괴하거나 흔들 수 있다고 한다.


【세멜레(Semele)】 [그리스, 로마] 카드무스와 하르모니아의 딸. 티오네라고도 한다. 테베의 왕 카드모스와 그의 아내 하르모니아의 딸로, 디오니소스의 어머니. 제우스의 사랑을 받아 그의 아이를 배자, 제우스의 아내 헤라가 질투하여 세멜레를 유혹, 제우스가 헤라에게 구혼했을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자기에게 와달라고 요구하라고 부탁하였다. 세멜레의 요구를 무엇이든 다 들어주기로 약속한 제우스가 천둥소리와 번갯불에 싸여 나타나자 그녀는 그 자리에서 타죽고 말았다. 제우스는 6개월 된 태아를 꺼내어 자기의 넓적다리에 넣고 꿰맸다. 이렇게 하여 달이 차서 낳은 아이가 훗날 주신(酒神)이 된 디오니소스이다. 디오니소스는 원래 트라키아의 신이고, 따라서 세멜레도 틀림없이 트라키아의 땅의 여신이다. 그래서 제우스 → 세멜레 → 디오니소스의 신화는 이 트라키아의 신앙에 바탕을 둔 이야기일 것이다. 옛 사람들도 세멜레가 땅의 여신 ꡐ게ꡑ의 별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근대의 학문에서는 세멜레가 확실히 트라키아어(語) 제멜로(zemelo:땅)의 그리스형(形)으로 보고 있다. 또한 슬라브어(語) 젬리아(zemlya:땅)와 같은 어원이다.


세트

<Seth/Set>


고대 이집트의 남신(男神). 하늘의 여신 누트와 땅의 남신 게브(세브)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4신 중의 하나이다. 오시리스와 형제관계이며 누이 네프티스를 아내로 삼았다. 오시리스의 신화에 따르면 왕위를 빼앗기 위해 형인 오시리스를 살해하여 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띄워 버린다. 그런 후에 이집트를 억압하여 다스리다가 오시리스의 아들인 호루스에게 살해된다. 히크소스 시대에는 히크소스의 주신인 수테크와 동일시되었고, 그리스 신화에서는 여러 개의 머리를 가진 악마인 티폰과 동일시되는 등,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세트는 박해당하여 일종의 악마처럼 간주되었다. 네모진 귀와 길고 꼬부라진 코와 끝이 갈라진 꼬리를 가진 동물로 표현되거나, 또는 어깨 위에 네 발 짐승의 머리를 올려놓은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셀레네

<Selene>


그리스 신화의 월신(月神). 라틴어로는 루나(Luna)라고 한다. 셀레네란, 달을 뜻한다. 사냥꾼 또는 사수(射手)로서 이마에 금(金)으로 된 초승달 모양의 뿔을 달고 있다. 시인이나 화가에 의해 미화(美化)된 모습으로 표현되지만, 종교적 신앙이라든지 행사에서 파생(派生)된 이야기는 없다. 다만 앤디미온을 사랑한 이야기는 시적(詩的)인 공상만은 아닌 듯, 헤시오도스는 이미 이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아마도 이 이야기는 소아시아가 그 기원인 것 같다. 원래 월신숭배는 동방에서 그리스로 들어온 것인데, 그 이후에도 그리스인의 참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민간신앙에서는 달이 동식물의 번식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마술이라든지 모든 종류의 미신에 자주 등장하면서 헤카테나 아르테미스와 동일시되었다.


【솔(Sol)】 [로마] 헬리오스의 로마이름.


【수아델라(Suadela)】 [그리스, 로마] 페이토 참조.


【스민티안(Sminthian)】 [그리스] 아폴로에게 바쳐진 이름. 뜻은 "쥐의 신"


【스케리아(Scheria)】 [그리스, 로마] 파이아키아인들의 나라.


스키론

<skiron>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 스케이론이라고도 한다. 메가라해안의 바위산에 살면서 통행인에게 자기의 발을 씻기게 하였는데, 그때마다 통행인을 발로 차서 바닷속에 떨어뜨려 바다거북의 밥이 되게 하였다. 나중에는 자신도 테세우스에 의해 바닷속에 내던져졌다.


【스키로스(Scyros)】 [그리스, 로마] 리코메데스가 다르시던 섬나라. 테세우스가 죽었고 아킬레스가 여인으로 변장했던 곳.


【스킬라(Scylla)】 [그리스] 끔찍한 곤경의 반. 나머지 반은 카리브디스(Charybdis)였다. (카리브디스 참조) 그리스신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패턴, 즉 아름다운 여자가 신의 노여움을 사 괴물이 된 경우이다. 바다의 신 중의 하나인 그라코스는 스킬라라는 아름다운 여자(님프라는 설도 있다)와 사랑을 했다. 크라코스는 스킬라와의 사랑의 결실을 맺고 싶어 마법사인 여신 키르케(Circe)에게 상담을 하러 갔다. 그런데 오히려 키르케가 그라모스에게 반해버린 것이다. 그라코스의 마음이 스킬라에게 가 있는 것에 노한 키르케는 마법을 사용하여 스킬라의 몸을 괴물로 변하게 만들었다. 비탄에 빠진 스킬라는 바다에 몸을 던지고, 사후에 신이 그 모습을 바위로 변하게 했다는 설과, 무서운 모습처럼 마음도 추해져서 그대로 바다에 살면서 인간을 공격했다는 설이 있다. 스킬라는 '오딧세우스와 아이네이어스의 모험'에서도 괴물로 등장한다. 이 스킬라는 12개의 다리와 6개의 머리를 가졌으며 입에는 이빨이 3열로 늘어서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해역에 배가 접근하면 긴 목을 늘려서 배 속에서 사람을 한 사람씩 물어 간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괴물.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서는, 카리브디스와 함께 오디세우스의 항로를 방해한 바다의 괴물이다. 다리가 열 둘이며 치열(齒列)이 각각 세 줄이며 머리가 여섯 개인 추악하기 이를데없는 모습이다. 바다의 큰 동물을 비롯하여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데, 오디세우스의 용맹한 부하 6명도 이 괴물의 제물이 되었다. 오비드의 《변신(變身)이야기》에 의하면 스킬라는 원래 아름다운 님프로, 그라우코스가 그녀를 사랑하였지만 그녀는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라우코스는 키르케에게 스킬라의 마음을 자기 쪽으로 돌리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라우코스를 은근히 좋아하던 키르케는 질투심이 생겨, 스킬라가 목욕하는 못에 독초를 넣고 마술을 걸어 스킬라는 다리가 없어지고 배 둘레에 개의 머리 세 개가 나온 흉한 모습으로 변했다고 한다. 고대는 스킬라의 동굴이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사이의 메시나 해협에 있다고 믿었는데, 이는 그 곳이 험난한 뱃길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한편, 《오디세이》에서는 그녀가 여신 크라타이어스의 딸로 되어 있으나, 그녀의 부모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어 아버지가 포르바스 또는 해신(海神) 포르키스이고, 어머니는 헤카테 혹은 거대한 괴물 티폰과 놀아난 괴녀(怪女) 에키드나라고도 한다. 또한 그녀는 나중에 헤라클레스의 손에 죽었는데, 아버지인 포르키스의 힘으로 되살아났다고도 전해진다.


스테넬로스

<Sthenelo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카파에우스의 아들. 아르고스의 아드라스토스 왕을 따라 테베 원정에 나섰던 7명의 장군의 아들들인 에피고노이의 한 사람으로 25척의 선대(船隊)를 이끌고 트로이전쟁에 참가, 친구인 디오메데스와 함께 그리스군의 용장으로서 활약하였다.


【스테노(Stheno)】 [그리스] 고르곤의 하나.


【스테로페스(Steropes)】 [그리스] 키클롭스. 아르게스 참조.


【스트로피오스(Strophius)】 [그리스] 오레스테스가 자란 포키스의 왕.


【스틱스(Styx)】 [그리스] 뜻은 "혐오스럽다". 명계의 강. 그리스 신화에서 저승을 일곱 바퀴 돌아 흐르는 강, 또는 강의 여신. 대양(大洋)신 오케아노스와 테티스의 딸로, 티탄 신족(神族)의 팔라스와의 사이에 젤로스(경쟁), 니케(승리), 크라토스(위력), 비아(폭력)를 낳았다. 또 제우스와의 사이에 저승의 여왕 페르포에스를 낳았고, 페이라스와의 사이에서는 괴물 에키드나를 낳았다. 올림포스의 신들이 티탄신족과 싸움을 벌인 때, 그녀는 다른 신들에 앞서 자식들과 함께 제우스편에 붙어 티탄신족과 싸웠다. 그 대가로 그녀의 위세가 등등해져 죽은 자는 모두 스틱스를 건너야만 저승에 이를 수 있었고, 신들에 대한 권위도 대단하였다. 즉 신들의 모든 맹세는 스틱스를 두고 이루어졌으며, 이 맹세를 지키지 않는 신은 1년 동안 식음(食飮)은 물론, 숨도 못쉬게 하고 9년 동안 다른 신들과의 교제가 금지되었다. 실제로 아르카디아 지방에는 스틱스강(江)이 있는데, 그 강물은 독성이 강하여 모든 금속이나 돌을 부식(腐蝕)시키고, 또 사람이 이 물을 마시면 죽는다고 생각하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이 강물을 마시고 중독사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스핑크스

<sphinx>


고대 오리엔트 신화에 나오는 괴물. 그 기원은 이집트이며, 사람의 머리와 사자의 동체를 가지고 있다. 왕자(王者)의 권력을 상징하는 모습으로 표현된 것인데, 이집트와 아시리아의 신전이나 왕궁․분묘 등에서 그 훌륭한 조각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이집트의 기제에 있는 제4왕조(BC 2650년경) 카프레왕(王)의 피라미드에 딸린 스핑크스가 가장 크고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자연암석을 이용하여 조각한 것인데, 군데군데 보수(補修)한 흔적이 있다. 전체의 길이 약 70 m, 높이 약 20 m, 얼굴 너비 약 4 m나 되는 거상(巨像)으로, 그 얼굴은 상당히 파손되어 있으나 카프레왕의 생전의 얼굴이라고 한다. 앞으로 뻗은 앞다리 사이에는 투트메스 4세의 석비(石碑)가 있다. 이 스핑크스는 ꡐ지평선상의 매ꡑ를 나타내는, 태양신의 상징이라고 한다. 스핑크스는 이집트 외에 시리아․페니키아․바빌로니아․페르시아․그리스 등지에도 일찍부터 알려져 있다. 특히 그리스 신화에서는 에키도나와 오로토로스의 아들, 또는 라이오스의 딸이라는 등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그 중에서도 테베의 암산(岩山) 부근에 살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ꡒ아침에는 네 다리로, 낮에는 두 다리로, 밤에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이 무엇이냐ꡓ라는, 이른바 ꡐ스핑크스의 수수께끼ꡑ를 내어 그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전설은 유명하다. 그러나 오이디푸스가 ꡒ그것은 사람이다(사람은 어렸을 때 네 다리로 기고, 자라서는 두 발로 걷고, 늙어서는 지팡이를 짚어 세 다리로 걷기 때문에)ꡓ라고 대답하자, 스핑크스는 물속에 몸을 던져 죽었다고 한다. 한편, 그리스에서는 BC 1600년경의 미케네의 수혈묘(竪穴墓)나 크레타섬에서 발견된 인영(印影)에 처음으로 나타나는데, 여기서는 날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스핑크스는 원래 동물의 왕 사자에 대한 주물(呪物)숭배(페티시즘)에서 비롯된 것으로,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이나 성격이 달라진다. 즉, 매나 숫양의 머리를 한 것, 서 있거나 앞다리만 가진 것, 또는 왕으로서의 권력을 상징하는 것, 신전(神殿)의 장식에 쓰인 것 등이 있다. 카르나크의 대신전이나 사카라의 세라페이온에는 길 양쪽에 서로 마주보면서 수십 개의 스핑크스가 나란히 서서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



시니스

<Sinis>


그리스 신화에서 코린토스 지협(地峽)에 있었다고 하는 산적(山賊).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소나무를 땅바닥에까지 휘게 하여 사람과 함께 공중으로 퉁겨버리거나, 또는 휜 두 소나무 사이에 나그네를 묶은 다음 소나무를 놓음으로써 두 조각으로 찢어 죽였다고 한다. 훗날 시니스는 테세우스에 의해 같은 방법으로 죽었으나, 그의 딸 페리그네는 테세우스의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시리우스(Sirius)】 [그리스] 오리온을 쫓는 큰개자리.


【시시포스(Sisyphus)】 [그리스] 코린트의 왕.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코린토스의 왕. 전설에 의하면 그는 인간 가운데 가장 교활한 사나이인데, 그와 마찬가지로 교활하기로 소문난 아우톨리코스를 속인 이야기는 유명하다. 아우톨리코스는 소를 훔쳐서 소의 빛깔과 모양을 자유자재로 바꾸었기 때문에 여간해서 발견되지 않았는데, 시시포스가 자기 소의 발굽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두었기 때문에 도둑맞은 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후 아우톨리코스가 시시포스의 교지(狡智)에 감탄하여 두 사람 사이가 화목해진 틈을 타서, 시시포스는 아우톨리코스의 딸 안티크레이아를 유혹하여 그녀를 범하여 낳은 아들이 영웅 오디세우스라고 한다. 또한 제우스가 사신(死神)을 그에게 보냈을 때 사신을 속여 꼼짝못하게 묶어 놓아 군신(軍神) 아레스가 사신을 구출할 때까지 아무도 죽지 않았다고 한다. 이같이 못된 짓을 많이 한 탓으로 그 형벌로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올려가야만 했는데, 산꼭대기에 이르면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지곤 하여, 이러한 고역을 영원히 되풀이하고 있다고 한다.


【시카이오스(Sichaeus)】 [그리스] 디도의 남편


실레노스

<Sileno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산야(山野)의 요정(妖精). 세일레노스라고도 한다. 수염이 더부룩한 노인인데, 때로는 말(馬)의 다리와 꼬리를 가진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하며, 대개는 술에 취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지혜가 많은 요정으로 그를 붙잡기만 하면 그가 가진 지혜를 빼낼 수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프리기아의 왕(王) 미다스가 그를 술에 취하게 한 다음 체포했을 때 ꡒ인간의 가장 큰 행복은 애당초 태어나지 않는 것이며, 일단 태어났으면 되도록 빨리 죽는 것이 상책이다ꡓ라고 왕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그는 주신(酒神) 디오니소스를 길렀고 그의 술친구였다고도 전해지며, 복수형(複數形)은 실레노이(Silenoi)이다. 술주정뱅이 신으로 알려진 사티로스와 가끔 혼동되기도 하는데,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그의 용모와 지혜가 많다는 점에서 실레노스와 비교되기도 한다.


【실레니(Sileni)】 [그리스] 반인반마의 괴물. 두 다리로 걸었으나 발에는 말굽이 있었다. 어떤 때는 말의 귀를 갖고 있는 때도 있으나 항상 말총을 달고 있었다. 신화는 없지만 그리스의 항아리에 자주 그려져 있다.

       

실바누스

<Silvanus>


로마 신화에 나오는 황무지와 숲의 신. 처음에는 불길한 숲의 신으로서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나 나중에는 토지의 경계(境界)․농가․가축떼의 신으로서 특히 농부들의 숭배를 받았다. 성대한 제사를 싫어하여 성수(聖樹) 밑에서 간소한 형식으로 제물이 바쳐졌다. 그리스 신화에서의 목신(牧神) 판이 로마 신화에서는 실바누스가 되었다고 하여, 로마 문학에서는 실레노스나 판과 동일시되고 있다. 또 로마 신화의 숲의 신 파우누스와도 성격적으로 닮았다. 한편 타르퀴니우스왕이 추방되었을 때, 에트루리아(Etruria)와 로마 군대가 싸웠는데, 어느 편이 이겼다고 판정을 내릴 수 없는 막상막하의 접전이었다. 그날 밤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 ꡒ로마군의 전사자가 한 사람 적기 때문에 로마군의 승리ꡓ라고 알리자 에트루리아 군대는 낙담패주하였다. 이때의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실바누스의 목소리였다고 한다.




아가메데스

<Agamede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 오르코메노스의 왕 에르기노스의 아들로서, 트로포니오스와는 배다른 형제인데, 형제 모두가 건축과 토목 기술에 뛰어났다. 이들은 알크메네의 초야(初夜)의 침방(寢房), 델포이의 신전(神殿), 만티네이아에서 테게아로 가는 길가에 있던 포세이돈의 신전, 보이오티아의 히리아왕 히리에우스의 보고(寶庫) 등을 지었다. 이 보고를 지을 때 이들은 돌 하나를 마음대로 빼내고 끼울 수 있도록 만들어, 그 후 보고 안에 자주 드나들면서 보물을 훔쳐냈다. 왕이 눈치를 채고 다이달로스의 권유에 따라 덫을 놓았는데, 그 사실을 모른 아가메데스가 덫에 걸려들었다. 그때 배다른 형제 트로포니오스는 아가메데스의 목을 잘라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도록 한 다음 도망쳤는데, 갑자기 땅이 갈라지면서 그마저도 땅속으로 삼켜져 버렸다고 전한다.



아가멤논

<Agamemnon>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트레우스의 아들로서, 아르고스 또는 미케네의 왕. 전설에 의하면 라케다이몬의 아미클라이시(市)의 왕이라고도 하는데 어쨌든 역사상 실재인물로 간주되고 있다. 따라서 메넬라오스와는 형제간인데, 스파르타의 왕녀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아내로 삼아 오레스테스 등 여러 자식을 두었다. 트로이 전쟁 때는 그리스군의 총지휘관으로서 출진하였는데, 여신 아르테미스의 노여움을 사 출항(出港)할 수 없게 되자 여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하여 자기의 딸 이피게니아를 산 제물로 바쳤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서는 그가 총지휘관이라고는 하지만 중심적 인물은 못 되고 아킬레우스보다 못한 인물로 다루어지고 있다. 트로이 전쟁에서 트로이의 왕녀 카산드라를 데리고 귀국하였으나, 그가 집을 비운 동안 밀통(密通)하고 있던 아내와 정부(情夫) 아이스기스토스에게 카산드라와 함께 죽임을 당하였다. 그러자 그의 아들 오레스테스가 어머니를 살해함으로써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는 이 이야기는 비극작품의 좋은 소재가 되어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 등 많은 비극작품을 낳게 하였다.


【아고라(agora)】 [그리스] 열주나 공공건물로 둘러싸인 공터. 이곳은 그리스나 헬레니즘적인 도시에서 공공회합장소 및 시민생활의 중심지였다. 로마에서는 포룸(forum)이라고 불렀다.


아그니

<Agni>


인도 신화에 나오는 불의 신. 아기니(阿耆尼)로 한역(漢譯)한다. 산스크리트의 ꡐ아기니ꡑ는 어원적으로 라틴어의 ignis(불)와 관계가 있다. 이란에서는 아타르라는 이름으로 숭배되었는데, 그 기원(起源)은 태고 때의 아궁이의 불에 대한 신앙으로까지 거슬러올라간다. 《리그베다》에서도 찬가(讚歌)의 5분의 1이 그에게 바쳐지는 노래이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제사를 지낼 때 제물을 불에다 바쳤기 때문에 아그니는 천상(天上)의 신들에게 제물을 운반하는 신이라고 여겨 신과 사람의 중개자 또는 신들의 안내자라고 믿었다. 또한 일찍부터 화신(火神)은 모든 것을 정화(淨化)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고 믿어, 예로부터 집집의 제단에는 제화(祭火)가 켜졌는데, 항상 오래되었으면서도 또한 새로운 존재로서 모든 집의 손님으로 모셔졌다. 신화(神火)와 성화(聖火) 신앙도 그 역사가 오래인데, 결혼식에서도 화신(火神)을 증인으로 삼았고, 화장법(火葬法)도 예로부터 있어 왔으며, 서사시에서는 불을 사용한 신명재판(神明裁判)도 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과 물은 우주를 구성하는 2대원소(元素)로 생각되어 흔히 소마[供酒]와 함께 다루어진다. 인체에서 소화작용(消化作用)을 주관하는 것도 불의 기능이라고 믿었고, 바닷속에는 불이 깃들여 있다는 속신(俗信)도 꽤 오래되었다.


아낙사레테

<Anaxarete>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이프러스의 미소녀. 그녀를 사랑하였으나 거절당하여 절망 끝에 그녀의 집 문간에서 목매어 자살한 이피스의 장례행렬을 창가에 서서 바라만 보고 있는 무정한 그녀를 보고 노한 아프로디테가, 그 모습 그대로 석상(石像)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이 석상은 《앞을 바라보는 비너스:Venus Prospiciens》라고 불리는데, 사이프러스섬의 살라미스신전에 바쳐졌다.


아누비스

<Anubis>


고대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신. 피라미드의 여러 문서에는 태양신 라(Ra)의 넷째아들로 되어 있으나, 후대에 와서는 오시리스와 넵티스(세트의 아내)의 아들로 되어 있다. 저승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 죽은 자를 오시리스의 법정으로 인도하며, 죽은 자의 심장을 저울에 달아 생전의 행위를 판정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래서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죽은 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헤르메스와 동일시되어 헤르마누비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오시리스가 동생인 세트의 손에 살해되었을 때, 그 시체를 베로 감아서 미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 후로는 장의(葬儀)를 주관하는 신이 되었다. 검은 표범 또는 개의 머리에, 피부가 거무튀튀한 남자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아도니스

<Adoni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 시리아 왕 테이아스, 또는 사이프러스 왕 키니라스와 그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불륜의 씨라고 한다. 여신 페르세포네와 아프로디테의 사랑을 받고 있었는데, 사냥을 하다가 멧돼지에 물려 죽었다. 이 멧돼지는 헤파이스토스, 또는 아프로디테의 연인 아레스신(神)이 질투하여 변신한 것이라고 한다. 미소년 아도니스가 죽으면서 흘린 피에서는 아네모네의 꽃이 피어났고, 여신 아프로디테의 눈물에서는 장미꽃이 피어났다고 전해진다. 아프로디테의 슬픔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명부(冥府)의 신들은 아도니스가 해마다 1년 중 1/3은 지상에서 아프로디테와 함께 또 1/3은 명부에서 페르세포네 여신과 함께 하고, 나머지 1/3은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지내도록 허락하였다고 한다. 또다른 전설에 의하면 아도니스가 아직 어렸을 때 아프로디테가 상자 속에 그를 감추어 페르세포네에게 맡겼는데, 나중에 페르세포네는 미소년에 반하여 돌려주려 하지 않자, 제우스는 아도니스에게 1년을 나누어 양쪽 여신 곁에서 반 년씩 살라고 명하였다고 한다. 아도니스는 원래 해마다 죽고 해마다 부활하는 식물신(植物神)으로, 바빌로니아의 곡물신 타무즈에 해당하는데, 그에 대한 숭배는 페니키아로부터 그리스와 그 밖의 지역으로 번져 헬레니즘 시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아드라스테아(Adrastea)】 [그리스] 어린 제우스를 돌보던 님프.


아드라스토스

<Adrastos>


그리스 신화의 인물. 아르고스왕. 오이디푸스의 아들인 폴리네이케스의 장인이며, 테베 공격의 총수였다.


◀참 조▶

☞폴리네이케스



【아드메타(Admeta)】 [그리스, 로마] 에우리스테우스(Eurystheus)의 딸. 헤라클레스가 그녀를 위해 아마존(Amazon)의 허리띠를 가져옴.



아드메토스

<Admeto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 테살리아 페라이의 왕 페레스의 아들. 이올코스의 왕 펠리아스의 아름다운 딸 알케스티스를 아내로 삼으려고 청혼, 펠리아스가 딸을 주는 조건으로 그에게 사자와 멧돼지가 끄는 전차에 탈 것을 요구하였다. 아드메토스는 아폴론 신의 도움으로 이 난제(難題)를 해결하고 알케스티스를 아내로 삼았는데, 그 방법은 사자와 멧돼지를 함께 전차에 묶은 것이었다. 그것은 일찍이 아폴론이 키클로페푸스를 죽인 벌로서 아드메토스 밑에서 가축을 돌보고 있을 때, 아드메토스가 아폴론에게 친절히 대해 주어 그에게 호의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르쳐 준 것이었다. 또한 아폴론은 운명의 여신 모이라에게 부탁하여 요절(夭折)할 운명을 타고난 아드메토스가, 만약 친척 가운데 대신 죽어 줄 사람이 있으면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그래서 아내인 알케스티스가 왕 대신 죽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헤라클레스가 죽음의 신 티나토스에게서 그녀를 되찾아왔다고 한다.


【아라크네(Arachne)】 [그리스] 뜻은 "거미". 직물을 잘 짜는 여인.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여성. 아라크네는 거미를 뜻하는 말이다. 리디아에 사는 염색(染色)의 명인 이드몬의 딸로 베짜는 솜씨가 뛰어나 여신 아테네보다도 자기가 훨씬 낫다고 뽐냈다. 여신은 노파의 모습으로 그녀를 찾아가서 충고하였으나 그녀는 듣지 않고 결국 여신과 솜씨를 겨루었다. 그녀는 올림포스 12신과 신들의 벌을 받은 인간의 이야기를 짜 넣어, 그녀의 작품은 여신조차도 흠잡을 수 없을 만큼 훌륭하였는데, 질투한 여신이 베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기 때문에 비탄에 빠진 아라크네는 목을 매 자살을 기도하였다. 여신은 아라크네의 자살마저 허용하지 않고 그녀를 뱃속에서 줄을 뽑아 베를 짜는 거미로 만들어 버렸다.


【아레스(Ares)】 [그리스] 뜻은 "전사(戰士)". 전쟁의 신. 제우스와 헤라의 아들. "불화"라는 이름의 에리스와 남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군신(軍神). 제우스와 헤라의 아들로, 올림포스 12신의 하나. 사나운 성미 때문에 부모의 사랑도 받지 못하였다. 체구가 거대함에도 불구하고 싸움에 강하지는 못하여, 거인 알로아다이의 무리에게 13개월이나 항아리 속에 유폐당한 일도 있었고, 트로이 전쟁에서는 트로이군의 총대장인 핵토르의 편에서 그리스군과 싸웠는데, 영웅 디오메데스에게 상처를 입고 쓰러졌으며, 영웅 헤라클레스와 싸웠을 때도 패하여 도망쳤다. 그는 호전적이었으나 아름다운 모습을 가진 청년으로, 여신 아프로디테의 사랑을 받아 그녀의 애인이 되었다. 에로스(혹은 하르모니아)는 이들 둘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하나 그것은 여신과 에로스를 결부시키기 위해 덧붙여진 이야기인 듯하다. 아레스는 자기의 딸 아르키페를 겁탈하려고 한 포세이돈의 아들 할리로티온스를 죽이고 올림포스의 신들로부터 아테네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이 때의 법정을 그의 이름을 따서 아레오파고스(아레스의 언덕이라는 뜻으로 아테네에 있었던 대법정)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에 대한 숭배는 북방의 트라키아 지방에서 들어온 것으로, 원래는 싸움이 일어났을 때의 주술(呪術)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로마신화에서는 마르스와 동일시되었다.


【아르고스(Argos)】 [그리스] 헤라의 신전이 있는 곳.



아르고스

<Argo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이나코스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아게노르 또는 아레스토르의 아들이라고도 하여 분명하지 않다. 목 뒤에 제3의 눈이 붙어 있었다고 하며, 몸의 앞뒤에 두 개씩의 눈이 있었다고도 하고, 전신에 무수한 눈을 갖고 있었다고도 한다. 눈이 빠른 데다가 힘이 센 거인으로 아르카디아를 해치는 황소와 사티로스를 퇴치(退治)하였고, 타르타로스와 대지(大地)의 신 가이아의 딸로 통행인들을 약탈하던 에키드나를 물리쳤으며, 포로네우스의 아들 아피스를 살해한 자들을 죽여 없앴다. 암소로 변신한 이오를 감시하라는 여신 헤라의 명을 받았으나, 제우스의 명령을 받은 헤르메스가 잠을 부르는 피리소리로써 아르고스의 눈을 모조리 감기게 한 다음 그의 목을 베어 버렸다. 그는 죽어서 공작이 되었다고도 하고, 또는 헤라가 그의 눈을 공작의 날개에 붙여 장식하였다고도 전해진다.



아르고호

<Argo>

(-號)


그리스의 영웅들이 타고 원정을 떠났던 배. 테살리아의 페리아스왕은 조카인 이아손에게 왕위를 빼앗길까 두려워하여 그에게 주는 난제(難題)로서 용이 지키는 보물인 금빛 양의 모피를 코르키스에 가서 가지고 오도록 명령하였다. 이아손은 여신 아테나의 도움으로 50개의 노가 달린, 그때까지 없었던 커다란 목선(木船) 아르고호를 만들었고, 또한 여신 헤라의 도움으로 많은 영웅들을 모았다. 그 영웅들은 아르고호의 선원(아르고나우타이)으로, 이아손을 비롯하여 헤라클레스, 오르페우스, 테세움, 카스토르, 포리데우케스 등 50명이었다고 한다. 항해 도중에 위험한 바위 신프레가 데스에 부딪혀 선미(船尾)가 부서지면서도 가까스로 코르키스에 도착하였다. 코르키스의 왕은 이아손에게 금빛 양의 모피를 구해주는 조건으로 청동(靑銅)의 다리를 가지고 불을 뿜는 신우(神牛)에게 멍에를 씌워 땅을 간 다음 카드모스의 용의 이빨을 씨로 뿌리라는 난제를 주었다. 그런데 마법의 힘을 갖고 있는 왕의 딸 메디아가 이아손을 사랑하여 자기와 결혼하겠다는 이아손의 약속을 받고 그를 도왔다. 씨로 뿌린 용의 이빨에서 무기를 가진 병사들이 나와 습격하려고 했을 때, 메디아는 돌을 던져 그들끼리 싸우게 하고 그 사이에 퇴치(退治)하였다. 그러나 왕은 모피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메디아는 마약의 힘으로 파수꾼인 용을 잠재우고 모피를 훔쳐 이아손과 함께 밤에 배로 떠났다. 그 후 귀로의 모험에 관해서는 여러 전설이 있는데, 이스테르(다뉴브)강을 북상한 다음 에리다노스강(포강이라고도 짐작되는 가공의 강)을 내려와 지중해로 돌아왔다고도 하고, 또는 다뉴브강에서 라인강을 거쳐 북해로 나온 다음, 지브롤터 해협까지 남하하여 지중해로 들어왔다고도 한다. 또한 그들은 아프리카까지 갔다고도 전해지며, 마녀 세이레네스의 섬을 지나면서 오르페우스가 아름다운 노래로 대항함으로써 난(難)을 피했다는 일화도 있다. 아르고호의 이야기를 서사시로 읊은 것이 아폴로니오스 로디오스가 쓴 《아르고나우티카》로, 이 신화 자체는 그리스 신화 가운데서도 가장 오래된 신화에 속하며, 실제로 있었던 어떤 원정이 바탕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르카스

<Arka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주신(主神) 제우스와 님프인 칼리스토 사이에 난 아들. 칼리스토는 순결을 지키겠다고 아르테미스신에게 맹세했지만, 제우스를 사랑하여 아르카스를 낳아, 그 벌로 곰이 되었다. 그리하여 아르카스는 마이아에 의해 양육되었는데, 그의 외조부 리카온이 제우스의 전지(全知)를 시험하기 위해 아르카스를 죽여 신탁(神卓)에 내놓았는데, 제우스가 이를 알아채고 리카온을 이리의 모습으로 바꾸어 아르카스를 소생시켰다. 나중에 아르카스는 곰의 모습으로 바뀐 어머니를 쫓아 금지된 성역(聖域)에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에, 제우스는 칼리스토를 곰자리 별로, 아르카스를 아르크투루스의 별로 바꾸었다.


【아르테미스(Artemis)】 [그리스] 달의 여신. 어린이의 보호자, 숲과 사냥꾼의 신. 아폴로의 쌍동이 누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 제우스와 레토의 딸, 아폴론과는 쌍둥이 남매간이다. 처녀사냥꾼으로 산과 들에서 사슴을 쫓는 활의 명수라고 하며, 그의 화살은 산욕(産褥)을 치르는 여자를 고통없이 그 자리에서 죽게 하는 힘을 지녔다고 한다. 또한 처녀의 수호신으로서, 순결의 상징이었는데, 처녀의 순결에 상처를 입힘으로써 죽음의 벌을 받은 자 가운데는 오리온이나 아크타이온이 있다. 아폴론이 태양의 신인 데 반하여 아르테미스는 달의 여신으로 생각되었는데, 이는 월신(月神) 셀레네, 헤카테와 동일화되었기 때문이며, 아르테미스라는 이름도 그리스계(系)가 아니고 옛 선주민족(先住民族)의 신의 이름이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원래는 대지, 특히 야수들이 사는 들판을 주관하는 모신(母神)으로서 동식물의 다산(多産)과 번성(繁盛)을 주관하는 것으로 믿어, 출산과 어린이의 발육을 수호하는 신이 되기도 하였다. 소(小)아시아의 에페수스에서 신앙되던 아르테미스의 상(像)은 가슴에 무수한 유방을 갖고 있었으며, 고장에 따라 특징 있는 숭배를 받았는데, 옛날에는 인신공희(人身供犧)를 하는 고장도 있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로마 신화에서는 디아나와 동일시되었다.

아리스토데모스

<Aristodemo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 헤라클레스의 증손 아리스토마코스의 아들. 크레스폰테스와 테메노스의 형제이다. 펠로폰네소스 침공을 위하여 테메노스와 함께 나우팍토스에서 군사를 정비하고 있는 동안에, 델포이의 신탁(神託)을 청하지 않은 것에 노한 아폴론의 명령에 따라 주신(主神) 제우스가 던진 번개에 맞아 죽었다고도 하고, 필라데스와 엘렉트라의 아들 메돈과 스트로피오스에게 살해되었다고도 한다.


아리아드네

<Ariadne>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크레타섬의 미노스 왕과 파시파에 사이에서 태어난 딸.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가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퇴치하기 위하여 라비린토스(미궁)에 들어갈 때, 그 몸에 실을 묶어 주어 미궁에서 다시 나올 때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 결혼을 약속하고 테세우스와 함께 도망쳤으나 낙소스섬에서 버림을 받고 실의에 빠져 있는데, 그곳에 온 주신(主神) 디오니소스에게 발견되어 그의 아내가 되었다고 전해지며, 결혼할 때 디오니소스에게서 선물로 받은 금관은 후에 별자리가 되었다고 한다. 다른 전설에 의하면 임신한 몸으로 낙소스섬에서 버림받아 그곳에서 출산하다가 죽었다고 한다.


【아마존(Amazon)】 [그리스] 뜻은 "젖가슴이 없다". 여성전사 부족. 복수형으로 아마조네스라고도 한다. 전투의 신 아레스와 님프인 하르모니아의 자손으로서, 코카서스 또는 소(小)아시아 지방에 살았다. 여자만의 부족이어서 남자가 태어나면 모두 이웃나라로 보내거나 죽여 버렸고, 씨를 얻기 위해서는 일정한 계절에 다른 나라의 남자와 만났다고 한다. 여자는 활을 쏘기에 편하도록 하기 위해서 어렸을 때 오른쪽 유방을 도려내 버리고 키웠다고 전한다. 싸움의 신 아레스를 숭배하며 사냥과 전투를 즐겨, 트로이 전쟁에도 참가, 아마존족(族)의 여왕 펜테실레이아는 아킬레우스의 손에 죽었는데도 아킬레우스는 아름다운 여왕의 죽은 얼굴을 사랑하였다고 한다. 영웅 헤라클레스는 아마존의 여왕 히폴리테가 가지고 있던 허리띠를 빼앗고자 원정을 하였고, 테세우스도 공격해 왔으므로, 그녀들이 나서서 반격하였으나 패하였다고 한다.


아말테이아

<Amaltheia>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 크레타섬 이데산(山)에서 제우스신(神)을 기른 유모로서 님프였다고도 하고 또는 염소였다고도 한다. 이 염소의 뿔에는 신들이 마시는 술 넥타르와 신들의 음식물인 암브로시아가 가득 차 있었는데, 어느 날 뿔 하나가 부러졌을 때 그 속에 신선한 과일이 가득 차 있었으므로 그것을 제우스에게 바쳤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뿔을 부러뜨린 것은 제우스 자신이며, 그 뿔에는 뿔의 임자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나오는 힘이 있었기 때문에, 코르누 코피아(cornucopia:풍요의 뿔)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염소는 나중에 별이 되어 마부자리의 일등성(一等星) 카펠라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아미모네

<Amymone>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성. 다나오스의 50명의 딸들 가운데 하나이다. 제우스의 아내 헤라에게 아르고스의 땅을 빼앗긴 것을 분히 여긴 해신(海神) 포세이돈이, 모든 샘물을 말라붙게 해 버렸으므로 아미모네는 자매들과 함께 물을 구하러 나섰다. 사슴을 발견하고 던진 창이 빗나가 잠자고 있던 정령(精靈) 사티로스를 깨웠다. 사티로스에게 붙들린 그녀가 포세이돈에게 구조를 청하자, 포세이돈이 삼지창(三枝槍)을 사티로스에게 던졌는데 창이 떨어진 자리에서 샘물이 솟아나왔다. 이후 이 우물은 아미모네의 샘물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아미코스

<Amyko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비티니아(Bithynia)의 베브리케스인(人)의 왕. 포세이돈의 아들로 거인이며, 권투의 창시자라고도 한다. 그는 자기 나라에 온 외국인에게 자기와 권투시합을 하자고 하여 때려죽이곤 하였다. 아르고호(號) 배를 탄 아르고나우테스들이 들렀을 때에도 역시 도전을 요청했었는데, 폴리데우케스가 그를 때려죽였다고 한다. 일설에는, 폴리데우케스가 아미코스를 이겨 그 다음부터는 외국인을 환대하기로 맹세했다고도 한다.



아바스

<Aba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르고스의 12대 왕. 린케우스와 히페르메스트라의 아들이며, 아크리시오스와 프로이토스의 아버지이다. 그는 형제인 두 조부의 싸움을 해결하고 페르세우스가(家)의 조상이 되었다. 그는 포키스의 아바이시(市)의 건설자로 알려져 있으며, 또한 헤라 여신에 대항해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는 힘이 있는, 성스러운 방패를 조부인 다나오스로부터 받았다. 이 외에도 엘레우시스의 왕자, 포세이돈의 아들 등 동명의 인물이 여럿 나온다.


【아베르누스(Avernus)】 [그리스] 명계의 호수.


【아비두스(Abydus)】 [그리스, 로마] 헬레스폰트의 마을이름. 레안데르가 살았던 마을. (레안데르 참조)


【아빌라(Abyla)】 [그리스, 로마] 헤라클레스 기둥 중 하나인 산(山). 칼페(Calpe) 참조.



아스클레피오스

<Asklepios>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의술(醫術)의 신(神). 라틴어로는 아이스쿨라피우스(Aesculapius)라고 한다. 호메로스에서는 인간이며 의사라고 되어 있으나 훗날의 전설에서는 아폴론의 아들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케이론 밑에서 자라면서 의술을 배워 죽은 사람도 되살릴 수 있었기 때문에, 제우스는 인간이 그를 통하여 불사(不死)의 능력을 얻을까 두려워하여 번개를 쳐 그를 죽였다. 그러나 아폴론의 요청으로 제우스는 그를 별로 바꾸어 오피우커스(Ophiuchus:뱀주인자리)가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뱀은 약초를 발견하는 비법을 알고 있다고 믿어졌고, 아스클레피오스와 관계 깊은 신성한 동물로 보아 뱀을 위하여 수탉이 제물로 바쳐졌다. 이같은 숭배의 중심지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에피다우로스인데, 이곳에는 커다란 신전이 세워져 많은 병자들이 몰려들었다. 그에 대한 숭배는 각지에 퍼졌는데, 로마에도 BC 293년 악역(惡疫)의 유행 당시에 들어온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코스섬과 크니도스섬을 중심으로 아스클레피오스의 자손(아스클레피아다이)이라고 하는 의술자들이 살고 있는데, 그 의술은 비전(秘傳)이라고는 하나 일종의 정신요법이 주된 비방(秘方)이었던 것 같다.


【아스트라이아(Astraea)】 [그리스, 로마] 뜻은 "별처녀". 제우스와 테미스의 딸. 황금시대에 지상에 살면서 죽을 운명에 있는 사람들을 축복했다. 축복이 끝나자 처녀좌(Virgo)의 별이 되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주신(主神) 제우스와 율법의 여신 테미스의 딸. 디케(Dike:정의의 여신)와 동일시되고 있다. 아스트라이아란 ꡐ별처녀ꡑ라는 뜻인데, 천공(天空)의 신 크로노스가 세상을 지배하던 황금시대에는 인간세상에 살았으나, 뒤이어 은(銀)시대, 청동(靑銅)시대에 이르면서 인류의 악(惡)이 넘쳐남에 따라 그녀는 천상(天上)으로 돌아가 처녀자리가 되었다고 한다.


아에기르

<Aegir>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신(神). 그리스 신화의 포세이돈과 거의 비슷한 신으로, 《에다》 시(詩)에 의하면 추분(秋分)날에 여러 신들을 초대하여 주연을 베풀고 있는데, 술을 빚는 가마솥이 너무 작아 술이 모자라자 토르와 튀르가 거인의 큰 가마솥을 훔쳐다 주는 재미있는 신화가 있는가 하면, 이 주연에서 소외당한 로키가 신들을 매도하는 신화도 있다. 그의 아내 란과의 사이에는 9명의 딸이 있었으며, 덴마크의 프레스섬이 그들의 주소로 알려졌다. 그래서 바이킹들은 배가 물속에 가라앉는 것을 ꡒ아에기르의 턱안으로 빨려 들어간다ꡓ고 말하였다.



아에돈

<Aedon>


그리스 신화에서 휘파람새를 뜻하는 말. 아티카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아티카의 왕 판디온의 딸 프로크네와 필로멜라의 두 자매 중 언니가 다우리스의 왕 테레우스의 아내가 되어 아들 이티스를 낳았다. 테레우스가 처제인 필로멜라를 범하고 비밀을 누설하지 못하도록 그녀의 혀를 잘라 버렸는데, 필로멜라는 직물(織物)에 글자를 짜넣어 언니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두 자매는 복수하기 위하여 이티스를 죽여서 요리하여 테레우스에게 먹였는데, 이 사실을 안 테레우스는 두 자매를 잡으려고 뒤쫓아갔다. 이때 제우스가 테레우스를 매로, 필로멜라를 제비로, 프로크네를 휘파람새로 변신시켰는데, 프로크네는 휘파람새가 되어 ꡒ이티스, 이티스ꡓ하고 운다고 한다.


아에로페

<Aerope>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성으로, 전설적인 크레타섬의 왕 미노스의 손녀. 미노스의 아들 카트레우스에게는 아에로페, 클리메네, 아페모시네의 세 딸과 외아들 알타이메네스가 있었다. 카트레우스가 신탁(神託)에 의해 자식의 손에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 알타이메네스는 이를 두려워하여 아페모시네와 함께 집을 나갔다. 아에로페와 클리메네는 나우플리아시(市)의 나우플리오스에게 노예로 팔려갔는데, 아에로페는 아르고스의 왕 플레이스테네스의 아내가 되어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의 어머니가 되었다.


아우게이아스

<Augeia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엘리스의 왕. 태양신 헬리오스와 히르미네의 아들. 또 포세이돈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라피테스족(族)의 포르바스의 아들이라고 하는가 하면, 엘레이오스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어머니 히르미네는 네레우스의 딸이다. 아이에테스를 만나기 위해 아르고나우데스들의 원정에 참가했다고 한다. 나중에 헤라클레스의 손에 죽었다고 하나, 일설에는 늙어서 죽었다고도 한다.


【아우로라(Aurora)】 [그리스, 로마] 오리온(Orion)이 사랑한 여인.


아우톨리코스

<Autolyko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헤르메스와 키오네 사이에 난 아들. 오디세우스의 어머니 안티클레이아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아버지 헤르메스로부터 도둑질 기술을 이어받아, 이 기술과 사술(詐術)에서는 남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한다. 외손자 오디세우스가 사용한 투구를 아민토르에게서 훔쳐냈었고, 에우리토스에게서 소를 훔쳐냈지만 시시포스의 소를 훔치는 데는 실패하였다. 까닭은 영리한 시시포스가 미리 자기네 소 발굽에다 ꡐ아우톨리코스가 훔친 소ꡑ라는 낙인을 새겨 넣었기 때문이었다.


【아이가이(Aegae)】 [그리스, 로마] 포세이돈의 궁전 부근에 있는 에우보이아(Euboea)의 한 곳.


아이기나

<Aigina>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하신(河神) 아소포스의 딸. 제우스가 그녀를 사랑하여 빼앗아갔기 때문에 아버지는 딸을 찾고자 온 그리스를 헤맸다. 자신의 아크로폴리스에 샘을 갖기를 원하던 코린토스의 왕 시시포스의 요구에 따라 샘을 만들어주고, 제우스가 있는 곳을 알아냈다. 마침내 제우스와 딸의 침실에 들어간 아소포스는 벼락을 맞았다. 아소포스강(江)의 하천바닥에 탄(炭)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한다. 제우스는 아이기나를 데리고 오이노네섬으로 가서 아이아코스를 낳았다. 그 때부터 이 섬을 아이기나라고 불렀다. 후일 그녀는 테살리아로 가서 악토르의 아내가 되어 메노이티오스(파트로클로스의 아버지)를 낳았다.


【아이기스(aegis)】 [그리스] 제우스의 가슴막이. 방패라는 설도 있다. 영어로는 이지스. 아이기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염소가죽으로 된 일종의 무구(武具). 제우스와 그의 딸 아테나의 소지물의 하나로,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제우스를 위하여 만들어 준 방패 모양의 것이었다. 제우스의 아이기스는 벼락에 맞아도 부서지지 않았는데, 이것을 한번 흔들면 폭풍이 일어나고 사람의 마음 속에 공포를 불어넣었다. 한편 아테나는 이것을 갑옷으로 걸치기도 하였는데, 중앙에는 메두사의 목이 달려 있다. 일설에 의하면 이것은 제우스를 길러낸 암염소 아말테이아의 가죽이라고 한다.



【아이기스투스(Aegisthus)】 [그리스, 로마] 클리템네스트라(Clytemnestra)의 정부(情夫). 오레스테스(Orestes)가 이를 죽여 아버지의 복수를 함.



아이기프토스

<Aigyptos>


그리스 신화의 인물. 벨로스와 안키노에의 아들이자 다나오스의 형제이다. 벨로스는 다나오스에게 리비아를, 아이기프토스에게는 아랍을 주었는데, 아이기프토스는 이집트를 정복하여 이 땅에 자기의 이름을 붙였다. 그에게는 50명의 아들이 있었고, 다나오스에게는 50명의 딸(다나이스들)이 있었다. 후에 형제가 왕권을 둘러싸고 서로 싸운 끝에 다나오스는 딸들과 함께 아르골리스로 도망쳤는데, 아이기프토스의 아들들이 뒤쫓아와 딸들과의 결혼을 간청하였으므로, 다나오스는 할 수 없이 승낙하면서, 딸들에게는 신방의 잠자리에서 남편을 죽이라고 사주한다. 오직 첫딸 히페름네스트라만이 남편인 린케우스를 살렸다. 아이기프토스는 자식들의 운명을 슬퍼하며 왕위에서 물러나 아로뫼에 은퇴하여 지내다가 죽었다.



【아이네아스(Aeneas)】 [그리스, 로마] 트로이(Troy) 다르다니아(Dardania)의 왕자. 안키세스(Anchises)왕과 베누스(Venus, 그리스의 아프로디테(Aphrodite)) 여신의 아들이다. 그는 나이든 아버지를 등에 업고 팔라디움(Palladium)을 옆구리에 끼고 불타는 트로이성을 탈출했다. 많은 모험을 경험하고 라티움(Latium)에 도착해서 로마인이 되는 부족을 발견했다. 베르길리우스(Vergil)는 그의 아들이 율루스(Iulus)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스카니우스(Ascanius)이고 그의 트로이 아내 크레우싸(Creusa)가 낳았다. 반면에 리비우스(Livy)는 이울루스가 라틴 아내 라비니아(Lavinia)가 낳은 아들이라고 주장한다. 마리우스의 시대에는 누구의 주장이 옳은 지 불분명했다.


【아이네아스 실비우스(Aeneas Sylvius)】 [로마] 알바 롱가(Alba Longa)의 왕. 아이네아스의 증손자.


【아이로페(Aerope)】 [그리스, 로마] 아트레우스(Atreus)의 아내이자 아가멤논(Agamemnon)의 어머니.


아이사코스

<Aisako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의 왕자. 프리아모스와 아리스베(알렉시로에)의 아들. 조부 메로프스에게서 해몽술(解夢術)을 배워, 왕자 파리스가 태어날 때 새 왕비 헤카베의 태몽을 해몽하며 트로이의 멸망을 예언하고, 왕자를 죽일 것을 권했다. 한편, 그는 여신 헤라의 황금사과를 지키는 헤스페리스들 중에서도 예쁜 헤스페리아를 사랑하여 그녀를 쫓아가고 있는 사이에 그녀가 독사에게 물려 죽자, 슬픈 나머지 바다에 몸을 던졌다. 그러나 테티스가 그를 불쌍히 여겨 바다새로 바꾸어 주었다고 한다.


아이손

<Aison>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테살리아 이올코스의 왕. 크레테우스와 틸로의 아들이며, 이아손의 아버지. 의붓아버지의 형제인 페리아스에게 이올코스의 왕권을 빼앗기고, 이아손이 금모양(金毛羊)을 찾으러 떠난 사이에 페리아스에게 살해될 뻔하였는데, 후에 암소의 피를 마시고 자살하였다. 한편 오비디우스에 의하면 그는 자식이 귀국할 때까지 살아 있다가 메디아의 마법으로 다시 젊어졌다고도 한다.


【아이스쿨라피우스(Aesculapius)】 [그리스, 로마] 키론(Chiron)의 제자. 제우스가 죽임.


아이아스

<Aia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살라미스의 왕 텔라몬의 아들. 정식이름은 아이아스 텔라모니오스로, 오일레우스(小아이아스)와 구별, 대(大)아이아스로 부른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의하면, 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우스 다음가는 용사로 인정을 받았으나, 아킬레우스가 죽은 후 그의 유품인 무구(武具)를 둘러싸고 오디세우스와 겨루어 패하였다. 그는 분한 나머지 머리가 돌아 양떼를 그리스군으로 착각하여 모두 베어 죽인 뒤, 제정신이 들자 전리품인 헥토르의 칼로 자살하였다. 비극시인 소포클레스의 《아이아스》는 이 전설을 소재로 한 것이다. 이 밖에 적장 파리스의 화살에 입은 상처가 원인이 되어 죽었다거나, 불사신이었기 때문에 적이 생매장을 하였다는 전설도 있다. 또한 살라미스와 아티카 등지에서는 신격화되어 숭배되었다. 로크리스왕의 아들 아이아스 오일레우스는 소(小)아이아스라고 부른다.


【아이아코스(Aeacus)】 [그리스, 로마] 타르타루스(Tartarus)의 판사. 아이기나(Aegina)의 아들. 나중에 명계의 세 재판관중 하나가 되었다.


【아이올루스(Aeolus)】 [그리스, 로마] ① 테살리아(Thessaly)의 왕. 헬렌(Hellen)의 아들. 피라(Pyrrha)와 데우칼리온(Deucalion)의 손자. ② 바람의 왕. 바람을 자루 속에 가두어 둘 수 있는 힘을 가진 그리스 신화의 풍신(風神).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 의하면 아이올리아라는 떠 있는 섬에서 여섯 아들, 여섯 딸과 함께 살았다. 트로이 대원정에 나서는 오디세우스를 환송했던 아이올로스는, 전쟁을 마치고 돌아오던 오디세우스가 아이올리아 섬에 표착(漂着)하자, 오디세우스에게 순풍과 함께 역풍이 담긴 자루를 내주었다. 호기심을 못 이긴 그의 부하가 자루를 풀자 역풍이 휘몰아쳐서 배는 순식간에 그 섬으로 되돌아가 아이올로스의 노여움을 크게 샀다고 한다.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아에네이스》에 따르면, 아이올로스가 동굴 속에 바람을 가두어 놓고 있는 것처럼 기록되어 있다.


아이트라

<Aithra>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의 왕 피테우스의 딸.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와의 사이에서 테세우스를 낳았다. 테세우스의 어머니로서, 테세우스가 명부(冥府)여행을 하는 동안, 납치해 온 헬레네를 어머니인 이트라에게 맡겼는데, 헬레네의 형제인 디오스쿠로이가 헬레네를 구하려고 왔다가 아이트라를 붙잡았다. 헬레네가 트로이로 갈 때 함께 따라갔으며, 파리스와 함께 도망하도록 권한 것은 그녀였다고도 한다. 트로이에서 증손자 무니토스의 유모가 되었는데, 트로이 함락 후 손자인 데모폰과 아카마스에 의해 구출되었다. 테세우스가 죽자 그녀도 자살하였다는 설이 있다.


아카스토스

<Akasto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올코스의 왕. 펠리아스와 아낙시비아의 아들로, 아버지 펠리아스가 조카 이아손의 아내 메디아에게 젊어지는 마법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가, 오히려 그녀의 손에 죽은 뒤 이올코스의 왕이 되었다. 그의 아내 아스티다메이아는, 보호를 요청하여 온 펠레우스에게 사랑을 고백하였다가 거절당하자, 오히려 상대방이 유혹하려 하였다고 남편에게 거짓으로 고해 바쳤다. 아카스토스는 펠레우스에게 페리온산(山)으로 사냥을 가자고 유인하여 사냥을 나갔는데, 귀로에 펠레우스를 버리고 돌아왔다. 그러나 훗날 이올코스를 침공해 온 펠레우스의 손에 그와 그의 아내는 죽게 된다.


【아카테스(Achates)】 [그리스, 로마] 아이네아스(Aeneas)의 친구.


아케론

<Acheron>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저승의 강. 죽은 자가 헤르메스 신의 안내로 황천(黃泉)에 이르면 카론의 배로 이 강을 건너야만 하는데,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죽은 자에게는 나룻배 사공 카론에게 치를 돈을 입 안에 넣어 주는 풍습이 있었다. 이 이름을 가진 강이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수십 개가 있는데, 특히 남(南)에페이로스에 있는 테스프로티아강은 검은 계곡을 지나면서 몇 차례인가 그 모습을 지하로 감추는 탓에서인지 저승으로 가는 강이라고 알려졌고, 그 곳에는 죽은자의 탁선소(託宣所)도 마련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아케스테스(Acestes)】 [그리스, 로마] 시실리(Sicily)에 사는 토로이인(Trojan)


【아케테스(Acetes)】 [그리스, 로마] 디오니소스(Dionysus)을 사로잡은 배의 항해사. 아케테스만이 디오니소스가 신(神)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아켈로스

<Acheloo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하신(河神). 수신(水神) 오케아노스와 테티스의 아들로, 3,000명의 형제자매 중 가장 맏이이다. 오이네우스 왕의 딸 데이아네이아를 차지하기 위하여 황소의 모습으로 둔갑하여 헤라클레스와 싸웠는데, 헤라클레스의 손에 잡힌 뿔이 부러짐으로써 패하고 말았다. 그 뿔은 풍요의 뿔 아마르티아로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아켈로스는 그리스에서 가장 긴 강의 이름이기도 하다. 원래는 포르바스라는 이름이었는데, 아켈로스가 이 강을 건너다가 화살을 맞고 죽은 후로부터 강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아킬레스-아킬레우스(Achilles)】 [그리스, 로마] 아이아키데스(Aeacides)라고도 함. 키론(Chiron)의 제자.

그리스 신화의 영웅. 라틴어로는 아킬레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의 중심인물이다.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펠레우스왕의 아들로, 어머니인 바다의 여신이 그를 불사신(不死身)으로 만들려고 황천(黃泉)의 스티크스 강물에 몸을 담갔는데, 이때 어머니가 손으로 잡고 있던 발뒤꿈치만은 물에 젖지 않아 치명적인 급소가 되고 말았다. 아킬레스힘줄[腱]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하였는데, 이 전설은 비교적 새로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양친은 그를 트로이전쟁에 나가지 않도록 하려고 그를 여장(女裝)시켜 스키로스의 왕 리코메데스의 딸들 틈에 숨겼는데, 그가 없이는 트로이를 함락시킬 수 없다는 예언을 듣고 찾아온 오디세우스에게 발견되었다. 이때 오디세우스가 여자 아이들이 좋아할 물건들 속에 무기를 섞어 놓았는데, 아킬레우스만은 사내라서 무기를 집음으로써 정체가 드러났었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는 훗날 여러 미술작품의 좋은 소재가 되었다. 그리스군은 9년 동안에 걸쳐 트로이를 공략하였으며, 아킬레우스는 리르네소스의 왕 에티온을 죽이고 미녀 브리세이스를 손에 넣었으나 아가멤논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격분한 그가 군사를 이끌고 물러가자 그리스군은 계속 패배하였다. 이를 보다 못한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무구(武具)를 갖추고 출진하였는데, 적장 헥토르의 손에 죽자 이에 격분한 아킬레우스는 다시 출격하였다. 이때 그가 몸에 걸친 무구는 어머니가 공신(工神) 헤파이스토스를 시켜 특별히 만든 것으로 유명한 ꡐ아이기스ꡑ이다. 그는 적장 헥토르를 죽여 원수를 갚고 그의 시체를 전차에 매어 끌고 돌아왔는데, 헥토르의 부왕(父王) 프리아모스가 몸소 진중으로 찾아와 몸을 굽히면서 자식의 유해를 돌려달라고 애원하자 배상금을 받고 인도하였다. 그러나 그 자신도 마침내는 파리스의 화살에 급소를 맞고 죽었다. 그는 격하기 쉬운 성격이었으나 정이 많고 트로이전쟁에서 가장 고결한 영웅으로 알려졌으며, 발이 빨라 준족(駿足)의 대표자로도 알려졌다.

   

   

아크리시오스

<Akrisios>


그리스 신화 속의 영웅으로, 아르고스의 왕 아바스의 아들. 아바스가 죽자 쌍둥이 형제인 프로이토스와 왕위쟁탈전을 벌였는데, 아크리시오스가 승리하여 프로이토스는 추방되었다. 이때 원형의 방패가 발명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장차 외손자들의 손에 죽을 것이라는 신탁(神託)을 두려워한 나머지, 자기 딸인 다나에와 외손자인 페르세우스를 상자에 넣어 바다에 띄워 버렸다. 그러나 페르세우스는 무사히 자라 투원반의 명수가 되었는데, 어느날 경기장에서 구경을 하고 있는 아크리시오스에게 원반(圓盤)을 잘못 던져 죽게 함으로써 예언이 실현되었다.



아키스

<Akis>


그리스 신화 속의 아키스강(江)의 신. 파우누스신과 님프인 시마이티스의 아들로, 원래 시칠리아섬의 양치기였으며, 바다의 님프 갈라테이아의 연인이었다. 갈라테이아를 사랑한 외눈의 거인 폴리페모스의 ꡐ사랑노래ꡑ를 몰래 듣다가 발각되어, 그가 던진 바위에 맞아 죽었다. 그때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선혈이 아키스강이 되었다.


아킬레우스

<Achilleus>


그리스 신화의 영웅. 라틴어로는 아킬레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의 중심인물이다.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펠레우스왕의 아들로, 어머니인 바다의 여신이 그를 불사신(不死身)으로 만들려고 황천(黃泉)의 스티크스 강물에 몸을 담갔는데, 이때 어머니가 손으로 잡고 있던 발뒤꿈치만은 물에 젖지 않아 치명적인 급소가 되고 말았다. 아킬레스힘줄[腱]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하였는데, 이 전설은 비교적 새로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양친은 그를 트로이전쟁에 나가지 않도록 하려고 그를 여장(女裝)시켜 스키로스의 왕 리코메데스의 딸들 틈에 숨겼는데, 그가 없이는 트로이를 함락시킬 수 없다는 예언을 듣고 찾아온 오디세우스에게 발견되었다. 이때 오디세우스가 여자 아이들이 좋아할 물건들 속에 무기를 섞어 놓았는데, 아킬레우스만은 사내라서 무기를 집음으로써 정체가 드러났었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는 훗날 여러 미술작품의 좋은 소재가 되었다. 그리스군은 9년 동안에 걸쳐 트로이를 공략하였으며, 아킬레우스는 리르네소스의 왕 에티온을 죽이고 미녀 브리세이스를 손에 넣었으나 아가멤논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격분한 그가 군사를 이끌고 물러가자 그리스군은 계속 패배하였다. 이를 보다 못한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무구(武具)를 갖추고 출진하였는데, 적장 헥토르의 손에 죽자 이에 격분한 아킬레우스는 다시 출격하였다. 이때 그가 몸에 걸친 무구는 어머니가 공신(工神) 헤파이스토스를 시켜 특별히 만든 것으로 유명한 ꡐ아이기스ꡑ이다. 그는 적장 헥토르를 죽여 원수를 갚고 그의 시체를 전차에 매어 끌고 돌아왔는데, 헥토르의 부왕(父王) 프리아모스가 몸소 진중으로 찾아와 몸을 굽히면서 자식의 유해를 돌려달라고 애원하자 배상금을 받고 인도하였다. 그러나 그 자신도 마침내는 파리스의 화살에 급소를 맞고 죽었다. 그는 격하기 쉬운 성격이었으나 정이 많고 트로이전쟁에서 가장 고결한 영웅으로 알려졌으며, 발이 빨라 준족(駿足)의 대표자로도 알려졌다.



아타마스

<Athamas>


그리스 신화의 보이오티아의 왕. 그의 아내 이노는 전처 네펠레가 낳은 아들 프릭소스와 딸 헬레를 미워하여 흉계를 써 그들을 없애려고 하였다. 네펠레는 헤르메스로부터 받은 황금털의 양을 프릭소스에게 주어 그것을 타고 도망치게 하였다. 양은 콜키스를 향하여 날아갔으나 도중에 헬레는 해협에 떨어져 죽고, 프릭소스는 무사히 콜키스에 도착하여 아이에테스 왕의 딸 칼키오페와 결혼하였다. 그 후 아이에테스는 황금털 양을 제우스에게 바치고 용을 시켜 양의 모피를 지키게 하였는데, 마침내 아르고호(號)의 영웅들이 이를 찾아 원정을 하게 된다. 이 양은 별자리[星座]로 변하여 양자리[羊座:Aries]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헬레가 빠져 죽은 해협은 그녀의 이름을 따서 헬레스폰투스(헬레의 바다라는 뜻으로 지금의 다르다넬스 해협)라고 불렸다.





【아탈란타(Atalanta)】 [그리스, 로마] 멜레아거(Meleager)와 사랑에 빠지고 펠레우스(Peleus)를 정복했다.


아테

<Ate>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악과 재앙의 여신. 제우스의 큰딸이라고도 하고, 또 싸움의 여신 에리스의 딸로 무법(無法)의 여신인 디스노미아와 자매간이라고도 한다. 신(神)들과 인간에게 선악(善惡)이나 해익(害益)의 구별을 할 수 없게 하여 무분별한 행동을 저지르게 하는 여신으로 알려졌다.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 천상(天上)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항상 인간들에게 붙어다닌다고 하나, 이는 끔찍한 착각․경망스런 바보짓을 의인화(擬人化)한 파멸과 악운의 여신이다. 아가멤논은 여자 하나를 놓고 아킬레우스와 다툰 탓을 이 아테 여신에게 돌리고 있다.


【아테(Ate)】 [그리스, 로마] 불행의 여신. 무모한 행동과 그 결과를 만드는 여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악과 재앙의 여신. 제우스의 큰딸이라고도 하고, 또 싸움의 여신 에리스의 딸로 무법(無法)의 여신인 디스노미아와 자매간이라고도 한다. 신(神)들과 인간에게 선악(善惡)이나 해익(害益)의 구별을 할 수 없게 하여 무분별한 행동을 저지르게 하는 여신으로 알려졌다.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 천상(天上)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항상 인간들에게 붙어다닌다고 하나, 이는 끔찍한 착각․경망스런 바보짓을 의인화(擬人化)한 파멸과 악운의 여신이다. 아가멤논은 여자 하나를 놓고 아킬레우스와 다툰 탓을 이 아테 여신에게 돌리고 있다.◀참 조▶☞리타이



【아테나(Athena)】 [그리스] 처녀, 파르테노스라고도 불림. 뜻은 "하늘의 여왕". 지혜, 정의의 여신. 제우스가 혼자 낳은 딸. 플룻, 트럼펫, 쟁기, 고무래, 소멍에, 말굴레, 마차, 배를 발명했고. 요리, 뜨게질, 물레질, 숫자, 수학도 발명했다. 완전히 자란 모습으로 갑옷을 입고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제우스가 가장 신임하여 그의 아이기스, 허리띠, 번개를 나르게 했다. 파르테논(Parthenon)은 그녀의 신전이고 올리브와 부엉이가 그녀를 상징한다. 아레스와 싸워 이긴 유일한 신. 미네르바(Minerva) 참조.

  그리스 신화 속의 전쟁과 지성(知性)의 여신. 아테네의 수호신. 제우스와 해신(海神) 오케아노스의 딸 메티스 사이에 태어났으며, 올림포스 12신(神) 가운데 하나이다. 메티스가 임신하였을 때 지신(地神) 가이아가, 메티스에게서 태어나는 아들이 제우스의 지위를 빼앗을 것이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제우스는 메티스를 삼켜버렸다. 그런데 태어날 시기가 되었을 때 심한 두통을 못견딘 제우스가 프로메테우스(일설에는 헤파이스토스)에게 도끼로 자신의 머리를 쪼개달라고 부탁하였는데, 그대로 머리를 쪼개자 그 속에서 아테나가 갑옷을 입은 모습으로 함성을 지르면서 태어났다고 한다. 바레스가 남성 전쟁신(戰爭神)인 데 비해 아테나는 전쟁의 여신으로 알려졌다. 이는 여신이 원래 선주민족의 신으로서 아크로폴리스의 성채(城砦)에 모셔진 데서 유래한다. 정복자인 그리스인도 이를 이어받아 아테나이(아테네)를 대표하여 국가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영웅들을 지키는 여신으로 모셨다. 일반적으로 염소의 가죽으로 만들어지고 괴물 고르곤의 목이 한가운데에 달린 신성한 공격용 방패인 아이기스를 든, 무장한 처녀의 모습으로 상징되고 있다. 올빼미가 여신의 상징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것도 옛날의 수신(獸神)숭배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된다. 전차(戰車)를 비롯한 많은 무기를 발명한 여신으로 알려졌으나, 한편 여성이 맡은 일의 신으로서 방적(紡績)과 기직(機織)의 신이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도기(陶器)와 금세공(金細工) 등, 수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여러 가지 기술의 여신으로도 알려졌는데, 마침내는 지력(知力)의 권화(權化)로 보기에 이르렀다. 신화에 있어서는 처녀성을 끝까지 지킨 여신이지만, 국가의 수호신이라는 성격 때문에 다산(多産)과 풍요의 여신이기도 하였다. 또한 포세이돈과 아티카의 땅을 놓고 싸울 때 포세이돈이 아크로폴리스의 기슭에 염수(鹽水)의 못을 만들어낸 데 비해, 그녀는 아크로폴리스의 언덕에 올리브 나무를 자라게 함으로써 승리하였는데, 그 후로는 그녀를 올리브의 여신이라고 하였다. 그녀는 팔라스라고도 불리며, 로마 신화의 미네르바, 이집트 신화의 네이트와 동일시되고 있다.



아트레우스

<Atreus>


그리스 신화의 영웅. 펠로프스와 히포다메이아의 아들이며, 탄탈로스의 손자뻘이며 티에스테스․피테우스와 형제이다. 티에스테스와 그는 배다른 동생 크리시포스를 죽이고 미케네의 왕 에우리스테우스 곁으로 도망쳤는데, 왕이 죽자 아트레우스가 왕위에 올랐다. 티에스테스는 아트레우스의 아내인 아에로페를 유혹하여 왕위를 빼앗으려고 하다가 추방되었는데, 이에 대한 복수로 자기 아들로 키운 아트레우스의 아들을 보내 아버지를 죽이게 하려고 하였으나, 도리어 아들이 아버지의 손에 죽고 말았다. 모르고 친아들을 죽인 아트레우스는 화해를 가장하고 티에스테스와 그의 두 아들을 초청, 두 아들을 몰래 죽인 다음 그 살코기로 요리하여 아버지인 티에스테스의 식탁에 내놓았다. 저주받은 왕국에는 흉년․기아가 덮치고, 아트레우스는 티에스테스를 찾아 나섰다가 자기도 모르게 티에스테스의 딸 펠로피아와 결혼한다. 그때 그녀는 이미 자기 아버지의 씨를 뱃 속에 갖고 있었는데, 훗날 이 아이기스토스의 손에 아트레우스는 죽고 만다. 이 전설은 많은 변형을 보이면서 비극 작가들도 즐겨 작품의 소재로 삼았는데, 그 중에서도 세네카의 《티에스테스》가 유명하다.


【아틀라스(Atlas)】 [그리스, 로마] 이아페투스의 아들. 마이아의 아버지. 하늘을 어깨위에 받치고 있다.

그리스 신화의 거인신. 이아페토스와 클리메네의 아들.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의 형제이며 티탄신족(神族)의 한 사람이다. 그 일족이 제우스와 싸워 패하자, 천계를 어지럽혔다는 죄로 어깨로 천공(天空)을 떠받치는 벌을 받게 되었다. 페르세우스가 괴물 고르곤을 퇴치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를 찾아가 잠자리를 청하였다가 거절당하자, 화가 나 고르곤의 죽은 머리를 내보였는데 그것을 본 아틀라스는 놀라서 돌로 변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아틀라스산맥이라고 하는데, 대서양(Atlantic Ocean:아틀라스의 바다)의 어원이 되기도 하였다. 이 이야기는 하늘이 왜 떨어지지 않느냐는 의문에 대한 해석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높은 산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는 고대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또 영웅 헤라클레스가 헤스페리데스의 황금사과를 구하러 갔을 때 아틀라스가 그에게 사과를 따다 주었는데, 그 동안에 헤라클레스가 대신 하늘을 떠받치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들로는 헤스페로스와 히아스가 있고, 헤스페리데스는 그의 딸들이라고 한다. 근세에 와서 만들어진 지도책에 지구를 떠받치고 있는 그의 그림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아틀라스는 ꡐ지도서(地圖書)ꡑ라는 뜻으로도 쓰이게 되었다.



아틀란티스

<Atlantis>


대서양에 있었다고 하는 전설상의 대륙. 플라톤이 《크리티아스》와 《티마이오스》에서 전설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BC 9500년 아틀란티스 대륙은  헤라클레스의 기둥(지브롤터 해협)의 바깥쪽 대해(大海) 가운데 펼쳐져 있었다. 이 대륙은 포세이돈(그리스 신화의 海神)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그의 아내 클레이토와의 사이에 태어난 10명의 아들이 각지를 통치하고 있었다. 수도는 금․은․오리하르콘(대륙 특산의 귀금속)으로 뒤덮인 왕궁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설비와 건물을 갖춘 3개의 육환대(陸環帶)와 바닷물을 끌어들인 3개의 클리크대(帶)가 동심원상으로 에워싸고 있는 도시였다. 풍부한 산물과 주변의 여러 나라에서 들어오는 무역품이나 전리품은 대륙을 크게 번영하게 하였으나 어느날 심한 지진과 화산활동으로 하루 밤낮 사이에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아틀란티스 대륙의 전설은 중세 후기 이후의 대서양 탐험과, 나아가서는 아메리카 대륙 발견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오늘날에도 이 대륙의 실재를 증명하려는 학자들이 있어, 대서양 중앙해령의 일부인 카나리아 제도나 아조레스 제도 등의 화산섬이 이 대륙의 일부라거나, 이들 제도의 동․식물이 유럽이나 아메리카의 동․식물과 닮았다거나, 아메리카 대륙의 고대문명 ꡐ아즈테크 문화ꡑ는 살아남은 아틀란티스인(人)이 만들었다는 등 여러 설이 있다. 지질학적으로 확인되어가고 있는 대륙이동설에 의하면, 구미대륙은 원래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하지만 당시는 인류가 발생하기 훨씬 이전의 일이어서 아틀란티스 대륙의 존재를 부정할 자료는 되지 못한다. 1965년 에게해(海) 남부에 있는 화산섬 테라에 근접한 바닷속에서 가라앉은 고대 성곽(城郭)이 발견되어, 그것이 아틀란티스의 도시가 아닌가 주목되었다. 이러한 전설을 소재로 한 소설로는 P.브누아의 《아틀란티스》(1919), C.도일의 《말라코트 해연(海淵)》(29) 등이 있다.

아티스

<Attis>


그리스․로마 신화 속의 인물로, 프리기아의 미소년. 원래 남녀 양성(兩性)이었던 모신(母神) 키벨레가 거세(去勢)당했을 때, 잘려 떨어진 부분에서 돋아난 편도(扁桃)의 씨에 의해 임신한 하천신(河川神) 상가리오스의 딸 나나에게서 태어났다고 한다. 키벨레는 청년이 된 아티스를 사랑하여 다른 여자와 결혼을 못하도록 그를 정신착란 상태에 빠뜨린 결과, 그는 스스로 거세하고 죽었다. 제우스는 그를 전나무가 되게 하고 피에서는 제비꽃이 피어났다고 전해진다. 원래 아티스는 아도니스와 마찬가지로 겨울에 죽었다가 봄에 부활하는 식물신(植物神)인데, 특히 로마에서 숭배되었으며 춘분(春分)에 행해지는 그의 제사에는 신비적 의식(儀式)이 따랐다.


아페피

<Apepi/Apopi>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거대한 뱀. 아포피라고도 한다. 암흑을 지배하는 광명의 적으로, 매일 밤 태양신 라의 배를 삼키려고 하지만 신들이 그 배를 타고 이를 격퇴시킨다. 이 뱀을 토벌하기 위하여 초로 큰 뱀을 만들어 주문(呪文)을 외면서 그것을 불 속에 던지는 의식이 거행된다. 일식(日蝕)은 아페피의 일시적 승리이며, 낮 동안에 그가 나타나면 거대한 모래폭풍이 일어난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는 괴물 티폰으로, 또 오시리스신화에서는 악신 세트의 변신(變身)으로 나타나며 헤라클레오폴리스 마그나의 창세전설(創世傳說)에서는 라가 큰 고양이가 되어 이 뱀을 정복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아폴로(Apollo)】 [그리스, 로마] 아폴론의 다른 이름.


【아폴론(Apollon)】 [그리스] 뜻은 "미남청년, 파괴자". 태양신. 운동, 예술, 의학, 진실의 신. 제우스와 레토의 아들. 가장 그리적인 신. 파르나소스 산 기슭에 있는 델피 신전은 그의 신탁을 받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리스 신화의 광명․의술․예언․가축의 신. 올림포스 12신 중 하나로, 제우스와 레토의 아들. 여신 아르테미스와는 쌍둥이 동기간이다. 레토는 제우스의 아내 헤라의 질투로 출산할 장소를 찾지 못하다가 델로스섬으로 도망쳐 가 그곳에서 아폴론을 낳았다고 한다. 그리스계(系)의 이름이 아닌 것으로 보아 동방의 소(小)아시아나 북방민족으로부터 이입(移入)된 신이며, 본래는 목자(牧者)의 수호신으로 생각된다. 노미오스(목축의), 리카이오스(이리의), 스민테우스(쥐의) 등의 호칭을 갖고 있는 것은 이리나 쥐로 인한 피해를 막는 힘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 나중에는 그리스적 성격과 문명의 대표적 신이 되어 국가에 있어 중요한 도덕이나 법률을 주관하여, 특히 살인죄를 벌하고 그 더러움을 씻어 주는 힘을 갖고 있다. 또한 예언의 신이기도 하여 델포이를 중심으로 그의 신전(神殿)이 세워져, 무녀(巫女)를 통해 신탁(神託)을 받는 일이 성행하였다. 아폴론은 태양의 신이라고도 하나 이것은 비교적 나중의 일이다. 신화에서는 아폴론신이 태어난 후 얼마 안 되어 델포이에서 대사(大蛇) 피톤을 사살하였다고 하여, 활과 화살이 그의 특징적 무기이다. 사랑의 신화도 많아, 예를 들면 다프네는 아폴론의 구애(求愛)를 피하여 월계수가 되었고, 카산드라는 그의 사랑을 받아 예언의 힘을 얻었으며, 하천신(河川神) 페네이오스의 손녀 귀레네를 사랑하여 아리스타이오스를 낳았고, 테사리아의 왕녀 코로니스와의 사이에서는 아스클레피오스를 얻었으며, 또한 미소년 히아킨토스도 아폴론의 사랑을 받았다. 이 아폴론 숭배는 에트루리아를 거쳐, 남(南)이탈리아의 그리스 식민지로부터 직접 로마로 들어와, 일찍이 로마에는 그의 신전이 세워졌고, 훗날 아우구스투스제(帝)가 아폴론을 특별히 신봉하여 파라티누스의 언덕에 대신전이 세워졌으며, 아폴론 숭배가 성행하였다. 로마신화에서는 아폴로와 동일시된다.


【아프로디테(Aphrodite)비너스(Venus)】 [그리스] 뜻은 "거품에서 태어났다". 미(美), 성욕의 여신. 헤파이토스(Hepaitos)의 아내.

로마신화에 나오는 사랑과 미(美)와 풍요(豊饒)의 여신. 베누스라고도 한다. 원래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채소밭의 여신이었으나, 그 특성이 그리스신화의 아프로디테와 일치하므로 아프로디테와 동일시되었다. 이 여신은 로마시대부터 르네상스시대를 거치면서 특정의 민족신화의 틀을 벗어나, 여성의 원형으로 서양 문학과 미술에서 폭넓게 다루어    졌다.

〔기원과 탄생〕 호메로스에서는 아프로디테가 천공(天空)의 주신(主神) 제우스와 바다의 정령(精靈) 디오네의 딸로 되어 있는데, 헤시오도스에서는 천공의 신 우라노스와 그의 아들 크로노스와의 싸움에서 생긴 것으로 되어 있다. 즉, 크로노스는 어머니 가이아의 음부 속에 숨어 있다가 아버지의 성기(性器)를 낫으로 잘라 바다에 던졌다. 이렇게 하여 바다를 떠다니는 성기 주위에 하얀 거품(아프로스)이 모이고, 그 거품 속에서 아름다운 처녀가 생겨났다. 알몸의 처녀는 서쪽 바람의 신 제피로스에게 떠밀려 키테라섬에 표착(漂着)하였다가 다시 키프로스섬까지 흘러왔는데, 여기서 그녀를 발견한 계절의 여신 호라이가 그녀에게 옷을 입히고 아름답게 꾸민 다음, 여러 신들의 자리로 안내하였다고 한다. 르네상스기(期)의 화가 S.보티첼리의 명작 《비너스의 탄생》은 이같은 탄생 과정을 그린 것이다. 아프로디테의 탄생담(誕生譚)이 남성 성기에서 비롯되어 키프로스와 관련을 갖고, 사랑과 열락(悅樂)의 여신으로서 코린트를 비롯한 각지에서 신앙대상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여신의 기원이 원래 풍요와 재생이라는 원시신앙을 바탕으로 한 오리엔트의 대지모신(大地母神)임을 알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신들 가운데 대표적 여신으로 널리 신앙대상이 되고 있는 이슈타르나 페니키아의 여신 아스타르테는 모두가 농경 재생산과 결부된 풍요 다산(多産)의 여신이면서, 한편 사랑과 열락․음탕의 여신이기도 하였다. 이같은 오리엔트의 원시신앙을 이어받은 아프로디테를 그리스인의 풍부한 상상력과 미적 감수성이 미와 사랑의 여신이라는 하나의 인격으로 만들어냈다.

〔천상성과 지상성〕 아프로디테는 육체의 쾌락을 찬미하며 자신도 신들과 인간들의 사랑에 몸을 맡긴다. 같은 올림포스의 여신이라도 처녀 아르테미스(로마 이름으로 디아나)는 연정(戀情)을 품는 것을 징계하는 데 반해, 아프로디테는 사랑을 권장하고 그 안내역까지 맡는다. 그러나 여신은 여신으로서의 높은 정신성을 갖추고 있다. 여신의 관능은 정신의 지배를 받음으로써 미(美)의 세계에 다다른다. 플라톤은 저서 《향연(饗宴)》에서 이 여신이 지니고 있는 두 가지 특성을 말하는데, 천공신 우라노스로부터 어머니 없이 태어난 우라니아(천상의) 아프로디테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제우스와 디오네의 사이에서 태어난 판데모스(지상의, 대중적인) 아프로디테이다. 앞의 것은 고매한 천상의 사랑을, 뒤의 것은 관능적인 지상의 사랑을 뜻한다. 유명한 부조(浮彫) 《루도비시의 옥좌(玉座)》는 이 플라톤의 해석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 부조의 정면은 두 처녀가 손을 뻗치면서 바다에서 올라오는 아프로디테(아프로디테 아나디오메네)를 묘사하고 있는데, 그 양쪽 측면의 한쪽은 베일을 몸에 두르고 향(香)을 피우는 청초하고 정숙한 모습을, 또 다른 한쪽은 알몸으로 다리를 포개고 즐거운 듯이 피리를 부는 열락의 여신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로마시대의 베누스 게네토리쿠스는 풍요와 생산의 비너스로서, 그녀는 만물의 생명의 근원으로 숭배되었다. 특히, 카이사르(시저)는 BC 46년에 이 여신을 선조로 삼아, 여신들을 모시는 웅장한 신전을 지었다. 이 여신의 상반되는 두 가지 특성은 생산․종족보존이라는 사회적 필연성으로부터 사랑이라는 정신적인 경지로 높여짐으로써 영원한 아름다움에 이른다는 발전적인 방법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된다.

〔사랑의 편력〕 올림포스의 12신(神) 중의 하나이며 미와 사랑과 생산의 수호신인 아프로디테는, 역시 12신 중의 하나로 절름발이에다가 추한 용모를 지녔지만 근면한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로마 이름으로는 불카누스)와 결혼하였다. 제우스는 용모는 추하지만 그의 근면성을 가상히 여겨 그에게 가장 아름다운 여신과 인연을 맺게 한 것이다. 그러나 여신은 얼마 안 가서 군신(軍神) 아레스(마르스)와 정을 통하여 둘 사이에서 에로스(쿠피도 또는 아모르), 안테로스, 디모스, 포보스, 하르모니아가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한편 《오디세이아》에서는 아레스와의 통정(通情)을 알게 된 헤파이스토스가 침대에 투명한 그물을 쳐두었다가 둘의 통정 현장을 붙잡아 신들에게 그 추태를 보인 다음, 다시 그물을 풀어 주자 여신은 키프로스섬으로, 아레스는 트라키아로 도망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포보스는 이 ꡐ도망(逃亡)ꡑ의 의인화(擬人化)일 것이다. 아프로디테의 사랑의 편력에 관해서는 그녀가 미와 사랑과 생산을 관장하는 신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다. 예를 들면, 헬레스폰트(현재의 다르다넬스 해협) 근처에서 신앙되던 생산력을 상징하는 프리아포스(남근)는 앞서 나온 아프로디테와 아레스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주신(酒神) 디오니소스(Bachos:바코스)와 님프의 아들이라고도 하며, 또 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 사이에 태어난 자식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미소년 아도니스와의 사랑은 그리스의 소년애(少年愛)에 그칠 뿐, 아도니스 신화의 어디에도 그에게 아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여신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여 흘린 눈물에서 장미가 피어났다고 한다. 또한 여신은 이다 산중에서 가축을 몰던 안키세스가 마음에 들어 프리지아의 왕 오트레우스의 딸로 변신하여 그에게 접근, 통정을 하여 아이네이아스를 낳았다. 이 아이네이아스가 바로 트로이의 영웅으로 훗날 로마 건국의 시조가 되었다. 이 밖에 12신 중의 미남신 헤르메스와 통정하여 남녀 양성을 가진 헤르마프로디테를 낳았다는 전설은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의 합성어로서의 그 이름을 설명하기 위하여 억지로 만들어낸 이야기인 듯하다. 또한 주신 디오니소스와의 사이에서 결혼의 신 히멘이 태어났다는 전설도, 여신이 결혼과 사랑을 주재하는 신인 데서 생긴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

〔미술사에서의 비너스상〕 비너스상의 원형은 멀리 구석기시대 말기까지 거슬러올라간다. 인류 최초의 조형(造形)으로서 유럽의 산악지방에서 많이 출토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나 《로셀의 비너스》 등 나체 여인상이 바로 그것인데, 흔히 이 여인상을 ꡐ돌의 비너스ꡑ라고 한다. 이 여인상들은 모두가 국부를 극단적으로 과장 표현한 사실로 보아, 생산과 풍요의 상징, 또는 주술적(呪術的) 욕망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어 신석기시대에 들어와 메소포타미아의 니네베(어느웨)나 우르, 알 우바이드에서 출토된 토우(土偶:BC 3700년경), 키클라데스의 대리석 우상(BC 2000~BC 1200) 등도 모두 나체로, 구석기시대의 ꡐ돌의 비너스ꡑ만큼 국부를 과장하지 않았으나, 이것들도 모두가 풍요 다산(多産)의 여신과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여성상이 풍요 다산이라는 원시적․주술적 구속을 벗어나 미의 여신으로서 미술의 역사 속에 크게 부각된 것은 그리스 이후부터이다. BC 7세기에서 BC 6세기에 걸친 그리스 아르카이크기(期)의 여신은, 이오니아풍(風)의 키톤을 걸치고 한 손에는 비둘기나 사과를 든 정숙한 처녀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의 가장 위대했던 시기인 고전시대에는 여신이 고귀한 정신의 밑받침으로 정숙하게 표현되었으나, 이 후반에 들어오면서 여신의 모습은 앞서 말한 플라톤에 있어서처럼 정숙한 천상의 비너스로부터 차차 지상의 비너스로 이행하였다. BC 4세기의 거장(巨匠) 프락시텔레스는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에서 여신을 관능적인 알몸으로 표현하였다. 이 여신상의 그 우아한 모습은 아름다운 여성의 이상상(理想像)이 되어, 그 후 다양한 발전을 보인 나체 비너스상의 원형이 되었다. 그 후 헬레니즘 시대에 이르면, 여신은 한층 지상적․현실적으로 되어, 도이달사스의 《웅크린 비너스》나, 우물에 비친 자신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 《아름다운 엉덩이의 비너스》 등 관능의 기쁨에 취하는 자유분방한 모습이 되고, 마침내는 남녀 양성(兩性)을 갖춘 헤르마프로디테상(像)이 나타난다. 또 한편으로는 《밀로의 비너스》나 《메디치의 비너스》 등 고전 양식에 따른 걸작품도 만들어져 이 시대에는 비너스상에 있어 미술사상(史上) 드물게 보는 다양한 발전을 보였다. 여신을 알몸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내는 표현 형식은 헬레니즘 시대 이후 점차 일반화하여 로마시대에는 물론 나체를 죄악시하던 금욕적인 중세의 그리스도교 세계에서도 《창세기》의 이브나 그 후 막달라마리아 등의 상(像)을 통하여 이어졌다. 그리고 고대 부흥의 기운이 높아진 14․15세기에 이르면, 여신은 일찍이 헬레니즘 시대의 조상(彫像)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답고 관능적인 모습을 르네상스 회화 속에 다시 발전시켰다. 예를 들면, C.조르조네는 그의 명작 《잠자는 비너스》에서 자연의 대기 속에 꽃과 같은 육체를 화면 가득히 드러누운 모습으로 묘사하였고, V.티치아노는 《우르비노의 비너스》 《큐피드와 비너스》 《성애(聖愛)와 속애(俗愛)》 등을 그림으로써, 여신의 이름을 빌어 풍만한 여성의 육체를 찬미하였다. 이같은 경향은 시대가 흐름에 따라 더욱 현저해져, 근대 회화의 한쪽에서는 이 여신을 중심으로 한 나체 여인상을 가지고 회화의 한 장르를 이루었다. 또한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비너스가 손에 들고 있는 성스러운 것 가운데, 동물로는 비둘기․백조․제비․참새이고, 식물로는 천인화(天人花)․장미․모과․사과로 되어 있다.

아피스

<Apis>


고대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성우(聖牛). 고대 이집트인(人)들은 많은 동물을 신으로 숭배하였는데, 아피스는 고왕국시대(古王國時代)의 수도 멤피스에서 시신(市神) 프타하에 대한 성수(聖獸)로 숭배되었다. 프타하 신전의 인접지에서 사육되다가 죽은 후에는 미라로 만들어져 지하묘지 등에 정중하게 매장되었다. 멤피스 신전은 그리스인(人)들이 세라피움이라고 불렀는데, 그 까닭은 아피스가 죽어 명부의 신 오시리스와 결합, 세라피스라는 신이 되었다고 믿은 탓으로, 그 무덤을 세라피움이라 하였다. 그러나 미라를 포함한 지하묘지는 1850년 프랑스의 학자 A.D.마리에트에 의해서 멤피스의 교외 사카라에서 발견되었다.


【악시네(Axine)】 [그리스] 흑해. 라틴어로는 에욱시네(Euxine)


【악타이온(Aktaeon)】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냥꾼. 아리스타이오스와 카드모스의 왕녀 아우토노의 아들이다. 사냥의 명수였는데, 어느날 50마리의 사냥개를 데리고 키타이론의 산중에서 사냥을 하던 중, 처녀신 아르테미스가 물의 요정(妖精:님프)들과 함께 목욕하는 장면을 엿보다가, 여신의 노여움을 사서 사슴이 되었고 결국은 사냥개들에게 쫓겨 죽었다. 일설에는 악타이온이 자기의 사냥솜씨가 아르테미스보다 더 낫다고 뽐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또 여신을 아내로 삼으려고 넘본 때문이었다고도 한다. 크레타의 제우스나 페니키아의 아도니스와 마찬가지로 젊어서 야수에 의해 죽은 귀공자 이야기이다. 오비디우스의 《메타모르포세이스》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후대에 와서 많은 미술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안드로마케

<Andromache>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테베의 왕 에티온의 딸.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의 아내가 되었는데, 헥토르가 아킬레우스에게 패하여 죽고, 트로이가 함락당한 후에는 아들 아스티아낙스마저 그리스군에 의하여 죽었다. 그녀 자신은 포로가 되어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의 첩이 되었는데, 그와의 사이에 몰로소스․피벨로스․페르가모스 등 세 아들을 낳았다. 자식이 없는 본처 헤르미오네는 남편이 출타 중에 아버지 메넬라오스와 음모하여 안드로마케와 그의 아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안드로마케와 그의 아들은 가까스로 죽음을 면하였으나 네오프톨레모스는 암살되었으며, 안드로마케는 나중에 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헬레노스의 아내가 되었다고 한다. 에우리피데스는 그녀의 이름을 제명(題名)으로 하여 비극 《안드로마케》를 썼고, 라신도 같은 이름의 작품을 썼다.


안드로메다

<Andromeda>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티오피아왕 케페우스와 왕비 카시오페이아의 딸. 안드로메데라고도 한다. 어머니인 카시오페이아가 자기 딸이 바다의 님프인 네레우스보다도 아름답다고 자랑하였기 때문에 해신(海神) 포세이돈이 노하여 해일(海溢)을 일으키고 괴물을 보내어 나라를 황폐하게 만들었다. 왕은 신탁(神託)에 의해 나라를 구하고자, 딸을 해변의 바위에 쇠사슬로 묶어 괴물의 희생이 되게 할 참이었다. 때마침 괴수(怪獸) 고르곤 퇴치를 마치고 돌아오던 페르세우스가 그녀에게 반하여 그녀와 결혼할 것을 조건으로 괴물 메두사와 싸웠는데, 괴물은 페르세우스에 의하여 돌로 변하였고 안드로메다의 목숨도 구하게 되었다. 이때 이미 그녀의 약혼자로 내정되어 있던 숙부인 피네우스도 함께 페르세우스를 공격하였으나, 페르세우스가 내미는 메두사의 목을 본 순간, 그도 역시 돌로 변하였다. 그녀는 7명의 자식을 낳았으며, 죽어서는 페르세우스와 함께 성좌(星座)가 되었다고 한다. 극(劇)으로는 소포클레스의 《안드로메다》가 가장 오래된 것 같으나 유실되었으며, 에우리피데스의 《안드로메다》가 단편적으로나마 남아 있는데, 그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한다.


안타이오스

<Antaio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 해신(海神) 포세이돈과 대지(大地)의 여신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리비아에 살면서 지나가는 길손에게 격투를 청하여 진 상대를 죽이곤 하였다. 그는 어머니인 대지에 발을 붙이고 있는 한 절대로 지는 일이 없으며, 땅에 쓰러지면 더욱 힘을 얻는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이런 이야기는 비교적 후일에 추가된 전설이다. 마지막에는 영웅 헤라클레스가 그와 승부를 겨루었는데, 그는 안타이오스가 땅에 닿지 않도록 공중으로 들어올려 그의 목을 죄어 죽였다고 한다.


【안티고네(Antigone)】 [그리스] 오이디푸스(Oedipus)의 딸.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의 딸. 가장 일반적인 전설에 의하면 오이디푸스와 그의 어머니 이오카스테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으로, 에테오클레스, 폴리네이케스라는 두 형제와 여동생 이스메네가 있었다. 자신의 손으로 눈을 찔러 소경이 되어 왕국을 떠난 비극의 부왕(父王)을 따라 여러 나라를 방황하다가 아버지가 콜로노스의 땅에서 죽은 뒤 다시 테베로 돌아왔다. 그뒤 두 형제인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는 왕위를 둘러싸고 서로 싸우다가 둘이 모두 죽었는데, 이때 새 지배자가 된 숙부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를 애국자로, 폴리네이케스를 역적으로 취급하여 폴리네이케스의 매장을 허락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시체를 들에 내다버려 새와 짐승의 밥이 되게 하였다. 그리고 이를 거역하는 자도 사형에 처한다고 포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안티고네가 형제의 시체를 갖다가 매장하자, 노한 크레온은 그녀를 지하감옥에 가두었다. 그러자 그녀는 거기서 목을 매어 죽었고 그뒤 그녀의 약혼자로 내정되어 있던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도 자신의 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크레온의 아내 에우리디케도 자해(自害)를 함으로써 크레온은 파멸에 이르렀다고 한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BC 441)가 유명한데, 원래는 테베 기원(起源)의 전설은 아닌 듯하다.



안티오페

<Antiope>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성. 안피온과 제토스의 어머니이다. 사티로스의 모습으로 둔갑한 제우스와 관계를 맺은 뒤 아버지의 노여움이 두려워 도망쳤다. 시키온 왕 에포페우스와 결혼하였으나 그녀의 백부(伯父)인 리코스는 에포페우스를 살해하고 그녀를 테베로 데리고 가려고 하였다. 도중에 그녀는 쌍둥이 형제인 안피온과 제토스를 낳았다. 안티오페는 또한 전쟁의 신 아레스와 아마존족(族)의 여왕 사시에서 태어난 딸의 이름이기도 한다. 그리스의 영웅 테세우스의 아내이며, 히폴리토스의 어머니이다.


알케스티스

<Alkestis>


그리스 신화 속의 미올코스의 왕. 펠리아스의 딸. 테살리아의 왕 아드메토스의 아내. 펠리아스는 딸의 구혼자에게 사자와 멧돼지를 동시에 전차에 붙들어매야 한다는 난제(難題)를 주었는데, 아드메토스가 아폴론의 도움으로 이를 해내어 결혼에 성공하였다. 일찍이 아폴론이 인간 아드메토스의 하인으로 있을 때 아드메토스가 아폴론을 따뜻하게 대해 준 데 대한 사례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아폴론은 아드메토스의 수명이 다했을 때도 운명의 여신 모이라이에게서 친척 가운데 한 사람이 그의 목숨을 대신할 수 있다는 약속을 얻어냈다. 그러나 아드메토스가 죽을 날이 왔을 때 늙은 부모조차 아들 대신 죽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젊은 아내 알케스티스가 남편의 죽음을 대신하게 되었다. 마침 그때 헤라클레스가 찾아와서 아드메토스는 아내의 죽음을 숨기고 손님을 환대하였는데, 결국 이 사실을 알게 된 헤라클레스가 묘지로 달려가 사신(死神)과 격투, 알케스티스를 되찾아 아드메토스에게 돌려주었다. 이 이야기는 에우리피데스의 《알케스티스》에 다루어져 있다.



알크마이온

<Alkmaion>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 암피아라오스와 에리필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테베 원정에 참가하였고, 그후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어머니를 죽였기 때문에 정신착란을 일으켜 복수의 여신 에리니스에 쫓기면서 방랑을 계속한다. 그는 프소피스 왕 페게우스를 찾아가 왕녀 아르시노에를 아내로 맞았으나, 어머니를 살해한 죄를 씻을 길이 없어 그로 인하여 나라는 굶주림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다시 방랑을 계속하다가 마침내 하천신(河川神) 아켈로스 곁에 이르러 비로소 죄를 씻을 수 있게 되어, 하천신의 딸 칼리로에와 결혼하였다. 그런데 그녀는, 알크마이온이 일찍이 아르시노에에게 준 하르모니아의 목걸이와 옷을 원하였기 때문에, 그는 책략을 꾸며 페게우스왕으로부터 목걸이를 돌려받았다. 그러나 나중에 이 사실을 안 페게우스왕은 자기의 아들을 시켜 그를 살해하도록 하였다. 남편을 여읜 칼리로에는 제우스에게 남편의 원수를 갚을 수 있도록 두 아들을 빨리 성장시켜 주기를 간청하였으며, 이 간청이 받아들여져 두 아들 암포테로스와 아카르난이 급성장하여 페게우스왕을 토벌하였다.


알크메네

<Alkmene>


그리스 신화의 영웅 헤라클레스의 어머니. 미케네의 왕 엘렉트리온의 딸로 암피트리온과 결혼하였으나 남편이 실수로 왕을 죽였기 때문에, 그를 용서하는 조건으로 다른 나라 사람의 손에 살해된 자기 형제의 원수를 갚아 줄 것을 남편에게 요구하였다. 그래서 암피트리온은 복수의 원정길을 떠났는데, 그가 없는 사이에 암피트리온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그에게 찾아온 제우스와 사랑을 나누었다. 암피트리온이 귀국 후 이 사실을 알고 알크메네를 죽이려 하였지만 제우스의 방해로 뜻을 못 이룬다. 결국 그녀는 제우스의 아들 헤라클레스와 암피트리온의 아들 이피클레스를 낳았다. 그녀는 죽어서 특별한 인간에게만 허용되는 정복(淨福)의 섬으로 옮겨졌다고 전해지며, 특히 테베 등지에서 숭배되었다.


【암브로시아(ambrosia)】 [그리스] 넥타르(Nectar)와 함께 신의 음료


암피온

<Amphion>


그리스 신화 속의 제우스와 안티오페의 아들. 제토스와는 쌍둥이 형제간이다. 어머니는 숙부뻘인 테베의 왕 리코스에 의해 유폐되고, 버려진 그들 형제는 어느 목양자(牧羊者)가 주워다가 길렀다. 성장한 뒤 테베를 공격하여 나라를 차지하고 어머니를 괴롭히던 리코스와 그의 아내 디르케를 죽여 복수하였다. 형제는 테베에 성벽을 쌓아 나라를 굳건히 하였는데, 이때 헤르메스의 신으로부터 하프를 선물받은 암피온이 음악을 연주하자 많은 돌이 절로 움직여 성벽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는 니오베를 아내로 맞았으나 훗날 자식들과 함께 아폴론의 화살에 맞아 불행한 최후를 마쳤다.



암피트리온

<Amphitryon>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알카이오스의 아들이자 페르세우스의 손자. 실수로 숙부이며 장인뻘인 엘렉트리온을 죽여 이를 보상하는 뜻에서 처남의 원수를 갚기 위한 원정을 계획하고, 테베의 왕 크레온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왕은 그 조건으로, 당시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는데도 도저히 잡히지 않는 카드메이아의 암여우를 퇴치해 줄 것을 그에게 요구하였다. 그래서 그는 케팔로스를 찾아가 역시 절대로 사냥감을 놓치지 않는 사냥개 라이라푸스를 빌어 여우를 몰게 하였다. 이 두 짐승의 대결에서 제우스는 양쪽을 모두 돌이 되게 함으로써 해결해 주었다고 한다. 또한 그의 원정 중 아내 알크메네는 그의 모습으로 변신해 나타난 제우스와 하룻밤을 지내고 제우스의 아들 헤라클레스를 낳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소재로 한 플라우투스, 몰리에르, 크라이스트, 지로두 등의 극(劇)이 유명하다.


◀참 조▶

☞알크메네



【암피트리테(Amphitrite)】 [그리스] 포세이돈의 아내. 거인족, 바다의 손녀.  바다를 관장하는 넬레우스의 딸로, 바다에서 자매들과 춤추며 놀고 있는데 포세이돈의 눈에 띄어 납치된 후 그의 아내가 되었으며, 또 지중해의 여신이 되었다. 해저의 궁전에 살면서 트리톤을 낳았다. 다른 전설에 따르면 포세이돈의 청혼을 받고 수줍어 숨었다가 돌고래들에게 붙잡혀서 도리없이 포세이돈과 결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별자리 ꡐ돌고래자리ꡑ는 그녀의 이름으로도 불린다.



【앙키세스】 [그리스] 아이네이아스의 아버지.



【야나(Jana)】 [로마] 야누스의 아내.



에레보스

<Erebo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암흑의 신. 계보상으로는 가장 원초에 가까워 흔히 혼돈(混沌)으로 해석되는 카오스에서 태어난 아들로, 암흑을 뜻한다. 역시 카오스에서 태어난 오누이뻘인 닉스(밤의 여신)와 맺어져 낮을 뜻하는 헤메라와 밝은 하늘을 뜻하는 아이테르를 낳았다. 신화에서도 아무런 인격적 에피소드를 갖지 않고, 암흑 가운데서도 특히 명부(冥府)인 하데스에 이르는 도중의 어두운 공간을 가리키는 데 쓰이고 있다.


【에레부스(Erebus)】 [그리스, 로마] 오디세우스가 방문한 곳.



【에레크테우스(Erechtheus)】 [그리스, 로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설상의 인물로 고대 그리스․아테네의 왕. 판디온과 제욱시페(판디온의 이모)의 아들이고, 부테스와 쌍둥이 형제이다. 트리키아의 왕 에우몰포스가 침입해 왔을 때 신탁에 좇아 딸 크토니아를 제물로 바치고 승리를 얻었다. 일설에는 에레크테우스는 아티카의 기근 때에 이집트에서 와서 밀 재배법을 가르쳐 준 공으로 왕이 되었다고도 한다.

에리크토이우스 참조.


【에로스(Ero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신(神). 이성간의 사랑을 뜻하는 말이다. 로마 신화에서는 아모르 또는 큐피드라고 한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神統記)》에서 신들을 낳는 원동력으로서의 신, 따라서 아프로디테와 결부된 즐거운 연애의 신으로 표현된 이후, 이 이중(二重)의 뜻이 철인(哲人)과 시인들 간에 오늘날까지 지속되어 오고 있다. 카오스(혼돈)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닉크스(밤)의 알에서 태어났다고도 하는 에로스는, 신들과 인간을 모두 지배하는 위대한 신으로 혼돈 속에서 질서를 낳는 원동력, 남성과 여성을 결합시켜 새로운 세대를 낳게 하는 사랑의 법으로 알려졌다. 그의 계보(系譜)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그 중에서도 아프로디테의 아들이라는 설이 가장 널리 알려졌다. 또한 인간의 전생명을 움직이는 위대한 힘으로서의 에로스(사랑)는 프시케(Psyche:魂)의 관념과 결부되어 헬레니즘 시대에는 ꡐ혼ꡑ을 괴롭히는 ꡐ애욕의 법ꡑ이라는 관념이 생겨, 흔히 작은 공예품에 소녀를 괴롭히는 소년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때로는 소녀에게 나비의 날개를, 소년에게는 새의 작은 날개를 달았다. 비교적 후대의 이야기에 나오는 에로스는 활과 화살을 가진, 장난기 많은 연애의 신으로 알려져, 그의 황금 화살을 맞은 자는 격렬한 사랑을 느끼고, 납으로 된 화살을 맞은 자는 사랑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한다. 어느 날 에로스는 어머니 아프로디테의 노여움을 산 아름다운 프시케를 혼내주려고 갔다가 실수로 자신이 황금 화살에 찔려 마침내 프시케를 아내로 삼았다. 신으로서의 에로스에 대한 숭배는 보이오티아의 테스피아이가 가장 오래되어, 자연석의 모습으로 모셔졌고, 헤레스폰트의 파리온에서도 석주(石柱)의 모습으로 숭배되었다.



에리고네

<Erigone>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리오스의 딸. 디오니소스에게 포도주 만드는 법을 배운 아버지가 이웃사람들에게 포도주를 먹였는데, 포도주에 취해버린 그들이 독을 마셨다고 오해하여 그를 죽였다. 애견(愛犬) 마이라의 안내로 아버지의 사체를 찾아낸 그녀는 분함과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나무에 목을 매어 죽었다. 신이 노하여 주술(呪術)로써 아테네의 많은 여성들로 하여금 뒤따라 목매어 자살하도록 하였다. 그 원인을 안 아테네인들이 죄인을 잡아 처형하고 에리고네를 위하여 제사를 지냄으로써 사태는 진정되었다. 그녀는 후에 처녀별자리가 되었다.


【에리녜스(Erinyes)】 [그리스] 분노의 신. 오레스테스를 쫓아다녔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복수(復讐)의 여신들. 이 여신들은 티시포네, 알렉토, 메가이라 등의 세 에리니스(에리니에스의 단수)이다. 대지(大地)의 여신 가이아, 또는 밤의 여신 닉스의 딸들이라 하며, 온갖 죄를 처벌하지만 특히 근친(近親)살해에 복수를 가하며, 현세에서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에게도 벌을 준다. 지하세계에 사는데, 그 모습은 날개가 있고 눈에서는 피가 흐르며, 머리에는 뱀이 휘감겨 있고, 횃불을 손에 든 무서운 처녀로 표현된다. 아테네 사람들은 그녀들을 두려워하여 에우메니데스(착한 여신들)라고 불렀다. 로마인들은 이 여신들을 푸리아이 또는 디라이라고 불렀다.



【에리스(Eris)】 [그리스] 뜻은 "불화". 불화의 여신. 그리스 신화에서 싸움․불화의 여신. 밤의 여신 닉스의 딸이며 군신(軍神) 아레스의 누이동생이다. 싸움을 즐겨 항시 군신을 따라다니면서 전장(戰場)이면 어디에나 나타난다. 페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장에 황금의 사과를 던져 트로이전쟁의 불씨를 만들기도 한 그녀는, 경쟁․불화 등을 포함한 넓은 의미에서의 싸움의 신인데, 로마 신화에서는 디스코르디아가 이 여신에 해당한다.


에리크토니오스

<Erichthonios>


그리스 신화의 아테네의 왕. 헤파이스토스와 대지(大地) 사이에서 태어났다. 여신 아테나가 무기를 주문하기 위하여 헤파이스토스를 찾아갔는데, 아내인 아프로디테와 오랫동안 관계를 갖지 못한 그는, 아테나를 보자 범하려고 덤벼들었다. 도망하는 여신을 따라잡았으나 거절당하고 그의 정액은 여신의 발 앞에 떨어졌다. 여신은 이 정액을 털로 닦아 대지에 던졌더니 대지가 헤파이스토스의 정액을 흡수하고 잉태하여 에리크토니오스를 낳았다고 한다. 아테나는 그를 불사의 몸으로 만들고자 신들 몰래 길러서 아테네의 왕 케크롭스의 뒤를 잇게 하였다고도 하고, 혹은 암픽티온을 추방하고 왕이 되었다고도 한다. 여러 가지 점에서 에레크테우스와 혼동된다.


【에마티아(Emathia)】 [그리스, 로마] 마케돈, 테살리아, 파르살리아를 가리키는 말.


【에베누스(Evenus)】 [그리스, 로마] 마르페사의 아버지.


【에어리얼(Aeriel)】 [그리스] 신의 사자(not masse). 공기의 요정.


에오스

<Eo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새벽의 여신. 로마 신화의 아우로라에 해당한다. 티탄 신족(神族)의 히페리온과 테이아(또는 팔라스)의 딸로, 태양신 헬리오스와는 오누이, 월신(月神) 셀레네와는 자매간인데, 같은 티탄족인 아스트라이오스의 아내가 되어 바람과 별의 어머니가 되었다. 매일 아침 태양이 떠오르면 ꡐ장미빛 손가락ꡑ으로 밤의 장막을 거두는 여신으로 알려졌다. 군신(軍神) 아레스를 사랑하다가 아프로디테의 분노를 샀는데, 그 벌로 누구든 젊은이를 사랑하게 되면 인간세상에서 그를 앗아가 버렸다. 그중에서도 티토노스와의 이야기가 유명하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 중에 멤논이 있는데, 멤논은 헥토르가 죽은 뒤 트로이를 도우러 갔다가 아킬레우스와 싸워 죽었다. 에오스는 그를 동쪽으로 옮겨와 제우스에게 간청하여 소생시킨 다음 불사(不死)의 존재가 되게 하였다.


【에우로파(Europa)】 [그리스, 로마] 유럽의 어원이 되는 요정 이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 페니키아의 왕 아게노르(또는 포이닉스)의 딸. 그녀가 해변에서 놀고 있을 때 아름다운 황소의 모습으로 둔갑하여 접근한 제우스의 등에 실려 크레타섬까지 갔다. 그리하여 제우스와의 사이에 미노스, 라다만티스, 사르페돈을 낳았다. 나중에 크레타의 왕 아스테리오스의 아내가 되었는데, 제우스는 그녀에게 섬을 지키는 청동의 인간 탈로스와 사냥감을 절대로 놓치지 않는 사냥개, 그리고 과녁을 빗나가는 일이 없는 투창(投槍)을 주었다. 그녀는 죽은 뒤 여신으로서 숭배되었고, 황소는 하늘로 올라가 황소자리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티로스의 아게노르왕과 텔레파사의 딸로서 카드모스․킬릭스의 자매이다. 제우스신은 자매 중 가장 아름다운 에우로페에게 마음이 끌려 하얀 수소로 변신하여 접근하였다. 처음에는 무서워했던 에우로페가 장난삼아 그 수소 등에 올라 타자 갑자기 수소는 달려서 바다를 건너 크레타섬에 상륙하였다. 둘은 고르틴샘 옆에서 교접하고 그녀는 미노스․라다만티스․사르페돈을 낳았다. 제우스는 그녀에게 청동거인 탈로스․사냥개․투창 등을 주었다. 나중에 그녀는 크레타섬의 아스테리온왕의 아내가 되었고 세 자식들은 그의 양자가 되었다. 그녀는 죽은 뒤 신격화되었고 수소는 황소별자리가 되었으며 소를 타고 왔다는 지역은 그녀의 이름을 따서 유럽이 되었다고 한다


【에우리노메】 [그리스] 크로누스 이전에 오피온과 함께 거인족을 다스린 신. 뜻은 "좋은 이름을 가진 자". 태초에 만물을 낳은 여신. 물뱀 오피온과 관계하여 온갖 생물을 낳았다. 오피온과 올림포스에서 살다가 발꿈치로 오피온의 머리를 짓밟아 죽인다.


【에우리디케(Euridice)】 [그리스] 오르페우스의 아내.


【에우리알레(Euryale)】 [그리스, 로마] 고르곤중의 하나. (메두사, 스테노 참조)


【에우몰푸스(Eumolpus)】 [그리스, 로마] 트라키아의 가수. 에우몰푸스의 후손들이 엘레우시스에 있는 데메테르의 사제가 되었다.


【에일레이티이아(Eileithyia)】 [그리스] 일리티이아의 다른 이름. 루키나 참조.


【에코(Echo)】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숲과 샘의 님프. ꡐ메아리ꡑ를 뜻한다. 제우스가 요정(妖精)들과 바람을 피우고 있는 동안, 에코가 헤라에게 계속 말을 걸어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였으나, 마침내 이를 알아채고 화가 난 헤라는 에코가 다른 사람의 말만을 반복하고 그 밖에 아무 말도 못하게 만들었다. 훗날 미소년 나르키소스를 사랑하였지만, 자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전할 수 없어 결국 거절당하자 상심한 나머지 야위어 가다가 마침내 목소리만 남아 메아리가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목신(牧神) 판의 사랑을 거절하였기 때문에, 성난 판이 양치기들을 모두 정신착란 상태에 빠뜨려 그녀를 갈갈이 찢게 하였는데, 에코의 신체 조각들을 대지가 숨겨준 덕분에 메아리만은 남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자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대표적 신화라고 할 수 있다.


【에키드나(Echidna)】 [그리스, 로마] 반은 사람, 반은 뱀. 케르베루스, 네메아 사자, 히드라의 어머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半人半獸)의 괴물. 포르키스와 케토 또는 크리사오르와 칼로에, 또는 타르타로스와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났다고도 한다. 하반신이 뱀 모양으로 생긴 여자로, 괴물 티폰에 의해 괴수 키마이라, 명계(冥界)의 파수견 케르베로스, 스핑크스, 네메아의 사자, 헤스페리데스의 황금사과를 지키는 용 라돈,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아먹던 독수리 등 많은 괴물을 낳았다고 한다. 잠자는 동안에 괴물 아르고스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에페우스(Epeus)】 [그리스, 로마] 목마를 만든 사람.


【에피레(Ephyre)】 [그리스, 로마] 코린트 참조.


【에피메니데스(Epimenides)】 [그리스] 피라의 아버지. 판도라에게 선물을 했다.


【에피메테우스(Epimetheus)】 [그리스] 뜻은 "나중에 생각하는 사람". 프로메테우스의 형제. 거인족. 판도라(Pandora)의 남편.

그리스 신화 속의 이아페토스와 클리메네의 아들. 프로메테우스의 형제로서, 판도라를 아내로 맞아 데우칼리온의 아내가 된 빨간머리의 피라를 낳았다.



엔디미온

<Endymion>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 제우스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손자라고도 하며, 에리스의 왕이었다고도 한다. 그가 라드모스 산상에서 잠자고 있을 때, 달의 여신 셀레네가 그의 아름다움에 끌려 천상에서 내려와, 그의 곁에 누워서 젊은이를 영원히 편안하게 잠들게 함으로써 언제까지나 계속 그를 사랑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여기서는 그가 젊은 목양자(牧羊者)로 되어 있다. 또한 여신은 그와의 사이에서 50명의 딸을 낳았다는 전설이 있으나, 이는 올림피아드 축제의 기간이 50개월인 데서 만들어진 이야기로 생각된다.


【엘렉트라(Electra)】 [그리스] 아가멤논의 딸. 필라데스의 아내.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의 딸. 같은 이름의 여신이 셋이 나온다. 그녀에 관한 이야기는 신화나 전설에는 나오지 않고, 호메로스(BC 800년경)의 작품에서도 그녀의 동생 오레스테스에 관해서만 언급되어 있을 뿐, 그녀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그리스의 3대 비극시인(BC 5세기)에 의해 처음으로, 아트레우스가(家)의 피비린내나는 이야기에서 중요한 역할로 나온다. 트로이 원정의 총지휘관이며 그녀의 아버지인 아가멤논은 10년의 출타 끝에 고향으로 개선하였으나, 그날 왕비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간부(姦夫) 아이기스토스의 손에 살해된다. 아버지의 살해자들로부터 모진 학대를 받던 엘렉트라와, 조국을 떠나 망명 중에 있던 동생 오레스테스가 힘을 합쳐 복수를 한다. 아이스킬로스의 《공양하는 여자들》에서는 오레스테스가 주인공이고, 엘렉트라는 전반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으나 오레스테스의 비극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소포클레스 작 《엘렉트라》에서는 그녀가 중심인물로서 활약하고 있다. 동생이 죽었다는 오보(誤報)를 접하고 절망한 그녀는 어머니를 살해하려고까지 결심하지만 사태는 급전(急轉), 동생과 다시 만나 기뻐하는가 하면 동생을 격려하여 아버지의 복수를 하게 한다. 에우리피데스 작품 《엘렉트라》에서 그녀는 가난한 농부와 강제로 결혼하게 되어 어머니를 더욱 미워한다. 귀국한 동생과 다시 만나, 동생은 아이기스토스를, 엘렉트라는 어머니를 유인하여 직접 살해한다. 이같은 그녀의 아버지에 대한 집념과 어머니에 대한 증오는 훗날 ꡐ엘렉트라 콤플렉스ꡑ라는 말을 낳게 하였다. 따라서 E.오닐의 《상복(喪服)에 걸맞은 엘렉트라》에서도, 딸의 그같은 어머니에 대한 콤플렉스를 묘사하고 있다. 이 밖에도 대양(大洋)의 신 오케아노스와 그의 자매인 테티스 사이에 난 딸 및 거인 아틀라스와 오케아노스의 딸 플레이오네 사이에 난 딸 등, 동명의 여신이 나온다.


【엘리시움(Elysium)】 [그리스, 로마] 공화정 시절 로마인들은 명계와 죽은 사자의 허상인 그림자(shades)의 존재를 믿었지만 내세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인이나 로마인 모두 어떤 사람은 신들이 특별히 인정하여 사후 엘리시움이라는 곳에 살 수 있는 영광을 받는다고 믿었다. 그곳에서 피를 마시면 인간의 감정과 욕망을 다시 경험할 수 있었다.


엘리시온

<Elysion>


그리스 고대 신앙에 나오는 선경(仙境). 제우스의 특별한 대우를 받은 영웅이 이 세상에서의 생이 끝난 후 안락한 불사(不死)의 생활을 보내는 곳이다. 세계의 서쪽 끝 오케아노스 옆에 있으며, 시원한 미풍이 끊이지 않는 온화한 기후의 낙원이다. ꡐ금발머리를 한ꡑ 라다만테스가 이 곳에 모이는 영웅들을 다스린다. 엘리시온이 나타나는 최초의 문헌은 《오디세이》 제4권으로, 헤시오도스는 이 낙원을 ꡐ지복자(至福者)들의 섬ꡑ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사후(死後) 세계인 하데스와는 성질이 전혀 다른 이 낙원은 아마도 미노아 문명으로부터 이어받은 것이 아닌가 여겨지고 있다.


【예테르(aether)】 [그리스] 신적인 힘으로 덮여있는 대기의 상층부나 신을 둘러싸고 있는 공기. 또한 특히 청명한 하늘을 뜻하기도 했다.


【오디세우스(Odysseus)】 [그리스, 로마] 폴리페무스와 모험. 아이올루스 방문. 아테나가 도움. 칼립소가 감옥이 가둠. 키르케가 풀어줌. 이레부스를 방문. 사이렌으로부터 도망. 아킬레스의 무기를 상속. 이노가 구해줌. 트로이전에 참전. 나우시카가 구해줌. 스킬라와 카리브디스를 통과. 페넬로페의 구혼자들을 살해. 이타카로 귀환. 태양의 복수. 테이레시아스의 상담. 제우스가 구해줌.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라틴명은 울릭세스(Ulyxes) 또는 울리세스(Ulysses)이다. 이오니아해(海)의 작은 이타케섬의 왕자이며 페넬로페의 남편이다. 트로이전쟁에의 출진을 처음에는 미친 척하고 거부하였으나, 일단 전쟁에 참가하자 그리스군(軍)의 패주(敗走)를 저지하는 등 뛰어난 무장으로서 활약하였다. 아킬레우스가 죽고 그가 쓰던 무구(武具)를 가장 용감한 사람에게 물려주게 되었을 때, 그는 아이아스와 겨루어 이기고 그것을 차지했다. 후에 목마(木馬) 속에 병사를 숨기는 꾀를 써서 트로이를 함락시켜 헬레네를 구출하였으나, 고향으로의 개선길에 거인 폴리페모스에 의해 동굴에 갇히기도 하고, 마녀 키르케에 의하여 부하가 돼지로 변하기도 하고, 세이레네스의 요염한 노래의 유혹을 받는 등 위험을 무릅쓰면서 20년간의 방랑 끝에 겨우 고향에 다다랐다. 그런데 그가 없는 사이에 많은 젊은이들이 밤낮으로 잔치를 베풀고, 그의 아내 페넬로페에게 청혼하며 승낙을 재촉하였다. 그녀가 더 이상 견뎌낼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오디세우스가 그들 앞에 나타나 그들을 모조리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오디세우스(Odysseus)】 [그리스] 라틴어로 울리세스(Ulysses). 전설시대에 이타카(Ithaca)의 왕. 그는 호메로스(Homer)의 일리아드(Iliad)의 주요 인물중 한 명이며, 호메로스의 오디세이(Odyssey)의 주인공이다. 천성적으로 다재다능하고 영리하며 속임수에 능했다. (속임수는 고대인에게 나쁘게만 생각되지 않았다.) 그는 또한 위대한 전사이기도 했다. 자신의 활은 아무도 구부려 시위를 걸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신체적으로는 붉은 머리, 왼손잡이, 회색 눈동자, 앉아 있는 것이 서있는 것 보다 커 보일 정도로 짧은 다리의 소유자였다. 트로이(Troy, Ilium)에서 10년간 싸우고 살아남았으며, 전쟁이 끝나자 트로이의 프리암(Priam) 왕의 아내 헤카베(Hekabe, Hecuba)를 전리품으로 삼아 고향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우는 소리에 지쳐 곧 그녀를 팽개쳤다. 그후 지중해 곳곳을 누비며 10년간 놀라운 모험을 하게 된다. 10년이 지나 (20년간 집을 떠나 있었다) 그는 이타카로 돌아온다. 그의 아내 페넬로페(Penelope)와 아들 텔레마쿠스(Telemachus), 개 아르구스(Argus)는 충직하게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한 첫 일은 활에 시위를 걸어 일련의 도끼구멍을 통과시키는 것이었다. 그 다음 그는 그의 강력한 무기를 아내의 끈질긴 구혼자들에게 겨누어 모두 죽였다. 그후 그는 페넬로페와 정착하여 행복하게 살았다.


【오레스테스(Orestes)】 [그리스, 로마] 아가멤논의 아들.


【오르쿠스(Orcus)】 [로마] 플루토의 별칭. 뜻은 "죽음"


【오르티아(Orthia)】 [그리스, 로마] 아르테미스의 이름.


【오르페우스(Orfeus)】 [그리스] 유명한 음악가. 에우리디케(Euridice)의 남편.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고(最古)의 시인․악인(樂人). 트라키아의 왕 오이아그로스와 칼리오페 사이에 난 아들로(일설에는 아폴론의 아들로 전해지고 있다), 아폴론에게서 하프[竪琴]를 배워 그 명수가 되었는데, 그가 연주하면 목석(木石)이 춤을 추고 맹수도 얌전해졌다고 한다. 또 아르고호(號)의 원정에 참가하여 하프를 타서 폭풍을 잠재우고, 안테모에사 섬에서 마녀 세이렌들의 요사스런 노래를 하프 연주로 물리침으로써 배의 안전을 도모하였다. 그는 님프의 하나인 에우리디케를 아내로 맞아 극진히 사랑했으나, 그녀는 한 청년에게 쫓겨 도망하던 중 독사에게 발목을 물려 죽었다. 이를 슬퍼한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찾아 명계(冥界)로 내려가 하프 솜씨를 발휘하여 그의 연주에 감동한 명계의 왕 하데스로부터 아내를 데리고 돌아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그러나 지상에 돌아갈 때까지는 아내를 돌아보지 말라는 약속을 어긴 탓으로, 에우리디케는 다시 명계로 사라진다. 오르페우스는 아내의 죽음을 몹시 슬퍼한 나머지, 다른 여자들을 돌보지 않은 탓으로 트라키아 여인들의 원한을 사서 죽음을 당하고 시체는 산산조각이 되어 하프와 함께 강물에 던져졌다. 하프는 하늘로 올라가 성좌(星座)가 되었는데, 그는 신들의 사랑을 받은 영웅들의 사후 안식처인 엘리시온이라는 곳에서 하프를 타며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고 한다. 이 전설은 유럽의 음악과 문예에 풍부한 소재를 제공하고 있다. 또 그는 영혼의 불멸을 주장하는 비교(秘敎)인 오르페우스교(敎)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데, 이 비교는 후세의 시인이나 철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오리온(Orion)】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 미남 사냥꾼. 일설에 의하면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에우리알레의 아들로, 바닷속을 걸을 수 있는 힘이 있었는데, 너무 거인이어서 바닷속에 들어가도 바닷물이 어깨밖에 닿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아내 시데가 헤라와 미(美)를 다투다가 타르타로스에 의해 명계(冥界)로 쫓겨났다. 아내를 잃은 오리온은 키오스섬의 왕 오이노피온을 찾아 가서 딸 메로페에게 구혼을 하고, 그녀를 얻기 위해 섬 안의 야수를 퇴치하였으나, 왕은 약속대로 결혼을 허락하지를 않고 오히려 술에 취해 자고 있는 그를 장님으로 만들어 버렸다. 장님이 된 그는 ꡒ동쪽으로 가서 수평선으로부터 솟아오르는 태양쪽으로 눈을 돌리면 된다ꡓ는 신탁(神託)을 받고 시력을 회복하였다. 오이노피온에게 복수하려고 하였으나 여신 아르테미스의 설득으로 마음을 바꾸고 그녀와 함께 행복한 세월을 보냈다. 아르테미스 여신의 쌍동이 오빠인 아폴론은 여동생이 그를 사랑하게 될까 걱정하여 거대한 전갈(全蝎)을 보내어 지키게 하였는데, 결국 오리온은 전갈에게 물려죽었다. 일설에는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오리온을 사랑하는 것을 노여워하여 아르테미스가 그를 죽였다고도 한다. 그는 호메로스 시대부터 성좌(星座)와 동일시되었다.


오시리스

<Osiris>


이집트 신화에서 사자(死者)의 신으로 숭배되었던 남신(男神). 오시리스는 그리스식 발음이고, 이집트어로는 우시르(Usire)이다. 오시리스는 땅의 신 게브와 하늘의 신 누트의 아들로 누이동생 이시스와 결혼하였는데, 후에 형의 지위를 노린 아우 세토에게 살해되어 몸이 갈기갈기 찢겨졌다. 이시스는 이 몸조각을 모아 매장하였는데 부활한 오시리스는 저승에 가서 왕이 되었다. 이 신화는 그리스 작가 플루타르코스의 《이시스와 오시리스에 관하여》(XII~XX)에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죽은 신을 애도하고 그 재생을 기원하는 오시리스 신앙은 예로부터 성행하였는데, 제5왕조(BC 2400?)부터는 파라오(왕)도 죽은 후에는 오시리스로 간주되었고, 또 사람이 죽은 후에는 모두 오시리스가 된다고 여겨졌다. 오시리스․이시스는 로마 등지에서도 신봉되었다.


오이디푸스

<Oidipou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테베의 왕 라이오스와 왕비 이오카스테(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는 에피카스테)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다. 라이오스는 이 아들이 ꡒ아비를 죽이고 어미를 범한다ꡓ는 신탁(神託)을 받았었기 때문에, 그가 태어나자 복사뼈에 쇠못을 박아서 키타이론의 산중에 내다 버렸다. 아이는 이웃나라 코린토스의 목동이 주워다 길러 코린토스의 왕자로 자란다. 청년이 된 왕자는 자기의 뿌리를 알고자 델포이에서 신탁을 받았는데, 그것이 앞의 내용과 같은 것이었다. 그는 이를 피하려고 방랑하다가 테베에 이르는 좁은 길에서 한 노인을 만나 사소한 시비 끝에 그를 죽이고 말았다. 그 노인이 곧 자기의 부친인 것을 모르고 죽인 것이다. 당시 테베에는 스핑크스라는 괴물이 나타나 수수께끼를 내어 풀지 못하는 사람을 잡아먹고 있었다. 여왕은 이 괴물을 죽이는 자에게 왕위는 물론, 자기 자신까지도 바치겠다고 약속한다. 그때 오이디푸스가 수수께끼를 풀어 스핑크스를 죽인 후 왕위에 올랐고, 모친인 줄도 모르고 왕비를 아내로 삼았다. 둘 사이에는 네 자녀가 태어났는데, 왕가의 불륜이 사단이 되어 테베에 나쁜 병이 나돈다. 오이디푸스는 그 원인이 자기 자신임을 알자 두 눈을 뽑아내고 방랑의 길을 떠나 코로노스의 성림(聖林)에서 죽었다. 여왕도 자살하고 나머지 자녀들도 왕위를 둘러싼 골육상쟁으로 모두 죽고 말았다. 시인 소포클레스는 이 전설을 비극 3부곡 《오이디푸스왕》에서 다루었는데 이 이야기가 소포클레스의 비극으로 정착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흘렀으리라 생각된다. 신화 학자들은 이 근저에는 하나의 농경 제식에서 발단된 신화가 있다고 본다. 그 설명에 따르면 오이디푸스는 해의 신이고 이오카스테는 땅의 신이다. 해의 신은 해마다 땅의 아들로 태어나 묵은 해인 아버지를 배척하고 어머니를 갈고 일구는 지아비가 된다. 또 프로이트를 비롯한 정신분석학자에 따르면, 이것은 유아의 어머니에 대한 독점애의 공상적 실현, 즉 아버지에게 반항하여 그를 배척하고 어머니를 자기 것으로 삼으려는 욕망(오이디푸스콤플렉스)에서 비롯된 이야기라고 말한다.


◀참 조▶

☞오이디푸스콤플렉스


【오일레우스(Oileus)】 [그리스, 로마] 소 아약스의 아버지.


오케아노스

<Okeano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물의 신. 천공(天空:우라노스)과 대지(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티탄신족(神族)의 한 사람이다. 고대의 그리스인(人)들은 세계를 편평한 원형의 대지라고 생각하였는데, 그는 이 대지의 끝을 둘러싸고 흐르는 대하(大河)의 신이었다. 이 신은 대지 서쪽 끝에서 누이동생인 테티스를 아내로 삼아 함께 살고 있어 올림포스산(山)에서의 신들의 모임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온세계의 모든 바다와 하천의 신이었던 3,000명의 아들과, 바다나 하천 또는 샘의 요정(妖精)이 된 3,000명의 딸 오케아니데스가 태어났다. 후에 오케아노스는 차차 지리적인 개념으로 변하여 지중해에 대해서 대륙을 둘러싼 대양(大洋)을 뜻하게 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모든 신과 인간의 아버지라고 한다.


【오키르호이(Ocyrrhoe)】 [그리스, 로마] 아이스쿨라피우스의 딸.


【오트리스(Othrys)】 [그리스] 테살리아에 있는 산. 티탄들이 신들에 대항하여 싸울 때 본거지.


【오피온】 [그리스] 거대한 물뱀. 에우리노메와 결합하여 만물을 낳음.


【오피온(Ophion)】 [그리스, 로마] 거대한 뱀. 에우리노메 참조.


【올림포스(Olympos)】 [그리스] ① 신들이 사는 곳. 산이나 하늘은 아니다. 계절의 여신들이 지키는 구름의 문을 통과해야 했다. 바람, 눈, 비가 없다. 이곳에서 신들은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를 마시고 아폴로가 라이어를 연주하는 것을 들었다. ② 테살리아에 있는 산. 그리스에서 가장 높은 산. 높이 2,917 m. 북부 그리스의 테살리아 지방과 마케도니아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으며, 1년 중 9개월 동안 산정이 눈에 덮여 있다. 이 산과 이어지는 일련의 산들이 북동쪽으로부터의 침입을 막았다. 동쪽으로 살로니카만(灣)을 내려다보고 정상부가 몇 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으며, 과거에는 오르기가 어려웠지만 지금은 남쪽 기슭의 라리사에서 자동차로 산허리까지 올라갈 수 있다. 구름이 오가는 산정에 제우스를 비롯한 이른바 ꡐ올림포스의 12신ꡑ, 즉 제우스와 그 아내 헤라, 아테나․아프로디테․아폴론․아르테미스․아레스․디오니소스․데메테르․헤파이스토스․헤르메스․포세이돈 등이 살고 있다고 그리스 신화는 전하고 있다. 키프로스섬을 비롯하여 그리스에는 이 밖에도 올림포스산이라고 불리는 산이 여러 개 있었는데, 이는 ꡐ올림포스ꡑ가 그리스어(語)로 단순히 ꡐ높은 산ꡑ을 뜻하기 때문이라고 풀이하는 학자도 있다. 그리스인(人)은 최고의 신 제우스가 하늘에 가장 가까운 높은 산에 지은 황금 궁전에 산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산정을 답사하여 ꡐ제우스의 황금궁전ꡑ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면, 더 높은 ꡐ고산ꡑ이 신들의 주거지일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런 식으로 고산은 자꾸만 바뀌어 마침내 그리스의 북부에 있는 최고의 산이 진정한 올림포스가 된 것이다. 그리스인이 각지로 이주함에 따라서 다른 곳의 산에도 같은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이라고 보는 학자도 있다.


올림포스십이신

(-十二神)


그리스 신화에서 올림포스 산정(山頂)에 살고 있는 신들 중 주요한 12신. 최고신 제우스와 정식 아내인 헤라, 바다의 신 포세이돈, 제우스와 메티스의 딸로서 지혜와 싸움의 여신 아테나, 제우스와 레토의 아들로 음악․예언․광명의 신인 아폴론, 그 쌍동이 여동생으로 야수(野獸)가 득실대는 산야를 지배하는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제우스와 헤라의 아들로 불과 대장장이의 신인 헤파이스토스, 싸움의 신 아레스, 제우스와 아틀라스의 딸인 마이아의 아들로서 신들의 사자(使者)이며 상업․목축․여행․음악의 수호신인 헤르메스, 곡물의 여신 데메테르, 화덕․불의 여신 헤스티아(또는 풍작 특히 포도와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12신을 가리킨다.


【올림피아(Olympia)】 [그리스] 올림푸스산(Mount Olympus)과는 전혀 다른, 제우스의 유명한 성지. 이 올림피아는 펠로폰네소스반도 서쪽의 엘리스(Elis)에 있었다.


옴팔레

<Omphale>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리디아의 여왕. 아폴론의 예언에 따라서 노예가 된 헤라클레스를 헤르메스에게 사서 케르콥스 등 많은 괴물을 퇴치시키게 하였다. 나중에 그의 신분을 알게 되자 그와 결혼하여 아겔라오스와 라몬의 두 아들을 낳았다. 이 이야기는 알렉산드리아 시대에 많은 예술작품들의 소재로 되었는데, 헤라클레스가 여장(女裝)을 하고 실을 뽑고 있는 모습이거나 사자 가죽을 걸친 옴팔레가 헤라클레스의 몽둥이를 들고 있는 모습이 많다.


【우라노스(Ouranos)】 [그리스] 뜻은 "아버지, 하늘". 하늘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고의 남신(男神). 천공(天空)의 신이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아들인데, 후에는 그녀의 남편이 되어 키클롭스 등을 낳았다. 그는 아이들을 싫어하여 타르타로스의 나락(奈落)에 가두었는데, 다시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티탄족(族)들은 가이아의 권고로 우라노스에게 도전하였고, 특히 크로노스는 아버지의 성기(性器)를 잘라 그 지배권을 빼앗았다. 그때 흘린 피에서 거인족(巨人族) 기가스 등이 태어났으며, 또한 거기에서 생긴 거품에서 여신 아프로디테가 태어났다고 한다.


【우라노스(Uranus)】 [그리스] 크로노스의 아버지.



우라니아

<Urania>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 동명의 신이 셋이나 있다. ① 제우스와 무네모시네의 딸들인 무사이(예술의 여신들) 중의 하나이다. 천녀(天女)라는 뜻에서 천문(天文)을 다스리는 여신으로 여겨지고 있다. ② 아프로디테의 칭호의 하나로 천녀신(天女神)의 뜻. 애욕의 신 아프로디테가 동시에 천녀신이라는 것은 이중성격을 지닌 동방(東方)여신의 흔적을 나타내고 있다. ③ 대해(大海)의 신 오케아노스와 테티스의 딸들 중 하나의 이름이기도 하다.


【운명(Fate)】 [그리스] 운명을 관장하는 요정. 제우스도 그녀를 어쩔 수 없었다. 모이라 참조.


【울리세스(Ulysses)】 [그리스] 오디세우스(Odysseus). 영어로는 율리시즈.


【유노(Juno)】 [로마] 그리스의 헤라. 아이네아스를 증오. 알키오네를 도움.


【유니콘(Unicorn)】 [그리스] 뿔이 하나 달린 짐승이다. 유니콘에 대한 일반적인 인상은 말의 이마에 뿔이 하나 나 있는 것이지만, 로마의 박물학자 플리니우스(Plinius)의 설에 의하면 "매우 난폭한 동물로, 몸체는 말과 비슷하며 머리는 사슴, 발은 코끼리, 꼬리는 멧돼지,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검은 뿔 하나가 이마 한가운데에 나와 있다", 게다가 '생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되어 있다. 중세교훈에는 유니콘을 잡으려면 젊은 처녀 한 명을 데리고 가면 된다고 나와 있다. 유니콘은 순진한 처녀를 보면 안심하고 경계를 풀고 접근해 오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유니콘의 옆에 젊은 여자가 함께 있는 그림을 자주 보게 된다.


【유벤투스(Juventus)】 [로마] 청춘의 신.


【유투르나(Juturna)】 [로마] 봄의 여신. 로마광장에 성스러운 연못을 갖고 있었다.


【유피테르(Jupiter)】 [로마] 그리스의 제우스. 아이네아스를 카르타고에서 쫓아냄. 프시케에게 영생을 줌. 프리기아를 방문. 로마 신화의 최고신(最高神). ꡐ주피터ꡑ는 영어 발음이다. 원래는 천공(天空)의 신이며,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에 해당한다. 온갖 기상 현상을 지배하며, 비와 폭풍과 천둥을 일으키는 신이다. 로마에서는 예로부터 카피톨리노언덕 위에 유피테르의 큰 신전이 건립되어 있어, 집정관(執政官)이 취임하면 우선 이 신전에 참배하였으며 또 원정에서 돌아온 장군의 개선(凱旋)행렬도 이 신전으로 향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었다. ꡐ최고 최선의 유피테르ꡑ라고 불리며, 전쟁에서는 로마에 승리를 가져다주는 수호신일 뿐만 아니라, 정의와 덕을 다스리고 서약과 법률을 지키는 신으로 모셨다. 또한 미래를 내다보는 힘이 있어 인간의 미래를 여러 가지 전조(前兆)나 하늘을 나는 새의 특징을 보아 예언한다고 믿었다. 맑게 갠 보름날 달밤에 제사를 지냈는데, 흰색이 신성시되어 신관(神官)과 참배하는 집정관은 반드시 흰옷을 입었으며, 또한 흰 동물을 제물로 바쳤다. 또한 신 자신은 4마리 백마가 끄는 수레를 타고 다닌다고 여겨졌다. 여신 유노(주노)는 유피테르의 아내로 보았다.


◀참 조▶

☞제우스



【율루스(Iulus)】 [로마] 아이네이아스의 아들. 아스카니우스라고도 함.


【이노(Ino)】 [그리스] 아타마스의 아내. 오디세우스가 구출해 주었다.


【이다(Ida)】 [그리스] ① 크레타에 있는 산 이름. ② 어린 제우스를 돌본 님프중 하나.

그리스 프리기아섬과 크레타섬 양쪽에 있으며, 그리스 신화에서 유명한 산의 이름. 이디산이라고도 한다. ① 프리기아의 이다:제우스가 탄생한 산이고, 헤라와의 결혼이 이 산정(山頂)에서 행해졌으며, 제우스가 트로이왕 트로스의 아름다운 왕자 가니메데스를 앗아간 산이기도 하다. 파리스의 심판도 이 산 있었고, 옛날 이 산마루 중 하나에 제우스의 사당(祠堂)이 있었다. 또한 산 전체가 키벨레 숭배의 주요 중심지였다. ② 크레타섬의 이다:제우스가 태어나서 자라고, 죽어서 묻혔다고 하는 산이다. 산마루에 동굴이 있어 그같은 신앙과 관계를 갖고 있다. 이다는 또한 ꡐ크레타의 제우스ꡑ를 기른 님프의 하나이기도 하며, 그 님프는 메리세우스(꿀벌의 精)의 딸이라고 한다.



【이도메네우스(Idomeneus)】 [그리스] 트로이전쟁 동안, 크레타인들의 지도자.


【이리스(Iris)】 [그리스] 무지개의 여신. 뜻은 "무지개". 무지개의 여신. 영어로는 아이리스.솜누스가 방문. 하피를 구조. 타우마스와 엘렉트라의 딸로, 여신 하르피아이의 자매뻘이 된다고 하나, 자연 현상을 의인화한 것이다. 무지개가 하늘과 땅에 걸리기 때문에 신들의 사자(使者)로 여겼으며, 주신(主神) 제우스와 그의 아내 헤라를 섬기는 신이다. 날개가 달려 있고 손에는 사자(使者)의 지팡이를 들고 있는 경쾌한 처녀의 모습으로 표현되었으며, 서풍(西風)의 신 제피로스와 맺어져 에로스를 낳았다고도 한다.


이슈타르

<Istar>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나오는 여신. 천신(天神) 아누, 또는 월신(月神) 신의 자식으로 알려졌다. 미(美)와 연애를 주관하는 신으로, 전투의 여신이기도 하다. 원래는 새벽의 명성(明星:金星)을 가리킨 듯하나, 그 정확한 어원은 분명하지 않다. 서(西)셈족(族)에서는 아슈타르테(아스타르테)라고 하여 여성 어미(語尾) t가 붙어 여신을 나타내고 있으나, 남(南)아랍에서는 아스타르라고 하여 남신(男神)으로 되어 있다. 미와 연애의 신으로서의 이슈타르의 성격은 메소포타미아의 선주(先住)민족인 수메르족(族)의 여신 이난나(닌 안나 즉 하늘의 부인의 변형임에 틀림없다)의 성격을 이어받은 듯하나, 또한 싸움을 즐기는 격렬한 성격도 갖고 있어, 그 남성적인 성격은 셈족(族)에게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이면성(二面性)은 바빌로니아의 장편 영웅시 《길가메시 서사시》에 등장하는 이 여신의 성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이슈타르의 명계하강(冥界下降)》이라는 설형문자(楔形文字)로 된 문서가 남아 있는데, 이 문서에 의하면 7개의 문을 통과할 때마다 여신은 의복과 장식품을 빼앗겼다가 지상으로 돌아올 때 그것들을 다시 되찾아 몸에 걸친다고 한다. 이 여신은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프로디테와 동일시되었는데, 바로 풍요의 신 두무지의 연인이다.


【이아손(Jason)】 [그리스] 펠리아스의 궁전에 도착. 메데아를 버림. 헤라가 도움. 메데아의 복수. 이테스의 황소를 길들임. 영어로는 제이슨.


【이아쿠스(Iacchus)】 [그리스] 디오니소스의 이름.


【이아페투스(Iapetus)】 [그리스] 바다와 테티스의 아들. 아틀라스의 아버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 티탄 신족(神族)의 한 사람으로, 천공신(天空神) 우라노스와 대지의 여신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물의 여신 테티스의 딸 클리메네를 아내로 삼아, 아틀라스․프로메테우스․에피메테우스․메노이케우 등의 아버지가 되었다. 훗날 제우스와 싸워 패함으로써 일족(一族)과 함께 나락(奈落)의 밑바닥인 타르타로스에 유폐되었다. 이아페토스란 이름은 구약성서 《창세기》(5:32)에 나오는 노인의 아들 야페테(야벳)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이오(Io)】

그리스신화의 여신관(女神官). 아르고스의 왕 이나코스와 멜리아의 딸로서 혜라여신을 받들어 모셨다. 이오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그녀와 정을 통한 제우스는, 아내 헤라의 노여움을 두려워하여 이오를 암소로 변신시켰다. 사실을 알아차린 헤라는 암소를 잡아다 놓고 눈이 많이 달린 괴물 아르고스로 하여금 감시하도록 하였다. 한편, 이오를 동정한 제우스가 혜르메스를 시켜 아르고스를 물리치자, 헤라는 등에를 보내어 그녀를 괴롭혔기 때문에 이오는 여기서 쫓겨나 온 세계를 헤매고 다녔다. 그리고 보스포루스(암소의 나루터라는 뜻, 보스포루스 해협)를 건너 아시아로 가 코카서스바위산에 묶여 있던 프로메테우스를 만났다. 그곳에서 그로부터 행운의 예언을 받고 힘을 얻은 이오는 이집트에 당도한 뒤, 제우스에 의하여 인간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 뒤 이오는 다나오스의 50명의 딸 다나이데스의 조상인 에파포스를 낳았다. 또한 그녀는 이집트인들 사이에서 이시스여신과 동일시되었으며, 죽은 뒤에는 달의 여신으로 숭배를 받았다.


【이오니아인(Ionians)】 [그리스] 그리스의 일파. 헬렌의 아들 크수투스로부터 유래했다고 한다.


【이오바테스(Iobates)】 [그리스] 리키아(Licia)의 왕. 필로노에의 아버지. 벨레로폰이 키메라와 싸우도록 파견했다.


【이오카스테】 [그리스] 오이디푸스의 어머니이자 아내. 라이오스의 아내.  크레온의 자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는 에피카스테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테베의 왕 라이오스의 아내가 되어 오이디푸스를 낳았다. 왕이 죽은 뒤 자신도 모르게 오이디푸스의 아내가 되었는데, 뒤늦게야 현재의 남편이 자기 자식임을 알고 목을 매 자살하였다. 오이디푸스와의 사이에서는 아들 에테오클레스, 폴리네이케스와 딸 안티고네, 이스메네가 태어났다고 하나 이들을 낳은 것은 이오카스테가 아니라는 전설도 있다.



이온

<Ion>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테나이의 왕녀 크레우사의 아들. 이오니아란 명칭은 그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여러 가지 전설이 있으나 같은 이름의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에 따르면, 일찍이 크레우사는 아폴로신(神)의 사랑을 받아 그와의 사이에 낳은 이온을 몰래 내다 버렸다. 아폴로 신은 헤르메스를 시켜 그를 델포이로 옮기게 하여 아폴로의 신전에서 기르게 하였다. 그 뒤 쿠스토스의 아내가 된 크레우사가 자식을 낳지 못하여 부부는 신탁(神託)을 얻고자 델포이 땅을 찾아갔다. 그들은 신전에서 나가 맨 처음 만나는 자가 자식이 된다는 신탁을 받고 나와서 처음 만난 사람이 이온이었다. 크레우사는 남편이 숨겨둔 자식이 아닌가 의심하여 이온을 독살하려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오히려 자신이 죽게 될 처지에 놓인 때, 이온이 그녀의 자식이라는 물증이 발견되어 다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귀국한다. 그 뒤 이온은 아테네의 왕이 되고, 주민을 호플레테스, 겔레온테스, 아르가데이스, 아이기코레이스 등 4부족으로 나누어 다스렸는데, 이것이 이른바 이오니아의 4부족이다.


【이올코스(Iolcos)】 [그리스] 아르고호가 출범한 테살리아의 마을.


【이카로스】 [그리스] 하늘을 날다 태양에 타죽은 사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명장(名匠) 다이달로스와 크레타의 왕 미노스의 여종 나우크라테 사이에 태어난 아들. 이카로스가 영웅 테세우스를 구해 내고자 아버지와 함께 크레타섬에 갔다가 왕 미노스의 노여움을 사고 미궁에 유폐되었다. 부자(父子)는 왕비 파시파에의 도움을 받아 탈출을 꾀하였으나 왕이 해변에 있는 모든 배를 치워버렸기 때문에, 다이달로스는 날개를 밀랍(蜜蠟)으로 몸에 붙임으로써 나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그는 무사히 날아 시칠리아섬에 도착하였으나, 이카로스는 아버지의 주의를 잊고 너무 높이 날아올라갔기 때문에 날개를 붙인 밑랍이 태양에 녹아, 에게해(海)에 떨어져 익사하였다.



【이카로스(Icarus)】 [그리스] 다이달로스의 아들. 하늘을 날다 날개가 녹는 바람에 죽었음.


【이카리오스(Icarius)】 [그리스] 페넬로페의 아버지.  에리고네의 아버지인 아테네 사람. 디오니소스가 찾아왔을 때 그를 환대하였기 때문에 그 답례로서 포도주 양조법을 알게 되었다. 그가 포도주를 빚어 이웃사람들에게 나누어 마시게 하자, 처음으로 술에 취해보는 사람들은 독을 마신 것으로 착각하고 이카리오스를 죽여 숨겼다. 딸 에리고네는 기르는 개 마이라의 안내로 아버지의 시체를 발견하고는 슬퍼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자살하고 말았다. 노한 디오니소스는 아테네의 처녀들을 미쳐 죽게 하였다. 이 밖에 라케다이몬인(人)인 페리에레스의 아들도 있다.


◀참 조▶

☞에리고네



【이켈로스(Icelus)】 [그리스] 히프누스의 아들. 새와 짐승에 관한 꿈을 꾸게 만든다.


【이코르(ichor)】 [그리스] 신들의 혈관속을 돌고 있는 액체. 일종의 신성한 피.


【이피게니아(Iphigenia)】 [그리스] 아가멤논의 딸. 아르테미스가 구해줌. 타우리아인들로부터 도망침.

그리스 신화에서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과 왕비 클리템네스트라 사이에 난 딸. 테세우스와 헬레네의 딸이라는 설도 있다. 아가멤논이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진노를 사서(보통은 신의 사슴을 쏘아 잡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람이 전연 불지 않았으므로, 트로이 원정 길에 나선 그리스 군대가 아울리스항(港)에서 출항할 수 없었다. 아가멤논 왕은 예언자 칼카스의 의견에 따라 이피게네이아를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희생으로 바치게 되었다. 그녀는 영웅 아킬레우스와 결혼시킨다는 구실로 고향에서 불려와, 여신의 제단에 산제물로 바쳐질 뻔하였으나, 그녀를 불쌍히 여긴 여신이 한 마리의 사슴을 그녀 대신 제물로 바치고 그녀를 흑해(黑海) 연안의 타우리스로 데려다가 여신의 신관(神官)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이곳에 오는 이방인을 여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한편 그녀의 남동생 오레스테스는 아폴로의 신탁(神託)에 따라 아르테미스의 신상을 찾아서 친구 필라데스와 함께 타우리스에 이르렀으나, 체포되어 동생인 줄 모르는 누이의 손으로 여신에게 제물로 바쳐질 운명에 처해졌다. 그러나 제물로 바쳐지기 직전에 서로의 신분을 알게 되어, 슬픔은 기쁨으로 바뀌고 그들은 여신 아테네의 도움으로 요행히 아르테미스의 신상을 찾아내 그리스로 돌아온다. 이피게네이아 신상을 아티카의 할라이로 가져다 모시고 그녀는 신관 생활을 계속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여신에게 바쳐지는 인신공희(人身供犧)의 의식으로, 사람의 목에 상처를 내는 습관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이피게네이아는 비극의 시인 에우리피데스의 두 편의 작품인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와 《타우리스의 이피게네이아》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녀는 마침내 ꡐ불사(不死)의 몸ꡑ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으나, 원래는 아르테미스의 별칭(別稱)이었다고도 생각된다. 이를 소재로 한 라신과 괴테의 뛰어난 희곡이 있고, C.W.글루크의 오페라도 있다.


【이피메데아(Iphimedea)】 [그리스] 알로아다이의 어머니.


【익시온(Ixion)】 [그리스] 헤라를 모독한 죄로 영원히 도는 바퀴에 묶여 있는 사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플레기아스(또는 아레스)와 펠리멜레의 아들로서, 테사리아의 라피타이족(族)의 왕. 에이오네우스의 딸 디아를 아내로 맞았으나 납페금(納幣金)이 아까워 에이오네우스를 죽였다. 제우스는 익시온을 불쌍히 여겨 천상(天上)으로 데리고 가서 친족살인죄를 씻어 주었는데, 익시온은 배은망덕하게도 제우스의 아내 헤라를 범하려 하였다. 그는 제우스가 구름으로 만든 헤라의 환영(幻影)과 관계를 맺어 반인반수(半人半獸)의 괴물 켄타우로스가 태어났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배은 행위에 노한 제우스는 익시온을 불수레에 묶어 지옥의 밑바닥 타르타로스에 두어서 영원히 돌고 있다고 하는데, 후세에 와서 익시온의 이름은 영겁(永劫)의 죄로 신음하는 자의 상징이 되었다.



【일리오스(Ilios)】 [그리스] 일리온 참조.


【일리온(Ilion)】 [그리스] 트로이의 다른 이름. 트로이의 창건자, 일루스(Ilus)의 도시라는 뜻.


【일리티이아(Ilithyia)】 [그리스] 산파의 여신. 헤라의 딸.


자그레우스

<zagreu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소년신(少年神). 영혼불멸을 주장하는 오르페우스교(敎)에서 신앙하는 신으로, 나중에는 풍양신(豊穰神) 디오니소스와 동일시되었다. 뱀의 모습으로 둔갑한 제우스와 명계(冥界)의 여왕 페르세포네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제우스는 그에게 세계의 지배를 맡기려고 하였으나 제우스의 아내 헤라가 질투하여 티탄신족(神族)에게 그를 습격하도록 하였다. 자그레우스는 사자․뱀․호랑이 등으로 변신하면서 도망치려 하였으나, 황소로 변했을 때 티탄족에게 붙들려 갈기갈기 찢긴 뒤 그들에게 먹히고, 심장만은 제우스에게 넘겨져 그가 삼켜버렸기 때문에 훗날 카드모스의 딸 세멜레와의 사이에 디오니소스 자르레우스로 다시 태어났다. 이같은 이야기는 디오니소스 신도들 사이에 생육(生肉)을 먹는 비의(秘儀:omophagia)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쟁(War)】 [그리스] 전쟁의 여신. 에뇨 참조.


【제림니르(Serimnir)】 [북유럽] 발할라의 영웅들에게 영원히 음식을 공급하는 숫퇘지.


【제우스(Zeus)】 [그리스] 뜻은 "찬란한 하늘". 하늘, 번개, 비, 구름을 다스리는 주신(主神). 크로노스와 레아의 아들이며, 헤라의 남편. 야훼처럼 전지전능하지는 않다. 세계를 통치하기 위해 추첨을 하여 제우스는 하늘, 하데스는 명계, 포세이돈은 바다를 다스리게 되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고의 신. 제우스라는 이름은 어원적으로는 천공(天空)을 의미하며, 로마 신화에서는 같은 어원인 유피테르와 동일시되었다. 제우스의 기원은 그리스 땅 북방으로부터 침입한 그리스 민족의 주신(主神)으로, 은혜로운 비를 내리게 하는 천공을 신격화한 것이었다. 이것이 크레타 섬을 중심으로 한 이 지역의 주신과 동일한 신으로 간주되고, 마침내 헤시오도스나 호메로스의 2대 서사시 《일리아드》 《오디세이아》 등을 통해 여러 가지 신화의 전설이 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는 티탄이라고 불리는 거인신족(巨人神族) 중의 하나인 크로노스와 그의 아내 레아의 아들이다. 포세이돈․하데스․헤스티아․데메테르․헤라 등의 동생으로, 6형제의 막내에 해당하며, 누님인 헤라를 아내로 삼고 있다. 제우스는 올림포스산의 신들 위에 군림하고 그 권위는 다른 신들의 권위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위대하였다. 제우스는 천공을 지배하는 신으로 천둥과 번개를 뜻대로 구사한다고 생각되어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는 ꡐ구름을 모으는 자ꡑ ꡐ번갯불을 던지는 자ꡑ 등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제우스는 단순히 천공을 지배하는 신만이 아니었다. 하늘을 지배하는 자인 동시에 전세계를 통치하는 자이기도 하다. 즉 ꡐ신들과 인간의 아버지ꡑ로서 모든 권력을 주거나 빼앗는 자이며, 범죄자를 벌하고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며, 국가의 재앙을 막는 위력을 가지고 있는 신이었다. 또한 제우스는 개인의 소유지나 재산을 보호하고, 아내인 헤라와 함께 결혼을 주관하였다. 따라서 혈족이나 동향자(同鄕者), 같은 지역․단체․직업에 있는 자도 모두 그의 보호하에 놓였다. 그리고 인간의 운명에 떨어지는 행(幸)과 불행은 모두가 공평무사한 제우스에 의해 할당된다고 생각되었다. 제우스는 청동시대의 사악한 인간을 멸망시키기 위해 대홍수를 일으켰으나 그를 공경하는 데우칼리온과 그의 아내 피라, 두 사람을 구해내어 이 지상에 다시 인간을 채우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또한 그는 인간의 마음을 시험해 보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인간의 세계를 찾아가곤 하였다. 그리고 그는 싸움의 조정자이고 정의와 율법을 지배하였다. 한편, 제우스는 아내 헤라 외에 많은 여신(사려의 여신 메티스나 율법의 여신 테미스 등)과 인간인 여자들에게 많은 자식을 낳게 하고 있다. 올림포스의 신들 가운데도 그를 아버지로 하고 있는 신들이 많다. 예컨대, 음악․의술․궁술․예언의 신 아폴론, 전령(傳令)이며 나그네의 수호신인 헤르메스, 화산과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 군신(軍神) 아레스는 제우스의 아들이다. 또한 아이톨리아의 왕녀 레다에게 백조의 모습으로 접근하여 미녀 헬레네를 낳게 하고, 아르고스의 왕녀 다나에가 밀실에 갇혀 있을 때 황금의 비로 변신하여 내림으로써 영웅 페르세우스를 낳았다고 한다. 이 밖에 헤라클레스도 안피트리온의 아내 알크메네와 제우스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라고 한다. 이같이 제우스를 아버지로 하는 자가 많은 것은 각지의 신화와 전설이 집대성된 결과이며, 제우스가 신들 가운데 최고신이었다는 사실의 증거로 볼 수 있다. 제우스의 성지로서 가장 유명한 것은 북방의 에페이로스 오지(奧地)에 있는 도도나인데, 이 고장에 있는 것이 제우스의 제단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며, 이곳에는 제우스의 성목(聖木)으로 알려진 큰 떡갈나무가 있다. 옛날에는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이 성목의 신탁(神託)을 들었다. 떡갈나무 잎의 속삭임이 제우스 자신의 말이라고 생각되었을 것이다. 호메로스 시대에는 제우스의 신앙이 그리스 전역에 퍼져, 독수리가 성스런 짐승이고 떡갈나무가 성목이었다. 따라서 제우스는 독수리를 거느리고 왕홀(王笏)을 손에 들었거나 떡갈나무 잎으로 만든 관(冠)을 머리에 쓰고 탐스런 턱수염이 있는, 위엄(威嚴)과 인애(仁愛)에 넘치는 표정을 지닌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제피로스

<Zephyro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서풍(西風)의 신. 티탄 신족(神族)의 하나인 아스트라이노스[星男]와 여명의 여신 에오스의 아들. 그는 바람의 요정으로 날개가 돋친 처녀 하르퓨이아의 하나인 포다르게를 만나 영웅 아킬레우스가 트로이전쟁에 출전했을 때 그 전차를 끄는 신마(神馬) 발리오스와 크산토스를 낳았다. 그는 또 님프 클로리스와 혼인하여 카르포스를 낳았다. 서풍의 의인화(擬人化)로서 시문(詩文)에서는 이 말이 가장 고요한 바람으로 표현된다.


【청춘(Youth)】 [그리스] 젊음의 여신. 헤베 참조.


【카드모스(Kadmos)】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페니키아의 왕 아케노르와 텔레파사의 아들. 제우스가 황소로 둔갑하여 누이동생 에우로페를 약탈해 갔을 때, 아버지의 명을 받고 누이동생을 찾아 나섰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으나 찾을 수 없어 귀국을 단념하고 동행한 어머니와 함께 트라키아에 거주하였다. 어머니가 죽은 뒤 델포이로 와서 신탁(神託)을 구하였는데, 암소를 길잡이로 삼아 뒤따르다가 암소가 지쳐 쓰러지는 땅에 도시를 건설하라는 신탁을 받았다. 이것이 훗날의 테베시(市)의 장소로, 그의 이름을 따서 카드메이아라고 불렸다. 이때 자기의 종자(從者)를 죽인 용을 퇴치하고, 여신 아테나의 권고로 용의 이빨을 땅에 심었더니 땅 속에서 무장한 병사들이 나왔다. 그들은 스파르토이(땅에 뿌려진 남자들)라고 불렸고, 테바이의 귀족의 조상이 되었다. 카드모스가 여신 아테나에게 바친 세발 솥에 페니키아 문자가 적혀 있어 그가 그리스에 문자를 맨 처음 들여왔다고 전해진다.



【카론(Charon)】 [그리스] 지옥세계의 강을 건네주는 사공. 일본식으로 말하면 지옥의 입구에 있는 三途川의 사공이라고 할 수 있다. 카론은 긴 수염을 늘어뜨리고 더러운 옷을 입은 초라한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지옥세계의 강(STYX)을 건네주는 요금이 1오로보스였으므로 옛날 그리스에서는 죽은 자의 입에 1오로보스의 동화(銅貨)를 입에 물리는 관습이 있었다. 카론은 수수한 존재이지만 그리스 신화에는 의외로 자주 등장한다. 지상에 나오기 전에 아내의 모습을 본 오르페우스(Orfeus)가 아내를 다시 보려고 했을 때 이것을 거절한 것이 카론이었다. 또한 푸시케(Psyche)가 아프로디테의 명령을 받아 지옥세계의 페르세포네(지옥세계의 왕 하데스의 왕후)가 있는 곳에 화장품을 받으러 갔을 때에도 카론은 등장한다.


【카리브디스(Charybdis)】 [그리스]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사이의 해협 또는 헤라클레스기둥(Pillars of Hercules)에 있는 전설적인 소용돌이. 카리브디스는 항상 스킬라(Scylla)와 같이 언급된다. 스킬라는 사나운 개들을 데리고 있는 괴물인데, 카리브디스와 너무 가까운 곳에 살기 때문에 둘 사이를 무사히 항해할 수는 없었다. 우리가 "진퇴양란"이라고 할 때 고대에는 "스킬라와 카리브디스사이에 갇히다"라는 표현을 썼다.



카리스

<Chari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美)와 우아(優雅)의 여신. 그녀들은 복수(複數)이며 카리테스라고도 부른다. 아글라이아(빛나는 여자), 탈레이아(꽃의 계절), 에우프로시네(환희)의 3명이며, 올림포스 산상(山上)에서 아프로디테 여신을 따르는 젊고 아름답고 청아한 처녀들로서, 나체로 손을 맞잡거나 신들의 연회에서 가무(歌舞)를 하는 모습으로 표상(表象)된다. 그녀들은 신들에게, 또 인간과 자연계의 모든 것에 기쁨과 온화함을 준다. 또한 예술면에서도 숭배되어 보통 9명의 무사이(詩의 여신들)와 함께 모셔진다.


카마

<Kama>


인도 힌두교 신화의 중요한 신(神). ꡐ카마ꡑ란 애욕(愛欲)을 의미하는 말로서, 처음에는 단지 선(善)을 행하려는 욕망인 신화상에서 우주창조의 원동력을 의미했으나, 마침내 의인화(擬人化)하여 애욕의 신으로 되었다. 이것은 그리스 신화의 ꡐ에로스ꡑ가 우주 창조신화와 관련되는 것과 흡사하다. 또 로마 신화의 큐피드와도 유사하며, 거미줄의 시위로 된 활과 살을 가진 미남 청년으로 묘사되고 있다. 천녀(天女)들의 주인으로서 애욕․연애를 주관하고, 쾌락의 여신 라티의 남편이다. 팔바티 여신을 충동하여, 그녀의 남편 시바신(神)을 고행 속으로 유혹하게 하였기 때문에, 시바신이 불태워 재가 되었으나 후에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그래서 아낭가(신체가 없는 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많은 신화를 가지고 있어, 인도 고전문학에 자주 등장한다.


【카베이리(Cabeiri)】 [그리스, 로마] 렘노스(Lemnos) 섬과 관련된 마법적 존재. 그곳에서 그들은 들판의 과일을 지켰다. 헤로도투스(Herodotus)에 따르면 이들은 난쟁이이며 비밀에 싸여있다고 한다.


카산드라

<Kassandra>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자 예언자.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와 헤카베의 딸. 알렉산드라라고도 불리었다. 아폴론 신의 사랑을 받아 예언하는 방법을 전수받았으나, 그의 사랑을 거절했기 때문에 아폴론이 노하여 그녀에게 전수한 예언의 힘을 사람들이 믿지 못하게 하였다. 그래서 트로이전쟁 때 예의 목마를 성 안으로 들이는 것을 막으려고 하였으나, 아무도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트로이 함락 후, 그녀는 포로가 되어 그리스군의 총수인 아가멤논 왕의 것이 되어 그리스로 연행되었다. 이 때도 그녀는 왕과 자기의 운명을 미리 알고 있었으나 왕이 그녀의 말을 들어주지 않아, 왕비 클리타임네스트라에 의해 왕과 함께 살해되었다.



【카스탈리아(Castalia)】 [그리스] 델피에 있는 성스런 샘.


【카스토르(Castor)】 [그리스, 로마] 헬렌과 오누이.

그리스 신화의 영웅. 제우스가 백조의 모습으로 둔갑하여 레다를 가까이 하여 카스토르와 폴리데우케스(폴룩스)의 쌍둥이 형제를 낳았다. 이 두 사람은 디오스쿠로이(제우스의 자식들)라고 불린다. 카스토르는 전술에 뛰어나, 테세우스가 데리고 간 누이인 헬레네를 되찾기 위해 형제가 아테네로 쳐들어가 구해냈다. 두 사람은 아르고나우테스들의 원정(遠征)에도 참가하였고, 또한 사촌인 이다스와 린케우스 형제와 싸우다가 카스토르는 이다스에게 살해되었다.

카시오페이아

<Kassiopeia>


그리스 신화에서 에티오피아 왕 케페우스의 비(妃). 안드로메다의 어머니. 그녀가 자기와 딸 안드로메다는 바다에 사는 50명의 네레우스보다도 아름답다고 자랑하였기 때문에 네레우스의 한 사람을 아내로 삼은 해신(海神) 포세이돈이 노하여, 바다의 괴수(怪獸)에게 이 나라를 습격하도록 종용하였다. 그래서 안드로메다가 인신공양으로 바쳐지게 되었는데, 영웅 페르세우스가 그녀를 구해줌으로써 그녀는 페르세우스와 결혼하게 되었다. 카시오페이아는 이 결혼을 못마땅히 여겨 페르세우스에게 요녀(妖女) 메두사의 목을 보게 함으로써, 그의 마음을 돌이켜보려 하였으나, 나중에 포세이돈에 의해 별자리의 열(列)에 들게 되어 카시오페이아 자리라고 불렸다.


카오스

<chaos>


그리스인(人)의 우주개벽설(kosmogonia)에서 만물발생 이전의 원초상태. 여기서 모든 것이 생겼다고 생각하였다. ꡐ혼돈(混沌)ꡑ이라고 번역되는 경우가 많으나, 원뜻은 ꡐ입을 벌리다(chainein)ꡑ로, 이것이 명사화하여 ꡐ캄캄한 텅빈 공간ꡑ을 의미하게 되었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神統記)》에서는 여기에서 암흑과 밤이 생겼다고 한다. 또한 오비디우스는 만물의 모든 가능성을 숨긴 종자(semina)의 혼합된 것으로 보았다. 이와 같은 신화적 카오스에 비해, 논리적 원리(arche)로서의 자연(physis)을 거론한 데서부터 이오니아 자연철학의 우주론(kosmologia)이 시작되었다.



카이네우스

<Kaineu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라피테스족(族)의 한 사람. 페이리투스의 혼례석상에서 많은 켄타우로스를 죽였으나, 붙들려서 땅속 깊이 매장되었다. 또한 그는 원래 카이니스(Kainis)라는 여자였는데, 포세이돈에게 부탁하여 남자로 전환했다고도 한다. 죽어서는 다시 여자로 돌아갔다고도 하고, 홍학(紅鶴)이 되었다고도 전해진다.


【카쿠스(Cacus)】 [그리스, 로마] 헤라클레스(Hercules)로부터 게리온(Geryon)의 가축을 훔친 거인. 꼬리를 뒤로 당겨 자신의 동굴로 끌어갔기 때문에 헤라클레스가 발자국을 추적할 수 없었다. 결국은 탄로가 나서 죽임을 당했다.



칼리스토

<Kallisto>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님프. 아르카디아 왕 리카온의 딸로, 여신 아르테미스를 따라 사냥을 하면서 소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제우스가 그녀에게 눈독을 들이고 아르테미스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그녀를 가까이하여 아르카스를 낳았다. 아르테미스는 칼리스토가 처녀를 지키기로 한 맹세를 어긴 데 대하여 노하고 그녀를 암곰의 모습으로 바꾸어 버렸다. 한편으로는 제우스의 아내 헤라가 곰으로 변신시켰다는 전설도 있다. 아르카스가 성장하여 사냥을 하다가 어머니인 줄 모르고 그 암곰을 죽이려고 했을 때, 제우스가 측은히 여겨 이들 두 모자를 천상으로 데리고 가, 그녀는 큰곰자리로, 아들은 목자자리로 변신시켰다.  헤라는 칼리스토가 천상에 있는 영예를 시기하여 바다에서 헤엄을 못치게 해 버렸기 때문에 큰곰자리는 지평선에 결코 잠기는 일이 없다고 한다.


【칼리오페(Calliope)】 [그리스] 뮤사이(Muse)의 한 명. 오르페우스(Orfeus)의 어머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 뮤즈(학예와 음악의 여신)중의 한 신으로, 이름은 ꡐ아름다운 목소리ꡑ라는 뜻이다. 옛날에는 일정한 직책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나 나중에는 서사시 또는 서정시를 관장하는 여신이 되었다.


칼립소

<Kalypso>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님프. 그리스어로 ꡐ감추는 여자ꡑ라는 의미이다. 오기기아섬에 살고 있었는데, 영웅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전쟁을 끝내고 고향인 이타케로 돌아오던 중 난파하여 이 섬에 혼자 표착하게 되었다. 그는 칼립소의 환영을 받고 7년간 이 섬에 머물면서 둘 사이에는 자식까지 낳았다. 7년이 지난 뒤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바랐기 때문에, 여신 아테나의 제의로 신들은 그를 귀국시키기로 하여, 칼립소의 도움으로 뗏목을 타고 귀로에 나섰다.


칼카스

<Kalcha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유명한 예언자. 그는 그리스군의 트로이 원정에 참가하여 아킬레우스의 도움을 얻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다고 예언하였다. 그리스군이 트로이로 향하여 출항할 때, 산 제물을 바치는 제단 밑에서 뱀이 나와 나무에 올라가 둥지에 있던 8마리의 새끼참새와 9마리째인 어미참새까지 삼키고 마지막으로 뱀 자신이 돌이 되는 것을 보고, 트로이 포위는 9년간 계속되고 10년째에 함락한다고 예언하였다. 이 싸움에서 모든 중요한 일에 관해서는 그의 의견을 구하였고, 그는 또한 신탁(神託)을 구하여 그 뜻을 설명함으로써 그리스군 총수 아가멤논과 지장(智將) 오디세우스를 도와 그리스군의 승리를 가져왔다. 그는 자기보다 현명한 예언자를 만나면 죽는다는 신탁을 받고 있었는데, 트로이 함락 후 모프소스라는 예언자를 만나, 그와 예언의 능력을 겨루어 패하자 비탄한 나머지 죽고 말았다.



케르베로스

<Kerberos>


그리스 신화에서 지옥의 문을 지키는 무서운 개. 산 사람이 저승에 들어오거나 죽은 자가 그곳으로부터 나가지 못하도록 파수보는 일이 그의 임무이다. 3개의 머리가 있고, 꼬리는 뱀 모양이며, 목 둘레에는 많은 뱀의 머리가 살아 움직인다. 음악가 오르페우스가 죽은 아내를 되찾으려고 저승에 갔을 때는 리라를 연주하여 케르베로스를 잠재운 뒤 통과하였다. 영웅 헤라클레스는 12가지 공업(功業)의 마지막으로서 케르베로스를 산 채로 잡아 지상으로 데리고 왔다.



【케레스(Ceres)】 [그리스] 데메테르(Demeter) 참조


【케르베로스(Cerberos)】 [그리스] 명계를 지키는 개. 영웅 헤라클레스는 12가지 난행(難行)의 마지막에 하데스가 지배하는 저승세계의 입구를 지키는 케르베로스를 지상으로 데려왔다. 그 모습은 기본적으로 개와 같지만, 3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고 목 주위에서 무수한 뱀이 달려 있으며 뱀의 꼬리를 하고 있다.


【케르코페스(Cercopes)】 [그리스, 로마] 헤라클레스(Hercules)의 무기를 훔친 놈(Gnome)


【케스투스(Cestus)】 [그리스, 로마] 아프로디테(Aphrodite)의 거들.



케이론

<Cheiron>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마(半人半馬)의 괴물. 켄타우로스족(族)의 한 사람으로, 크로노스를 아버지로 두고 있었으나, 난폭하고 무법자들뿐인 일족 가운데서 오직 그만이 정의를 존중하였고, 의술․예언․사냥․음악에 뛰어났다. 그래서 많은 영웅들을 가르치고 또한 그들의 좋은 벗이기도 하였다. 켄타우로스의 습격을 받은 펠레우스를 구하고, 영웅이며 의신(醫神)으로 알려진 아스클레피오스를 길러 의술을 가르치기도 하였으나, 영웅 헤라클레스가 잘못 쏜 독화살을 맞고 죽었다.


【케피소스(Cephissus)】 [그리스] 델피에 있는 강이름.


【켄타우로스(Centaur)】 [그리스] 반어인(半漁人), 우주인 및 중간 종족이 이 켄타우로스이다. 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말이라는 균형있는 모습. 켄타우로스의 출생에 관해서는 몇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는 테사리아의 왕 이크시온과 제우스가 유노의 모습과 닮게 만든, 구름과의 사이에서 난 아이라는 것이다. 의학, 수렵 등에 능통하며, 아킬레우스와 이아손을 제자로 거느리고 있던 케이론은 그 우수함과 공정함을 인정받아 사후에 성좌(星座)가 되었다. 이것이 사수좌(射手座)이다.



케크롭스

<Kekrop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티카 최초의 왕. 대지에서 태어났으며 하반신이 용이었다. 이성(異性)인 남녀를 결합시키는 혼인을 발견하여 그 방법과 소유권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였다. 또한 해신(海神) 포세이돈과 여신 아테나가 아테네시(市)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싸웠을 때 아테나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였다고 한다.


【켄티마누스(Centimanus)】 [로마] 헤카톤키레스 참조.


【켈레우스(Celeus)】 [그리스, 로마] 데메테르(Demeter)가 켈레우스에게 성스런 의식을 가르쳤다.


【코라(Kora)】 [그리스] 페르세포네의 이름.


【코레】 [그리스]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Persepone)의 다른 이름.


【코린트(Corinth)】 [그리스, 로마] 이전에 에피레(Ephyre).


【쿠피드(Cupid)】 [로마] 이아손(Jason)이 메데아(Medea)를 사랑하도록 만들었다. 디도(Dido)가 아에네아스(Aeneas)를 사랑하도록 만들었다. 영어로 큐피드.


【퀴리누스(Quirinus)】 [로마] 로물루스 참조.


【크노수스(Cnossus)】 [그리스, 로마] 미노스의 도시. 크레타(Crete)의 수도.


【크로노스(Cronos)】 [그리스] 천신(天神), 주신(主神). 우라노스와 가이아(Gaia)의 자식. 레아와의 사이에서 제우스, 플루토, 포세이돈, 헤라, 데메테르, 헤스티아를 낳았다. 자신의 아들이 왕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자식들을 다 삼겼으나 제우스가 레아의 도움으로 그를 죽인다. 제우스가 그의 고환을 잘라 바다에 던졌을 때 그곳에서 아프로디테가 생겨났다고 한다. 로마에서는 사투르누스(Saturnus). 영어로 새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올림포스의 주신(主神) 제우스의 아버지. 천공신(天空神) 우라노스와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자식인 티탄신족(神族) 가운데 최연소의 신으로, 가이아는 그에게 명하여 자식인 키클로페스(외눈 거인)들을 타르타로스(지옥)에 가둔 우라노스를 습격케 하였다. 아버지를 대신하여 지배자가 된 크로노스의 시대는 인류의 황금시대로, 싸움이 없고 죄악도 모르며 대지는 절로 열매를 맺었다. 크로노스는 누이 레아를 아내로 삼았는데,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 하데스, 포세이돈, 제우스 등 6명의 자식이 태어났다. 크로노스는 자기 자식에게 지배권을 빼앗긴다는 신탁 때문에 태어난 자식을 차례로 삼켜버렸는데, 마지막 제우스가 태어났을 때는 레아가 크로노스를 속여 돌을 삼키게 함으로써 살아 남아 마침내 아버지를 추방하게 되었다. 로마 신화에서는 농업신(農業神) 사투르누스와 동일시되고 있다.


【크로노스(Kronus)】 [그리스] 크로노스(Cronus) 참조.


【크리사오르(Chrysaor)】 [그리스, 로마] 메두사(Medusa)의 피속에서 태어난 말.


【크리소테미스(Chrysothemis)】 [그리스, 로마] 아가멤논(Agamemnon)의 딸.


【클리템네스트라(Clytemnestra)】 [그리스, 로마] 아가멤논의 아내. 레다(Leda)와 틴다레우스(Tyndareus)의 딸. 카산드라(Cassandra)를 살해하고 남편 아게멤논도 살해했다.


【키노수레(Cynosure)】 [그리스, 로마] 작은 곰자리의 꼬리부분.


【키니라스(Cinyras)】 [그리스, 로마] 아도니스(Adonis)의 아버지.


【키론(Chiron)】 [그리스, 로마] 아에스쿨라피우스(Aesculapius)를 양육. 프로메테우스를 위해 죽었다.


【키메라(Chimera)】 [그리스] 영어로는 키마이라. 키메라의 모습에 대해서는 2가지 설이 있다. 몸의 앞 부분은 사자, 가운데는 염소, 뒷 부분은 큰 뱀, 혹은 용이라는 설과 염소, 사자, 용의 3가지 머리를 가지고 있으며 사자의 상반신, 용의 날개, 염소의 하반신을 가졌다는 설이 있다. 류키아 거리를 휘젓고 다니는 것을 그라우코스의 자식 벨레로폰(Belerophon)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말 페가수스(Pegasus)의 도움을 받아 퇴치시켰다는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다.


【킨티아(Cynthia)】 [그리스] 아르테미스의 별칭. 그녀가 델로스의 킨토스(Cynthus) 산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 이름을 얻었다.


【타나토스(Thanatos)】 [그리스] 하데스의 별칭. 뜻은 "죽음"


【타르타루쓰(Tartarus)】 [그리스] 고대의 위험한 세상의 가장 흉악한 죄인들을 처벌하는 명계의 지역. 씨씨푸쓰(Sisyphus)는 영원히 돌을 산위로 굴렸다. 익씨온(Ixion)은 바퀴에 묶인 채 굴러다녔다. 탄탈루쓰(Tantalus)는 음식과 물을 마시기 위해 헛되이 내밀었다. 그러나 이들은 한 두 가지 이유로 신들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받았다. 그래서 죽음이라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벌할 수 없었다. 피타고라쓰(Pythagoras)같은 사람들의 심각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인과 로마인은 불멸의 영혼에 관하여 진정한 관념을 갖지 못했다. 죽음은 주요한 본체가 사라지는 것을 뜻했다. 죽음 뒤에 남는 모든 것은 그림자, 죽은 사람의 마음이 없거나 비실체적인 복제였다. 영혼은 위대한 철학자들에게 화려한 존재, 여성이었다.


【타이나룸(Taenarum)】 [그리스] 혹은 타이나루스. 명계로 통하는 라코니아의 지명.


【타이아로스(Taenarus)】 [그리스] 타이나룸 참조.


【탄탈로스(Tantalos)】 [그리스] 지옥에서 음식을 바로 앞에 두고 굶은 자.


【탈로스(Talos)】 [그리스] 거인의 이름. 탈로스는 헤이파스토스가 크레타섬의 수호를 위해 미노스 왕으로 청동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탈로스는 크레타섬을 하루 3차례 순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따라서 배가 섬에 접근하면 탈로스는 가까이 있는 커다란 바위를 들어올려 배를 부숴버린다고 한다. 탈로스는 전신이 청동으로 되어 있으므로 사실상 불사신이지만 약점이 한 가지 있다. 영웅 아킬레스의 건이 유일한 약점인 것처럼 탈로스의 발뒤꿈치는 혈관이 얇은 막으로 덮여 있을 뿐이다. 크레타섬에 배가 다시 접근했을 때 탈로스는 바위를 집어올리려고 했다. 이 때 탈로스는 발뒤꿈치로 뾰족한 바위를 밟게 되어 얇은 막이 찢어졌다. 몸을 구성하고 있던 납이 흘러나옴에 따라 탈로스의 몸은 순식간에 허물어졌다고 한다.


【탈리아(Thalia)】 [그리스] 희극의 무사이.


【테르산데르(Thersander)】 [그리스] 폴리네이케스의 아들. 에피고니중의 하나.


【테미스(Themis)】 [그리스] 정의의 여신. 거인족. 뜻은 "정의"


【테세우스(Theseus)】 [그리스] 그리스의 영웅.


【테스티오스(Thestius)】 [그리스] 칼리돈의 왕. 레다와 알테아의 아버지.


【테아(Thea)】 [그리스] 가끔 달을 부르는 이름.


【테우케르(Teucer)】 [그리스] ① 강의 신이자 트로이 최초의 왕, 스카만데르의 아들. ② 텔라몬의 아들. 대 아약스의 이복형제.


【테티스(Tethys)】 [그리스] 바다(Ocean)의 아내.


【텔라몬(Telamon)】 [그리스] 대(大) 아약스의 아버지.


【텔레포스(Telephus)】 [그리스] 헤라클레스의 아들. 아킬레스로부터 상처를 입는다. 창에 낀 녹으로 치료를 했다.


【템페(Tempe)】 [그리스] 다프네의 아버지 페네우스가 흐르는 테살리아의 계곡.


【트로이젠(Troezen)】 [그리스] 아르골리스에 있는 도시. 테세우스의 출생지.


【트로이의 목마】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전승되어 내려오는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 이 전쟁에서 취재한 영웅서사시로 오늘날 전해지는 것은 호메로스의 작품인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2편뿐이지만, 아르카익시대 이전에는 다양한 종류의 영웅서사시로 노래된 것으로 짐작된다. 《일리아드》는 트로이전쟁 10년째에 일어난 일들이고, 《오디세이아》는 트로이함락 후 고향으로 돌아오던 오디세우스의 표류에 저마다 주제를 한정하고 있으며, 어느 것도 트로이전쟁의 경과 전체를 다루고 있지 않다. 전쟁 원인은 영웅 아킬레우스의 부모인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에 엘리스(불화의 여신)가 초대되지 않은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불화의 여신은 그 분풀이로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게>라고 적은 황금 사과를 결혼식장에 던져 넣었다. 헤라․아테나․아프로디테(비너스)여신이 서로 그 황금사과를 차지하려고 아름다움을 겨루었다. 그 심판인으로 선정된 트로이 왕자인 파리스(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 제일의 미녀를 줄 것을 약속한 아프로디테에게 황금사과를 주고, 그 대신 스파르타왕 메넬라오스의 왕비 헬레네를 트로이로 데려오는 데 성공하였다. 아내를 빼앗긴 메넬라오스는 형인 미케네왕 아가멤논을 움직여 그리스 여러 나라 왕들에게 트로이원정의 격문을 보냈으며, 연합선대가 보이오티아의 아우리스에 집결해 트로이로 향하였다. 견고한 성벽으로 방어된 트로이는 간단히 함락되지 않아 전쟁은 10년동안 계속 되었다. 이때 총수인 아가멤논과 영웅 아킬레우스 사이에 불화가 생겨 그리스군은 고전을 거듭하였다. 친구 파트로크로스가 전사하자 아킬레우스는 복수의 화신이 되어 싸움터로 달려 가 적장 헥토르를 처치하였으나, 나중에 그 자신도 전사하였다. 트로이가 우세해지자 그리스군은 이타케왕 오디세우스가 고안해낸 거대한 목마(木馬) 속에 군사를 숨겨두고 퇴각하였다. 승리에 취한 트로이군은 그 목마를 성 안으로 끌어들였고, 목마 속의 그리스군은 간단히 성을 함락시켜 역전승을 거두었다. 트로이의 패장 아이네이아스는 시칠리아를 거쳐 이탈리아로 달아나 로마 건국의 전설적 인물이 되었고, 아가멤논은 미케네로 귀국한 바로 그날 왕비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 아이기스토스에게 죽음을 당한다. 고대에는 이 전쟁의 사실성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으나 19세기의 비판적 사학연구 발흥기에는 허구로 처리하는 풍조가 나타났다. 그런데 H.슐리만의 트로이 발굴 성공으로 전승(傳承)과 사실(史實)을 결부시키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1930년대에 트로이유적의 과학적 재조사를 실시한 C.W.블레겐은 유적의 상황으로 보아 트로이전쟁이 실제로 있었던 것이라면, 트로이 제 7 층 A시(파괴 연대 BC1250 무렵)가 적합하다고 주장하였다.▣


【트리나크리아(Trinacria)】 [그리스] 시킬리의 이름.


【트리비아(Trivia)】 [그리스] 헤카테의 이름.


【트리토게네아(Tritogenea)】 [그리스] 아테나의 묘비명. 뜻이 불분명.


【트리톤(Triton)】 [그리스] 포세이돈의 자식 트리톤은 부친의 소라고둥을 부는 역할을 지시받아 언제나 포세이돈의 곁에 있었다. 이 트리톤의 소라고둥은 거친 바다를 잠재우는 힘을 가졌다. 트리튼은 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물고기라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언제나 해마(海馬, Hippocampus)를 타고 있다. 그러나 트리튼은 포세이돈의 궁전에 있는 군소 신이라는 설도 있다. 이 트리튼의 모습도 전술한 트리튼과 같지만, 이것들은 복수이다. 포세이돈과 마찬가지로 삼지창을 무기로 가지고 다닌다.


【티디데스(Tydides)】 [그리스] 티데우스의 아들.


【티르니스(Tirnys)】 [그리스] 에우리스테우스 참조.


【티린스(Tiryns)】 [그리스] 헤라클레스가 교육받은 아르골리스에 있는 도시.


【티에스테스(Thyestes)】 [그리스] 펠롭스의 아들.


【티이아데스(Thyiades)】 [그리스] 바쿠스 추종자들의 이름.


【티케(Tyche)】 [그리스] 행운의 여신. 로마의 포르투나.


【티탄(Titan)】 [그리스] 거인족. 영어로는 타이탄. 크로노스(Cronos)로 대표되는 제우스(Zeus)의 선조신들은 일반적으로 티탄 신족(神族)이라고 불렸다. 이 티탄이 다른 이름인 거인족으로 불린 것에서 '티탄=거인'이라는 의미가 되어 거인을 티탄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티티오스(Tityus)】 [그리스] 아폴로가 살해한 거인.


【티포이오스(Typhoeus)】 [그리스] 티폰의 다른 이름.


【틴다리스(Tyndaris)】 [그리스] 틴다레우스의 딸. 헬렌이나 클리템네스트라를 가리킨다.


【파르케(Parcae)】 [그리스] 운명 참조.


【파르테노페(Parthenope)】 [그리스] 사이렌중 하나.


【파보니우스(Favonius)】 [그리스, 로마] 제피르 참조.


【파에톤(Phaæthon)】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태양신 아폴론(헬리오스)와 클리메네의 아들. 성인(成人)이 되어서야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게 되어 아버지를 찾아 동쪽을 향해 떠났다. 아버지를 찾아 만난 파에톤은, 아버지가 무슨 소청이든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였으므로, 태양신의 전차(戰車)를 모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였다. 아버지인 헬리오스는 전차를 모는 일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였으나 약속을 어길 수 없어 허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파에톤은 전차를 끄는 말을 다룰 만한 힘이 없어 태양신의 전차는 하늘의 궤도를 벗어나 마침내는 땅을 몽땅 불태워버릴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 주신(主神) 제우스는 번개를 쳐서 파에톤을 에리다누스강(江)에 떨어뜨렸다.


【파온(Phaon)】 [그리스, 로마] 시인 사포가 사랑했다. 아프로디테를 레스보스에서 키오스까지 날라주었는데, 그 댓가로 젊음과 아름다움을 받았다고 한다.


【파우나(Fauna)】 [로마] 들판의 여신. 보나 데아(Bona Dea)라고도 함. 마이아 참조.


【파이드라】 [그리스] 테세우스의 아내.


【파이안(Paean)】 [그리스, 로마] ① 신들의 의사. 처음에는 아폴로에게 주어졌다가 나중에 아이스쿨라피우스에게 주어짐. ② 추수감사나 승전을 기리는 노래. 대개 치료자로서의 아폴로신에게 바쳐졌다.


【판도라(Pandora)】 [그리스] 뜻은 "온갖 재주를 갖추다". 최초의 여성. 에피메테우스(Epimetheus)의 아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류 최초의 여성. 프로메테우스가 하늘에서 불을 훔쳤을 때 주신(主神) 제우스는 이를 복수하기 위해 공신(工神) 헤파이스토스를 시켜 흙으로 여자를 만들게 하고, 여기에 아프로디테는 매력을 부여하고 헤르메스는 교지(狡智)를 부여하는 등, 모든 신(神)들이 온갖 능력을 모두 주었기 때문에 판도라(모든 선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프로메테우스는 자기에게 보내온 판도라를 경계하여 접근을 꺼렸으나 아우인 에피메테우스는 그녀를 아내로 삼았다. 판도라는 자기가 하늘에서 가지고 온 상자에 대한 호기심을 참을 수 없어 마침내 그 뚜껑을 열었으므로, 상자 속에 담겨져 있던 온갖 재앙이 쏟아져 나와 지상(地上)에 넘치게 되었다. 그러나 빨리 뚜껑을 닫음으로써 상자 속에는 최후의 ꡐ희망ꡑ만은 남았다고 하며, 이 ꡐ판도라의 상자ꡑ의 신화는 인류의 불행과 회망의 기원(起源)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유명하다.


【판드로소스(Pandrosus)】 [그리스] 첫 케크롭스의 딸. 헤르세 참조.


【판타소스(Phantasus)】 [그리스, 로마] 잠의 신, 힙노스의 아들. 무생물에 관한 꿈을 꾸게 만든다.


【팔라스(Palas)】 [그리스] 지혜, 정의의 여신. 아테나(Athena)의 다른 이름.


【팔라스(Pallas)】 [그리스, 로마] ① 거인 ② 아테나


【페가수스(Pegasus)】 [그리스] 날개가 달린 말. 키메라를 죽이기 위해 벨레로폰(Belerophon)은 지혜의 여신 아테네로부터 황금의 말고삐를 건네받아 페가수스를 길들이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벨레로폰은 키메라를 힘들이지 않고 죽일 수 있었다고 한다. 페가수스는 보통 신경질이 많고 난폭하여 매우 길들이기 힘들다. 그러나 이 황금 고삐를 사용하면 페가수스를 얌전하게 만들 수 있다. 그 후 벨레로폰은 신들의 마음에 들 것이라고 생각하고 페가수스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려고 했다. 그러나 이를 보고 노한 제우스가 페가수스의 엉덩이를 등에로 찔렀기 때문에 그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벨레로폰은 발이 부러지고 눈이 멀어 남은 여생을 홀로 외롭게 마쳤다고 한다. 페가수스의 몸 크기는 보통의 말과 비슷하며 단지 날개가 달렸을 뿐이다.


【페넬로페(Penelope)】 [그리스] 이타카(Ithaca)의 왕, 오디세우스(Odysseus)의 아내. (오디세우스 참조) 그는 그녀의 아버지 이카리우스(Icarius)가 개최하여 그녀의 구혼자들이 참가한 달리기경주를 통해 그녀를 얻었다. 오디쎄우스가 트로이(Troy, Ilium) 전쟁에 참가하면 20년간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다. 페넬로페와 그의 아들 텔레마쿠스(Telemachus)는 그를 기다렸다. 이타카 왕위의 승계는 모계승계였다. 오디세우스가 죽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많은 구혼자들이 페넬로페와 결혼하기 위해 궁전에 들어와 머물렀다. 그녀는 그녀의 시아버지, 라이르테스(Laertes)의 옷을 자 짜기전에는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녀는 밤만 되면 낮에 짰던 실을 풀었다. 호메로스(Homer)에 따르면 이 계획이 오디세우스가 돌아와 구혼자들을 다 죽일 때까지 통했다고 한다.


【페레(Pherae)】 [그리스, 로마] 알케스티와 아드메투스의 고향.


【페르딕스(Perdix)】 [그리스] 다이달로스의 조카이자 제자. 톱과 콤파스를 발명했다. 다이달로스가 그의 재능을 시기해 살해했다. 메네르바가 그를 가엽게 여겨 메추라기로 만들었다.


【페르세우스(Perseus)】 [그리스, 로마] 아바스의 증손.


【페르세포네(Persephone)】 [그리스] 아도니스를 사랑. 데메테르의 딸. 피리토우스가 유괴를 시도. 하데스의 아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지하세계의 여왕이며 하데스의 아내인 데메테르의 딸로서 코레(Kore:처녀)라고 부른다. 니사의 꽃밭에서 친구들과 꽃을 따고 있다가 명부(冥府)의 왕에 의해 지하로 끌려가는 장면이 《호메로스 찬가(讚歌)》 제2에 아름답게 읊어져 있다. 이름의 뜻은 확실하지 않으나, Persephassa 또는 Persephatta라고 쓰기도 하며, 그리스족(族) 이전의 말이라고 한다. 오르피코이의 비교전설(敎傳說)에서는 그들의 대신(大神) 자그레우스의 어머니로 나온다.



【페리보에아】 [그리스] 코린트의 왕비. 폴리보스의 아내.


【페이토(Peitho)】 [그리스] 설득의 여신.


【펠라스고스(Pelasgus)】 [그리스, 로마] 강의 신 이나쿠스의 손자. 그리스인중 펠라스기파의 조상.


【펠리아스(Pelias)】 [그리스, 로마] 포세이돈과 티로의 아들.


【포르투나(Fortuna)】 [로마] 행운의 여신.


【포르피리온(Porphyrion)】 [그리스, 로마] 거인


【포보스(Phobos)】 [그리스, 로마] 뜻은 "공포". 아레스의 조수.


【포세이돈(Poseidon)】 [그리스] 뜻은 "마실 것을 주는 사람". 바다의 신. 제우스(Zeus)의 형제이자 신중에서 2인자. 아내는 암피트리테. 황소는 그의 동물. 그의 황금마차가 지나면 폭풍우가 가라앉았다.


【포스포르(Phosphor)】 [그리스] 루키페르에 해당하는 그리스신.


【포이나(Poena)】 [그리스] 처벌의 여신. 네메시스의 조수.


【포이베(Phoebe)】 [그리스, 로마] 아르테미스의 이름.


【포이베(Phoebe)】 [그리스] 뜻은 "빛나는 여자". 달의 여신. 가이아(Gaia)의 자식. 어린이, 사냥꾼의 신. 아르테미스(Artemis)의 다른 이름.


【포이보스(Phoebus)】 [그리스, 로마] 아폴로의 이름. 뜻은 "찬란한, 빛나는". 영어로는 피버스.


【포이아스(Poeas)】 [그리스, 로마] 필록테테스의 아버지. 소포클레스에 따르면 필록테테스가 아니라 포이아스가 헤라클레스를 화장했다고 한다.


【폴룩스(Pollux)】 [로마] 헬렌의 동생. 아르고호의 승선.


【폴리도로스(Polydorus)】 [그리스, 로마] ① 랍다쿠스의 아버지, 카드무스의 아들. ② 프리암의 아들.


【폴리보스】 [그리스] 코린트의 왕페리보에아의 남편.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그리스] 뜻은 "먼저 생각하는 사람". 제우스(Zeus)의 편을 든 거인족. 인류에게 불을 전해주고 에피메테우스에게 판도라를 주의하라고 경고를 한 죄로 카프카즈 산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벌을 받는다. 나중에 헤라클레스가 그를 구해준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티탄족(族)의 이아페토스의 아들. ꡐ먼저 생각하는 사람ꡑ을 뜻한다. 주신(主神) 제우스가 감추어 둔 불을 훔쳐 인간에게 내줌으로써 인간에게 맨 처음 문명을 가르친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불을 도둑맞은 제우스는 복수를 결심하고, 판도라라는 여성을 만들어 프로메테우스에게 보냈다. 이때 동생인 에피메테우스(뒤에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는 형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아내로 삼았는데, 이로 인해 ꡐ판도라의 상자ꡑ 사건이 일어나고, 인류의 불행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제우스의 장래에 관한 비밀을 제우스에게 밝혀 주지 않았기 때문에 코카서스(카프카스)의 바위에 쇠사슬로 묶여, 날마다 낮에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고, 밤이 되면 간은 다시 회복되어서 영원한 고통을 겪게 되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영웅 헤라클레스에 의해 독수리가 사살되고, 자기 자식 헤라클레스의 위업(偉業)을 기뻐한 제우스에 의해 고통에서 해방되었다고 한다. 한편, 그가 제우스의 노여움을 산 원인에 관해서는, 제물(祭物)인 짐승고기의 맛있는 부분을, 계략을 써 제우스보다 인간 편이 더 많이 가지도록 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또한 인간을 흙과 물로 만든 것이 프로메테우스라는 전설도 있다.



【프로세르피네(Proserpine)】 [그리스] 페르세포네의 다른 이름.


【프로크루쓰테쓰(Procrustes)】 [그리스] 의심스런 취향을 가진 신화적인 그리스의 신사. 아티카(Attica)(코린트(Corinth)의 이쓰트무쓰(Isthmus)로 가는 도상에 있었다고 함)의 어느 곳에 그의 성채가 있었다. 그는 두 개의 침대를 갖고 있었는데, 하나는 보통 사람보다 짧고 하나는 너무 길었다. 여행자를 그의 소굴로 끌어들인 다음, 희생자를 제압하여 가장 길이가 안맞는 침대에 던졌다. 희생자가 긴 침대보다 짧으면 늘여서 침대에 맞추고, 짧은 침대에 비해 너무 길면 맞을 때까지 신체를 잘라냈다. 테쎄우쓰(Theseus)가 그의 수법대로 그를 죽였다.


【프시케(Psyche)】 [그리스] 뜻은 "정신(精神), 나비". 쿠피드(Cupid)의 연인.

로마 신화에 나오는 공주. ꡐ혼(魂)ꡑ을 뜻한다. 사랑의 신 큐피드(에로스, 쿠피도)의 사랑을 받아 그의 아내가 되었으나 큐피드는 절대로 그녀에게 자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를 시기한 두 언니는 남편이 괴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여, 밤에 불을 밝히고 남편의 모습을 확인하도록 부추겼다. 불을 밝히고 보니, 침상에서 잠자고 있는 모습은 아름다운 사랑의 신이었다. 그러나 등불의 기름이 그의 어깨에 떨어지는 바람에 사랑의 신이 잠을 깨자 그녀의 불신(不信)을 힐책하면서 떠나버렸다. 프시케는 남편을 찾아 집을 나서 각지의 신전(神殿)으로 찾아다니던 끝에 큐피드의 어머니인 아프로디테(비너스) 여신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 여신은 그녀에게 많은 종류의 곡식이 섞인 곡식더미를 하룻밤 사이에 한 알씩 가려내는 일이라든지, 황금의 양털을 가지고 오라는 등의 갖가지 어려운 문제를 제시하였다. 프시케가 문제를 다 해결하고 마지막으로, 명왕(冥王)의 비(妃) 프로세르피나의 처소에 가서 미(美)를 담은 작은 상자를 가지고 오라는 명령을 받은 그녀는, 돌아오는 길에 호기심에서 그만 상자를 열었다가, 안에 담겨져 있던 잠의 힘에 의해 깊은 잠에 빠져 자칫 목숨을 잃을 뻔하였으나 큐피드에 의해 구출된다. 큐피드의 청을 받아들인 주신(主神) 제우스(유피테르)의 힘으로 마침내 두 사람은 아프로디테의 허락을 받고 정식으로 혼인하였다고 한다.



【프시코폼포스(Psychopompus)】 [그리스] 헤르메스의 이름


【플로라(Flora)】 [로마] 꽃의 여신.


【플루토(Pluto)】 [그리스, 로마] 하데스 참조.


【플루투스(Plutus)】 [로마] 로마인들이 비유적으로 플루토와 혼동하여 사용한 인물.


【피그마이오스(Pygmaios)】

고대 그리스전설에 나오는 난쟁이족. 피그미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아프리카, 인도, 혹은 러시아 남쪽 스큐티아에 살았으며 그 키는 겨우 1 피그메(약 30 cm)에 불과했다고 한다. 워낙 키가 작아 철새의 계절이 되면 학 종류의 습격을 받아 해마다 그들과 심한 싸움을 벌였고 목숨을 지키기 위해 염소나 양으로 변장을 하기도 했으며, 또한 필사적으로 새 알을 찾아서는 깨뜨렸다고 한다. 이 전설의 기원에 관해서 아리스토텔레스 등은 중부아프리카에 실제로 살았던 왜인(矮人)에서 왔다고 하는데 그 종족에 관한 이야기가 고대 이집트를 거쳐 신화로 변하여 그리스에 전해진 것으로 여겨진다. 즉 아츠카족이 학을 사냥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은 실제로 전설 그대로였다고 전한다.


【피그말리온(Pygmalion)】 [그리스, 로마] ① ② 디도의 사악한 동생. 티레의 왕.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키프로스섬의 왕. 조각에 뛰어나 상아로 여인상(像)을 만들어 갈라티아라고 이름붙였다. 여자를 믿지 않아 결혼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였으나, 자신이 만든 조각상에 반하여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조각상을 인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아프로디테가 소원을 들어주자, 결혼하여 딸 파포스를 낳았다.


【피라】 [그리스] 대홍수에 살아남은 사람. 데우칼리온(Deuchalion)의 아내.


【피에리데스(Pierides)】 [그리스, 로마] 무사이. 테살리아에 있는 그녀들의 출생지, 피에리아에서 나온 이름.


【피테우스(Pittheus)】 [그리스, 로마] 트로이젠의 왕. 테세우스의 외할아버지.


【피톤(Python)】 [그리스] 아폴론이 죽인 거대한 뱀. 파르나소스산의 동굴에서 살았다.


【필레몬(Philemon)】 [그리스] 대홍수에살아남은 프리기아(Prigia) 사람.


【필로노에】 [그리스] 벨로로폰의 아내. 이오바테스의 딸.


【하이데스-하데스(Haides)】 [그리스] 뜻은 "눈이 멀다". 명계(冥界)의 신. 제우스(Zeus)의 형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명계(冥界)의 신. 사자(死者)의 나라의 지배자인 동시에 지하의 부(富)를 인간에게 가져다 준다고 해서 플루톤(富者)이라고도 하였다. 이 호칭에서 유래하여 로마에서는 플루토 또는 디스라고 불렀다. 그는 크로노스와 레아의 아들로 제우스, 포세이돈과는 형제간이며, 그들은 크로노스와 그 일족을 정복한 후 제우스는 하늘, 포세이돈은 바다, 하데스는 명계의 지배권을 차지하였다. 하데스는 제우스의 딸 페르세포네를 아내로 삼았다. 그가 지배하는 사자의 나라는 지하에 있다고 생각되며, 그 경계에는 스틱스(Styx River) 또는 아케론(Acheron)이라는 강이 있어 나룻배 사공 카론이 사자를 건네준다. 하데스의 입구에는 사자가 명계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케르베로스(Cerberos)라는 개가 감시하고 있다. 하데스의 상(像)은 제우스, 포세이돈과 닮아서 당당하게 보이지만 머리카락이 이마까지 내려온 어두운 표정이며, 손에는 명계의 왕을 상징하는 홀(笏)을 들고 있다. 때로는 파수보는 개 케르베로스와 함께 표현되기도 한다.


【하이몬(Haemon)】 [그리스, 로마] 안티고네와 약혼한 크레온의 아들.


【히아킨토스(Hyakinto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 스파르타 근처의 아미클라이라는 도시의 유서깊은 집안에서 태어나 태양신 아폴론의 총애를 받았다. 그런데 아폴론과 히아킨토스가 한참 투원반을 즐기던 중 아폴론이 던진 원반이 히아킨토스의 이마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이는 아폴론과 마찬가지로 히아킨토스를 마음속으로 사랑하고 있던 서풍(西風)의 신 제피로스가 질투한 나머지 세찬 바람을 불게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때 미소년의 피로 물든 대지에서는 히아신스(히아킨토스) 꽃이 피었는데, 히아신스의 꽃은 핏빛이고 꽃잎에는 탄식의 소리 ꡐ아, 슬프다!ꡑ를 나타내는 ꡐAIAIꡑ라는 글자의 무늬가 생겼다고 전해진다(이 꽃은 오늘날의 붓꽃 종류이다). 히아킨토스는 그리스 선주민족(先住民族)의 식물신이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아미 클라이 지방에서는 오래전부터 ꡐ히아킨티아ꡑ라는 제사를 지냈다. 후대에 아폴론 신앙으로 대체되면서 ꡐ히아킨티아ꡑ도 아폴론 축제로 바뀌었다.



【하피(Harpy)】 [그리스] '트로이 전쟁'의 트로이측의 영웅 아이네이어스(Aeneas)의 모험에 등장. 그리스군에게 패한 아이네이어스는 새로운 땅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데, 그 도중에 하피가 사는 섬에 들르게 되었다. 이 섬에는 과거의 잔혹한 소행 때문에 제우스가 장님으로 만든 왕이 살고 있었다. 그 왕을 더욱 괴롭히기 위해 보낸 것이 하피였다고 한다. 상반신은 여성, 하반신은 독수리(대형)인 하피는 매우 불결하다고 한다. 공격할 때는 독수리의 다리로 바위를 집어 올려 상공에서 떨어뜨리거나 손에 들고 있는 조잡한 무기(뼈, 단검)나 독수리의 발톱 등으로 습격한다. 아이네이어스와 마주쳤을 때도 식사 준비를 막 끝낸 아이네이어스의 식탁에 느닷없이 상공에서 기습하였다.


【헤라(Hera)】 [그리스] 제우스의 아내이자 누이. 뜻은 "보호자". 신부, 산모, 유모의 여신. 거인족, 바다와 테티스가 양육했다. 암소와 공작은 그녀의 동물이다. 제우스가 농락한 수 많은 여인들과 그 아이들을 가혹하게 처벌한다. 트로이 전쟁은 원래 양측의 무승부로 끝날 전쟁이었으나 그녀가 파리스에 당한 모욕을 갚기 위해 강하게 개입하여 그리스의 승리로 끝난다. 아르고스(Argos)에 신전이 있다. 아레스, 헤베, 헤파이토스의 어머니.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를 항해하는 아르고 호의 승무원들을 도왔다. 【하데스(Hades)】 [그리스] 명계의 신이자 재물의 신. 제우스의 형제이자 신중에서 3인자. 아내는 페르세포네. 죽음을 다스리기 때문에 타타토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쓰면 보이지 않는 모자(혹은 핼멧)를 갖고 있다.


【헤라클레스(Herakles)】 [그리스, 로마] 라틴어는 헤르쿨레스(Hercules), 영어로는 허큘리스(Hercules). 제우스(Zeus)의 아들이었지만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 탁월한 힘․곤경에서의 불굴의 의지와 끈기가 그를 모든 시대에 불멸하도록 만들었다. 독이 발라진 옷을 입고 그가 죽은 후에 제우스는 그를 불사신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인간적 속성이 그를 매력적인 숭배의 대상으로 만든 것이 분명하다. 그는 지중해의 끝에서 다른 끝까지 여행했다. 그를 숭배하는 것은 전적으로 남성이었고, 전통적인 남성미의 화신으로 생각되었다. 로마에서 그는 상업, 특히 올리브 기름 소매상의 신이었다. 몇몇은 자신들이 그의 후손이라고 생각했다. 미트리다테스(Mithridates)와 로마의 안토니우스 집안(Antonii)에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힘이 세고 또 가장 유명한 영웅. 테베에 사는 암피트리온의 아내 알크메네와 주신(主神)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남편과 딴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헤라클레스를 미워하여 사사건건 그를 괴롭혔다. 이와는 반대로 제우스는 그를 무척 사랑하여 뛰어난 힘과 씩씩한 기상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헤라클레스는 암피트리온과 그 밖의 많은 달인(達人)들로부터 무예와 음악을 배워 훌륭한 무인(武人)으로 성장하였다. 18세 때 암피트리온의 소를 습격한 키타이론산(山)에 사는 사자를 퇴치한 것이 그의 많은 모험 중 첫 모험이었다. 그 후 그는 이 사자의 가죽을 몸에 걸치고 그 머리를 헬멧으로 삼았다. 이어 그는 테베가 해마다 공물(貢物)을 보내야 하는 이웃나라 오르코메노스의 왕을 쓰러뜨렸다. 테베의 왕 크레온은 이 전공(戰功)을 기리어 자기의 딸 메가라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으나, 몇 해 후 그는 그를 미워하는 여신 헤라의 저주로 정신착란을 일으켜, 메가라와의 사이에 낳은 자식들을 죽여버렸다. 제정신으로 돌아온 헤라클레스는 테베를 떠나 델포이의 신탁(神託)을 청하여, 자신이 범한 죄를 씻고 싶다고 원하였다. 신탁은 그가 티린스로 가서 그 땅의 왕 에우리스테우스를 12년 동안 섬기면서 그가 명하는 일을 하면 불사(不死)의 몸이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리하여 그가 에우리스테우스에게서 명을 받은 것이 유명한 헤라클레스의 12공업(功業)이다. 그것은 ① 네메아의 사자 퇴치, ② 레르네에 사는 히드라(물뱀) 퇴치, ③ 케리네이아의 산중에 사는 사슴을 산 채로 잡는 일, ④ 에리만토스산의 멧돼지를 산 채로 잡는 일, ⑤ 아우게이아스 왕의 가축 우리를 청소하는 일, ⑥ 스팀팔스 호반의 사나운 새 퇴치, ⑦ 크레타의 황소를 산 채로 잡는 일, ⑧ 디오메데스왕 소유의 사람 잡아먹는 4마리의 말을 산 채로 잡는 일, ⑨ 아마존의 여왕 히폴리테의 띠를 탈취하는 일, ⑩ 괴물 게리온이 가지고 있는 소를 산 채로 잡는 일, ⑪ 님프(妖精) 헤스페리스들이 지키는 동산의 황금 사과를 따 오는 일, ⑫ 저승을 지키는 개 케르베로스를 산 채로 잡는 일 등 이상의 공업을 마친 그는 새 장가를 들려고 오이칼리아로 갔으나 다시 발광하여 그곳의 왕자 이피토스를 살해하고, 아폴론의 신탁에 의하여 헤르메스 신에게 노예로 팔렸다. 그러나 리디아의 여왕 옴팔레가 그를 사들여 나중에 그녀와 결혼하여, 아겔라오스․라몬의 두 아들을 두었다.


【헤라클레스의 기둥(Pillars of Hercules)】 [그리스, 로마] 대서양과 지중해의 좁은 관문. 이곳에 거대한 바위 돌출부가 2개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스페인쪽의 바위는 칼페(Calpe) (현재의 지브롤터(Gibraltar)), 아프리카쪽의 바위는 아비두스(Abydus)라고 불렀다.


【헤르메스(Hermes)】 [그리스] 전령의 신. 뜻은 "기둥, 남근(男根)". 상업, 교역의 신, 도둑들의 수호신. 신들의 전령(傳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올림포스 12신 중 하나의 신. 사자(使者)로서의 역할이 크다. 주신(主神) 제우스와 거인 아틀라스의 딸 마이아 사이에 태어났는데, 태어난 지 얼마 안되어서부터 요람에서 빠져나와 아폴론 신의 소를 훔쳤는데, 이때 뒤를 밟히지 않도록 소의 꼬리를 끌고 뒷걸음질을 치게 할 정도의 지혜를 발휘했다고 한다. 또한 갓난아기이면서 거북을 잡자 그 귀갑(龜甲)에 양의 창자로 현(弦)을 매어서 하프를 발명했다. 그 음색의 아름다움에 감동한 아폴론은 하프를 얻는 대신 자기의 소를 훔친 것을 용서했다고 한다. 그 밖에 피리를 만들어 아폴론에게 주고 조약돌로 점치는 법을 익혔는데, 음악․문자․숫자․천문․체육, 올리브 재배법, 도량형을 만든 것도 헤르메스라고 생각되었다.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제우스를 비롯한 신들의 의사를 전달하는 사자로서 활약하고, 또한 사자(死者)를 저승으로 안내하는 역할도 맡았다. 그 모습은 일반적으로 젊은 청년으로 표현되어 페타소스라는 날개가 달린 넓은 차양의 모자를 쓰고, 발에도 날개가 달린 샌들을 신었으며, 손에는 케리케이온이라는 전령(傳令)의 지팡이를 들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원래는 아르카디아를 중심으로 한 선주민족(先住民族)의 신앙에서 길을 지키는 마술적인 신이었던 듯하나, 그 힘의 범위는 확대되어, 나그네의 수호신이면서, 변론(辯論)․행운․상업․도둑․운동경기의 신으로도 생각되었다. 또한 다산(多産)과 풍요(豊饒)의 신이기도 하고, 여신 아프로디테와도 관련지어 여신과의 사이에 헤르마프로디토스를 낳았다는 설도 있다. 고대에 가장 친근한 신으로서 신앙된 신 중의 하나였으며, 현재도 상업관계 학교의 기장(記章) 등에 날개와 뱀이 달린 지팡이가 그려져 있는 것은 상업신으로서의 헤르메스에서 연유한다. 프락시텔레스의 조상(彫像) 《헤르메스》 외에 틴토레토, 루벤스 등의 그림이 있다. 로마 신화의 머큐리(메르쿠리우스)와 동일시된다.



【헤르미오네(Hermione)】 [그리스] 헬렌과 메넬라오스의 딸. 아킬레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무스와 결혼했다가 이레스테스와 결혼.


【헤르세(Herse)】 [그리스] 용족 케크롭스의 세 딸중 하나. 판드로소스와 아글라우로스의 자매.


【헤베(Hebe)】 [그리스, 로마] 젊음의 여신. 제우스와 헤라의 딸. 신들의 컵을 보관했다. 헤라클레스와 결혼했다.


【헤스티아(Hestia)】 [그리스] 뜻은 "가정". 가정의 수호신.


【헤스페르(Hesper)】 [그리스] 저녁별.


【헤스페리데스(Hesperides)】 [그리스] 아틀라스의 딸. 황금사과나무를 지켰다.


【헤시오네(Hesione)】 [그리스] ① 트로이왕, 라오메돈의 딸. 헤라클레스가 바다괴물로부터 구해줌. ② 바다의 요정. 프로메테우스의 아내.


【헤카베(Hecabe)】 [그리스, 로마] 헤쿠바의 변형. 프리암의 아내.


【헤카테(Hecate)】 [그리스] 밤의 여신.


【헤카톤키레스(Hecatonchires)】 [그리스] 백 개의 손을 가진 세 마리 괴물. 브리아레우스, 코투스, 기게스.


【헤쿠바(Hecuba)】 [그리스, 로마] 트로이 왕 프리암의 아내.


【헤파이스토스(Hephaestus)】 [그리스] 불의 신이자 대장간의 신. 뜻은 "낮을 빛내는 사람". 이글라이아와 아프로디테의 남편. 에우로파에게 바구니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불과 대장간의 신. 올림포스 12신의 하나로, 신들의 무기와 장구(裝具)를 만들었다. 주신(主神) 제우스와 그의 아내 헤라와의 사이에 태어났다고 하고, 제우스와 관계없이 헤라 혼자서 낳았다는 설도 있다. 태어나면서 절름발이였기 때문에 어머니 헤라는 그것이 싫어서 올림포스산에서 그를 하계(下界)로 떨어뜨렸으나, 바다의 여신 테티스(테미스)가 구출하여 9년 동안 바다에서 길렀다. 트로이전쟁 때 테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를 위해 무기를 새로 만들어준 것은 그 답례라는 설도 있다. 나중에 올림포스산으로 돌아가 제우스와 헤라가 다툴 때 헤라 편을 들었으므로, 제우스가 노하여 그의 발을 들어 천상(天上)에서 떨어뜨렸다. 그는 꼬박 하루 동안 낙하한 끝에 림노스섬에 떨어졌다. 이때 절름발이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다시 올림포스에 돌아온 그는 자기의 작업장을 가지고 신들의 궁전을 만들었다. 절름발이에다가 추남인 그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 아프로디테를 아내로 삼고, 아내와 그녀의 정부(情夫)인 군신(軍神) 아레스가 밀회하는 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 그물을 만들어 사로잡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미술작품에서 헤파이스토스는 수염을 기른 건장한 중년남자로, 손에는 쇠망치나 연장을 들고 있고 오른쪽 어깨는 옷을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로마 신화에서는 불카누스(벌컨)와 동일시되었다.


【헬레스폰트(Hellespont)】 [그리스] 에게해와 흑해를 잇는 좁은 해협에서 그리스 쪽.


【헬렌(Hellen)】 [그리스, 로마] 피라와 데우칼리온의 아들. 그리스인들의 조상.


【헬리오스(Helios)】 [그리스] 뜻은 "태양". 태양신.


【히게아(Hygea)】 [그리스] 건강의 여신. 일설에는 아이스쿨라피우스의 딸이라고 한다.


【히기아(Hygia)】 [그리스] 히게아 참조.


【히드라(Hydra)】 [그리스] 뱀이라기 보다는 용에 가까운 용로서 머리가 9개나 된다고 한다. 히드라는 그리스신화에 2번이나 등장한다. 한 번은 안드로메다(Andromeda)가 히드라의 제물이 되었을 때, 또 한 번은 헤라클레스의 12가지 난행(難行)의 두번째 시기이다. 이 때 헤라클레스는 히드라의 머리를 곤봉으로 계속 내리쳐서 떨어뜨렸지만, 첫번째 머리를 죽이면 두번째 머리가 다시 나오는 식으로 끝이 없었다. 그래서 일일이 다 태웠지만 9번째 머리는 죽지 않았다. 이에 헤라클레스는 마지막으로 불사(不死)의 머리를 바위 밑에 묻어 버렸다고 한다. 헤라클레스는 쓰러진 히드라의 몸에서 독을 취했다고 한다.


【히아데스(Hyades)】

그리스 신화의 요정(妖精)들. ꡐ비(雨)를 내리는 딸들ꡑ을 뜻한다. 단수는 히아스. 도도나의 요정(도도니데스)과 동일시되며, 주신(主神) 제우스의 명령에 따라 그의 아들 디오니소스를 길러냈다고 한다. 땅[地]이 낳은 풍요(豊饒)의 보물인 동신(童神)을 풍요의 정령이 길러내는 신화이다. 그러나 히아데스는 제우스의 아내 헤라가 두려워 디오니소스를 다시 이노에게 맡기고 하늘로 올라가 황소(타우루스)자리 속의 별이 되었다. 그것이 바로 프레데스 근처에 있는 히아데스 별자리이다. 이 별이 일출(日出)과 같은 시각에 나타나는 시기(6월 1일경)가 비와 폭풍을 몰고 오는 계절과 일치했다. 히아데스는 곧 암부로시아․에우도라․코로니스․폴릭소․디오네․아이실레․피토의 7명이다.


【히페리온(Hipherion)】 [그리스] 뜻은 "높이 나는 자". 태양신. 가이아(Gaia)의 아들.


【히페리온(Hyperion)】 [그리스] 태양, 달, 새벽의 아버지. 거인족.


【히포다미아(Hippodamia)】 [그리스] 펠로프스의 아내.


【히포타데스(Hippotades)】 [그리스] 히포테스의 아들. 바람의 왕 아이올루스라고 전해진다.


【히폴리투스】 [그리스] 테세우스의 아들.


【히폴리투스(Hippolytus)】 [그리스] 테세우스의 아들. 아이스쿨라피우스가 되살렸다.


【히프누스(Hypnus)】 [그리스] 잠의 신. 히프누스의 세 아들이 모르페우스, 이켈루스, 판타소스이다. 로마의 솜누스.


【힐라라(Hilara)】 [그리스] ① 아폴로의 딸. ② [로마] 카스토르와 폴룩스 이야기에서 레우키푸스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