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기행기 '17.06.20

Posted by 히키신
2017. 7. 2. 17:41 순간의 감상[感想]

출국 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걸까. 오로지 그녀를 만난다는 것에만 집중한 탓에 출발 전날, 밤을 꼬박 새가며 겨우 짐을 꾸린다. 허겁지겁 집을 뛰쳐나와 택시를 잡고 공항으로 가다.

김해공항 -> 상해 푸동 공항

김해공항 출국과 상해 푸동공항에서까지 타지에서 만난 고국 사람의 뜻밖의 호의에 감사함과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낀다. 본인 이름이 '이태석' 이라고 밝힌 중년의 신사는, 나의 연락처를 기입하고선 '다음에 또 봅시다' 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캐리어무게와 관련해 일하시는분들이 힘들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여태껏 무료수하물 무게만 맞춘다고 생각해왔기에, 괜시리 뜨끔하다.

상해에서의 하룻밤

먼저, 영어로 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다. 나는 물론 중국어도 할 줄 모르므로, 소통이 굉장히 어렵다. 그러나 조금 애를 써야 되긴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공항에 도착해서 숙소에 체크인 하기까지의 험난한 여정. 카드결제도 안되고, 소통도 안되고, 급기야 통역 번역기까지 동원해서 결국 현금결제로 결제하다. 그래도 나름 애를 쓰는 직원들이 새삼 때묻지 않은 듯 보여 기분이 썩 나쁘지 않다.



숙소 안은 모기가 한가득이다.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다.방 안과 거리를 가득 채운 특유의 냄새. 숙소와 상해 시내가 너무 멀어 계획했던 상해 여행은 완전 틀어졌으나 오히려 덕분에 로컬을 탐방할 수 있어 좋다.
역시 세계 어디든 촌 사람들은 대부분 순박하고 친절한 듯하다.

오늘 하루는 어찌어찌 해냈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동안 잘 해낼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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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이상하고 아름다운 꽃>

Posted by 히키신
2017. 6. 2. 18:07 Poetry#1

<아침의 시>


잠이 들었는데
그 잠 속에서
꿈을 꾸었다면
그리고 그 꿈속에서
천상으로 올라가
그곳에서 이상하고 아름다운 꽃을
한 송이 꺾었다면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는데
그 꽃이
손에 들려 있다면?

-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이상하고 아름다운 꽃> (류시화 옮김)


뒤에서부터 읽어 보자. 만약 당신이 지금 꽃 한 송이를 손에 들고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 꽃이 지난밤 꿈속에서 꺾은 꽃이었다고 한다면? 꽃뿐만 아니라 만약 당신이 살고 있는 이 이상하고 아름다운 삶이 당신이 꿈속에서 선택한 것이라면?

꿈속의 꽃을 현실로 가지고 올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그런데 만약 당신이 지금 손에 들고 있는 모든 것이 실제로 당신의 생각과 상상이 창조한 것이라면?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지기 전에 당신의 꿈과 상상 속에서 먼저 일어난 것이라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이 모든 기적이 실제로 매일 일어나고 있다면?

이웃에 사는 워즈워스와 친구가 되어 공동 출간한 시집 <서정 가요집>으로 영국 낭만주의 문학의 시작을 알린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1772~1834)의 시다. 매사에 신중하고 소심한 워즈워스와 달리 콜리지는 충동적이고 과감한 성격으로 인해 굴곡 많은 삶을 살았다. 어려서부터 꿈이 많았고 실현 불가능한 인생 계획을 가졌으며, 진보적인 정치 이념과 이단적인 종교 사상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상류사회의 감성을 고상한 단어로 표현하던 기존의 문학을 파격적으로 부수고 평범한 언어로 중산층과 하류 사회의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는 시들을 썼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웨인 다이어는 <날마다 기적 만들기>에서 이 시를 인용하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형상 없는 세계로부터 이 현실 세계로 무엇인가를 가져오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가? 상상력의 시인 콜리지는 그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실제로 우리의 꿈속에 멋진 꽃을 가지고 있다. 그 아름다운 것을 우리의 깨어 있는 현실 속에서 피어나도록 허용해야 한다. 깨어나라, 깨어나서 당신 손에 있는 꽃을 보라."


*출처 : 시인 류시화님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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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하킨스 <그는 떠났다>

Posted by 히키신
2017. 5. 22. 11:12 Poetry#1

<아침의 시>


그가 세상을 떠났다고 눈물 흘릴 수도 있고
그가 이곳에 살았었다고 미소 지을 수도 있다

눈을 감고 그가 돌아오기를 기도할 수도 있고
눈을 뜨고 그가 남기고 간 모든 것을 볼 수도 있다

그를 볼 수 없기에 마음이 공허할 수도 있고
그와 나눈 사랑으로 가슴이 벅찰 수도 있다

내일에 등을 돌리고 어제에 머물 수도 있고
그와의 어제가 있었기에 내일 행복할 수도 있다

그가 떠났다는 사실로만 그를 기억할 수도 있고
그에 관한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며 계속 살려 나갈 수도 있다

울면서 마음을 닫고 공허하게 등을 돌릴 수도 있고
그가 원했던 일들을 할 수도 있다
미소 짓고, 눈을 뜨고, 사랑하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 데이비드 하킨스 <그는 떠났다> (류시화 옮김)


내일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입니다. 정치인을 떠나 인간적으로 제가 좋아한 분입니다. 아름답고 정의로운 마음을 지닌 그가 세상을 떠나고, 우리는 아직도 많은 문제들을 고통스럽게 헤쳐 나가고 있습니다. 거대한 흐름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고, 우리는 자기 연민에 젖을 시간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미래에 대한 기대를 잃지 않으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새 대통령이 된 이를 위해 이 시를 소개합니다.

이 시는 영국의 무명 시인 데이비드 하킨스(1958~ )가 지역 신문에 '나를 기억해 주기를(Remember Me)'이라는 제목의 산문시 형태로 발표한 것이었는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자신의 어머니 장례식날 낭송함으로써 BBC 방송과 타임 지에 소개되어 세간에 유명해졌습니다.

이 시의 행마다 가능 동사들이 있듯이 우리 삶 역시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떠나도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가 꿈꾸고 이루려고 했던 세상을 가능하게 하는 일입니다. 담대하게 실천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다움을 지키고, 미소 짓고, 사랑하면서.

*출처 : 시인 류시화의 페이스북에서

제자리에서

Posted by 히키신
2017. 5. 20. 02:03 時쓰는 詩人의 始

제자리에서

벗어나려고
어디가 진짜로 아픈지
모르는 채로 짐작해봐도
이겨낼 방법을 모르고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됬나
점점 힘겨워지고
한참 걷다 문득 뒤돌아보니
결국은 제자리에

휘몰아치는 바람 속
나무 한 그루
말없이 스쳐지나고
길게 길게 돌아서
결국은 제자리에

비가 내리네
한 해의 뒷모습이 보이는
차디찬 12월의 끝자락에
어쩔 수 없는 슬픔 안고서
담배 한 모금

물음은 가시지 않지만
하늘보고 허탈히
웃음 한번 짓고서
다시한번 가볼까
결국은 제자리를 또 맴돌지라도
그래...다시 처음부터...툭

-'16.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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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연상

Posted by 히키신
2017. 5. 20. 01:42 時쓰는 詩人의 始

겨울의 연상

창 밖엔 눈처럼 비가 쏟아지고
공처럼 굴러떨어지네
어린 시절 갖고 놀던 구슬처럼
구르고 굴러 다다르는
추억 먼 산위에 살며시 얹어진
눈 온 세상 하얗게 뒤덮었으면 좋겠는데
바람만 거세게 불고 내 몸은
겉과 속이 다르게
따스하고도 춥다

지난 여름엔 이제 곧 가을이 오고
시원한 바람이 불거라 기대했는데
지금 불어오는 바람은
너무나도 아프고 이 겨울은
언제쯤이면 끝날지 애타게
지난 여름과 꼭 같은 마음으로
지새는 나날들
봄 가을은 늘 스치듯 지나가고
여름과 겨울은
절정이 느리게 흐른다

- '17. 첫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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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05. 16.

Posted by 히키신
2017. 5. 16. 18:56 순간의 감상[感想]

무심코 눈에 띈 책을 짚어들고 읽어나가다 불현듯 자신이 처한 상황에 꼭 들어맞는 글귀에 묘한 쾌감이 들 때가 있다.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을 읽으며 피식피식 웃다 감동받은 게 불과 며칠 전인데, 지금은 김수영의 산문 전집을 읽으며 감탄하고 있다. 임어당의 유쾌함과 자유로움, 김수영의 고독과 냉소는 모두 내 속에 들어있는 나의 일면이다. 그러나 어쨌건 아직까지도 나는 스스로 온전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누구의 흉내만 내고 있는 돌팔이 철부지인 게 분명하다! 혹시라도 이런 내 정체를 제대로 간파하는 누군가가 나타난다면, 나는 정말로 반기며 그를 부둥켜 안고 밤새 술잔을 나누고 싶다. 그런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분명 수많은 얘기를 즐거이 나눌 수 있으리라. 금새 진실된 친구가 될 수 있으리라.

- '17. 0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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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에스페란토: Korea Artista Proleta Federacio)

Posted by 히키신
2017. 5. 16. 18:30 etc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에스페란토: Korea Artista Proleta Federacio), 통칭 카프(에스페란토: KAPF 코아뽀포)는 1925년 8월에 결성된 사회주의 문학단체이다. 계급 의식에 입각한 조직적인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계급혁명운동을 목적으로 삼았다. 대표작가로는 최서해, 조명희, 이기영, 한설야 등이 있다.

카프의 조직과 프로문학

1923년을 전후하여 사회의식을 강조하며 등장한 신경향파 문학은 1925년 8월 카프의 결성과 함께 뚜렷한 목적의식을 강조하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으로 전환했다. 카프가 결성되기까지에는 신경향파적인 조직이 선행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조직이 염군사(焰群社)와 파스큘라(PASKYULA)였다. 염군사는 1922년 9월 이적효(李赤曉)·이호(李浩)·김홍파(金紅波)·김두수(金斗洙)·최승일·심훈·김영팔·송영 등이 조직한 최초의 프로문화 단체였다. 이 단체의 강령은 “본사는 해방 문화의 연구 및 운동을 목적으로 함”이라 하여 문학에 국한하지 않은 광범한 문화운동을 내세웠는데, 사회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좌익 문학청년 집단이었다. 또한 파스큘라는 박영희·안석영·김형원·이익상·김기진·김복진(金復鎭)·이상화·연학년(延鶴年) 등을 중심으로 조직된 무산계급 문학운동의 한 단체였다. ‘PASKYULA’란 명칭은 그들의 두문자(頭文字)를 따서 명명한 것으로, “예술을 위한 예술을 배격하고, 인생을 위한 예술을 건설한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강령이었다. 염군사가 문화적인 집단의 성격을 띠고 무산계급 운동에 정치적인 행동으로 가담했으나, 파스큘라는 중견 문학인들의 집단으로 처음부터 문단적인 현상으로 일관, 서로 다른 양상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파스큘라가 중심이 된 신경향파 문학운동이 점차 활기를 띠어감에 따라 미묘한 불화와 상위성(相違性)에도 불구하고 염군사와 파스큘라는 계급의식을 내세운 이념적인 공통성에서 결국 합동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리하여 1925년 8월 염군사와 파스큘라는 통일된 단일조직으로 합동하여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Korea Artists Proletariat Federation의 약칭) 즉 ‘KAPF’가 결성된 것이다. 염군사와 파스큘라가 합동한 카프의 구성원은 박영희·김기진·이호·김영팔·박용대(朴容大)·이적효·이상화·김온·김복진·안석영·송영·최승일·심훈·조명희·이기영·박팔양·한설야(韓雪野)·김양(金陽) 등이었다. 카프의 결성과 함께 파스큘라가 중심이 되어 종래의 신경향파 문학은 뚜렷한 목적의식에 기초를 둔 계급문학으로 방향전환을 하게 되었다.

카프의 사회적 근거가 분명하여진 것은 1926년 1월 《문예운동(文藝運動)》이라는 준기관지(準機關誌)를 발간한 이후부터였다. 카프는 1927년 9월 전국대회를 열고, 철저한 계급의식의 체제를 갖춤으로써 혁명적·전투적인 성격과 함께 볼셰비키적인 문학으로 방향 전환을 하게 된다. 여기서 ‘제3전선’을 들고 나온 세칭 동경파(東京派)의 조중곤(趙重滾)·김두용(金斗鎔)·한식(韓植)·이북만(李北滿)·홍효민(洪曉民) 등이 새로운 조직으로 등장하고, 카프의 기관지로 《예술운동》을 간행, ‘무장(武裝)한 계급의식’을 강령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과감한 이론 투쟁·조직 운동·대중 투쟁이 아울러 병행해야 한다”는 방향 전환을 모색하여 일본의 동경·평양·수원·개성 등의 카프 지부가 결성되고, 대회 이후 임화·윤기정(尹基鼎)·김유영(金幽影)·신고송(申鼓頌) 등이 카프 조직에 참여, 활동하게 되었다. 이때 자체 내의 논쟁, 절충파와의 논쟁, 내용과 형식의 창작 방법론에 대한 재검토가 제기되었다. 1927년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이 연합, 항일민족통일전선으로서 조직된 신간회가 그 분파작용 끝에 1931년 해체되자, 사회주의 운동은 한층 볼셰비키화했고, 영향은 카프에도 반영되어 ‘당(黨)의 문학’으로서의 프로문학과 카프의 볼셰비키화가 시작되었다. 1930년 이후 일본에서 돌아온 임화·김남천·권환·안막 등은 공산당의 문학으로서 그 지령에 따라야 한다고 맹렬히 주장함으로써 카프는 재조직되었고, 문학의 정치 예속화와 함께 ‘전투하는 계급의식’이 크게 강조되었다.

그러나 1930년을 전후로 한때 성황했던 프로문학은 1931년과 1934년 2차에 걸친 일제의 검거 선풍과 탄압, 자체 내의 내분·전향으로 1935년 카프가 해체되고 순문학의 대두와 함께 프로문학은 점차 퇴조하기 시작했다.

프로문학의 특색과 이론

1925년 카프의 결성과 함께 1934년까지 약 10년간 문단을 풍미한 프로 문학은 정치의식과 계급의식을 내포한 목적의식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문학의 구심점인 카프는 일반적인 문학 단체와는 달리 정치성이 농후한 조직적인 단체로, 프로문학의 정치성은 이 조직에서 비롯되었다. 신경향파 문학과 프로문학이 같은 사회의식에서 출발하면서 서로 구별되는 것은, 전자가 자연 발생적인 막연한 빈궁과 반항의 문학인 데 대하여 후자는 조직적인 정치투쟁을 의식한 목적의식의 문학이란 점이다. 프로문학이 카프의 지도원리에 따라 움직이고, 1926년 기관지 《문예운동》을 통해 조직적인 문학운동을 전개한 것은 프로문학의 정치성을 잘 말해 준다. 또 1927년 박영희가 〈문예 운동의 방향전환론〉에서 “자연생장적 소설로부터 프롤레타리아의 문예운동은 계급적 혁명을 위한 목적의식을 갖게 되어야 한다”고 주장, 프로문학은 계급투쟁의 한 부문이라 한 것은 프로문학이 목적의식의 문학임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문학이란 독자적 예술의 영역이 아니라 대중에게 계급의식을 계몽·선전하는, 즉 정치운동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정되었다. 1926년 김기진이 《조선지광》에서 “신소설이란 한 개의 건축이다. 기둥도 없이 서까래에 붉은 지붕만 입혀 놓은 건축이 있는가” 라고 하며 프로문학이 너무 형식을 무시하고 정치투쟁의 개념에 몰두한 데 대한 비평을 가했다. 이때 과격파이던 박영희는 1927년 〈투쟁기에 있는 문예비평가의 태도〉(《조선지광》)에서 “프로 작품은 군(君)의 말과 같이 독립된 건축물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 그것은 큰 기계의 한 치륜(齒輪)인 것”이라고 맹렬한 반박과 공격을 가해 왔다. 이것이 자체 내의 제1차 카프 논쟁인데, 여기서 김기진이 패배했다는 것은 당시 프로문학의 공식주의(公式主義)적 경향을 그대로 반증한 것이다. 또한 이 무렵 윤기정·이북만 등이 목적의식론에 대한 이론을 전개하여 이 시기의 기계주의적 문학관은 절정에 달했다. 이러한 형식을 도외시한 내용 편중의 문학관과 관련하여 1929년에는 프로문학파와 양주동 사이에 내용과 형식의 논쟁이 있었는데, 프로문학의 내용 편중에 대하여 양주동은 예술파적인 입장에서 문학작품은 내용보다 형식미가 더 본질적이라는 것을 주장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프로문학은 작품활동의 강조와 형식의 중요성을 반성하게 되어, 1928년 박영희는 〈최근 문예시감〉에서 “예술 운동이 대중을 획득하려면 작품 없이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라 하여 작품활동을 강조했고, 따라서 작품형식의 문제도 프로문학의 대중화와 관련해서 강조되었다. 1929년 김기진에 의해 제기된 형식론은 그 대표적인 것으로, 프로문학이 계급투쟁을 위해 대중에게 계몽·선전을 하기 위해서는 작품을 일반 하층 서민들이 친근미를 느낄 수 있도록 평이한 문체와 대중적인 문학형식이 요구된다고 하여, 작품의 대중화를 전제로 한 문학형식의 필요성을 밝혔다. 1928년 11월 김기진이 〈춘향전〉식 가정·통속소설의 형식을 그대로 이용하자고 한 것이 그 예로, 한때 카프 내의 소장파들에 의해 논쟁이 있었는데, 작품 형식은 단순히 평이한 것, 통속적인 것이 아니고 그들의 세계관에 의한 신리얼리즘 수법이며, 이에 부수되는 신형식이어야 한다고 결론을 맺었다. 내용과 형식문제와 관련해서 창작방법에 대한 재검토도 요청되었는데, 1928년 김기진이 〈변증법적 사실주의〉를 발표한 것을 비롯하여 1932년 이후에는 구소련의 문학론에서 영향받은 사회주의적 리얼리즘론 등으로 발전되었다. 이 창작 방법론에 대한 논의는 김기진·박영희를 비롯하여 신석초의 〈창작의 고정화에 대하여〉, 백철의 〈창작 방법론제〉, 임화·안함광(安含光)·김두용·한효(韓曉)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재검토〉, 김남천의 〈창작 방법의 전환 문제〉 외에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다. 당시 창작방법을 중심으로 검토된 것은 과거 프로문학의 공식적인 기계주의 문학관에 대한 비판의식에서 대두된 것이며, 또 이것이 동기가 되어 프로문학은 차츰 약화·분열되어 갔다.

프로문학의 작품과 작가

1926년 1월 카프의 준기관지로 발간된 《문예운동》에 발표된 김기진의 〈본능의 복수(復讐)〉, 이익상의 〈위협의 채찍〉, 이기영의 〈쥐 이야기〉, 〈팔아먹은 딸〉, 최학송의 〈의사(醫師)〉 등은 아직 신경향파의 자연발생적 요소가 그대로 남아 있고, 1927년 자체 내의 이론 투쟁을 거쳐 박영희의 〈문예운동의 방향〉이 발표된 이후 목적의식기의 프로문학운동은 그 이론과 함께 작품에도 방향 전환이 반영되었다. 프로문학의 이러한 전환기의 대표적인 작품은 조명희의 〈낙동강(洛東江)〉이었다. 〈낙동강〉은 이른바 제2기의 작품으로, 종전의 신경향파 문학이 빈궁에 항거하는 반항적인 특색이 자연발생적인 데 대하여, 이 작품은 그 빈궁의 원인을 민족적·계급적 사정과 환경으로 제시했다. 즉 〈낙동강〉에서 작가는 낙동강변의 빈궁한 주민의 생활이 자본계급과 일제의 수탈에 의한 것이라 보고, 자각적인 계급의식에 의한 반항을 시도했다. 또 작가는 이 작품에서 목적의식이 투철한 한 주인공을 등장시켜 계급투쟁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구체적으로 중농(中農)의 몰락, 소농(小農)의 빈농화(貧農化)를 강조했다. 따라서 신경향파 문학에서 자각적인 계급의식을 내세움으로써 목적의식에 입각한 프로문학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작가의 작품으로는 〈저기압(低氣壓)〉(1926), 〈동지(同志)〉(1927), 〈한여름의 밤〉 등이 있으나 역시 〈낙동강〉이 가장 유명하다. 그 밖에 박영희의 〈지옥순례(地獄巡禮)〉, 이기영의 〈천치(天痴)의 윤리〉, 최학송의 〈홍염(紅焰)〉, 〈가난한 아내〉, 주요섭의 〈개밥〉, 송영의 〈석공조합 대표(石工組合代表)〉 등이 있으나 이른바 목적의식기의 작품으로서는 그 이론에 못 미친 작품들이며, 작품으로서의 형상화에도 많은 미숙성이 발견된다. 한편 1929년 문학의 대중화가 강조된 후 1932년까지는 프로문학의 볼셰비키화 과정을 통해 작품활동이 크게 강조된 시기였다. 1929년을 전후해서 발표된 작품으로는 최서해의 〈먼동이 틀 때〉, 한설야의 〈과도기(過渡期)〉, 이기영의 〈고향(故鄕)〉(1933), 〈서화(鼠火)〉, 〈홍수(洪水)〉 등이 당시의 평판을 받은 작품들이다. 한편 시인으로서는 유완희·김창술·홍양명(洪陽明)·임화·박팔양 등이 활동했고, 프로 시로서 평판을 받은 것은 1929년 임화의 〈우리 오빠와 화로(火爐)〉가 있을 정도이다. 유완희의 〈우리들의 시〉(1930), 이북명(李北鳴)의 〈질소비료공장(窒素肥料工場)〉(1933) 등도 전형적인 프로문학작품이었다. 그러나 1934년 프로문학의 지도적 이론가였던 박영희가 “얻은 것은 이데롤로기요, 잃은 것은 예술이었다”고 자기비판의 결론을 내렸던 것처럼, 당시 프로문학은 대부분 도식적인 목적의식의 선행으로 작가의 창조성을 위축시킨 결과 참다운 작품의 생산이 이룩될 수 없었다.

발간 기관지

프로문학기를 통해 무수한 기관지가 발간되었으나 그 중 중요한 것을 들면 다음과 같다.

《문예운동(文藝運動)》 편집
1926년 1월에 창간된 문예지. 프로문학파의 최초의 기관지로 박영희가 주재했다. 창간호에 박영희·김기진·홍명희(洪命憙)·김복진·이상화·조명희·이익상·최학송·이기영 등이 중심이 되어 집필 활동을 했고, 3호까지 발간되었다.

《예술운동(藝術運動)》 편집
1927년 11월 창간된 카프의 본격적인 기관지. 카프 전국대회 후 발간되어, 이른바 제1차 방향전환의 계기를 이루었다. 1928년에 2호까지 나오고 《무산자(無産者)》로 개칭되었다.

《제3전선(第三戰線)》 편집
1927년 2월 도쿄에서 발간한 순문예지. 카프파의 조중곤·김두용·한식·홍효민 등이 1927년 7월 YMCA 회관에서 강연 후 이 잡지를 배부하다가 압수당했다.

《조선지광(朝鮮之光)》 편집
1922년 발간된 종합지. 학술논문 및 문학작품의 발표로 큰 역할을 했다. 《개벽》과 함께 프로문학의 활동무대였고, M·L당 기관지로 이성태(李星泰)가 주간.

《조선문예(朝鮮文藝)》 편집
1929년 5월 고병돈(高丙敦)이 발행한 문예지. 박영희 주간으로 카프 준기관지로 2호까지 발행했고, 사상적 근거는 계급주의에 두었다.

《조선문학(朝鮮文學)》 편집
1936년 4월에 창간한 순문예지. 카프 해산 이후 이갑기(李甲基)·한식·한호 등 소장 개량주의파(改良主義派)가 주로 활동했다.

*출처 : 위키피디아, <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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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 세대(Beat Generation) / 잃어버린 세대 (Lost Generation)

Posted by 히키신
2017. 5. 16. 18:18 etc


비트 세대

비트 세대(Beat Generation)는 1950년대 미국의 경제적 풍요 속에서 획일화, 동질화의 양상으로 개개인이 거대한 사회조직의 한 부속품으로 전락하는 것에 대항하여, 민속음악을 즐기며 산업화 이전시대의 전원생활, 인간정신에 대한 신뢰, 낙천주의적인 사고를 중요시하였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1920년대의 '상실세대(Lost Generation)'처럼 기성 세대의 주류 가치관을 거부 하였다.

그들은 현대의 산업사회로부터 이탈하여, 원시적인 빈곤을 감수함으로써 개성을 해방하려고 하였다. 사회적으로는 무정부주의적인 개인주의의 색채가 짙으며, 재즈․술․마약․동양적인 선(禪) 등에 의한 도취에 의하여 '지복(至福:beatitude)'의 경지에 도달하려고 하였다.

'비트 제너레이션'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힙스터(Hipsters)'로서, 혁명가의 기질을 가진 사람들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비트닉(Beatniks)'으로서, 방랑자의 기질을 가진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은 기성 사회를 떠나 시를 쓰고, 재즈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동방의 선불교에 빠진 사람들을 칭한것이다.

비트 제너레이션은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앨런 긴스버그, 잭 케루악과 루시엔 카가 만나면서 시작됐다. 초창기에는 타임스 스퀘어 암흑가에서 활동했다. 1950년대말에는 그리니치빌리지에서 주로 활동했고 이후 이들 비트족(Outsiders)은 샌프란시스코나 뉴올리언스에 모여 살았다. 또한 브니스 웨스트와 뉴욕의 그리니치빌리지의 중심부로부터 노스 비치, 캘리포니아, 맨하탄 남동부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의 하이트에시버리지역으로 진출하였으며, 그 후 하시버리(Hashbury) 지역으로 진출했으며 이후 보헤미아니즘의 새로운 요람으로 성장하여 히피의 중심지가 되었다.

대표적인 사람들

유대인 출신의 시인이며 동성애자인 앨런 긴즈버그가 그들을 대표하였으며, 그들은 자기들만 통하는 은어를 사용하고 제임스 딘이나 말론 브란도 같은 '반항적인 배우들'을 숭배하였다. 또, 사회에서 성공하려는 사람들을 '인습적인 사람들'이라고 경멸하였다.

그들은 잭 케루악의 소설 《길 위에서》에 나타난 것처럼,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면서도 어떻게든 쉬지 않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방랑자들이었다. 그들은 사회의 획일성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책임으로부터 도피해 보려고 하였다. 그들은 기성 사회의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를 거부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진정한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미국 로맨티시즘의 한 변형으로도 생각된다. 1960년대에 이르러 점차 쇠퇴하였다.




잃어버린 세대

잃어버린 세대(영어: Lost Generation, 로스트제너레이션)는 일반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 후에 환멸을 느낀 미국의 지식계급 및 예술파 청년들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상실세대(喪失世代), 길 잃은 세대라고도 한다.

직접적 계기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그의 작품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1926)의 서문에 "당신들은 모두 잃어버린 세대의 사람들입니다(You are all a lost generation)"라는 거트루드 스타인이 한 말을 인용한 데서 유명해졌는데, 오늘날에는 스타인이 어떤 프랑스의 자동차수리공으로부터 들은 말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청년 지식인들이 미국의 실업사회(實業社會)를 혐오하여 대거 파리에 건너가서 쾌락적이고 허무적인 생활을 보낸 사실로 보아서는 이 명칭이 헤밍웨이 작품 이후 유명해진 것도 무리가 아니다.

배경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경제적인 번영의 시대를 맞이하였다. 20년대 미국이 누리는 경제적 번영은 전쟁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국내의 상황으로 상당한 기술의 발전이 있었으며 그 기술이 경제적 번영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 시기에 두드러진 변화는 자동차 보급의 확산이었다. 자동차는 당시 미국의 번영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었을 뿐 아니라 개인의 신분의 척도 역할을 하였다. 특히 사회적인 측면에서 20년대 경제적 번영 그리고 그로 인한 물질주의의 우세는 개인들의 획일화 또는 표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런 물질주의와 획일화는 쿠 클럭스 클랜(KKK), 금주운동, 교조주의인 기독교 근본주의운동의 형태로 표면화되었다.

금주운동

미국에서 금주 운동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이미 17세기 청교도 사회에서는 엄법(Blue law)을 통해 금욕과 절제를 강조하였고 프랭클린의 13가지 덕목에서도 이는 매우 중요한 삶의 기준이었다. 하지만 이민이 급증하면서 술의 제조와 판매는 급속히 확산되었다. 따라서 금주운동은 이민 배척 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쿠클럭스클랜

또한 남북 전쟁이후 남부사회를 중심으로 확산된 쿠 클럭스 클랜은 20년대 보수주의와 전통주의의 물결을 타고 확산되었다.

기독교 근본주의

특히 획일화의 경향은 당시 근본주의 신앙 운동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더 이상 미국은 정착 초기의 청교도주의를 유지할 수 없었고, 새로운 이민의 증가는 새로운 신앙들의 유입을 의미하였는데, 기독교 근본주의는 점점 미국 사회의 종교적인 동질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위기의식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감성과 무의식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었으며, 그런 관심의 확산은 경제적 발전과 발맞추어 새로운 혁신의 바람을 일으켰다. 즉 20년대는 새로운 혁신의 바람이 불어 닥친 '재즈 시대'(Jazz Age)였다. 특히 흔히 '길 잃은 세대'라고 일컬어지는 일군의 작가들은 당시 미국 사회의 단면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들은 대부분 제1차 세계대전을 몸소 경험한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전쟁을 통해 인간에 대해 깊은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20년대 미국에 팽배해있던 물질만능주의는 그들의 회의를 한층 더 악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 대다수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유럽에 머물러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의 살롱에 출입하였다. 스타인은 이들을 기존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방황한다는 의미에서 '길 잃은 세대'라고 칭하였다.

상실세대는 미국 작가들과 달리 경제적 위기를 이유로 새로운 인력의 유입을 거부하는 사회체제에 대해 절망을 느끼고 있다. 이들은 선배 세대에게는 능력 발휘의 기회를 빼앗겼다는 상실감과 동료 및 후배 세대와는 생존을 건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전쟁 후유증에 비유할 만한 정신적 공황을 겪고 있다. 또한 이 세대는 자신들이 물려받은 가치관이 더이상 전후세대와 연결되지 못했고, 하딩 대통령의 '정상 복귀' 정책 아래에서 절망적으로 편협하고, 물질주의에 물들고, 정서적으로 황폐해 보이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정신적 소외를 느끼기 때문에 길을 잃은 것이다.

이 세대에 속하는 작가로는 헤밍웨이, F. 스콧 피츠제럴드, 존 더스 패서스, e.e. 커밍스, 아치볼드 매클리시, 하트 크레인 등과 1920년대에 파리를 문학 활동의 중심지로 삼았던 그 밖의 많은 작가들이 있다. 그들을 결코 문학의 한 파(派)로 볼 수는 없다. 1930년대에 이들이 다른 쪽으로 전향하자 그들의 작품에서는 더 이상 전후 시기의 독특한 특징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 시기의 마지막에 나온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피츠제럴드의 〈밤은 부드러워라 Tender Is the Night〉(1934)와 더스 패서스의 〈거금 The Big Money〉(1936)이 있다.

*출처 : 위키피디아 <비트 세대>, <잃어버린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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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 - 침묵

Posted by 히키신
2017. 5. 11. 01:13 영원의 지헤, 그리고 철학


my brain hurt 나의 뇌는 상처투성이

how can one understand hapiness without knowing tragedy?
누가 비극을 모르면서 행복을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empty urn makes a lot of noise. empty mind preaches a lot
빈 항아리가 요란하다 무지한 마음은 설교를 많이 한다
the biggest sale is life itself; we got it for nothing 최고의 세일은 인생 그 자체이다 우리는 아무 대가 없이 인생을 가졌다
you are a victim of your own childhood; you will never get over it
당신은 당신의 어린 시절의 제물이다 당신은 절대로 극복하지 못 할 것이다
​right and wrong will always make love 옳음과 그름은 언제나 섹스를 한다
​persistence of memory is what makes us 기억의 지속이 우리를 만드는 것이다
secret is only good when told 비밀은 오직 털어놓을 때만 유효하다
god is the biggest excuse for bad human behavior 신은 약한 인간의 행동들에 대한 가장 훌륭한 변명이다
i'm looking for myself but in the opposite sex 나는 내 자신을 반대되는 성(性)에서 찾고 있다
​flower is important but vase is even more so 꽃은 중요하다 그러나 꽃병이 더 중요하다
​we spend our lives justifying ourselves 우리는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데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
you are who you think you are 당신은 당신이 누구라고 생각하는 당신이다

i can only think straight when i' m drunken 나는 취했을 때만 올바르게 생각할 수 있다
a guard to the place can have more power than the king
궁전 문지기가 왕보다도 더 큰 권력을 가질 수 있다
human animals are the only ones that blush 인간만이 유일하게 부끄러움을 아는 동물이다
your dreams are your reality 당신의 꿈이 바로 당신의 현실이다
​fear is the greatest motivator 공포야말로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큰 동기이다
politicians should be paid very well for they entertain us immensely
정치가들은 우리에게 큰 오락을 주므로 보상을 충분히 받는 것은 당연하다
we get a certain sense of joy at other people's tragedy
우리는 다른 사람의 비극에서 어떤 기쁨을 느낀다
success brings new found gains but also new found losses
성공을 하면 얻는 것도 있지만 또한 잃는 것도 생긴다
preachers preach the things they lack the most 목사들은 자신이 가장 부족하게 여기는 것을 설교한다
​if you don't lose yourself; you can never find yourself
스스로를 잃어버리지 않는 다면, 당신은 절대로 당신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super rich and super poor are dangers to our society
거부와 극빈자가 우리 사회를 위태롭게 한다
​​slight imperfection compliments the beauty 조금의 티가 있어야 아름다움은 돋보인다
smaller the difference; bigger the hate 차이점이 적을 수록 증오는 더 커져 간다

you can live with the person all your life and not know the person
한평생 한 사람과 살아도 그 사람을 모를 수도 있다
​don't beleive what you hear; only what you fear 당신이 듣는 것들을 믿지 마라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만을 믿어라
men like what appears'; women like what disappears
남자들은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고 여자들은 드러나지 않는 것을 좋아한다
we accept the conditions; although we don't understand it
우리는 상황을 받아들인다 비록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all philsophers have sexual problems; all prophets have problems with their mothers
모든 철학자들은 성불구자다 모든 구세주는 마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after a while; everything became silly 시간이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어리석어진다
one must learn to entertain oneself; sooner or later
누구든지 스스로를 즐겁게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지금이든 나중이든

time heals most wounds but not at all 시간은 많은 상처를 치료하지만 모든 것을 치료해 주지는 못 한다
sexual urge is like a dog with no hair 성적 충동은 털 빠진 개와 같다
society that treasures art is a treasure 예술을 귀중하게 여기는 사회가 보물이다
the man upstairs(god) must be a sadist 위층에 있는 이(신)는 아마도 새디스트일 것이다

too much fame
and too much money
forces you to buy a castle
to hide

지나친 명성과
지나친 돈은
당신에게 숨어 살
성을 사게 만든다

too much of a good life
brings disorder to the body,
leading to mental breakdown;
too much of bad life is the same

지나치게 부유한 인생은
신체에 이상을 가져와
곧 정신병자가 된다
지나치게 빈곤한 인생도 마찬가지다

you must love all religion
or none at all;
anything in between
is dangerous

모든 종교를 사랑해야 한다
아니면 모두를 사랑하지 말든지
그 둘 사이에 서 있는 것은
위험하다

fishing for love
fishing for life
i find solace
in this empty vast


사랑을 낚는 것
인생을 낚는 것
나는 이 큰 공허에서
위안을 찾고 있다

***
우리나라에서 가장 저평가된(혹은 주목받지 못한) 아티스트라 생각한다. 나는 한대수를 정말 존경하며, 좋아한다. 나의 롤모델이다. 한평생 고독하게 살아왔고, 화폐(한대수가 돈 대신 사용하는 표현)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고, 세상을 깊이 있게 관찰하며, 어떤 측면에선 굉장히 회의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히피인 사람. 노래하는 철학자.

40주년 기념 콘서트장에서 그의 공연을 보고, 직접 만나 싸인을 받고 악수하며 사진을 찍었던 그 날은 너무나도 가슴떨리는 순간이었다. 그런 두근거림은 살면서 많이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2000년대 초반이었나? 한대수가 직접 제작한 셀프 다큐멘터리 필름에서 부인 옥산나의 히스테리를 감당하는 장면이 기억난다. 밖에서 열심히 일하고 집에 들어와 다시 집안일을 홀로 다 하는 내내 옥사나는 신경질적인 히스테리를 부리고(옥사나는 최고 등급의 알콜 중독상태이다) 한대수는 마치 어린아이 달래듯 부인을 케어한다. 그리고 늦은 저녁 옥사나와 함께 술을 마시는데, 옥사나는 알콜에 취해서인지 가슴 속 깊이 있던 진실된 말을 한다. 나는 이이가 없으면 단 하루도 살 수 없다, 한대수가 나는 반드시 필요하다. 한대수는 피로에 지쳐서인지, 그 역시 술에 취해서인지, 깊은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나서 인터뷰 장면. "까딱하면 나도 정신병이 걸릴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나의 이 고통을 털어놓고 위안을 받을 만한 사람이 주위엔 없다. 그저 스스로 꽉 붙들어 매고서, 스스로 채찍을 쳐댈 수밖에 없다. 크하하하"

과연, 나는 저런 상황 속에서, 저렇게 호탕하게 웃어 넘길 수 있을까?

위 글을 보고 스스로 물음을 던져본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언제나 나는 스스로를 정당화시키고자 애써왔지 않았는가? 만약 그래왔다면, 이제부터 그것을 중단할 수 있는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지더라도, 변함없이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는가?
-방황을 방랑으로 바꾸어 낼 수 있는가?

물음에 자신있게 답하는 데에는 아직 세월이 더 필요한 듯하다.

'17. 01. 14.

Posted by 히키신
2017. 5. 9. 00:21 순간의 감상[感想]

정신적인 유람......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

가련한 내 생활에 가당치도 않는 지적 호기심, 나를 휘두르는 불안과 끊임없이 왔다 갔다하는 권태....도대체 알 수가 없다.

//

호기심에 병들다.

- '17. 0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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